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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문학] 로르카의 강의 백일봉을 읽고
    「강의 백일몽」을 읽고시작하며...우리에게는 제3세계의 문학이라는 다소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온 스페인 문학에서 로르까라는 시인의 작품을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시인이라고는 우리 나라의 시인들도 잘 모르고, 내가 쓴 시를 혹은 내가 좋아하는 시를 영어로 제대로 옮기는 것이 가장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은 나에게 이번의 과제는 무척이나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스페인 문학에 대한 다소 나마의 이해와 외국의 시들에 대한 익숙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부질없는 기대를 갖으며 로르까의 시집을 열어 본다.본인은 우선 로르까의 문학과 관련 있을 법한 생애와 스페인의 시대적 배경 및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배경 지식이 전무한 본인에게 이러한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후에 구체적인 로르까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겠다.1.로르까의 생애와 문학페데리꼬 가르시아 로그까(Federico Garcia Lorca)는 1898년 6월 5일 그라나다의 푸엔떼 바께로스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대자연의 조화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대중적인 전통, 설화, 역사 등에 탐닉하였다고 한다. 1914년 그라나다 대학에서 법학과 문학을 전공하였고, 이 시절에 그라나다의 젊은 작가, 기자, 예술가들과 가깝게 지내게 된다. 이러한 로르까의 교우 관계는 후에 그의 문학적 토양을 다지게 한다. 그가 처음으로 쓴 글은 1917년 소리야의 백주기를 맞아 그라나다의 예술원의 잡지에 실린 글이었다고 한다. 1918년 로르까는 까스티야와 다른 지역들을 여행한 후 그의 첫 번째 산문집인 '인상과 풍경'이란 글을 썼다. 1918년경에는 마드리드의 대학생 기숙사에서 많은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쌓게 되어 그의 문학적 자질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1920년 마드리드의 에슬라바 극장에서 '나비의 저주(El maleficio)'를 공연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921년 그의 첫 시집인 '시집(Libro de poemas)'을 출간하기에 이른다.마드리드에 있으면서도 그의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후 그의 작품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안달루시아 민중과, 집시와, 흑인들의 정서를 함께 하는 작품의 경향을 알 수 있게 한다고 본인은 감히 생각해 본다.1928년 '서구 비평지'를 통해 그의 '첫 번째 집시민요집(Primer Romancero Gitano)'를 출판한다.1929년 뉴욕을 여행하게 되고 콜럼비아대학에서 유학을 하게 되는데, 이 때에 그의 문학적, 미적인 감성이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불 수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민중 지향적인 면이 뉴욕의 흑인들을 보며 더욱 강화된다고 생각된다.그 후 3대 비극이라 불리는 '피의 결혼', '석녀', '베르나르다 알바家'등을 공연한다. 1935년에 '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 출판된다..스페인 내란이 발생한 1936년 8월 19일 새벽 로르까는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끌려가 인근 과수원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게 된다.2. 스페인의 시대 배경(민요, 27세대)과 로르까의 문학세계의 어느 나라이건 사랑을 그 테마로한 민요는 산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굳이 우리 나라의 '아리랑'이나, '가시리'등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러한 일반적인 특징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에 있어서는 이러한 경향은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 민요에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붉고 검은 빛을 띠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페인의 정열과 격정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다고 본다. 스페인 민요에서 사랑의 이야기는 죽음의 이미지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승화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눈길을 내려요, 시집간 아줌마그대를 쳐다보고 사는 사나이 죽이지 마오.라든지,강가 언덕에서난 정말 처녀를 보았지.머리 딴 처녀,그대가 날 죽였구려.등의 스페인 중세 총가요집(Cancirero Geral)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이러한 스페인의 전통적인 사랑의 이야기--지극히 비극적이면서 죽음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를 로르까가 계승했다고 보고, 로르까가 활동하던 시기의 스페인 문학사의 일반적인 경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스페인의 1920년대의 작가들은 특히 시분야에 있어서 스페인 문학의 제2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27세대 문학가들은 전통의 복귀의 경향이 있었고, 그리하여 민요 시집(Romancero)이나, 시가집(Cancinero)이 유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로르까 역시 대중적이고 저속한 것을 주제로 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로 당대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보다 대중적인 것으로 돌아가자는 이러한 운동은 시의 주제에서뿐만 아니라, 시 作法에도 영향을 끼쳐서 생동감 있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3.작품 감상의 실제-두엔데이론과 시의 감상로르까의 시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의 두엔데 이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로르까가 말하는 두엔데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본인에게는 어렵고 힘겨운 일이다. 어찌되었든, 두엔데라는 것은 어떤 하나의 말로써 단언적으로 정의되어지는 개념은 아니라는 생각만은 확실하다. 그럼 로르까 본인이 말하는 두엔데의 내용을 그의 에서 알아보도록 하자.로르까는 자신의 시론에 있어서 마치 괴테가 파가니니의 음악을 들을 때에 느끼고는 있으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듯이 자신도 이러한 힘에 의한 시인이라고 말한다. "두언데는 작위가 아니라 힘이다" 라고 단언적으로 이야기하는 로르까는 즉, 시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인가 우러나오는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러운 힘에 의하여 영감에 따라 쓰는 것이지, 어떤 인위적인 노력과 계산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유럽인들이 말하는 뮤즈나 천사와 두엔데를 구별하고 있는데 그는 하늘에서 내려 주는 일종의 은총과 같은 것과는 달리 두엔데는 시인이 노력이 필요하며 항상 두엔데와 투쟁하고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이 상처가 시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모든 사람은 천사나 뮤즈가 아닌 두엔데와의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탑을었던 '두엔데는 하나의 용어로 정의하기는 힘들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깨달음만을 얻으며, 로르까의 작품을 통한 고찰을 해 보고자 한다.