뫼비우스 - 장 지로드프랑스의 수많은 창조적인 만화가중 영미권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고 국내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만화가가 바로 뫼비우스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장 지로드(Jean Giraud)이다.그는 1938년 파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혼란스러운 프랑스에서 보냈다. 그 후 파리 응용미술학교를 나와 56년에 데뷔를 해서 60년대 중반까지 웨스턴물을 그려 성공을 하게되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후 sf물로의 도전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75년에는 동료작가들과 함께 현재 미국의 헤비메탈(Heavy Metal)지의 전신이 된 sf, 환타지 전문잡지 메탈 위르랑(Metal Hurlant)을 창간하게된다. 그는 하라키리(Harakiri)지에 새로운 스타일의 만화를 내기 시작할때부터 장 지로드 혹은 지르라는 이름을 놔두고 뫼비우스(Moebius)라는 필명을 사용했는데 사실상 그의 진가는 그때부터 서서히 발휘되기 시작했다.장 지로드는 만화가로서의 경력을 웨스턴 만화로서 시작하였고 그가 이름이 나기 시작한 것도 블루베리라는 웨스턴 시리즈였지만 그의 탁월한 재능은 웨스턴물에서 보여준 예술적인 연출도 아니었고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아닌 바로 선구적인 디자인 감각과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이었다. 그가 sf에 정착한 후 더 큰 성공을 얻게되며 조도로프스키와의 합작인 잉칼(L'Incal)과 아자크(Arzach)등에서 수많은 멋진 그림과 세계관 그리고 비전을 보여주어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모든 미디어에 걸쳐 미쳐서 우리는 현재 거의 모든 sf영화, 소설, 만화등에서 그의 영향을 느낄수 있게 되었고 엥키빌랄(Enki Bilal)에서 오토모가츠히로(Otomo Katsuhiro)같은 수많은 또 다른 거장들조차도 그를 칭송하며 그가 끼친 영향을 이야기하게 되었다.그는 만화작업이외에도 수많은 다른 종류의 비주얼 아트영역에서 활동하는데 1977년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을 영화화한 듄, 리들리스콧 감독의 에일리언을 비롯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디자인과 스토리보드등을 작업하고 수많은 앨범자켓과 일러스트, 그 외 티비광고와 놀이공원 디자인에까지 손을 뻗쳤으며 모든 미디어들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재능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민간신앙 : 신, 귀 그리고 조상중국인이 종교적 편견이나 미신 없이 현세적이고 합리적인 민족이라는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중국인은 영혼이나 신이 실재하며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도시와 촌락마다 존재하는 사원과 사당, 가정마다 있는 제단, 영혼의 문 등은 중국인들이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고 있다는 증거다. 중국인들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초자연적인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민간신앙의 요소는 주대부터 나타나고 있다. 한대에는 음양과 오행이 토착신앙에 첨가되었고 그 이후 도교와 불교에서 여러 가지 개념이나 특징 등 또한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도교와 불교에 가려있던 토착신앙은 재기하여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신앙의 기본적인 요소는 춘추전국시대의 그것과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초자연 세계의 존재들민간신앙은 다신교다. 사람들은 신의 효능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신들을 하나의 신전에서 모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저승의 존재를 믿었으며 인간과 상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초자연 세계의 존재는 크게 신, 귀, 조상으로 나눈다. 이 중 신은 가장 강력하고 경이로운 존재로 인간 세계의 관료와 같다. 그들은 왕조의 관료기구와 같은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가장 말단은 집집마다 존재하는 부엌신이고 바로 위는 특정 지역을 관할하는 토지신이다. 그 위로 상제공, 성황신이 있고 가장 위에는 인간 세계의 황제와 같은 옥황상제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은 관료가 아닌 현자에 가깝다. 신들은 현세에서 뛰어났던 사람의 혼백이기 때문에 전능하지 않다.평범한 남녀의 혼은 조상이나 귀가 된다. 보통 농민의 혼 중에서 양혼은 사후에 저승에서 재판을 받고 벌을 받은 다음 지상에 재생하여 살아간다. 양혼은 동시에 초자연 세계에서도 살아가는데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현세의 인간들에게 제사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제사는 조상숭배의 일종으로 양혼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에 따라 자손에게 충분한 공급을 밥은 양혼은 조상이 되고, 그렇지 못한 양혼은 굶주림, 비열함, 악의에 찬 귀가 되었다. 