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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크 시대와 그 문화 평가A+최고예요
    바로크 시대와 그 문화⊙바로크 시대의 개괄적인 설명바로크시대는 유럽 역사의 소란스럽던 한 세기 반 동안에 걸친 기간이었다. 그것은 1600년-매우 편리한 길잡이지만 지나치게 이 연대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보다 조금 전에 시작되었고, 1750년 바하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바로크(baroque)'라는 용어는 'barroco'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된 듯하며, 당시에 보석으로 많이 쓰인 일그러진 모양의 진주를 말한다. 1세기 반에 걸친 바로크예술은 초기·중기·후기의 세 시기로 나뉜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일반의 흥미는 마지막 단계에만 집중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헨델과 바하가 최초의 위대한 작곡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의 전경을 바라볼 때, 이 대가들은 오히려 오래되고 뛰어난 전통의 계승자였다고 볼 수 있다.1600-1750의 기간은 변화와 모험의 시대였다.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구대륙의 돈궤들을 채웠다. 중산계급들은 귀족사회에 대한 투쟁으로 부와 권력을 거둬들였다. 제국들은 세계 지배를 두고 서로 충돌했다. 극심한 가난과 허황된 사치, 당당한 이상주의와 잔혹한 압제-이와 같은 모순을 배경으로 화려하고 빛나는 바로크 예술이 펼쳐졌다. 그것은 동작과 개념이 대담하고, 박력이 있고, 장식적이며, 기념비적인 예술이었다바로크는 전제 군주제의 시대였다. 전 유럽의 군주들은 베르사유의 광휘를 그들의 본보기로 삼았다. '짐은 곧 국가이다!' 라는 루이 14세의 말은 모든 예술과 문화가 지배자의 숭배를 위해 봉사하던 생활방식을 요약하고 있다.크고 작은 궁정들은 각각 오페라단, 성당합창대, 관현악단을 포함하는 화려한 음악 직제를 가지고 있었다. 귀족사회에서 애호된 여흥이던 바로크 오페라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거리가 먼 고상한 정념을 목표로 하였다.바로크는 또한 이성의 시대였다. 신대륙 정복자들보다 더 용감한 모험가들은 이미지의 지식의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물리와 천문학에서의 케플러·갈릴레이·코페르니쿠스, 수학의 데카르트,도국으로 부상되었고, 독일은 황폐되었고, 영국은 세계적인 세력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유럽은 다음 단계인 근대 산업사회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개신교문화는 성서에 뿌리박고 있었다. 이 문화의 개성의 강조는 개인적인 풍토를 조장하여 바로크에서의 낭만적 경향을 강화했다. 3세기 반 전에 단테가 이라는 카톨릭의 서사시를 만든 것처럼 밀턴은 에서 개신교 세계관에 의한 서사시를 만들어 냈다. 종교개혁의 대담한 찬송 선율들은 바하의 심오한 정신적 예술을 살찌게 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들은 바로크의 광휘를 윤리적 관념에 이용하고 있다. 이 두 작곡가들은 개신교정신의 최상의 음악적인 업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가톨릭 세계 쪽에서도 루터의 탈퇴에서 온 손실을 만회하려 노력했다. 반종교개혁은 교회의 모든 투쟁적 세력을 동원했다. 신앙이 전인격적인 문제임을 인정한 예수파에서는 신자들의 마음과 정신과 감각에 불을 붙이려고 애썼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공헌할 수 있는 음악, 조각, 건축, 회화, 그리고 극장예술까지도 만들어냈다.절대 군주정치와 신흥 부르조아 세력, 종교개혁과 반 종교개혁의 상충되는 조류 사이에서 바로크는 그 웅대한 예술을 창조했다. 그것은 자제와 초연함과는 조화되지 않는 정신이었으며, 그보다는 힘의 격렬한 대립, 풍부한 창조력, 그리고 방종을 통해 목적을 달성했다. 동시에 수많은 세목들을 매우 크고 압도적인 전체로 조직하는 능력이 병행되었다. 바로크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루벤스와 반다이크의 경우와 같이 대사가 되거나 군주들의 친구이기도 했으며, 비발디의 경우와 같이 사제이기도 했고, 밀턴과 같이 정치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코르네이유와 라씨느처럼 왕이나 제후의 후원 하에 움직이거나, 바하와 같이 교회나 자유시에 의해 고용되기도 했다. 그가 섬기는 귀족에 대해 그는 세련된 오락의 조달자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시대가 요구한 추종적인 관례와 아첨하는 헌정의 말 뒤에서는 흔히 대담하게 기존의 지식을 파헤치고,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 대항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것은, 1545년부터 1563년에 걸쳐 북 이태리에서 열린 '토렌토 공회의'였다. 공회의는, 미술을 경시 또는 적대시하던 프로테스탄트파와는 대조적으로, 신앙을 확산시키고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했다. 특히 교의상의 논쟁점에 관해서는 성상이나 성화의 제작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렇게 해서 성인화나 마리아상을 비롯, 수많은 미술작품이 탄생하며, 그 열기 속에서 바로크양식이 성장해 갔다.이러한 과정에서 점차 명확해진 경향은, 예술작품이 종교적 이념의 객관적인 제시나 교의의 설명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성한 것과의 신비적인 만남의 장, 교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한편, 토렌토 공회의는, 교회음악으로부터 세속적인 요소를 배제하려고는 했지만, 음악에 대하여,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등의 구체적인 양식기준을 설정하지는 않았으므로, 음악가들은 제각각의 입장에서 반 종교개혁에 어울리는 교회음악을 추구해 나가게 된다.