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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철학] 칸트의 생애와 철학
    Ⅰ. 서론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독일 관념론 철학 시대를 연 철학자이다. 교양 과목 중 철학 관련 영역을 듣게 된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큼 그의 사상에 대한 가치는 근세 철학 역사에 있어서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철학 사상이 그렇듯 그의 철학과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독일 관념론을 이해하고 현대적 가치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칸트는 그 이전의 혼란했던 유럽 철학들을 종합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판 철학을 완성시켰는데 그러한 그의 철학 사상들은 그의 저서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형이상학 서설(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1783)』,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철학의 주요 개념으로는 물자체(Ding an sich)와 선험적 종합판단(Synthetische Urteile a priori), 정언명령(Kategorischen Imperativ) 등을 들 수 있다.Ⅱ. 본론칸트의 생애 및 주요 저작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1724년 4월 22일 지금은 소련의 도시가 되어있는 동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한 말 안장 수리공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계몽적인 시민 육성책의 혜택을 받았던 그는 그러한 역사적인 조건으로 인해 독일의 특수성이 아닌 참다운 세계 시민적인 철학자가 될 수 있었다.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한 그는 우수한 학교 서적과 성실함으로 많은 학생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재학 중 철학, 수학, 신학, 물리학 등을 전공하였는데, 특히 당시의 신사 일반적이다. 고, 중세의 철학 특히 중세의 철학은 절대 타자에 대한 믿음이 인간 주체의 인식보다 우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근대에 들어서면서는 한없이 높았던 타자의 신비스러운 위대함을 찬양하는 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에서 벗어나 합리성의 잣대 아래에서 자연학 그 자체가 홀로 서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철학은 형이상학의 위력을 철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는데 기여한 과학으로부터 지배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특히 수학, 기하학, 물리학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렇듯 과학에 종속되는 듯한 철학의 흐름의 위기를 들여다보고 철학의 자율적 위상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 비판 철학을 정립한 철학자가 바로 칸트다. 이성의 지나친 강조 대신에 정서나 감정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자는 흐름에 따라 칸트는 초감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우월하다고 하는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형이상학과 과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철학 본래의 생명력인 비판력의 활성화를 불러 일으키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2) 칸트 철학 = 1 * GB3 ① 세 비판서 저술 이전의 철학일반적으로 칸트의 철학의 시기를 구분할 때에는 칸트가 57세 때 쓴 첫 비판서인 이 나온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그 전(前)과 후(後)로 구분한다. 이 전기 시기의 칸트의 관점은 주로 계몽주의의 과학과 철학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기존의 형이상학에 대한 이론들이 칸트에게도 대부분 수용되고 있다. = 2 * GB3 ② 3대 비판 철학 - 순수 이성 비판칸트의 은 철학의 역사를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놓을 만큼 획기적인 저작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 이성이란 감각을 통해서 왜곡될 수 있는 인식이 아닌 참된 인식, 모든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독립 된 인식, 순수한 인식을 말하며 이 책은 이러한 인식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이 어떠한 방법과 권리를 가지고 거기까지 도달하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칸트의 이러한 종합은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궁극적 실재[물자체 (物自體), Ding an sich]는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러므로 그는 원래의 물자체의 세계와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현상계를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칸트가 내세우는 범주는 현상계에 한정되며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공간, 시간, 인과성 등의 개념을 현상계 뿐만이 아닌 예지계(叡智界)에도 적용시킨 결과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론적으로 다루는 것이 칸트의 철학 내에서는 불가능하게 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인간은 신이나 영혼 등 인식 범주로 들어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칸트의 답변은 그의 제 2 비판서인 “실천 이성 비판” 에서 살펴 볼 수 있다. = 3 * GB3 ③ 3대 비판 철학 - 실천 이성 비판칸트가 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인식 체계는 현상계에 머물고 물 자체의 세계에는 미치지 못한다. 즉 그것은 이성의 인식 능력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비판을 통해서 우리의 이론적 지식은 현상계에서만 타당하며, 따라서 순수 이성 세계에서 이성의 이념은 단순히 규제적 원리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성의 진정한 관심을 전체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칸트는 이성의 고유한 의도가 실천적인데 있음을,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목표하는 이성 자신의 고유한 관심임을 강조한다. 그러한 관심은 실천 이성을 통해서 그리고 도덕의 세계에서 만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리고 순수 이성의 비판은 이러한 관심을 구현하려는 예비적 조치이기도 했다.그는 자연 세계의 고찰은 인간의 감관이 직접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영역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오성의 인식 방법에 따라 수학적 정밀성을 모범으로 하여 발전적인 성과를 가져온 반면, 도덕세계의 고찰은 그러한 방법이 결여 되어 있기에 그러한 방법에 입각하여 타당한 의미를 지닌다.