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장완성 검사를 통해 본 나 스스로의 모습 )1.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나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조금 더 나은 나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콤플렉스 내지는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이 재력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어떤 파워를 가진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얻는다고 한 들 힘이 생긴다 한들 무엇이 그리 좋을 것이냐? 하느냐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별로 편안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는데 그 파워를 갖는다고 그때는 행복해질까? 편안해질까? 그건 아닐 거 같단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나와 하는 약속을 하여 내가 실천할때는 확실한 쾌감과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가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이 움직여 나갈 때 사람은 안정감과 자신감을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와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나갈 것이다.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의지와 생각만 있어서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 못가는 경우가 다반수이다. 의지와 생각이 실현되어 꾸준히 이어질 때 내공이 커지고 힘이 생기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지와 생각을 서포트할 수 있는 기술적인 면들, 환경적인 측면들을 세심하게 조율하고 컨트롤할 필요성이 있다. 기술적인 면, 환경적인 측면을 컨트롤하는 방법으로 좋은 것이 독서이다. 독서는 내가 미처 몰랐던 측면을 지원해주고 지력을 완성시켜 의지도 강화해주고 마음의 에너지를 촉진시켜주어 자신의 습과 업장을 떼어내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2. 나는 기본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잘 한다는 자부심이 컷었다. 초6때부터 고3때까지 늘 나는 영어과목에 자신감이 있었으며 늘 영어점수는 높은 편이었다. 물론 문법위주의 리딩이나 문제풀이에 강하고 스피킹과 리스닝에는 취약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어에 대한 정복감을 마음속 깊이 원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 방법으로 해외어학연수를 못해본것에 대해 해봤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고 또 가능성이 있다면 꼭 해외에 나가보고 싶은 욕구가 크다. 방법적인 면을 찾아보고 싶다. 한빛이를 통해서 혹은 교원대를 통해서 교수님께 문의를 드려보는 방법... 일단 그런데 내가 영어를 잘해서 머하려고 잘할려고 하나? 그 근원을 보면, 영어를 통해 남들보다 우월하게 잘나기 위해서일까? 영어전담을 하려고? 딱히 영어전담을 하려고 하면 좋기도 하겠지만, 그게 머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지도 않을 듯하다. 또 그럼 무엇을 외국문화를 체험하고 여행해보고 싶어서 그걸 하면 남들 못해본 걸 해서 더 그럴 듯 해보일까봐서 좀 해외물 먹으면 서양적인 느낌 세련된 느낌을 갖게 되긴 할거다. 성하채같은 경우에도 그런 것이 있겠지만, 잘한다고 머 삶이 크게 변화되진 않는다. 그럼 내가 추구해야할 영어 혹은 해외어학연수의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할까? 삶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좀 더 여유있고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 나의 틀을 깨기 위한 하나의 시도, 노력, 도전정신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여건이 허락된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영어공부는 꾸준함이 필요하고 절실함이 필요하겠다. 무엇이든지 공부는 손해날 것이 없다. 남들이 노는 것에 혹은 자신의 취미생활에 집중할 때, 나는 영어를 취미, 특기로 살리는 것 손해날 일은 없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어학공부는 두뇌운동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치매예방에도 효과적이지 않을까?3. 나는 친구관계가 많긴 하지만, 그 관계가 깊은 것은 아니다.나는 친구관계가 넓긴 하지만, 아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날 진정으로 생각하고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 피상적인 관계의 인간관계이다. 깊지 않은 것에 대해 때론 콤플렉스가 되기도 하고 친한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 창피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런데 내가 친구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내가 그 친구에게 허물없이 편하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어오면 바로 불편한 심기가 표출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또 ab형의 성향에 그런 것도 있다. 내가 정립해야할 친구관계란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괴로워하는 혹은 마음이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내가 친구의 마음을 위해서 희생을 해도 된다. 내가 힘들어져도 괜찮으니 마음은 짜증이 나면서 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런 감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나중에 내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피하게 되면, 오히려 나를 욕하고 다니거나 서운함을 과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오늘의 적이 내일의 우방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우방이 내일의 적이될 수 있는 인간관계의 묘용을 놓치고 자꾸 마음이 약해져서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하고 행동하고 처신하여 오히려 오해를 사고 오히려 피해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관계이고 오히려 악조건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관계도 마찬가지로 담담하고 담백해야 제 맛인 거 같다. 너무 미친 듯이 즐거운 것도 너무 뜨거운 것도 결국 데이고 마는 것이다. 늘 즐겁게 마시고 노세 노세 놀다가 갑자기 혼자 인 시간이 견디기가 힘들어지는 것처럼 그러니 나는 친구관계에서 너무 바라지도 말고 내 할 일 하면서 도와줄 부분은 도와주고 할 부분은 하면서 관계를 가지기를 바란다. 또 흔들리지 말자..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나아가라 ~~` 그리고 안될때는 솔직히 안된다고 오늘은 조금 힘들다고 오늘은 사정이 있다고 표현하라 무엇이 두렵냐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면 그건 올바른 관계가 아닌 것이다.
