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부산 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주)미래와 음악 설립 기념 음악회를 다녀와서.....제 9회 부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라 하여 택시를 타고 갔던 곳은 문화 회관 이었다. 유엔 묘지 근처의 그곳은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썰렁하기만 하고 셔터까지 내려 있었다. 교수님 말씀대로 일찍 가야 했었는데...... 시간까지 늦어 있었는데 표를 썩힐 순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 구경하는 연주회가 이 모양이니~!여하튼 도착하고 보니 3분 가량이 지나 있었고 부랴부랴 들어갔다. 다행히 첫 곡인 D.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 이 막 시작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맘잡고 보려고 했는데,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늦게 도착해서 소란을 피운 것에 미안한 맘도 들고 게으름을 피워 늦게 온 것에 대해서도 스트레스가 쌓였다.이런 저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맘을 안정시킨 후 음악감상을 하는데 왠지 주변에서 전화 받는 소리, 떠드는 소리 등 잡소리가 많이 나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학생과 애들이 참 많았다. 우리처럼 리포트 쓰는 것도 아닌데 꽤 많은 어린이가 있었다. 연주와 합창단 소리 보단 그 떠드는 소리에 신경이 더 갔다. 일찍 와서 앞자리를 잡아 놓았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가 또 들었다.축전 서곡을 그럭저럭 정겨운 맘을 느끼면서 듣기 시작했다. 다음은 ‘S.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었다. 듣는 부분이 어느 부분이며 무슨 내용인지 몰라 듣는 도중 많이도 멍해 있었다. 그냥 찬송가를 듣는 듯 했다. 하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옛날 영화 중에 `플래툰`에 나온 음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비극적인 느낌이 들며, 음울한 느낌을 주는 음악 인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아다지오 풍의 느린 음악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끝 부분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여운을 남기며 꼭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음악이었다. 안 어울 것 같은 전쟁 영화와 잘맞아 떨어지는 것이 신기 했다. 이런 것을 보면서 클래식도 우리에게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다음 순서로는 음악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김 남윤` (현재 한국 예술 종합 대학 음악원 교수) 님의 `H . 비에냐프스키 의 전설` 과 `P . 사라사테 의 찌고이네르바이젠` 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시간이 돌아 왔다.내심 익히 유명한 바이올리스트의 음악을 한번 들어볼까 하는 심정으로 음악을 감상하기 시작하였다.비에냐프스키의 전설은 사실 김 남윤 이라는 이름에 가려 크게 감상을 해 보지 못했다. 김 남윤 교수의 바이올린 기교는 하늘을 찌를 듯 놀라움의 극치였다... 팜플렛을 보고서 이 곡이 전설이구나 하고 인지하고는 그때서야 음악을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뭔가 모르게 처음 시작과 끝이 이어지지 안는 너무나도 기교만 부리는 음악인 듯한 느낌이 뇌리를 스칠려고 하는 순간 다시 여러 가지 기교들로써 이를 못하게 하는 그런 이상한 느낌을 받는 곡이었다... 말 그대로 그 시대 그 상황의 이야기를 대변하여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바이올린과 더불어 곁들어 지는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더욱 이 곡을 아름답도록 만들어 주었다. 특히 큰 북 곡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그 곡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서 오케스트라 협연의 중요성을 인지 할 수 있었다.사라사테 찌고이네르바이젠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민족의 음악성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주 호탕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가는 무엇인가 모르게 슬픔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도 느껴지며 제멋대로 인듯한 여러 가지 느낌이 동시에 드는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김 남윤 교수님은 어찌도 저렇게 어려운 곡을 훌륭한 기교로써 완성해 내시는지 사뭇 음악인들이 경이로와 보이는 순간이었다. 저렇게 연주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외로이 연습하였을까? 하는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하여튼 정말로 평범하기도 하고 비범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느낌을 교차시키는 아름다운 곡이라는 느낌이 든다...그후 김 남윤 교수의 퇴장은 정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박수에 박수를 거듭한 나머지 들어가는 시간이 연주한 시간보다도 더더욱 길게 걸렸을 것이다....이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의 이기심일까? 