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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헨도르프Mondnacht
    편안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Mondnacht를 선택했다.시를 그냥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작가나 사조,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더욱 시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가와 사조에 대해서 좀 알아보게 되었다.아이헨도르프 (Joseph von Eichendorff 1788-1857)프로이센 라티보르 출생. 1788년 슐레지엔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낭만주의의 마지막 기사’로 불리어지고 남달리 경건한 신앙심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착심 때문에 ‘숲의 시인’이라고도 불렸다. 유산으로 물려받게 된 오스트리아의 보수성과 카톨릭 정신이 젊은 시절의 그에게 성장의 원천이 되었다. 브레슬라우에서 김나지움을 마치고, 할레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아르님, 브렌타노, 괴레스 등과 사귀는 가운데 감각적이고, 사려 깊으며 품위 있는 귀족풍의 정감을 얻게 되었고, 가요와 전설의 마력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는 자유전쟁에 참여했으며 1816년에는 프로이센의 관청공무원이 되기도 했다. 1814년 결혼하였으며, 1831년부터 1844년까지 교육부 관리로 근무하였다. 후에 단치히, 빈, 나이쎄 등에서 살다가 1857년 세상을 떠났다. 많은 서정시들 외에도 소설 (1815), (1826) 등이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그의 많은 시들이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어려서부터 카톨릭의 교육을 받은 그는 일생동안 움직이지 않는 신앙에 살았고, 낭만주의가 그에게는 카톨릭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천성이 서정시인이며, 또 부유한 귀족의 집안에 태어났고 관리로서도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은 그는, 다른 낭만파의 작가들과 같은 병적이고 컴컴하고 격렬한 요소를 전혀 지니지 않았다. 그는 동경에 가득 찬, 꿈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과 인생을 노래했고, 사랑과 침묵과 이별을 노래 부른 시가 많지만 거기에도 역시 화창한 기분과 소박하고 경건한 신앙이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송되는 그의 몇몇 서정시는 독일의 민요와도 같이 널리 불리어진다. 그만큼 시가 서정적이고 쉬웠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낭만주의낭만주의 ‘Romantik’ 이란 말은 장편소설 ‘Roman'이라는 단어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것은 ’가공-허구-꾸며낸 이야기-비현실‘ 이라는 의미에서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설적(허구적) ', '환상적 ', ‘몽환적’, 이라는 뜻으로 바뀌게 된다. 자연을 대상으로 환상의 세계를 자신의 내면세계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에 걸쳐서 문학뿐 아니라 일반 예술 및 사상 전반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독일에서 처음 발생하였으며, 독일에서 가장 그 특색을 발휘하여 각국 및 후대의 문예와 사상계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당연히 독일의 문예사조에서는 가장 중요시되는 운동 이였다. 산업혁명의 시기였던 17,8세기의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시대 분위기, 형식위주의 계몽주의와 고전주의, 형식주의에 반대하며 냉정한 이성을 배척, 감정과 감성의 강조를 외쳤다. 고전주의 문학이 엄격한 형식과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낭만주의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억눌렸던 감정이 새로운 미적 표현의 원동력이 된다. 자아의 감정의 표출을 통해 제한 없는 세계, 약간은 공상적이고 허망한 세계를 추구한다. 대상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주관적이고 자신의 가치를 따른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중심에 있는 시인이 Mondnacht를 쓴 Eichendorff이다.MondnachtEs war, als hatt der HimmelDie Erde still gakußt,Daß sie im BlutenschimmerVon ihm nur traumen mußt.Die Luft ging durch die Felder,Die Ahren wogten sacht,Es rauschten leis die Walder,So sternklar war die Nacht.Und meine Seele spannteWeit ihre Flugel aus,Flog durch die stillen Lande,Als floge sie nach Haus.마치 하늘이땅에 조용히 입맞춤하여땅이 아연한 꽃빛 속에서이제 하늘을 향해 꿈꾸지않을 수 없다는 듯.바람이 들판을 스쳐 지나가면이삭들은 조용히 물결쳤고숲은 나즉이 속삭였다.그처럼 별도 또렷했던 밤.나의 영혼은활짝 나래를 폈고마치 집으로 날아가듯조용한 대지를 지나 날아갔다.형식적 분석● abab 형식의 Kreuzreim(십자운)을 띄고 있음.1연의 1, 3행에서 Himmel , Blutenschimmer / 2, 4행에서 gakußt , mußt2연의 1, 3행에서 Felder , Walder / 2, 4행에서 sacht , Nacht3연의 1. 3행에서 spannte , Lande /2, 4행에서 aus , Haus● 약강격(Jambus 얌부스)의 운각을 띄고 있음.● 첫 행과 마지막 행이 가정어구 als 접속법 2식 문장으로 상호 연관되면서 작품의 비현실적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소원이나 상상을 나타내고 있다. 또 구체적인 대상의 묘사는 피했다.각 연의 분석1연- 하늘과 땅이 만나는 봄의 배경을 묘사한다. 봄은 영원성에 대한 땅의 꿈이자, 영원한 부활의 꿈이다. 하늘과 땅이 입맞춤하는 상황을 접속법으로 나타냄으로써 비현실적 상황에 대한 동경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이들의 ‘입맞춤’은 대립의 지양과 본원적 합일을 의미한다. 가정법으로 환상적, 비현실적, 몽환적 분위기가 난다.2연-1, 3연과 달리 2연은 직설법의 어조로 표현했다. 즉 현실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의 특징적인 면을 고려할 때 ‘sternklar’ 이란 시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상징적이고 절대적인 신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문/어학| 2006.10.25| 3페이지| 1,500원| 조회(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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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우리가 직면한 여러문제들
