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미래지향적 노동정책1)세계적 경향구미 선진국들은 80년대 이후 소비적 복지의 폐해를 극복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70년대 이전 과도한 소비적 복지로 인해 경제 활력의 약화와 재정적장 확대를 경험 하였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80년대 들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면서 복지부문에 대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고, 이에 여타 선진국들도 이에 따라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소비적 복지에서 생산적 복지로의 이동이라 표현 하고 있다.현재 유럽 국가들이 주창하고 있는 제 3의 길, 중도 좌파, 같은 말들은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절충한 것으로 결국 생산적 복지가 사회정책의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다.2)각국의 변천사19세기말 영국과 독일에서 시작된 사회보장제도가 20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정착되어 복지국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eq oac(○,1)19세기 - 산업사회 발전과정에서 빈부격차 확대와 계급갈등 심화 등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상류층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이를 영국의 디즐레일리와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이 채택하게 되었고 이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시초가 된다. eq oac(○,2)대공항과 제 2차 세계대전 – 대공항과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가 국민의 생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이념이 확립하게 되었다. 이에 케인즈 등이 정부의 경제개입 및 최저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복지 정책을 제시하게 된다. eq oac(○,3)60~70년대 – 서구 자본주의가 발전, 심화되는 과정에서 실업급여, 국민연금, 의료보험, 극빈자 보호 등의 복지제도가 고도화 되는 과정을 거친다. eq oac(○,4)오일쇼크 – 오일 쇼크는 그 동안의 경제 정책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오게 된다. 경제 위기가 심화 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복지국가의 한계점이 노출되었고 경제의 저 성장 구조로 인해 실업이 급증하였고 이로 인해 사회적 지출이 증가 하여서 정부의 재정난을 야기시키는유주의적 복지국가로 사회구성원의 이질성이 높고 개인주의 가치가 강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이러한 이유로 인해 집단적 노력에 의해 복지를 책임지는 유럽과 차이가 발생한다.- 소득보조 등 이전적 지출 보다는 고임금보장과 교육 투자를 우선·GDP대비 교육비 지출은 EU 평균 5.3%, 일본 5.0%에 비해 미국은 7.0% (Economist, 1994)·미국은 선진국 중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미국의 변화1996년 「근로-복지 연계 법」을 제정하여 최소수준의 급여와 구직노력 등 일과 복지를 함께 묶는 노동 연계적 복지체제를 구축하고 노동윤리라고 하는 새로운 철학에 기반 하여 복지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억제하고 노동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실업급여를 제공하고 있다.이는 의존형 복지체제에서 자립과 노동을 강조하는 workfare(welfare + to work) 체제로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복지수혜자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주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복지서비스 공급 과정에서 긴밀하게 협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 예로 첫째, 기존 복지수혜자를 고용하는 기업에게 세제지원 등 유인책을 제공하고(1997년 당시 3,200개 기업이 13만 5천명의 복지수혜자를 고용) 둘째,고용된 복지 수혜자들의 전직률을 낮추고 전반적 생산성도 향상 고취 셋째, 개인의 책임제고와 근로의욕 고취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 개편(생활보호 대상자들에 대한 소득보조 수혜기간을 제한하여 취업을 유도, 효율적 취업알선과 정보제공을 위해 원 스톱 고용서비스 제공)으로 나눌 수 있다.이러한 미국의 복지제도는 근로의욕 고취와 생산성 향상에 있어서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으나, 계층간 소득격차 확대, 부와 자산의 편중, 일부 계층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배제 등 단점도 보유하고 있다. eq oac(○,2)영국「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사회보장을 목표로 삼았던 영국은 블레어 정권 하에서 복지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제 3의 길을 추구하게 된다.제3의 길 : market + social democra러한 생산적 복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새로운 합의(New Deal)’정책과 ‘고용촉진지역(Employment Zones)’정책 등을 추진하게 된다.