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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자연주의와 교육 평가A좋아요
    자연주의1. 시대적 배경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은 신대륙을 포함하여 거대한 격동의 시기, 즉 혁명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신대륙에서의 미국 혁명과 유럽에서의 프랑스 혁명은 모두 민주주의를 지향한 시민혁명으로서, 미국 혁명은 전체적인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봉건 잔재를 청산함으로써 자유롭고 평등한 근대 시민사회 건설의 길을 열었다. 즉, 중세적 몽매성이 깃든 구체제(ancien regime)을 타파하고 프랑스 혁명을 통하여 신체제(nouveau regime)를 수립한 것이다. 절대주의에는 중세적 몽매성이 깃들어 있어 근대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몽매성이 께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계몽주의 특징들 중 하나는 자연주의이다.자연주의는 인간을 자연그대로 보는 것을 본질로 한다. 자연의 빛에 비추어 모든 인간은 본래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며, 따라서 승려·귀족 등이 특권을 행사하는 사회는 인간의 자연적 권리를 무시한 것이므로 자연의 질서에 위배된다. 자연법을 중심으로 타나난 정치적 자연주의는 당시 절대주의 체제에 대하여 예리한 비판을 가하였다. 교육에 있어서도 이러한 자연주의적 태도가 영향을 크게 미쳐 특히 아동 교육에 있어 기존의 관습적으로 지니고 있던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고, 아동의 본성에 알맞은 교육내용과 방법의 탐구가 루소이래 전개되었다.)2. 자연주의 교육1) 개념- 자연을 유일한 절대 근본 원리 또는 실체라고 여기며, 모든 가치 기준을 자연에 두려고 하는 철학사조.2) 자연주의의 역사① 자연주의의 기원은 철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의 자연철학에 있다..- 탈레스 : 우주의 근원은 물(水)- 레우키포스 : 우주의 실체는 원자- 데모크리투스 : 우주는 물질적 원자와 그 원자가 운동하는 공간으로 구성.- 엠페도클레스 : 우주의 실체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원소로 구성.② 고대의 자연철학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이성, 중세의 영혼(신) 중심의 이상주의 또는 관념론 철학으로 대체되었다가 근세에 이르러 다시 발달된 형태로 부활됨. 근대 이후의 자연주의 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루소, 코메니우스, 페스탈로찌, 몬테소리, 니일, 듀이 등을 들 수 있다..3) 자연주의의 몇 가지 공통된 주장 또는 특징① 모든 존재는 인과율의 법칙에 의해 규정된다.② 모든 현상의 근본 원인은 자연에 있다.③ 자연에는 아름다운 질서가 있다.④ 인간 본성은 자연이 제공해 준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이다.⑤ 지식은 자연이 베푼 감각적 경험을 통해 획득되어야 올바르다. )3. 루소의 교육사상1) 교사상① 돈 때문에 오는 선생은 이미 선생이 아니라 하인일 뿐이다. 하인은 하인의 일을 알 뿐이다. 따라서 그가 맡은 아이들도 하인으로 적합한 사람이 되게 가르칠 것이다.② 교사의 의무의 중대함을 뼈져리게 알고 있고, 또한 나의 무능력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간청을 해도 이 일을 맡지는 않겠다.③ 교사의 임무는 너무도 막중하기 때문에 한 교사가 맡은 학생은 한 사람 이상이 될 수 없고, 또한 교사의 일생을 통해 한 학생이면 족하다.)④ 교사의 자격한 사람을 인간으로 형성하는 일을 맡은 사람은 우선 그 자신이 인간으로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눈에 비추어진 대상은 본받을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교육 조건이기 때문에 권위없는 교사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권위는 미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돈이나 물질과는 무관한 것으로 돈 때문에 사람이 애정을 그리고 존경 을 받는 일은 드물다.⑤ 참된 교사의 위엄교사 자신이 대단한 군자인 것처럼 학생을 내려다 보고 어린이 취급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보다는 그의 영혼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교사와 동등하게 대접하면 젊은이도 동등하게 되려고 할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학생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함께 잘못을 범하고 제거하기 위해 함께 부끄러움을 맛보아야 한다.젊은이에게 위험이 닥쳐올 때는 그 사실을 알리고 과장도 흥분도 현학적인 수식도 피해야 한다. 또한 충고도 명령처럼 하지 a라고 명령이 절대로 필요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젊은이는 교사의 배려를 인상깊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잘못에 빠지기 전에 경고해야 한다. 이미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비난하면 그의 자존심에 불을 붙이게 되어 반항하게 할 뿐이다. 반항심을 일으키는 교훈을 쓸모 없는 거이다. ‘그만큼 일렀는데’라는 말처럼 어리석은 말은 없다. 일러준 말을 기억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잊어버린 척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후회할 때는 부드럽게 타일러 그의 수치심을 씻어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고 상심한 사람을 다시 질책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증오감을 느껴 교사의 조언을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다. 위로의 말은 그가 신뢰하면 할수록 유익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는 말은 그에게 의외로 들리게 되고 반성을 하게 된다.)2)루소의 아동관어느 것에 의해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아동의 인권, 자유,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혁명적인 민주주의 사상교육의 반영으로서 이해된다. 그것은 사회진보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주체적 인간의 형성을 지향하며 근대교육에 있어서 주체의 논리를 확립한 점에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주입주의, 획일적 통계주의를 부정하고 아동의 자연본성으로 되돌아가 자주적으로 그 주체적 능력을 발전시켜 온 근대 자유주의 교육의 기초를 이루었다.3) '자연성'과 '사회성'의 개념- 루소의 자연주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성' 또는 '자연본성'의 개념에 대 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자연성'이란 타락한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선한 자연상태 그 자체의 성 격 또는 특성을 의미한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의 의미는 물리적 환경으로서의 자연(공간적 의미)으로 돌아 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타락하기 이전의 선한 상태를 회복하자는 의미한다.(질적인 의미).- 따라서 이 '자연성'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사회성'의 개념과 배치되거나 모순의 관계에 있는 개념이 아니다.