여하튼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었다. 나도 저 정도의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받아 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인도네시아 , Indonesia]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위치 : 동남아시아면적 : 197만 7179㎢인구 : 2억 614만 3000명(1999)인구밀도 : 106.4명/㎢(1999)수도 : 자카르타정체 : 공화제공용어 : 인도네시아어통화 : 루피아(Rupiah)환율 : 7,975 루피아 = 1 달러(1999)1인당 국민총생산 : 1,110달러(1997)나라꽃 : 벗꽃(Jasuminum sambac)본문면적 190만 7179㎢. 인구 2억 614만 3000명(1999). 인구밀도 106.4명/㎢(1999). 인도네시아의 정식 명칭은 인도네시아 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네덜란드령(領) 동(東)인도였으나, 1945년 8월 독립하였다. 국명은 19세기 중엽에 영국의 언어학자인 J.R.로건이 명명한 것으로 '인도 도서(Indo Nesos)'라는 뜻이다. 현지인들은 '누산타라(Nusantara)'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중세 때 자바의 주민들이 사용한 명칭으로 역시 '많은 섬들의 나라'라는 뜻이다.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이다. 서쪽의 인도양과 동쪽의 태평양 사이에 위치하면서 북쪽의 아시아 대륙과 남쪽의 오세아니아 대륙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의 이른바 호아지중해(濠亞地中海)에 떠 있다. 이처럼 동서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각 방면에 있어 문화적 ·민족적인 교류와 이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이 지역 도서군(島嶼群)은 일반적으로 말레이제도(諸島) 또는 말레이시아 등으로 불리는데 인도네시아는 그 중 필리핀을 제외한 대부분을 차지한다.1. 자연1) 지형인도네시아는 서쪽 끝의 수마트라섬·자바섬에서 북동쪽의 할마헤라섬까지 약 5,100km에 걸치는 호상(弧狀)의 순다열도와 그 내부에 위치한 보르네오섬(칼리만탄), 셀레베스섬(술라웨시) 등의 큰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해역은 테티스해(海) 구조대와 환태평양 구조대가 이어지는 곳으로 지반의 변모(直上毛)와 황갈색의 피부를 가진 말레이 인종이지만 이들도 섬에 따라 여러 종족으로 나뉘며, 동부에는 빳빳한 머리털에 암갈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파푸아인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말레이인이 훨씬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도 수마트라섬의 쿠부족(族)과 셀레베스섬의 트아라족처럼 선주민(先住民)으로 추정되는 짙은 검정색 피부를 가진 네그리토족(族)과의 혼혈이 분포한다. 셀레베스섬의 미나하사족(族), 보르네오섬의 다야크족 등은 비교적 혼혈 정도가 낮은데도 종종 폴리네시아계(系)와 비슷한 밝은색 피부의 종족이다. 그 밖에 역사시대에 이주해온 중국인·인도인·아라비아인·유럽인 및 그들의 혼혈인종이 도처에 분포하여 인도네시아가 복잡한 민족 이동의 무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대표적인 인종은 자바족·순다족·마두라족 등이며, 전체적으로 300여 종족이 혼합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어를 공통의 공용어(共用語)로 사용한다. 주민의 약 90%는 13세기 이후 진출한 이슬람교도이나 일상생활에서는 그 이전에 이미 군도(群島)를 지배하였던 힌두교의 의식도 뿌리깊게 남아 있으며 애니미즘적 요소도 남아 있다. 그리스도교도는 전 인구의 약 4%, 힌두교도 약 4%, 불교도와 기타 종교가 3%에 이른다. 세계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로 인구분포는 지극한 불균형 상태로 자바섬(수마트라섬 포함)의 인구가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등 개발 여부에 따라 인구 차이가 뚜렷하다. 증가하고 있는 인구와 광대한 미개발 섬의 개발을 조화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이다.3. 역사솔로강(江) 유역에서 발견된 플라이스토세(世) 말기의 화석인류와 이와 함께 발굴된 유물은 인도네시아에 구석기문화가 발전하였음을 증명한다. 또한 자바섬의 와자크에서도 고기충적층(古期沖積層)의 표면 부근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인종과 비슷한 두개골이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각지의 인종들 사이에 남아 있는 멜라네시아 ·네그리토·베도이데계(系) 인종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인종도 태고시대에는 이 지역의 주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덜란드 세력을 심었다. 따라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마자파하트 왕조의 뒤를 이은 마타람왕국을 잠식해 들어갔다.나폴레옹 전쟁 당시 한때 영국군에게 점령되기도 하였으나 1814년과 1824년에 체결된 런던조약에 따라 네덜란드는 아시아 대륙의 옛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영국으로부터 인도네시아 지배권을 승인받게 되었다. 이로써 자바섬의 토착 왕국은 점차 네덜란드의 무력에 굴복하게 되었고, 마침내 티모르(포르루갈령), 보르네오섬의 일부(영국령), 필리핀(에스파냐령, 나중에는 미국령)을 제외한 인도네시아의 대부분이 잇달아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350년이 넘는 네덜란드의 지배는 인도네시아 민족해방을 지도할 만한 민족자본가의 성장가능성을 배제해 버렸다.그러나 19세기 후반경부터 미약하나마 문화적 활동을 지향하면서도 종족적 색채가 강한 여러 가지 운동이 일어났다. 1908년 와히딘 수디로후소도가 주도한 부디우토모당(黨)이 대표적이다. 