《 영국의 생산적 복지시책 사례 》□ New Deal 정책- 복지수혜자를 근로현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동연계복지정책- 청소년실업자, 장기실업자, 편부모, 장애자, 실업자배우자를 목표대상으로 선정하고 취업기회 부여와 근로의욕 고취를 추진□ Employment Zone 정책- 실업이 만연되고 생활수준이 낮은 저개발 지역을 고용촉진지역으로 지정- 정부와 민간이 공조체제를 구축하여 촉진지역실업자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고용창출기업에 대해 세제 지원 등 유인제공- 글라스고우, 사우스 티스사이드, 리버풀, 남서 웨일스와 플리무스 등 5개 시범지역에 5천8백만 파운드를 투입 eq oac(○,3)독일독일은 기존의 완전한 복지제도에서 탈피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해고규제 완화와 질병수당 인하 등으로 기업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방향으로 경제체제를 변화 하고 있다. (해고제한법의 적용사업장 범위를 6인 이상에서 11인 이상으로 축소하고, 질병수당을 임금의 100%에서 80%로 인하)또한, 근로시간 단축의 방법인‘워크 쉐어링(work sharing)'을 통해 임금을 줄이면서 고용은 유지해서 근로자의 최소한의 생활 안정은 유지해 주려고 한다. 또한 이러한 근로 시간 단축으로 인한 근로자의 실질임금 감소를 보전해주기 위해 소득세 경감해서 근로자 생계를 안정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그와 함께 독일은 사업세 경감, 부가세 인하 등 조세부담을 경감하여 창업 활성화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이와 같이 세계 각국은 기존의 이념적 사고를 떨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길이란 생산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의미한다. 혹은 제 3의길, 중도 좌파 등 그 용어는 가지 각색이지만 그 이념적 틀만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4)생산적 복지국가(제 3의길)「생산적 복지」는 고용창출, 복지시책립으로 이어져온 정부 - 산업, 자본가 -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승화시켜 모두가 동반자로서 움직이는 정치를 펼치자는 것이다.◇ 경제정책제3의 길은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를 의미하는 '참여 자본주의 (Stakeholder Capitalism)' 로 요약된다.그 동안 우파가 펼쳐온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는 국내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도 부의 편중을 유발해 한계에 부닥쳤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국가가 시장에 부분적으로 개입, 부의 분산을 위한 제한적인 '계획경제' 를 시행해야 한다. 즉 자유시장경제와 통제경제 사이의 선택을 벗어나 보다 역동적이고 공익을 위하는 시장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자는 주장이다.◇ 사회정책 = 모든 사회 구성원이 '모두를 위한 사회정의, 모두가 지는 책임' 의 원칙 아래 동반자로서 행동하길 추구한다. 특히 과세제도의 개혁을 통해 부의 편중을 시정하는 한편 노동자들도 파업 등 노동권리를 자제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책임성을 우선한다. 복지정책에서는 각종 수당에 의존하던 전통적 개념에서 탈피, 노동자에게 '일할 권리'를 부여해 재정적 자립을 도와주는 정책으로 전환한다. 이 복지에서 줄인 재원은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비판 = 제3의 길은 1848년 2월 왕정을 붕괴시킨 프랑스혁명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착취세력으로서 개혁의 걸림돌이란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내놓은 타협적 정책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즉 뚜렷한 철학적 근거도 없으며 자본주의의 근간인 자유경쟁을 포기하면서 사회 전체에 평등한 부와 권리를 주겠다는 논리는 달콤한 '허상' 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그러나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생산적 복지체제(제 3의길)로의 이양은 전세계적인 조류라 할 수 있다.< 생산적 복지시책의 내용 >>대상 계층협의의 생산적 복지일반 복지시책 및 기타중산층성과배분제 활성화종업원지주제근로소득세 경감형평조세사회보험 통합 및 내실화참여경영 유지 내지 제고시키면서 사회통합을 달성하려는 적극적 복지정책이라고 개념 지을 수 있다. 실직자, 취약계층 등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데 중점을 두는 기존의 「소비적 복지」정책과 대비를 이룬다. 실제로는 그 동안 미흡했던 일반적 복지 시책들을 다수 포함구미 선진국의 경우에는 「소비적 복지」의 반성에서 출발하였다.「소비적 복지」의 폐해를 경험한 구미 선진국들이 80년대 이후 「생산적 복지」로 전환을 모색했다.대부분 선진국에서 70년대 이전 과다한 「소비적 복지」로 인해 경제 활력 약화와 재정적자 확대를 경험했다.미국과 영국은 80년대 들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면서 복지부문에 대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고, 이후 「생산적 복지」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확산되게 되었다.유럽 국가들이 주창하고 있는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절충한 것으로 「생산적 복지」가 사회정책의 기본 틀이라 하겠다.그러나 우리의 경우 고도성장과정에서 누적된 계층간·부문간 불균형이 IMF사태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는 인식에서 「생산적 복지」를 도입하게 되었다.다시 말해서 경제발전이 양적 팽창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산업간, 기업간, 도시-농촌간 격차가 심화되고 성장 우선 논리, 국방비 부담 등으로 인해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차원의 배려가 부족해진 상황 이였고, IMF를 거치면서 계층간 격차가 확대되고 중하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고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IMF 극복과정에서 실업급여, 사회보험 등이 늘었는데, 목표집단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서 예산이 일부 낭비적으로 지출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파이 확대와 재원 확보가 관건이번 「생산적 복지」는 복지기반이 취약한 현실에서 서구가 경험했던 소모적 복지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 핵심이다.선진국들이 거쳤던 복지강화 → 비효율 →「생산적 복지」중 중간 단계를 뛰어 넘는 방식 즉, 불필요한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초생활 안정, 세제개편 등으로 사회통합을 달성하고 동시에 파이(pie)의 확대를 도모한다.「생산적 복지」는 복지를없다.