⑤ 종교 철학칸트의 종교 철학은 그의 저서 에 서술되어 있다. 그기독교의 종교관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순수한 이성적인 도덕 종교와 일치시키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본질은 원죄를 뒷받침 하는 구원의 교리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선의 의지를 주관하는 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종교의 정당성은 기적이나 계시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덕 법칙, 즉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선의지에 의하여 규정된다. 따라서 종교의 과제는 인간의 의지나 오성을 현세나 내세의 어떤 힘에 복종시키는 데에 있지 않고 인간의 선의지를 강화시키는 데 있다.칸트의 의도는 종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있었으나 그의 사상은 성직자들과 교직자들에게는 위험한 철학으로 보여져 그를 질책하였고, 그는 어떤 강연이나 논문을 통해서도 종교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⑥ 역사 철학역사 철학에 관한 칸트의 저술로는 과 등이 있다. 그는 역사 철학을 유적 본질로서의 인류라는 보편적인 입장에서 규명한다. 인간이 본질상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욕망을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성에 의해서 지배되는 도덕적인 존재임을 확신하고 그것을 인류 역사 발전에도 적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의 역사 철학은 사회를 인간의 이기심과 이성이 얽혀 있는 주관적인 현상으로 바라보았을 뿐 주관에 배제된 객관적인 사회, 즉 정치적∙경제적 갈등에 의한 그 자체의 발전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인간의 정신을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변화시키므로 역사가 완전하게 발전된다는 그의 이상이 철저하게 관념론적 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⑦ 정치 철학과 영구 평화론칸트의 정치 철학은 그의 역사 철학과 연관 된다. 역사는 자연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성향을 완전하게 발전시켜 가는 과정이다. 동물은 종의 완전성을 자연으로부터 부여 받는데 반하여, 인간은 오랜 투쟁을 통하여 획득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명예욕, 지배욕, 소유욕에 따라 타인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상태과 전혀 다른 새로운 논리에 입각한 윤리 체계가 성립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칸트 철학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당시 독일이라는 사회 현상을 대변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 사회를 변혁할 수 없을 뿐더러 그러한 문제를 제기할 능력이 없었다는 비판도 가해지고, 그의 정치 철학 및 국가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매우 이상적이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제한 때문에 나타나는 칸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대적으로도 의의를 갖는 이유는 바로 변증법적인 발전 개념 때문이다. 실재적인 근거와 논리적인 근거를 구분함으로써 절대적으로 보편∙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고수 되었던 형식 논리에 타당한 영역을 제한한 점, 선험적인 논리를 통하여 사유방법을 확대시킨 점 등과 같은 특징은 그의 철학을 기초로 한 변증법적인 발전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칸트 철학은 그가 지녔던 유한주의 입장을 버리고, 인간 주체를 무한한 우주를 구성하거나 산출하는 주체, 유한한 감성을 무한한 예지적 직관 등으로 확대시키는 형태로서 J.G.피히테, F.W.J.셸링, G.W.F.헤겔 등으로 이어진 낭만주의 세대의 이른바 독일 관념론철학에 계승되었다. 그 영향은 영국·프랑스의 이상주의 철학까지 미쳤으며, 특히 독일의 신 칸트 학파 철학은 19세기 말부터 학문적인 문제 상황에 부응해 칸트의 비판주의의 직접 계승을 지향하였다. 신 칸트 학파가 퇴조한 뒤 나타난 오늘날의 여러 철학 조류도 대부분 직접·간접으로 칸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칸트 철학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식비판적·초월론적 철학의 영향은 E.후설의 현상학(現象學)으로부터 J.하버마스의 비판적 합리주의, L.비트겐슈타인과 P.F.스트로슨 등의 언어 분석 철학에까지 미친다.Ⅲ. 결론- 마무리 및 연구 소감앞서 서술한 칸트의 생애에서 살펴 볼 수 있듯 그는 학문과 도덕 철학에 인생을 바친 위대한 철학자였다. 자신의 학문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갈구하며 평생을 연구로 가득 채운 그의 열정은 지금도 높이 살 만 하다고.htm
    인문/어학| 2005.06.18| 8페이지| 1,500원| 조회(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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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문화] 일본애니메이션바로보기
    일본 애니메이션 바로 보기1. 도입약 2년 전 일어 일문학과 학생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참고론 난 1년 전에 경영학부로 전과를 했다.) 선배들과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여러 개의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았던 적이 있다. 그 전에는 애니메이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거의 보지 않았던 나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자 일본어는 들을 생각조차 안하고 그 화면과 그 줄거리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 경우가 종종 생기곤 했다. 드라마나 그냥 영화와는 무엇인가가 다른 강력한 매력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를 보면 또 하나를 보게 되고 나의 공상 속에서 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였다. 그 후 몇 해 동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재미있다고만 느끼며 지냈는데, 그러한 애니메이션 속에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무궁무진한 힘이 스며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한 쪽으로 입장을 기울이고 있는 내 자신도 발견 할 수 있었음 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2. 본문강의시간에 본 < 반딧불의 묘 >나 < 침묵의 함대 >는 둘 다 뛰어난 줄거리와 멋진 화면으로 극찬을 받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칭찬만을 받는 애니메이션이라면 문제가 아닌데, 한 쪽에서는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우선 < 반딧불의 묘 >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영화이다. 