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를 쓰기위해 어떤 DVD를 살까? 고민하던 중에, 흔하게 공연되지 않고, 좋아하는 아리아 곡이 나오는 ‘마술피리’를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하게 되었다.‘Johnathan Miller’ 연출, 프란츠 벨저-뫼스트 주연의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우리나라 오페라와는 비교도 안돼는 무대, 의상, 뛰어난 가수들... 사실 부족한 점을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DVD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보니 이런 부분은 이러했으면 좋았을 걸, 저 장면은 왜 저렇게 했을까 하는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무대를 보는 눈도 많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다 각도에서 느낀 것 들을 하나하나 적어보고자 한다.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면서 그렇게 이 공연 중 ‘마술피리 1막’을 이야기 해보고자한다.*서곡이 공연은 특이하게도 서곡 시작부터 막이 올라 있었다. 조명이 무대 전체를 환하게 비춘 가운데 타미노 왕자와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타미노 왕자가 이층의 층으로 된 벽으로 꾸며진 도서관 배경의 무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그의 옆에 있는 한 사람은 그에게 책을 골라주기도 하고, 벽에 적혀있는 이상한 상형 문자를 설명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무대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퇴장했다가 타미노 왕자만 무대에 나왔을 때는 무대의 조명이 어둡게 깔린다. 타미노 왕자는 책을 보다 졸게 된다.여기까지가 서곡인데 우선 도서관 배경이 무척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연출자가 굳이 배경을 도서관적 느낌으로 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난 그게 ‘정의 실현’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앞으로도 쭉 무대배경이 도서관 배경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전반적인 공연 배경이 된다. 오페라의 마지막과도 일맥상통하는 ‘선의 실현’, ‘정의의 승리’와 같은 이미지와 일맥상통하게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 배경을 전반적 배경으로 함으로, 극의 장소와 실제 무대 사이의 거리감은 크게 느껴졌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전환을 막 내림 없이 하였는데(물론 오픈한 상태에서의 작은 장면 전환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큰 변화 없는 무대를 2시간 넘게 보니 다소 지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막 전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제작비 때문에 라고 하더라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전반적으로 무대, 의상, 등이 사실적이기 보단 상징적이고 비사실적이었다. 비사실적 흐름이 깨어짐 없이 끝까지 간점은 훌륭하다 생각된다. 서곡이 흐를 동안 처음엔 조명이 밝았다가 어두워지는데 이것은 밝게 시작해서 다음에 나오는 ‘뱀’을 만나는 장면 전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제 1막 1곡원래 1막 처음 장면은 고대 이집트 바위산이 있는 풍경의 숲이 배경이며 사냥 갔다가 화살이 떨어져 큰 뱀에게 쫓기는 왕자 타미노가 살려달라고 외치면서 황급히 무대에 들어와 스러지고, 쫓아온 뱀은 베일을 쓴 세 궁전 시녀들의 창에 찔려 죽는 장면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숲이 아닌 이집트를 생각나게 하는 피라미드 느낌의 무대에서 책을 보다 잠든 타미노 앞에, 뱀을 몸에 감은 가슴을 다 드러내고 얇은 천을 몸에 걸친 여자가 등장한다. 실제 살아있는 뱀을 가지고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 같은데, 이부분이 많이 미흡해 보였다. 여자의 연기가 조금 어색해 보이기두 했지만, 분장만 조금 잘했으면 더 느낌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부라리는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급박해 하는 타미노의 모습이 이상해 보일 만큼 강한 느낌이 없었다. 