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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첫째강연 '종교변증론' 평가B괜찮아요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첫째강연 종교변증론1900년 경에 나우만은 독일의 개신교회가 슐라이어마허와 함께 해야 할일을 전혀 알지 못했고 실제로 그를 이해하지도 못했다는 점을 유감스러운 마음으로 지적했 다. 개신교회는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에서 표현되는 영적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주재용 번역[슐라이에르마허 생애와 사상] 42)슐라이어마허 신학의 깊이와 넓이는 19세기의 신학에 의해 온전히 이해되지 못하였으며, 급기야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그의 신학은 칼바르트 등 신정통주의신학자들에 의해 그를 신학을 인간학으로 전락시킨 자로 비판받게 하였다. 하지만 슐라이어마허는 개신교 신학을 조야한 교리신학에서 벗어나 우주적 깊이를 가지게 하였고, 개신교 실천의 장을 윤리라는 좁은 틀에서 문화예술의 변혁으로 까지 확장시킨 신학적 거장이였다..이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은 먼저 온전히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아직도 여전히 전근대적 신앙양태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교회상황 속에서는 그의 신학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이 발제는 [종교론]의 선이해를 위해 마르틴 레테커 지음 주재용 번역인 [슐라이에르마허 생애와 사상] 중에서 종교강화론 (42-65)이란 부분을 요약발제하고, 그 다음은 최신한 번역인 [종교론] 중 첫째강연(15-44)을 요약발제하였다.마르틴 레테커의 [슐라이에르마허 생애와 사상]종교론강화론1. 신화와 고대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과거의 전통적인 하나님 상은 자연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많은 사려깊은 사람들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하늘과 저 세상이 이세상 위나 너머에 있다는 표현은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영원성은 세상적인 시간의 종말 이후에 시작하는 시간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낡은 세계관과 그 세계관의 형이상학적인 신 개념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특히 칸트의 이성 비판 이후에 이성과 지식과 과학의 한계가 분명히 정립되었다. 이제 형이상학적 신개념은 이성의 영역, 과학의 영역, 자연의 영역에서 추방되었다등을 초래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연과 역사 속에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믿기 위해서 의술을 거부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또한 관념주의 철학은 경험적인 용어로 규정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것을 포기하고, 무한 즉 객관적인 지식으로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바로 그 궁극의 영역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본질이 철학적 사색의 지적인 직관에 의해서 절대적인 것, 전체, 마지막 개체라고 주장하는 이상 이라고 규정지웠다.하지만 슐라이어마허는 이런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적 범신론, 그리고 관념론자들의 절대 사상 사이의 갈들을 극복할 수 있는 보다 숭고한 실재론 을 발견하려 했다. 그는 하나님을 단순한 초자연적인 영역에서가 아니라 전 실체에 스며 있는 궁극적인 활동력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가 계시의 과정을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유한 속에 무한한 것이 자신을 나타내는 아주 위대한 신비로 보았기 때문이다.2. 슐라이어마허의 감정 과 우주1)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은 결코 근대의 심리학적 방법으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종교적 감정은 종교를 종교적으로 만드는 바로 그 본질, 즉 중심을 의미하는 것이지 심리학적 감정이 아니다. 슐라이어마허가 특힘 감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종교를 과학적 사고 나 도덕적인 행위 와 대조하기 위해서 이다. 그는 종교 그 자체, 즉 종교 안에 있는 종교적인 바로 그것, 종교의 근원과 나타남을 자세하게 알아보려 했다.감정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이외의 제3의 심리적인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 자체으 본래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우주와의 조우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개인 실존의 경험이다.2).또한 슐라이어마허의 여러가지 공식들, 즉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 무한에 대한 지각과 경험, 유한 속에서 무한한 것과 하나가 되는 것 등 슐라이어마허의 용어들을 잘 이해해야만 한다. 우주 라는 단어 역시 그렇다. 우주는 경험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즉 공간적으로나 시간 안에 있는 자연의 우연한 구조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물에 작용하는 궁극덕인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처럼 슐라이어마허는 무한 개념을 좋아했지만, 이 무한은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은 아니다. 