중국인들은 조상이 자손의 행복을 지켜준다고 여겼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줄 남자 자손을 반드시 필요로 했다. 제사를 받지 못하거나 비정상적으로 죽은 혼은 귀가 될 위험이 컸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했다. 유아의 시체를 개가 먹게 한다든가 딸의 제사를 위해 명혼을 맺어주는 등이 있었다. 귀는 병이나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중국인들은 정기적으로 귀에게 제물을 마치고 귀의 반감을 사지 않도록 했다.종교의식과 축제중국인들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에게 제물을 바칠 때는 조상, 신, 귀를 구별하였다. 조상은 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바로 조리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들과 밥, 젓가락을 바쳤다. 신은 나중에 사당에서 제물을 먹기 때문에 밥과 젓가락을 두지 않고 칼을 대지 않고 손질이 덜 된 음식들을 바쳤다. 귀에게는 어떤 음식이여도 상관없었으나 대야와 수건을 준비해야했다. 또 귀는 부정한 존재였기에 집이나 사묘 밖에서 제물을 바쳤다.민간신앙과 종교적 색채의 연중 축제는 대개 가정에서 행해졌다. 보름동안 행해지는 연중 최고의 축제인 춘절에는 액막이를 의미하는 대청소를 하고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을 먹으며 제사를 지내고 세배를 한다. 춘절과 같이 가정에서 행해지는 축제로 조상의 묘를 청소하는 청명절, 용선경기를 행하고 쫑즈를 먹는 용선 축제, 월병을 먹으며 가을에 보름달을 보는 중추절 등이 있다. 사원 축제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없고 지역별로 각 사원마다 신들의 탄생일을 축제로 삼는다. 이 축제 때는 사람들이 마을에 모여 붐비고 장이 열리는 등 활기찬 모습을 띈다. 사람들은 사원에 제물을 바치고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공연도 상연된다. 밤에는 신들의 주술적 힘을 높일 수 있다고 여겨지는 횃불 행진이 이루어진다. 다른 큰 제례로는 아귀제가 있다. 이것은 매년 음력 7월에 귀에게 봉헌하는 것으로 귀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해진다.성직자민간신앙에서 상시적인 성직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승려, 도사, 무당, 풍수가 등의 종교적 전문가가 필요했다. 불교의 승려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회와 접촉하지 않았다. 그들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자신의 구도에 정진했다. 도사에는 종교 활동에 전념하는 수도사와 속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반 도사가 있다. 도사는 일이 있을 때 고용되었고 기술의 비밀을 지키려 했다. 악령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기 위한 기술 등을 배워 익혀야 했고 신비한 기술의 수준에 따라 지위와 칭호를 얻었다. 무당은 저승세계와 교류하는 자로 주로 영혼의 명령에 따라 무당이 되었다. 무당은 노한 귀나 조상이 살아있는 자에게 고통을 줄 때 그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영혼을 초자연세계에 보내기도 하고 의뢰인을 무아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풍수사는 우주의 기가 집중되어 있는 곳을 찾아 현세의 인간이 이를 이용해 좋은 기운을 받게 한다. 풍수사는 각종 장소를 선정할 때 동원되지만 특히 묘지를 결정할 때 자주 불린다. 묘지의 풍수가 좋아야 자손들이 재앙을 피하고 복을 받는다. 주로 심미적으로 쾌적한 곳이 묘지로 선정된다. 성직자와 신자 사이에는 종교의 지식이 가진 한계 때문에 거리가 존재한다. 또한 성직자들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기도 했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과 같이 수많은 기업과 소매업체가 존재할 때는 어떠한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기업과 소매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서비스는 오로지 소비자만을 위한 서비스일까? 결국 소비자를 위한다는 것은 이윤이라는 실제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쇼핑의 주체는 누구일까?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인 듯 하다. 우리는 그동안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똑똑한 소비자인척 했다. 그러나 그 똑똑한 소비자는 결국 쇼핑의 과학을 실행하고 있는 사업자의 손바닥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닐지 의문이다. 어쩌면 쇼핑의 주체는 사업자이고, 소비자는 사업자에 의도대로 움직여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닐지 의심해본다.