-사물의 이미지를 초월하는 두엔데새벽꽃이 벌써자기를열었다(기억하는가오후의 깊이를?)달의 甘松이 내뿜는다그 찬 냄새를(기억하는가8월의 긴 눈짓을?)-메아리 p80이 시에서 오후는 새벽꽃에 의해 그 깊이를 갖게 되는 그러한 오후이다. 또한 달의 甘松이 내뿜는 냄새에 의해 8월은 긴 눈짓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꽃이라는 사물의 이미지를 초월하는 두엔데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미물에 불과한 꽃이지만 그것은 작은 생명이자 우주를 의미하는 시간의 개념이 되는 것이고, 시인은 두엔데를 통하여 아니 두엔데와 투쟁하면서 그 이미지를 초월하여 오후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이 시의 제목이 메아리인 것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두엔데는 과거의 메아리(기억)를 통해 오후의 깊이 속으로 투영될 수 있으며, 또 다시 그 두엔데가 메아리를 타고서 작품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텍스트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시간이 만들어 낸미로는사라졌다.(사막만남았다)가슴은,욕망의 샘은,사라졌다.......새벽 幼影과키스들은 사라졌다.사막만 남았다. -그리고 그 뒤 P.51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두엔데는 항상 즐겁거나 아름답게 시인에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시인이 시간이 만든 미로(이것은 어지러운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가 사라진 뒤 남는 것이 사막임을 알 수 있겠는가?로르까에게 두엔데는 이처럼 사물의 이미지를 초월하는 신비로운 힘이자 영감이지만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그것(두엔데)과 투쟁하여 상처를 입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마치 숙명처럼 시간의 저편엔, 욕망의 저편엔 사막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들에게서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죽음에 다가가는 두엔데앞에서 언급했듯이 스페인 전통 민요의 특징은 그것이 여타 다의 시가 스페인 민요의 전통을 단순히 계승했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본인은 로르까의 시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두엔데의 측면에서 또한 살펴보고자 한다.두엔데는 이미 말했듯이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며, 그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두엔데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두엔데는 죽음의 냄새가 나며 죽음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매미!오 행복한 매미!흙 침대 위에서 너는 죽는다.빛에 취해서.너는 들에서생명의 비밀을 안다 ;.......살아 있는 건 모두죽음의 문을 지나간다.머리 숙이고,희고 졸리운 모양을 하고,마릉 가지고만 생각했다.......... -매미 p18,21Ⅰ 받힘과 죽음오후 다섯시,정확히 오후 다섯시 였다.한 소년이 하얀 시트를 가져왔다...........Ⅱ 뿌려진 피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고대 세계의 암소가모래 위에 떨어진피에 젖은 토를그 슬픈 혀로 핥고,그리고 기산도産 투우들은,얼마쯤은 죽고, 얼마쯤은 돌이 되어,땅을 밟는데 물린이백 년으로 울부짖었다.......Ⅲ 눕혀진 몸........그들이 내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향기로운 안개와깊은 기슭을 지니게 될 강과도 같은 슬픔을,투우들이 두 배로 헐떡거리는 걸 듣지 못하고스러진 익나시보의 몸을 그 스러진 자리에서 받아들이기를.......Ⅳ 없는 영혼.....아무도 너를 모른다. 아무도, 허나 나는 너를 노래한다.후대를 위하여 나는 네 프로필과 품위를 노래한다.네 지성의 뛰어난 성숙함에 대하여.죽음에 대한 네 식욕과 그 입의 미각에 대하여.네 한때의 뛰어난 명랑함의 슬픔에 대하여.............-익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p.101,113네(세) 편의 연작시로 이루어진 이 시는 실존했던 인물이자, 로르까와 친분이 있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익나시오의 죽음을 노래한 널리 알려진 명작이다. 이 시는 로르까가 죽음을 어떠한 시각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인문/어학| 2002.11.02| 7페이지| 1,000원| 조회(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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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 기형도시 감상문 평가A좋아요
    들어가며내가 '기형도'를 처음 만난 것은 재작년 늦봄이었다. 친한 동생이 친구에게 삶에의 느꺼움을 가지라고 선물로 주기 위해 산 「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에서였다. 그 전에 대학 선배이고 요절한 아까운 시인이란 수식어가 따르던 그의 이름은 몇 번 들었지만 그를, 그의 얼굴을 처음 대한 건 그 때였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졸업해 취직을 생각하던 그 당시만 해도 기형도는 수식어만의 그런 시인이었다.그러던 그를 재작년 여름에 다시 만났다. 모든 것이 내 삶을 옥죄어 오고 있을 때였다. 새로움을 만나기 위해 서점엘 들러 이 시집 저 시집을 고를 때였다. 친한 동생이 선물하기 위해 들고 있던 「기형도 산문집」이 생각나 「입 속의 검은 잎」을 샀다. 하지만 그의 시들을 읽을 수 없었다. 내 입 속에도 이미 단내가 그득했기 때문입 속을 그득입 속을 그득단내가 산다이만하면 죽어도 좋으련만기어코 붙어 앉아沈澱시킨다가라앉는 거울을보면나 자신도 그沈澱을따라 하는 것浮沈은 언제나함께한다지만배 깔고 드러누운입 속의 그 단내를어찌 지울 수있단 말인가그것이 내빼듯죽음으로 달아나지 않는 한본인의 졸작. 시인 기형도의 시를 보고 쓴 것이 아닌데 우연히도 비슷하다. 아마 책상 위에 늘 있는 그의 시집 때문인 듯하다.이다. 처음 한 페이지부터 읽을 수가 없었다. 그냥 책상 위에 올려 둘 뿐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쯤 산문집을 샀지만 그것 역시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다.1년의 시간이 흐른 후 국어국문학과로 편입을 했다. 같은 학교로의 편입이라 학교 자체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평소부터 짝사랑을 해 왔던 국어국문학과에는 내 앞에 차려진 새로운 만찬이 있었다. 이것저것을 기쁘고 즐겁게 먹고 마시던 어느 날, 내가 가입한 학회에서 작가 성석제씨를 초대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시인 기형도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전방입소 전에 모든 남자가 가던 문무대에서 기형도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훈련조교는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휴식시간을 준다고 간척사업 실패로 인하여 6살이 되던 1965년에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로 이사를 하였는데, 이 마을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인 「안개」의 배경이 되었다.1975년 셋째 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고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1976년 중앙고등학교 시절 백일장, 시화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하여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시작하였고 이 곳에서 성석제를 만났다. 1980년 연세문학상인 박영준문학상(소설 부문)에 「영하의 바람」으로 당선 없는 가작에 입선하였다.1981년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안양근교에서 복무하며 안양의 문학동인 '수리'에 참여하였고 동인지에 「사강리」 등을 발표하였다. 