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로서의 이론: 2. 쿤의 패러다임8◎서론『역사를 일화나 연대기 이상의 것을 포함하는 보고로 본다면 그 역사는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상에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에세이의 목적은 연구 활동(과학 활동) 자체에 관한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여 전혀 새로운 과학의 개념을 찾는 데 있다』쿤은 과학사의 의미를 과거의 과학이 오늘날의 학문에 끼친 영구한 공헌에서 찾으려는 대신 과거의 과학이‘그 시대’에 가졌던 역사적 의미를 보여 주는 것으로 파악함으로서 종전의 과학사에 대한 관점―과학사는 사실과 이론과 방법들의 집합―이 설명할 수 없는 과학혁명의 역사적 사례들을‘과학자 집단의 사회적인 요인’으로 설명한다.이러한 과학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말미암는 그의 과학관은 과학의 진보의 혁명적인 성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과학적 진보의 계기가 되는 혁명은 하나의 이론 구조의 포기와 그 자리를 양립 불가능한 다른 이론이 대신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포퍼· 라카토스 - 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의 과학 철학이 과학사에 근거한 비판에 견디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데 있으며 차이점은 쿤이 사회적인 요인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Ⅰ.패러다임과학 형성 이전 단계(전과학;前科學)의 조직화되지 못한 다양한 활동들은 과학자 사회가 하나의‘패러다임’을 받아들이게 되면 체계화되고 조직화된다. 패러다임은 특별한 과학자 사회가 채택한 일반적인 이론적 가정들과 법칙들 그리고 그것들의 적용에 대한 기술들로 구성되어 있다.Ⅱ.정상과학패러다임 내에서의 연구자들은 그 패러다임이 뉴튼 역학이든, 파동 광학이든, 분석화학이든, 그밖에 무엇이든 간에 정상과학을 행하고 있다. 정상 과학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실험의 결과에 의해 나타난, 실재 세계와 관련된 여러 측면들의 형태를 설명하고 조절하려는 시도를 통해 패러다임을 명료화하고 발전시킨다.Ⅲ.위기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들은 불가피하게 난점에 봉착하여 명백한 반증에 직면하게 된다. 만일 이 난점에 속수무책이면 위기의 상태가 도래한다.Ⅳ.과학혁명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고 과학자들이 그 패러다임을 믿고 받아들여 문제를 안고 있던 원래의 패러다임을 버리게 되면 위기는 해결된다. 이 불연속적인 변화가 과학혁명을 구성한다. (Paradigm Shift)Ⅴ.새로운 정상과학해결할 수 없는 난점을 안고 있지 않은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것이 심각한 난점에 봉착하여 새로운 혁명의 결과를 수반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기 이전까지는 새로운 정상 과학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을 이끌게 된다.◎과학혁명의{{{{{구조Ⅰ.패러다임ⅰ.패러다임의 개념※보편적 의미;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인 틀이나개념의 집합체―패러다임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만일 과학사를 통해 패러다임의 성격을 정확하고 엄밀하게 정의하려고하면 곧 패러다임에 속한 작업(정상과학)이 그 정의를 깨뜨리기 때문이다.패러다임은 명시된 규칙과 지시의 형태로 규정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있다. 관습법에서 인정된 하나의 판례처럼 패러다임은 새로운 또는 좀더 그럴 듯한 조건하에서 명료화하고 구체화해야 할 대상이다. (사실, 쿤에게 있어 과학이란 큰 틀, 즉 대강의 패러다임을 채우는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론적 실험적 과제 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 혁명으로 인해 불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이다.)ⅱ.패러다임의 조건과 구성 요소―조건; 1대강의 idea 일 것= 개방적일 것; 새롭게 형성된 연구자들에게 여러 가지문제를 제시할 수 있을 만큼의 개방성.2성공적일 것; 추종자 집단을 계속 유인할 만큼의 전례 없이 탁월한 업적이처럼 하나의 패러다임이 최초로 그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중요하다고 인정한 소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른 경쟁이론 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구성 요소1 규범; 과학함의 이유- 세계에 대한 이해→패러다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경우,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취급하라2 법칙; 명백히 규정된 법칙이나 이론적 가정 (≒ 라카토스 hard core)으로패러다임을 결정하고 범위를 제한→뉴톤의 운동 법칙(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관성의 법칙)과만유인력(물건과 물건은 서로 잡아당긴다)3 이론; 연구를 통제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뉴튼의 운동 법칙에 따라, 물리적 세계 전체는 다양한 힘의 영향 아래서 작용 하는 기계적인 체계이다.4 적용; 다양한 유형의 상황에 기본적인 규정된 법칙을 적용하는 방법→뉴튼의 법칙을 행성의 운동, 진자, 당구공 충돌 등에 적용할 때 필요한 방법5 도구화; 다양한 실험 장치와 실험의 테크닉→뉴튼의 법칙을 천문학에 응용시 망원경의 사용, 망원경을 통해 얻어진 자료의 정리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기술 등.