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의 학교,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교사와 학생 -「로빙화」국어교육과 9621028 전승재-------------------------------------------------------------------------------------{▶영화「로빙화」▶틀에 박힌 주입식 교육보다 자유로운 교육을 추구하는 교사▶권력과 돈의 힘 앞에 무릎을 꿇는 학교 교육▶영재 교육에 소홀한 교육 현실▶학교에서의 교사의 역할▶학교는 권력의 도구성장하면서 인간들은 교사나 부모, 친구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자란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수업이나 가르침 외에도 옆에서 살부빔과 같은 감정의 교류나 삶의 체험, 서로간의 갈등과 화해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제1차적 교육을 담당하는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많은 시간을 학교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교사와 친구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성장기의 교육의 중요성과 긍정적인 교사나 부모상이 나타나 있는 영화들을 쉽게 주위에서 접할 수가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나 홀랜드 오퍼스의 교사,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의 어머니 등이 그 예이다. 여기서는 영화「로빙화」를 교육학적으로 분석하여 보고, 거기에 나타난 교육 현실을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영화 「로빙화」양립국 감독의 1989년 작품 「로빙화」는 20세기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하여 가난한 시골 소년의 순수한 꿈과 좌절을 통해 빈부의 격차와 교육문제, 그리고 독재정치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그 당시 대만은 장재석의 독재 정치로 인해 개인의 창의력이 말살되고, 국가에 의한 획일적인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국정지표를 내세웠던 시대였다. 이 영화에는 이러한 대만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적인 이야기 안에서 간접적으로 풍자되어 진다. 이 영화가 89년 베를린영화에 특별상과 90년 이탈리아 영화제에서 은상을 탄 것은 아마 그러한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미술 선생님이 어린이 미술반을 지도하는데 향장 아들이 열심히 색칠을 하고 팔 때, "이 라디오는 성능이 좋아서 공산당 방송도 잘 들려요"라고 귓속말하는 부분. 그리고 향장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몇 가지 해프닝은 이 영화에 가볍지 않은 무게를 느끼게 해 준다.이 영화의 제목인 로빙화 는 노란 색깔로 아름답지만 꽃 피는 기간이 짧아 이내 시들고 마는 아주 잠깐 피었다가 지는 꽃이다. 농부들이 차나무 밑에 두면 거름이 되어 차나무를 잘 자라게 해주는 꽃, 그래서 죽어서도 좋은 향기를 선물하는 꽃의 이름이다. 로빙화의 짧은 생애는 주인공(아명)의 슬픈 일생으로 그것은 다시 그 꽃을 시들게 만든 어른들의 무지와 이기심, 시대의 어둠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주인공 역할을 맡은 황현곤 은 주윤발이 주연했던 「우견아랑」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연기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데, 이 작품에서 역시 촌스러운 자유분방한 시골소년의 연기를 능청맞게 잘 소화해 냈다.영화가 시작되면 화면 가득 차밭과 노란 꽃이 보입니다. 그리고 귀여운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나옵니다."여러분이 보시는 꽃이 바로 로빙화! 한때 잠깐 피었다가 시들어버리죠. 농부들이 차나무 밑에 두면 거름이 되어서 차나무를 잘 자라게 만들죠. 죽어서도 좋은 향기를 전해주는 꽃이에요."로빙화 밭을 키우고 있는 아명이네 가족은 가난하고 엄마가 없지만 열심히 사는 가족이다. 주인공 아명은 개구쟁이고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사고만 치지만 아주 천진난만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시골 소년이다. 아명의 소원은 강 건너 보이는,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하얗게 빛나고 황혼녘이면 노을에 물들어 주홍빛으로 변하는 앞산의 풍경을 여러 색깔로 담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바라볼 뿐, 아명은 종이와 크레파스를 살 돈이 없어 그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의 누이 아매는 어린 나이에도 먼저 돌아가신 엄마대신 살림을 도맡아 하고 어린 동생을 돌보며 아버지의 일을 돕고 열심히 공부하는 소녀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완고하고 엄하신 분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가장이다. 세 가족은 로빙화 밭을 일궈가며 생계를 유지한다.그러던더 높이 평가하고 아명을 북돋아 준다.획일적인 교육과 동네이장에게 아부하는 대부분 교사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주관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미술을 가르친다. 사생대회가 다가올수록 아명은 점점 더 열심히 그림에 몰두한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농약조차 뿌리지 못해서 벌레를 잡아야만 하는 현실 때문에 아매와 아명은 며칠 간 학교에 나가지 못한다.그런 아명의 사정을 알고 미술 교사는 아이들과 같이 벌레를 잡기도 하고 동네이장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대신 농약을 뿌려줄 것을 건의해서 아명이 다시 학교에 나오게끔 한다.그리고 곽 선생님은 전국 미술 대회 대표로 아명을 추천하지만 동네이장에게 아부하는 대다수 교사들의 반대로 결국은 이장의 아들(임지홍)이 대표로 나간다. 미술교사는 회의감에 젖어서 아명의 그림을 한 장 받은 후 이 마을을 떠난다.아명은 그림을 그리던 중 죽고 아명의 그림은 세계 아동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소식이 전해진다. 미술교사가 아명의 그림을 대신 출품시킨 것이다. 예기치 않은 수상소식에 마을은 갑자기 천재소년 고아명의 찬사로 술렁이고 누나 아매는 속울음을 삼키며 동생 대신 연단 위에 올라가 소감을 말한다."아버지가 표준어를 몰라서...제 동생 때문에 이렇게 더운 날씨에 햇볕아래에 있게 해서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동생이 그린 그림은 괴상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은 모두 동생을 천재라 하지만 상을 받기 전에는 곽우찬 선생님만이 그러셨습니다. 동생은 마을풍경을 큰 도화지에 그려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는데...그만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풍경은 변함 없는데 동생의 그림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나갔습니다."무덤 앞에서 흐느끼며 그림을 태우는 아버지와 누나,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과 곽 선생님, 또 아명의 영혼인양 강가를 나는 하얀 새 한 마리, 그리고 물안개 위로 이 영화의 주제가인 로빙화 라는 노래가 흐르면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 「로빙화」는 끝이 런 아명의 그림은 웅변대회에 나가는 학생에게 앵무새처럼 선생님들이 가르친 대로 말하게 하는 등의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 현실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아명은 천재적인 그림 소질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그러나 새로 오신 곽우찬 선생님은 달랐다. 