이 때 시작에 몰두하였고 초기작의 대부분을 쓰고 습작을 정리하였다.1982년 복학하여 「겨울판화」, 「포도밭묘지」, 「폭풍의 언덕」 등 다수의 작품을 썼다. 이 때 「식목제」로 대학문학상인 윤동주문학상(시 부문)에 당선하였다. 또 신춘문예에 관심을 돌려 응모하여 최종심에 오르내렸다.1984년에는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되며, 문예지에 「전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등을 발표하였다. 또 2월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신문사에서는 수습을 거쳐 정치부에 배속되었다. 1986년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기면서 지속적으로 「위험한 가계 1969」, 「조치원」, 「집시의 시집」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하며 문단선후배, 출판관련 인사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1987년에는 유럽여행을 하고서 「나리 나리 개나리」, 「植木祭」, 「오후 4시의 희망」, 「여행자」, 「장미빛 인생」을 발표하였다. 1988년에는 대구, 전남 등지를 혼자 여행하며 글들을 썼는데, 이것이 나중에 「짧은 여행의 기록」으로 묶여졌다.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기면서 「진눈깨비」, 「죽은 구름」,햇빛을 복사해내는그 유리담장을 박살내곤 했다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되지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이상한 표정을 짓던 다른 아이들은아이들답게 곧 즐거워했다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주장하는 아이는, 그 아름다운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유리 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어느 날 그가 유리 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묵묵히 벽돌을 날랐다우리는 포장에 속아 왔다. 그 포장은 쓰디 쓴 약을 뒤덮고 있는 糖衣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설탕을 빨 동안 우리는 즐겁다. 그 포장에 환호하고 즐거워한다. 심지어 숭배하고 추앙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이 녹고 나면 . 쓰디 쓴 맛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약은 결코 良藥이 아니다. 독이다. 하지만 그것을 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 당의에 길들여져 있었고, 인이 박혀 있었다. 그냥 묵묵히 삼켜야 한다. 사탕발림에, 사탕발림에 그냥 묵묵히 삼켜야 한다. 우리 얼마나 속아 왔던가. 우리 얼마나 그것에 길들여졌고 감로마냥 쉽게 받아먹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왔는가. 그 달콤함에 숨어 있는 정체를, 대가를 우리는 잊고 살았었다. 당의정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있는 것으로 던져진다. 또 그것을 던져 주는 사람은 늘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길들이기까지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우리들을 나락으로 유혹하는 專門家이다.가는 비 온다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잎들은 계속 떨어지지만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비는 조용히 식물들의 생명을 갉고 있는 것이다. 가는 비는 비수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인 약간 귀찮은 것일 뿐이다. 그들은 우산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산 밖에 있는 - 그것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시의 분위기 상 '나'는 우산을 쓰고 있지 않는 것 같다 - '나'는 울타리 밖의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다. 비에 조금씩 죽어 가는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산 안의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지만 가는 비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모두에게 내리고 있다. 어느 누구도 가는 비의 비수에 쉽게 굴하지는 않지만 가는 비가 끌고 가는 죽음에의 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죽음의 화산재처럼 우리는 한 꺼풀씩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이다.질투는 나의 힘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젊은 날의 '나'는 그렇게도 할 말이 많았다. 마치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것처럼 말을 하고, 쓰고 적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허공을 맴도는 것이었다. 이제 돌아보니 아쉬움에 부끄러움에 탄식밖에 나지 않는다. 또 허공에다 욕을 하고 술로 세상을 비판하고 살아 온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그것이 남들에겐 하찮은 술주정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는. '나'는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내 사랑에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질투를 쏟아 부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숨죽이고 살아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그에 항의하던 많은 사람들은 홀연히 사라져 갔다. 장례식마저도 몰래 숨죽이며 해야 했다. 그것에 대해 '나'는 어떤 저항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에 대해 얘기하려 해도 혀는 굳고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려 하는 순간에도 '그는 죽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겨우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곳은 또 다른 벌판이고 황혼이다. '나'는 여전히 입 밖으로 말을 내몰지 못한다. 그런 '내'가 두렵다.病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단단한 몸통 위에,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아아, 노랗게 단풍든다.'내' 자신이 어색하고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잃고 헤매이는 때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으로 팔을 뻗을 수도 없다. 새로운 것을 향하고 외부와 접속하려는 수단은 모두 단절까
    독후감/창작| 2002.11.02| 9페이지| 1,000원| 조회(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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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인] 이성복시연구 평가A+최고예요