- 즉, 이 개념은 인간 개개인을 순수한 자연상태로 회복하자는 의미와 함께 그 순수하고 선한 인 간이 '자연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현재의 타락한 사회를 선한 상태로 개혁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이러한 점에서 루소는 사회혁명가이며, 이러한 점에서 루소의 사회 사상은 프랑스혁명의 이념적 무기로 작용하였다).4) 루소의 이상적인 인간상- 루소는 자연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는 사람, 즉 절대적 또는 궁극적 자 유를 구현하고 있는 사람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연적 자유란 타락한 사회적 관습과 제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바, 선한 자연본 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사회적 자유란 인간이 고립된 채로 살아가는 것 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주체적으로 맺은 제반 사회적 계약이나 약속, 제도, 법규, 도덕 등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자유를 의미한다.5). 교육론(1) 소극교육론① 인간 본성(자연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② 선한 인간 본성이 인위적이고 타락한 사회 및 그 제도에 의해 타락되었다.③ 따라서 어린 시기에는 선한 본성이 잘 발현되도록 가능한 한 인위적 교육을 삼가야 하며, 악 한 사회적 영향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해 주어야 한다.④ 이러한 교육, 즉 외부의 악한 영향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활동과 가장 기본적인 감각훈련 외에 는 인위적 작용을 가능한 한 가하지 않는 교육을 일컬어 소극교육론이라 한다.⑤ 그러나 루소가 모든 교육을 소극교육으로만 일관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은 아니다. 즉 적절한 시기가 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문자교육이나 사회성교육, 또는 도덕교육 등을 실시해야 한다 고 믿었다.(2) 성장단계에 따른 교육적 특징① 감각적 성장단계(0세-12세)- 감각의 성장기, 기본적인 감각훈련, 악한 사회적 영향으로부터의 보호→소극교육.② 지성적 (사회적, 정서적) 성장기(12세-20세)- 자연적 관계, 사물간의 관계 등에 대한 이해력의 성장,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해력의 성장, 성적인 충동과 관심의 성장 → 독서등 지식교육(실용적 지 식), 성교육 등 실시.③ 도덕적 성장단계(20세 이후)- 도덕적 관계(정의, 선 등), 미적 감각의 성장 → 도덕교육, 예술교육 실시.④ 학자들에 따라 루소의 발달 단계론을 5단계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으나, 위의 기 본 단계를 보다 세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발달 단계론에 따른 교육상의 특징으로 볼 때, 루소는 어린 시기에는 소극교육을, 그리고 청소년기 이후에는 비교적 적극적인 교육을 주창하고 있으며, 어린 시기에는 자연본성의 보존과 성장을, 그리고 청소년기 이후에는 사회성의 성장을 의도하고 있다. )⑤여성교육론하늘이 준(자연적인)성역할의 존중을 기조로 하고 있다. 하늘이 준 여성의 사명을 여성이 인식 못 하는데서 가정과 사회, 나아가서 문화의 타락이 시작되었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남자에게만 이롭게 전개되었다 해서 ‘남성만의 복음’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루소의 여성교육론은 여섯 가지 생각으로 짜여져 있다. 첫째는 남녀별학이다. 남성과 여성은 생리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므로 그 교육도 다른 것이 마땅하다. 둘째는 여성의 순종이 미덕이다. 여성은 남성에 맞추어져야 하며, 남성이 즐겁도록 귀엽고 유용해야 한단다. 셋째는 자녀교육의 책임 인식이다.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어머니에게 있다. 넷째는 종교는 감각의 도야다. 어린이는 어머니의 젖을 통해 사랑과 종교도 빤다는게 루소의 신념이었다. )
    교육학| 2005.03.31| 5페이지| 1,000원| 조회(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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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 박지원과 실학파의 문학
    박지원과 그 그룹Ⅰ. 朴趾源1. 朴趾源1) 生涯朴趾源(1737~1805)은 潘南人으로 자는 仲美 또는 美仲, 호는 燕巖 또는 煙湘?洌上外史, 시호는 文度이다. 錦陽尉 ?(미)의 5대 손자이자, 知敦寧府事 弼均의 손자로서 이른바 名閥의 후예로 서울 西門第에서 태어났으나, 父公 師愈를 어려서 여의고 祖父의 護養으로 자랐다. 16세에 妻叔에게 『史記』 을 배우고 논설 數百言을 지어 그를 놀라게 하면서부터 학문에 정진하기 시작하였다. 3년여를 杜門하고 발분 力學하여 百家諸書를 周覽博通하였으며, 경제?정치?군사?문학 등을 위시하여 천문?지리 등에까지 두루 궁구하였다. 그러나 仕宦에는 뜻이 없어 應擧하지 않음으로써 가세는 어려웠다. 白塔 북쪽에 살면서 그의 문장과 氣宇를 景仰하여 그 주변에 모여 살던 柳得恭?李德懋?李書九 그리고 여기를 무상 방문여 종유했던 朴齊家 등과 함께 이른바 白塔淸緣을 맺으며 실학파 문단을 형성하였고, 洪大容과 泰西地球論을 토론하면서 지동설을 언급하였다. 정조 4년 三從兄 明源을 따라 布衣의 신분으로 청에 들어가 그곳 문물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견문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그곳 문사들과 교유하며 특히 熱河 太學에서 鵠汀 王民? 같은 학자와 필담을 주고 받으면서 그리고 , , 등의 奇詭한 글들을 남겼다. 이 여행에서 이루어진 『熱河日記』는 그 奇詭함이 그의 文弟子 南公轍의 글과 함께 정조에게 忌諱되어 醇正文을 지어 自贖하라는 엄명과 함께 문체파동까지 몰고 왔으며, 이 글에 대하여는 그 자신도 처세 곤궁으로부터의 불평을 풀기 위하여 마구 戱作한 것이지 좋아서 지은 것은 아니라고 放孫 南壽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顔貌가 魁然하고 意氣가 軒豁磊落해서 무엇이나 글로 썼으며 술이 얼큰해지면 要路의 고관 귀인이나 欺世僞學의 무리들을 거침없이 譏刺했다.50세에 비로소 工繕監役에 임명되었으며 沔川郡守로 재임시 정조가 農書를 구하는 교지를 내리자 전날 金川燕巖峽에 은거하며 저술한 『課農小抄』를 1편과 함께 진상하여 嘉賞을 받았다. 漢城府判官?安義縣監능성을 깊이 따져야만 했다. “천하의 연고와 만물의 정에 두루 통달한 것이 언어”라고 하는 기본 전제를 마련하고, “언어는 분별이므로, 분별하고자 하면 형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방법을 삼았다. 언어가 진실과 합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 점에서는 유가의 오랜 언어관을 따랐다 하겠으나, 진실은 표현 이전에 이미 주어져 있지 않고 분별하고 형용해야 비로소 구체화된다고 한 것은 새로운 착상이다. 분별과 형용이 장식의 수단이 아니고 탐구의 방법이라 해서 문학관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룩했다. 그리고, “천지는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된다”는 진보적인 관점에서 전에 없던 탐구를 하고자 해서 참신한 문체를 마련했다.옛사람의 글을 흉내낸다든가, 古法에 구애된다든가 해서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당대의 진실을 문제삼으려면 상스러운 말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에서 방언을 문자로 옮기고, 민요를 운율에 맞추기만 하면 자연히 문장이 이루어진다고 하고, 답습을 일삼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무엇이든지 표현하자면서 복고적 사고방식과 결별하자는 주장을 명확하게 나타냈다. 