그거은 오히려 궁극적인것, 즉 유한한 다양성을 모두 포괄하는 형성원리이다. (45-46)3..[종교론]의 신학적인 전제는 처음부터 이단이라는 격렬한 비난과 혐의를 받았다. 계속적으로 문제된 것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1)슐라이어르마허는 신비주의자이다. (2) 그는 범신론을 옹호한다. (3)그는 예술고 종교, 신앙고 심미적인 영상, 그리고 예술적인 직관을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그가 예술 경험의 매혹적인 면을 신앙에 도입시킨 것이지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가져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1) 슐라이어마허는 물론 신비주의적 용어를 사용했으며 그의 종교의 중심을 신비주의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다 더 신비적이며 내적인 영감과 직관을 얻기 위하여 상식적인 지각을 배제하려 하는 무아경적 신비주의나, 객체로부터 주체를 구별하는 인식론적인 구분이 아직 일어나지 않거나 일부러 회피된 주객미분의 직관 영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신비주의 라는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의 직접성, 바로 오늘날 우리가 실존적이라고 하는 하나니뫄 인간의 관계를 의미했다. 실존적 이라는 말은, 계시는 인간 자신의 실존 안에서 직접 경험되며, 낯선 개념을 배우거나 받아들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선을 제거시키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다음은 [종교론]에 강조한 마음의 신비적 상태와 유산한 두가지 요소이다.1피이테의 절대 권력 감정과 반대되는 경외라는 주제이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신앙심이란 피히테가 서술한 주권 감정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신앙심이란 헌신이며 겸손이다. 이것은 관념론자들의 자유철학에서 말하는 자기 확립과 반대되는 개념이다.2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 우주는 단일하며 전체요 절대적인 총체라는 주제이다. 이것은 결코 단있는 실체를 확립할 수는 없다. 유한 속에서 무한을 경험하는 것은 우주의 활동에 의존하며, 그러므로 계시의 사건에 의존하는 것이다. [종교강화론]에서 슐라이에르마허는 이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자극적인 주장을 하였다. 하나님을 세계 밖이나 뒤에 계신 하나의 특수한 존재로 보는 일반적인 하나님 개념이 종교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슐라이어마허는 이미 [종교론]에서 하나님과 인간 역사 사이의 구별을 강조했다. 또한 죽음, 인간의 무례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음을 말함은 그가 범신론자가 아님을 나타낸다.(3) 슐라이어마허는 심미적 어휘를 풍성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낭만주의 예술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예술은 종교의 표현양식이지 종교의 근원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종교론}첫째강연 종교변증론Ⅰ1.당시 지성인들의 상황- 내가 알기에 여러분은 아무도 찾지 않는 성전을 방문하지 않으며 거룩한 고요함으로 신에게 경배하지도 않는다. 여러분의 품위있는 집에는 현자의 잠언과 시인의 노래 이외에 또 다른 가정의 수호신은 없다. 여러분의 정서를 온통 사로잡은 것은 인간성과 조국이며 예술과 학문이다. 여러분은 이 모두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 저편에 있는 영원하고 거룩한 존재를 위해서는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여러분은 이 거룩한 존재에 대한 감정과 이 존재와 함께하는 어떤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여러분은 영원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이 현세의 삶을 풍요롭고 다변적인 것으로 성취했으며, 여러분 스스로 우주를 창조한 다음 여러분을 창조한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버려버렸다. (16)2.슐라이어마허의 입장1) 그렇지만 나는 나를 신적으로 사로잡고 감화시키는 억제할 수 없는 내적 필연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제 여러분이 나에게 귀를 기울일지도 모른다는 나의 초대를 거두어 들일 수 없다. (16-17)2) 나 역시 이러한 교단의잘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대 시온의 쓰러져 버린 성과 그 고딕식 대각을 다시 높이 외치려는 사람들의 정교적이고 야만적인 비탄을 가지고 어떤 것도 이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17-18)4) 나는 인간으로서 인간성의 성스러운 신비에 대한 나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18)5) 내가 말하는 것(종교)은 이성적인 결심이나 희망 혹은 공포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며 최종 목적에 부합하게 행해지거나 어떤 의도적인 근거나 우연적인 근거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종교)은 나의 본성이 갖는 억제할 수 없는 내적 필연성이며 신적인 사명이고 나의 지위(자리)를 우주 가운데서 규정하며 나의 존재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18)3.