그것을 메이컵으로 표현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크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을 뿐더러 입술을 빨갛게 했는데 이것이 막 시작인 중요한 장면에 큰 느낌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어둡고, 습한 느낌, 사악한 느낌이 들게 어두운 진한 메이크업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세 시녀가 뱀을 든 여자를 물리치는 장면이 좀 안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뱀을 든 한 여자가 무대를 왔다 갔다 하다 그냥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세 시녀의 복장 또한 밤의 여왕 시녀의 느낌에 맞게 어두운 색 인건 좋은데 시녀 복장치고는 많이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1막 제2곡 아리아.타미노 왕자가 깨어나면서 다시 밝은 조명으로 바뀐다. 그리고 새 사냥꾼인 파파게노가 등장한다. 새 2마리가 든 새장이 소품으로 나오고, 나중에 세 명의 밤의 여왕의 시녀들에게 거짓말한 벌로 돌, 물을 받고, 입에 자물쇠가 채워진다. 여기서 의상과 소품을 눈여겨 보자. 먼저 소품을 보면, 전혀 숲의 분위기가 나지 않는 무대에서 돌, 물, 새가 든 새장이 무척이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 숲의 분위기를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녀들이 파파게노의 가방과 짐을 챙겨서 퇴장하는데 이 부분이 많이 거슬렸다. 빠른 장면 전환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주섬주섬 소품을 챙겨서 퇴장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하지만 입을 채울 수 있는 자물쇠 소품은 무척이나 기발하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다음으로 타미노 왕자와 파파게노 의상을 보자. 흰바지에 검은색에 칼라부분만 붉게 포인트를 준 타미노 왕자 의상이 왕자 의상치곤 조금 심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하필 어둠의 색인 검은색 의상을 입었을까? 파미나 공주의 의상처럼 흰색(밝은 색)계열을 입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타미노 왕자는 빛의 이미지인데 밤의 이미지인 검은색 옷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파파게노의 의상이 왠지 타미노 의상과 느낌이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자라스트로의 궁전에 공주를 구하기 위해 가는 타미노를 보필하는 종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통일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점에선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1막 제 3곡 아리아타미노 왕자가 파미나 공주의 초상화를 건네받고 사랑에 빠져 노래를 부른다. 여기선 조명을 눈여겨 보자. 좀 전에 장면에 세 시녀가 등장했다. 보통 밤의 여왕의 시녀들이 등장하면 조명이 어두워지며 밤의 느낌을 나타낸다. 타미노 왕자가 사랑을 얘기하자 다시 조명이 환해진다.다시 시녀들이 등장하자 점점 조명이 어두어진다.*1막 제 4곡 제치타티브와 아리아밤의 여왕이 등장한다. 천둥소리와 함께 조명이 깜깜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두워지며 밤의 여왕이 등장한다. 밤의 여왕이 등장하자 조명이 밤의 여왕에 집중된다. 밤의 여왕 등장을 조명이 효과적으로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조명만큼 밤의 여왕의 모습이 뒷받침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으며, 밤의 여왕 이미지에 맞지 않게 너무 온화한 모습이었다. 차갑고 악한 밤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밤의 여왕을 보는 관점이 다양하다고 들었지만, 나는 밤의 여왕은 밤의 여왕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하고 조금 짙은 메이컵으로 차갑고 샤프한 밤의 여왕 이미지를 나타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의상 또한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공연에서 전반적으로 밤의 여왕 이미지를 ‘딸을 빼앗긴 어머니’의 이미지만 느끼게끔 한 것 같다. 연출가의 의도 일진 모르나, 나라면 밤의 여왕을 좀 강하고 차가운 여자로 표현할 것 같다. 여왕 등장 전 천둥소리도 더 우렁차게 컸으면 좋았을 것 같다.여왕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시종들은 모두 검은 계통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여왕을 보필하는 대머리의 시종이 노래하는 여왕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는데, 이 장면은 무슨 의도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계속 여왕에게 얘기하는지. 시종들 중에는 황금색 해골 모양 소품을 들고 있는 역시 대머리인 시종이 둘 있었다. 대머리 분장이 좀 차가운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제1막 5곡 5중창여왕의 퇴장과 함께 조명이 확 밝아져 온다. 전과는 확실하게 대비가 되었다.입에 자물쇠가 채워진 파파게노가 등장한다. 여기서 소품으로 마술피리와 종이 나온다. 