    이성복1. 들어가며우리들 몇몇은 수업 중의 짧은 시간이나마 열 일곱에 달하는 시인들 중 누구에 대해 발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귀에 익은 시인도 있었고, 이름이 전혀 낯선 시인도 있었다. 그 중 이성복은 비교적 이름이 널리 알려진 편이었지만, 기껏해야 우리들 중 몇몇이 그 시인의 대표작 몇 편을 읽은 경우이거나 또는 시인의 이름만을 들어본 경우였다. 우리는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시인을 공부해 보자는 의도와 따뜻함으로 가슴 느꺼움으로 우리 또래에 널리 회자되어 온 이성복의 시를 공부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그를 택했다.우리들은 이성복에 대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공부를 했다. 우리의 해석에 때로는 논리의 비약이 따르고(시를 논리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리가 따르는 의도적 행위라 생각하긴 하지만), 때로는 우스꽝스런 해석으로 흐르기도 하였다. 이것이 기존 문단의 세련된 시해석과는 차이가 있을 지 모르지만, 시를 제대로 읽기 시작하는 국문학도, 인문학부생의 아마추어리즘적 해석이라고 결론 내리고 우리가 합의한 해석 외에 다소 황당한 해석들도 밝히기로 한다. 이는 보고서가 하나의 논문의 성격을 지닌다기 보다는 우리가 고민하고 토의한 내용을 밝힌다는 쪽의 의미가 더 강해야 한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다.발표까지의 시간이 짤막했기에 개개인 모두가 그 시인의 전반에 대한 시인론을 공부하기엔 벅차다는 결론을 내려, 시인이 낸 네 편의 시집(중복되지 않은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주 텍스트로 삼아 각 시집의 전반적 흐름을 살펴보고, 각 시집에서 두 편씩의 시를 뽑아(『그 여름의 끝』은 세 편을 뽑았다), 그 중 한 편씩을 주된 해석의 질료로 삼아 집중적 해석을 하고(각 시집 편에서 첫 번째 시에 해당), 나머지 것들은 부수적인 것으로 삼아 간략한 해석을 하기로 한다.또 각 시집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고 그 중 몇 편의 시만을 해석하는 시론의 방식을 따랐기에 여기서 '맺음말'이라 할 만한 시인에명대 출신의 화가 이병헌의 누드를 소재로 「소묘」를 쓰고, 이듬해에 네 번째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출간한다. 1994년이래 계명대학교 인문대 불문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3. 이성복 시 읽기1) 첫 번째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성복의 이 첫 시집을 대하면 우선 시인의 자유로운 연상 하에 당돌하게 그려져 있는 이미지가 낯설게 다가온다. 이 낯설음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며 동시에 이 시들에 쉽게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당돌한 이미지와 생각들의 자연스러운 연쇄 반응, 이성복이 가지고 있는 시 정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부패하고 피폐된 현실이 있다. 폭력적인 힘에 의지한 정권, 부를 치부한 독점 재벌, 농촌 사회의 해체와 타락한 도시문화가 바로 '70년대를 지나 '80년대로 오기까지의 모습이다. 이것은 시인에게 치욕스런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현실을 가족 관계를 통해 드러낸다. 이 시집의 곳곳에서 보이면서도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주된 이미지는 바로 '아버지의 부정 / 파괴'이다. 아버지의 무능함은 받아들일 수 없는 피폐된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고, 시의 역동적 이미지마저도 상처 입은 아픔을 더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1959년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 나무는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소년들의 性器에는 까닭없이 고름이 흐르고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移民을 떠났다 우리는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얻어 먹거나이차 대전 때 南洋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놀라움도 우리를 無氣力과 不感症으로부터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修飾했을 뿐 아무 것도 追憶되지 않았다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그들의 기쁨은 소리 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春畵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 왔다그해 겨울이 지나고에"라는 표현에서 시인의 절망이 강조되고, 봄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체념이 드러난다. 이에 우리는 스스로를 옥죄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어쩔 수없이 제 발걸음으로 걸어갔음을 알 수 있다.꽃 피는 아버지1아버지만나러 금촌 가는 길에쓰러진 나무 하나를 보았다 흙을파고 세우고 묻어 주었는데 뒤돌아 보니또 쓰러져 있다저놈은 작부처럼 잠만 자나?아랫도리 하나로 빌어먹다 보니자꾸 눕고 싶어지나 보다나도 자꾸 눕고 싶어졌다나는 내 잠 속에 나무 하나눕히고 금촌으로 갔다아버지는벌써 파주로 떠났다 한다조금만 일찍 와도 만났을 텐데나무가 웃으며 말했다 고향 따앙이 여어기이서몇리이나 되나 몇리나 되나 몇리나되나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이 노래 불렀다내 고향은 파주가 아니야 경북 상주야나무는 웃고만 있었다그날 밤아버지는 쓰러진 나무처럼집에 돌아왔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아버지가 말했다너는 내가 떨어뜨린 가랑잎이야2언덕배기 손바닥만한 땅에 아버지는고추나무를 심었다밥 깊으면 공사장 인부들이고추를 따갔다아버지의 고함 소리는 고추나무 키 위에머뭇거렸다모기와 하루살이 같은 것들이엉켜 붙었다내버려 두세요 아버지얼마나 따가겠어요보름 후 땅 주인이 찾아와, 집을 지어야겠으니고추를 따가라고 했다공사장 인부들이 낄낄 웃었다3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아버지는 저리화가 나실까 아버지는 목이 말랐다 물을따라드렸다 아버지, 뭐 그런 걸 가지고자꾸 그러세요 엄마가 말했다 얘 내버려둬라 본디 그런 양반인데 뭐 아버지는돌아누워 눈썹까지 이불을 끌어 당겼다1932년 단밀 보통학교 졸업식며칠 전 장날 아버지 떡 좀 사먹어요그냥 가자 가서 저녁 먹자아버지이 또! 이젠 너 안 데리고 다닌다네 월사금도 내야 하고 교복도 사야 하고아버지, 아버지는 굶었다 그해 모심기하던날 저녁 아버지는 어지러워 밥도 못 잡숫고그 다음날 새벽 돌아가셨읍니다아버지, 藥 한 첩 못 써보고아무도 일찍 잠들지 못했다 아버지는 꽃 모종하고 싶었지만 꽃밭이 없었다 엄마, 어디에아버지를 옮겨 심어야 할까요 살아 온 날들물결 심하게 이는 오의 가슴답답함을 지나쳐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짓누르는 것들에 항의를 했다. 모두들의 귀에 쉽게 들리는 높은 목소리가 아니라, 낮을지도 모르지만 가슴을 울리는 그런 시인만의 목소리로 항의를 했다. 그러기에 그의 시가 그 시대의 다른 외침이나 노래들이 우리의 귀를 한 번 스쳐지나 버린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어머니 2아직도 뜨거운 땡볕 아래 흰 수건으로 머리 동이시고 펭귄처럼 가파른 계단을 뒤뚱거리며 오르시는 어머니, 짐진 하루 해가 공사판 건너 숲속으로 지기가 그리 힘들던가요 베니어판 흙 떨고 모로 누워도 熱덩어리 해는 지지 않고 어머니, 당신이 잠깐 눈붙인 사이 동네방네 애국 소리 딸꾹질 같아, 공사판 근처 일거리 없는 새들이 가랑잎처럼 흩어집니다 어머니, 해고되고 해고되고 떠돌아 목적까지 차오르는 아우들이 바람불지 않는 가로를 날아갑니다 아직도 저들은 공사판 근처를 기웃거리며 아내와 자식들 눈을 속인다고요날아가세요, 어머니날아가세요, 베니어판 집어타고해 떨어지는 곳으로!"