새로운 경험을 직설적으로 전달하자는 말은 아니다. 글쓰는 것은 재판과 같고 전투와 같다 하고, 효과적인 표현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당시에 이미 燕巖體라고 일컬어진 박지원의 문장은 정통에서 벗어난 稗官雜書 수준에 머무른다고 폄하되는가 하면, 文風을 어지럽히고 질서를 혼란시킨다는 점을 우려한 정조가 이른바 文體反正을 일으켜 금지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서 변명을 하느라고 박지원은 자기가 불우해진 탓에 ‘以文爲戱’를 했을 따름이고 “문장을 빌려 꼭두각시놀음 같은 不平之氣를 써서 장난거리로 삼았”으니 반성해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나 변명에 또 다른 주장이 암시 되어 있다. ‘以文爲戱’는 말하자면 ‘以文爲敎’를 내세워 글로 교화를 베풀겠다는 데 대한 반발이고, 풍자와 익살을 일삼는 하층 예술의 새로운 동향과 연결되어 있는 자세이다.『熱河日記』는 여느 연행록과는 구별되는 인 구성과 심각한 주제를 가진 다면적인 작품일 수 있게 하는 데 긴요한 구실을 한다. 그래서 그 당시까지 글 종류를 나누어 놓았던 기준을 무너뜨렸으며, 오늘날의 분석방법마저 겉돌게 하기 쉽상이다.⑴ 小說『熱河日記』에 삽입해놓은 일화 가운데 독립된 작품일 수 있는 것도 있다. 그 좋은 예가 과 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① 은 전해들을 이야기라면서 가난한 선비가 나라의 경제를 뒤흔드는 능력을 시험한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는 작자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정책의 일단을 표현한 것과 위정자의 무능력, 양반들의 위선적, 형식적 생활 태도를 풍자하고 몰락해 가는 양반계급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 보고자 하는 작자의 의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② 은 여행 도중에 본 글을 베꼈다면서 유학자로 존경받은 인물의 위선적인 내막을 폭로했다. 이 작품은 正攻法을 피하고 측면적인 공격을 취한다. 작자는 표면에 나서지 않고 虎를 풍자의 주체로 내세워 날카롭고 신랄한 공격을 한다. 그 대상은 碩德之儒인 北郭先生으로 하고 또 극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수절과부(실은 蕩女) 東里子를 설정하였다. 그래서 작자는 풍자의 주체인 虎를 내세워 북곽선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모든 가식과 위선을 폭로하도록 작품을 구성하였다. 북곽선생의 아첨하는 모습에서 諧謔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풍자와 해학이 동일 질서 위에 구축되어 있음이 특색이다.『放?閣外傳』이라는 대목에다, 세상에 있는 이야기를 옮겨다놓는다면서 특이한 인물의 傳 아홉 편(, , , , , , , , )을 실은 것이 있어서, , 과 함께 소설로 평가된다. 아홉 편 가운데 제목만 전하는 2편은 비판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내놓을 수 없었던 것 같고, 나머지도 기발한 설정에다 허위에 반발하는 주제를 숨겨놓은 품이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크게 넘어선다.③ 은 위선의 탈을 쓴 君子들의 친구 사귐을 풍자한 것으로 당시 문인?학자들의 交遊가 부패하여 한낱 비렁뱅이보다 못함을 통탄함으로써 양반 계급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작자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유교 윤리에 반항하여 인간의 본성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연암의 근대적 문학 인식태도와 제한없는 節烈思想의 止揚 등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그의 소설의 풍자는 크게 士大夫階層을 통한 하향풍자와 賤民階層을 통한 상향풍자, 烈婦를 통한 사회제도의 풍자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향풍자로는 , , 을, 상향풍자로는 , , , , , 을, 그리고 사회제도의 풍자로는 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풍자 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위선적 인간성과 왜곡된 사회질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에는 위정자의 무능, 富人들의 어리석음, 인간들의 아첨하는 모습, 양반 및 열녀의 위선적 행위 등을 풍자하고 있으며, 후자에는 상인 계급의 천시 풍조, 北伐 정책의 허구, 양반 사회의 허구성, 인재등용의 모순, 열녀 의식의 잔학성, 신선사상의 부정 등을 풍자하고 있다. 풍자의 궁극적인 목표를 서민의식의 옹호에 맞추고 있어서 연암소설에 나타난 서민의식의 부각은 이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리고, 박지원은 실천이념의 반영으로 실학사상 특히 利用厚生을 강조하고 있다.⑵ 詩박지원의 문학이 항상 긴장된 대결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반어적인 표현을 하느라고 겉으로 보아서는 무료해서 할 일이 없으니 글장난이나 하는 것 같은 거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도 없는 사대부라면 으레 그렇듯이 시문을 가다듬는 데서 흥취를 찾고 남의 비문이며 묘지며 하는 것들을 지어주며 일거리로 삼기도 했다. 공인된 규범을 애써 배격한다 한 박지원의 문장이 고문의 하나로 평가받았다. 시를 짓는 데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시 또한 그 나름대로 적절한 격조와 표현력을 갖추고 있어서 상당한 수준으로 인정되었다.翁老守雀坐南陂 늙은 첨지 새 쫓느라 남녘 두덩에 앉았는데,粟拖拘尾黃雀垂 개꼬리 조이삭에 노란 참새 매달렸네.長男中男皆出田 큰 머슴, 중 머슴 모두 밭일 나가고,田家盡日晝掩扉 농사짓는 집 온종일 낮에도 문이 닫혔네.鳶蹴鷄兒攫不得 솔개가 병아리 채려 상태며 그래서 늘 새로워진다고 보고 있었다.연암의 실사구시적인 사상은 곧 사실주의 문학관과 일맥 상통하며 혹은 혼연일치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사상은 다음과 같이 체계화되어 그의 작품이나 논설 등에 반영되고 있다.첫째, 반봉건적인 사상인데 그의 반양반, 반체제적 사상은 정면충돌이나 노골적인 반론은 못되지만 풍자, 은유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둘째, 그는 근대적인 사상과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선각자이다.셋째, 그는 사실주의 문학사상가이다. 그는 운명론이 지배적인 시대에서 현실을 주시하고 삶을 개척하는 적극적인 생활지도자인 동시에 새로운 현실을 그대로 선지선각하여 그려내고 부패한 양반사회의 위학적인 유가들을 그대로 폭로한 사실주의적인 작가인 것이다.넷째, 그는 풍자적인 작가요, 사회 비판적 사상가이다.Ⅱ. 李德懋?柳得恭?朴齊家?李書九박지원을 따르며 배운 李德懋?柳得恭?朴齊家?李書九 이 네 사람은 특히 시로써 나란히 이름이 났다. 이들 모두는 박지원의 문인들로, 유득공의 숙부 柳璉이 연행길에 이들의 작품을 행랑 속에 넣고 가 당시 淸의 문사인 李調元과 潘庭筠의 호의적인 서문까지 받아 『韓客巾衍集』을 그곳에서 발간하므로 四家라는 명칭과 함께 四家詩로 통용되기도 했다.전대의 이정구?신흠?장유?이식을 四家라고 일컬었기에 이 네 사람은 前四家와 구별해서 後四家라 하는데, 전사가와 후사가는 서로 대조가 되는 위치를 차지했다. 전사가는 고문을 확립해 집권층 문학의 위세를 떨치면서 중세문학의 수호자 노릇을 했다면, 후사가는 실학의 비판적인 의식에 따라 한시의 기풍을 쇄신하면서 중세문학에다 근대적인 성향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했다 하겠으니, 그 사이에 문학사의 단계가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시는 앞의 홍대용이나 박지원처럼 신랄한 비판대신 참신한 감각미의 예술적 승화를 그 특징으로 한다. 내용 역시 현실 문제보다는 역사?풍속?기행 등에 치중하고 있다.이덕무?유득공?박제가는 서얼 출신이라 억눌려 지내야만 하는 처지였지만 奎章閣의 檢書官으로 발탁되어 재능.