그는 획일적인 교육과 동네이장에게 아부하는 대부분 교사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주관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미술을 가르쳤다. 단번에 아명에게 천재적인 소질이 있음을 알고 여러모로 용기를 북돋워주었다.미술시간, 아이들의 그림을 둘러보던 곽 선생님은 아명에게 다가와 묻는다. "왜 태양이 파란색이지?" "그래야 아버지가 쓰러지지 않아요!" 며칠 전 아명의 아버지는 차밭에서 일하시다 태양열 때문에 쓰러지신 적이 있어 아명은 빨간색 대신 푸른색으로 태양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다르게 그렸다 하여 벌을 주거나 꾸중하지 않고, 아명의 상상력을 인정하고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보인 대로만 그리는 이장의 아들의 그림보다 생각대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유롭게 그리는 아명의 그림을 더 높이 평가하고 아명을 북돋아 준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이전에 무언가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곽 선생님은 알고 있는 것이다.(그렇지만, 사실적 묘사가 강한 임지홍의 그림을 곽 선생님은 사진기의 존재를 빗대어 비판하는데, 사실 똑같이 본따서 그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임지홍의 그림은 그 그림대로, 고아명의 그림은 그 그림대로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력이 부족한 그림이라 하여 상대적으로 임지홍을 무시하는 곽 선생님의 소신(?)은 또 다른 흑백논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권력과 돈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 학교 교육아명은 그림을 잘 그리지만 그에겐 높은 벽이 있었다. 같은 반인 동네 이장의 아들이다. 작년에도 미술대회에 나간 빽이 든든한 아이인 것이다. 곽 선생은 아명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전국미술대회에 아명을 위해 아부하는 모습에서 돈이 곧 힘을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학교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학교는 그것이 속해 있는 사회, 더 크게 보면 국가의 힘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영재교육에 소홀한 교육 현실아명은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기의 상상력을 투영하여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 현실은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엉뚱하게 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명의 재능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새로 오신 곽 선생님이란 분은 단번에 아명에게 천재적인 소질이 있음을 알았다. 학생의 천재적인 소질과 잠재 가능성을 살려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견해내는 일이다. 지능이 영재를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일 수는 없지만, 대개 지능이 같은 연령층 중상위 2% 내에 속하는 부류를 영재라고 한다. 영재교육은 특수교육의 한 영역으로, 농아·맹아·지체부자유아·정신박약아 등의 교육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상아와는 다른 특수한 방법으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효율적인 교육이 가능하다는 뜻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영재의 창의적인 생각을 학교, 교사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고, 그들이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불합리한 학교측 태도에 치를 떨며 아명의 그림을 챙겨 들고 마을을 떠나던 날 곽 선생님은 아명의 그림 한 점을 세계 미술대회에 출품, 결국 대상을 받게 된다. 뒤늦게 아명의 천재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명이 이미 죽은 후였다. 더 이상 그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를 놓친 영재교육은 안 하는 것이 낫다. 예기치 않은 수상소식에 마을은 갑자기 천재소년 고아명의 찬사로 술렁이고 누나 아매는 속울음을 삼키며 동생 대신 연단 위에 올라가 소감을 말한다. 동생이 그린 그림을 모두 이상하게 여겼지만
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일탈의 정의와 범위2. 사례 소개3. 실태 조사 및 분석(1) 질문지법을 통한 조사(2) 면접법을 통한 조사(3) 종합 분석4. 개선방안Ⅲ. 결론Ⅰ. 서론우리는 누구나 일탈 행동을 꿈꾼다. 평범한 일상이 반복될 때, 일상에 대한 불만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일탈 행동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탈 행동에 대해 간과할 수는 없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도 일탈 행동의 충동을 느꼈다면 언제나 일탈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그래서 우리는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일탈 충동을 느끼는 지'를 조사하고, 그것의 충동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연구해 보기로 했다.그러나 전 연령층을 상대로 연구하기에는 너무 연구의 내용이 방대하므로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쉽고 자아가 아직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 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하려한다. 또한, 문헌자료를 통해 그 동안의 연구를 살펴본 결과) 『한국 중등 학생의 의식 및 생활 실태 조사 연구』참조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일탈행동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조사 대상을 여고생으로 한정하였다.Ⅱ. 본론1. 일탈의 정의와 범위일탈에 관한 일치된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대적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에 때와 장소에 따라 그 내용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탈이 비록 광범위한 행동 범주를 갖고 있어서 그 개념의 정의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접근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개념을 추출해 낼 수는 있을 것이다.넓은 의미에서의 일탈행동은 ① 사회체계들이 갖고 있는 규범적인 규칙과 이해 및 기대를 져버리는 규범 이탈적 행위 ②어떤 평균적 관점에서 볼 때 좋지 못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통계적 비정상 ③ 심리학적 측면에서 정신병이나 성격분열 등을 포괄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은 좁은 의미로서 그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으로부터 상당한 정도로 차이가 나는 행위를 의미하며, 행동적인 입장을 고려한다면 한 사회의 행위규범을 파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2. 사례조사사례 ①영화 속에는, 학급에서 반장이고 전교 일등만 하는 '소영'이라는 여학생이 나온다. 