아직도 뜨거운 땡볕 아래 베니어판 흙 떨고 모로 누워도 熱덩어리 해는 지지 않고"는 가장이 가장으로써 제 구실을 못함으로써(경제적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궁핍하나마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 막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땡볕, 해, 熱덩어리 해"는 모두 동일하게 그 어머니를 더욱 힘들게 하는 외부적 요소, 시대적 상황으로 넓혀 보자면 가혹한 탄압을 일삼는 군사정권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해"는 희망으로 상징되지만 시인은 이 "해"를 가혹하고, 서편으로 져야만 어머니의 편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의 "어머니, 당신이 잠깐 눈붙인 사이 동네방네 애국 소리 딸꾹질 같아,"에서 "애국소리"란 당시 거대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면서 노동자들에게 쉼없이 강요되는 '쉬는 시간 없이 일하자'라는 표어이다. 이 표어는 잠시의 수면도 빼앗아 가는 "딸꾹질"같은 귀에 거슬리고 성가신 것이기도 하다. "공사판 근처황 속에서 인간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았던 현실이 시인의 시선을 더 구체적인 절망의 상황에 잡아 두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시인은 그러한 현실을 가족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고 드러내고 있다. 한 여름 땡볕에 수박을 낑낑대며 들고 가는 모습, 온 가족이 "스텐 숟가락"을 들고는 "달겨들어" 먹는 모습에서 질퍽하고 구질구질한 난장판 같은 생활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아버지의 작업복을 기워 만든 걸레로 마룻바닥을 훔치며 어머니는 여기 저기 묻어 있는 수박물을 볼 것이다 ". 아버지의 작업복은 이미 걸레가 되어 버려 "게으르고 긴 (담배) 연기"만을 내뿜을 뿐이고 버려진 작업복을 기워 만든 걸레로 마룻바닥을 훔치는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구질구질한 삶의 찌꺼기 같으면서도 "끈끈한 수박물"을 그 걸레로 닦으신다. 절망하며 버리면서도 남는 것은 어머니의 자기 희생적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절망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고함치는 것은 오히려 세상에 타협의 길을 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절망적 삶 속에서도 현실의 삶을 가꾸어 가는 어머니로부터 다른 힘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빛깔은 쓸쓸함을 자아낼 뿐이다.3) 세 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이 시집은 연애시의 묶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시인이 몇 년간을 고민해 온 자신의 삶을 묶은 시집 한 권(이 것은 이성복 시인뿐만 아니라 모든 시인에게 있어 단순한 시집 한 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을 한 마디로 단정하는 것이 다소 건방질지도 모르지만 이 세 번째 시집은 요리조리 돌려봐도 연애시 묶음이다. 여기서 시인이 노래하는 주대상은 "당신"이다. 이 "당신"이 시집 속에서 어떤 때는 이성으로, 어떤 때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로, 때로는 시인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게 드러난다. 이 "당신"을 우리는 어느 것으로나 봐도 좋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자면 시인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 만물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시인은 그 "당신"과 사랑을 하고 떠나 보내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음으로.
    인문/어학| 2002.11.02| 13페이지| 1,000원| 조회(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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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문학] 김유정론
    들어가며김유정은 짧은 생애 동안 적은 작품을 남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그가 3,4년의 기간 동안에 남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현실인식과 문학으로서 가지는 형식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는 30년대의 궁핍한 민중들의 삶에 대한 현실 인식적인 내용성과 뛰어난 형식미를 각각 중심으로 한 양갈래로 대비되어 수행되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신동욱 선생이 한국현대문학사론 에서 밝힌 견해를 들 수 있다.{신동욱 김유정고 - 목가와 현실의 차이. 1972앞의 연구방법중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는 구인환의 연구{ 김우종 토속의 리리씨즘(유정) 한국 근현대 소설사 선명문화사 1968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김유정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그의 문학이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만큼이나 많이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글은 그러한 연구 성과의 자장에서 그렇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이글는 앞의 두가지 방법론의 통합적인 지양에서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먼저 김유정의 문학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봄봄 과 동백꽃 이다. 김유정의 몇 안되는 작품들 중에서 봄봄 과 동백꽃 이라는 두 개의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데에 의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봄봄 은 알고 있는 것처럼 주인의 딸 점순이와의 혼사를 매개로 하여 주인과 하인 사이의 실랑이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동백꽃 은 마름의 딸과 소작인의 아들 사이의 미묘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소설은 김유정의 30편의 단편 중에서 형식미로는 대단히 돋보이나, 내용성에서는 그 당시의 시대적인 문제를 가정 내부의 해프닝이나 아이들의 감정 문제로 표현함으로 인해서 김유정 문학이 비판받은 가장 대표적인 이유인 현실에 대한 피상적 인식을 가장 잘 들어내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왜 봄봄 과 동백꽃 이 우리들의 김유정 문학에 대한 대표적인 수작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그것은 우리가 그의 문학 작품에 대한 독서량의 저열함도 원인이 될 수 있소작인이며 선대부터 주종관계에 있던 돌쇠 모자가 실제 당한 사건이며, 의 모델들은 최문일, 김종필, 김씨 만으로 이들은 유정의 집앞 개울 건너에 살았다고 한다.{ 유인순 사랑의 사도, 문학의 순교자 한국소설문학대계 18 460P.그리고 그는 광산업에도 잠시 종사를 했다고 한다. 그곳의 체험은 , 등의 광산 이야기와 필히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장과정과 체험을 통해서 알아 본 그의 의식의 지평은 분명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민중들에 대한 인식과 분명 관계가 있을 것이다. 즉 김유정의 현실인식은 철저하게 체험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그러한 체험에 기초한 김유정의 1930년대 현실인식은 무엇인가. 