그 후 이슬람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사리카트이슬람(이슬람연합) 운동이 인도네시아 전역에 걸쳐 일어나 종교를 통하여 종족의 벽을 뛰어넘음으로써 대규모의 통일된 힘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사리카트이슬람은 마침내 급진적인 정치색을 띠기 시작하여 20년에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탄생시켰다. 공산당은 1926년 노동조합의 통일전선(統一戰線)으로 동인도 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한 데 이어 공산당을 비롯한 12개 정당과 노동조합을 결속하여 반제국주의 통일전선(反帝國主義統一戰線)을 결성하였으나 1926∼27년 전국에 걸친 무장폭동 이후 비합법화되었다. 그 대신 1927년에는 인도네시아 국민당이 결성되어 지도권을 장악하고 민족주의적 비협조를 제창함으로써 세력이 크게 확산되었다.그러나 1931년에는 이것 역시 해산명령을 받게 되어 민족해방운동은 점차 후퇴하였으며, 단지 자치를 요구하는 선에 머물렀던 대(大)인도네시아당이 그 뒤를 이었다. 1936년에는 각종 정당 및 노동단체를 통합한 인도네시아 인민회의가 탄생하여 보통선거에 의한 완전한 의회의 획득이라는 슬로건며, 1969년 10월 군제개혁(軍制改革)에 의해 최고사령관인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신체제를 확립하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 등 경제중시(經濟重視) 정책을 내세웠다. 수하르토는 그 동안 반정부 활동을 봉쇄해 오다 1990년 들어 언론통제를 완화하고 유연노선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루피아화의 가치 폭락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1998년 5월 수하르토 대통령이 사임하고, 하비비 대통령이 취임하여 새로운 과도정부를 구성하였다. 1999년 6월에 총선을 실시하였고, 11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골카르당·통일개발당·인도네시아 민주당 등이 있다. 군은 대통령을 최고사령관으로 하여 육·해·공·경찰의 4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징병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원제이다.총병력은 1998년 현재 48만 2,000명이며, 육군 23만 1,000명, 해군 4만 3,000명, 공군 2만 1,000명, 경찰 18만 3,000명이다. 국방예산은 15억 7천 만 달러이다. 외교는 원칙적으로 수카르노의 적극적 자주외교와 비동맹정책 및 반제·반식민지주의를 이어받았는데, 현실적으로 1966년 UN에 재가입하고 말레이시아와 복교(復交), 타이완[臺灣]·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를 펴고 있다. 특히 미국 등 친서방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공산반군의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국교를 단절한 중국과 1990년 재수교하였고 러시아와도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노력하고 있다.5. 경제네덜란드 국민경제의 확대와 재편을 위해 식민지화된 인도네시아는 서유럽 기업에 의한 단일재배경제형(單一栽培經濟型:monoculture)의 식민지가 되어왔으며, 민족사회 내부에 민족 부르주아를 형성하지 못한 관계로 독립 후에도 기간산업부문(基幹産業部門)은 물론 생산수단의 생산부문이나 소비물자의 생산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1942년 네덜란드 식민지권력의 붕괴, 일본군정(1942~45), 독립전쟁(1945~49), 그리고 수카르노 정부에 의한 네덜란드 기업의 접수활동이 진행되는요 유전은 수마트라(메단, 팔렘방)·보르네오(타라칸, 발릭파판)·자바 동부·서이리안 등지이며, 석유자원은 국유화되어 있고 정유는 국영 정유회사인 페르타미나사(社)에서 전담하고 있다.천연가스도 주요 수출품으로 점차 비중이 높아져 생산시설의 확충이 계속되고 있다. 석탄은 수마트라섬 서안 및 팔렘방 부근에서, 금은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에서, 철은 보르네오섬 남동부와 셀레베스섬 남서부에서 생산된다. 공업의 발달은 지극히 낙후된 상태로 이제까지는 에스테이트 농업 등과 결합된 소규모에 지나지 않았으나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여 장래 공업발달의 가능성은 높다.무역은 70년대 이후 수출이 계속 늘어 무역흑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은 원유·천연가스·고무·원목(原木)·커피 등이며 주요 수출국은 일본·미국·싱가포르 등이다. 주요 수입품목은 기계류·화학제품·석유·비금속(非金屬)·식품류 등이며 주요 수입국은 일본·미국·싱가포르 등이다. 무역상대국은 수출입 모두 일본이 제1위, 미국이 제2위를 차지하며, 그 밖의 수출에서는 트리니다드토바고·싱가포르·네덜란드, 수입에서는 싱가포르·독일·사우디아라비아의 순이다.2) 교통인도네시아는 자바섬 내에 철도 및 자동차도로가 사방으로 뚫려 있어 동남아시아에서는 드물게 보는 교통망이 갖추어져 있지만, 그 밖의 섬은 낙후되어 있다. 특히 동부지역의 교통이 불편하다. 최근에는 국내공로(國內空路)가 점차 정비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자바섬·수마트라섬의 여러 항구도시로 이어지는 항로와 항공로가 발달해 있다.6. 사회인도네시아의 인구증가율은 평균 2.2%를 넘고 있다. 이는 식량생산 증가율을 상회하여 식량수입과 외화유출의 커다란 원인이 된다. 인구의64 % 이상이 총면적의 6.9%에 지나지 않는 자바와 마두라에 집중해 있고 인구밀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이와 같은 인구과밀현상은 토지의 부족과 토지분배의 불균형, 토지를 갖지 못한 많은 농민, 노동지대의 잔존, 농업기술 낙후와 생산성의 저하, 낮은 생활수준의 고착화 등 난제의 요인이 되고 있다.직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