    인문/어학| 2005.03.30| 9페이지| 1,000원| 조회(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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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문소설] 온달전 해석과 감상
    『溫達』한문교육 2003421047 홍경원1. 원문{溫達金富軾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容貌龍鐘可笑, 中心則 [ ]然. 家甚貧, 常乞食以養母, 破衫弊 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平岡王少女兒好啼, 王戱曰: 汝常啼, 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 之.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繫 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 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 , 以至於此乎? 惟我息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 還.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 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 人匹, 吾家至 , 固不宜貴人居.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 ,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 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 乃賣金釧, 買得田宅 奴婢 牛馬 器物, 資用完具. 初, 買馬, 公主語溫 達曰: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溫達如其言. 公主養飼甚勤, 馬日肥 且壯.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 會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 祭天及山川神. 至其日, 王出獵, 群臣及 五部兵士皆從. 於是, 溫達以所養之馬隨行, 其馳騁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王召來, 問姓 名, 驚且異之.時後周武帝出師, 伐遼東, 王領軍逆戰於拜山之野.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諸軍乘勝奮 擊, 大克.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第一. 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備禮迎之, 賜爵爲大兄. 由此 寵榮尤渥, 威權日盛.及陽岡王卽位, 溫達奏曰: 惟新羅割我漢北之地爲郡縣,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願大王 不以愚不肖, 授之以兵, 一往必還吾地. 王許焉.어찌 함께 있을 수 있으랴? 마땅히 네 갈 데로 가야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繫 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이에 공주는 보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매고 궁을 나와 혼자 길을 가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 이에 그의 집에 이르렀다. 맹인 노모를 보고 가까이 가서 절하고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 {) (주) : 속임, 以至於此乎? 惟我息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노모가 대답하기를 우리 아들은 가난하고 또 추하여 귀인이 가까이할 바가 못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이상하고,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 솜과 같으니 분명 천하의 귀인이요. 누구의 속임수로 이곳에 이르게 되었소?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산으로 드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간지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하였다.·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 悖然 : 발끈하여 성을 내는 모양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공주가 나와 걸어서 산 아래에 이르러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것을 보고 더불어 품은 것들을 말하니, 온달이 성을 내며 이는 어린 여자의 행동할 바가 아니다. 반드시 사람이 아니라 여우, 귀신일 것이다. 내 곁으로 오지 말라! 하며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 依違 : 태도가 분명치 않음, 마음이 확정되지 않은 모양, 망설이다.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 {) (구) : 가난하다., 固不宜貴人居.공주가 홀로 돌아와 사립문 아래서 자고, 다음날 아침 다시 들어가 모자에게 갖추어 말하니 온달은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내 자식은 지극히 누추하여 귀인의 배필이 되기 부족하고, 내 집은 지극히 가난하여요동으로 쳐들어왔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배산의 들에서 맞아 싸웠는데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쌔게 수십 명의 목을 베자 여러 군사들이 승기를 타서 힘을 내 싸워 크게 승리했다. 이에 공을 논하는데 온달을 제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備禮迎之, 賜爵爲大兄{) 大兄 : 고구려시대 관등의 하나. 太大兄, 大兄, 小兄 등의 관작이 있었다.. 由此寵榮尤渥, 威權日盛.왕이 기뻐하며 감탄하여 말하였다. 정말 내 사위다. 그리고는 예를 갖추어 그를 맞아들이고 벼슬을 주어 대형으로 삼았으니, 이로부터 은총과 영화가 더욱 두터워지고 위엄과 권세가 날로 성해졌다.·及陽岡王{) 陽岡王 : 고구려 제25대 陽王을 지칭하는 듯함. 재위 기간은 590 ~ 618年卽位, 溫達奏曰: 惟新羅割我漢北之地爲郡縣,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願大王不以愚不肖, 授之以兵, 一往必還吾地. 王許焉.평강왕이 즉위하여 온달이 아뢰었다. 신라가 우리 한강 북쪽의 땅을 나누어 군현으로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이 원통해 하며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왕께서 신을 어리석고 불초하다고 여기지 않으신다면 군사를 내어주십시오. 한번 가서 반드시 우리 땅을 찾아오겠습니다. 왕이 허락하였다.·臨行誓曰: 鷄立峴{) 鷄立峴 : 지금의 경상북도 聞慶에 있는 鷄立嶺竹嶺已西, 不歸於我, 則不返也. 遂行, 與羅軍戰於阿旦城之下, 爲流矢所中, 路而死.떠나기에 이르러 맹세를 하였다. 계립현과 죽령의 서쪽을 우리 것으로 하지 않는다면 돌아오지 않겠다. 마침내 떠나니 신라 군사와 아차성의 아래에서 싸우다 흐르는 화살에 맞아 길에서 죽었다.·欲葬, 柩不肯動. 公主來, 撫棺曰: 死生決矣, 於乎歸矣! 遂擧而 {) : 하관하다. 관을 구덩이에 내려 묻음.. 大王聞之悲慟.장례를 지내려 하니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살고 죽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아! 돌아가십시오. 마침에 관을 들어 장사를 지냈다. 왕이 그것을 듣고는 비통해 하였다.3. 감상 및 분석1) 金富軾과 이면적인 주제가 얽혀 있다. 