마술피리는 단소 느낌의 황토색 피리인데 마술 피리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해 보였다. 어떤 특별한 장식 없이 그냥 피리 같은 느낌. 자연의 느낌이 나는 피리가 무대 배경과 밤의 느낌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엽을 감으면 종소리가 나는 검은 통이 오히려 마술 종 같았다.세 명의 길 안내자가 길을 안내할 것이라는 시녀들의 설명과 함께 이층에 3명의 어린이가 등장한다. 이때 조명을 환하게 비춰서 안내자의 모습이 훤히 보이게끔 했다.*제1막 6곡 3중창무대의 변화 없이 파미나 공주와 모나스타토스의 등장으로 장소가 자야스트로 성의 어느 방으로 바뀜을 알렸다. 어두운 조명이 깔리고, 피라미드 쪽만 약한 조명이 들어온 상태에서 파미나 공주가 등장한다. 검게 분장한 모나스타토스, 그의 의상과 얼굴색이 흰 드레스를 입은 공주와 대비되어 공주를 괴롭히는 모습을 더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했다.
We all know that smoking causes thousands of evils. There is no one who insists that it is health for us. Even though we know it, we begin to smoke and can not stop it easily. Why? In some cases, it is because of peer pressure or curiousness, especially peer pressure. The people who started to smoke in their middle school or high school say that smoking together make them socially connected. According to statistics, the teenagers who do not smoke have three best friends ; they are non-smokers. On the contrary, smokers have 3 closest smoking friends. Many habitual smokers try to stop smoking nowadays, but most of them fail to quit.(후략)...
6월4일 계명대학교 아담스 채플관에서 ‘해설이 있는 김 돈 합창 지휘연주’가 있었다. 레퀴엠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라 주저 없이 가게 되었다. 다른 연주회 랑은 조금 다르게, 중간 중간에 먼저 곡에 대한 설명을 하고 연주를 들어 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식의 연주는 거의 처음이었는데 지휘자 선생님의 해설을 먼저 들어 봄으로 곡에 대한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몰랐던 ‘모차르트 레퀴엠’과 관련된 부분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출연진들과 합창단 모두가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지휘자 선생님 및 조정래 선생님을 비롯하여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같은 과 선배, 동기, 후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처음에 김 돈 지휘자 선생님이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하게 된 동기와 곡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다.레퀴엠이라고 하면 죽은 자를 위한 카톨릭 미사곡을 말한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영화에서는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의 음모로 위촉된다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여기서 잠깐 레퀴엠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살펴보자. 모차르트 레퀴엠이 작곡된 동기는 모차르트 생애의 마지막 해인 1791년 여름 빈의 폰 발제그-스투파흐 백작의 의뢰를 받아서 작곡하게 된 것이었다. 이 백작은 열렬한 음악애호가이며 스스로 플룻이나 첼로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작곡가로 보이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1791년 2월 14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그의 부인을 위해서 "레퀴엠"을 작곡하여 자작이라고 칭한 다음 이 곡을 봉헌할 생각으로 대리 작곡가로서 모차르트를 택한 것이었다. 모차르트 사후인 1793년 12월 14일에 Wiener-Neustadt에서 직접 악보를 사필하여 자신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하니, 그가 이 곡을 자신이 작곡했노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그러나 곡의 공개 초연은 같은 해 1월 2일 빈에서 판 쉬비텐 남작이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를 위해 마련한 연주회에서 이뤄졌다. 