-비젼 2020 summary and comment-vision2020 summary and commentsummary part제1장 현대적 신념의 조락과 새로운 시대의 여명우리의 시대는 현재 상당히 불안하다. 현대가 창출한 기술들은 예기치 않았던 악영향을 끼쳤으며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양극화시키고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시도한 것들이 부작용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현상은 고통스럽지만 통과할 수 밖에 없는 흐름인 것이다. 문화와 문명은 위험에 직면했을 때, 적극적인 행동양식을 갖는다. 싸우고 투쟁하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할 수도 있고, 싸우고 투쟁하다 지쳐 쇠락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사회진화는 성장과 계기, 융통성과 창조서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의 특정시대가 끝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상황이 바뀌고 가치나 제도들이 크게 변화됨에 따라 특정시대가 가지는 가치는 변화되거나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기술들이 가져다 준 혜택에 객관적인 통찰력이 흐려져서 그 부작용을 보지 못했거나 보았다하더라도 지나쳐버렸다. 그래서 점차 쌓이고 쌓여 혼돈을 가져오고 있다. 그 혼돈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변화하도록 자극을 주고 있다. 만약 변화하지 않고 지금처럼 안이하게 행동한다면 혼돈은 가중되어 인류의 종말을 고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혼돈을 예측해야만 한다. 그래야 혼돈을 감소시키거나 이용할만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이 아닌 신선한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지적이다. 하나의 사고 방식에서 야기된 문제들은 그와 동일한 사고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어느 시점에서 합리적이로 생산적인 사고와 신념들은 다른 시점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비생산 인현대의 지배적 관점현대 이후에 요청되는 관점외부세계원자론적이고 단편적. 대상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움. 사람들은 개별화되고. 사회가 과학자들이 생산한 지식을 취하여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것을 적용하였다. 교육 체계는 과학적 지식을 확산시켰고,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합리성이라는 관점에서 과학적 지식을 해석해 왔다. 정부와 기업은 그들의 필요와 요구에 과학적 지식을 정교하게 다듬어왔다.-책임의 문제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올바르게 수습하기 위해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근대가 시작된 이래, 과학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실용주의에 핵심이다. 하지만 이 실용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전지구적인 문제 즉 장기적으로 위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예술 또한 지금의 시대를 형성한 강력한 동인이 되어왔다. 예술은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을 하고, 무엇을 느끼며,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미묘한 영향을 주고 있다. 예술에 뚜렷하게 나타난 인식들에 의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예술이 계속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종교는 시대 정신을 형성하는 제3의 중요한 동인이다. 종교는 극복해야 하는 미신 체계가 아니다. 종교는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요소도 아니다. 오히려 종교는 과학 및 예술과 공존하는 중요하고 통합적인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가 다양한 교육 제도 및 교육 방법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교육은 그 자체가 우리의 인식, 가치, 지식, 및 행동 양식의 근원은 아니며 단지 전달할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육은 우리시대의 사고와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과학과 예술, 종교, 교육은 현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다음 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책임을 다히기 위해서는 예술과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과학과 종교 역시 그들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나아가 이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문에 거대한 숲을 훼손하고 있다. 인도의 발전문제 그리고 수질 오염문제 등이 그 예들이다. 즉 문제가 되는 것은 공공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관계없이 단기적인 이익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장기적인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지도자들은 장기적인 안정을 단기적인 이익과 맞바꾸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기적인 이익추구가 결국 연못이 수련으로 뒤덥혀 모든 물고기들이 죽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 물고기가 시간상으로 우리가 될 수도 있고 우리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다. 단지 그 위험의 정도가 피부로 직접 와닿지 않는다고 해서 안이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다. 멸종은 우리세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만큼 모순이 쌓이고 쌓였다. 인도의 환경부 장관이었던 간디는 왜 매일 이탈리아에서 스웨덴으로 과일을 실어 날아야 하는가? 