그러나 이미 과거의 그레고리오 성가풍의 음악으로는 새로운 카톨릭세계에 넘치던 종교적 파토스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시대정신에 적합했던 것은, 보다 극적인 음악, 신성한 말씀의 조심스런 전달을 뛰어넘어, 텍스트속에 있는 감정을 이끌어내어 인간과 신성한 것의 만남을 연출하려하는 음악이었으며, 그것이 바로 바로크양식의 음악이었던 것이다.⊙바로크 시대의 음악음악사에서 1600년경부터 1750년경까지를 '바로크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150년 정도의 기간동안 유럽 사람들의 기분은 대체로 비슷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50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물론 그 동안에 여러 가지 좋은 일, 궂은 일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그 시대의 음악에 나타난 공통점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16세기 전반에 걸쳐서 크리스트교와 교회 제도에는 변혁 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종교개혁이라 불린다. 그 결과 카톨릭 통일이 붕괴되고, 프로테스탄트 여러 파가 성립하였다.이런 양상은 프랑스의 위그노전쟁, 네덜란드의 독립전쟁, 에스파냐와 영국의 형되고, 그 지방에 맞는 기법들이 조금씩 개발되었다.바로크 시대에는 오페라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겨났다. 예를 들어 소나타, 칸타타, 푸가, 심포니, 콘체르토 또 바이올린, 첼로, 하프시코드, 피아노 그밖에도 많이 있다. 오늘날과 같은 관현악단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바로크 시대였고, 평균율, 조율법이 생긴 것도, 음악의 장조와 단조가 뚜렷이 나누어지게 된 것도, 모두 이때의 일이었다.유럽 사회는 르네상스 이후에 매우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많은 것이 새로 생겼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에 새로 생겨났던 것 중에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 많다. 그래서 오늘날 돌이켜보면 그 시대가 가장 급격하게 달라졌던 시대이다. 그 전까지의 합주는 아무리 규모가 큰 것이었다고 해도 여러 가지 현악기, 건반악기, 관악기 등을 잡다하게 모아 놓은 것이었을 뿐, 합주의 '주된 소리'를 이루는 악기가 없었던 것이었으나, 바이올린과 음색이 같은 비올라, 첼로 등의 현악기 가족이 합주음악의 '주된 소리'를 이끌어나가게 되었다. 이제부터 합주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큰 규모로 키워 나갈 수가 있게 되었고, 아주 작은 규모로도 알찬 합주단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절대 왕권의 시대, 절대 군주의 상징이었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정치권력에서뿐만 아니라 온갖 문화 활동에서도 유럽의 모든 군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절대왕권시대에는 궁정 안에 여러 가지 화려한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악단이 필요한 행사가 잦았다. 물론 오페라 반주도 해야됐지만, 귀족들의 식사, 담소 때에도 배경음악도 필요했다. 예를 들어 귀한 손님이 찾아 오셨을 때의 영접음악, 높은 사람이 파티 장에 나타났을 때의 팡파르, 저녁에 정원을 산책할 때, 저녁 시간에 심심할 때, 춤출 때.... 이럴 때 모두 악단이 필요했다. 물론 그때그때 악단의 전 단원이 나와서 연주할 필요는 없었다. 행사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인원이 동원되고, 알맞은 음악형식이 '개발'되었다.'바로. 그러나 두 사람은 그때까지의 바로크가 창조해낸 온갖 정신과 기법을 하나로 묶어 바로크 음악의 최고의 결실을 맺어 준 것이다.⊙바로크 시대의 미술17세기 초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미술 양식. 바로크라는 용어는 포르투갈어의 barroco에서 온 듯하다. ‘비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뜻인데, 이 말은 본래 16세기 유럽을 지배한 고전주의 르네상스 뒤에 나타난 양식에 대하여 모멸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의 독일 미술사가들에 의해 바로크라는 용어에서 ‘변칙·이상·기묘함’ 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제거되었다. 바로크는 미술사·예술학의 연구대상이 되었고, 현재는 이 개념이 다른 예술양식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한 시대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20세기에 들어와서 독일의 미술사가 H. 뵐플린은 19세기의 평가에 나타나는 이 양식을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퇴폐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를 부정했다. 그의 연구는 바로크 미술을 르네상스의 타락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며 르네상스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양식이어서 양자는 근대미술에서의 2대 정점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바로크는 로마에서 발생하여 이탈리아·보헤미아·오스트리아·독일·에스파냐로 번져나갔고 라틴아메리카에까지 확대되었다. 이 양식은 반 종교개혁의 유력한 표현수단이 되어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는 종래의 종교적 도상을 일신하고 종교미술에 신선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바로크는 귀족들의 표현수단이기도 하여 화려·호사한 의식을 과시하고 장식하는 구실을 다하였다.바로크는 16세기 고전적 르네상스의 조화· 균정·완결성 등에 대하여 경탄과 현혹을 지향하여 양감·광채· 동감에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건축에서는 거대한 양식, 곡선의 활용, 자유롭고 유연한 접합부분 등의 특색을 나타내고, 조각에서는 비상하는 동적인 자태와 다양한 복장 표현 등을 특색으로 하였다.회화에서는 대각선적인 구도, 원근법, 단축법, 눈속임 효과의 활용 등이 전체적인 특색이다. 18세기에 들다.