두 힘,대화, 중보자, 종교4.슐라이어마허의 경험나 자신에 대해 말하게 하라. 종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결코 오만한 것일 수 없음을 여러분은 잘 안다. 종교는 늘 완전한 겸손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나의 모태이었다. 그 성스러운 어두움에서 나의 어린 생명은 자양분을 공급받았으며 나에게 아직 닫혀 있던 세계로 나아갈 채비를 갖추게 되었다. 나의 정신은 외적인 대상과 경험과 학문을 발견하기 전에 종교 가운데서 호흡하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다운 신앙을 보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태고의 파편으로부터 나의 마음을 정화하기 시작했을 때 종교는 나를 도와 주었다. 신과 영혼의 불멸이 의심의 눈 가운데로 사라져 버렸을 때도 그것은 나에게 머물러 있었다. 종교는 나를 근면한 삶으로 인도해 주었고 나의 분열되지 않은 현존 속에서 나 자신을 덕과 실수로 성스럽게 유지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26)Ⅱ1.슐라이어마허의 바램1)이것이 바로 내가 종교와 더불어 생각하는 종국적인 목적이다. 나는 여러분의 영역에 속하는 듯 보이는 개별적인 감각을 자극할 의도가 없으며 개별적인 표상을 변호하거나 이것에 관해 논쟁할 생각도 없다. 나는 여러분을 가장 내적인 깊이로 안내하기를 원한다. 바로 이 깊은 심연으로부터 종교는 비로서 심정을 일깨운다. 종교0)
    인문/어학| 2002.06.01| 5페이지| 1,000원| 조회(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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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박형룡과 장로교 신학 평가A+최고예요
    박형룡과 장로교신학담당교수 : 이덕주 님발제자 : 진세관, 손원일, 한완규Ⅰ. 서론1. 왜 우리는 장로교 신학에 있어서 박형룡을 알아야 하는가?보통 한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의 생애에 몇 번의 사상적 전환이 있다. 크게는 전기, 중기, 후기 등의 사상적 전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 여기 한 세기를 살아가며 자기만의 정통을 고집한 사람이 있다.또, 한 세기를 살아가며 박형룡과 같이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박형룡이라는 인물은 20세기 한국 보수신학은 물론 장로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요. 그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고신, 한신, 장신, 총신이 갈라졌으며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장로교단이 갈라져 나오게 한 원동력이기도하다.. 이에, 오늘 우리는 박형룡이라는 인물을 통해 오늘날 장로교 신학에 있어 그의 위치를 알아보려고 한다.2. 박형룡의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한 인물을 연구함에 있어 우선, 그의 생애를 알아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생애는 고신, 한신, 장신, 총신대학교가 갈라져 나온 연혁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즉, 박형룡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알면 장로교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그의 정통신학에 대하여 알아 볼 것이다. 박형룡의 정통신학은 장로교 신학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신학이다. 그의 정통신학을 이해함으로써 한국장로교신학교의 신학뿌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3. 선행연구 및 연구 범위박형룡에 대한 연구는 대개 장로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의 삶이 장로교 역사에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그의 정통신학이 장로교 신학에 있어 어떠한 위치를 갖는가. 그의 보수신학이 한국보수신학에 있어 어떠한 위치를 갖는가. 등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형룡이라는 인물은 장로교에는 많이 알려졌으나, 감리교에서는 보수주의 신학이라 하여 등한시 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오늘 우리는 위의 선행연구들을 나름대로 종합하여 감리교신학대학원 학우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박형룡과 박형룡의 신학적 논쟁이 일어났다. 평양신학교의 학술지였던 「신학지남」에 김재준이 투고한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연구"라는 글 가운데 '축자영감설'에 대해 반대하며 정통신학은 권위의식만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사상을 가르치지 못하고 과거적인 사물과 조문들을 가르친다고 비난했다. 이에 분개한 박형룡은 김재준의 성경관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1935년 5월 이후로 김재준의 글이「신학지남」에 실리지 못하도록 하였다.박형룡의 삶에 있어 주기철 목사와의 만남 또한 새로운 전기를 만들게 되는데, 둘의 만남은 산정현교회가 담임목회자 문제로 혼란을 겪게 되면서 이다. 교회를 정통보수신앙으로 잘 인도할 목회자를 박형룡이 직접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러던 중 평양신학교 19회 졸업생이며 경남 마산문장로교회에서 시무 중이던 주기철 목사를 교섭하여 산정현교회 담임자로 부임케 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정통신앙」이라는 공통의 화두를 통해 매우 가까워지게 되었고 일제 신사참배에 있어 함께 반대하며 동지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이들의 노력과는 달리 1938년 9월 10일부터 16일까지 평양 서문 밖 예배당에서 열린 제27회 총회를 통해 신사참배 결의 및 성명서 발표를 가결하였다. 