쇼핑의 과학은 소비자를 현실적, 세부적으로 연구한 학문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고객의 이익과 입장 옹호를 위해 좀더 나은 소매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쇼핑의 과학이 고객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충분히 사업자의 필독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쇼핑의 과학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매장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나중에 내가 소매업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 내용을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에 내가 소매업을 시도하려 한다는 가정 하에 느낀 점들을 전개하고자 한다. 쇼핑의 과학에서 나의 매장에 반영하고자 하는 요소들을 주관적으로 정리해볼 것이다.손에 다른 물건을 들고 있으면 쇼핑을 하기 쉽지 않다. 구매를 위해서는 진열된 물건을 손을 이용해 이리저리 살펴봐야한다. 그러나 가방, 휴대폰, 또는 그 밖에 물건들로 이미 자유롭지 못한 손은 물건을 건드릴 여력이 없다. 결국 시도를 거듭하다가 구매 욕구는 점점 사라지고 쇼핑을 포기하게 된다. 나도 양손의 부자유 때문에 쇼핑의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의 특성을 발견하고 고객의 손을 자유롭게 하라고 한다. 손님들에게 바구니 건네기, 콜 시스템 등은 고객의 손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체공학적인 배려가 전혀 배려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팬시 ? 문구를 취급하는 아트박스나 저가 화장품 브랜드인 더페이스샵에서 하나 이상 구입하려는 물건을 들고 있을 때 조그마한 바구니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 바구니는 그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많이 구매하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손에 여러 가지 물건을 들고 있다가 친절하게 건네는 바구니를 받고 편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마다 차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나는 부담을 느꼈다. 콜 시스템에 대해서도 불쾌한 기분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이마트에서 반드시 외부에서 구매한 물건 봉투라든지 커다란 가방을 맡기고 입장하게 했다. 나는 중요한 물건이 있어서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이마트 직원은 반드시 데스크에 맡겨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불쾌함과 번거로움을 느낀 나는 그곳에서 뒤돌아 나왔다. 소비자에게 편안한 쇼핑 환경을 제공하여 구매 욕구를 높이고자 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가져 온 것이다. 이 부분에서 고객의 차이를 배려하는 쇼핑의 과학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이 책에서는 남성과 여성, 노인과 어린아이로 구별하여 고객의 차이를 배려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다. 내 주변의 남성들 중에서도 쇼핑 하는 것을 특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동행한 사람의 물건을 사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히 참을 수 없어하고, 자신의 물건을 고를 때조차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고자 한다. 그들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쇼핑이 싫다고 했다. 나를 비롯한 여성들은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도 쇼핑하는 그 순간을 즐기고 만족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아직도 쇼핑 환경이 너무나 여성 위주이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쇼핑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남성의 쇼핑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남성적 이미지의 물건과 장소를 제공해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고객을 위해서 컴퓨터나 자동차와 같은 남성성이 강한 산업에서도 여성의 취향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소매업자라면 매장 내에 남성적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할지 여성고객의 취향을 고려해야할지 결정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남성을 위한 매장과 여성을 위한 매장이 분리되어야 할 것인가? 슈퍼마켓과 같이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찾는 곳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된 복합적인 이미지를 갖추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복합적인 이미지란 또 무엇일까? 