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인간2001. 2. 1.철학적 인간학김석수 교수님이 경 아불문4전 수 영경영4들어가는 말……………………………………2할 말……………………………………4술의 정의……………………………………4술의 약리작용……………………………………4술의 기원……………………………………6고대와 중세의 술……………………………………8근대의 술……………………………………13현대의 술……………………………………15맺는 말……………………………………19참고문헌……………………………………21참고 웹 사이트……………………………………21'술보다 더 큰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있다면 내게 말해보라!' -Demosthenes들어가는 말어느 때부터인가 '∼읽기'라는 에코류(Eco類)의 문화 비평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문화 전반을 대상으로 그 사회적 상징성과 의의을 논하는 서적에 '∼읽기'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에코(Umberto Eco: 1932∼)는 '중세인은 텍스트를 통해 세계를 보았고 현대인은 세계를 텍스트로 본다.'고 하였지만, 현상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이제 탁월한 통찰력을 지닌 사상가만의 몫은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이 '읽기'의 물결은 진화론과 과학만능주의가 결합된 서구중심·근대지상주의 역사관의 한계성을 탈피하려하는 작금의 사조와 결합하여, '인간'을 다양한 위치에서 새롭게 조명해 내고 있다. 하여 몇십년 전만해도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성(性), 약자(弱子), 하급문화들이 역사 속에서의 통시적 조망은 물론, 현대사회에 있어서 그것들의 위상에, 다각적으로 연구해 보려는 시도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인간이 근대이래 규정되어진 대로 '생각하는 존재'로서 '이성적 존재'이자 '합리적 행위자'이긴 하나 분명 식욕과 성욕을 가지고 망상(妄想)과 불의(不義), 폭력과 맹목적 충동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기도 하기에 '인간' 모습을 이해하는데 '있는 그대로 인간의 모든 것-문화(文化)'에 대한 연구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방법론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아 빨리 마비되는 것은 미묘한 반응이라던가 수의운동(隨意運動-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근육운동), 인식, 기억 사고, 판단능력 등의 소위 고등 기능이고, 느리게 마비되는 것은 내장 활동의 조절 등 하등의 원시적인 기능이다. 고등기능을 하는 뇌세포에는 '새로운 피질-신피질'이라는 세포와 '묵은 피질-변역피질'이라는 세포가 있는데, 이들의 위치와 역할은 서로 매우 달라, 새로운 피질은 뇌의 겉면에 자리잡고 지성과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으며 묵은 피질은 뇌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식욕, 정욕 등 욕심이나 분노, 비이성적 감정을 지배하며 평상시에는 신피질의 통제를 받고 있다. 술이 몸 안으로 일단 들어가게 되면 알코올 성분이 혈관을 통하여 뇌에 도달, 먼저 신피질의 세포들을 마비시키며, 그 후에 뇌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변역피질까지 서서히 마비되게된다. 신피질이 먼저 마비되면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고 신피질의 견제를 받아 오던 변역피질의 기능만이 수행되어 사람들은 엉뚱한 생각이 나게 되고, 갑자기 용감해지거나 행동이 무분별해지고 욕심이 생기면서 분노가 일어나기도 하는 등 원초적 본능이 해방되는 것처럼 보이는 주정(酒酊)이란 형태가 보이게 된다. 우리의 취중경험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갖고 싶은 것을 갖고싶다고 외치고 그것을 얻으면 기쁘다고 표현하는 양태를 보이는 것은 알코올에 의해 뇌의 일부가 스스로의 통제에서 벗어나 버려 그리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외견상 흥분일 뿐 결코 알코올 자체에 흥분 작용에 인한 것이 아니다. 그 증거로 이 표면적 흥분은 알코올 작용이 좀더 진행이 되면서 모든 것이 마비 쪽으로 이끌어지면 종국엔 의식이 없게되는 상태가 되고 이 상태에서 더욱 알코올작용이 진행됨에 따라 호흡중추가 마비되어 죽을 때까지 마취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술을 마시게 될 때 그 섭취가 적은 상태에서는 활기가 솟고, 기분이 좋아지며, 유쾌해진다. 종일 걱정스럽던 일, 우울한 일 등도 잊어버리고 호기( 문자에서 변천 된것으로 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위해서 끝이 뾰족한 항아리에서 발효시켰던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 후 유자가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삼수변이 덧붙여져 술이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옛 글자에는 삼수변이 오른쪽에 붙어 있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보통 옥편에서 삼수변의 글자는 수지부(水之部)를 포함되게되나, 유독 주(酒)자만은 유지부(酉之部)에 들어 있는 것이며 오늘날에는 술과 관계가 없는 글자가 되었으나 유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 중엔 술과 발효(醉(취할 취), 酊(술취할 정), 酬(잔돌릴 수), 酌(잔권할 작), 醴(단술 례), 醇(진한술 순), 醋(초 초, 술권할 작), 醬(젓갈 장), 酎(세번빚은술 주), 醱(술괼 발), 酵(술괼 효), 釀(술빚을 양), 醵(술추렴할 갹))에 관련된 글자가 많은 것이다.