그러나 박형룡의 강력한 신사참배 반대론으로 숭실전문학교와 평양신학교는 문을 닫게 된다. 이후 박형룡은 신사참배 문제에 있어서 반대입장에 있었으므로 신변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그는 정국의 분위기가 점점 경색되어 감을 느끼고 1938년 봄에 주기철 목사의 전송을 받으며,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다. 잠시 동안 일본 고베개혁파 신학교에서 신학특강을 통해 정통신학사상을 전파하였으나 얼마 후 동경시 교외로 이사해 조용하게 망명생활을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박형룡은 후학인 박윤선과 함께 '표준성경 주석' 집필에 힘섰다. 만주 봉천에서 「봉천신학교」가 개교하면서 박형룡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박형룡은 1943년 여름, 일본에서 다시 만주 봉천시에 도착하하되 섭리는 하나님의 일반적 동작이나 감시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변들이 하나님의 비밀한 도모에 의하여 관리되며 그의 현재 손에 의하여 지도됨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특별 명령이 없이는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으며 바람 한 번도 불지 않는다.(강요1편16장7절)박형룡:258칼빈은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악행을 이용하여 자기의 거룩한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는 말하되「대개 하나님은 악인들의 악의지로 자기의 의지를 성취하신다」(강요1편18장3절)박형룡:259칼빈이 본 섭리계에서는 이렇게 만사만물이 다 하나님의 의지의 지도에 의지하는 것이며 심지어 사람의 죄행이라도 하나님의 의지의 관리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는 아니시며 죄를 이용하여 자기의 거룩한 목적을 성취하신다.박형룡:2602.1.1.3. 영원한 예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칼빈은 생기(生起)하는 매사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作定)에 포함되었다고 보았다. 이리하여 아무것도 의외로나 우연적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능(能)하신 섭리에 의해 생기하는 것이다. 영원한 예정은 하나님의 자유롭고 절대적인 주권에 의하였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었다.박형룡:2602.1.1.4. 구속(救贖)에서 하나님의 주권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인류의 구속이다. 이 구속하는 일은 순전히 이성적 창조물을 상대로하는 것이니 만큼 하나님의 주권에 어떤 제한이라도 있지 않을까? 아니다. 이 일이 영원한 예정에서 계획될 때 벌써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 된 것 같이 현실 세계에서 실시됨에도 역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성경에 기초한 칼빈의 소신이었다.박형룡:262① 사람의 전적 패괴(敗壞)사람은 아주 타락하였으므로 선행은 할 수 없고 범죄에만 경향하게 되었다. 사람의 이같이 타락한 참상은 하나님의 정하신 바요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에 의한 변화가 아니고는 고쳐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이런 상실(喪失)된 처지에서 번잡하게 된 것은 온전(穩全)히 하나님의 뜻이다. 「전염간적으로는 수십만리의 거리가 있다. 칼빈이 본래 가르친 것과는 차이점을 많이 내포한 칼빈주의 정통주의가 한국에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이종성,「신학과 신학자들」,서울:양서각,1983 189-1902.2 박형룡의 신학형성박형룡은 기독교 지도자 양성 기관인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여 4년동안 일반학문과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숭실전문학교에서 무슨 과(課)를 이수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1920년 졸옵 후 그는 마포삼렬 선교사의 도움을 얻어 중국 남경에 있는 금륭(金 )대학에서 3년을 더 공부하여 졸업 후, 곧 미국 프린스톤신학교에가서 공부하게 되었다. 여기서 받은 신학교육이 그의 여생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20세기초 미국은 자유주의 신학의 바람이 매섭게 불기 시작했다. 하바드, 예일, 보스톤, 시카고, 남가주대학,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등이 미국교회의 자유주의 신학의 온상이었다. 이러한 영향 속에 프리스턴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본래 프린스턴은 19세기 후반부터 뛰어난 신학자들에 의한 칼빈주의적 정통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특히 프린스턴신학교의 신학 노선은 알렉산더-->핫지-->, 그리고 그의 아들 A.A Hodge-->워필드 Benjamin Warfield로 이어지는 강한 합리주의적, 변증학적 신학과 사벼적이고 교리 위주적인 전통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 밑에서 공부를 한 목사들이 미국 북장로교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교회도 매우 강한 보수주의적인 칼빈주의적 정통주의의 신학적 영향아래 있었다. 