    인문/어학| 2003.04.21| 9페이지| 1,000원| 조회(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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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고제작] 애니메이션 광고
    1. 국내 애니메이션 광고의 역사{{애니메이션의 역할은 단지 만화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바로 광고이다. 1958년 TV전파를 탄 럭키치약 광고 가 그것이다. 1960년에는 차차차 란 로고송으로 유명해진 진로소주-두꺼비 광고가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그 이후 닭표식품-간장 광고 등과 같이 유사한 기법으로 제작된 광고들이 뒤를 이었다.1980년대 컬러TV 방송이 본격화되고 국내에도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도입되면서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광고 또한 많아지기 시작했다. 주로 CG합성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광고가 만들어졌지만 유한킴벌리 캠페인과 같이 산과 나무의 모습을 소형 모델로 만들어 나무가 숲을 이루는 과정을 스톱모션으로 촬영해 보여주는 색다른 기법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80년대 후반에는 장편만화의 붐과 함께 캐릭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싹트면서 광고에서도 캐릭터를 도입하는 사례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냉동식품 전문회사인 도투락의 만두광고에서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사용함으로써 브랜드 캐릭터 마케팅 시대를 열었다.{1990년대 이후에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이 보편화되는 것과 발맞춰,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애니메이션 광고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애니메이션 업계 입장에서는 광고라는 새로운 마케팅 분야로 영역을 확장한 것이고 광고업계 입장에서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동원해 차별적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윈-윈 전략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광고와 애니메이션은 분명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둘 사이에는 필연적인 공통점이 있다. 비록 한국에서의 애니메이션 역사는 100년에 가까운 상업광고의 역사에 비해 도입시기가 매우 짧지만, 애니메이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만화의 역사는 광고와 마찬가지로 100년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다.둘째, 둘 다 그 시대의 시대상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광고는 비록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주체인 기업,A. cartoon:만화를 움직이게 한 것. cartoon중에서 캐릭터가 간소화한 걸음걸이를하거나, 화법이 극히 양식화하여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하는 것을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B. still animation:스틸 사진을 움직이게 하는 것.C. animate object:기물(器物)이나 상품등의 입체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입체애니메이션이라고도 한다.Ⅱ. 일러스트레이션광고, 도서, TV등에 사용되는 삽화, 도해, 설명도 등 회화적인 것의 총칭이다. 즉, 실례,삽화를 뜻하며 신문이나 잡지광고의 아이디어를 완전히 소화하여 작품에 강한 개성을 줌으로써 아이디어와 표현기술이 혼연일체가 되어 소구효과를 발휘하도록 해야한다. 디자인이나 사진으로써 사실적, 상징적, 만화적, 도표적인 것 등 각종 표현방식을 잡아 아이캐치의 연속작용에 의한 효과, 색채에 의한 강조 등 광범위한 표현기술을 이용한다.2. 애니메이션 광고의 특징오늘날 수많은 다양한 애니메이션 광고가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첫째, 문화적 가치어린 시절 TV 만화영화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코드로 나타난다. 캔디캔디 , 마징가Z , '짱가 , 둘리 등과 같이 유명한 주제가나 주인공을 보았던 세대들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코드를 제품에 연결시킬 때, 그 제품에 대한 친숙도 및 공감대를 쉽고 빠르게 높일 수 있는 것이다.둘째, 오락적 가치애니메이션 광고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그림은 대부분 귀엽거나 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특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때로는 편안함과 때로는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다시 말해서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시각적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것이다.셋째, 단순함의 커뮤니케이션 효과애니메이션과 광고를 구성하는 가장 큰 기본요소는 그림이다. 