두 가지 모두 추구하다가 어중간한 전략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이 점과 더불어 고객의 편의를 위해 제공한 바구니가 사람의 성격에 따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편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장 세분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한 제품이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고, 한 매장이 현실적으로 모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을 세분화하고, 목표 시장을 선정해서 그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슈퍼마켓과 같이 성별과 연령, 개인의 성격에 상관없이 모든 고객을 포용해야하는 매장의 시장 세분화는 가능한 것일까? 일반적인 슈퍼마켓을 생각해본다. 요즘 슈퍼마켓은 일반적인 경우라고 할지라도 파코 언더힐의 쇼핑의 과학에 제시된 요소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낙농제품들을 출구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진열하여 소비자들이 거의 모든 상품을 통과하게 설계했다. 다양한 음식의 시식을 통해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만족시켜 감각적인 쇼핑을 가능하게 한다. 슈퍼마켓 한구석에 베이커리나 카페 역시 존재하고 있다. 광고효과를 위해 글씨들은 멀리서도 볼 수 있게 큼직하게 쓰여 있다. 이런 슈퍼마켓은 다양한 개인들을 수용할 수는 있으나 특별한 차별성을 나타내지 못한다. 고객들에게 맞춤형 편의와 차별성을 제공하여 더욱 이윤을 창출하는 슈퍼마켓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이를 위해 상품 배열의 놀라운 마법을 부릴 시간이다. 나는 인접물을 어떻게 배열하면 가장 효과적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한 가지 제품에 대한 인접물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의 슈퍼마켓 매장에 두부의 인접물로 무엇을 두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자. 두부는 우선 부쳐 먹을 수 있으니 옆에 올리브유, 식용유를 비롯한 각종 기름과 부친 두부를 찍어 먹을 수 있는 간장 종류를 두어야겠다. 그런데 두부는 된장찌개에 넣어 먹는 경우도 많으니 반대쪽에는 된장과 찌개에 넣을 호박, 양파, 파, 고추 등을 진열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인접물을 배치한다면 만들 수 있는 모든 두부 요리에 따라 진열대가 복잡해질 것이다. 이런 진열은 효과적인 상품 배열이라고 볼 수 없다. 내가 판단하기에 저자가 말한 상품 배열은 일정한 한계를 지닌 것 같다. 특히 식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에서는 적합하지 못하다. 기존의 방식처럼 유제품은 유제품대로 야채는 야채대로 배열하는 것이 소비자 편익에 좀더 가깝게 여겨진다.이제 점점 슈퍼마켓의 시장 세분화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결국 나는 특징 없는 일반적인 슈퍼마켓 매장을 소유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모든 고객에게 맞춤형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은 어중간한 전략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마트처럼 대량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야하거나 백화점의 슈퍼마켓처럼 고급화 전략으로 유기농 제품이나 수입한 제품을 제공하는 것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 마케팅에 대해서는 완전 초보이니 조금 더 공부하면 내가 원하는 슈퍼마켓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슈퍼마켓을 백화점과 같이 타겟시장마다 층을 다르게 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보았다. 1층은 모든 고객들이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는 매장으로 기존 슈퍼마켓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주로 저렴한 상품들을 파는 것이 좋을 듯 하다. 2층은 남성들을 위해 남성적 이미지로 매장을 꾸미고, 요리 방법이 상세히 적혀있는 재료들을 모아서 팔거나 간편한 즉석 용품을 판다. 3층은 여성들을 위해 공구들조차 여성들이 사용하기 편하게끔 만들어진 제품들 위주로 판매하고 포장이나 분위기도 감성적이고 고급스럽게 한다. 4층은 노인들을 위해 커다란 글씨로 이루어진 상품이 주를 이루고 책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집어야 했던 주름살제거 크림 등 노인들이 필요로 할만한 제품들을 살펴보기 편하게 진열한다. 5층은 유기농 제품을 중심으로 구비해두고 매장 자체를 갤러리처럼 꾸며 작품 전시를 함께 하여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런 슈퍼마켓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재력이 밑바탕 되어야겠다. 소매업에서 출발한 나의 슈퍼마켓은 과연 슈퍼마켓이라고 불러도 될지 의심되는 거대한 쇼핑센터가 되어있었다. 