이 당시 자유주의와 관용주의의 요구가 교인들로부터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큰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1919년 초에 뉴욕에 있는 제일 장로교회에서 포스딕 목사가 1922년 5월「근본주의는 승리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가 강하게 대두되었다. 이에, 1923년 포스딕의 신학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부정하는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 Christianity 일반적 정통신학의 극히 간략한 요령이다. 정통신학의 가장 명확한 표현은 개혁주의 신학에서 되어 있다.박형룡:26-72.3.2 비정통적 입장비정통이란 무엇을 이름인가? 성경에 부합치 않은 것을 비정통신학이라고 해야 정당할 것이다. 그런데 비정통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곧 이단이다.박형룡:28이단은 타교훈이라 한다. 「타 교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에 반대하는 무엇을 교수함을 말한다.(Meyer's Commentary)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정통이며 그것을 믿고 따르지 않음이 이단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 어그러지는 교훈이 이단이다.박형룡:29이와같이 점차로 이단은 기독교를 믿되 그릇 믿는 자들에게 국한되게 되었고 후대에는 니게야 회의에서 결정된 삼위일체의 교리가 거의 정통과 이단과의 구별을 판단하는 유일의 시금석으로 사용되었다.박형룡:30이제, 이설과 이단의 구별을 밝히면, 처년 탄강을 부인함은 이설이요, 성육신을 부인함은 이단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의 은총의 실물적 교훈이라고 보는 것은 이설이요, 이를 단순히 순교에 불과하다고 함은 이단이다. 이설은 신학설에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종래이 신앙을 거부함에 불과하나, 이단은 기독교의 근본적 사실을 거부한다. 이상의 설명은, 자유주의 신학자의 교회 안에의 자당의 지위를 안보하려는 의도를 많이 포함한 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처녀(處女)성탄(聖誕), 십자가(十字架)대속(代贖), 영벌(永罰), 예수의 육체(肉體)부활(復活) 등은 한 개의 신학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요, 성경에 명백히 기재 되어 있는 실이어늘, 이런 모든 교리를 부인하는 자를 조금이라도 용납할 여지가 어디 있는가? 이상에서 본 바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교회의 일원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또 교회의 진보에 박차를 가하는 자라고 하니 이야말로 과대한 평가요 막대한 자부심의 소유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단은 이렇게 적은 분량의 것으로 축소시키고 이설을 그렇게도 너르럽게 대한다는 것은 다.
    인문/어학| 2002.05.04| 18페이지| 1,000원| 조회(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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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윤리] <세계윤리구상>을 읽고
    {과목명 : JPIC와 세계 윤리 세미나 지도교수 : 홍순원 교수님발제자 : 1/4 : 박혜선, 유승우, 유인근 3/4 : 박진원, 이상욱세계 윤리의 가능성으로서 JPIC-----------------------------------------------------------------------들어가는 말만약 세계가 한 민족 공동체 안에서 유일 신앙을 지니며, 유능한 지도자의 정치 지도 하에 유지된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이다. 그런데 이 책{) 한스 큉 저, 안명옥 옮김. 세계 윤리 구상, 분도 출판사, 1992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이상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물론 세계 민족의 다원성과 정의, 평화, 창조질서를 무시한 이러한 노력은 비참하게도 역기능을 초래하며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저자 한스 큉은 세계인들이 공감하여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윤리를 말하려고 한다.이제는 세계윤리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세계윤리에 대한 방법을 종교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먼저 종교의 평화를 이야기한다. 종교의 평화 없이는 세계의 평화가 있을 수 없으며, 종교의 대화 없이는 종교의 평화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책, p.15세계의 평화를 위한 근대와 후기근대의 다양한 노력들과 그 곳에서 일어났던 종교의 역할들을 조명해 봄으로 장차 21세기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세계 윤리에 대한 지침을 어떻게 종교가 제시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윤리를 통해 JPIC의 가능성을 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제1장 근대로부터 후기 근대로1. 징후 변화의 시작수많은 역사가가 19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끝나고 20세기는 1918년과 더불어 비롯했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한다. 바로 여기에,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근대 이후의 후기 근대 라는 새로운 세계 기원의 전환점이 출발한다. 