오빠인 세이타와 동생 세츠코가 주인공으로 전쟁으로 인한 남매의 고난과 여동생의 죽음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세이타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사랑하는 동생 세츠코마저 기아로 잃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원치 않게 잃어야 했던 세이타의 모습을 잘 묘사함으로써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반전 영화라고 생각해 왔던 난, 강의 시간에 일본이 피해자라는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하는 다른 입장을 듣고 나니 하나의 영화에 정 반대의 두 의견이 그가 이끄는 승무원들이 이탈하면서 자신들이 ‘ 전투국가 ’ 임을 선언하고 뉴욕까지의 긴 항로를 가게 된다. 마침내 도착한 이들은 ‘ 바다로부터의 침묵의 안전보장 ’ 을 주창하고 신 질서를 수립할 것을 외친다. 어찌 보면 핵을 억제시키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하나의 이념을 지닌 애니메이션으로 보여 질 수도 있지만, 군국주의의 ‘대 동아 공영권’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왜 같은 영화인데도 반대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어떠한 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을 내리고 그러한 방면으로 바라봐야 할까? 어느 입장이라는 것이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느끼는데 중요한 것일까? 이것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에 대해 알아나가기 위해 젤 처음에 고민하게 된 난제였다.잠시 위의 이야기를 접어두고 다른 방향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일본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면 어린 아이들은 그 화려한 모습과 재빠르게 변하는 화면의 특성 때문에 눈을 떼지 못하며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자신이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들을 이루는 주인공들을 보며 자신이 이룬 것과 같은 쾌감을 느끼며 그 승리감을 맛보기 위해 애니메이션에 심취한다. 애니메이션은 굳이 다른 역할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렇듯 큰 힘을 발휘한다. 그 애니메이션의 파워에 빠져든 사람들은 그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세계와 혼돈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도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들로 인해 그 캐릭터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하지만 문제는 그런 생각으로 인한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일본에서 일어나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애니메이션을 모토로 하여 일어나는 일이 많다고 한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러한 엽기적인 일들이 인정되고 자신들이 영웅화 되리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자신이 주인공인 세상에서 자신은 스스럼 없이 그 사건의 가해자가 되고는 한다. 어느 순간 사람의 판단력을 흐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등을 보면 우리가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일들도 힘겨운 훈련과 연습 끝에 해내고 끝에 승리한다. 승리한 그들은 정의롭다. 나도 그런 훈련을 통해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만들어 낸다.처음에 교수님께서 쓰신 글들을 읽고 어떠한 방면에서 접근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었다. 교수님께서 애니메이션을 설명하기 위해 접근하신 위의 내용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떤 방법으로 파악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고나 할까? 과연 애니메이션 속에 군국주의를 포함하고 있느냐 아니냐 와 애니메이션이 현실세계 우리에게 미치는 힘을 어떻게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난 문뜩문뜩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이렇게 모아보게 되었다.우선 < 반딧불의 묘 >의 감독인 다카하타 이사오는 말한다. 일본이 얼마나 비참했는가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닌 어린 세츠코와 세이타가 어떻게 전쟁을 겪어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고.. 작가는 분명 의식적으로 자신의 나라가 전쟁의 피해자임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의 사람들은 그렇게 느낀다. 무슨 뜻일까? 의식적으로 의도되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에는 저 어딘가에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강의 후 다시 한번 인터넷을 다운 받아서 보니, 애니메이션 전체적 줄거리에 군국주의가 직접적으로 찬양되거나 묘사 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명 곳곳에는 그러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 반딧불의 묘 >라는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을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표현” 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어느 부분에서 드러난다는 의심을 가지게 하지만, 감독이 그걸 주장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다시 말해 의도된 표현이 아닌 작가의 생각과 생활 속에 내포되어 있던 이데올로기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섞여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것이다.< 침묵의 함대 >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침묵의 함대에 나오는 몇몇 대사들다의 말은 대 동아 공영권을 주창한 마쓰오카 요스케의 “ 八紘一宇 정신의 실현 ” 과 서로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이 의식적으로 군국주의를 표현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교수님의 글은 “ 그렇다면 왜? ” 라는 의문을 가지고 온다. 감독 카와구치 카이지는 과연 의식적으로 군국주의를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군국주의를 찬양하기 위해 이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일까? 그건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이데올로기가 영화 속에 담겨져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의도 하지 않았건 의도 되었건 간에 영화 속의 몇몇 부분은 군국주의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을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 군국 주의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 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감독의 의도를 명확히 귀로 듣지 않는 이상 말이다.