역시 다시 한번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매장의 존재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 조나단 반브룩 (영국, 1966년생)영국출신의 디자이너이자 활동가인 조나단 반브룩은 1990년부터 그래픽디자인, 산업디자인, 서체디자인, 영상작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브룩 스튜디오는 세계적인 미술관 및 문화예술 기관들을 위한 상업적 프로젝트와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비영리 프로젝트를 거의 같은 비중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시각디자인을 통한 반브룩의 문화운동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서체디자인이다. 반브룩의 서체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서체형태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는 여기에다 현시대에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전복적인 정치사회적 컨텍스트를 접목시키고, 이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서체 제목을 부여한다. 그는 왕립예술학교를 다니던 10대 시절부터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와 북디자인을 선보여 '도발적 디자이너', '반미학적 디자이너'란 평판을 얻었다.디자인 클라이언트● 도쿄 모리미술관 - 2003년 10월 도쿄에 설립된 새로운 현대미술관을 위한 C.I.작업● 소니뮤직 - 데이빗 보위의 CD "히든(Heathen:2002)"과 "리얼리티(Reality:2003)" 앨범을 위한 아트웍● 데미언 허스트(현대 미술가) - 장편 모노그라프 “I Want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Everywhere with Everyone, One to One, Always, Forever, Now.”(1997)의 북디자인. 주요 전시인 “The Beautiful Afterlife”(취리히, 1997)와 “Theories, Methods Models, Approaches, Results and Findings”(뉴욕 가고시안갤러리, 2000)의 포스터, 초청장, 출판물 디자인● 화이트큐브갤러리(런던) - 가빈 터크(Gavin Turk)展(1999), 독일미술가 3인展(2000), 게리 흄(Gary Hume)展(2002) 등의 전시회 출판물 및 초청장 디자인● 사치갤러리(런던) - “영 브리티시 아트: 사치 10주기”의지 않기로 결정함.전 시1995 빅애플(Big Apple) 展영국 런던 젤다치틀갤러리사진작가 토모코 요네다와 함께 한 공동사진전1997 배스터드(Bastard)! 展영국의 런던 컬리지 어브 프린팅조나단 반브룩의 타이포그래피 전시회1999 로스트 앤 파운드(Lost & Found) 展영국문화원이 ‘영국현대디자인’을 주제로 기획한 세계 순회전시2001 코드 전시: 뉴 빌리지(Code Exhibition: New Village) 展일본 도쿄, 교토, 오사카2003 그라프 전시: 어쨌든, 내방(Graf Exhibition: My Room, Somehow) 展일본 오사카, 대만 타이페이2003 나를 사고 나를 쏘시오(Buy Me/Bomb Me) 展,일본 로켓갤러리조나단 반브룩의 그래픽 선동전 은, 작가가 지난 15년간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문화운동가(activist)로서 발표해 온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아 소개하는 기획전이다. 본 전시에 소개 될 50여 점의 작품 중 20여 점은, 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들로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크게 다섯 개의 주제영역으로 나뉘어 소개될 것인데, 그것은 NK 프로젝트, 전쟁의 바이러스(Virus at War), 나를 사고 나를 쏘시오(Buy Me Bomb Me), 영상작업(filmwork), 그리고 팔레스타인 및 다른 주제와 더불어 관람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액티비티(activity) 섹션 등이다우리시대의 모순에 대한 통력한 자각과 유쾌한 학습의 장이 될 것이며, ‘매스미디어 효과’로 마비되어버린 우리의 유머와 비판을 일깨워, 우리를 다시금 세계를 이야기하는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전시 제목, 은 “오늘의 이단은 내일의 진실(Today's heresy becomes Tomorrow's truth).”이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이단시되었던 여성평등이나 인종차별폐지와 같은 주장이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처럼, 인본주의에 근거한 이 전시의 날드와 오사마 빈라덴을 합쳐놓은 것이다.기획자의 말: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나는 이 두 인물을 생각하면 영어단어 ‘attack(공격)’이 떠오른다. 맥도날드는 인류의 건강에 ‘attack'을 가하고 있고, 빈라덴은 9.11 'attack’을 통해 세계평화에 위협을 가했으므로.● 기업 파시스트(CORPORATE FASCIST)[2001]작가의 말 : 훌륭한 그래픽 디자인이란 대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혀 뜻밖이지만 친숙한 방식으로 에두름 없이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사진은 조지 부시의 공식 인물사진인데, 여기에다 바코드를 첨가했다. 바코드는 부시를 당대의 히틀러로 변모시킴과 아울러,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아래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그의 정치적 과업을 묘사하고 있다.● 어린 동무(THE LITTLE FELLOW)[2004]작가의 말: 이 작품은 ‘로사마 맥라덴’과 유사한 맥락에서, 미국과 북한이라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두 정권을 하나의 재미있는 만화 캐릭터로 합쳐놓은 것이다. 