이 개념이 문제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 시대를 근대와 구별해 주는 바 그것을 분석하는 데 다는 서비스 경제의 우위-기술에 있어서 : 이론 지식과 새로운 지적 기술의 중심적 위치-사회 구조에 있어서 : 새로운 기술 엘리트들의 탄생과 제품을 생산하는 사회로부터 정보와지식사회에로의 전이지금까지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목표가 발생하리라는 낙관론적인 모든 기대는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더 큰 생태학적 재난이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동시에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할 개혁이 출현할 징후도 엿보인다.생산의 개혁으로서는 사회의 동반자적인 구조, 교육·경제·정치 분야에 노인들을 적극적으로 통합시키는 새로운 사회 구조 등을 포함하는 사회의 개혁도 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 경제의 역동성에 직면해서 점점 더 평화를 지향하는 생태학적인 경제의 출현을 가능케 할 것으로 보인다.(50-52)라. 후기 근대의 출현유럽의 대혁명이 발생한 1989년은 많은 민중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래 처음으로 전쟁 없는 세계뿐 아니라 동시에 평화롭고 협력하는 세계를 위한 구체적인 가능성들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의 진보의 관심사를 고려하는 총체적인 협력의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비현실적인 환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군사적인 것은 점점 배후로 퇴장하고, 동·서간의 냉전시대는 물론 두 강대국에 의한 세계 지배라는 잠정적인 국면도 끝나 가고 있으며, 아울러 동·서방의 정치적 위상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억 달러·루블·마르크·프랑 등의 막대한 재정이 군비유지의 축소로 말미암아 민간 분야에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방 진영의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래 처음으로 서방의 발전에 합류할 기회를 포착하게 되었고, 천천히 대중 복지의 향상이라는 목적과 함께 자신들의 고유한 경제적인 수준을높이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연합하는 유럽을 포함하는 서방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특히 농업 경제와 사회 정책,주택 건설과 보호주의 무역 정책 그리고 국가의 재정 적자와 되는 것이다. 즉 법적으로 규정하여서는 안 되는 바로 그것에 민주주의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서로를 속박하는 동의 대신 서로를 맞물리게 하는(존 룰스의 개념) 동의가 필요하다고 본다.저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서로가 공생하기 위하여서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몇 가지 측면에서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회의 내적인 평화를 위하여서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의견의 일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경제 질서와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일정한 경제 질서와 법을 준수하고자하는 의견일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서는 유지되지만 지속적으로 역사적인 변화에 예속되어 있는 제도들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적어도 이러한 제도를 암시적으로 거듭 새롭게 동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그러나 이러한 속박은 개인을 묶어두는 쇠사슬 같은 속박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의하여 부과되는 속박이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대에 새롭게 요구되는 최대한의 요구가 있는데 그것은 지구를 위한 인간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3. 미래의 구호: 현세적 책임저자는 결과 윤리와 지향윤리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결과 윤리는 단순히 결과의 선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행위의 동기에 대한 선악의 판단이 모호하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극단적인 마키아벨리즘과 자유방임주의를 초래한다고 본다. 반대로 단순한 지향 윤리는 행동의 결과에 대한 성찰 없이 단순히 동기의 좋고 나쁨을 바라보기에 폭력의 사용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이러한 윤리 대신 그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막스 베버가 제창한 책임 윤리이다. 