그 학생은 부잣집 아이이고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여학생은 점심시간이 되면 폐관된 미술실에서 담배를 상습적으로 피우고 선생님들은 그녀에게서 모범적이고 순종적인 이미지룰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반학교적인 생각과 언행을 일삼는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사례 ②영화 에는 현재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로미'라는 여학생이 나온다. 그녀는 일학년 때부터 쭉 일등급만을 해왔다. 그녀의 친구들 역시 전체석차 3%에 속하는 우등생들이다. 또한 그녀의 가정 형편은 상류층에 속하는 부잣집이다. 그녀는 대학에 가기 위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가끔은 나이트 큽럽 등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신나게 춤을 춘다. 또 남자 친구와 불건전한 만남을 갖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밤거리를 질주하기도 한다.사례 ③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 했고 깔끔하게 생겼었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항상 날 좋아했고 또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어도 날 싫어하시거나 문제아로 찍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교우관계도 원만했으며 나에게 특별히 문제 될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난 내 일상이 언제나 지겨웠다. 그러던 중에 고등 학교로 진학했고 날 아는 아이는 그 학교에 별로 없었다. 난 변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문제아라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 아이들은 내가 공부도 잘하고 해서 자신들과 어울리려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자신들에게 접근하니까 상당히 나에게 잘 대해줬다. 그래서 그 아이들과 난 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담배, 술 등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이성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깊게 들어갈수록 난 두려웠다. 선생님 일탈 충동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해줬고 그건 결국 나의 평온한 일상생활을 흐트려 놨다.위의 사례들은 청소년의 일탈 행동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례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청소년의 일탈행동을 제시해 준 것이고 세 번째 사례는 실제 고등학교 학생의 이야기를 실은 것이다.이 세 사례가 보여주듯이 청소년의 일탈행동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소위 문제 학생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행동이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3. 실태 조사 및 분석(1) 질문지법을 통한 조사우리는 서울에 위치한 명성여고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였다. 조사 대상은 50명이고 여학생만을 조사하였다.★설문지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상명 대학교 국어교육과 학생들입니다. 이 질문지는 고등학생들이 일탈 충동과 일탈 행동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솔직한 생각과 성의 있는 대답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번에서 6번까지의 문항은 여러분의 최근 1년 동안 경험한 내용과 정도 수를 묻는 것 입니다. 질문에 ○ 혹은 ×로 대답해 주십시오.1. 술을 마신 적이 있다.① ○ ② × → ' 1-1 ' 로 가시오1-1. '×'라고 대답한 경우에,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은 있는가? 있 다면 언제인가요?①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 (예: 공부하기 싫을 때, 성적이 떨어졌을 때....)② 가정에 불화가 생겼을 때③ 교우관계 (예: 친구와 다툼, 친구의 유혹, 이성교제 문제.....)④ 기타 ( )⑤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2.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2-1. '×'라고 대답한 경우에,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은 있는가? 있 다면 언제인가요?①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 (예: 공부하기 싫을 때, 성적이 떨어졌을 때....)② 가정에 불화가 생겼을 때③ 교우관계 (예: 친구와 다툼, 친구의 유혹, 이성교제 문제.....)④ 기타 ( )⑤ 충동을 느낀 적이친구의 유혹, 이성교제 문제.....)④ 기타 ( )⑤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4. 무단 결석 또는 조퇴를 한 적이 있다.4-1. '×'라고 대답한 경우에,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은 있는가? 있 다면 언제인가요?①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 (예: 공부하기 싫을 때, 성적이 떨어졌을 때....)② 가정에 불화가 생겼을 때③ 교우관계 (예: 친구와 다툼, 친구의 유혹, 이성교제 문제.....)④ 기타 ( )⑤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5. 불량서클에 가입한 적이 있다.5-1. '×'라고 대답한 경우에,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은 있는가? 있 다면 언제인가요?①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 (예: 공부하기 싫을 때, 성적이 떨어졌을 때....)② 가정에 불화가 생겼을 때③ 교우관계 (예: 친구와 다툼, 친구의 유혹, 이성교제 문제.....)④ 기타 ( )⑤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6. 학생 출입 금지 영화를 보거나 나이트 클럽, 술집에 간 적이 있다.6-1. '×'라고 대답한 경우에,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은 있는가? 있 다면 언제인가요?①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 (예: 공부하기 싫을 때, 성적이 떨어졌을 때....)② 가정에 불화가 생겼을 때③ 교우관계 (예: 친구와 다툼, 친구의 유혹, 이성교제 문제.....)④ 기타 ( )⑤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결과 알아보기문항 응답설문지 결과(명)○×1*************644524861733응답문항설문지 결과(명)①②③④⑤1-12*************23-1141*************65-12252376-1139911(2) 면접법을 통한 조사여고생 K양과의 면접 - 이 면접자 선정은 가장 표본이 될 수 있는 여고생을 택했으며, 녹음의 방법을 사용했고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다음은 질문자와 면접자와의 대화내용이다.질문자 : 면접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혹시 일탈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면접자 : 글쎄요, 많은 사람들이 '일탈 .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아마도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는 제가 하라는 것 다하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 안 하고 착실한 줄만 알지만요. 저도 가끔은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하지요. 