김정일과 미키 마우스를 합침으로써 두 배로 혐오스러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2. 영상 디자인의 선구자 솔 바스(saul bass)뉴욕 출신의 그래픽 디자인너인 솔 바스는 40년간 솔 바스 어소시에이츠사의 대표를 역임하면서 그래픽 디자인의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1954년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영화 를 시작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의 타이틀 그래픽을 디자인하였다. 특히 영화관련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그는 움직이는 서체디자인 type in motion의 개척자로 불려지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작품들은 실제 영화 등에 나타난 타이포 작품들을 캡쳐한 작품들이다. --------------->마틴 스코시즈는 “솔 바스의 타이틀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순간, 진정한 영화가 시작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관객에게 그 영화의 감정을 전달하는 바스의 능력을 깊이 신뢰했고, 이후 까지 감독- 중단 좌측 : Le Vieil homme et l'enfant (1967) 끌로드 베리 감독- 중단 우측 : 키에프의 신화 The fixer (1968)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 하단 : 살인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 (1959) 오토 플레밍거 감독3. 카일 쿠퍼이제 마흔을 넘긴 카일 쿠퍼는 현재 모션 그래픽 분야의 1인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그래픽’을 뜻하는 모션 그래픽은 영화와 TV, 광고 등 영상 매체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디자인의 한 분야다. 특히 영화에서는 문자와 그림을 결합시켜 2분 안에 관객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서 모션 그래픽이 사용된다.카일 쿠퍼는 바로 이 타이틀 시퀀스에서 기발한 작품들을 선보여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매사추세츠대와 예일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LA 소재 디자인 회사 알/그린버그 어소시에이츠(RGA)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의 오프닝 시퀀스로 격찬을 받은 뒤 몇몇 동료들과 독립해 영상 디자인 회사 ‘상상의 힘(Imaginary Forces, 이하 'IF')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쿠퍼가 직간접적으로 타이틀 디자인에 참여한 작품은 모두 150여 편. 등 오프닝 타이틀의 걸작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즐비하다. 덕분에 IF는 할리우드 거물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 이 분야 최고의 회사로 성장했다. 공동 대표인 카일 쿠퍼 역시 타이틀 시퀀스 디자인의 ‘왕’으로 불리게 됐다.‘현대의 솔 바스’라는 평가를 들은 카일 쿠퍼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분야에 질적인 도약을 가져왔다. 그는 솔 바스처럼 타이틀 시퀀스가 영화 전체와 일관성을 이루도록 하면서도 다양한 소재와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또한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와 실험적인 촬영 및 편집 기법으로 관객들에게 시청각적 충격을 선사했다.카일 쿠퍼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두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과 다. 이 영화들의 DVD 음성해설 역시 쿠퍼의 작업 과정을 짐작하는 데 꽤 유용하다. 먼저 의 타이틀 시퀀스는 수백 Jones)존스는 15세부터 프랙탈 생성 프로그램으로 프랙탈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존스는 1995년부터 프랙탈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작품으로서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후 그의 작품들은 책 표지, 달력, 포스터, 국제적인 전시회 등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존스는 1996년부터 www.fractalus.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사이트는 프랙탈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있고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Mandel Frui』는 만델브로트 형상을 응용한 작품으로 불규칙하고 기이한 형상, 화려한 색상 등으로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가운데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만델브로트 이미지 주변에 일정하고 반복적인 무늬들이 형성되어 있다. 