ⅲ.패러다임의 역활1 기준: 실험과 연구의 정당성의 기준과 과학과 비 과학의 기준.2 통제; 연구자 집단의 퍼즐풀이 활동(정상과학)을 조정하고 지시함.Ⅱ.정상 과학ⅰ. 전과학(前科學)쿤의 고찰에 따라 근본적인 것에 대한 의견의 일치, 즉 공통된 패러다임이 설정되면 동일한 원칙과 기준이 존재하게 되므로 공통된 패러다임은 정상과학 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의 일치가 없는 상태에서의 과학적 활동인 소위 전과학 은정상과학과 같은 권위와 보편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므로 단편적인 과학적 행위에불과하게 된다.예를 들어 고대로부터 17세기 말, 뉴튼의 『광학』-빛은 물질 입자-이 나오기 전까지는 빛의 성질에 관한 무수한 견해-빛은 물체로부터 발산되는 입자·물체와 눈 사이를 매개하는 매체의 변형-와 실험, 경쟁적인 학파-에피쿠로스·아리스토텔레 스-가 있었지만 어떤 것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ⅱ. 정상과학― 퍼즐풀이 로서의 정상과학이처럼 현상이나 그 현상을 연구할 방법의 일정한 기준이 제시 될 때 정상과학 이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존재여부가 전과학과 정상과학을 결정하는 것이디.쿤은 이러한 정상과학을 패러다임의 규칙을 따르는 퍼즐풀이 에 비유한다.즉 정상적인 과학의 행위는 퍼즐을 채우듯이 공유되는 패러다임을 채우는 것이라는 것이다.―정상과학의 성격{하나의 퍼즐에는해결이 반드시존재한다.1패러다임이 있을 경우에만 정상 과학, 즉 문제의 해결이가능하다.퍼즐의 목적은빈칸을 원래의 모양대로완성하는데 있다.2정상과학의 목적은패러다임이 적용되는 범주와 정확성의 증대에 있다다른 퍼즐에속한 퍼즐조각을사용 할 수 없다3정상과학은 새로운 현상을 추구하는 것을목적으로 하지 않는다.『오늘날 실험실에서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에 의해 이미형태가 결정되고 비교적 고정된 상자 안에 자연 을 밀어 넣으려는 노력처럼 보인다』하나의 조각이퍼즐의 기준이되지 않는다4패러다임 내에서 제기된 문제는 패러다임의 문제가 아니라-반증이 아니라- 변칙 사례 즉 과학자의 실수로 보아야 한다.이러한 퍼즐풀이 비유가 말해주는 정상과학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퍼즐은 반드시원래의 모양대로맞추어야 한다5정상 과학에는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된약속 또는 규칙 (패러다임의 구성요소)이 있다.Ⅲ. 위기―쿤의 패러다임에는 항상 변칙 사례가 존재한다. 이 변칙사례가 패러다임에 대한신뢰를 실추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은ⅰ. 어떤 변칙사례가 패러다임의 기본 원리에 타격을 주어 정상 과학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음에도 그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될 때ⅱ. 특정 패러다임에 대한 변칙사례의 수가 많을 때이며,―이러한 위기의 때의 특성으로 심하고 집요한 공격을 받고 있는 패러다임에 속한연구자들의 정신적 불안전 을 들 수 있다. 위기의 최고조에서는 그러한 연구자들은경쟁 패러다임 주창자들과 관찰을 토대로 한 논쟁보다는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논쟁을 벌이기 시작하고 감정적인 발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Ⅳ. 혁명―패러다임의 차이가 주는 결과
{프롤로그실존주의에 아우를 수 있는 모든 사상가들의 삶에 대한 통찰과 진지한 열정은 빛이 바랜 지 오래지만, 분명 실존주의는 모든 현대성의 원류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실존주의는-특히 사르트르와 카뮈는- 용감하게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 인간을 절망에서 건져내려 하였지만 결국 더 깊은 수렁에 밀어 넣은 듯 보인다.키에르케고르가 신앙의 비약 1)을 말한 이후, 실존주의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버렸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원을 그리려 했던 이전의 본질철학을 급진적으로 부정하였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이러한 실존주의적 반철학 은 다른 철학에, 미술에, 음악에, 일반 문화에, 신학에 영향을 주었고, 절대적 기준이 없는 사람들, 즉 현대인을 낳았다.이제 더 이상 절대 는 없다. 이것이 내가 실존주의가 실패했다고 여기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짧은글은 그러한 나의 주장의 단편이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무신론적 실존주의 기본적인 내용과 카뮈의 사상을 고찰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무엇보다 절대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있으며, 특히 카뮈는 신(절대)이 죽었고 가치의 근거가 인간 외부에 도덕체계에 있지 않은 세상에서도 선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른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가들 보다 더 호소력 있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개 요Ⅰ.서론Ⅰ-ⅰ.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기본 내용Ⅱ.본론Ⅱ-ⅰ. 카뮈의 사상Ⅱ-ⅰ-1. 목표Ⅱ-ⅰ-2. 