위에 나타난 애니메이션들을 예로 들면서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이유는 어떠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느끼고 말하고자 할 때 부분에 조금씩 드러나는 군국주의와 통하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군국주의의 산물로 몰아가려 하기 보다 “ 과거의 일 ” 을 나타낸 그 자체로 이해하려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애니메이션에는 의도되지 않더라도 감독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생활 속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의도된 것이건 아니건 이데올로기는 애니메이션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애니메이션 속에 나타난 이데올로기를 그 애니메이션을 만든 이유나 정체성에 대해 파악할 때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위에 묘사된 군국주의의 산물이라는 평가는 그러한 의미에서 부적당하다. 가령 < 반딧불의 묘 >를 볼 때 입장을 반전이나 피해자냐 라고 나누기 보다 과거를 묘사하고자 하는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현실 세계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어떠한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해질 때,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할 것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을 여과하고 분류할 줄 아는 주관적인 판단의 능력이 너무나도 필요하다라고 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닐까?3. 마무리 및 요약애니메이션의 세계 자체를 이해할 때에는 어느 정도의 이데올로기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미흡한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의 세계의 그 큰 힘 그리고 그 속의 이데올로기를 거르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없을 법한 일을 하곤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애니메이션의 힘을 바르게 인지해야 한다는 것, 그 애니메이션이 과거를 이야기할 때 그 애니메이션이 과거를 나타내면서 조금씩 드러난 그 역사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과거의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고자 할 때에는 굳이 어느 입장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 결론에 대한 의무감 ” 따윈 버리고, 스스로 애니메이션을 올바르게 판단하려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끝 -레포트를 마치며..애니메이션에 대해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오며 지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며 주인공을 꿈꿔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레포트를 계기로 애니메이션에 대해 내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보고 있지는 않은지, 과거를 왜곡되어 해석하지는 않는지, 올바른 눈을 가지고 현실세계와 애니메이션 세계의 연관 관계를 이해하려 했는지에 대하여 생각을 기울이게 되었다. 다른 과목의 레포트보다 내용도 전하고자 하는 생각도 온통 뒤죽박죽인 레포트이지만, 머릿속에 뚜렷하게 어떠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영화 속의 역사 읽기”라는 강의를 처음 들으러 가던 날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고전 영화에서 역사 의식을 도출해 내는 강의인 줄 알고 어떻게 강의를 듣나 했지만, 지금은 무척 즐겁고 신난다. 일본의 영화 그 중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를 엿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통한 자유롭고 재미있는 강의에 매주 이 강의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단순히 훑고 지나가기보다는 내용과이다.
    예체능| 2003.05.10| 5페이지| 1,000원| 조회(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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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버자이너 연극을 보고..
    오늘 대학로로 향하는 친구들과 나는 며칠 전에 보기로 약속했던 연극을 향해 호기심 반 즐거운 반으로 갔다. 내가 보기로 한 연극은 < 버자이너 모놀로그 > 라는 제목의 연극이다. 무척이나 특이한 제목이고 몇 개의 정보 검색으로 이상한 연극이라고 생각하며 갔던 것이라 그런지 무척 기대되는 연극이었다.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무척이나 충격적이고 대담한 연극이었다. 연극이 토크쇼 형식이었다는 것도 내가 참여하는 느낌이 무척 컸으며 ( 쳐다보기만 했지만.. 어쨌든 무척 신기했다. 이런 연극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 재밌다는 느낌과 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나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끔은 여성들의 어떠한 행동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조금씩 화가 날 때가 있다. 여성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제도 안에서 여성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 움직임을 표현한 어떠한 매체도 어떠한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Vagina’s Monologues)’ 도 하나의 작은 그러나 큰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역설적인 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정의라고 생각도 되지만 적어도 연극을 보고 난 후의 내 느낌은 그러했다. 표현방식은 무척 직접적이고 부끄럽게 여겨오던 이야기라고 생각하였지만, 그 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던 메시지는 가장 사실적이고 정직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여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연극을 보러 들어가면서 절로 웃음이 나온 것은 그 연극을 보러온 남성 관객들을 쳐다보는 여성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었다. 보지 라는 말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적어도 처음엔 말이다. 중간부터는 서로 진지해진 상태로 그녀의 연기와 표현을 바라보았으니까 말이다. 또한 또 하나의 신기한 것은 연극을 보는 ( 나는 여자친구들과 함께 갔다. ) 커플이 팔짱을 끼고 충격적일지도 모르는 ‘ 보지 ’의 독백을 듣기 위해서 극장 안으로 들어서서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러 오기에 부끄러워 동성 친구들과 온 나와는 다른 당당한 모습들 이것이 연극의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이제 본격적으로 ‘보지’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유일한 배우인 서주희 는 관객들이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보지’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 왜 버자이너가 이 연극의 중심이 되는지를 짤막하게 얘기해 주었고 여러 가지의 모습을 가진 ‘보지’의 독백을 들려주었다.