1..사회학 발생의 배경19세기 유럽은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긴 과정을 마무리 짓는 시기였다. 특히 부르죠아 혁명의 와중에서 유럽의 혼란이 야기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학이 출현하였다. 사회학의 출현에 앞서 선행되어 고찰해야 되는 것은 봉건제에서 자본제로의 이행과정을 가능케 한 즉 중세의 암흑시대를 무너뜨린 계기가 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중세의 기조는 기독교 세계를 통한 권위에의 굴복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사회에서는 윤리의 내용을 정하고 자연의 본성을 설명하고 이웃에 대한 기독교인의 의무를 규정하고 그리고 선악의 기준을 세우는 것도 바로 교회였다. 도한 교회는 경제의 영역도 관할하였는데, 상업과 산업이 수행되는 조건을 독자적으로 규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폐의 사용과 적절한 가격, 임금수준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법은 교회권위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국민의 관습, 통치자의 선출, 심지어 로마 시민법이 교회의 신성한 심판에 의해 발전되어야 하며 신성한 계시에 기초한 교회 법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논리였다.그래서 초기 사회학자를 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였다.2.콩트의 사회학콩트는 인간의 인식은 신학적단계,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증적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실증적이라 함은 합리적, 현실적, 유용적, 상대적 등을 의미 하였다. 모든 학문이 동시에 실증적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고 하였다.즉, 수학,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사회학의 이른 바 싫증 과학의 계통이 그것이며, 단순하고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복잡하고 특수한 것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이 중 사회학만이 아직도 실증적인 단계에 들어가 있지않기 때문에 콩트는 이를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를 사회학의 시조라고 한다3. Spencer의 사회 진화론, 사회 유기체설사회를 생물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개념들과 사고를 끌어들인 사회 변동에 관한 접두 가지 두드러진 사회적 유형을 구체화했다. 첫 번째 유형은 전 산업사회, 덜 분화된 사회에서 사회적 응집력이 신념과 정서적인 측면의 일반적인 묶음에 기초해서 나온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기계적 연대라고 불렀다. 두 번째 사회적 유형은 산업화되고 분화된 사회에 대한 것이다. 이 사회에서 직업적 전문화로서의 분업은 공통된 의식으로 충만한 역할들로 가득찬 기능이다. 이러한 응집력을 뒤르껨은 유기적 연대라고 불렀다.[사회 분업론]의 많은 부분은 허버트 스펜서와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르껨은 스펜서의 산업사회의 계약적 연대로 부 터 유기적 연대로의 개념을 구분하기 위해서 제 1부의 마지막 장에서 몰두하였다.뒤르껨의 관점에서 이 계약적 연대는 사회적 연대와 동등하지 않다. 그는 교환에서 사람들은 단지 피상적인 계약만을 하며 그들은 서로 스며들지 못하며, 서로 강하게 연계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계적인 사회에서 처벌의 진정한 기능은 사회적 응집성을 유지하는데 있지만 현대산업사회에서 응집성은 상징과 신념에 의존하지 않으며 처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5.Weber의 이념형, 가치 중립적인 연구태도막스 베버는 사회학, 정치학, 기타 사회과학의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장으로 받아들여 진다. 베버는 사회과학에서 일반화된 범주를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목적 아닌 수단으로 일반원칙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베버에 의하면 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일반원칙 들과 일반적인 형태의 개념들을 정립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곧 베버는 사회학을 과학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뒤르껭이 우회하려고 했던 딜레마, 즉 개인들의 행위에 수반되는 주관적 인식에 대한 이해를 사회학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과제로 설정하였다.이러한 작업을 위해서 그가 제시한 경험적 증명의 방법으로 이념형이 있다. 이념형은 "다양하게 산재해 있으며 서로 무관한, 대체로 현재하며 간혹 부재하는 구체적인 개별현상 들을 어느 한 측면으로 강조한hers)"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다.