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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사기] 석굴암 평가A+최고예요
    석굴암을 보고나서차례1. 석굴암(石窟庵)을 가게된 이유...2.석굴암(石窟庵)의 역사...①석굴암(石窟庵)의 창건과 그 배경②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난 석굴암③석굴암의 수난3.석굴암(石窟庵)의 과학적 구조4.석굴암(石窟庵)의 우수성5.현 석굴암(石窟庵)의 모습(사진첨부)6.석굴암(石窟庵)을 보고나서...1.석굴암에 가게된 이유...처음 레포트 과제를 보고 난 후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어디로 답사지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처음엔 백제의 유적지가 많은 공주나 부여를 가려고 하였으나 정보의 부족과 백제란 우리의 옛 국가의 자료의 부족과 나 역시 백제에 대한 무지함으로 인해 그나마 수업시간에 많이 접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통일 국가라 일컫는 신라의 천년의 고도 경주를 답사지로 택하기로 했다.경주란 실로 하나의 박물관과 같아서 경주 중에서도 어느 곳을 답사지로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나는 예전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석굴암의 과학적 구조와 주먹구구식 보수공사로 인한 폐해를 방영했던걸 되새겼고 석굴암에 대해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그 이후 석굴암에 대한 여러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한결같이 말하기를 서양의 조각품과는 달리 석굴암은 조각하기 힘든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 다움이나 섬세함에 모두들 극찬한다고 하였다. 실로 예전에 나의 생각은 그러했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은 그 규모에 있어서 외국의 그 것 들과는 큰 격차가 남이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나라 안에서만 볼 때 우리의 문화재가 뛰어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한 것이 사실이다. 실로 전에 외국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문화재의 규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실로 우리나라의 궁전이라는 경복궁도 그 규모가 외국의 궁전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실망한 것이 사실이었다.하지만 석굴암의 과학적인 건축구조와 석굴암이 세계유산으로 지정 된 만큼 예전 수학 여행 때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라 석굴암 본래의 모습을 보고싶었기 때문에 적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들이 김씨왕족 출신이라는점.3.김대정이 중시 자리를 그만둔 다음해(A.D.571)에 불국사와 석불사(석굴암)가 창건된 점.4.석굴암이 향하고 있는 방위(동동남)에 김씨 왕족의 공동 묘역으로 추정되는 동해구(東海口) 및 관련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박사는 두 사찰의 창건을 김대성 개인의 효이세부모를 위한 원찰로서 보지 않고 "그가 국왕의 명을 받들어 그의 만년을 바쳐 나라와 김씨 왕가의 복을 빌어 왕가의 원찰로서 불국,석불 두절을 토함산을 무대로 창립한 역사적 사실을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에는 부분적으로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성 개인의 효이세부모 설화를 그가 김씨 왕가의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김씨왕가의 전세 선조와 현세 일족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향전'에 나오는 전세 부모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전세부모의 성(姓)에 대한 언급이 없이 단지 경조라는 어머니 이름만이 보일 뿐이며, 또 그들은 왕가와는 무관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그 전세 부모를 김씨왕가의 전세선조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문명대 교수는 박사의 견행데 근거하여 석굴암을 조성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첫째, 재상 김대성이 현재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지었고,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 석불사를 지었다는 [삼국유사] 대성효이 세부모의 향전설이다. 즉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창건했다는 것으로 사찰창건이나 탑 불상의 조성에는 가장 빈번하게 들고 있는 동기인 것이다. 다만 김대성이 당대의 재상으로서 경덕왕때 중시를 지낸 김대정과 같은 인물로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무열왕계의 진골이자 효성왕,경덕왕등 역대 왕들과는 매우 가까운 인척간일 것이므로 결국 그의 전세부모라면 태종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등 통일의 주역들인 역대왕들인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당시의 왕실을 위해 만든 셈이 된다.둘째, 김 수 있는 가장 신빙할 만한 자료이다. 일연은 '옛향전'과 당시 불국사에 있던 기록에 근거하여 이를 충실히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가운데 전자에 대해서 '옛향전에 실려있는 것은 이상과 같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옛향전'이라는 것이 당시 전해오던 옛 이야기를 일연 자신이 채록한 것이 아니고 어떠한 형태이든 문서로써 전해져오던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연은 이 민간전승의 자료와 사중(寺中)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사료를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지 않고 가감없이 이를 기록하고 나서는 "어떤 것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라고 결론짓고 있다. 