책임 윤리는 내적인 지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행위가 가져다 줄 그 결과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그렇기에 책임 윤리가 미래에 대한 윤리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2000년대에는 모든 인류는 세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책임, 즉 동시대, 국가는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 민주 국가는 일정한 가치, 규범, 태도와 관련해서 최소한의 근본 동의에 의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윤리적인 근본 동의가 없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공존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부터,3) 윤리가 없이는 인간 사회의 생존도 없다는 결과가 파생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의견일치가 없이는 어떠한 내적 평화도 사회적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일정한 질서와 법률을 준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는 경제 질서와 법질서도 없으며, 적어도 당사자들의 묵시적인 동의가 없이는 제도의 성립도 없다.나. 제휴의 실현 가능성만일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의 제휴가, 세계 윤리를 건설한다는 관심사에 관련해서, 불가피하다면, 이 제휴는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앙인들과 비신앙인들은 함께 모든 진부한 허무주의, 불확실한 견유주의 그리고 사회적인 냉대를 반대하여 저항할 수 있으며,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이러한 저항을 위해 자신들을 투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1)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삶에 대한 모든 인간의-어떠한 성, 국가, 종교, 인종 그리고 계층에속하든-기본적인 권리는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무시될 수 없고, 오히려점차적으로 실현되고 있다.2) 80년대 경우와는 달리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3) 제 3세계의 달동네에 위치해 있는 빈민굴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있다.4)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사회복지 수준이 생태학적인 재난이나 국제적인 여건의 변화에도불구하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5)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임으로써 물질적인 불평등의 조건을 평준화시키는 그리고전쟁이 없는 세계 공동체의 출현이 가능하다.이제는 더 이상 전근대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유럽으로 귀환할 수 없는 새로운 유럽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정면대결-보수와 진보의 대결, 성직자와 평신도의 대결-소생을 회피할 수 있다면,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의 제휴는 대단한 비중을 새로운 방법으로 합리적 방법으로 합리적·신앙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풍부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종교는 후기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아무런 적절한 수단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에만 비로소 나에게 우연한 사건의 극복과 구원희망의 표지로 다가오는가? 왜 나는 전적으로 타자에 대한 희망 에 대해 철학적인 표현을 양도해서는 안 되는가? 하지만 종교는 하나의 윤리를 위한 근거를 제시하는데 있어서 나름대로의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107-108)3. 윤리와 부딪치는 종교의 어려움가. 하늘에서 떨어진 고정된 윤리적 해결?이슬람교 또는 힌두교가 오늘날 문제점으로 여기고 있는 내용은 첫 번째로 20세기말에 이르러 우리가 하늘이나 도(道) 또는 성서나 기타 다른 경전에서 확고한 윤리적 해결을 도출해 내는 작업을 예전에 비해 게을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09) 역사적으로 볼 때 대 종교들이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윤리규범, 가치, 통찰, 그리고 주요 개념들은 역사적인 연구결과에 의하면 매우 복잡한 사회의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삶의 요구 그리고 인간적으로 해결해야할 절박한 문제 또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그곳에서 인간의 행동을 위한 행동규범, 예를 들면 우선권·계약·법률·계명·지침·관습등 한마디로 일정한 윤리규범등이 대두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B. C 17-18세기 고대 함무라비법전의 예)(109)이러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듯 인간은 항상 새롭게 윤리의 규범과 모델 또는 구상으로써의 윤리적 해결책을 실천해보고(세대를 거쳐 실천하고 유지해야 함을 의미), 실천과 유지의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이러한 규범을 인정하게 된다. 반면 시대가 완전히 변화되었다면 가끔은 규범의 폐지가 따르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가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110)나. 땅에는 서로 다른 해결책들이두 번째의 문제점을 오늘의 신앙인들은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땅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점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종교8)
    인문/어학| 2002.04.14| 15페이지| 1,000원| 조회(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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