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 시켜서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상호작용은 근본적으로 상징적 상호 작용인데 그 중에서도 언어가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습득되는 것인데 언어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상징은 인간에게 자기성찰과 행위규제의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 된다고 본다.10.Cooley의 영상자아거울에 비친 자아를 뜻함, 거울은 타인을 의미하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가 형성 된다. 3단계를 거치는데스스로 자아 형성타인과의 작용이 제일 중요한 요소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가초기의 사회화 과정에서 주로 타인은 가까운 형제나 부모가 됨, 부모가 아이를 궁정적으로 평가하면 아이가 자신의 자아를 긍정적으로 형성하게 됨 이 영상자아는 어린 시절의 원초적 집안에 의해서 형성이 되고 가장 영향력이 크다. 여기서 1차 집단과 2차 집단이 분류되기 시작 2차 집단은 사람들이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집단이기 때문에 이기적이며 1차 집단만큼 친밀하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커지며 영속성이 점점 사라짐에 따라 1차 집단의 기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11Erikson의 8단계 인성발달 단계이론.단계 시기 심리사회적 위기 최적의 결과초기유아단계 ~ 1세 신뢰 대 불신 기본적 신뢰와 낙천주의후기유아단계 1 ~ 3세 자율 대 수치심, 의심 자신과 환경에 대한 통제감초기아동단계 4 ~ 5세 솔선 대 죄의식 목표방향과 목적의식중기아동단계 6~ 11세 근면 대 열등 유능성사춘기 및 12~20세 정체감 대 역할혼미 현재와 미래 목표를 과거와청년기단계 재통합, 충성심초기성인단계 20~40세 친교 대 고립 헌신,공유, 친교, 사랑중기성인단계 40~65세 생산 대 자기침체 생산 및 세상과 미래 세대에 관심후기성인단계 65~ 통합 대 절망 조망, 과 수 있는 기질, 범죄의 원인의 초점을 개인에게 맞춤16.일차적 일탈과 이차적 일탈일차적 일탈은 우발적인 살인이나 폭행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차적 일탈은 경험적 일탈로 규정한다.17. 낙인이론일탈 혹은 범죄행동이 행위자의 심리적 성향이나 환경적 조건 때문에 객관적으로 발생된다 기보다 특정행동에 대한 사회 문화적 평가와 소외의 결과 규정된다고 보는 이론. 종래의 일탈연구가 일탈행동이나 일탈행위자를 판정하는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기준을 전제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낙인이론은 「일탈」개념이 한 사회의 문화적 구성 물이며 따라서 「일탈행동」을 규정하는 사회적 과정 자체를 문제시하는 데서 일탈연구가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종래의 일탈연구가 "사람들이 왜 일탈행동을 하게 되는가"를 밝히기 위해 일탈행동의 심리적 동기, 그 동기를 유발하는 환경적 요인, 일탈행위자의 사회적 지위 등에 주된 관심을 가져왔던 데 비해 낙인이론은 "어떤 사람의 어떤 행동이 왜 「일탈」로 규정되는가"를 밝히기 위해 개인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반응, 사회적 낙인이 행위자의 정체형성에 미치는 영향, 일탈의 증폭과정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탈연구의 이러한 접근은 1960년대 미국에서 레머트(E. Lemert), 베커(Becker), 키추스(Kitsuse), 메차(Matza)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기 시작했다. 낙인이론의 이러한 문제의식 이면에는 현대사회에 대한 다원적인 사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고도로 분화되고 복잡한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집단과 상호 모순된 집단과 규칙이 대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일탈행동과 일탈행위자에 대한 판단은 맥락에 따라 달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낙인이론은 일탈의 예방과 치유를 위해 설립된 교도소, 소년원, 정신병원, 복지갱생시설 등이 흔히 그 본래 임무를 저버리고 일탈을 영속화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학교 역시 학생들의 생활과 진로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일부집단에게 부당한 낙인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음이 낙인이론에 입각한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불평등. 모든 사회들은 어떤 유형의 계층을 포함하지만, 부와 권력의 차이가 커진 것은 국가에 기초한 체제의 발달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 가장 특별한 계층 유형은 계급구분 이다27.비정부기구란?NGO는 비정부기구이며 비영리기구로서 권력이나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며 시민사회의 공공선을 지향 하면서 시민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를 의미한다.NGO라는 용어는 유엔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유엔에 다양한 부속 기구들이 생겨나고,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민간단체 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유엔기구들은 정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 들과도 파트너 십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때 사용된 용어가 NGO였던 것이다.따라서 NGO라 말은 외교적 지위를 갖지 않은 단체를 부르는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적인 용어라는 것이다.28.부분문화와 반문화부분문화는 기존의 문화를 인정하여 함께 하는 것 지역간, 성별간, 연령, 직업, 종교 등 사회적 구분에 따라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나 행동양식이 생기는 것이다.반문화는 기존문화에 도전하는 문화로 대표적인 예가 히피문화이다.29. 