처음 연극이 시작했을 때 그리고 연극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나는 연극에 대한 생각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이번 연극에는 연극에 몰입하기보다 어떤 연극인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연극을 지켜보리라고 다짐했다. 그래야만 좀 더 연극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 없이 한 연극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이 시작한 후 한동안 주인공인 서주희 씨의 모습과 그의 행동 대사에 빠져들지 않으려 부끄러워지지는 않을까 성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여러 생각들로 가득찬 내 머리 속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하지만 연극이 계속되는 끌어들임에 그리고 그 당당함에 나는 끌려 들어가지 않았나 한다. 나는 그녀가 얘기하고 있는 독백 속으로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서주희 씨의 연기는 거의 정신을 빼놓을 정도로 뜨거운 열정으로 넘쳐 흐르고 있었다. 10대의 어린아이부터 대학생 아주머니 할머니 여러 세대를 넘나드는 그녀의 말들은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하는 말들이었다. 특히 전쟁의 폭력에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겨 피폐해져 버린 피해 여성의 절규에서는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무대 위에서 그녀가 뿜어내는 열정은 우리를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녀에게로 빠지게 하였다. 그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닌 그녀의 ‘독백의 형식의 이야기’를 지켜보던 모든 관객들이 생각하고 느끼던 것이었다.나는 연극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것은 바로 ‘ 버자이너 ’의 독백이라는 것은 가혹한 피해를 당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의 가해자는 예외 없이 모두가 남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여성들의 피해는 큰 것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보지’는 말한다. “자신을 당당하게 쳐다보라고 그리고 사랑해 달라”고 말이다. 특이한 상황에 대한 정당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연극이 공연된다고 했을 때 쉬쉬하고 있었던 언론 매체들.. 그 어떤 신문도 Vagina를 ‘보지’라고 써놓고 비평하거나 설명해 놓은 것을 보지 못했다. 단지 여성의 ‘그곳’, ’거기’라는 단어들만이 연극소개에 나왔다고 한다. 연극은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 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정작 그 들을 솔직하게 소개해야 하는 언론은 솔직하지 못하고 이 연극이 가지고 있는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여자의 성기는 언론에도 드러나지 못할 만큼 어둡고 천박하게 느껴지는 걸까. 같은 여자인 나마저도 그렇다는 것이 더욱 마음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자의 질을 버자이너 라고 말한다는 것 또한 이번에 알았고 대사들을 들으면서도 처음엔 어찌나 당황했던지.. 구체적인 여자의 성기와 관련된 단어와 대사가 난무하는 연극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나와 내 친구들에게 통쾌한 경험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도 쉬쉬했던 우리의 모습 한 부분을 찾아서 보게 된 느낌이었다고 할까.
    예체능| 2002.05.21| 4페이지| 1,000원| 조회(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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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내 딸이 여자가 될때 독후감. 평가B괜찮아요
    처음에 교수님께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을 때 솔직히 처음 든 생각은 다른 여성학 이론 책처럼 고리타분하고 두꺼운 책 아닐까? 라는 부담감이랄까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귀찮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담감은 책을 읽는 첫 장부터 사라지고 책을 조심조심 주의 깊게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는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고 할까.. 라는 책은 딸과 어머니라는 이 시대의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우리가 느낄 수 있게끔 도와준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가벼운 일로 치부한다는 것은 아니다. 쉽게 설명하면서도 결코 우리가 쉽게 느끼고 생각하게 하지 못하는 그녀의 내용구성과 필체는 그래서 다른 여성 관련 책과는 다른 느낌을 들게 한다.미혼모, 성추행과 성폭력, 자해, 약물중독 , 거식증 등의 그녀가 다루고자 하는 여성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저 멀리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서 이 책이 더욱 마음속에 울리는 점이 크다. 더 이상 우리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어두운 곳의 더러운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기에는 우리 주위에 많은 일들이 그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사례들에 나오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서 소위 날라리 라고 말하는 문제아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보통 집안의 보통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것을 대학생이라는 지성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평가해보는 것이 교수님께서 이 책을 읽게 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한다.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소녀들이 겪는 청소년기의 문제점들을 말하고 있다.그리고 이렇게 분류된 예들을 읽고 느끼면서 세상이 여성에게 얼마나 모순된 것을 강요하고 억압하는지를 그리고 여성이 사회에 너무나 나약하게 노출되어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책을 읽다보면 우선 남성에 의한 보이지 않는 폭력에 관한 것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알 수 있다.또한 남자들이 얼마나 성에 관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으며,그 잘못된 지식으로 여성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 없다. 이용이라는 말은 여성들을 단지 육체적 쾌락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 세상에서 여성들이란 남성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여성의 위대함에 비해 너무나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다.