저는 인문계라 야간 자율학습도 잘 못 빠지니까 언제나 학교에 매여 사는데 제 친구 중에 하나는 미술로 대학을 진학하는데,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갈 수 있는데요. 그 친구는 그래서 학원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도 마시고 놀러 다닌다고 해요. 그리고 남자친구들과도 많이 놀아요. 술도 잘 마시고 당구장에도 가고, 그런 것 보면 너무 부럽지 뭐에요. 아마 저도 조금만 용기가 있고 제게 여건이 조성된다면 그렇게 놀고 싶어요. 사실 한 번도 술집엔 안 가봤는데요, 가끔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그리고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요, 호기심도 생기고 참 부러워요. 술 취하는 것도 어떤 것인지 궁금하고 그리고 남자애들하고 당구장에도 가고 또 그 밖에 다른 곳에도 놀러 다니고요,,,하지만 생각뿐이죠. 아마 언니들도 제 마음 다 이해하리라 봐요.질문자 : 그래요, 나도 이해해요. 저도 예전에 다 그랬으니까, 그런데 언제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면접자 : 난 단지 공부가 너무 지겹고 안될 때......그리고 아, 엄마가 너무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할 때면 순간적으로 청개구리 심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공부하기 싫고 그런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요. 아니면, 담임 선생님께서 '성적이 이게 뭐냐고' 야단 칠 때,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는데, 정말 그럴땐 짜증나서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고 미치도록 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자꾸 뭐 하지 말아라 너무 강조하고 규제하면 왠지 더 호기심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요. 저는요, 언니도 알다시피 우리 학교가 흰 건물이잖아요. 마치 정신 병원 같지 않아요? 아니면 감옥 같아요. 우리에겐 자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받는 많은 스트레스를 풀 방법도 없고요. 그러니까 그런 방.
1. 들어가면서사람과 동물을 구별하는 유일한 척도는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또 다른 면에서도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큰 차이는 인간만이 언어를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가 인간과 함께 있어왔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존재 가치를 의식하지 못하고 당연히 주어진 것처럼 여기고 있다. 즉, 언어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된 인지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그러면 언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간단히 정의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언어를 말소리를 매개체로 한 의사소통의 체계 로 간단히 정의해 버리고 있고,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언어 교육을 보더라도 언어를 의사매체의 한 수단으로서 음운이라든지, 형태, 통사 등과 같은 언어의 형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면 동물세계에도 비록 원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들만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암호, 기호(음성이나 몸짓으로 된)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의 언어에는 의사소통의 기능이외에 무엇인가가 언어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밝히는 것이 바로 언어의 본질을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지금부터 언어의 본질이 무엇이며, 오늘날 언어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나아가서 바람직한 언어교육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다.2. 언어의 본질인간은 언어를 지녔다. 지상의 어느 미개한 민족이라도 문자언어는 가지지 못했을지라도 음성언어는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언어는 인간임을 나타내는 증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지닌, 언어 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인간은 거의 예외 없이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사상이나 경험 등을 이야기한다. 즉, 언어를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해하고 표현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인간 사회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즉, 것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의미가 부여될 때, 존재가치를 갖게 되고, 인간의 사고 체계에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언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표상하는 것으로 언어에 의한 표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상이란 실질적으로 인간의 사고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이다. 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범위 내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색과 오렌지색이라는 다른 두 가지 말을 갖고 있는 미국인과 색을 모두 공통으로 하나의 단어로 총괄하는 토착 인디언의 색깔 구별을 비교해 보면, 미국인이 토착 인디언보다 색깔 구별을 더욱 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편적인 예이지만 언어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의 인식은 더욱 정교화되고 체계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최초로 언어를 인식 그 자체로 보기 시작한 홈볼트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모든 인간의 개별적, 사회적 발달 단계에 앞서서 존재하여 그러한 발달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사유하는 데에서의 주관적 활동은 객체를 형성한다. 왜냐하면 사유를 통한 그 어떤 표상도 단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수용적으로 주시하는 것으로만 고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감각의 활동은 정신의 내면적 활동과 종합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에서 표상이 떨어져 나오면서 주관적 힘에 대치되는 객체가 되고, 그런 다음에는 객체로서 새롭게 지각되어 주관적 힘에 되돌아 작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란 필수불가결하다. 왜냐하면 언어 안에서의 정신적 추구가 입술을 통해 시작되면 그러한 추구의 결과로 산출된 것이 자신의 귀로 다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즉 표상은 실제적인 객관성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주관성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은 오로지 언어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가 없이는 좀 더 정확히 표현해서 언어의것은 외부와 차단된 고독한 개별적 인간이 사유하는 데에서 역시 필수적인 조건이다. {) 정영근, 「W. v. 