가족주의개인이 가족에서 분리된 독립된 개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가족에 속해 있을 때가 더 중요한 개체로서 인정되는 것혈연적 결합, 결혼 혹은 양자 영입에 의해서 서로 관계되어 있고, 경제 단위를 형성하며, 성인 구성원이 자녀들의 양육에 책임을 지는 개인들의 집단. 비록 가족 관계의 속성이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사회들은 어떤 형태로든 가족 체계를 가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가족형태는 핵가족이지만, 흔히 다양한 가족 관계가 발견된다30.고독한 군중사회적 성격을 구분.서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 다른 집안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서오 다른 사회적 성격에 있음을 의미31.공중군중으로부터 구분하여 서로 신체적인 접근 없이 넓은 지역에 산재하는 사람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연결되었을 때를 말한다. 이는 인쇄술이 발달된 근대 사회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은 무비판
한국.일본.미국의 음주 문화의 동질성과 차이점‘술도 음식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술은 음식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술은 특히 그 나라 민족의 특성과 속성을 잘 말해 주고 있는 음식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나라의 술 문화와 그 민족의 문화는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흥겨움을 좋아 하는 민족이라면 여렷이 함께 모여서 마시는 술 문화가 발달 했을 것이고, 단정함을 좋아 하는 민족이라면 음주를 함에 있어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혼자 조용히 마시는 술 문화가 발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술 문화 즉 음주 문화는 각 민족의 문화를 잘 투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럼 먼저 각 민족의 음주 문화 중에서 주도(酒道)에 대해서 알아 보자.주도주도(酒道)란 한마디로 술을 바르게 마시는 도리이며 예의 범절이다. 술은 배부르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취성으로 하여금 온갖 아름다운 환상과 무아지경의 멋, 그리고 취흥이 주는 맛 때문에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을 바르게 마시는 주도의 진수는 자유자재한 취흥의 아름다움과 멋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지킬 것을 깍듯이 지키는 조화로움에 있다. 하지만, 술 마시는 버릇이 처음부터 바르게 길들여지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고 술을 절도없이 좋아 하다가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차원을 떠나서 술이 사람을 먹게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도 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술을 바르게 마시는 법과 예의 범절을 깨우치게 하는 사회 교육으로서 불가결한 것이 아닐 수 없다.한국은 유교의 영향으로 주도가 발달하였는데 이를 나누어 보면 크게 향음주례와 군음으로 나눌 수 있다. 향음주례는 격식에 맞춰 술을 마시는 방법으로 첫째,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끝가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 둘째, 음식을 정결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셋째, 행동이 분명하여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 넷째,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첨잔을 금기이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미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손님의 잔이 1/3이하로 줄어 있는데도 주인이 권하지 않으면 자리를 끝내자라는 의사표시로 이해하기 때문에 초대받을 경우 수시로 권유할 것입니다. 받은 후 가만히 입을 댄 것으로도 족하니 무리하게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또 술을 따를 때도 한손으로 하고 받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전혀 실례가 되지 않으니 오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일본에서는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잔을 돌리는 법이 없고 또 억지로 권하지 않습니다. 술잔이 가득찬 채로 그냥 두고 있을 경우 더이상 못마신다는 의사표시로 이해하면 됩니다. 한국과는 달리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실 때에는 여자 쪽에서도 남자에게 술을 따르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미국에서는 유럽의 영향으로 유럽과 동일한 음주 문화를 지녔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종류의 술을 선택하여 그가 원하는 양을 잔을채워 대접하고 술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양과 시간을 조절하여 마신고 술잔도 서로 교환하지 않는다.음주문화한국에서는 술이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풍습을 가지고 있으면 또한 즐겨 마신다. 혹자는 우리 사회처럼 술 마실 기회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고 말할 정도다. 기뻐서 한잔, 슬퍼서 한잔, 괴로워서 한잔, 서러워서 한잔 한다. 혹시 기회가 없으면 건수를 만들어 가면서 술을 마신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동양의 아일랜드’와 ‘술 소비 세계 2위국’이란 것이다. 한국은 술에 대하여 매우 관대하고, 술 때문에 벌인 실수도 적당히 양해가 되는 음주문화를 갖고 있다. 