일연으로 하여금 혼돈을 느끼게한 이 두자료의 서로 다른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1)'옛향전'에는 두 사찰의 창건이 신문왕(A.D681-691)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중기(寺中記)에는 경덕왕대(A.D. 742-765)라고 한 점. 이점에 대해서는 일연은 신문왕대를 지지하고 있는듯하다.2)'옛향전'에는 두 절을 창건한 다음 신림과 표훈이라는 두 성사를 각각 머무르게 한 거승로 되어 있는데 '사중기'에는 불국사가 완성된 다음 유가대덕인 항마(降魔)를 초청하여 거주하게 했다는점.3)'옛향전'에는 두 절의 창건동기가 김대성 개인의 전생과 현생부모의 명복을 빌기위한 원찰(願刹)의 건립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반해, '사중기'에는 그것에 대한 언급없이 대상(大相)인 김대성이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고 대성이 도중에 죽으니 나라에서 이를 완성 시켰다라고 한점.이 가운데 창사동기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내용은 3)이다. '옛향전'에 따르면 두사찰의 창건은 '효이세부모'하기위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대규모의 사찰들이 오로지 김대성이라는 한 개인의 원력(願力)만에 의해 창건이 가능 하였겠는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③석굴암의 수난석굴암은 여러차례에 걸쳐 수리와 보수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의대로 다시 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금과 같은 인공적인 조절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므로 석굴암을 완전히 해체하고 다시 옛모습 그대로 재조립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이야기이다.하지만 이에대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석벽을 콘크리트로 싸서 발랐기 때문에 콘크리트를 떼어내는 공사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본래의 석재에서 콘크리트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적용해 복원할 수 없으므로 현재상태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하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원형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그 어떤 방법보다도 좋은 방안임에는 틀림이 없는듯하다.일제시대 초기의 제1차 석굴 수리 공사 1910년경의 석굴암3.석굴암의 과학적 구조석굴암의 구조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치밀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단단한 화강암을 판석으로 다듬어 전실(前室)은 방형(方形), 본실(本室)은 원형으로, 이른바 전방후원식(前方後圓式) 평면을 바탕으로 돔형 석실을 정교하게 짜올린 아름다운 석굴인 것이다.석굴에 들어서게 되면 첫번째 방이 사각형(方形)인데 바로 전실(前室)이다.이곳을 지나면 복도인 연도가 나타나고, 복도를 지나면 둥근 원형(圓形)의 본실이 된다.방(方)은 땅(地)이고 원(圓)은 천(天) 즉 하늘을 뜻하므로 석굴암은 천지인 우주를 상징하며 땅은 세속, 천은 진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불교 우주관과 진리관을 신묘하게 표현한 것이다.이러한 진리와 우주관의 상징은 입면구조에서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전실은 일단의 판석을 방형의 단층으로 나타내었고, 본실은 다층과 둥근 돔형의 원형천장을 구축하여 하늘과 땅, 세속과 진리, 자비와 지혜를 대칭적으로 조화시키고 있다.이러한 기본구조에 따라 불상도 정묘하게 배치되고 있다.즉 전실에서 복도까지는 본실의 불보살을 지켜주는(護持) 실무장군인 8부신장을 배치하고 그 다음 본실의 문을 막아주는 인왕상을, 복도에는 사방을 방어하는 사대천왕을, 그리고 본실 입구 좌우에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셋째, 이들 두 흐름과는 다른 미양식이 반영된 조각이 전실의 8부신장상들이다.8부중은 배치에서부터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지만 이 조각은 확실히 새로운 시대양식을 알려주는 그런 작품들이다.이 상들의 형태미는 힘이 현저하게 감소되었고 선의 긴장미나 탄력적인 피부감도 사라져 버려 힘차고 당당한 무장의 긴장미는 찾아 볼 수 없고 평범한 일개 무장을 도상화한 것처럼 보인다.이상적인 불격이라 할까, 신격같은 그런 분위기가 싹 가신 그런 평범한 일상의 현실미가 전신에 나타나고 있다고나 할까.이런 특징은 김유신 장군묘나 경덕왕릉 12지신상같은 8세기 4/4분기의 조각상에서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이들 8부신장 조각들은 김대성이 석굴암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국가가 마침내 완성했다는 그런 사실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는 데 이조각의 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석굴암의 건축구조에 대한 중요한 단서는 놀랍게도 이국(異國)의 젊은 건축기사인 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가 제공하고 있다.요네다는 죽기 3년전, 자신이 7년간 측량한 결과를 종합하여 조선상대 가람축조의 통일적인 기준과 조영계획에 대하여 탐구하였고, 그 결과 '다보탑의 측량관계',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의장계획', '불국사의 조영계획', '조선상대 건축에 나타난 천문사상' 등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한국 고건축의 수리적 관계에 대단히 주목할 만한 견해들을 밝힌 바 있다.요네다가 세상을 떠난 후 유고를 모아 펴낸 '조선상대건축의 연구'(우리나라에서는 木壽 신영훈님이 "한국상대건축의 연구"라는 제하의 한정판 번역본이 있다. 1963년 한국문화사 출판)는 석굴암, 불국사의 연구는 물론이고 한국 고대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고전 입니다. 요네다의 책에 실린 '경주 석굴암의 조영계획'은 석굴암의 건축구조와 조영물 배치 나아가 그 과학적 신비를 푸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요네다는 석굴 조영계획을 찾아가는 작업을 조성 당시의 통일신라의 제작자가 사용했을 자(尺)의 길이를 밝히는 데서 시작하였다. 그는 불국사와 석굴것이다.
    인문/어학| 2002.04.22| 18페이지| 1,000원| 조회(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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