홈볼트의 언어철학을 통해 본 인간도야의 의미」, 『인문과학연구 제5호』, 상명대학교, 1996, 547쪽에서 재인용언어만이 인간의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유하는 힘 이며, 사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유하는 것이 인간만이 지니는 고등정신 능력이라고 할 때, 언어는 곧 인간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3.언어교육의 이상과 실제1)언어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삶은 언어라는 체계 안에서 형성되고 구체화, 정교화되기 때문에 언어는 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인간이 지각하고 결정하는 모든 사고체계와 그것으로 인한 행동은 모두 언어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언어교육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중요시해야 할 내용이다.인간이 자신의 내면 세계를 고양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류 전체를 이상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자기완성을 해나가는 과정은 언어에 의해 사고 체계가 정교화되고 체계화되는 가운데 이루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언어 교육은 주체가 자기완성을 이루고 더 나아가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이것은 일종의 인간 도야를 실천하는 것이라 하겠다.홈볼트의 언어철학에서 인간의 도야는 이중적인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먼저 도야는 주관적으로 제약된 세계관을 객관적인 지평에서 확장해나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인 자신을 세련되게 고양시키는 일, 즉 주체성으로서의 내가 인류 전체를 이상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자기완성을 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정영근, 위의 책, 550쪽즉, 여기서 말하는 도야는 인간의 개별적 주관과 세계의 관계를 포함하는 것인데, 언어 교육이 이러한 인간 교육의 중핵이 된다고 보고 있다.언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독백적이 아니라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항상 주체이외의 다른 세계( 너 라의 과정을 통해 개별적 인간의 정신세계는 더욱 깊이있고 체계화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개별적 인간의 정신세계를 확장시켜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언어교육이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 때, 언어교육은 단순히 단어, 문장, 글 등의 언어 형식만을 가르쳐 준다거나, 언어의 기능을 나누고 그 하위 기능을 위계적으로 가르치는 단편적 지식교육에 흘러서는 안된다. 언어교육은 사고의 깊을 더해줄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것이다.언어교육이 인간의 사고 체계를 깊이 있게 하고,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할 때 가장 기초적인 것은 풍부한 어휘력과 정확한 문법적 틀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언어 생활을 보면, 민주주의 , 세계화 등의 단어들을 자주 언급한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그 뜻을 깊이 있게 인식하는 교육은 소홀하다. 다만 언어의 형식만을 부여하고, 알맹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말의 사용법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허술한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언어 가 아니 암호개념 을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언어 교육은 사고의 깊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어휘의 내용을 이해함으로써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고, 그러한 단어들을 정확하게 조합함으로써 정확하게 자신의 사고 체계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언어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한편, 모국어 교육뿐 아니라 외국어 교육도 언어교육의 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고를 확장시켜나가고, 그 사고는 개인적인 사고와 집단적인 사고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개인의 사고 속에 형성된 개인적 가치관이 있는가하면 그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의 사회적 가치관이 있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살펴볼 때 어떤 언어권, 예를 들어 한국어 사용권과 영어 사용권의 개인 내지 집단적 사고는 각 언어별로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한국어와 국어 대학교,1997, 193쪽이처럼 외국어 교육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방법을 하나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어 교육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너무 조기에 외국어 교육을 실시할 경우, 개인적 사고 내지 집단적 사고에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어 교육은 사고의 폭을 확장시켜주고, 한 개인의 세계관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2)우리나라 언어교육의 실제우리나라의 언어교육에서는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 이해하는 관점이 강했다. 그래서 국어교육을 생활과 학습을 위한 문자교육으로 손쉽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며, 외국어는 주로 사회·경제적 요구와 필요성에 의해 배우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정영근, 「교육개혁에서의 언어교육의 문제」, 『교육철학 14-1호』, 한국교육학회 교육철학연 구회, 1996, 111쪽특히 언어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모국어교육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 공식적으로 7번의 교육과정의 개정이 있어왔으나, 여전히 단편적 지식 교육에 그치고 있다. 즉, 우리의 언어교육은 언어의 형식적인 틀을 아는데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면 음운, 어휘, 어법, 문자의 이해 등이다. 이것은 언어의 형식 자체에 대한 학습으로 이러한 언어교육은 인간의 개별적 사고체계를 확장시키고, 세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이미 이러한 언어교육의 문제점은 1차 교육과정 때부터 제기되었다. 이 때부터 제기된 국어교육의 문제점은 지식을 부여한다거나 이해력을 길러줌으로써 연역적으로 언어 기술을 숙달시키려 하였고, 감상과 창작의 힘도 지식을 통해서 주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또 국어의 추상적 지식은 어법의 지식이나 문자 어구의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지식은 언어 활동을 통하여 얻을 수 있으며, 그렇게 얻은 지식이야말로 필요한 것이다. 단순한 언어의 추상적 지식은 사물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이해는 줄 수 있으나 생명을 부여할 수 없다.이 본다.