    목차1.식량문제2.인종차별문제3.환경문제4.종교문제5.인간의 건강문제6.에너지 문제7.세계화 문제8.북핵문제9.테러문제10.중동문제1.식량문제2006년 현재 세계인구 65억 명.세계 식량생산량 약 20억 톤.수치상으로만 보면 인류가 먹고도 남을 양 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65억의 인구 중 10억 이상이 굶주리고 있고 매일 4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우리 곁의 북한도 식량난이 심각하다. 한마디로 인류는 식량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식량이 부족할까? 그 이유에는 빠른 인구증가, 이상기후로 인한 계속적인 흉작, 식량낭비 등이 있지만 이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낭비인 것 같다. 식량낭비의 주범은 가축과 음식쓰레기.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선 소고기양의 7배에 달하는 곡물이 필요하고 돼지고기는 4배가 필요하다고 한다. 선진국에서 가축사료로 쓰이는 곡물의 1-2%만 줄여도 지구는 기아에서 해방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음식쓰레기. 우리나라는 음식쓰레기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15조원을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낭비하고 있으며OECD 국가 중 음식쓰레기만 모아서 매립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그만큼 음식물 쓰레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선 음식물 과다섭치로 인한 각종질병에 허덕이고, 지구 반대편의 어떤 나라에선 식량부족으로 하루에 몇 천 명씩이나 죽어가니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필수품 식량. 그 기본적이고도 원초적인 것을 둘러싼 문제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 여행을 가느냐 마느냐 하는 첨단과학의 이러한 시대에도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이 정말 너무 안타깝다. 강대국들은 매일 모여서 세계평화만 외치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인류의 식량난부터 해결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선진국에서는 특별히 소비를 줄이지 않아도 낭비만 어느 정도 줄여준다면 식량난은 해결되니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인지 지난 92년엔 미국에서 흑인 폭동으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제도적이나 의식적으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선 인종차별로 인한 충돌과 문제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정치, 사회적인 문제가 결부되면 그로인한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그 예로 얼마 전에 미국 남동부 6개주를 강타했던 카트리나. 이 허리케인으로 특히 뉴올리언즈 지역은 전체의 80%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심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카트리나 자체가 아니었다. 바로 뉴올리언즈에 대한 미국정부의 늑장 대응과 지원이 문제가 되었다. 정부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막을 수 있었던 피해를 못 막았기 때문이다. 이 이유에 대해서 뉴올리언즈가 흑인이 대부분인 곳이라서 그랬단 주장이 나왔고 흑인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인종차별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1년이지나 복구가 한창인 지금도 백인 주거지역 위주의 복구가 문제가 되고 있어 인종 차별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그러면 단일민족인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이 없을까? 우리는 인종차별하면 흔히 미국이나 유럽을 탓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 우리보다 가난한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또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튀기’라는 말은 혼혈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단일민족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배타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교통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국가와 인종간의 벽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좀더 개방적이고 깊은 수용력으로 살아갈 준비가 필요하다.3.환경문제환경문제 또한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심각한 문제이고 이미 심각한 상황에 도달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물 공기 토양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고 그로인해 인간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 물은 오염되어 마실 물이 점점 귀해지고 있고 공기현상이다. 뉴스를 보면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예전보다 더 빈번히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올해에 황사가 굉장히 심했다. 지구온난화로 중국 일부지역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상이변현상들이 대부분 지구온난화에 의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지구온난화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일단 해결방법에 있어서 민감한 정치, 경제상황이 얽혀있기 때문에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일단,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 등 화석연료의 부산물로 생기는 문제인데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미 어느 정도 개발을 마친 선진국과 한창 개발 중인 개발도상국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여러 선진국에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4.종교문제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에 따라 종교를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종교를 강하게 배척하고 충돌까지 일으킨다. 이러한 종교적인 갈등이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면 그냥 싸움에서 끝나겠지만 국가간에 일어난다면 전쟁까지 일어날 정도로 종교문제는 심각하다. 어찌 보면 문화의 상대성 차원에서 각 민족과 국가간의 특수한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데서 문화적인 충돌이나 종교적인 갈등이 야기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화문제와는 다르게 종교에는 그들의 신념과 믿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종교분쟁은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교라도 종파에 따라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가 가장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이다. 