문장도 격식과 품위를 유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미천한 인물이 나날이 겪는 세상살이까지 박진감 있게 묘사해서 실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축적된 현실인식과 문학적 표현의 성과가 상당했기 때문에 김부식이 허물어버릴 수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국문학통사 1》,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3년, p.390~3962) 「溫達」의 장르적 특징▣ 傳奇 로 이해하는 관점{) 박희병, , 《韓國傳奇小說의 美學》, 돌베개, 1997, p.118 p.149~167『삼국사기·열전』의 「온달」이나 「설씨녀」 같은 작품도 원래 나말여초에 전기 소설로 창작된 원작이 있었는데 그것이 김부식의 시대에 이르러 역사편찬의 자료로 채택되면서 다소의 수정이 가해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작품들에 대해서는 열전 으로 이해하는 관점과 함께 전기 로 이해하는 관점도 성립될 수 있다. 물론 현전하는 작품 그 자체를 두고서 그 장르를 전기소설 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열전으로 작성된 이 자료들을 통해 원작인 전기소설의 주제나 의미를 추론해 볼 수는 있겠다는 말이다. 「온달」과 「설씨녀」는 남녀의 결연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는데, 이는 史傳이나 傳(私傳)의 관행에서 볼 때 대단히 파격이며 예외에 속한다. 인물의 미덕과 업적을 表彰한다는 그 장르적 성격상 史傳이나 傳은 남녀의 결연담 같은 데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史傳에 오르게 된 것은 史料上의 制約과 관련하여 설명되어야 하며, 「온달」과 「설씨녀」의 바탕이 된 자료는 상당히 소설적 취향을 갖는 글이 아니었던가 추정된다.羅麗時代 전기소설은 대부분 남녀의 만남을 문제삼는다. 다른 신분의 남녀가 만나는 경우는 신분갈등 내지는 현실의 모순이 일정하게 반영되고 있는데, 온달 작품은 엄존하는 신분의 벽을 부정하고자 하는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 바로 거기서 신분갈등의 현실을 반영하는 면을 읽을 수 있다. 남녀가 만나는 방식 역시부여하고 온달이라는 인물을 축조하였다. 또한 「온달전」은 입전 인물인 온달과 함께 공주의 信義, 나아가 애국 이라는 인간적인 가치와 그 미덕을 특화 시키고, 온달이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확인을 주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도 「온달전」은 전양식의 규범적인 관습에서 크게 예외적이지 않다.「온달전」은 적지 않게 설화를 수용하고 있다. 傳 은 사료를 바탕으로 대상인물을 입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국사기·열전》의 「김유신전」이나 「도미」, 「설씨녀」 등에서도 설화적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 작품들에 보이는 설화적인 요소는 김부식이 자의적으로 그러한 허구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이 설화의 부분은 어디까지나 김부식이 참조한 원사료에서 묻어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그러면서도 김부식은 문식을 통해, 서사를 축조하여 설화적인 면모를 축소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은 탈각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종국적으로는 입전할 적에 설화적인 요소의 유입은 불가피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온달전」은 다분히 전기라는 문학적인 양식의 세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온달전」을 바로 傳奇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3) 인물 분석▣ 溫達온달전에는 그의 모습에 대하여 容貌龍鐘可笑 라고 표현하였다. 乞食以養母 하며 往來於市井間 하는데 破衫弊履 의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그래서 사람들이 지목하여 愚溫達 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이 상태뿐이라고 표현하였다면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평범한 걸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中心則 [ ]然 이라고 하여,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마음 속이 밝고 명석하다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즉, 외형상으로는 지극히 어리석게 보이는 바보 같지만, 마음 속에는 명석한 판단력과 분별력을 숨기고 있는 인간이라고 표현한 것이 된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경우를 생각하여 볼 수 있다.{ㄱ 실제에 있어서는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와 능력
    인문/어학| 2005.03.30| 10페이지| 1,000원| 조회(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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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실존주의와 교육
    Ⅱ. 실존주의1. 실존주의의 배경1) 역사적 배경실존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20년대 유럽의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인간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철학의 한 사조로서 발전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일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철학적 중심과제로 등장하였다.{) 《敎育哲學 및 敎育史》, 文炯滿 著, 螢雪出版社, 1991年 - p.298양차대전의 비극적 체험과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이 낳은 인간의 주체성을 말살하는 역현상은 또한 실존주의의 생성을 촉진시킨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교육철학》, 김정환·강선보 공저, 博英社, 2003年 - p.2292) 이론적 배경인간의 실존문제가 철학적으로 거론된 것은 멀리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하여 파스칼, 아우구스티누스로 이어진다. 실존주의가 철학의 중심 테마로 등장한 것은 약 1세기전 키에르케고르(S ren kierkegaard)가 그것을 발전시키면서이고, 그 후 니체(Friedrich Nietzsche),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카뮈(Albert Camus),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부버(Martin Buber)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이들의 사상적 공통점은 전통적 서양철학이 무지와 경이 그리고 회의로부터 출발한 점에 반하여 인간의 고뇌와 초조, 비관과 좌절, 절망, 죽음 등에서 비롯되는 허무와 불안의 정조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이를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확신을 끌어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敎育哲學 및 敎育史》, 文炯滿 著, 螢雪出版社, 1991年 - p.300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실존을 본질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을 그 자신의 본질을 결정하는 자, 그리고 그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는 자 로써 파악한다. 또 실존주의에서의 인간은 그 자신의 본질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다. 이러한 자유는 절대적이어서 인간은 그가 되고자 하는대로 선택할 수가 있다. 