술자리에서도 집단적 압력에 의해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강제적인 음주 문화를 갖고 있다. 따라서 적당히 마시는데는 어려움이 있고, 폭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차는 기본, 3차는 필수, 4차는 선택이라고 외치면서 한번 시작된 술자리는 날이 새도록 이어지는 독특한 음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부터 이러한 술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빠른 산업이다. 장원급제까지 했으나 자신이 '홍경래 난' 때 항복한 선천(宣川) 방어사 김익순의 손자임을 뒤늦게 알고 일생을 방랑하며 술과 시로 보냈다. 동가식 서가숙하며 시를 지어주고 술을 얻어 마셨다는 작시걸주(作時乞酒) 등 많은 시를 남겼다.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작가인 김시습(金時習)도 한 시대를 풍미한 주선이다. 그는 당대의 비리를 닥치는 대로 조롱하며 중이 되어 산천을 주유 할 때도 툭하면 시내로 들어와 대취한 채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대원군(大院君)은 왕권을 손아귀에 쥐기 전 막강한 세도가들을 의식해, 철저히 파락호로 위장해 술로 야망을 불태운 술의 영웅이었다. 세도가들의 잔칫집에 나타나 술을 얻어먹고 대감의 품계를 가지고 여염집 상가를 버젓이 드나들어 오죽하면 '상가 집 개'라는 놀림까지 받았겠는가. 때론 시정의 잡배들과 어울려 대작을 하는가 하면, 투전판까지 끼여들기도 했다. 술값이 떨어지면 난초 그림을 팔아 충당하면서 그는 술독에 파묻혀 민심의 동향을 살피고 세도가들의 정보를 입수했다. 후일 야망을 달성한 대원군은 파락호 시절의 주붕인 심복들을 중용 해 술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또한 한국은 전통적으로 농경 문화권이므로 농사와 관련된 음주 문화가 한 축을 이루는데 춘하추동의 각 절기에 맞게 농사를 지으며 농주와 놀이용, 제수용, 손님 접대용으로 술을 빚어 마셨다. 또한 절기에 따라 가족간 이웃간 흥겹게 온정을 나누며 화합하고,미래의 길흉을 점치고 액막이로 삼으려 했던 몇 가지 절기술을 가지고 있다.설날에는 세주(歲酒)라는 술을 마셨다. 이때의 술은 주로 맑은 약주와 청주를 집에서 빚어 마셨는데 마을별로 김씨네 술, 최진사네 술 등 집집마다 특색 있는 술을 빚어놓고 설로 나누어 마시는 게 새해 초의 미풍이었다.정월 보름날 아침에는 오곡밥을 먹기 전에 귀밝이술을 한잔씩 마셨다. 이술을 마시면 한해 동안 구가 밝아지고 정신도 맑게 해서 이명주라고도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귀밝이술의 잔을 입에다만 대게 한 뒤는 곳이 ‘이자카야’라는 선술집인데 ‘이자카야’의 뜻은 ‘술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주로 직장 동료끼리 주로 찾는 선술집으로 양은 적게 나오지만 대신 싸고 깔끔하게 나온다. 주로 직장 동료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지만 우리와는 달리 술잔을 돌리거나 술을 강요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각자 자기가 즐기고 술을 시켜 주량 만큼만 마신다. 또한 같이 온 일행 동료끼리 각각 다른 종류의 술을 놓고 마시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조금 마시고 아직 바닥이 드러나지 않은 술잔에 상대방이 시킨 술을 따라서 늘 가득 하도록 해 놓는다. 이른바 첨잔 방식이 일본식 주법이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 술자리는 보통 한 시간이나 길어야 두 시간 정도로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만 마시는 경우가 보통이고, 집들이 멀어서 마지막 전차를 놓치면 큰일난다는 현실적인 인식들도 작용한다. 각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많이 시키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본의 선술집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취해서 주정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 꺼려하는 문화 속에서 형성된 술집 풍속도다. 이런 모습은 술값을 치를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와리깡'이라고 해서 일행이 똑같이 나눠 내거나 자기가 시켜서 먹고 마신 것에 대한 값만 내는 것이 보통이다. 언뜻 야박하게도 보이지만 역시 남에게 신세지기를 삼가고 분수를 지키려는 일본인들의 합리성이 엿보인다. 주머니 사정에도 건강에도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일본의 음주문화다. 또한 일본은 자동 판매기의 천국 답게 일본 전역에 20만 대에 가까운 주류 자판기가 있는데 술도 살 수가 있다. 대부분 맥주를 파는 자판기지만 그 가운데는 위스키나 청주를 파는 것도 있다. 자판기를 통한 주류판매고는 연간 4천억 엔. 일본 전체 술 시장의 10%나 된다. 이런 주류 자판기가 문제시 되는 것은 미성년자들이 자판기에서 술을 사서 마신다는 점이었다. 여론이 들끊자 일본 소매주류판매조합은 모든 주류 자판기를 없애서 쌀알 가운데 있는 순수한 전분만을 이용하는 것도 있다. 이처럼 고도로 정미한 쌀을 철망에 넣어 펄펄 끊는 더운물로 쪄낸다.쌀을 찌는 시간은 초시계로 잰다. 정말로 순간에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이것은 청주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일본 술은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술이다. 술을 이렇게 데워 먹는 것은 세계에서도 드문 음주법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마시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설은 없지만 대강 헤이안시대(平安:9~12세기)부터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추운 계절에만 술을 데워 마셨다. 일년 내내 술을 데워 마시게 된 것은 에도 시대 중기(江戶:18세기)부터이다. 술병이나 잔으로 도자기제품이 보급되던 때와 비슷한 시기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여름에 차게 해서 마시는 술이 인기가 있으며, 일본 술도 차게 마시는 술이 사랑 받고 있다.