미국과 유럽은 대부분이 기독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슬람교를 부정하고 비판하고 있다. 911테러도 결국은 이슬람교와 기독교간의 분쟁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큰 사건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에서는 98년부터 2002년까지 평균수명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고 인간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질 좋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이러한 좋은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질병과 갖가지 문제들과 부딪히고 있다. 각종 암, 비만, 당뇨병, 원인모를 불치병...우리는 새로운 질병과 싸우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적은 비만. 비만이 여러 다른 병을 불러온다. 그럼 왜 예전에는 없었던 비만이란 문제가 지금은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식생활이 개선되고 생활이 편해지다 보니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서 그런 것이다. 물론 스스로 운동을 하고 신경 써서 관리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같은 경우 비만은 국가적인 문제로 치부 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져서 국민들의 건강이 심히 위협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비만에 있어서 안전지대는 아니다. 갈수록 비만인 사람의 비율이 늘고 있다. 미국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앞에 식량문제에서도 언급했지만 한쪽에서는 굶어 죽고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죽고 정말 아이러니한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환경문제로 인해서도 우리의 건강이 위협 받고 있다. 각종독성물질과 유해물질 등으로 원인모를 병이나 불치병들이 늘어났다. 물론 원인모를 병들이야 그 원인이 환경이라 확정 지을 순 없지만 그래도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최근 들어 아토피 피부병이 많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치료가 굉장히 어렵고 원인이 환경적인 요인이라고 한다. 또 그 외에 우리 몸에 독성이 축적 되서 각종 암이나 광우병 등 생소한 병들이 속속 생겨나기도 한다. 과연 의료기술의 발전이 이모든 병들을 치료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발전할지는 의문이다.6.에너지문제우리가 지금 가장 널리 많이 쓰고 있는 에너지는 화석연료이다. 특히 석유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쓰이고 있으며 자동차 난방 등 당장 없으면 큰 불편이 야기되는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이중에 수력, 풍력, 조력 등은 자연적인 조건을 이용하기 때문에 제한이 크고 수소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가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수소 에너지는 자동차등에 쓰여서 어느 정도 상용화되고 있으며 원자력에너지는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에너지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전체 발전량 중에 약 40%를 차지한다고 하니 상당한 양임이 분명하다. 그리도 생산력이나 비용 효율을 고려할 때 현재로선 대체에너지가 원자력에너지로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하지만 방사능과 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기억한다면 그 무서움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사고의 피해자가 수백만 명에 달했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에너지는 우리가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소모해야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미리 대비해야 할 것 같다. 또다시 에너지 대란이 온다면 엄청나게 큰 혼란이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7.세계화문제교통, 통신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지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면 서계가 하나가 되어가는 이러한 현상이 과연 좋기만 한 것 일까? 물론세계화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땐 마치 유행처럼 그 말이 퍼져나갔다. 세계화의 장점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화와 각종 통합, 단일화 등의 폐해가 들어나고 있다. 세계화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통합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문제점을 가지고 온다. 치열한 경쟁으로 낙오자를 탄생시키며 그 낙오자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경쟁의 결과 극소수의 승리자와 절대다수의 패배자가 생긴다.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승리자는 강대국 패배자는 약소국이 된다. 그 결과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강대국의 입지와 영향력은 더욱 굳건해진다. 바로 경제적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는 예전의 식민지주의나 제국주의와 다를 것 이 없다. 단지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사회과학| 2006.10.25| 7페이지| 1,5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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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사]경제사 사건 정리
    화폐의 등장인간은 필요한 물건을 서로 물물교환 함으로써 경제활동을 했다. 화폐의 등장은 인간에게 더욱 활발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가능케 해주었다. 인간생활의 필요악 이라고 할 수 있는 화폐는 경제활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기능 지불, 교환, 가치저장 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발전해왔다. 최초의 쌀, 모피, 조개 등 다양한 원시 화폐에서 동전과 지폐, 신용카드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해왔다. 원래의 화폐는 경제활동의 편리함을 목적으로 만들어 졌겠지만 시대가 갈수록 돈의 가치가 커져서 이제는 황금만능시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화폐에 의해서 변모한 사회적 역동성을 살펴보자. 중세 봉건 사회에 현물지대에서 화폐지대로 바뀜으로써 그 외의 봉건 부역에서 해방 될 수 있었다. 또 화폐는 상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데 그 도움이 경제리듬을 활발하게 해준다. 그 예로 기원전 7세기경 주화가 사용된 소아시아에서는 교역이 활발했지만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아 화폐의 필요성이 적었던 중국은 화폐경제가 부진했다. 