부조리의 감정Ⅱ-ⅰ-3. 부조리Ⅱ-ⅰ-4. 부조리에의 내기; 저항Ⅱ-ⅱ. 페스트에서 밝힌 저항 의 의미Ⅲ.결론ⅰ. 카뮈의 사상 비판{Ⅰ.서론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 없이 태어나연약함 속에 살다가, 우연히 사라진다.나는 몸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미리 경고된 상(像)들이 갑자기 달려들어그들의 존재로 내 망막을 가득 채운다.그 존재는 사람이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충만이다.…나는 그것이 세계,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낸벌거벗은 세계임을 알았다.그리고 엄청나게 부조리한 이 존재를 보는 순간분노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사르트르 『구토』ⅰ.무결된 사건의 직선적 연속이지만 전체적 계획은 없다. 윤리는 단지 인간에게만 관계된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관심사는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 즉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의미 있게 될 수 있는가에 있으며 이러한 전제와 관심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1.우주는 단지 물질로 구성되었다.그러나 인간에게는 실재가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2.단지 인간만이 그 존재가 본질을 선행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현재 상태로 빚어 낼 수 있다.3.때문에 이러한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운명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롭다.4.매우 정교하고 빈틈없이 조직된 객관 세계는 인간과 대립 관계에 놓여 있으며 인간 에게는 부조리하게 보인다.5.객관세계의 부조리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대해 반대를 하는 진정한 인간이 반란을 일으키고 가치를 창출한다.6.인간이 가치를 창조하므로 선(善)이란 주관의 의식적 선택 행위이며, 그와는 반대로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악이며 그것은 부조리와 타협하는 것이다.{Ⅱ.본론Ⅱ-ⅰ.카뮈의 사상사람은 삶의 의미보다는 삶을 더 사랑해야 된다.Ⅱ-ⅰ-1. 목표「절망의 문학이란 말은 용어상 모순이 된다. …허무주의라는 매우 어둡고 깊은 현대의 구렁텅이 속에서 나는 오로지 그것을 초월할 방법만을 추구해 왔다.」6)여기에 카뮈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한 구절로 압축되어 있는데, 그것은 허무주의를 초월하는 것이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 부조리에 관한 수필》,《이방인》,《페스트》등의 문학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였는데, 그 작품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Ⅱ-ⅰ-2. 부조리의 감정사람이 알고 있는 것만을 갖고 살 것, 존재하는 것만을 갖고 자신을 정비할 것, 그리고 확실치 않은 것은 어떤 것도 끼워 넣지 말 것 7) 이라는 그의 준칙이 말해주듯 카뮈는 그의 사상의 시작을 데카르트처럼 명증성, 제일의 확실성에 대한 요구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카뮈에게 명증따라서 부조리는 하나의 환원될 수 없는 모든 대상화와 개념성에 앞서 있는 현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부조리는 영원한 것에 대한 염원과 죽음, 덧없음의 경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등과 같이 이율 배반적인 특성으로 인해 인간 및 세계의 괴이함, 낯설음, 무의미함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조리한 현사실을 인과적 관계를 제시하면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좌초할 수밖에 없고, 삶의 의미와 세계의 의미를 보장해주던 이전의 범주들-단일성, 목적, 인과율, 진리 등-은 확실치 않은 것의 전제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의미가 없고 결국 인간을 허무의 깊은 구렁으로 밀어 넣게 한다.그러나 인간이 처해 있는 자신과 세계와의 제거할 수 없는 모순, 즉 부조리 속에서 자신의 실존인 마음8)의 확실성과 현사실로서의 세계를 발견한 자는 그 허무주의의 늪에서 빠져 나올 가능성을 가진 자인 것이다.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것은 현존재의 부조리의 확실성에서 어떤 실천적인 귀결을 끄집어 내는가 하는 것이다."부조리는 물음을 던지는 인간과 반이성적으로 침묵하는 세계와의 마주침에서 생긴다. 이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부터 삶의 모든 올바른 논리적 귀결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9)위의 인용문에서 카뮈가 말하는 논리적 귀결은 근본적으로 세 가지의 부정과 하나의 긍정적 귀결을 도출하는데, 그것이 바로 카뮈의 허무주의에 대한 대안이다.즉, 1.죽음이 어떠한 경험도, 확실성도 보장 할 수 없기에 부조리한 객관 세계에서 벗어나 기 위해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2. 믿음 이라는 것은 은밀한 도피이며, 더욱이 믿음이 영원에로의 비약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은 또한 명증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에 현실세계의 명증성인 부조 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철학적 자살인 신에로의 비약을 거 부해야 할 것.3.