필자는 본고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것을 그의 문학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2>1930년대 민중의식나는 오십사원을 갚을 길이 없으먀 죄진 몸이라 도망하니 그대들은 아예 싸울게 아니겠고 서로 의논하여 억울치 않도록 분배하여 가기 바라노라 하는 의미의 성명서를 벽에 남기자 안으로 문들을 걸어 닫고 울타리 밑구멍으로 세 식구가 빠져나왔다. 이것이 응칠이가 팔자를 고치던 첫날이었다{. 동아출판사. 236쪽.위 장면은 에서 응칠이 부부가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을 갚을 재주가 없자 세간사리를 남겨두고 야밤 도주를 치는 장면이다. 응칠이는 1930년대의 궁핍한 식민지 농촌에서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거리의 부랑자로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이렇듯 1930년대의 식민지 경제의 현실은 민중들의 삶이 개선될 여지가 철저하게 통제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민중은 철저하게 자신의 생존기반을 찾아서 농촌을 버리고 떠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삶의 근거를 버리고 타지로 떠도는 사람들은 김유정의 소설 대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에서 서울로 떠날 결심을 하는 춘호, 에서 사기 결혼극을 펼치는 병든 사내 부부, 에서 조복만이 부부, 의 두 사나이, 에서 거지 소년, 에서 부부, 에서 영애, 아키코, 몸은 못 쓰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리고 또,아우, 나 죽네, 응?하고 더욱 애를 끊으며 빌붙는다. 고개만 겨우 들었을 따름 그 외에는 손조차 자유를 잃은 모양 같다. 아우는 무너지려는 동발을 쳐다보며 얼른 그 머리맡으로 다가선다. 발 앞에 놓인 노다지 세 쪽을 날쌔게 손에 잡자 도로 얼른 물러섰다. 그리고 눈물이 흐른 형의 얼굴은 돌아도 안보고 그 발로 허둥지둥 장벽을 기어오른다{ 18. 동아출판사. 215쪽.알싸한 그리고 향극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너 말 마라?그래!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같은 책 331쪽.그것두 그래!그래, 거진 사 년 동안에도 안 자랐다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 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병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귀때기 하나가 작다{같은 책.266쪽.위의 첫 장면은 에서 더떨이가 노다지를 발견했지만 돌더미가 무너지면서 돌더미에 깔리는 것이고 뒤 예문은 에서 동백꽃 속에 파묻혔던 점순이와 작중 나 가 점순이 어머니의 화난 목소리에 놀라서 산아래·위로 갈라 도망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궁핍한 생활을 하던 덕칠이가 이제 떵떵거리며 한 세상 살아보려는 순간 흙더미가 무너져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고,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는 둘의 사랑이 만들어지려는 순간 엄격한 시대 현실(어머니)의 등장으로 점순과 작중 나 는 산을 하나 사이에 두는 현실로 돌아가고 만다. 즉 김유정에게 있어서의 시대의 정체성은 세번째 예문인 에서 자라지 않는 점순의 키처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요컨대 김유정의 현실인식은 19락거리는 것이 보기에 퍽이나 갑갑하였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레빗을 쑥 뽑아 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 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은 밥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 가며 머리에다 번지르하게 발라 놓았다. 그래 놓고.... 인제 가봐 {같은 책 202쪽매매계약서일금 오십 원야라위 금은 내 아내의 대금으로서 정히 영수합니다.갑술년 시월 이십일-조복만-{같은 책 202쪽계집의 음성이 나자 그는 꾸물거리며 일어앉는다. 그리고 너털대는 홑적삼을 깃을 여며 잡고는 덜덜 떤다.인제 고만 떠날 테이야? 콜록...말라빠진 얼굴로 계집을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물었다.십 분 가량 지났다. 거지는 호사하였다. 달빛에 번쩍거리는 겹옷을 입고서 지팡이를 끌며 물방앗간을 등졌다. 골골하는 그를 부축하여 계집은 뒤에 따른다. 술집 며느리다.옷이 너무 커... 좀 적었었으면...잔말 말고 어여 갑시다, 펄쩍 ... {같은 책 286쪽위의 첫번째 예문은 에서 이주사에게 매춘을 한 아내가 춘호가 원하는 돈을 그 댓가로 받으러 가는 장면이다. 여기서 춘호는 분명히 아내가 어떻게 이주사에게 그렇게 큰 돈을 받는 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새로운 삶과 농촌의 궁핍으로부터의 탈출이 보장된다면 아내의 매춘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두 번째 예문은 에서 조복만이 황거풍에게 자신의 아내를 팔아넘기는 매매계약서이다. 여기서도 생존의 위험속에서 부부간의 도덕성이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 예문은 산골 나그네 에서 병든 남편을 둔 아내가 덕칠에게 사기 결혼극을 펼치고 혼수를 훔쳐서 본 남편과 도망을 치는 장면이다. 김유정의 문학에는 이러한 도덕성이 상실된 인간행동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하게 생존의 한 방식인 것이다. 그러한 예는 노다지 에서 꽁보가 덕칠에 대한 보은으로 결혼한 자신의 누이를 바치겠다는 부분, 따라지 에서 카페 여급으로 나오는 영애와 아키고, 솔 에서 들병이로 나오는 아내{ 김윤식 교수는 김유정의 소설에서 들병이 사상에 주목하여 이것이를 하는 도중에 보면 어느덧 신분적 위계는 완전히 무너져 있다. 주인공인 나 는 번번히 싸우는 도중에 장인 어른을 할아버지 라 부르며 마치 동네 어리숙한 노인과 말다툼을 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면에서 김유정의 문학은 보통의 코메디에서 볼 수 있는 정상인 보다 열등한 인물을 등장시켜서 위계에 의한 웃음이 아니다. 이러한 예는 에서 아키코가 주인집 조카와의 싸움에서 그녀가 그를 입으로 무는 장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김유정의 웃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먼저 그것은 인물들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개성을 독특하게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개성은 한 작품에서 대부분 끝까지 변함 없이 유지된다. 이러한 강인한 개성을 지닌 평면적인 인물{ 김용구, 김유정 소설의 구조 , 관악어문 연구 5, 1980에서부터 그의 작품의 웃음은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속성은 너무나 강인하여 독자가 그들이 등장하기만 하면, 벌어진 상황속에서의 그들의 행동에 따른 예상되어 웃음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면만 보아도 그의 문학에서 웃음은 남의 실수나 잘못을 즐거운 마음으로 공감하는 유머나 짤막하고 교묘한 언어 표현에 의해서 일어나는 웃음은 아니다. 먼저 본고는 유정 문학의 웃음의 원인을 그의 문학 전체에 내재되어 있는 서사구조 속에서 찾아보려고 한다.그러자 응칠이가 날쌔게 달려 들며,이 자식, 남의 벼를 훔쳐 가니!하고 대포처럼 고함을 지르니 논둑으로 고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진다. 얼결에 호되게 놀란 모양이다.응칠이는 덤벼들어 우선 허리께를 내려조졌다. 어이쿠쿠, 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이 소리에 귀가 번쩍 띄어서 그 고개를 들고 팔부터 벗겨 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시선을 치걷으며 그 자리에 우두망찰한다{같은 책 258쪽.바람에 먹히여 말소리는 모르겠으나 재없이 덕돌이의 목성임은 넉히 짐작할 수 있다.아 얼른 좀 오게유똥끝이 마르는 듯이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겁겁히 잡아 끈다. 병든 몸이라 있다.