레퀴엠 작곡 당시 이미 병에 시달리고 있던 모차르트는 1791년 여름에 두개의 마지막 오페라와 클라리넷 협주곡, 등 많은 곡에 착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뢰를 받고 곧 작곡에 착수하지는 못했으며, 곡의 작곡은 죽기 직전까지 지속되어 결국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부분은 Introitus 전체, Kyrie의 대부분, Sequentia와 Offertorium의 성악 파트와 저음 파트 그리고 중요한 악기의 선율 뿐 이었다. 특히 Sequentia의 끝 곡인 Lacrimosa는 8째 마디까지만 작곡되어 있었다. 미완성 부분은 맨 먼저엔 모차르트가 높이 평가하던 제자 이블러에게 보필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블러는 Dies Irae와 Confutatis의 오케스트레이션과 Lacrimosa(10 번째 마디까지)를 조금 손댄 뒤 그만 두었고 그 후에 여러 명의 작곡가에게 의뢰되다, 결국 모차르트의 또 다른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맡게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가 죽기 전까지 그와 함께 있었고, 이 곡의 마지막 작곡 방향에 대해서도 지시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Sequentia와 Offertorium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했으며 이어지는 Sanctus, Benedictus, Agnus Dei는 순수히 쥐스마이어에 의해 작곡됐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이 당시 그의 젊은 나이로 미뤄보거나 그가 별 다른 작품을 남긴 일이 없다는 것으로 봤을 때, 이 뒷부분들은 모차르트의 스케치나 모차르트가 생전에 레퀴엠의 작곡을 위해 연주하던 것을 듣고 기억하여 작곡에 이용했으리라는 추측된다. 레퀴엠의 끝곡인 Commnio는 곡의 첫 부분인 Introit와 Kyrie의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모차르트가 제자들에게 지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음을 움직이는 ‘레퀴엠’이 완성되었다.레퀴엠의 텍스트는 죽은 자의 기념일을 위한 미사 전문에 의한 것으로 크게 7파트로 되어있다. 모차르트는 레퀴엠의 텍스트를 하이든의 것을 모델로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할 수있다.첫 번째 시작하는 곡은 Requiem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으로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가사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D단조, Adagio로 천천히 암울하게 흐르는 선율 사이 후에 깊은 사색의 소리가 어어 진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곡이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서주 다음에는 베이스로부터 소프라노까지 "Requiem"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 뒤에 "et lux perpetua" 에서는 말 뜻대로 "끊임없는 빛"처럼 밝아지면서 소프라노 독창으로 이어진다. "Te decet hymnus Deus"라고 시작되는 소프라노의 독창 뒤, 다시 투티를 거쳐서 "Exaudi orationem neam"를 부른 뒤 서서히 종결부로 치닫게 되는 곡이 었다.두번째 곡은 KYRIE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로 D단조, Allegro - Adagio로 가장 짧은 텍스트이지만 그 음악적 효과는 훌륭한 곡이었다. 가사는 "Kyrie eleison과 "Christe eleison"이지만 앞 뒤 곡을 연결시키는 음악적 역할로써는 손색이 없다. 첫 부분부터 매우 독특한 음악적 표현이 많이 나타나며, 알토와 베이스가 각각 복잡하게 서로의 주제를 이야기함으로써 극적 효과가 더 커지는 곡이다.다음으론 연속된 노래들이란 뜻인 SEQUENTIA 6곡이 이어진다.그 첫 번째인 Dies irae(분노의 날 또는 운명의 날)은 매우 격렬한 느낌의 곡이다. D단조 Allegro assai로 이전 곡이 상당히 의미심장한 종결을 맺음으로써 이 곡에선 경외감이나 전율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강렬한 투티와 추진력 있는 템포를 바탕으로 격렬한 감정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특히 소프라노, 알토, 테너의 "Dies irae"와 베이스의 "Quantus tremor" 가 서로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부분은 매우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베이스의 효과는 그 가사처럼 두려움을 느낄 정도이며 마지막까지 극적 효과로 상승된다.2번째 곡 Tuba mirum (이상한 나팔)는 Bb장조, Andante로 앞 곡의 격렬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섬세한 표현이 돋보인다. 베이스 선율이 서로 대화하는 듯 하고 이후에 테너, 알토, 소프라노의 순서로 계속 이어진다. 