이처럼 돈은 인간의 경제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인간을 지배한다. 역사를 거듭하면서 인간은 돈에 울고 돈에 웃으며 살아왔다. 경제와 사회가 많이 발달한 오늘날 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장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돈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 졌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인신매매를 하는 등 돈은 각종범죄와 죄악의 원인이 되고 있다.이럴 때 일수록 돈의 가치와 사람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하겠다.세계 대공황1929년 10월 24일. ‘암흑의 목요일’을 시작으로 월스트리트의 주가가 폭락하자 미국은 일대 불황을 맞게 된다. 이 공황은 1939년 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파급 범위, 지속기간, 영향 등이 그때까지의 어떤 공황보다도 두드러져서 대공황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뉴딜 정책을 시발점으로 하여 미국의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가 포기되고 정부의 개입이 행하여 졌으며 케인즈의 이론을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미국이 뉴딜정책만으로 대공황의 늪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대공황 이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또다시 전쟁 특수에 의한 경기회복을 이루어 전쟁 중에 실질소득이 거의 2배 증가하였다.대공황은 세계전체를 불황으로 빠뜨린 커다란 사건이었고 자유방임주의에서 케인즈의 경제적 이론을 탄생시켰으며, 경제의 블록화를 초래, 자유무역체제를 중단 시켰으며, 파시즘의 등장을 초래하여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대공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케인즈의 이론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라도 대공황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없다. 하지만 세계는 그러한 큰 고비를 넘기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냈고 새로운 경제론도 등장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를 이끌게 되었다. 흑사병이 더 큰 발전을 위한 강력한 세척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처럼 대공황도 그렇게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일까?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콜럼버스는 1451년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항해사였던 그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항해하면 동아시아로 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마침내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을 설득하여 탐험함대의 자금을 원조 받아 항해를 떠나게 된다. 콜럼버스는 1492년 8월3일 스페인을 출범해서 그 해 10월 12일에 대륙을 발견하였다. 이에 이사벨 여왕은 그를 그가 발견한 대륙의 총독으로 임명하였지만 그는 총독으로서는 실패하였다.콜럼버스가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인가와 그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의 항해가 유럽사상에 혁명적인 일이었으며, 아메리카대륙에도 강력한 영향을 준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영향이 과연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장차이가 있다. 일단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세계의 중심이며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물론 그 역할을 함에 있어서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는 다른 문제이겠지만 아무튼 미국은 현재 세계의 중심이다. 나비한마리가 날개 짓을 해도 기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나비효과란 말이 있듯이 그 거대한 대륙의 발견 여부와 그 시기에 따라서 세계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과는 딴 세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흑사병삼포제의 도입과 농기구의 개량을 통한 농경 기술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증가로 인한 식량의 증가와 경제의 활성화로 10세기 이후부터 14세기 중반까지 유럽인구는 상당히 증가한다. 하지만 흑사병은 이러한 유럽인구 증가의 맥을 끊고 전체 인구의 1/3의 감소라는 엄청난 타격을 입힌다. 물론 이미 흉작과 기근이 반복되어 질병의 가능성이 열려있었지만 흑사병이 남기고 간 흔적은 너무나 처참했다. 유럽에서는 11세기 이후에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목초지나 초원을 경지로 변경하여 식량 생산에 치중했다. 이로 인하여 목초지는 감소하고 결국 퇴비를 제공하는 가축은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영양 섭취의 부실함과 농업 생산성의 하락을 초래 하였다. 경지 면적은 늘어났어도 식량난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인구의 증가로 임금은 하락하고 곡가는 상승하여 부농들의 부는 더욱 커져갔고 하층민의 삶은 더욱 비참해져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인들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모습에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독 유태인들은 흑사병에 비교적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유태인들의 생활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태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성경에 나오는 대로 정결케 하는 예법에 따라 손과 발을 자주 씻어 예방력을 높였으며, 전염병이나 나병환자들은 무조건적으로 격리함으로써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흑사병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유태인에 대한 질투심과 증오로 표출했다. 그래서 그들을 학살하면서 발생했다. 이 결과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석유에 기간산업을 의존하고 있던 서방국가들은 큰 위기를 겪게 된다. 거의 모든 제품의 생산에는 석유가 직,간접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제품가격 상승으로 인한 세계적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야기되었다. 아랍은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기 위해 친이스라엘적인 태도를 취하는 국가에겐 보복적인 조치를 취했으면 그 결과 외교적으로 사방국가들로 하여금 친이스라엘의 태도를 버리고 친아랍의 태도를 가지게 하였다. 