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고귀한 존재로서의 여성이 남성의 성폭력과 강간 폭행에 대응하지 못한 채 사그러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받아줄 제도와 사람들의 관심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나오는 태미 이외의 여성들은 잘못된 생각을 가진 남성들의 피해자였다. 결국 상처를 입은 것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예전보다 오히려 현재가 더 여성들에게 더 여성적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잡지에 나오는 여성들처럼 되기 위해서 사춘기의 소녀들이 다이어트를 강행하다 섭식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말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닌데도 우리는 대중매체와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때 호르몬의 영향으로 엉덩이나 가슴부분에 살이 붙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 들여지지 못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혐오스러운 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책에서는 이러한 여성들에게 사회는 더욱더 빼어난 외모와 몸매를 강요하게 되고 이러한 현상이 더 심각해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내 주위를 둘러보아도 결코 비만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열이면 열 다들 좀더 말랐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모에 만족하지 못해 성형수술과 지방흡입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 또한 과연 자기 만족의 이유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사회에 나가서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외모가 좌지우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비율이 여성이 더 크다는 것 또한 말이다.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문제로 인해 사춘기라는 변화의 시기에 소녀들은 자신의 자아립하지 못해 방황하고 탈선의 길을 걷게 된다고 작자는 이야기하고 있다.그리하여 이러한 시기에 남성에 의한 성폭력이나 강간을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이 잘못된 성 인식을 가지게 함으로서 소녀들의 성 정체성도 또한 무너지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고 작가는 경고하고 있다.성 정체성이 무너지게 되면 문란한 성 관계를 가지게 되거나 성적으로 타락하게 된다고 하였다. 사회에서 강요하는 모습 때문에 우리의 아름답고 예쁘게 커야할 딸들은 상처입고 쓰러져 가는 것이다.작가는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위험요소와 변수들이 소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작가는 부모가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수많은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위에서 줄거리를 나열하기 보다 나의 생각과 그에 대한 작가의 말을 대치시킨 것은 책을 읽을 때 책의 줄거리에 연연해 읽기보다 견해를 비교하고 공감해 가면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하였다면 더욱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 있어 몇 개 적어본다. 작가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등장하는 소녀들이 성에 집착하는 듯한 표현을 많이 했다. 그러한 표현이 많아짐으로 인해서 작가가 주장하는 부분에 대한 설득력이 감소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그리고 사회가 너무 성에 대한 폭력과 약물이 만연한 것처럼 표현한 것도 사회의 나쁜 점만을 조금은 과장한 것은 아니었나 생각된다.어찌되었든, 그녀의 견해와 많은 점에서 공감을 얻은 나는 책을 읽고 나서 문제점을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문제는 크게 보면 한가지로 통하고 있다. 소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에서 다시 말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성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 적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대부분 알고있다고 자부하는 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도, 그런 성 인식으로 인해 상처 입게 되었을 때 대처하기 보다 인생을 망쳐버리는 우리 딸들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도 다 사회적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가정도 작은 사회라는 의미에서 가정 내에서의 성교육도 중요하게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내 딸이 여자가 될 때 > 라는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러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러한 점에서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고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우선은 소녀들에게 자신의 몸은 소중한 것이며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다들 막연히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은 그들에게 가슴속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요즘 개방적인 사회로 변해가면서 성에 대 한 관념도 희박해져 가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이렇다 하는 것 때문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잊어가며 몸을 함부로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그런 일로 인해 책에 나타난 사례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책에 나온 사례 등을 예로 들어 말해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그에 대한 부가 사항이라고나 할까, 소녀들에게만이 성 정체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딸들뿐 아니라 부모도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그들의 생각과 사회의 인식에 대해 한번쯤 심각하게 이야기 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딸들에게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딸들의 자아 정체성의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딸들이 내가 누구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라는 정체성을 지닐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그리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소녀들을 더 이상 남성의 성적 충족의 대상이나 하위 개념의 여성으로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양한 인격을 가진 소중한 인간으로서 좀더 편하게 좀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야하며, 더 이상 남성이 상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딸인 소녀들이 동등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녀들에게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도록 해야 한다.