그림의 본질적인 속성은 현실과는 다른 입고자 하는 제품에 독특한 캐릭터 부여는 물론, 다양한 부가가치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여섯째, 경제적 효용성대부분의 광고는 어떤 형태로는 모델을 써야 하고, 빅 모델을 통해 목표했던 수준의 광고효과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재작업(retake) 이라도 걸리면 시간과 비용 부담은 그만큼 가중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경우 모델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꾸면 빅 모델 사용으로 발생하는 비용부담을 덜 수 있고, 캐릭터의 생명력이 계속되는 한 그 캐릭터를 활용한 광고의 가치 또한 지속될 수 있다.3. 애니메이션 광고의 종류1) 셀 애니메이션 (Cell Animation)셀 애니메이션은 종이에 그린 그림을 투명한 셀(Cell)에 옮기고 그 뒷면에 채색한 다음, 완성된 배경 위에 놓고 이를 촬영하는 가장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이다.그러나 실제 광고에서는 전체를 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보다는 캐릭터의 기본동작과 캐릭터의 움직이는 동작 및 배경을 일단 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이 영상을 디지털 편집장치에 입력해 세부묘사는 컴퓨터 편집기기로 다듬어서 완성시키는 것이 보통이다.롯데칠성의 쌕쌕 오렌지는 80년대 컬러 광고시대의 대표적인 셀 애니메이션 광고로, 80년대 작품으로서는 색감의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운 움직임 등이 비교적 잘 연출되어 있다. 특히 쌕쌕 주세요~ 라는 징글 송이 경쾌하고 밝은 이미지와 어울려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오리온 와우 풍선껌은 신세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천계영의 대표작 언 플러그드 보이 의 두 남녀 주인공을 모델로 활용한 셀 애니메이션 광고이다.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에 신세대들의 감성에 어필할 수 있는 주제와 메시지를 제품과 잘 매치시켰다.2)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Stop-Motion Animation)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입체감 있는 소재를 의도한 대로 한 컷 한 컷 조금씩 변형을 주어 촬영하고, 이를 연결해서 필름을 돌리면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사용해서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쿠키{모양과 색을 클레이로 본떠 만든 가짜 쿠키를 사용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쿠키는 잘 부서질 뿐 아니라 앞뒤로 휘거나 비틀어지는 탄력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이 애니메이션 (Cut-out Animation) 광고종이를 잘라 스톱모션 기법으로 촬영하면서 원하는 동작을 연출하는 애니메이션 광고를 말한다. 최근에는 꼭 종이가 아니더라도 종이처럼 얇은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도 모두 같은 범주에 포함시키곤 한다.{리바이스는 여성을 위한 진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화장실에 부착된 여성의 로고가 치마를 벗고 청바지로 갈아입는다는 설정을 사용해 컨셉 전달과 재미를 함께 풀어간 크리에이티브가 탁월한 광고를 만들었다.3) 드로잉 애니메이션 (Drawing Animation) 광고드로잉이란 선이 주는 심플함과 여백을 최대한 살린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표현의 영역이 매우 단순할 것 같지만 사용되는 선의 질감에 따라서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실제 광고에서는 드로잉을 기본으로 하되 부분적으로 색감을 입히는 방법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해태제과 아카시아 껌 의 광고는 실사를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펜 트로잉으로 재구성하여 만든 작품이다. 블루 톤이 BGM과 어울려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감성적으로 잘 전달해 주고 있다.삼성전자의 휴대용 핸디 겜보이 는 휴대용 게임기 하나면 어디에서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수 있다는 컨셉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간 드로잉 애니메이션 광고이다. 간결한 선과 밝은 수채화풍의 깔끔한 채색이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준다.4) 컴퓨터 애니메이션 광고흔히 C.G 광고라 불리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광고는 Full C.G와 부분 C.G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디지타이저라고 불리는 도구를 이용해 컴퓨터에서 원화작업부터 편집까지 모두 처리하는 방법이다. 한 사람이 한 장소에서 하나의 세트 장비를 가지고 애니메이션의 모든 과정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너무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는 단점도 있다. 후자는 국적 기업들의 CF는, 국내 광고인들로 하여금 C.G애니메이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의 C.G 애니메이션의 도입은 선진국보다 훨씬 뒤진 1980년대에 들어서지만, TV 타이틀과 광고제작을 통해 다양한 기법들이 실험되어 왔다.