자동차를 두 대씩 가질 필요가 있는가? 일회용 아기 기저귀를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 같은 물음을 제시함으로써 재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인류의 상황을 폭넓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이것을 일상적인 의사 결정에 반영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할 때이다.제3장 두갈래치기와 혼돈두갈래치기가 지금까지의 과학의 인식의 한계를 넘어 체계와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는 새로운 과학의 핵심에 위치해 있다. 왜냐면 첫째로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가장 중요한 경험을 두갈래치기가 적절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것이 현대 사회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가장 결정적인 하나의 사건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다.-두갈래치기와 혼돈 이론에 대한 간략한 소개혼돈은 무질서와 혼란스러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곤 했지만 지금은 미묘하고 복합적인 그리고 극도로 민감한 일종의 질서를 의미한다. 두갈래치기는 둘로 갈라진다란 의미이다.즉 지나친 제약과 중압에 노출되었을 때에 복합적 체계들이 보여주는 근원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그 특징은 두 갈방이라는 이름하에 전개되었다. 탈식민지화는 과거에 반 정도 고립되어 있던 전통 사회들을 근대 세계로 개방시켰다. 기술적 두갈래치기와 경제적 두갈래치기가 결합되어 나타난 두번째 물결은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과 함께 도래했다. 위와 같은 두갈래치기들은 역사적인 사실들이다. 그것들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 자체가 과거로 후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의 뒤에 와 있는 두갈래치기의 결과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코 결정되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다른 두갈래치기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다음 물결은 폐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사회들이 전 세계적인 이념, 자본, 기술의 흐름과 그럴듯해 보이는 세계 시장에 갑자기 노출됨에 따라서 생겨나기보다는 오히려 현대 산업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방식을 우리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올 두갈래치기를 예측하고 그 전개 과정을 의식적으로 조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인류에게 하나의 중대한 도전이자 책임이다. 지적한 바와 같이, 두갈래치기에 대한 충분한 지식은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지식에 속한다. 두갈래치기는 혼돈에서 비롯된 원인에서 결과로 나아가는 과정에 놓인 상태를 말한다. 미래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를 예상해보고 올바른 rf로 가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혼돈 속에서 어느 한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혼돈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이 알 수 없는 결과에 대처해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제4장 세계와 미래를 보는 새로운 방식들현대 세계는 두갈래치기를 향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란 어떤 세계인가?. 후기 현대를 규정하려는 욕망은 미래를 들여다보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혼돈과 두갈래치기의 시대에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진화론적 과학이 필요하다. 자연과 인간의 영역에 있는 비평능한가? 결정론을 살펴보자. 사회 문화적 진화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사회의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 이런 종류의 결정론은 우리로 하여금 숙명론적인 정신 상태를 갖게 한다.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미래를 맞추는 퍼즐 풀이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에서는 숙명론적인 예측 가능성이 확인된 적이 없다. 심지어는 결정론적인 과정에도 개입할 수 있을 만큼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역사가 스스로의 법칙에 따른다는 생각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를 엄격하게 결정하지는 않지만, 단지 개연성만을 제시하고 전반적인 추세만을 보여주는 법칙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 비록 역사가 전개되는 방식에 완전한 결정론은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에는 여러 가지 패턴들이 있을 수 있다.-역사에서의 진화론적 패턴들-순환형패턴 나선형패턴 선형패턴 비선형패턴 이렇게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역사에 대한 순환론적인 접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환경의 안정이 확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활동과 상호작용이 지닌 다양성과 풍부함은 역사의 반복을 어렵게 한다. 다음은 나선형패턴은 혁신적으로 주기를 그리는 패턴인데 이 역사관이 지니는 난점은 시대들을 자의적으로 구분해서 역사를 예측한다는 데 있다. 선형패턴은 똑바로 진보하거나 퇴보하는 식이다. 똑바로 진보할때도 있지만 때로는 퇴보도 하고 반복한다. 예를 들어, 기술로 우리는 삶을 더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진보로 생각했는데 이 기술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위의 얻은 득보다 더 큰 손실이었다. 이때는 퇴보로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 패턴도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비선형패턴 복합적 체계들을 다루고 있는 새로운 과학의 틀에서 볼 때 생물학적 종들이나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는 생활권의 끊임없는 에너지 흐름에서 발생하고 있는 매우 다양한 비평형 체계들이다. 역사는 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그리고 현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