미국은 자유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이지만 기본적으로 밖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가끔 미국에 사는 교민들이 야유회를 하면서 술을 마시다 미국 경찰에 단속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대략 미국사회의 술에 대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옥외에서 술 마시는데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옥외에서 술 마시는데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보니 심지어는 알코올 중독자들도 거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술 병을 종이 봉투에 감춘 채 몰래 마실 정도이다. 운동경기장에 술을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술 판매 제도도 매우 엄격해서 지정 업소 이외에서는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구멍가게 체인인 세븐일레븐에서도 빵과 음료수 등의 생필품 외에 술은 팔지 않는다. 술을 판매하려면 우선 주 정부나 시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술 판매권을 반납한 업소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한정적으로 주류 판매허가를 내주고 있어서 술 판매소는 늘지 않고 있다. 술 판매허가가 있다고 해도 언제나 파는 것이 아니다. 일요일에는 술을 팔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일요일에 집에서 술파티라도 있다면 토요일에 미리 술을 사두어야다.
▶ 주술의 정의와 분류주술이란 사람들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초자연적 힘이나 초자연적 존재를 동원할 수 있다고 믿고 이와 관련된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이러한 주술에는 질병을 치료하거나 현재 시도하고 있는 일의 성공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백주술과 반대로 남을 해치거나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흑주술이 있다. 그리고 주술이 어떤 원리를 따르고 있는가에 따라 크게 동종주술(모방주술)과 전파주술(접촉주술)로 나눌 수 있다.먼저 동종주술은 `유사는 유사를 낳는다, 혹은 결과는 원인과 유사하다 로 말할 수 있다. 결국 동종주술에서 주술사는 하나는 현상을 모방하여 자기가 소망하는 어떠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비를 내리는 시늉을 하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믿는 것이 그것이다. 러시아의 도르파크 근처 마을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세 청년이 나무 위에 올라가 한 명은 천둥소리를 흉내내고, 다른 한 명은 번갯불을 형상화하고, 나머지 한 명은 사방에다 물을 뿌림으로 해서 비가 오는 시늉을 흉내낸다고 한다. 또한 우리 나라의 경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두 갈래의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어서 열매가 많이 열리게 하려는 성의 접촉을 모방한 주술이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여인네가 미륵의 코를 떼어다 먹거나, 성기를 닮은 바위에 걸터앉아 미끄럼을 타는 풍속도 성희를 모방한 모방주술의 일종이며 아이를 난산할 때 남편이 지붕에 올라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도 순산을 바라는 모방주술이다. 또한 봉화 지방의 세시 풍속 가운데 수수깡을 벼이삭처럼 만들어 세웠다가 대보름날 타작 시늉을 하는 것은 곡식의 이삭이 그처럼 알차게 열매 맺어지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모방 주술 행위라 볼 수 있다.다음으로 전파주술은 서로 접촉했던 두 사물은, 물리적 접촉이 끝난 후에도 공간을 사이에 두고 상호적 작용을 계속한다. 는 말로 어떤 부분에 대한 작용이 전체에 대해 같은 효과를 초래한다는 신념이다. 이를테면 머리카락이나 의류 등 인체의 일통을 준다고 생각한다던가 병자의 옷에 기도하게 한 다음 그 옷을 입히면 병이 낫는다고 믿는 일 따위가 그런 예에 속한다. 또한 어린아이가 젖니를 가져갈 때 빠진 이빨을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은 가져가고 새 이빨을 주라 고 하는 기도는 까치의 부리처럼 단단한 이빨을 원하는 소박한 생각이 주술로 발전한 것이다. 사람의 피가 묻은 빗자루나 방아가 도깨비가 된다는 생각도 신체의 일부인 피가 묻음으로써 생명이 부여된다는 주술적인 사고의 표현이며 손톱이나 발톱을 함부로 버리면 부엉이가 먹고 둔갑을 해서 그 사람을 해친다는 속신도 감염주술의 관념이다.▶ 주술을 표현하는 매개체이렇듯 모방주술이든 전파주술이든 주술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매개체가 있게 마련이다. 그 매개체는 자연물, 귀한 물건, 쇠붙이, 부적 등 매우 다양한데 지금부터는 주술을 표현하는 매개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우선 주술의 힘을 가진 물건으로 원시시대부터 신성시 해 온 구슬, 거울, 칼, 방망이, 도끼, 활 등이 있다. 특히 구슬은 예로부터 신성시하여 원시 무덤에서도 많이 출토되는데 삼국지의 『마한조』에는 금이나 보배보다도 구슬을 더 소중히 여기고 갖기를 원해서 옷과 귀고리로 장식했다고 한다. 또한 단군 신화에서 천부인 세 개는 구슬, 거울, 칼을 가리키는 것과 청동기 시대부터 청동구술을 제기로 쓴 점등을 볼 때 구슬을 신성시했음을 알 수 있다. 구술과 함께 거울도 주술력을 가진 물건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꿈에서 거울이 깨진 꿈을 꾼 이성계가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했다는 설화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금과 은, 쇠붙이도 주력을 가진 물건이어서 우리는 과거 금과 은을 귀금속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이나 임금의 왕관이나 귀족들의 장신구를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금척은 임금의 권위와 상징으로 왕이 될 사람은 신에게 금척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꿈에 신으로부터 금척을 받았는데 깨어보니 손에 금척이 들려 있었다고 한다. 