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드는 제품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3차원 영상의 입체감과 상상으로나 가능한 동작의 표현이 가능해짐으로써 애니메이션 광고의 혁신을 가져왔다.90년대 들어서는 컴퓨터의 성능 향상과 워크스테이션 급 맥킨토시의 등장, 포토샵과 같은 전문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보급됨에 따라 수많은 광고들이 C.G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후 C.G를 이용하지 않은 광고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광고제작의 필수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실사합성 애니메이션(Synthesied Animation) 광고합성 애니메이션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조합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기법으로는 반투명 유리판 위에 작화된 셀을 놓고 유리판 아래에서 실사 필름을 투영시켜 합성영상을 만드는 방법과, 콘덴서 렌즈를 카메라에 부착하여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촬영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캐릭터와 배경을 쉽게 분리시키고 의도한 대로 가공할 수 있는 컴퓨터 합성이 보편화되고 있다.국내 최초로 마스킹 기법 (클레이로 원하는 얼굴 형성을 만들어 실사의 몸에 합성시키는 기법)을 도입하고 클레이메이션의 영역을 합성까지 넓힌 하벤 F'의 광고는 기침, 고열, 콧물, 두통 등의 복잡한 고통을 극도의 과장과 익살스러운 표정 묘사로 풀어간다.{4. 발전방향1) C.G 애니메이션의 발전방향오늘날 Pixar, PDI와 같은 세계적인 C.G 스튜디오들은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 C.G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미래 영상들은 거의 완벽하게 표현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고,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과거의 전통적 셀 애니메이션을 C.G 애니메
    예체능| 2003.04.19| 10페이지| 1,000원| 조회(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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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감상문 평가C아쉬워요
    도시 뒤편의 어두운 모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고'1980년대 초에 태어나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이 글은 1970년대 우리나라 가난한 소외 계층과 공장 근로자들이 어려웠던 시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직 정치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못한 터라 정국이 불안정하고 경제 질서 또한 자본가 계급의 일방적인 착취로 안정적으로 확립되지 못했다. 이 글은 자본가 계급 착취의 피해를 본 한 가정이 이로 인해 몰락하고 또 다시 극복해 가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노동 현실의 심층을 해부하고 인간의 강인함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를 악문 이 싸움에서 약자가 이기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래도 난장이들의 희망이 깊숙이 숨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나는 그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 함께 숨쉬며 느낄 수 있었다. 도시 빈민들의 궁핍한 삶 속에서도 그들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 풀어야 할 과제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적어도 계속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그들의 처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아이러니한 설정은 그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낙원구 행복동'에 걸린 철거 계고장은, 얼마나 어색한 것인지.아버지 김불이는 이 싸움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는 결국 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를 잊기 위해 현실 도피적인 방법을 택한다. 이는 우리가 이른바 '미친다'고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는 달나라로 가는 것을 동경하고 서커스를 하겠다는 등 비상식적인 일을 한다. 그는 평생 교육을 받지 못하고 육체 노동으로 돈 벌어오다가 늙으면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는 피 착취 계급이 받은 정신적 피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식이 잘 되도록 교육에 전념하도록 하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결국 자식들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 일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아저씨를 가장 많이 동정한다. 자식들이 자기와 똑같은 삶(문맹인)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부모로서의 마음이 쓰렸을까? 그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끝까지 희망을 지키고 산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란 그가 간직한 작은 희망을 말하는 듯 싶다. 그는 이 작은 희망을 간직하기 위해 비행기에 실어 달나라로 보낸다. 그는 정상인에게 대항하기엔 너무나 나약한 존재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장애를 극복하려 한다.