만델브로트나 줄리아 이미지는 컴퓨터 아트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초창기에 즐겨 사용하였던 이미지들이다.『Mandel Frui』는 눈에 익은 이미지와 복잡한 무늬를 사용한 존스의 초창기 작품에 해당된다. 이후 존스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은 컴퓨터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만델브로트나 줄리아 이미지를 직접 사용하기 보다는 동식물 등 자연물을 모방하거나 합성, 변형된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였다.Damien M. Jones 『Mandel Frui』5. 자넷 파키(Janet Parke)캐나다의 프랙탈 작가인 자넷 파키의 작품은 기존의 프랙탈 이미지와 회화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프랙탈 이미지의 원류인 만델브로트나 줄리아 이미지에 충실하면서도 사물이나 자연현상을 잘 재현하고 있다. 파키는 그의 작업방법에 대해 “나는 주로 수치를 이용한 방법으로 프랙탈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들과 다른 이미지들의 레이어layer들을 합성하여 작품을 만든다.” 파키의 전체적인 작품경향은 자칫 날카로울 수 있는 프랙탈 이미지를 부드럽게 처리하고 있으며 화려한 색상보다는 단색 계열의 색조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Then I Saw A New Heaven』이라는 작품에서는 중간부분에 산을 그려 넣어 그래픽과 회화의 접목을 시도.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고 지금도 상업에 대해 뛰어난 수완을 지니고 있는 중국인들이 과거에 어떤 모습으로 대금업을 해왔는지 요약을 통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역사학'에 대한 생각과 지금 우리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생각을 전개해보려 한다.고대 중국 문화는 다른 고대 문화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고대 문화들은 협소한 농업 지역에서 빠르게 포화점에 이르러 상업 경제로 전환하였다. 반면 중국은 황하를 중심으로 넓고 많은 지류를 끼고 발전했기 때문에 농업 문화를 근간으로 하며 수공업과 상업은 보조 역할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농업 중심의 사회였지만 일찍이 상업도 두각을 나타낸다. 신농씨, 요 임금 때부터 물건 교환을 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우가 세운 하나라에서는 화폐를 쓰던 흔적이 있는데 전쟁이 화폐를 유통시키는 역할을 했다. 넓은 세력권을 가지고 있었던 상나라에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시장이 있었다. 상이 멸망하고 주가 세워지면서 상의 후예들은 상업에 종사했는데 여기에서 상인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지역 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많은 상인들이 교류하여 상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상업이 발전하면서 객관적인 기준인 도량형 또한 정립되었다.춘추전국시대에는 철기의 보급, 대규모 수리사업, 우경농법 등으로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대하여 사유재산의 확대가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 발전한 상공업은 상업도시와 화폐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준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신을 담보로 했던 '질'과 '당'은 전국시대 말기인 진에 이르러 경제적 의미인 '췌'와 '세'로 전환되고 마침내 한나라 때 초기 전당업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금업은 위진남북조시대 불교 사원에서 이루어졌다. 정치가 혼란하고 백성들이 정신적 위안을 추구하면서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불교가 융성하게 된다. 승려들의 안정과 자금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점차 상업 활동에 참여 하던 사원은 대금업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불교 경전을 중국식으로 해석하고 경제적으로 강조하여 질고라는 대금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높은 이자율 때문에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되자 관청의 관리들이나 종교적 신권을 이용해 채무를 받아낸다. 결국 질고로 인해 세속적 부패가 사원에 흘러들었다는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된다.수에 이어 등장한 당나라 때는 율령에 따라 대금에 대한 계획서가 작성되고 소송에 관한 문서들이 존재했음을 돈황에서 발견된 자료들에서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사원에 한정되어 있던 대금업이 민간에 내려와 백성들이 경영하며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결사가 부작용으로 인해 금지되고 사원의 질고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비난이 커지자 백성들이 운영하는 대금업은 번성하여 전문 대금업체로 성장한다. 