또 석유파동 전에 석유메이저가 가지고 있던 국제원유가격 결정권을 석유수출기구가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고 자원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계기도 되었다.그리고 1978년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8년 12월 17일 석유수출기구는 원유가격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고 이것이 2차 석유파동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란이 국내의 정치덕 경제적 이유로 석유의 수출을 중단했고 이에 세계는 1차 석유파동과 마찬가지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1차와 2차 석유파동에는 차이점이 있는데 첫 번째가 1차 석유파동은 단 두 차례의 산유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원유가가 3개월 동안 4배나 인상된 매우 급진적인 인상이었는데 반해, 2차 석유파동은 원유가가 현물시장의 동향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2년에 걸쳐서 유가인상이 점진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은 석유파동이 산유국들에게 끼친 영향인데 1차 석유파동은 산유국들은 석유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줬지만 2차 석유파동은 산유국들에게 그리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세계경기의 침체로 산유국들은 기대한 만큼의 이득을 보지 못했으며 석유수입국들은 비석유수출기구 국가로 수입처를 옮기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산유국의 횡포에 석유수입국들도 대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2차 석유파동은 석유수출기구 스스로 전성기를 끝낸 셈이 된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1차 석유파동보다 2차 석유파동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나뉘어 싸웠던 곡물법 논쟁이 종식되고 곡물의 자유로운 수입을 통하여 아일랜드의 기근을 해소해 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일랜드 인들은 영국으로 이주해 값싼 임금에 일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인들은 이러한 아일랜드 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인지 지금까지도 아일랜드는 영국에 대한 저항운동을 계속하고 있다.멜서스의 극심한 식량난 예언은 어떤면으론 맞고 어떤면에서는 틀리다고 할수 있겠다.식량이 풍족한 지금시대에도 지구반대편에서는 여전히 기근에 시달리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멜서스가 지적한 요인이 아니라 부의 지역적 불균형과 정치적 이유일 뿐이지 결과는 똑같다고 할 수 있다.9.11테러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를 이용한 동시다발적 자살테러사건이 발생한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다. 미국의 자존심이 일거에 무너진 것은 둘째 치고, 이 세기의 대폭발 테러로 인해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세계경제역시 이 동시 다발 테러 앞에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국제금리가 단숨에 하락하고, 세계 증권시장이 흔들렸다. 미국은 사건 직후 일주일간 증권시장을 열지도 못하였으며, 미국을 오가는 모든 국제 항공선도 차단되었다.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일컬어 '제2의 진주만 공격'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미국 건국 이래 본토의 중심부가 외부의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전원 사망, 워싱턴 국방부 청사 사망 또는 실종 125명, 세계무역센터 사망 또는 실종 2,500~3,000명 등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명 피해만도 2,800~3,500명에 달한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
    경영/경제| 2006.07.03| 10페이지| 2,000원| 조회(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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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맥주의 기원,발생,역사,독일맥주 평가A+최고예요
    독일맥주맥주의 기원과 발전최초의 맥주맥주의 발전독일맥주와 맥주산업의 특징독일맥주의 배경독일 맥주산업의 특징독일맥주의 특징독일인들의 맥주사랑독일의 맥주축제독일맥주의 종류지금의 독일맥주우리나라의 독일맥주지금의 독일맥주의 기원과 발전최초의 맥주맥주가 곡물을 원료로 한다는 점에서 맥주의 기원은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경시대부터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BC 4000년경에 수메르(Sumer)인 에 의해 맥주가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그 뒤 보리의 재배가 이집트로 전해져 이집트 제4왕조 때부터 맥주를 제조하였다고 하며, 그 방법은 그리스·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져 두줄보리의 주산지인 독일 및 영국에서 발전·성행하였다. 현재 쓰고 있는 맥주효모균의 학명은 로마시대에 맥주를 세레비시아 (Cerevisia)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맥주 특유의 쌉쌀한 향을 내는 ‘홉’은 보편화되지 않았고, ‘효모’도 균주를 가지고 배양한 것이 아니라 포도주처럼 대기 속의 효모균이 자연스럽게 발효를 하도록 한 것 이었다.맥주의 발전맥주에 홉을 첨가한 것은 10세기경부터이며, 독일의 바이스비어(Weissbier)는 1541년 뉘른베르크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영국의 에일(ale)과 포터(porter)는 8세기경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당시의 맥주는 모두 상면발효[上面醱酵]방식으로 만들었다. 상면발효는 효모가 맥아즙을 발효시키면서 발효통 위로 둥둥 뜨는 것.(우리나라의 막걸리 양조법과 비슷하다.) 상면발효는 상온에서 일어난다. 반대로 아래로 가라앉는 하면발효[下面醱酵]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냉각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19세기 이전까지는 냉각 기술이 없었다. 바이스비어나 알트, 쾰쉬, 에일, 포터 등의 맥주는 모두 상면발효 방식을 사용했다. 상면발효 맥주는 대부분 어둡고 탁한 것이 특징. 바이스비어라는 이름도 다른 맥주들이 어둡고 탁한데 비해 유일하게 흰색이 난다고 해서 붙여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해서 맥주를 많이 마시게 된 것이다.독일 맥주산업의 특징독일 맥주산업의 특징하면 대량생산보다는 각 지역마다 특색을 가지고 소규모로 제조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제일 시장 점유율이 높은 회사가 krombacher인데 이 회사의 점유율조차 10%를 넘지 못한다. 그만큼 작은 제각각 지역마다 특색을 가진 작은 회사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독일 양조업에는 38000명이 종사하는데 이는 한 회사당 29명에 달하는 것으로 규모가 작음을 알 수 있다.