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난장이인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이었을까 ? 당시 일선의 노동자들은 산업발전이라는 목적하에 권리와 최소한의 후생수준도 못 미치는 무기력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작가가 책 첫머리에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한 것은 아무리 따라 돌아도 결국 제자리에 올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안과 겉을 구분할 수 없는 곡면,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 그것은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회, 현실로서의 사회를 뜻한다. 정책에 의해 무허가 동네를 철거하는 사회. 그것을 말리려는 사람들에게 무력을 행사하고 부동산업자들이 입주권을 몽땅 쓸어가는, 그리고 쫓겨난 사람들은 성남으로, 은강으로 가서 다시 힘겨운 삶을 꾸리고, 기계를 돌리고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그런 사회이다.장남인 영수는 이 가정에서 제일 많이 배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기 아버지와 가정을 지켜보면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그의 가족에게 부닥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는 어렵게 공부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정보산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가 이 가정의 가장 노릇을 대행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또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알아본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 당하고, 또 상실 당한 것은 아닐까?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또래의 고등교육을 받고 더 잘 사는 아이들보다 생각이 깊었고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었다.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지식인의 고뇌와 또 사회 하층민들의 아픔을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공장 사장에게 가서 따질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었고, 또 가정을 보살필 수 있는 정신적 지주였다. 우리 주위의 이런 아이들을 보면 대개 동정심을 느끼지만 나는 오히려 그가 존경스럽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사장을 죽인 것은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차남인 영호는 의젓한 형과 반대되는 의지가 약한 인물이다. 그는 자기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모든 일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다. 그는 형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그도 곧 삶에 쉽게 지쳐버린다. 무엇을 개선하려 해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곧 포기해 버리고 만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어떤 격려도 받지 못한 채 자기들에게 강요된 현실에 금방 질려버리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그는 자기 가족과 지섭 이외의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여긴다. 아니, 어쩜 지섭과 자기 아버지도 이상하다고 의심한다. 그는 자기 세계에 빠져서 자신과 가족을 불쌍하게 여길 뿐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형을 동경하지만 따라갈 수 없는 의지박약의 나약한 인물... . 어쩌면 현대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명희와 영희는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 극복 의지가 강하나 제일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여성을 대표한다. 그들은 가족을 재정적으로 도와주려고 공장에 다니고 몸을 팔게 된다. 제일 희생이 크면서도 사회적으로 가장 큰 비난을 받게 된다. 이들은 일생동안 정신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무참히 밟히고 여자로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어머니는 직접적인 피해를 받진 않지만 자신의 가족을 지키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녀는 어머니답게 어른으로서 어머니로서 모든 것을 당당하게 헤쳐 나가려하고 침착성을 유지한다. 또 자식들을 잘 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결말부의 영희의 절규는 더 이상 난장이로 남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도시 빈민의 자식들은 노동자로 편입된다. 까만 쇠공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간 - 벽돌공장 굴뚝 속으로 떨어져 죽은 난장이의 자식들은 각각 은강 자동차, 은강전기 제일 공장, 은강 방직 공장에 취직한다. 죽어라 일을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야근 시간에 졸다가는 반장이 들고 다니는 옷핀에 팔을 찔린다.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움직이는 노동자들은 해고돼 블랙 리스트에 오르고 어딘가로 끌려가 조사를 받으며 어두운 골목에서 뭇매를 맞는다.
