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에 대해서 들을 때부터 지금 이 책을 다 읽은 후까지 정말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많은 어려움을 겪은 지은이 였지만,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반했다."왕따".. 어느 날 부턴가 서서히 이름을 드러냈다. 너무 웃긴 것은.. 그 A라는 아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게 뭐가 그리 큰 잘못이라고.. 그들 사이에서 보스였던 아이라서 그랬나?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도리어 내가 맞게 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하지만, 잘은 모르겠지만, 서로가 그 보스인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한 학교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다. 책상에 새겨놓은 글씨 하나하나, 그녀를 향해 던지는 웃음 하나하나까지.. 당장에라도 그 때로 들어가서 그녀를 붙잡아 끌고 오고 싶었다. "그런 애들이 있는 곳에선 숨쉬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당신이 잘못한 건 아파한 것 밖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서로 고통을 줄 권리가 없다! 하나같이 다 자기만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끼고, 방황하고 또 배신당하고.. 그녀의 부모님이 일찍 그녀를 꾸짖고, 잡아줬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하지만 이미 지난 일, 난 지금의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비관하지 않고 새 희망으로, 자신과 과거와 똑같은 길을 걷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바로 잡아주며, 살아가는 모습에 "사람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그녀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가슴에 새겨 본다.오히라 미쓰요!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많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건강히 오래오래 살길 간절히 바란다. 누군가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고생하는 일.. 다시는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하고도 간절한 바램으로 빌어본다.학생시절, 괜히 친구일로 힘들어 하거나, 사는 것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팍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 들때, 그리고, 남의 말 한마디로도 상처 받는 이들에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물론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다.세상은,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 라는 것이다. 앞으로 살 많은 날들이 자신감으로 넘쳐나고, 내 일을 사랑하고 또 행복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가정들은 명절 때마다 제사를 지낸다. 조상제사의 의식은 신령한 존재에 드려지는 인간의 최상의 공경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조상제사의 형태나 방법은 민족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궁극적 제사의 뜻은 신령한 대상과의 원만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드려지는 후손들의 정성어린 상징적 표현이다. 그러나 명절마다 제사 문제로 친족들간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다.사실 믿음이 굳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에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믿지 않는 가족들은 무지와 완고함으로 인해, 또는 제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르지 못한 지식으로 인해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곤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본다.먼저 알아야 할 것은 제사는 산 자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산 자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죽은 자가 더 중요한가?말할 것도 없이 산 자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산 자를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죽은 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제사 때가 되면 살아 생전 부모님께 해 드리지 않던 각종 음식들이 제사상에 오른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제아무리 제사가 효도의 한 본이 된다고 해도 돌아가신 뒤에 제사 한 번 지내는 것보다는 제사상 차릴 돈으로 살아 계신 부모님께 보약 한 첩 지어 드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살아 계신 부모님은 나를 항상 걱정해 주시고 매일 생각해 주시며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 주시려 한다. 그러나 죽은 부모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지만 죽은 부모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우리 나라의 전통은 고대 중국의 왕족 제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죽은 왕들에게만 제사를 지내고 기념했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유교의 영향으로 모든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조상숭배 사상이 보편화되었고, A.D. 1200년경 중국 송나라의 주자라는 사람이 제사의식을 체계화하였다. 