부조리로 말미암는 갈등으로부터 일상의 기계적 삶의 습관성과 산만함 속으로 의 도피는 부조리를 대항할 열정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므로 거절 할 것.4.부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제거 될 카뮈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카뮈는 이 과정을 내기 라는 용어로써 파악하려 하는데, 파스칼이 신의 존재 여부가 이성으로 증명될 수 없다면 가능한 손실이 적고 이득을 최대화할 수 있는 쪽에 내기를 걸라고 했던 것과 유사하게, 카뮈는 계산에 의해서도 연역적 추론에 의해서도 조건 지울 수 없는 부조리에다 내기를 걸어 인간은 그의 자부심과 솔직함이 있는 자기 자신과 스스로 마주하며 현존함 이라는 그의 자유 를 획득하게 된다라고 말한다.Ⅱ-ⅱ.소설『페스트』에서 밝힌 저항의 의미우리의 이 조그만 도시가 하필, 쥐가 한낮에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죽고,수위가 이상한 병으로 죽는그러한 도시로 특별히 지정되리라고는꿈에도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그런 점으로 보아서, 시민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그들의 생각은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모든 일이 거기서만 끝났더라도아마 그 일은 습관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었다.그러나 시민들 중에서 그밖에도 몇몇 사람,그것도 반드시 수위나 가난뱅이 가 아닌 사람들이,미셀 씨가 먼저 밟은 길을 그대로 더듬어 가게 되었다.그때부터 공포와 더불어 반성 이 시작되었다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저항 을 심도 있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저 유명한 소설《페스트》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의 진정한 삶, 특히 신이 없이 선한 삶은 어떻게 규정되고 영위 될 수 있는가를 실증하려 하였다.소설은 페스트가 발생한 북아프리카의 오랑(Oran)이라는 도시의 일년간의 이야기이다.오랑의 성문은 페스트로 인해 굳게 닫혀 교통이 두절되었고, 따라서 폐쇄된 우주, 즉 신이 없는 우주의 상징이 된다. 또한 그 전염병은 우주의 부조리를 상징한다. 페스트는 누가 병에 걸리고 누가 안 걸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전횡적(專橫的) 존재이다. 그것은 인간의 척도에 맞는 것이 아니다. 그 병의 영향력은 무시무시하다. 그 병의 근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제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더욱이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페스트는 죽음 자체의 대명사가 된다.처럼 소설《페스트》는 인간이 생에 대한 애착을 갖고 태어나지만 죽음의 확실성이라는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무엇이 그러한 부조리의 확실성 속에 사는 인간의 진정한 삶, 즉 선한 삶인가를 모색한다.소설의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부조리를 대하는 어떤 입장들을 대표하는데, 아파트 관리인 미셀은 쥐들이 자신의 아파트 안에서 죽은 것을 격분하며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며 쥐를 저주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그는 부조리에 직면하여 살 수 없는, 즉 진정하지 못한 삶만을 영위하는 자들을 대표한다.그리고 침상을 떠난 적이 없으며, 쥐, 고열, 페스트 등에 가학적 쾌락을 느끼고 그러한 것들을 인생 이라 부르는 스페인 영감은 허무주의자들을 대표한다.그리고 페스트의 만연으로 자신의 범죄에 대한 대가에서 자유하게 되는, 즉 페스트에 의존해서 생활하는 꼬따르는 카뮈가 설정한 신 없는 우주에서의 죄인이다. 왜냐하며 그는 페스트가 계속 지속되기를 원했고 그 페스트를 이용해 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폐쇄된 우주에서도 악이 가능하다는 증거이다.만일 폐쇄된 우주에서도 악이 가능하다면 선도 가능할 것인데, 카뮈는 이 주제를 장 따루우와 리우 박사, 이 두 주인공을 통해 전개시킨다.장 따루우는 검사인 아버지가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것과 그 후의 사형 집행 광경을 본 후, 인간이 한 인간을 어떤 이유에서건 죽일 수 없는데도 그것이 정당한 듯 여기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사형제도를 철회시키기 위해 아버지와 결별한 후 정치운동단체에 가입한다. 그러나 그는 그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던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 을 깨닫고는 평안을 잃는다. 그 후부터 장 따루우는 그의 삶을 바쳐 신 없는 성자 가 되는 방법을 추구하는데, 카뮈는 따루우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해와 동정,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실천에 옮기는 것이 그가 취한 방법이였다. 그는 자원봉사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와 싸우고 희생자들을 위로해 줄 것을 제안하고 열심히 봉사한다.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고, 마땅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