Ⅰ. 비평가 김동석과 그의 문학1. 연보1913년- 9월 25일 경기도 부천군에서 경주 김씨 아버지와 파평 윤씨 어머니 사이에 2남4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고 아명은 김옥돌.손위 누이 금순이 1911년 일찍 사망하고, 아우 옥구와 옥순이 어려서 잇달아 사 망하여 김동석은 이후 1남 2녀의 장남으로 성장함.1921년- 3월에 경기도 인천부로 외리 75번지로 이사.이 무렵부터 서당에서 한학 공부를 함.1922년- 4월 1일 인천공립보통학교 입학.1928년- 3월 인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상업학교에 입학. 학창시절 내내 우수한 성 적이었으며, 조용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에 음악과 운동을 좋아했고 바이올린도 잘 켰다고 함.1930년- 겨울에 인천상업학교 동기생인 김기양, 안경복 등과 광주학생의거 1주년 기념식 시 위를 주도하다 퇴학당함.그 결과로 이듬해 3월 1년 3학기제인 인천상업학교를 3학년 2학기로 수료.1932년- 3월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함.5월 아버지가 이름을 김동석으로 바꿈.1933년- 2월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3월에 경성제국대학 예과로 입학.1935년- 3월에 본과에 진학하면서 영문과로 전과.1937년- 『동아일보』 지상에 처녀비평 「조선시의 편영」(9. 9-14)을 4회에 걸쳐 발표.1938년- 3월 경성 제국 대학 졸업. 졸업 논문은 「매슈 아놀드 연구」.곧 대학원에 입학하였는데, 대학원에서는 셰익스피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함.1939년- 모교인 중앙고보에서 영어교사로 부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에 나아감.얼마 후 보성전문학교(현재의 고려대학교) 전임강사로 초빙되어 해방시기에 이르기 까지 재직함.이 무렵부터 시와 수필을 개인적으로 쓰기 시작함. 1941년까지 5권의 수필만을 발 표하고는 식민지시대 내내 절필하다시피 함.1940년- 경기여고 출신의 인텔리 여성 주장옥과 결혼.1944년- 조선연극문화협회 상무이사직을 잠시 맡았던 것으로 추정됨.1945년- 해방 직후 남원지방의 사회상을 르포 형식으로 담은 「南原事件의 眞相」맹》과 대립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조선문학가동맹》이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워 민족 문학 건설에 주력하였다면,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문학의 본질론인 순수주의 민족 문학을 주장하였다.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김동석 역시 이러한 해방 후의 좌·우파로 양분되고 대립되는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간 문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좌파로 대변되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서,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반목을 일으켰던 비판과 논쟁을 통해 그 자신의 문학론을 실천하여 나간 것이다.(2) 비평가 김동석과 그의 비평세계1) 해방 전기(일제 식민지)1 수학기 : 동양적 교양과 맑시즘의 인식 형성▶ 김동석이 어릴 때부터 받은 서당교육은 그에게 한학적 세계관과 더불어 불교, 노장 사상 등 다양한 동양사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는 그의 인식의 폭을 넓히는데 영향을 주었고 또한 그의 문학관 형성과 사상에 인식론적 기반이 되었다.그가 서당교육을 받은 이후 영향을 받은 사람은 비평가 매슈 아놀드{) Matthew Arnold(1822∼1888) : 1822년 영국 레일럼 언 템즈(Laleham-on-Thames)의 중산층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888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그는 1860년대 이후 병든 사회 와 병든 인간에 대해 경험한 그대로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비평에 있어 사회에 대한 단순한 고발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치료자 로서의 역할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사회비 평서인 『교양과 무질서(Culture and Anarchy)』(1869.1)와 종교에 관한 글인 『문학과 교리 (Literature and Dogma)』(1873.2)등이 있다.이다. 아놀드는 비평의 공평무사한 노력을 강조하고 문학정전으로서의 시금석과 전통을 고창한 비평가였고, 생활의 비평 을 주장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김동석은 이러한 아놀드의 생활의 비평 을 받아들였다. 이후 아놀드의 비평관과 더불어 그가 받아들인 사상은 맑시즘이었다. 당시 ◎「文化人에게-『상아탑』을 내며」(『상아탑』, 1945.12) : 해방을 맞는 김동석의 현실인식과 문학관이 드러나 있다. 그는 이 글에서 8·15 이후의 역사적 현실을 맞아 지식인· 문화인들은 자기 사명을 명확히 각인하고 참다운 조선문화의 건설로 나아가자고 내세우고 있다.◎「민족의 자유」(『신천지』, 1947.8) : 당시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직접적 대상으로 정치적 정세의 핵심을 지적하고, 민족의 자유를 위하여 모든 인민이 단결하여 민족의 자유를 옹호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2『예술과 생활』의 시기김동석은 『상아탑』이 종간되는 1946년 중반을 전후해서 문학관 지향의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되었다. 당시 정국은 미군정과 좌익의 대립으로 정세가 상대가 험악해져가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동석은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는 이 같은 당시 사회환경과 정세를 계기로 해방 초기의 새로운 민족문화 건설과 정치에 초연하고자 했던 상아탑 정신 과는 조금 다른 문학관을 정립하게 된다.이 시기에 그는 일련의 작가론을 통해 민족문학의 위상과 의의에 대한 모색에 들어갔다. 특히 청년문학가의 수장 격인 김동리에 대한 작가론 「순수의 정체」을 쓰고 부터, 김동석은 민족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김동리와 김동석을 주축으로 하는 순수문학논쟁 이다.김동석에게 있어 민족문학이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민주적이어야 했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 민주주의적이 되려면 민족 전체의 생활을 위한 문학 이 되어야 했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인민적 리얼리즘 이라는 방법적 원리와 만나면서 그 의의를 지닌다. 그가 말한 인민적 리얼리즘 이란 인민 민주주의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우는 인민의 문학을 말하는 것이었다.이와 같은 김동석의 변화는 해방 초기 상아탑의 정신 이 보여준 민족현실에 대한 의식과 지식인의 사명감 및 정치에 초연하고자 했던 문화적 노력이 좌우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맞아 발생하게 된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술과 객관이 조화로운 통일을 이룰 때 예술로서의 완결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한편, 김동석은 그의 졸업논문인 「생활 비평」{ 「생활의 비평- 매수 아놀드 연구」는 19378년 3월 김동석의 졸업논문이었으며, 이 논문 은 1948년 10월 속간호에 다시 발표된다. 후에 발표된 것에는 좌파의 논리가 첨 가 되었으며, 당시의 북한과 남한의 정세를 담고 있다.에서 매슈- 아놀드{ 매슈 아놀드는 영국의 신휴머니즘 계열의 비평가로 19세기 중반경의 작가이다. 그는 산업 화의 모순이 점차 심화되는 시기에 문학은 예술의 순수성에 탈피한 사회적 순수성과 대 상에 대한 실재 존재하는 그대로의 비평, 공평무사한 객관주의 세계관의 확보 등이 이루 어져야 한다고 보았다.