    독후감/창작| 2001.10.17| 4페이지| 1,000원| 조회(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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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철학사 평가A좋아요
    서양철학사서양철학사 西洋哲學史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서양의 철학 사상이 전개되어온 과정 흔히 고대,중세,근대, 현대로 구분한다. 대체로 고대 철학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중세철학은 5세기부터, 근대철학은 17세기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1.고대 철학고대 서양철학은 대부분 그리스철학이다. 중요한 고대철학자로는 기원전 5세기와 기원전 4세기에 활동했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이들의 철학은 후대의 서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형이상학, 과학, 논리학, 윤리학과 같은 분야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이들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많은 철학 학과가 꽃을 피웠다.(1)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들은 그리스의 첫 번째 철학자들로 주로 우주의 본성과 근원, 실재의 본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모든 현상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되는 기본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신이나 초자연적 힘이 자연현상을 일으킨다고 믿지 않았다. 이들은 우주를 서로 연관되고 통일된 현상들의 집합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자연현상을 자연 자체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철학의 근본 질문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되는 다양한 해답을 내놓았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해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음으로 그 질문들을 검토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겐 딛고 설 철학적 전통이 전혀 없었지만, 이들의 생각은 후대의 모든 철학자들에게 하나의 전통을 만들어 주었다.(2)소크라테스소크라테스는 철학 토론에 참여했지만, 어떤 저서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사유와 방법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주로 그의 제자 플라톤이 쓴 대화편에 담겨 있다. 이 대화편에는 대개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대답을 이끌어내면서 질문과정을 발전시켰다.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살았으며 길거리와 시장, 군대 훈련장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는 묻고 답하는 문답법을 썼다. 왜라고 묻는 것으로 구성되락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자신의 철학을 세웠다. 그러나 모든 쾌락이 선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선한 쾌락은 고요하고 소박한 쾌락뿐이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최고의 쾌락은 육체와 정신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육체적 건강과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상태이다.(6)회의주의스토아철학과 에피쿠로스학파가 번성했던 시기에 엘리스 출신의 피론이 창시한 학파가 회의주의였다. 피론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가르쳤다. 그에 따르면 감각이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사물들의 존재방식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지식이라고 내세우는 모든 것은 거짓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물을 무관심하게 봐야 하며 어떠한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7) 신 플라톤주의플로티노스는 플라톤 사상을 부활시키면서 이를 변형시킨 신 플라톤주의를 창시했다. 플로티노스는 서기 3세기에 이집트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신 플라톤주의는 개별자를 신과 통일체, 즉 일자(一者)로 이끌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은 축복을 받은 상태이다. 인간 영혼은 신과 재결합하기를 갈망하지만 이것은 신비스러운 경험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플로티노스는 믿었다. 신 플라톤주의는 그리스 철학과 초기 크리스트교 사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철학은 중요한 진실은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앙과 신의 영향력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2. 중세철학중세 서양철학은 독자적인 탐구분야가 아닌 신학의 한 부분으로 발전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은 종교적 사고에 영향을 주는 한에서만 살아 남을 수 있었다.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 초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다. 그는 (412∼427)에서 신의 나라에 사는 성실한 크리스트교도의 삶과 지상의 나라에 사는 이교도 및 이단자의 삶 사이의 투쟁이 바로 인간의 역사라고 해석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나라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을 얻지만, 지상의 나라 사람들은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썼다. 이 책은 로마의 이교도 신앙을 약화시키면서 크리의 철학은 정신과 물질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낳았다.스피노자는 기하학을 모델로 철학체계를 세웠다. 그는 자명한 진리로 추정되는 몇 개의 핵심 공리와 정의에서 철학적 결론을 끌어내고자 했다. 스피노자는 신을 자연을 창조한 초월적 존재로 보지 않고 자연과 동일시했다. 또한 기계론자로서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이미 결정돼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미 결정된 삶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살며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라이프니츠는 실재 세계란 가능한 세계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믿었다. 인류를 대하는 방식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면서 실재 세계가 왜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최고인가를 보이려 했다. 