이처럼 실존주의에서는 각 개인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준거까지도 결정한다. 그러나 이 때 윤리적 선택에 대한 인격적 책임은 필수이다. 즉 도덕적 결정에 있어서 개인의 책임을 크게 강조하는 것이 실존주의의 중심원리이다.{) 《교육의 역사와 철학》, 박의수·강승규·정영수·강선보 공저, 동문사, 1994년 - p.3902. 실존주의 교육이론1) 교육 목적실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은 인간 자체의 탐구이며, 이에 따라 삶에 대한 모든 형태의 광범위하고도 종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존주의자가 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인간은 단편적 인간이 아니라 전인적 인간이다.{) 《교육철학》, 김정환·강선보 공저, 博英社, 2003年 - p.2482) 교사상과 학생1 실존주의에서의 교사상실존주의에서는 교사에 관하여 그 진실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이는 현대 인간주의적 교사상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기도 하다. 교사가 학생에게 진실성을 가질 때 학생은 교사를 신뢰하고 상호신뢰의 분위기를 가지게 되어 주제에 대한 교사의 해석에 부합하는 존경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신뢰는 교사의 창조적 기술과 성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으로 본다.2 실존주의에서의 학생실존주의에서의 학생은 학습활동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주인공이 된다. 지식은 활동적 노력과 심원한 진리 탐구에 의해서 획득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실존적 특성의 가능성적 존재로서 지적 활동을 포괄한 모든 학습활동이 이의 전제 위에서 행해져야 한다.{) 《敎育哲學 및 敎育史》, 文炯滿 著, 螢雪出版社, 1991年 - p.306~3073) 교육 내용1 교과목 그 자체보다 다루는 방법을 중시실존주의 교육에서는 교사·커리큘럼·시설·환경 따위는 한 인간이 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실존주의자들은 교과목 그 자체보다는 교과목을 다루는 방법을 더욱더 중시한다. 그러므로 학교는 학생들의 자유를 신장하고 창조적인 개성을 갖도록 격려해야지, 적응 또는 관습에 순응하도록 압력을 가해서는 안된다.2 인문학과 예술 강조존적 선택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서적이고 심미적이며 시적인 과목들이 실존적 교육과정에 적합하다고 본다. 즉, 인간의 정서 및 심미적 성향과 도덕적 성향이 이러한 과목들을 통해 잘 계발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인문학과 예술을 강조한다.3 삶의 부조리, 불안을 중요시실존주의 교육에서 중요시하는 또 다른 측면은 삶의 부조리나 실존적 긴장, 즉 불안이다. 진정한 인간교육은 삶의 좋은 측면뿐만이 아니라 삶의 불합리한 측면, 추한 측면까지도 포함한 전체로서의 인간교육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훌륭한 교육이란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좋은 것이나 나쁜 것, 합리적인 것이나 비합리적인 것 등의 삶을 모든 측면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하며 이것이 인간주의적이라고 본다.4) 교육 방법1 보편화된 교육, 집단적인 획일화 비판실존주의자들은 학교교육이라는 형태를 어떤 면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 있다. 학교는 개성을 말살시킨다고 주장하면서 학교가 이미 개인이 사회화되는 장소로 변해 버렸기 때문에 집단의 훌륭한 일원, 훌륭한 시민은 형성시킬 수 있으나, 훌륭한 개인을 형성시키기는 어럽다고 본다. 니체(Nietzsche)가 공교육을 비난한 것도 공립학교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파괴하고, 오히려 정부 주도의 획일화로 대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2 교훈적이고 권고적이기 보다 촉진적인 교육방법교사는 학생들이 궁극적 의문들을 가지고 인간실존을 탐구하도록 조성하여야 하며, 또한 그러한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교육방법은 교훈적이나가 권고적이지 말고 촉진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삶의 부조리에 직면한 학생에게 부조리극을 관람하게 함으로써 문제해결을 돕는 것이 촉진적 교육방법이 될 것이다.3 비연속적 형성의 교육가능성 제기인간의 죽음·불안·고통·위기 등과 같은 어두운 측면과 자유·선택·책임·개성 등과 같은 주체적 측면을 부각시켜 단순히 지속적인 노력만으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실존주의자들의 관점은 전통적 교육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교육형태인 비연속적(혹은 단속적) 형성의 교육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비연속성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교사와 학생과의 만남, 학생과 작품 속의 인물 또는 역사적 위인과의 만남, 육체적·감각적 또는 종교적인 각성, 벌·설교·명령·호소 등에 의한 훈계나 조언 등을 들 수 있다.{) 《교육의 역사와 철학》, 박의수·강승규·정영수·강선보 공저, 동문사, 1994년 - p.388~3963. 실존주의 교육사상가1) Otto F. BollnowBollow는 기존의 교육학이 연속적 발전과 점차적 개조에 의한 인간교육의 가능성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부정하였다. 그는 수직적-비연속적 형식의 교육의 가능성을 주장하며 교육행위의 제요소로서 위기, 각성, 충고, 상담, 만남, 모험, 좌절을 제시한다.1 위기Bollow는 인간의 질병과 사고과정 또는 도덕과 종교적 생활 등 삶의 제측면에서 나타나는 위기 라는 현상의 실존적 의미를 주목한다. 모든 유기체의 성장에는 비연속적인 도약이 있는데, 도약을 위한 마디마디에 위기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의 전환점이며 고비인 위기는 이를 경험한 후 지금까지와는 전연 다른 상태에 놓여지게 하는 삶의 비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만남 의 의미 또한 실존철학의 영향으로 신, 타인 또는 어떤 예술작품과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차원의 자각된 세계의 열림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속적 속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2 각성각성은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으나 이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남으로부터 일깨움을 받는 작용이다. 각성은 잠재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일, 외부로부터 심한 자극을 가하는 일, 고통을 수반하게 하는 일, 돌발적으로 온 힘을 발동시키는 일, 마음의 전환을 일으키는일인데에 교육학적 의의가 있다.3 만남Bollow는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 고 하였다. 이 말은 진정한 교육은 너와 내가 마음과 마음으로 호흡할 때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교육의 터전은 인격적 상호작용이 루어질 때 가능하다. 이런 Bollow의 만남은 반드시 오랜 교육만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만남에 의해서 얻어지는 감정이 인간과 사물의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교사는 교육을 통해 학생에게 만남이 일어날 수 있는 준비를 시켜 주어야 한다.