에게서 영향을 받은 생활 문학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김동석은 매슈 아놀드의 생활문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실재 존재하는 그대로의 비평- 실천 비평 의 관점에서 문학은 객관적 현실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생활 문학은 엄정한 현실과 결부된 것으로 여기서 현실이라는 것은 생활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즉, 그가 말하고 있는 생활이라는 개념은 작품이 그리는 현실 대상 가운데 드러나는 본질적인 측면을 그리는 반영론적 개념에 해당한다.2 리얼리즘과 민족문학김동석의 생활 문학이 현실과 관련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써 그는 리얼리즘 문학을 토대로 하고 있는 민족문학론을 주장한다.그것은 생활을 위한 문학이 되라는 것이다. 봉건제도하에서나 또는 일제시대와 같이 조선 민족의 생활이 전체적으로 암흑 속에 있어, 갈 바 길을 잃었을 때에는 리얼리즘이 성립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갈 바 길을 찾고 있는 오늘날,.......(중략).....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광명과 희망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문학이라야 한다. { 김동석, 『뿌르조아의 인간상』, 87p.그는 해방기 우리문학은 민족의 현실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이러한 현실적 문제에 대응하는 문학은 현대의 과학적行車 속」(『동아일보』, 1935.8.11) 등이 이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카프가 있었던 시기의 임화가 쓴 시에는 거의 모두가 투쟁현장이 노래되고 그것을 찬양·고무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으나 35년도 중반기 이후 그의 작품에는 분명하게 그런 색조가 가셔져 있는 것이다.그가 가장 많은 양의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37년도이다. 이 해에 그는 「지상의 시」(『風林』, 2), 「너 하나 때문에」(『風林』, 3),「안개 속」(『조선문단』, 5), 「바다의 찬가」(『조선일보』, 6.23), 「지도」(『동아일보』, 11.3)등 10편을 웃도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 무렵에 발표된 임화의 시도 노동운동, 계급투쟁이 다루어진 자취는 나타나지 않는다.카프가 해체된 1935이후로 임화의 시는 관념적·서정적인 시로 변화되는 것이다.(4) 제 4기: 프롤레타리아 계열의 시(1945년 이후)제4기의 임화의 시는 다시 프롤레타리아 계열의 시로 돌아가게 된다. 8·15이후의 임화의 시작활동을 살피려는 경우 좋은 자료 구실을 하는 것이 그의 제 2시집인 『讚歌』이다.여기에는 「九月九日」,「길」,「발자욱」,「獻時」,「學兵 돌아오다」,「三月二日이 온다」,「나의 눈은 핏발이 서서 감을 수가 없다」,「우리들의 戰區」,「높은 山 봉우리마다」등 모두 열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2. 김기진의 평론 「단편서사시의 길로」(『조선문예』Ⅰ, 1928.5)임화의 「우리 오빠와 火爐」가 발표되었을 때 이 작품은 카프내에서 성공적인 프로시의 한 본보기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이 작품을 다룬 것은 당시 카프의 핵심적인 지도자였고 그 자신 역시 일찍부터 계급시를 쓴 경력의 소유자인 김기진이었다. 그는 당시로 특별한 예에 속하는 일로 이 작품 한 편만으로 독립된 시론을 작성했다. 거기서 김기진은 「우리오빠와 火爐」가 계급시의 이상 형태인 단편 서사시에 속한다고 전제하면서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이 작품의 발표되었을 무렵의 우리 시단의 수준을 감안할 때 김기진의 찬사는 카프의 행동구호, 또는 명분만을 앞세운 채 실제작였다.
{천변풍경}에 나타난 공간의 의미 연구이 정 아Ⅰ. 서 론Ⅱ. {천변풍경}의 공간적 의미 연구1. 도시공간으로서의 '천변'2. 통과제의의 공간으로서의 '천변'Ⅲ. 결 론※ 참고문헌Ⅰ. 서 론{천변풍경}은 1936년 8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조광}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새로운 창작 방법을 모색하던 1930년대 평단에 문학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천변풍경}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기법적인 면에서의 참신함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작가 의식의 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사실상 {천변풍경}에 관한 가장 중요한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재서의「[날개]와 {천변풍경}에 관하여」, 임화의 [세태소설론]이 있다. 이 두 비평은 {천변풍경}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분석·평가한 것으로 박태원 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라는 점에 그 의의를 가지며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작품을 거론하는 모든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준거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천변풍경}은 문단의 관심권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으나 1950년 그의 월북으로 그 이상 정면에서의 연구나 언급은 중단되었다. 그러던 것이 1988년 해금조치 후 다시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의 열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 그에 대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역시 그의 문학적 기법의 가치에 대한 긍정적 평가보다는 이념(理念) 부재의 결함을 지적하는 비판이 우세하다.박태원 문학에 대한 논의는 곧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짚어 보는 문제로 귀결되며, 그것은 1930년대 모더니스트들의 문학사적 의의와한계를 규명하는 작업과 직결된다. 문학사와의 관련성이 박태원 문학 논의에서 우선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박태원의 문학사적인위상이 좀더 분명해질 것이다. 또한 박태원 문학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산책자에서 영웅의 세계로, 즉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보여지는 세계관의 본질과 변모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 논의되어야 할 어떤 의미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논의해 보고자 한다.Ⅱ. {천변풍경}에 나타난 공간적 의미잘 알려진 대로 이 소설에는 뚜렷한 주인공이 없으며, 장편소설다운 중심 플롯도없다. 소설에서의 주인공이란 작가의 사상을 전달해 주는 매개체로 주제의식을 뚜렷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천변풍경}에서의 주인공은 설정되지 않았다. 그러면 작가의 객관적 진실은 어떻게 전달되었는가. 이 문제에 대한 것은 이 소설의서술양식에서 얻을 수 있다. 서술양식에서 객관적 외부 묘사를 하면서 영화기법인몽타주 수법을 원용하여 각 절마다 등장인물이 그 절의 전체적인 주인공이 된다.그러면 작가는 등장인물의 뒤에서 작가의 사상을 담아 서술한다. 결국 주인공이 없다는 것은 모든 등장인물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이 소설은 모두 50개의 절로 이어진, 개별 삽화가 모자이크 방식으로 짜여져 각각의 절들 간의 분량상의 균형 같은 것은 전혀 배려되어 있지 않다. 