독일맥주의 특징가장 큰 독일맥주의 특징은 한마디로 순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맥주의 순수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Reinheitsgebot 라고 하는 특수한 법이다.Reinheitsgebot (독일맥주순수령))1516년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가 맥주 양조업을 장악하고 궁정 양조장인 '호프 브로이 하우스'를 개설하면서 바이에른 맥주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린 법. 이법은 가장 오래된 식품법인 동시에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법.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맥주 제조법에 따르면 맥주의 성분은 호프, 보리(맥아), 물 등 3가지에 한정되며 다른 어떤 물질도 첨가돼서는 안 된다. (이 법령의 공포 당시에는 발효에 필요한 효모의 사용은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효모사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추가로 당시에 사람들이 몰랐던 원료인 효모가 추가되어 현재는 호프, 보리(맥아), 물, 효모 이렇게 4가지 성분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말로는 청결규정 정도가 되겠지만 단순한 식품관리규정이라기 보다는 넓은 의미이고 독일 식품전반에 이러한 규정들이 적용됨. 따라서 독일 내에서는 위의 4가지 외에 다른 성분이 포함되면 '맥주'란 명칭을 쓸 수 없다. 독일은 지금도 이법을 엄격히 지키고 있으며, Braumeister (브라우마이스터) 라고 하는 맥주양조기술자가 있고 공대에 맥주양조학과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사람 중에도 5명의 Braumeister가 존재한다고 한다.독일인들의 맥주사랑독일에는‘맥 auch bleiben.)독일인들의 자국 맥주사랑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로 이번월드컵과 맥주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세계최대의 맥주회사인 안호이저 부시(버드와이저)가 독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다음은 관련 기사이다.)버드와이저를 생산하는 안호이저 부시가 독일 월드컵 기간 중 독점적 판매권을 확보하고도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인들이 버드와이저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독일에서는 버드와이저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 안호이저 부시는 월드컵 기간 중 홍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고민을 해 왔다풍부한 향을 가진 손수 제작된 맥주를 선호하는 독일인들에게 가볍고 대량 생산되는데다 농도가 묽은 버드와이저는 인기가 없다.버드와이저 안티 사이트인 버드아웃(BudOut.de)를 개설한 요하네스 슈니터는 "우리의 월드컵에서 버드가 팔리기를 원치 않는다."며 "나는 반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버드가 최악의 맥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버드와이저라는 이름의 사용권한도 문제다.체코 국영 맥주회사 부데조비키 부드바와의 오랜 법정 공방 끝에 안호이저 부시는 독일에서 버드와이저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 부데조비키는 부드바이스(영어식 발음으로 버드와이저)의 이름이다. 버드와이저의 약칭인 '버드' 역시 독일 최고의 인기 맥주인 비트부르거가 비트로 불리고 있어 독일 법원이 비트와 버드가 너무 비슷하다며 버드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안호이저 부시는 버드와이저를 독일에서는 안호이저 부시 버드라는 복잡한 이름을 판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호이저 부시는 독일 맥주 회사와 사상 유례가 없는 맥주 외교를 벌였다. 안호이저 부시의 글로벌 미디어 스포츠 마케팅 담당 부사장인 토니 폰투로는 자사가 갖고 있는 독점적 판매권을 포기하고 비트부르거 측에 월드컵 기간 중 경기장 및 홍보 이벤트에서 함께 맥주를 판매할 것을 제안했다.대신 안호이저 부시는 경기장 광고판에 버드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구졌지만 축제가 열리는 곳마다 참가 회사의 맥주 통을 싣고 가는 마차 행렬과, 마을마다의 고유 의상을 볼 수 있는 것,뮌헨 맥주 회사들이 지은 저마다의 특징 있는 맥주홀에서 Oktoberfest를 위해 전세계에서 관광 온 수 많은 맥주 애호가들이 맥주와 색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독일민속축제 Oktoberfest에서만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매해 축제 때마다 독일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서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다.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가 세운 극장에서부터 뮌헨 시청 앞 광장에 걸쳐 있는 100여 개의 마을과 각종 직능단체가 왕, 왕비, 귀족, 농부, 광대 등으로 분장하고 시내를 행진한다. 동시에 시내 광장에서 뮌헨의 6대 맥주회사가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막술집을 열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 뮌헨 시장이 첫 잔을 드는 것으로 축제의 개막을 선언한다. 이후 16일 동안 맥주를 마시고 즐기면서 한바탕 맥주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1999년의 경우 전 세계에서 680만 명이 축제에 참가해 600만ℓ의 맥주와 63만 마리의 닭, 79마리의 소가 소비되었고, 1,000개가 넘는 독일의 맥주회사가 참가하였다. 이후 참가자 수가 늘어나 2000년에는 700만 명을 넘어섰고, 갈수록 그 수가 더욱 늘어나고 있는데, 축제 수익만도 30억 마르크(약 1650억 원)를 넘어선다. 국가적으로도 괜찮은 관광수입이다.독일맥주의 종류맥주는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의 위치에 따라서 크게 상면발효맥주와 하면발효맥주로 나뉘고, 다시 알코올 함량이나 양조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나뉘어 진다.독일은 영국의 일부 회사를 제외한 전 세계 유명 맥주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른 바 '하면발효' 맥주의 고향이다. 하면발효란 저온에서 발효시킨 뒤 효모가 가라앉는 맥주를이르는 용어. 실온에서 발효시켜 효모가 뜨는 '상면발효'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5~10도로 비교적 낮고 부드러운 맛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수출하여 export라는 명칭이 붙었다.HELLES LAGERBIER하면 발효 맥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며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라거 타입의 맥주다. 알코올도수는 4.5-5.5%이며 홉의 쌉쌀함보다 맥아 향이 강조된 맥주이다. 우리나라에서 양산되는 맥주, 버드와이저 등이 여기에 속한다.PILS(ENER)독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맥주로서 Helles Lagerbier보다 홉의 쌉쌀한 맛과 향이 더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Helles Lagerbier와 비슷하며,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깔끔한 뒷맛을 느낄 수 있다.SCHWARZBIER볶은 맥아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흑(Schwarz)맥주다. 