    인문/어학| 2002.06.26| 13페이지| 1,000원| 조회(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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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문학] 만세전에서의 주체성 문제 평가B괜찮아요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의 주체성 문제아주 천천히 김우창 선생의 을 읽고 나서 에 대해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맑았지만 내면은 흐렸다. 글 속에서 깊은 수렁 하나를 발견했는데, 주체에 대한 단 한 줄기의 의심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는 그랬던 것일까 생각에 빠졌다. 나는 하나 더의 고민을 앓고 있는 것인지, 오직 이 하나의 고민만을 앓고 있는 것인지 라는 의심으로 가득 찼다. 요즘 주체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있다. 점점 진실성을 잃고 말잔치에 스며드는 기분이다. 데카르트가 확신한, 그래서 내 유년과 청년 대부분을 감싸고 돌았던 흔들리지 않는 주체의 강함이 심연의 흐림과 함께 천천히 허물어져 갔었다. 무슨 유행에 따른 포즈가 아니라 진정 그랬다. 아직 그 상태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쁜 편이었다.아직 아무 준비가 안된 나로써는 이 글도 억지로 속을 헤집어 불러낸 성긴 말들일 가능성이 높다.근대성 자체가 어려운 화두라 쉬운 방식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로버트 피핀은 모더니티의 특성을 일곱 가지로 정하고 있다.{ . 김욱동 지음. 현암사. 1992. 26쪽.공통된 언어와 전통에 기초한 민족국가의 성립. 이성의 우의에 대한 권위. 자연과학에 대한 권위에 의존. 삶과 자연현상의 탈신비화.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의 표현에 대한 권리. 시장경제제도와 사유재산제. 기독교적 휴머니즘. 사실 이 한 사람의 선택지만으로 모더니티의 틈 없는 실체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각 항목은 이의를 제기하기에 다분한 소지를 품고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근대성이라는 화두를 다시 짜 맞추는 데 별 무리 없을 듯도 싶다. 어쩔 수 없이 이 토대로 모더니티를 거칠게 명료화하자면 모더니티는 이성적 인간 주체에 대한 눈뜸과 자본제적 원리가 작동하는 세계의 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티의 실체는 신의 죽음에 따른 인간이 신적인 위치로 부상함과 자본이라는 역동적이고 무서운 운동체의 출현의 동시적 사건이다메로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다음 세기와 시대를 예감하기 위해서는 이 다난한 크로노토프를 반드시 관통해 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두뇌를 가진 인간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굳혀진다.모더니티는 리얼리즘의 대자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계부로써, 모더니즘의 뿌리로써 지속해왔다. 사람들을 모더니티의 실체를 잡기를 그만두고 그것의 타자로써 그 몸을 규정해보려 한다. 하지만 이런 식도 간단치 않다. 복잡한 모더니티의 다발 덕분에. 모더니티를 리얼리즘의 대자로 보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이다. 리얼리즘(나는 요즘 현상학적 리얼리즘, 상상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인데)은 가장 혁신적인 모더니티로 내재되어 있을 수 있는 탓이다. 아예 포스트 모더니티와 모더니티를 연속선에 놓아서 두 개를 구분할 근거를 지우는 경우도 있다.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을 별개의 항목으로 차이 짓는 사람도 있다. 캘리네스큐의 말대로 모더니티가 주관성 우위의, 모더니즘, 아방가드르, 데카당스, 키취,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섯 가지 면상을 가지고 있다면 리얼리즘을 저 먼 과거로,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경우, 엄밀히 말해 포스트 모더니티는 모더니티에 대한 것이 아닌 서양지성 전체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아무튼 혼란스러운 모더니티인데.이쯤에서 그쳐야할 듯 싶고.중요한 것은 다시 우리가 전통과 지금을 어떻게 수용하고 증식시키느냐 하는 익히 들은 바 있는 명제와 같이 모더니티와 탈모더니티에 대한 면밀한 고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의 투쟁적 장을 열어내야 한다는 점이다.거칠게 표면화하자면 이 시기 모더니티는 포스트 모더니티 혹은 혁신적 모더니티에 의해서 극복해야 할 무엇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모더니티를 확정, 혹은 지평 형성한 후 그 파생체의 갖가지 가능성들을 교통정리하는 예사롭지 않은 수고이다. 을 이 둘의 자생적 가능성, 염상섭의 모더니티와 모더니티의 극복을 따지는 한계 안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 생각에 을 모더니티의 한 퍼스펙티브 수 있는 가능성을 반영론적 인식론으로 잡아 세운 염상섭의 흔들림이다. 은 염상섭의 『삼대』라는 대화주의적 소설{ . 나병철 지음. 문예출판사. 1996. 168쪽. 301-347쪽.이 완성되기 전, 그리고 , 자의식의 흉내가 종료되는 시기에 중첩되어 나타난 산물이다. 따라서 은 이런 두 갈래의 이탈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현실어, 이성적 관찰의 집중적인 배치로 그 이탈이 방지되고 있다. 물론 이 현실어는 단순히 서울지방, 부르조아계급의 언어와 사물인식이지만은 않으며 일본유학생, 민족주의자, 리얼리스트의 중복성 언어이다. 아무튼 은 염상섭의 지속적인 외부지향성 덕분에 내면의 발견(초기작들의)이 종료되는 시기의 끝자락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은 내가 생각하기에 모더니티의 중요 지점 중 하나인 존재론적 불안을 지워버리고 있다. 나의 존재론적 불안이라는 설정 은 단순히 오래된 인간습성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아니라 개인주의의 발로의 심화에 관한 것이다. 