이 최초로 언급된 자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건국담 중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는 하백(河伯)의 딸 버들꽃(柳花)을 술로 유혹해 결합한다. 해모수의 행위에 분노한 하백은 그와 싸움을 벌이나 결국 그의 신성성(神聖性)이 입증되자 주연(酒宴)을 베풀게 되고, 해모수와 버들꽃의 사이에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東明聖王)이 태어나게된다.. 『삼국지(三國誌))』 위지(魏誌)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같은 제천행사/군중대회에서는 밤낮으로 식음(食飮)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飮'이란 물론 음주(飮酒)를 가리키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11년(28조)에 보면 의하면 지주(旨酒: 맛 좋은 술) 빚어 한나라의 요동 태수를 물리쳤다는 기록과, 『동해석사(東海釋史)』에서는 당대(唐代)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의 '한 잔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고 쓴 시를 소개해 놓았다. 일본의『고사기(古事記)』에 보면 웅신천황때(서를 제물로 하였으며 베다의 사제는 이 소마를 마시고 신과 교통하였다.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고리로서의 술의 역할은 거의 모든 종교와 제의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경우 신의 세계로 들어간 사자(死者)들의 관엔 언제나 포도나무 넝쿨과 술잔을 든 디오니소스를 새겨넣어 망자가 영생의 세계에서 부활하기를 기원하였고, 3, 4월에는 항상 '주신제(酒神祭)'를 벌려 예술과 열정이 주제가 되는 제사를 행했다. 이 때도 신과 인간 교통물로서 제물의 피(생명)를 대신할 붉은 포도주의 역할 - 음주(飮酒)는 제의의 중심을 차지하는 행위였다15) 피에르 푸케·마르틴 드 보르드, 정승희 譯, 2000『술의 역사』 p.68.. '명정(酩酊)'이 가져오는 비일상(非日常)의 속성(屬性)을 신성(神性)과 연결시키는 것은 현대까지 맥을 잇고 있는 이른바 고등종교에서도 들어난다. 유대교는 물론 기독교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포도주의 신성성(神聖性).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보면 유대교는 그들의 신 야훼에게 제사지낼 때 가축의 번제에 항상 밀가루와 포도주를 곁들였고 제사 후 사제와 함께 제물을 남김없이 먹고 마셨다. 이러한 전통은 기독교까지 연결되어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잔을 들고 이렇게 이야기한다.'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 26:28, 마르코 14:24)'.예수가 자신의 피를 상징하기 위해 포도주를 택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만일 포도주가 없었다면 이러한 이례적(異例的) 행사도 없었을 것이다. 포도주는 생명력의 대지모신(大地母神)인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 제의(祭儀) 속에서 포도주는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허락한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피(血) - 생명을 마시는 행위, 음주(飮酒). 이것은 빵과 포도주가 제의의 과정에서 사제의 축성속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성화(聖化)를 거쳐 음주를 통해 '신과의 합일(合一)'을 이루게되는 현대 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동아엔사이버)임이 분명하다) 많은 종교학자들이 종교와 유희의 기능주의적 접근에 있어 공동체의 정체성(identity)를 꼽는다.(허연실. 1996 「한국종교의 의례와 술」p.59.) 즉 의례 속에서 술을 마시며 함께 어울리고 그 속에서 '우리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즉, 굿은 신의(神意)가 깃든 술을 나누워 마심으로써 그 신의를 자기들 속에 나누어 갖게 된다는 상징적 주술(呪術)행위라는 것이며, 그러한 것을 느끼는 것에서 더 나가 공동의 운명으로 살기를 '다짐' 하게하는 공동체 의식의 정도를 높여주는데 이것엔 공동 '유희'의 경험이 한 몫을 한다는 것이다.(이규태, 1977 『한국인의 의식구조 - 한국인은 누구인가?』상. 서울: 문리사. pp108∼109.) 심지어는 일제시대 때, 무(巫)가 미신(迷信)으로 규정되어 조직적인 탄압의 대상이 된 원인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공동체성'을 실마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황루시, 1992 『한국인의 굿과 무당』 서울: 문음사. p.19.).전술(前述)했다시피 제의에서 이러한 '유희'로서의 음주의 의의는 역시 타 종교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축제형식으로 치루어졌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이루어졌던 주신제(酒神祭)는 음주행위를 통해 무속(巫俗)의 제의와 같은 의미를 지녔을 것으로 짐작되며 말레이시아의 '오랑아슬리'같이 동남아에 폭넓게 분포된 정령(精靈)숭배 무당들도 굿을 벌이기전에 만취한채 신의 가면과 복장을 하고 악귀를 내쫓기 위해 벌이는 신성한 광란(狂亂)을 벌이는 모습이나, 예식이 끝난 후에 마을공동체에 정화된 술을 내려주는 모습은 우리의 풍습과 별반 다름이 없는 성격을 지닌다.근대의 술음주(飮酒)의 의의는 제의(祭儀)에서 뿐만이 아니라 노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회의 발달단계에 따라 노동은 일반적으로 강도의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과거 수렵사회와 농경사회의 노동강도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고, 다시 이는 이어지는 산업사회와 작금의 정보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