{) 《敎育哲學 및 敎育史》, 文炯滿 著, 螢雪出版社, 1991年 - p. 307 ~ 3112) Martin BuberBuber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두 기둥은 하시디즘(Hasidism)과 만남 이다.1 하시디즘(Hasidism)하시디즘은 18세기에 엘리에저(Israel ben Eliezer)에 의해 동유럽의 폴란드에서 생겨난 유대교의 경건주의적 신비운동이다. 하시디즘의 근본이념은 모든 사물 및 피조물들을 신성한 것으로 보며, 그 가르침은 하나님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 에 있다. 따라서 하시디즘은 세계 속에서의 적극적인 봉사를 요구하며, 종교의 외면적 형식보다는 일상생활의 충실·관심·사랑을 강조한다. Buber가 하시디즘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인간이 일상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신성화하는 것이다.2 만남하시디즘을 모태로 한 부버의 철학은 만남 이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두 가지의 주요한 태도는 나-그것 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너 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이다.나-그것 의 세계는 경험과 인식과 이용의 대상이 되는 세계이다. 사람이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람이 세계를 객체로서 소유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방관자·관찰자·조정자로서의 세계와 관계하는 자는 나-그것 의 나 이다. 그러나, 나-너 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의 너 는 뭇 성질로 분해할 수 없는 전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은 나-너 의 관계에서 서로 전존재를 기울여 참인격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관계는 직접적이며 상호적이요 근원적이.
    교육학| 2004.05.03| 6페이지| 1,000원| 조회(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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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작가] 이인로와 이규보의 시세계
    ♤ 李仁老의 漢詩作法과 詩世界 ♤1. 李仁老의 生涯李仁老(1152~1220)는 高麗 武臣執權期에 활동한 문인으로 字 는 眉 , 號는 雙明齋이다. 인종까지 근 1세기 동안 권력을 누렸던 仁州李氏의 후손으로 竹林高會에서도 중심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僧統 寥一에게 길려졌다. 명종 10년에 과거에 장원하여 서기관으로 중국에 갔다 오기도 하였다.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났지만 1170년, 그의 나이 19세에 鄭仲夫의 난이 일어나 佛門으로 피신하였다. 뒤에 환속하여 1180년에 進士科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특히 翰林院에서 14년간 詔勅을 작성하였다. 이 시기 그의 문명은 대단하여 腹藁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이후 林椿, 吳世才 등과 어울려 竹林高會를 열구 詩酒로 소일하였다.그는 이렇듯 불우한 생활을 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궁색한 표현이 없이 그저 담백한 시정을 나타내고 있다.2. 李仁老의 漢詩作法高麗中期는 詩學에서 蘇軾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고, 차츰 黃庭堅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李仁老는 특히 黃庭堅의 창작방법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로 보여 주는 인물이다. 李仁老의 시를 직접 읽어 보면 黃庭堅의 창작방법을 상당한 수준까지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시세계에 적용하려고 고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黃庭堅은 新奇한 시풍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민요나 소설 등에서 시어를 끌어와 썼다. 또한 정연한 의경의 전개 역시 黃庭堅의 시의 특질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 함께 李仁老의 시에는 典故를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黃庭堅 등의 江西詩派를 배운 것으로 들 수 있는 요소이다.또한 李仁老는 歷史典故를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이와 함께 옛 시구를 자신의 시 문맥 속에 용해하여 새로운 의경을 창출하는 이른바 以故爲新 의 이론을 여러 모로 실천하고 있다. 이 점 역시 黃庭堅의 시를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李仁老는 黃庭堅의 시를 배우면서 창작의 실제에서 매우 용사가 번다하면서 궁벽하여 난삽한 데에 시에 대한 학습이 李仁老로 하여금 지난날 자신의 난삽했던 시를 돌아보게 한 것 같다. 그는 陶潛의 시를 본떠 를 썼다. 그는 난삽함에 대한 반성으로 새로운 창작방법의 결과를 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洪萬宗은 이 시를 이렇게 평가한다. 이는 꾸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담박한 자연 속의 삶이 녹아 있어, 오언절구가 이를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이라 하겠다. 또한 젊은 날의 난삽함을 벗고 단련을 거듭한 끝에 나온 맑고 신선한 미감인 淸新 의 평은 李仁老 후기 시가 이룩한 최고의 성과라 말할 수 있다.3. 李奎報와의 비교 검토李仁老와 李奎報를 비교하여 말한 것은 崔滋에서부터 비롯한다.먼저 崔滋가 李奎報 시의 특질로 지적하고 있는 新意 의 뜻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新意 는 李奎報의 에 나오는 말인데, 이글의 핵심은 新意造語 에 있다. 新意造語 는 그 출처가 李翰의 에서 나온 것이다. 이 글을 보면 의 논리와 이론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상대로부터 온 편지에 자신의 글을 칭찬한 것을 사례하는 구도가 같을 뿐 아니라, 논지 자체가 유사하다. 李翰는 이 글에서 의경을 창조하고 시어를 만들어 내어 모두 비슷하지 않게한다. 라고 하여 시의 의경과 시어를 새롭게 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주장은 다분히 韓愈의 그 뜻은 비슷하지만 그 수사는 같지 않다. 를 주장한 것에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의경까지도 새롭게 창안하겠다는 뜻이다.이는 李奎報의 옛 시인들은 의경은 만들었지만 시어를 만들지 않았다. 나는 시어와 의경을 모두 만들어내었으면서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라는 부분과논지가 동일하다. 韓愈가 시어만을 새롭게 하겠다는 뜻을 부정하고 李翰처럼 시어와 의경 모두를 새롭게 구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崔滋는 李仁老가 전대 시인의 시를 열심히 읽는 것을 작법의 바탕으로 삼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李仁老 역시 黃庭堅의 換骨奪胎의 설을 비판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新意 에 있다는 주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李仁老는 이 글에서 換骨奪胎의 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의경을 창출하는 은 비록 뜻은 크지만 類喩 에 구애받아 말이 자유롭지 못하고, 李奎報의 작품은 類喩 에 가깝지만 말이 자유롭고 뜻이 크다고 하였다. 