이 부분이 독창자의 기량을 많이 볼 수 있다.3번째 Rex tremendae (무서운 대왕이여)란 곡은 G단조 포르테로 시작되는 "Rex tremendae"는 그 뜻처럼 앞부분의 "Dies irae"와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이다. 곡 제목처럼 처음 시작되는 부분의 합창은 당연히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salva me"에서는 역시 나를 도와달라는 의미처럼 애절한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특히 합창이 잦아들면서 더욱 간절히 도움을 바라는 심정으로 부르는 부분에서 감정의 정점에 도달한다.4번째 Recordare (기억하소서)는 F장조로 앞 곡의 분위기를 이어받으면서 솔로의 4중창이 나온다. 처음의 "Recordare" 부분과 중간의 "Ingemisco tamquam reus" 그리고 "Preces meae non sunt dignae"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중간부분이 조금 변형되어있는 반면 처음과 마지막은 같은 형식으로, 3부 형식을 이루고 있다.5번째 Confutatis (혼돈)은 A단조, Andante로 남성 합창과 반주로 저주받은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여성 합창이 단순한 반주와 함께 구원을 바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두 가지 모습이 아주 상반된 형태를 나타내지만 다시 전체 합창이 하나로 모인다. 이것은 "Oro supplex et acclinis (엎드려 원합니다)"라는 새로운 합일점을 이루면서 노래한다. 정-반-합의 구조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6번째 곡 Lacrimosa (슬픔의 날)은 D단조로 모차르트 레퀴엠의 애통한 감정의 정점을 이루면서 가장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SEQUENTIA를 종결부분에서 끝맺지 못하고 모차르트가 숨을 거두었다는 곡이다. 비록 쥐스마이어가 보탠 마지막 "Amen"이 이러한 모차르트의 의도에 100%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아주 멋지고 훌륭한 음악이라고 생각된다. 곡의 구조는 무척 단순하지만 그 선율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한 번의 상승 후에 서서히 낮아지는 형태는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 했다. 마지막 "Amen"은 더욱 가슴을 파고드는 감격이 있다. 합창단원들과의 화음도 잘 어울려져서 특히나 멋지게 들렸다.이렇게 6개의 부속가가 끝난 후 OFFERTORY(제헌경, 봉헌송)가 이어진다.첫 곡 Donmine Jesu Christe (주 예수 그리스도)는 G단조 Andante con moto로 "영광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내용과 함께 시작된다. 텍스트의 4번째 줄인, "사자의 입에서 해방 하소서"부터 단순하게 외치는 "de ore leonis"에 대해서 "ne absorbeat (그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는다)"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 후 "주가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와 같이"가 경쾌한 음을 바탕으로 계속 반복되면서 진행되고 있다.
* 목차 *1. 생애2. 철학적 배경3. 철학적 사상(1)비판 철학(2)순수 이성(3)실천 이성의 우위(4)물자체(5)목적없는 합목적성4. 칸트의 미학(1)칸트 미학의 성립 배경(2)칸트 미학의 취미 판단(3)미적 판단(취미 판단)의 4계기(4)칸트 미학의 이율 배반성(5)칸트 미학의 한계성(6)칸트 미학의 영향5. 저서(1)순수이성 비판(2)실천이성 비판(3)판단력 비판6. 레포트를 마치며칸트 Immanuel Kant (1724-1804)계몽주의 사상가.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칸트는 르네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합리론과 프랜시스 베이컨에서 시작된 경험론을 종합했다. 그는 철학적 사유의 새로운 한 시대를 열었다. 인식론, 윤리학, 미학에 걸친 종합적, 체계적인 작업은 뒤에 생겨난 철학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1. 생애칸트는 1724년 4월 22일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전 생애를 거기에서 보냈다. 칸트의 아버지는 마구상인이었고, 부모 모두 루터교 경건파의 독실한 신자였다. 이 교파는 검소한 내적 삶과 도덕법에 대한 복종을 가르쳤다. 이 교파 목회자의 영향으로 칸트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그는 1740년에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 신학생으로 입학했다. 신학과정을 이수하면서 때때로 설교도 했지만, 주로 흥미를 느낀 것은 수학과 물리학이었다. 