그래서 완벽하면서 전능한 신이 왜 그렇게 많은 고통과 악으로 가득찬 세계를 창조했는가 하는 문제를 풀려했다. 라이프니츠와 영국의 과학자인 뉴턴은 각자 따로 미분학을 발전시켰다. 라이프니츠는 논리학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수학 기호와 연산을 사용하는 기호논리학을 발달시켰다.(2)경험론은 지식의 원천이자 토대로서 경험과 감각적 지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험론자로서 처음 유명해진 사람은 17세기 영국의 로크였으며, 아일랜드의 버클리와 스코틀랜드의 흄은 18세기에 경험론을 더욱 발전시켰다.로크는 (1690)에서 인간의 지식의 기원, 범위, 확실성을 밝히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유관념이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은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와 같은 정신상태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따라서 로크는 경험이 모든 관념과 지식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버클리는 "인간이 무엇을 알고 있든지 그것이 관념일 뿐이라면, 어떻게 그 관념에 상응하는 무엇인가 그 세계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그는 결국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얻었다. 지각되지 않는다면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물질적 대상은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이기에 어떤 독자적인 존재도 아니다. 흄은 로크와 버클리의 헤겔의 이론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물질적 사물만이 실재한다고 믿었고 모든 관념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세워진다고 했다.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의 투쟁의 변증법이 공산주의의 성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것을 하나의 정치·경제체제로서 사회주의라고 불렀다.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1883-1885)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대중을 이끌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신에 대나 관념이 힘을 잃었다는 뜻으로, 니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인도할 다른 관념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니체는 초인의 탄생을 예언했는데, 도덕성에 대한 단순한 호소들도 초월한 존재이다. 한편 그는 모든 행위가 권력을 향한 의지. 즉 자기 자시들의 열정과 타인을 통제하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초인은 나약함이 아닌 힘을 통해서 권력을 향한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므로써 새로운 종류의 완전함과 탁월함을 발전시킬 존재이다.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주도적인 철학은 벤담과 밀이 발전시킨 공리주의였다.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밀은 (1869)에서 여성들이 법적으로 남성에 예속된 상태를 "완전한 평등의 원리"가 적용되는 상태로 바꿔야 한다고 썼다. 이 생각은 당시로서 혁명적인 것이었다.5. 20세기 철학이 시기의 철학은 크게 다섯 가지 흐름으로 나뉘다. 실존주의와 현상학은 서유럽 국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그 밖의 큰 흐름인 실용주의, 논리 실증주의, 분석철학은 주로 미국과 영국에 영향을 주었다.실존주의는 20세기 중반에 중요한 힘을 발휘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절망감이 만연했고 기존 질서로부터의 일탈감이 생겨났다. 이런 느낌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선택을 위한 객관적인 표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은 개인들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들은 이로써 자신을 창조한다. 가장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는 프랑스 우리는 다만 근대의 자연과학이 그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하는 시기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과학적 사유태도는 쉽게 수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이미 과학적 사유태도에 길들여져 있기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과학적 연구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세 말기에 새롭게 등장되는 과학적 발견들은 일상의 사람들에게 수용되기에는 경험적으로 멀리 있었다. 예컨대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나 또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더 크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 일상의 사람들은 수긍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했다. 문제는 일상의 사람들이 감각적 경험을 진리인식의 근본수단으로써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과학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소위 계몽주의 시대로 불리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계몽주의에 앞서 중세 말/근대 초기에 일어난 보편논쟁은 과학의 시대를 예고하는 전조였다. 보편논쟁은 유명론과 실재론의 일대 결전이었고, 유명론의 승리는 바로 과학적 탐구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우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일어난 대결, 과감하게 말해도 좋다면, 최초의 보편논쟁은 중세의 교부철학에 의해서 플라톤의 승리로 이끌어졌다. 이 논쟁은 중세 신학의 이념적 정초를 위한 작업으로써 요구되었다면, 두 번째 논쟁은 과학의 이념적 정초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두 번째 논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승리였을 것이다.철학의 성격: 철학적 반성과 수행에 나타날 수 있는 개인성과 보편성(인류성)철학은 지식을 획득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위한 예비적 토대가 되는 학문이 아니다. 물론 철학적 활동은, 그 근원에서 볼 때, 현실적 지식과 실천방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함축한다. 여기서 현실적 지식과 실천방안은 개인적 지식과 실천방안 뿐만 아니라 아직 개인이 획득하지 못한 지식과 실천방안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본다면 앞으로 획득되어야 할 미래의, 즉 미지의 세계이지만 인류 전체의 안목으로 본다면 이미 현실사회의 공통 기반으로서 우리에게 앞서하는가?
    인문/어학| 2001.10.17| 10페이지| 1,000원| 조회(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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