나는 모더니즘적 주체는 개인적 주체와 연관해서 생각한다. 신의 죽음 후 죽음과 고통스러운 현세의 삶에 대한 유일한 피난처인 나에 대한 탐구가 모더니티의 지대한 속성 중 하나라고 한다면 은 이것이 유치한 장난이었음을 시인하는 형식으로 종지부를 찍는 순간의 작품이다. 그러나 은 결코 사회주의 방식의 집단적 주체를 상정하지도 않는다. 아무튼 그것은 의심 없는 굳건한 세계관에 의해 확정되는데 염상섭에게 이것은 이성적 민족주의이다. 내면의 유출(감상적이고 유치하다 느끼지는)은 차단되고, 확정된 내면으로 객관적 상관물의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조절작업이 의 변두리, 아니 심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은 결코 대화적이지는 않지만 언급했다시피 균열을 품고 있다. 근대화에 대한 두 가지 괴리, 근대화된 일본과 근대화되지 못한 조국,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조국과 근대화로 빚어지는 고난들, 그러나 이런 사물, 내용적인 균열 뿐만 아니라 은 가치의 균열들로 갈라져 있다. 사회주의와 보신주의. 봉건과 반봉건. 민족과 외세, 비현실적인 미 그의 눈앞에 가치 있음과 없음은 확정되어 서로를 지양시키는 상태이다. 그는 반봉건주의자였고, 반외세주의자였고,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안아보려는 민족주의자였다. 이런 내포작가의 확정은 그의 작품을 독해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어떤 측면에서 염상섭은 독한 모더니스트였다. 그는 언제나 현세적인 삶에 대한 노련한 천착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집요한 관찰자였고 그것들을 항상 민족적 견지에서 파악하려 노력했다. 박애와 양심, 인륜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이 근대지식인의 편벽이 아니었나 의심한다.많은 이들이 흔들리는 주체 운운하며 에 나타난 소심하고 위축된 지식인의 나약함과 새로 태어나려는 몸부림에 주목한다. 그런데 이미 텍스트 밖의 목소리는 굳건하며 흔들림이 없다.(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염상섭의 담론 방식에 대해서는 언젠가 꼭 연구를 해야겠다.) 어떤 애욕에도, 어떤 무의식에도, 어떤 콤플렉스에도 굴함 없이 당당하다. 이 늙은 염상섭에 의해 윤색 당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후반부의 줄거리는 그의 흔들리지 않음이 드러나는 자체이다. 끝 장면의 신생에 대한 결의는 얼마나 이 소설이 직선적인가 하는 확증을 준다. 이 소설은 본질적 의미에서의 원점회귀적인 방식이 아니라 직선적이고 목적론적인 소설이다. 신생을 위한 자기보고서이며 잠시 빠졌던 백화파의 낭만성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나는 이런 아쉬움을 느낀다. 이것이 식민지 조국의 아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문학방식인가. 그는 불안도 방황도 포기했으며 고고한 애늙은이가 되어버린다. 그에게서 삶에 대한 본원적인 고찰과 철학적 분열은 발견할 수 없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아쉬운 흉내일 뿐인가. 확실히 시대의 최종심급은 반외세와 반봉건이라는 거대담론이었고 염상섭도 이에서 한치도 시계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공감이 간다. 절대 모순에 대항하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지당한 사실이지만, 이것이 공과의 양면이기도 하다는 느낌이다.시조를 짓지 못한 염상섭이 시조부흥운동에 참여했듯이 그는 자신이 구상하지 , 아직도 우리는 지나간 세대의 이런 편벽증이 준 몽매에 시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염상섭에게 문제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개인적 양심으로 사안을 처리하는 일이었다.하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완벽한 전통주의자일 가능성도 있었다. 견고한 서울 현실어가 그 증거다. 말의 본유적 사물성을 인정한다면 염상섭식 표현 방식은 전통을 간직할 수 있는 유연한 도구였다. 그러나 그의 한문투에서 서울말의 귀의는 진정한 서울의 내용을 사상하고 껍데기만을 안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우리말 지키기는 결과론적으로는 전통적인 것의 수호가 될는지 모르지만 결코 과거를 재구성하자는 방식의 내용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양심적인 일제에 대한 반대급부에 따른 가엾은 것을 지키는 것이었을 따름이다. 연민이 아니기 위해서는 존재의 가치를 밝혀야하는데 이것에 소홀했다. 마치 일본인들이 서구적 근대를 초극하자는 방식으로, 그는 일본적 근대를 민족적 근대의 심화로 극복하자는 식이었다. 물론 그의 근대론은 이광수나 교조주의자들의 편벽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현실적이며 적확한 반영론적 인식에 기초해있다. 여기서 반영론적 인식까지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런 점에서 염상섭은 앞서 지적한 모더니티의 진실한 한 가지 표현방식을 놓치고 있다. 그의 전망은 서구에서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자유와 박애의 유토피아였다. 결국 언제나 지탄받아왔듯이 그의 전망의 약함은 지금에 와서도 문제적이다. 물론 내 지탄과 딴 지탄들과는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어쨌든 그에게서 전망의 다양함이 소설 복합체의 본원적 속성대로 존재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 하버마스도 주체성을 새로운 시대(근대)의 표현으로 보았다. 개인주의, 비판의 권리, 행위의 자율성 등이 모두 주체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이 새로운 표현이 문제해결의 참된 방식일 수 없다고 본다. 주체성은 자기정당화의 다른 말이기도한데 하버마스는 주체성에의 함몰이 자기비판의 형식과 내용을 놓친다고 생각한다. 자기 정당화에 병행하는 자기비판 과정문이다.
    인문/어학| 2002.06.26| 8페이지| 1,000원| 조회(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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