이것을 체계화한 학문이 성리학이다.우리 나라는 성리학이 전래된 고려 말엽부터 함께 들어온 라는 책을 통해 조상 숭배 사상이 생겨났고, 이어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성리학을 통치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조상 제사는 보편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종교는 불교였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우리 나라는 불교에서도 제사를 지내지만, 사실 정통적인 불교 국가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그리스도인들이 제사에 대한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효도라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비난받곤 하는데, 제사가 곧 효도라면 조선시대 이전에는 효자가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죽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절대로 효나 불효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살아 있는 부모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는 네 아비와 네 어미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준 땅 위에서 네 날들이 길 것이라"(출 20:12).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참여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나니, 이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라"(전 9:4).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면 죽은 조상들이 와서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이 세상에 다시는 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죽으면 즉시 하늘나라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눅 16:19-31). 우리는 지옥에서의 절규 때문에라도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 지옥에서 고통 당하는 혼들에게 먹지도 못하는 음식으로 약올리는 것이 아닌가? 죽은 조상은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그 대신 제사지낼 때 오는 것은 마귀들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이 말씀에 따르면 제사를 지낼 때 조상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죄짓게 만들고 병을 주며 살인하게 만들고 도둑질하게 만들고 음란하게 만드는 마귀가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를 자주 지내는 사람들은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남을 참소하게 되고(계 12:10), 대적하며(벧전 5:8), 약해지고(요일 2:13), 거짓말하게 되며(요 8:44), 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제사를 지내면 안된다. 그것은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위의 것을 정리하면 제사는 철학적으로 과거지향적인, 순환론적 사고이며, 역사적으로 원래 조상숭배는 없었고, 훌륭한 왕에게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평민도 조상을 자랑하기 위해 제사 드릴 수 있도록 본질이 왜곡된 것이고, 계급차별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선비만이 드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정신에 역행한다. 그리고 왕권에 의해 교육적으로 강요된 것으로 제사를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제사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잘 모시면 자손이 복을 받고, 재액이나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동기가 있다. 죽은 자를 대상으로 한 신앙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예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중 1계명"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계명"어떤 모양으로도 우상을 섬기지 말라"에 어긋난다.그리고 사후 인간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서 버림받는다. 귀신이 되어 머무는 것이 아니며 죽은 자를 인격체로 볼 수 없다. 죽은 자와의 관계에서는 덕, 효등을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사를 반대한다.