합리론 철학을 체계화시킨 크리스티안 볼프를 연구했으며, 동시에 아이작 뉴턴의 과학을 열렬히 신봉했던 어떤 젊은 교수의 도움으로 뉴턴의 저작도 읽기 시작했다.1744년에는 최초의 책을 썼는데, 주제는 운동력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학자의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었지만, 1746년 아버지가 죽고, 대학부속학교에서 조교직을 얻는 데 실패하자 그는 가정교사직을 구해서 9년 동안 일했다. 1755년에 친구의 도움으로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무급 대학강사가 되었다.15년 동안의 강사 시기는 칸트가 강사와 저술가로서 점점 큰 명성을 얻게 되는 시절이었다. 첫 강의는 수학과 물리학에 관한 것이었고, 과받아 발전시키고자 하는 신 칸트학파를 비롯한 일련의 철학을 가리킨다.칸트의 의 철학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하여 있는 아프리오리(선천적)한 인식에 관해, 인간이성이 어떠한 기능과 한계를 가지는가를 확정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칸트는 이 과제를, 한편으로는 유클리드기하학과 뉴턴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수학과 자연 과학을 인간 이성에 의한 아프리오리한 인식이 실제로 존재하는 구체적 실례로 간주하고, 또 한편으로는 서유럽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기초적인 정리와 동시에 수학, 자연과학의 인식의 보편 타당성의 근거를 밝힘으로써 그 한계를 나타낸다는 수법으로 해명하려 했다.그 결과 인식대상인 자연은 인간의 초월론적 주관에 의해 구성된 표상의 총체로서의 에까지 환원된다. 그것을 초월한 에 대해서는, 인간 이성은 그 인식에 궁극의 통일을 가져다 줄 통제적 원리로서, 그것을 간주하는 이상에 적극적 인식으로서의 규정은 가질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그리하여 유일한 필연적 구조를 갖춘 공간으로서의 유클리드공간, 또 뉴턴이 생각하는 유일한 정지좌표계의 절대공간, 절대시간과 주관측의 “나는 생각한다”의 의 통일이 서로 상관적으로 보완단계를 가지는 구조가 상정됨을 부정할 수 없다.비판철학은 고전수학이나 고전물리학을 초월해서는 유효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든가 변증법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사실 신칸트학파의 새로운 비판철학의 활성화 시도와, 나아가서 후설의 초월론적 철학의 재생 시도, 스트로손의 일상언어분석의 입장에서의 칸트의 재해석, 등 많은 형태가 나타났다.(2)순수이성 (reine Vernunft)칸트의 비판철학의 중심개념.경험으로부터 독립하여 어떤 것을 선천적으로 인식하는 인간 정신 능력의 하나이다. 칸트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① 가장 넓은 의미로는 순수한, 즉 경험에서 독립한 선천적 이성 일반을 뜻하며, 선천적인 인식능력인 이론이성과 의지능력으로서의 실천이성을 포함한다.②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천적 인식능력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즉 실천이성과 후천적 감각심이 있었다. 이들은 데카르트의 전통에 따르고 있으나 사실 미학에는 거의 공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바움가르텐에 이르러 데카르트의 철학은 예술분야에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 합리주의자들은 데카르트의 전통을 따라 모든 개념을 “명석, 판명”이라는 두 요소로 평가하였다. 데카르트는 감각기관과 몽상을 철저히 부정하였고, 그러한 이성의 우위로 인해 합리론에서 미학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바움가르텐은 시의 상상력으로도 우리에게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면셔, 미학의 학명을 제시하였다. 바움가르텐은 그동안 너무 좁게 구획된 논리학의 영역이 ‘감성적으로 파악 가능한 대상들’ 과의 연관을 통해 확대되어야 한다는 요청을 제기하였고, 그에 따라 학문의 체계를 논리학과 미학로 나누고 논리학을 명석, 판명한 개념들로 이루어진 고급인식능력에 대한 학으로, 미학은 혼란된 감성적 표상이라는 저급한 인식에 관한 학으로 구분하였다. 따라서 미학의 원래적 의미는 ‘감성적 인식의 학’이며, 저급한 인식의 학문으로써 논리학의 하위체계로 종속되었다.칸트의 미학 이론은 이러한 영국의 경험주의와 독일의 합리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미를 판단하는 취미의 기준을 구하고자 했던 영국의 취미론과는 구별된다.흄과 버크와 같은 그 당시의 철학자들은 취미의 기준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칸트는 그렇게 경험적으로 추출된 기준들이 어떤 것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개인적인 주장에 대한 객관적인 토대를 알 수는 없다는 근거에서 그러한 주장의 적합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그리고 칸트는 바움가르텐을 이어받아 미학을 논리학에 종속시켰던 것을 비판하면서 그 둘은 전혀 다른 영역인 것을 밝히고 미학에 독립된 학문적 체계를 부여했다. 미는 인식이나 욕망과는 다른 능력에 의해 파악되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이다.