중심 플롯이없다고 해서 이야기 구조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고 짧은 삽화들은 그것들대로 독자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너무 분산되어 있어서서사 구조의 통일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임화를 비롯해 이 소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논자들로 하여금 '중심 플롯과 전형적 주인공의 실종, 원근법 없는 세부 묘사만이 전경화된 세태 묘사'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도록 만든요소라고 할 수 있다.서사 구조의 단일성, 즉 전통적인 의미의 플롯의 해체 대신에, 그 자리를 메우고있는 것은 '공간의 단일성'이다. 즉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청계천 주변'을 벗어나지 않으며, 분산된 등장인물들은 이 공간의 단일성에 묶여 있다. '천변'은 작은 세계이며, 자기완결적인 현실의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공간의 단일성'에 의미를 두고 '도시공간으로서의 천변', '통과제의의 공간으로서의 천변'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1. 도시공간으로서의 '천변'{천변풍경}은 '천변'을 공간적 배경으로, 1930년대 어느 해 생활 감정의 청신소] 로 광장적 의미의 공간을 지닌다. 즉, 원형으로 만들어진 빨래터에서 그 위로 지나가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듯이 이발소 역시 소년의 앞에 걸린 거울에 의해 밖의 세계가 다 포용된다.소년은 행길 한복판을 거의 쉴 사이 없이 달리는 전차에가, 신기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싶게 올라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머리에, 등덜미에, 잠깐동안 부러움 가득한 눈을 주었다.전차도 전차려니와, 웬 자동차며 자전거가 그렇게 쉴새없이 뒤를 이어서 달리느냐. 어디 장이 선 듯도 싶지 않건만, 사람은 또 웬 사람이 그리 거리에 넘치게 들끓느냐. 이층, 삼층, 사층……웬 집들이 이리 높고, 또 그 위에는 무슨 간판이 그리 유난스리도 많이 걸려 있느냐, 시골서, , 바로 별명 비슷이 불려 온 소년으로도, 어느 틈엔가, 제풀에 딱 벌려진 제 입을 어쩌는 수 없이, 마분지 조각으로 고깔을 만들어 쓰고, 무엇인지 종이조각을 돌리고 있는 사나이 모양에도, 그의 눈은, 쉽사리 놀라고 수많은 깃대잡이 아이놈들의 앞장을 서서, 몽당수염난 이가 신나게 부는 날라리 소리에도, 어린아이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게 들떴다.시골서 온 아이의 동경과는 반대로 서울 {천변풍경} 세상의 오탁은 이 소설의에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그래도 어떻게 소임을 마치고 두 깍정이놈이 줄을 타고 개천에 올라왔을 때, 물은 개천 벽에가 뚫려 있는 토관 구멍에까지 올라왔고, 사나운 물결 위에 차차 크고 작은 널판 조각이며, 오리목 토막이며, 낡은 밀짚 벙거지며, 그러한 것들이 더내려오기 시작하였다.…(중략-인용자)… 깨어진 쪽박이 내려오고, 떨어진 중절모가 내려오고 귤 궤짝이 내려오고 생철통이 내려왔다.어느 날, 그는 개천가에서 동네 아이들이 난데 없이 '아하하하'웃고 떠도는 소리에 놀라, 부리나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개천 속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등 뒤에가 포목전 주인이 맨머리 바람에 임바네쓰를 두르고, 같이 아래를 굽어보는 것이 눈에 띄자, 그는 곧 신기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갔다.말하면, 등장 인물들은자신이 사회학적 지형의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간에 모두 '천변'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근대적 삶의 양식'이라는 통과제의를 '이미 치렀거나' '치르고 있는 중이거나' '아직 치르지 않은'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천변'이라는공간에는 그러한 통과제의의 다양한 이행 과정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각자 그려내고있는 '근대'와 '전근대'적 요소가 서로 뒤섞여 있으며, 그것이 바로 '천변'의 공간적의미를 형성하고 있다.이를테면 한약국집의 식구들은 가장 긍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인물들로서 이들이 치러낸 '근대적 삶의 통과제의'가 제일 무난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들의 자유연애와 신식결혼을 허락한 '완고 노인'의 유연함, 그 식구들이 집안 하인들에게대하는 너그러운 태도, 연애결혼은 곧장 파경으로 이어진다는 '천변 사람들'의 속설을 무너뜨리는 한약국집 아들 부부의 의좋은 '금슬' 등이 그것이다.동경서 갓 나온 한약국집 아들이, 역시 그해 봄에 '이화'를 나온 신식 여자와 연애를 한다는 소문은, 우선 빨래터에서 굉장하였고, 이를테면 완고하다 할 한약국집 영감이,…(중략)… 아들의 말을 들어보고, 한번 여자의 선을 보고 한 완고 영감이, 두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선뜻 결혼을 허락하여 준 것은, 참말, 뜻밖의 일이었다. 그것으로,영감은 개화하였다는 칭찬을 동리에서 받았으나, 아들 내외의 행복에 대하여서는, 객쩍게, 남들은, 또 말들이 많아, ……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그들의 사랑은 참말 진실한 것인 듯싶어, 동리의 완고 마누라쟁이로서도, 이제는 방침을 고쳐, 도리어 그들 젊은 내외를 썩 무던들 하다고, 그렇게 뒷공론이 돌게 된 것은 퍽이나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그 점은 카페 여급 기미꼬도 마찬가지다. 기미꼬는 비록 카페 여급이지만 의리와인정의 화신이다. 같은 처지의 하나꼬(영이)를 진심으로 위하고 그를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않으며, 금순 일가에게는 은인 같은 존재다.카페 같은 데 드나드는 사람들이 결코 좋인 것을 다시 없는 명예로 알고 애용하는 중산모와 금시계로 허세를 부리면서 허위적으로 자신을과시하려 든다. 이쁜이 남편 강석주 또한 신분으로는 전매처의 말단직원에 불과하면서 아내인 이쁜이를 구박함은 물론 허식적이고 방탕한 쾌락 생활에만 몰두한다. 최진국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사와 그의 첩 안성집, 안성집과 젊은 학생, 민주사 와 취옥, 취옥과 최진국 사이에 이루어지는 삼각관계는 당시 부유한 자들과, 이에 기생하여 사는 자들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정뱅이 만돌 아버지는 생활력도 전혀 없어 그의 처 덕에 살면서 술이나 마시고 유부녀와 간통을 하고 죄 없는 처를 이유도 없이 때려 그녀로 하여금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할 만큼 지옥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있다. 카페 같은 곳을 드나들면서 엽색행각을 일삼던 종로의 은방주인은 밀수범임이 드러나 철창행을 하고 시모의 학대에 견디다 못 해 집을 뛰쳐 나온 청상 금순이를 취직시켜 주겠다고 서울로 꾀온 사나이는 실패하고 말지만 그녀를 능욕한 다음 색주가에 팔려 한 인신매매범이다. 금순 아버지가 협잡꾼의 꾀임에 속아 3년 동안 품팔이 해 모은 돈을 거의 다 날려 버리게 되었을 때 마침 그를 만난 지난날의 다정한 이웃, 신서방은 그를 그러한 피해에서 구해 주지만 그 역시 도회살이를 하는 동안 순박성을 잃어 그 돈 일부를 떼어 먹고 사라져 버린다. 이렇듯 이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했거나 배금주의자들이다. 혹은 속물 근성을 지니고 있거나 허영기에 빠져 있거나 폐습인 봉건적 가부장제도의 기득권을 나쁜 쪽으로 행사하는 인물들이다.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근대적 삶에 대한 대응 방식을 마련한 인물들이라면,이제 막 그 '통과제의'의 초입에 있는 인물들도 다수 있다. 재봉과 시골소년 창수를비롯한 당구장의 '껨도리' 소년 소녀들, 그리고 금순이와 만돌 어멈, 금순 아비 용서방, 금순의 시아버지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가난하여 남의 밑에서 일을 하지만은심성이 곧고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려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도시의 근대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