물론 동등하다는 말이 가장 중에 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우위에 선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동등하게 서로를 쳐다 볼 수 있도록 서로에 대한 생각을 고칠 수 있도록 힘써야하는 것이 사회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사들은 공정성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지도하도록 노력해야하고, 학교 내에서 성추행으로부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거부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뚜렷한 정책을 제시해야하며,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성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제공해야한다.세 번째로 우리 나라에서 크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인데 성교육의 이론 위주의 교육 탈피이다. 예전의 교육은 거의 암기과목 수준의 교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성기는 이름이 무엇이고 난자가 어떻고 정자가 어떻고 하는 교육은 지금 아이들에게 외우기 귀찮고, 도리어 짜증이 나는 교육일 뿐이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할 때 그들이 아 정자가 이러니 난자가 이렇게 되겠군 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우리 나라 성교육의 문제점을 이론적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피임 교육과 자신의 의사를 밝힐 줄 아는 모습에 대한 교육을 해주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거의 성교육이라 하면 일주일에 한번 양호실에서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따로 배우는 것 , 아니면 가정시간에 비디오 한두 시간 보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러하였다. 그러한 주입식의 성교육은 솔직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거나 어떤 지식이 요구 될 때 과연 우리는 주입식으로 암기 식으로 외운 성교육 지침을 그대로 실생활에 적용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기자재를 활용한 성의 소중함과 주입식이 아닌 아이들이 마음 깊숙이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질 때 아이들은 잘못된 성 인식을 버리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2.05.21| 7페이지| 1,000원| 조회(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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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과 의상] 스포츠 문화가 패션에 끼친 영향 평가A좋아요
    패션은 사회적으로 특정시기나 그 상황에 적절하다고 인식된 스타일이나 행동을 대다수의 사회구성원이 일시적으로 채택한 제품 스타일이나 행동방식을 말한다. 그러므로 패션의 흐름을 살펴가다 보면 일정하게 그 시기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반영되어지는 요소들은 셀 수 없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요소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스포츠 문화가 영향을 끼친 패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스포츠는 현대 패션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야구 선수들이 입는 옷인 스타디움 점퍼를 대중들은 차츰 편하게 입는 스타일로 즐겨 찾게 되었다. 그리고 골프와 같은 고급 스포츠는 상류층의 카디건과 트위드 등과 같이 소탈하고 편안하게 입는 "프레피 스타일" 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또한 스포츠가 확산됨에 따라 여성들은 불편한 드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의상으로 나타났다. 스커트는 테니스나 골프 등을 즐기기 위하여 움직임이 둔해지는 긴 스커트가 아닌 짧은 스커트를 입었다고도 볼 수 있으며 코르셋이라는 몸을 압박하는 장치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포츠의 확산으로 여성들도 스포츠에 참여하면서 여성 해방 운동과 평등 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영향으로 남녀 구분이 없는 유니섹스 스타일의 옷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유니섹스 스타일은 청바지의 유행으로 급격히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의 패션을 스포츠 문화와 연결짓는다면 많은 부분에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우선 스타디움 점퍼(stadium jumper)는 야구선수 들이 착용하는 몸 판과 팔의 색상이 다른 점퍼이다. 원래 스타디움 점퍼는 코사크 군인들의 군복에서 그 형태를 빌어온 것이라고 한다. 이 옷이 생겨나기 전까지만 해도 운동 선수들은 대개 두터운 멜튼 울 스웨터를 입었다고 한다. 1920년대 이전의 미국이나 영국의 스포츠 선수들은 두꺼운 스웨터를 유니폼으로 입고 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울 압축 기술이 나타나면서 이러한 스웨터 유니폼은 차츰 스타디움 점퍼라는 새롭고 가벼운 의상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곧 야구를 지켜보는 매니아들의 눈에 띄면서 전폭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일반 대중의 캐주얼웨어로까지 확산되게 된 것이다. 스타디움 점퍼는 사람들에게 특수한 스포츠를 하기 위한 운동복에서 편안하게 걸칠 수 있는 옷으로 대중화되었고, 그때 그때의 유행에 따라 형태와 소재도 조금씩 변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운동복으로만 활용되던 것이 점점 경기 관람용이라든가 운동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몸을 풀 때 입는 옷으로도 인식되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스타디움 점퍼를 대중화시키는데 공헌을 한 것은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스포츠를 할 때 이외의 일상생활에서도 이 점퍼를 즐겨 입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런 의생활 습관을 자신들의 상징처럼 지속적으로 즐겼는데 가슴과 왼쪽 소매부분에 팀이나 소속대학 또는 학과를 상징하는 머리 문자를, 왼쪽 소매에는 졸업 년도의 숫자를 넣어 서 자신들의 소속감을 확실히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그들의 패션은 스타디움 점퍼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스타일은 스타디움 점퍼의 전형으로 남게 되었다. (http://www.cambridge.co.kr/culture/wearstory/wearstory_30.asp) 스타디움 점퍼가 확산됨에 따라 야구경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할 때에도 편하게 걸칠 수 있는 캐쥬얼 웨어로서의 발판은 더욱 굳건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스타디움 점퍼는 스포츠 문화가 패션에 영향을 준 가장 보기 좋은 예라고 생각이 든다.17세기-18세기 귀족층은 격식에 얽매이는 옷을 입고 활동하였다. 