◈여행의 예절◈우리나라는 1910년까지 중국지향적이고 1910년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지향적이며, 1945년 이후는 미국지향적이다.1. Topic 선정① 무엇을 볼것인가?② 문헌연구(지역성이 나타남)a. 민속┌일본- 목욕문화, 국수문화│ * 온천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일본이지만 일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 │ "때 목욕"을 하러 많은 관광을 온다.(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 * 일본에서는 우동이나 라면이 많은 발전을 하였다.├미국- 손톱 마사지└독일- 절약문화* 우리나라의 거품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인들은 절약하는 것이 생 활화 되어 있다.(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함이 원인)b. 종교→ 교회마다 건축양식이 다르다.┌동로마 - 비잔틴 - 그리스 대종교(사제의 결혼가능) → 전파└서로마c. 관습→ 우리나라에서 화장지를 쓴 역사는 길지 않다.1910년 10월 10일 신해 혁명의 목표: 식·의·주의 해결(중국인들에게는 식이 가장 우선) 화장지가 없는 곳도 있다.우리나라는 의·식·주이다.※음식문화┌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자장면 수출.├먹을거리가 많은 곳→ 타이완, 중국└우리나라 사람→ 시끄럽고 술과 고스돕을 좋아한다. 이것도 하나의 관습이다.전남의 음식: 홍어회d. 지형과 기후→ 유럽·미국: 노브라, 팬티만 입고 있음.* 유럽은 편서풍이 불어서 너무 덥다. 그러나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유럽과 같은 옷차림이라면 경범죄로 잡히거 나 미친 사람이라는 소릴 듣는다.⇒ 기준과 관습이 다르다. 예) 보신탕③ 준비물a. 가벼운 옷(여행하기 편하다)b. Guide map(안내지도) → 유럽여행은 잘만 하면 돈이 적게 듬정장(정장을 잊지 않으면 식당에 들어 갈 수 없는 곳도 있다.)(Guide map에 모든 것이 다 나와있기 때문)c. 여행자수표d. Note book(모눈종이)→ 일정을 써라. 예)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고..e. Camera(캠코더)→ 외국에 찍을 곳과 찍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구상화 같은 그림은 찍으면 색이 변하기 때문에 찍으면 안됨)┌ 세계 최고의 박물관: 대만의 중산 박물과.└ 외국은 극장이 다 따로 있음.예) 볼쇼이 극장: 볼쇼이 발레단,차이코프스키 극장: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주로 연주f. 열쇠 및 고리→ 외국에는 도둑이 많기 때문에 증명사진을 7장 정도 복사 해 놓고(여권 을 잃어 버렸을 때 증명사진을 제공하면 하루만에 나옴) 열쇠는 깊숙이 숨겨 놓아야 한다.g. Name card(명함)→ 유럽에서 똑같이 학생 취급을 받음. 외국은 학생들에게 천국이다.주정부에서 보조가 많이 나와서 혜택이 많음.독일: 국제학생증을 준비하면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예) 독일 대학 식당2. 출입국절차에 대한 이해(1) 공항 수속비행기: 1903. 12. 17 (orvile and wilbur wright)발명→2초동안 36m 간 것이 시초Flyer호 → North carolina state.Kity Ha자우리나라: 1년동안 비행기를 4억 정도타고 다님.※ 항공기의 Check-ina. 1:30 - 2시간 전에 도착 → 30분전에 마감하기 때문에...비행기표를 가졌다고 다 탈 수 있는 것은 아님. 갈아탈 땐 3시간의 여유가 필요.*C number를 알아야 함(이 번호를 알아야 잃어버렸을 때 재발급을 받을 수 있음.)b. 여권과 visa→ 공산권에 비자가 필요함. (알바니아...)대부분의 나라들은 비자가 필요 없다. (캐나다...)가장 까다로운 나라는 미국→ 취업기회가 많음.c. E/Dcard(출입국 카드),비행기 쿠폰→ 이런 것을 제시하면 Bording Pass(탑승권)을 줌*비행기 안에서는 신발을 벗지 않는다. 일본은 우측통행, 우리나라는 좌측통행
1. 비극의 정의와 효과비극은 시학의 핵심부분이다. 예술은 각기 모방되는 대상과 사용한 수단과 모방양식에 따라 달라짐을 설명하고, 이제 그는 비극에서 모방하는 대상은 진지한 흥미의 행위이거나 인생의 단편(그 자체로 완전하고 중대성을 지닌 사소한 것 이상의 충분한 길이와 진지함을 내포한)이라는 사실, 사용된 수단은, 모든 가능한 양념, 예를 들어 멜로디나 조사법 등에 의해 맛이 돋구어진 언어라는 사실, 그리고 모든 모방양식은 극적이라는 것, 즉 이야기가 설명이 아니라, 관중에게 연민과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등장인물에 의해 행동하여지며, 이 결과로 비슷한 감정을 전달함으로써 기쁨을 주는 감정완화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된다.비극의 흥분은 우리의 감정에 기쁨을 주는 완화작용을 한다. 속 시원히 울어버리는 것은 감정의 완화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비극에서 훌륭함을 느끼며 평정한 마음으로 모든 격정을 버린 채 극장을 나오는 것이다.비극은 여섯 개의 구성요소로 분석된다. 그것 중 세 가지는 모방대상인데, 삶의 구성 플롯이나 부분(인간의 행위나 경험), 인물의 성격(도덕적 특질), 그들이 나타내는 사상성(지적특질)이다. 그 요소 중 나머지 두가지는 사용된 모방수단으로, 조사법과 멜로디이다. 여섯 번째 요소인 '장경'은 모방양식으로, 이야기가 청중앞에 무대상으로 나타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이 요소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성을 가장 중시하여 '비극의 생명이며 영혼'이라 말한다. 인물을 묘사함에 있어 아무리 심리학적 정교함을 지닌다 하여도 시적, 수사학적 우수함이 없이는 비극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야기의 핵심과도 같으니까 어떤 모양이나 계획없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과 같다.2. 비극의 구조비극의 적절한 길이에 대한 논의이다. 이것은 시간의 집합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이야기이어야 한다. 만약 그 전체가 아름다운 거라면, 각 부분의 질서 정연한 원리, 즉 한 사건에서의 발전을 이룸에 충분한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 사건의 발전은 선행 원인에서 알맞은 이유로 파생되어야 하며, 필연적인 혹은 개연적인 후속장면에 시작으로 취하여질 수 있어야 한다. 한편 너무나 길어서 끝나기도 전에 시작 부분을 잊도록 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너무나 미세하여 전체에 대한 부분의 비율을 구분할 수 없는 동물은 현미경으로 보기 전에는 아름답지 못하다. 또한 한없이 커서 길이가 수천 마일이 되는 큰 동물도 아름답지 못하다. 왜냐하면 자동차로 달리면서 본다해도 천체적인 인상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전체와 각 부분의 알맞는 비례에 달려있다.3. 비극의 특성과 시의 본질비극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것이다. 구성이나 이야기는 형식의 통일성을 지녀야 하며, 그것은 단일한 전체이어야 한다. 