워낙 다양해서 맛의 특징을 꼬집어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보편적으로 약간의 캬라멜 향을 가지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약 5%.상면발효맥주맥주를 발효할 때 상온에서 발효하는 효모를 사용하는 방법. 전통적으로 영국에서 이 공법을 계승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특정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맥주는 여전히 이 방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성이 강하며 지역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상온에서 발효하는 효모는 활성이 좋고 발효 때 나오는 대사산물로 특유의 향을 생산하여, 맥주의 맛과 향을 규정짓는 핵심 요소도 이 효모와 대사산물이다.ALT(BIER)뒤셀도르프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된 이 맥주는 오랜 역사를 지녀 Alt(old) Bier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상면발효 맥주라 할 수 있다. 필스너비어보다는 덜 하지만 쌉쌀한 맛이 효모에서 나온 향과 조화를 이루며. 색깔은 약간 어둡고 알코올도수는 약 4.5-4.8%.BERLINER WEISSE수도 베를린과 그 주변지역에서 주로 소비되는 이 맥주는 약간 탁한 색을 띄며 상쾌한 맛과 함께 신맛이 특징. 약 2.8%의 알코올을 함유하며 보리맥아와 더불어 밀맥아를 섞어 제조되었다. 주로 산딸기 시럽을 넣어 마시는데, 특히 여름철에 인기가 많다.KOELSCH쾰른 지방에서 생산되는 이 맥주는 이름 자체가
    사회과학| 2006.07.03| 12페이지| 2,000원| 조회(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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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퇴계이황 평가B괜찮아요
    ◐ 목 차 ◐Ⅰ. 서론Ⅱ. 退溪 李滉의 삶Ⅲ. 學文과 그 思想1. 교육론2. 정치론3. 수양론4. 심성론(1) 이기론(2) 심성론(3) 사단칠정론Ⅳ. 退溪 學文과 비교 學文1. 퇴계와 율곡의 비교2. 퇴계와 일본 유학Ⅴ. 결론: 퇴계 사상의 현대적 의의서론동양사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근대화의 신기원을 이루는데 바탕이 된 서양사상에 밀려 세상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각종 현대 문명의 폐해가 만연하면서 세간의 관심은 동양 사상 쪽으로 쏠리고 있다. 특히 아시아지역의 눈부신 성장은 오랜 기간을 두고 현대화를 이룩한 서양인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유학에의 관심이다. 그들은 동양-특히 동아시아-에서의 급격한 발전의 사상적 배경을 유학사상에 두고, 이들의 생활의 사상적 근간인 유학을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유학을 서양인들의 ‘청교도 윤리’에 비견되고 ‘신자유주의’라 불릴 만큼 대단한 관심과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많은 儒學열풍이 불고 있다. 그중 퇴계는 아래의 말처럼 그 업적에 있어 매우 커다란 평가를 받고 있다."퇴계는 성리학을 완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학문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퇴계의 가장 큰 업적은 진정한 인간이 되는 법에 대한 성찰을 제공했다는 것이다"뚜 웨이밍( 美 하바드대 옌칭 연구소장)또한 일본에서는 일본 근대화에 큰 몫을 한 퇴계 사상을 재평가하고 이어 나가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퇴계 선생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다.이렇듯 많은 이들의 관심사인 퇴계란 인물이 어떠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퇴계의 학문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과 함께, 퇴계, 율곡을 함께 비교해보고, 퇴계의 학문이 일본 학문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Ready Go~!!Ⅱ. 退溪 李滉의 삶1501년 11월 25일 연산군 7년 (출생)예안현 온계리 (현재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에서 진사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남1502년 연산군 8는 없지만, 거기에는 적어도 평민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사림주의는 귀족주의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논의될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평민을 주체로 하는 민주주의와 병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림주의와 민주주의를 직결시키는 것은 다소 비약이다. 사림주의에는 평민에 대한 배려가 내포되어 있지만 평민의 복리를 직접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사림주의는 다중을 내세웠지만 결코 평민을 정치주체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사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본주의 였던 것이다.② 훈척정치에 대한 비판이 주된 초점이었다는 사실에 상대적으로 사림주의의 이면은 군주주의였다. 사림주의는 군주에게 지존의 권위를 부여한다. 훈척이 누리는 특권은 군주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군주지존의 명제는 군주가 정당할 경우에만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군주는 정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군주지존의 명제는 의미가 제한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황을 포함한 사림이 정치사상이 군주주의를 조금이라도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역시 군주는 지존이었다. 사림주의가 군주주의와 동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훈척세력을 첫째의 정적으로 삼는 한편 스스로를 평민과 구별시켰던 사림의 속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2) 道學主義① 사림주의가 훈척정권에 대한 정치적 투쟁을 의미한다면 도학주의는 사림의 자기 확립을 위한 사상투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황의 정치사상에서 상대적으로 돗보이는 것은 후자의 측면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이황은 사림의 세계에서 정치투쟁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황에게 관직의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나 이황 스스로가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도학에서 進退(진퇴)는 핵심적인 문제로서 현실과 학문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반영한다. 도학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학문의 책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상적인 대동지치의 왕도론을 유지한다.