그 당시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무척이나 불편해 보이는 듯한 바지와 어깨를 넓게 만든 조끼 등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스포츠가 확산이 되면서 많은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를 하기 위하여 차츰 바지의 통은 활동하기 편하게끔 좁게 바뀌었고, 옷에서도 불필요하고 장식적인 요소들은 배제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류층 남성들의 편안한 패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골프 웨어이다. 현재는 골프가 고급 스포츠에서 대중 스포츠로 탈바꿈하였지만, 처음에는 상류층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였다. 그런데 골프는 정식으로 옷을 갖추어 입기보다는 편안한 복장을 필요로 한다. 움직임이 많기 때문이다. 상류층 사람들의 스타일이라고 인식되어지는 프레피 스타일은 카디건 스웨터, 폴로 코트, 셔츠 웨이스트 드레스 등이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옷들은 편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골프 웨어로 사용되어 지게 된 것이다. 옆의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골프 웨어는 편안하지만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상류층 스포츠의 의상이다. (의상학의 이해- 이선재, 학문사) 골프인구가 늘어나는 요즈음 골프 웨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이러한 패션은 사람들에게 많이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골프 웨어를 입은 사람들도 자주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전에는 남성들은 슈츠와 형식에 맞게 짜여진 옷들로 너무 얽매이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포츠의 영향으로 옷은 편안함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변해간 것 같다.남성의 패션 중에서 스포츠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뽑으라면 또한 버튼다운 셔츠를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는 스포츠 중에서도 테니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테니스 웨어의 단점을 보완하여 입기 편하게 디자인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는 주로 셔츠를 입고 테니스를 쳤는데, 이 때 칼라가 펄럭여 경기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불편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작은 버튼을 달아 주었는데 이것이 버튼다운 셔츠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패션은 지금까지도 널리 입혀지고 있으며 테니스 웨어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널리 입혀지게 되었다.스포츠 문화는 여성들의 의상 변화에 무척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스포츠에 여성이 참여하기 이전의 시기에는 여성들은 도련이 무척이나 큰 드레스를 입었다. 로코코시대에는 16, 17세기에 사용했던 고래뼈로 만든 버팀 속치마 대신 등나무를 만든 속치마를 입었는데 양쪽은 철사를 넣었다. 어떤 스커트는 치마 폭이 너무 넓어서 문을 통과할 때는 옆으로 몸을 돌려 나가기도 했다고 하니 스커트는 단순히 미적인 요소로서 장점이 아닌 여성들의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스커트의 속에는 코르셋이라는 속옷을 입었다. 코르셋은 여성의 몸매를 한층 돋보이게 하기 위한 압박 장치인데, 꽉 조여매기 때문에 무척 불편한 속옷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맨틱 시대에는 비둘기 가슴이라 알려진 크고 둥글어 보이는 가슴형이 인기였다. 이 모양을 내기 위하여 당시 여성들은 S자형의 코르셋을 입었으며, 앞으로 치우친 몸의 균형을 위해 우산이나 지팡이가 필요했다. (http://www.intarsia.co.kr/info/history.asp) 코르셋은 여성의 장기를 압박하였으며, 장기 파열로 사망한 여성의 시체에서는 장기가 제대로 된 위치가 아니라 다 정 위치를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이러한 여성들의 불편한 의상은 스포츠 문화가 확산되면서, 그리고 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차츰 답답한 의상이 아닌 편안하고 활동에 제한이 없는 의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성이 길고 답답한 드레스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테니스라는 스포츠의 영향이 컸다. 본래 테니스는 귀족들 사이에서 있었던 사교놀이의 일종이었다고 한다. 테니스를 하는 사람도 사교적인 복장 그대로 플레이했고, 여성도 불편한 롱스커트 차림 이였다. 1800년대는 야회복 그대로 플레이를 하였다고 한다. 여성은 손목까지 내려온 상의에다 긴 스커트, 그리고 작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1877년에 윈블던 대회가 시작되면서 여성복장도 롱스커트에서 약간 짧은 스커트에 블라우스로 점점 간단한 것으로 바뀌어져 갔다. 1905년 무렵 부터 스커트도 플레이어 스커트, 풀리츠 스커트로 스커트 모양도 변해갔다. 1927년에 여자 테니스 플레이어로서 무적을 과시하고 있던 스잔 런런(프랑스인)은 여성의 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페치코트도, 콜세트도 벗은 채 노 슬립으로 무릎까지의 풀리츠 스커트인 원피스 차림으로 코트에 서서 당시의 테니스 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여성이 답답한 패션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패션이라고 할까. 1936년이 되어서 헬렌 제코브스(미국)가 숏을 입고 등장하면서 여성들의 테니스 웨어는 여성에게 많은 패션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패션의 변화가 60년대의 미니스커트의 유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테니스라는 스포츠는 여성의 코르셋과 드레스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되는 획기적인 패션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http://lotus.pwu.ac.kr/~jslee/tennis.htm)
    예체능| 2002.05.07| 6페이지| 1,500원| 조회(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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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AI 챗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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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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