한 주인공의 생애를 그린 이야기가 형식적 통일성을 꼭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극 구성상 선택된 사건은 일치된 전체를 형성하여,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을 삭제하거나 위치를 변경시키면 그 일치성이 무너져 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서로서로 필연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러한 형식의 통일은 이야기 내용을 보편적으로 만듦으로서 얻어진다. 비극에 적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필연성 때문이다. 단순한 우발적 사고는 사건의 결과 필연적으로 우리가 보게 되는 재난이기에 그렇게 많은 공포나 연민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극의 원래의 목적은 옛 전설에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의미를 부가하여 재연하는 것이었다.4.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1) 감정이입감정이입이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을 우리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연극에서는 감정이입이 중요시된다.관객은 등장인물을 가시화하여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행동으로써 사건 진행을 도맡아 해버리는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은 자신이 소유한 사고능력과 행동력을 온전히 등장인물에게 위임하게 되며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행동하지도 않으면서 관객은 자신이 울고 웃는자와 같이 웃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감정이입이 끔찍스런 무기로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을 찾아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예술작품에서 그에게 예술로 제시된 것을 실생활과 현실로써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브레히트도 결코 감정이입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순수한 인식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에는 우호적이었으며 단지 '감상적인 흥청거림'을 멀리하였던 것이다. 시학에서 나타나는 감정이입적 감정들은 연민과 공포이다. 비극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감정이입은 관객이 비극적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에 위치할 수 있도록 환기되고 있는 것이다.2) 카타르시스카타르시스야말로 비극의 정치적 의의가 있는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본질이다. 예술은 자연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나가면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거나 과정에서 일탈할 때에 창조법칙을 형상화함으로써 자연히 목적을 이루도록 한다고 이미 앞에서 말한바가 있다.자연의 일부로써 인간도 일정한 목적을 향한 운동체이다. 국가의 집단생활, 행복, 덕, 저의 등등으로 만일 인간이 이와같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 비극이 여기에 끼여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카타르시스가 작용됨으로써 비로소 성사된다. 카타르시스느 고정작용이며 정화작용이다. 비극체계의 중심이자 본질이며, 목적인 카타르시스를 향해 비극의 모든 구성들은 일목요연하게 짜여져 있으며 결합되어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이입을 아주 위험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또 관객으로 하여금 그에 내재한 불손함을 배설시키기 위하여 카타르시스를 비극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위압적인 비극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체계의 구성요소 중 급전, 발견, 파국을 상정시키고 있으며 그것들의 긴밀한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5. 구성의 종류와 요소단순구성에서는 주인공의 운명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직접 바뀌거나 그 반대가 된다. 복합구성에서는 어떤 발견의 요소가 운명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이끌게 되는 절정이나 전환점이 있는데, 그런 것을 그는 급전(운명의 수레바퀴를 갑자기 역전시키는 것)이라 부른다. 급전의 가장 효과적인 형태는 어떤 사실의 발견과 함께 정확한 우연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급전은 종종 행위자 의도의 역전, 즉 주인공 행동의 결과가 그가 의도한 바와 반대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업자득과도 같이 이 극적 요소는 충분히 효력을 가지고 있다.발견과 급전은 가장 효과적인 비극의 두 구성요소라 하겠다. 비극에 공통적인 것으로 세 번째 요소는 파토스(pathos)로, 비극적 사건이나 평정을 말한다.6. 비극의 목적, 예술적 쾌락비극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인간이 국가의 테두리에서 살아 나갈 때 국가의 질서와 규율, 법을 준수하고 지키며 행동하는 인간이며, 그것이 곧 인간의 생명을 약속한다고 선동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비극이 궁극적으로 요구하고 의도하는 것은 결코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변혁적인 실천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닌 수동적이며 체제 순응적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불평등은 정당하기에 뛰어넘고 생각하는 행동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