李仁老의 작품은 정교하고 李奎報의 작품은 雄壯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이렇게 비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崔滋가 李仁老와 李奎報의 차이를 말의 자유로움에서 찾고 있는데, 이 말의 자유로움이란 바로 新語 를 두고 이른 것이다. 李奎報는 뜻을 말하기 위해 기발한 新語 를 사용하기를 꺼려하지 않았지만, 李仁老의 시는 그렇지 못하다. 용례가 확인되지 않는 新語 이지만 참신한 미감을 느끼지는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新語 가 있어야 新意 가 더욱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李奎報의 장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李奎報의 시는 말이 자유로운 대신 거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고, 이에 비해 李仁老의 시는 말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정련된 미감을 가지게 된다. 崔滋는 이 양자의 우열을 말하고 있지만, 개성의 차이에 우열을 논한다는 것은 무리이다.李仁老는 新意 를 위해 用事를 즐기지만, 李奎報는 用事를 피하고 新語 의 造語를 바탕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발동한다고 하였지만, 李奎報의 작품에 用事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用事를 통해 참신한 의경을 확보하는 데 있어 차이가 있다.崔滋의 본의는 李奎報가 기발한 상상력을 꾸밈없이 써내려간 데 비해, 李仁老는 用事와 點化를 통해 시구를 다듬어 깔끔한 시를 제작하려 한 것은 지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 그의 작법에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換骨奪胎가 중심에 있게 된다. 李仁老의 시가 미학적으로 성공을 거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위에서 본 것처럼 用事를 적절히 구사하고, 전대 시인의 시구를 자신의 시적 문맥에 적절히 용해하여 새로운 뜻을 창출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李奎報의 굳건한 기상을 바탕으로 한 기발한 상상력의 표출에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李奎報의 詩世界 ♤1. 李奎報의 生涯李奎報(1168~1241)의 字는 春卿이요, 처음 이 편찬하면서 지은 시는 自負와 조심스러움이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다.그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문학적 재능이 인정되어 입신출세한 신진관료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러한 적극적 진출이 무신의 집권에 대한 아부라는 부정적 견해로 평가될 수 있으나, 반면 당시의 혼란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유가적 정치 이념으로써 실천에 옮기려는 자세로 본다면,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李奎報의 詩作이 그의 삶의 단계에 따라 현저하게 변화하고 있는 사실에 유의하여 그의 시세계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검증해 보면, 20대의 청년 시절에는 힘과 패기의 술로써 시를 쓴 力動的인 詩作과 스스로 新奇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이루여진 遊戱的인 詩作을 보였고, 후세의 시선집에서 그의 대펴작으로 뽑아준 대부분의 수작이 이 때에 이루어졌다.2. 力動的인 詩作학자들은 道를 행하기 위하여 벼슬을 한다지만, 이규보는 문장을 세상에 행하게 하기 위하여 벼슬을 한 문인관료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술을 좋아하여 23세에 겨우 禮部試 擢第될 수 있었으며 이후에도 그는 청년시절의 대부분을 詩酒로 보냈다. 하루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하여 詩를 쓸 만큼 이 때 이규보에게 술은 그의 시를 생산하는 원천으로 또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으며 후세까지 화제를 남긴 名句들도 이 시기의 작품 가운데 많다. 그는 26세 때 이미 百韻詩 을 제작하여 長篇의 저력을 과시하기 시작하였으며, 환사적인 오언고시 을 제작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史官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한 그였기 때문에 감히 史筆을 잡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도없는 일이지만, 舊三國史의 신비로운 국조신화에 매혹되어 환상의 세계로 비상해 본 것이 이다. 一筆에 三百韻의 기록을 이룩한 시 역시 28세의 젊은 나이에 제작한 것이다. 장편이란 원래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규보가 그렇게 많은 古諷長篇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규보의 힘이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이 때 詩作의 수준이나 높낮이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新語의 경계는 결코 확연하게 그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확인케 한다.3. 遊戱的 詩作대상과 마주할 때마다 시를 쓰지 않고서는 지나치지 못하는 詩魔 때문에 이규보는 晩年의 病中에서도 시와 술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고 스스로 진술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효용적인 詩作말고도, 전혀 전달할 뜻이 없이 놀이 본능의 충동에 의하여 만들어 낸 詩篇들도 많다. 스스로 走筆 이나 戱作 이라 선언한 작품은 물론 그 밖의 詠物詩에도 유희적인 詩作이 문집의 도처에 산견되고 있다. 平凡을 거부한 이규보 그가 새로운 뜻을 만들고 새로운 말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그의 욕심이 과다하게 노출될 때. 奇拔 은 奇怪 와 같은 속성이라는 俗說을 사실로 보여준 것이 遊戱的 詩作이라 할 것이다 走筆과 急作으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규보가 新奇를 시범하는 과정에서 數十韻의 長篇을 戱作으로 떨어지게 한 것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4. 效用的인 詩作이규보는 23세에 禮部試에 합격했으나 30대를 지나면서도 변변한 벼슬자리에 오르지 못하다가 40세에 이르러 翰林에 보임된다. 이 사이 그는 고위관료의 詩에 次韻하여 자신의 詩才를 과시하기도 하고, 權臣들에게 직접 벼슬을 구하기도 했다. 이 무렵 그는 一筆에 數十韻의 長篇 구사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이 대의 詩作은 겨과적으로 詩의 낭비만 일삼을 뿐, 그 예술적 성취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被傳達者가 一人으로 한정된 이러한 시편에서 명작을 기대하는 일은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환로에 진출한 이후에도 微官末職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는가 하면, 벼슬이 오를 때마다 榮達의 기쁨을 시로써 보답하곤 한다. 40대를 지나면서 그는 주변의 관료들과 次韻詩를 즐기고 있지만 그의 문집에 詩作의 物量도 감소되고 있으며 이후 그의 창조적 力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이규보는 만년에 이르러 詩經詩의 정신을 직접 詩로써 읊조리면서 詩의 效用的인 기능을 강조하여 觀風에 대한 의지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시인의 比와 興은 詩經에이다.
    인문/어학| 2002.10.16| 7페이지| 1,000원| 조회(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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