즉, 칸트는 이성의 원리 하에서 미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하고 그것의 규칙을 과학에로 돌리려는 바움가르텐의 노력을 실패한 혁명이라고 비판하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칸트에 의하면 미적 판단은 논리적 일판단에 있어서의 이 필연성은, 문제되고 있는 그 대상에 대해 모든 사람이 마땅히 동의하고 그것을 아름답다고 언명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취미 판단에 내포된 이 필연성은 만인에게 있는 “공통감 ” 마음의 상태를 전제로 한다.칸트에 의하면 이 공통감이란 인식 자체의 전달 가능성의 필요조건이며, 또한 회의론을 제외한 모든 철학적 탐구에 있어서 전제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공통감의 전제하에서만 우리는 취미 판단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공통감은 일종의 당위를 내포하고 있는 판단의 정당성을 확립하려는 것이며,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판단과 ‘일치할 것’이라고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과 ‘합치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2 ) 보편성취미 판단은 (주관적)보편성을 갖는다.미적 만족, 즉 미의 향수의 동인을 찾아 보편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마음의 어떤 조건에까지 더듬어 올라갈 수 있거나, 그 조건에 근거지울 수 있는 것이라면, 그때 미의 판단에 있어서 보편성에 대한 주장은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칸트에 의하면 그것은 인식과의 어떤 연관을 필요로 한다.모든 이성적 존재는 인식능력을 가지는 바, 이것은 두가지 능력, 즉 구상력과 오성간의 연결성을 필요로 한다. 특정한 인식행위는 특정한 표상과 특정한 개념간의 연결을 포함하며 이것은 앞의 두가지 인식능력들간의 기초적 조화를 전제한다. 이 능력들이 인식의 추구로 향하지 않을 때, 이것들은 감각직관이나 특정한 개념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말하자면 양자간의 조화를 즐기면서 인식을 유희할 수 있다. 이때 인식 일반과 관련 맺고 있는 임의의 표상 속에서 표상력들의 자유로운 유희의 감정이 존재하는 어떤 마음의 상태가 생겨난다. 이 상태에서 마음은 그 두가지 인식능력들의 조화에서 강렬한 쾌나 만족을 얻는다. 이 쾌가 바로 미의 경험이다.그런데 대상이나 대상을 주어지게끔 하는 대상의 표상에 대한 이러한 미적(주관적)인 판정은 대상에 관한 쾌감에 선행하며, 또 두 인식능력의 조화들의 유동에 있어서 성립하는 한갓 형식적 합목적성의 의식이 다름아닌 쾌이다. 이렇게 해서 대상의 형식은 두가지 인식능력의 조화와 선험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조화의 감정이 바로 무관심적 쾌 자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적 쾌는 감각적이지도, 지적이지도 않은 다른 종류의 것으로, 자극과 감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 취미 판단이다. 따라서 단지 형식의 합목적성만을 그 규정근거로서 가지는 취미 판단이 곧 순수한 취미판단이다. 즉 미는 합목적성이 목적의 표상을 떠나서 어떤 대상에 있어서 지각되는 한에 있어서의 그 대상의 합목적성의 형식이다.(4)칸트 미학의 이율배반성논쟁이나 논의는 양자가 모두 판단의 상호 모순이나 대립을 통해 이들 판단을 일치시키려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다. 그러나 논의한다는 것은 규정된 개념에 따라 증명에 의해 이를 이루려고 하고 객관적 개념들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므로 칸트는 “취미에 관해서는 비록 논의할 수는 없지만 논쟁할 수는 있다” 말하고 있다.* 정립 : 취미판단은 개념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념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취미판단에 관해서 논의를 할(증명에 의하여 결정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반정립 : 취미판단은 개념에 근거를 둔 것이다. 왜냐하면 개념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면, 취미판단이 다르다고 할지라고, 이 취미판단에 관해서는 논쟁을 할 (다른 사람들이 이 판단에 필연적으로 찬동할 것을 요구할) 수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 이다.칸트는 이와 같은 이율배반의 해결에 대해 “이러한 종류의 판단에 있어서 객체와 관련지어지는 개념이 미적 판단력의 두가지 격언에 있어서 동일한 의미로 이해되지 않는다” 는 사실을 밝히는 데에서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취미 판단은 하나의 개념에 근거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개념은 그 자체에 있어서 규정될 수도 없으며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개념에 의해서는 객체에 관하여 아무것도 인식될 수 없고 증명될 수 없다. 그러나 취미 판단은 바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