민영 전당포는 높은 이자를 받아 정부는 이율을 제한하였으나 그럼에도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여 계약서에 따른 소송이 진행되었다. 소송문서를 통해 당시 계약서 작성과 보증인을 세웠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사원의 질고와 민영 전당포뿐만 아니라 정부가 대금업에 참여하게 된다. 공해본전이라는 자금으로 대금업을 통해 관리들의 봉급과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려했다. 관영 대금업도 민영 전당포와 마찬가지의 규정을 적용 받았으나 착천호와 변방의 절도사들은 대금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안사의 난을 일으킨다.오대십육국 시대를 거쳐 문관 중심 정부를 형성한 송대에는 도시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당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사원의 질고는 장생고라는 명칭으로 부호나 상인들의 투자를 받아 활발히 행해졌다. 그동안 면제되었던 사원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했고 민영 전당포의 성행으로 이자는 낮아졌다. 그러나 당대와 마찬가지로 사원의 대금업은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민영 전당포는 크게 성장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지방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전당업의 폐쇄적 조직력을 강화시킨 행을 결성하여 독특한 필체와 은어를 사용하였다. 송대에는 관영 전당포를 저당고 또는 저당소라 불렀는데 정부가 관리를 두고 직접 관리하며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관이 되었다. 뒤이어 등장한 이민족 왕조들은 자신들의 기본적 대금업 형태와 한족의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대금업 전통을 접합하며 발전시켰다. 이들은 상세한 규정을 만들고 다양한 문화 교류를 통해 대금업을 좀더 세밀하게 하고 체계적인 규칙을 마련한다. 명대에는 민간 자본에 의해 대금업이 주도되었고 시진의 번성과 규모의 확대로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대상인이 등장한다. 뒤이어 여진족이 세운 청대에는 정부가 국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발전생식이라는 대금 형태를 만들었다. 전당포는 재산과 부동산으로까지 여겨졌고 지방의 교육과 자선사업에도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서양의 근대식 금융기관의 등장으로 대폭 축소되어 소규모 거래기관이 되었다.이 책은 중국사 중에서 특히 고리대금업이라는 한정된 분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중국의 경제사는 물론이고 중국사 전체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학과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방대한 중국사 앞에서 자신 없어했는데 이렇게 특정한 분야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가다보니 시대 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얽혀 있던 것들이 조금은 정리된 것 같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 어떤 주제든 간에 과거의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일수록 오히려 전반적인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중국의 고리대금업》은 한정된 분량 안에서 주장에 뒷받침 되는 사료들을 근거로 함으로써 더욱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거시사적으로 그려지는 단순한 문자의 나열로 느껴지는 역사가 아닌 좀 더 미시적이고 일관된 주제로 인해 역사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더 나아가 아쉬움이 들었다. 요즘은 이런 미시적인 주제가 과거보다 더욱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한 연구를 위한 자료들이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돈황에서 발견된 당대의 문서들과 같은 자료들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후세까지 전해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더욱 보관하기 힘든 민간의 자료들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겼다. 결국 사료의 보존 여부가 역사학자들의 연구 범위를 한정시키는 것은 아닐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반면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일부 민간의 이야기를 포함한 다양한 사료들을 보면서 연구하려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사료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료의 한정에 이유를 대며 연구를 게을리 하는 것 또한 나와 같은 학부생이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하지 않는 핑계가 될 수도 있겠다는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