② 이황은 또한 爲己之學(위기지학)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 지식과 덕행을 추구하는 데 목적을 둔다고 하였다. 위기고 하는데, 그는 후일 이 ≪심경≫에 대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나는 심경을 얻은 뒤로 비로소 심학의 근원과 심법의 정밀하고 미묘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평생에 이 책을 믿기를 신명(神明)과 같이 하였고, 이 책을 공경하기를 엄한 아버지같이 하였다. ’문인 김성일(金誠一)의 기록에 따르면, 1561년 김성일이 스승을 모시고 있을 때 이황은 새벽마다 ≪심경부주≫를 한 차례 독송하였다고 한다. 이황은 1566년 ≪심경후론(心經後論)≫을 지어서 자신이 ≪심경≫을 사서나 ≪근사록≫ 못지않게 존중함을 밝히고 ≪소학≫, ≪근사록≫, ≪심경≫ 가운데 초학자가 처음 공부하는 자리에서는 ≪심경≫보다도 더 절실한 것은 없다고 하면서 세상을 떠나니 몇 달 전까지도 계속 제자들에게 ≪심경≫을 강의하였다.이황은 마음의 다양한 양상과 경(經)을 통해 마음을 주재하는 수양론적 심학의 정밀한 검토를 하면서, 동시에 그 성리학적 근거로서 체용론(體用論) 및 성품과 감정의 구조를 통해 심(心) 개념을 확고하게 정립해 갔다. 그는 ‘심무체용설(心無體用設)’을 비판함으로써 마음(心)에 체(體), 용(用)이 갖추어 있는 ‘성리학의 심학’과 마음에 체만 있고 용이 결여된 ‘선학(禪學)의 심학’을 구분하고 있다. 먼저 이동(李?), 주희는 정좌(靜坐)를 심학의 본원으로 삼았지만 선학이 아님을 지적함으로써 정좌를 통해 선학으로 빠진 진헌장이나, 선학과 비슷하면서 선학이 아닌 왕수인 등의 입장과 명확히 구별하였다. 이황이 심경을 신명처럼 공경하고 부모처럼 존중한다고 하였던 것은 심경을 통해 선현의 심법이 집성된 수양론적 심학의 기초를 확보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황은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통해 성리학의 우주론적 근원으로부터 학문방법과 절차의 문제를 거쳐 마음의 개념과 수양방법을 묶어서 하나의 우주론과 수양론을 결합한 도학, 곧 성학(聖學)의 체계를 세웠는데, 이 체계의 핵심과 결론을 이루는 것은 수양론적 심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제 6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는 원나라때선일 따름이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므로 ?측은함은 기이요 측은하는 所以는 理이라?한 데 대해서는 이굉중도 이미 그 倒著됨을 생각한 바 있지만 퇴계 역시 ?측은함을 기이라?하면 그것은 理의 界分을 侵過한 것이라고 한다.그런데 이굉중의 문목에 보면 이와 기의 관계를 人과 馬의 관계와 같이 비유하는데 이것은 주자 역시 人乘馬의 비유로써 理乘氣를 해명한 바 있으므로 별로 신기한 것은 없다. 그러나 火(불)와 薪(섶)의 관계로써 理와 氣를 비유한 것이 있는데 매우 재미있는 예증이라 생각된다. 火는 본래 形影이 없는 것이니, 薪을 빌려서 形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므로 明(밝음)은 바로 火일지라도 그 明한 所以는 薪이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말하는 자 모두가 火라 하고 薪이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빌린 것은 薪일지라도 그 타게 하는 所以能은 火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측은함은 理의 發이지만 그 發하게 하는 所以는 氣이라?한다면 가하지만, 반대로 ?측은함은 氣이요 측은케 하는 所以는 理이라?한다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퇴계의 해답은 이러하다. 즉 굉중이 소이능을 薪에로 돌린 것이 잘못이라 한다. 이 말은 소이능을 火에로 귀착시켜야 可하다는 것이다. 이에 퇴계가 소이능을 理로 보고 理之爲를 주장하면서 ?理發爲四端 所資以發者氣耳?라 한 것임을 알겠다. 그러면 이기는 不雜不離로서 氣는 다만 所資로서 發하는 것일 뿐으로 隨之에 머물고 그 능히 사단케 하는 소이 즉 소이능은 실지로는 理之爲로서 理主라는 것이다. 여기에 理主氣資의 사상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퇴계의 이른바 所資의 資는 바탕(材) 主材의 뜻이라기보다는 藉(빌릴 자) 藉助 또는 託所의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고, 소이나 소이능은 주 또는 주재의 뜻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퇴계의 이른바 소이는 다만 원인, 원리 또는 법칙이란 형식적(formal)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훨씬 근본적으로 遡源하여 極本窮源의 樞紐根?에 까지 이른것으로서 드디어 上帝로까지 야 한다. 왜냐하면 그도 기대승이 제기한 四端과 七情의 개념적 범주를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四端과 七情을 대거할 수 있느냐, 곧 상대화시켜서 말할 수 있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을 보는 이황의 시각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이황의 인간관은 기본적으로 맹자의 성선설을 따르고 있다. 그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 현상이 비록 본성에 의해 선을 보장받고 있지만 그 중의 일부분, 곧 情은 위태로운 것으로 보았다. 七情은 형기에 의해 쉽게 악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가 수양공부로 지경을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 활동 속에 선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고 보고 이들을 구분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四端은 순선무악한 것이므로 욕구와는 성질이 다른 반면, 七情은 유선유악이므로 절제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그가 四端과 七情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었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즉 완전무결한 本然之性이 그대로 발현되는 사단은 '완전한 것'이고 형기에 가려져 선이 보장되지 않는 七情은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완전한 四端과 불완전한 七情이 동일한 발생 내원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理와 氣에 분속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리하여 理氣二元論을 주장하였던것이다. 결국 기대승에게는 四端이 七情이라는 상위 범주 속에 포함되었던 구조가 이황에게서는 완전과 불완전으로 서로 등치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도덕성을 욕구 속에 매몰되어 있는 미약한 존재로 파악하지 않으려는 이황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그가 "理는 사물에 명령하기만 하고 명령을 받지 않는다" 고 하여 理의 극존무대성을 강조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둘째, 즉 주희가 理의 작용성을 인정했다는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는 논쟁 중에 주희의 말---四端과 七情을 각각 理發과 氣發로 보는---을 직접 인용하여 그 근거를 밝히고 있지만 문제는 그와 상반되는 주희의 입장---리의 작용성을 인정하지
    인문/어학| 2002.12.19| 33페이지| 1,500원| 조회(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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