혁거세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성계 역시 꿈에서 신에게서 금척을 받아서 왕이 되었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또한 물건 외에 주력을 가진 동식물도 있는데 신화에 나오는 쑥과 마늘, 붉은 팥, 창포, 동삼, 오이, 복숭아가지, 꽃과 열매, 등이 주력을 갖는 것으로 믿었다. 단군 신화에서 곰은 쑥과 마늘을 먹어서 사람이 되었고, 단오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것은 창포가 벽사력을 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지에는 붉은팥으로 팥죽을 쑤어서 집안의 중요한 곳에 떠놓고 뿌리면 잡귀 잡신이 물러간다고 믿었다. 또한 동삼은 신령스러운 약초로써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며 불로초라 여겨졌다.주술력을 나타내기 위해 자연 현상을 활용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주술물을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가진 인형이나 사람 또는 동물의 가면, 부적을 만들어 주술력을 가지도록 하였다. 특히 부적이나 주문은 주술력을 이용하여 잡귀 귀신을 물리치려는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부적의 원시 형태는 석기 시대 암각화나 무덤의 벽화라고 볼 수 있다. 부적은 문자가 없었던 시기에 당시 사람들의 소원, 기원, 희망, 방지, 제거 등의 수단으로 쓰인 하나의 상징적인 표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려져 오는 것과 같이 주문과 그림으로 벽사를 물리치는 풍속은 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헌강왕 때 처용의 화상을 그려 붙여서 잡귀를 물리려는 풍속이 있었고, 김유신의 묘에는 십이지신상이 그렸으며, 민간에서는 정초에 문배라 하여 호랑이와 닭의 그림을 그려 붙이기도 하였다.그 밖에 특정한 색깔과 숫자 등도 주술력이 있는 걸로 믿어졌는데 주술력을 가진 색으로는 흰색, 붉은색, 황토색, 청색 등이 있다. 신화에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흰 말이 꿇어 엎디어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던 붉은 알에서 깨어났다. 여기서 흰말, 붉은 알은 모두 성인이 태어나는데 연관된 성스러운 색이다. 또한 김알지도 태어날 때 붉은색 구름이 하늘에서 뻗어오고, 황금 궤가 나뭇가지에 걸쳐지고, 흰 닭 한 마리가 울고민족은 각기 그 민족의 생활 경험을 토대로 좋은 수와 나쁜 수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3,7,9,100 등을 좋은 수로 4를 나쁜 수로 여기고 있다. 홀수와 짝수 가운데는 홀수를 좋게 여기는데 이는 음양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홀수가 양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4를 꺼리는 것은 죽을 사 와 음이 같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아파트나 빌딩에 4층을 두지 않거나 영문자 F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숫자에 대한 관념이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은 단군신화라고 한다. 단군신화는 무리 3000명, 삼위 태백, 천부인 3개, 21일, 마늘 20낱, 100일, 360 여가지 등이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되고 풍백ㆍ 운사ㆍ우사의 삼신, 환인ㆍ 환웅ㆍ 단군의 삼신, 곰ㆍ 호랑이ㆍ 단군으로 이어지는 3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군신화의 기본 구조가 3인 것은 우리 민족이 특히 3을 신성한 수로 취급했음을 뜻한다. 3은 음양의 대립이 아닌 완성의 수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안정된 수로 생각되어서 민간에서도 이러한 3에 대한 호감이 나타나는 말과 풍속이 여전한데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삼세번을 하고, 부모의 상을 당해도 3년상을 치러야 효도를 다하는 것으로 여겼으며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 중매 잘하면 술이 석잔 겉보리 서 되면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 에서처럼 속담에서도 3이라는 숫자에 대한 의식이 나타나고 있다. 또 세시 풍속에서도 삼짇날인 3월 3일은 만물이 소생하는 날이기도 하다. 7이라는 숫자도 우리 선인들은 길한 수로 여겼는데 이 숫자는 도교의 영향으로서 북두칠성의 일곱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을 칠성이라고 여겨서 죽으면 칠성 판을 깔아 다시 칠성으로 돌아가길 바랬다. 100은 온전한 수라고 여겨서 우리말로 온 이라고 하였다. 백은 많은 수이기도 하므로 백일기도ㆍ 백성ㆍ 백화점ㆍ 백년가약ㆍ 백해무익ㆍ 백화만발ㆍ 백년과객ㆍ 백년해 등 많고 큰 수로 여겨졌다. 백과 함께 천 수 있다.▶ 주술의 표현방법과 효과주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기도, 의례, 금기가 있다.먼저 기도는 신령에게 직접적으로 빌거나 위협함으로써 신의 감응을 얻어내려는 방법이다. 신의 감응을 얻기 위해서 신에게 비는 기도뿐 아니라 신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는데 신에게 위협을 하는 태도가 신에게 비는 태도보다 선행했을 것으로 본다. 원시인은 제의의 효과를 굳게 믿고 있었으며 가끔은 주술의 힘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자연력이 있음을 깨닫고 그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강제보다는 설득하고 달래는 방법을 구사하게 되었다. 이때 주술이 이용되며 주술이 실패하는 경우에 종교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주술은 종교 이전의 단계다. 그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주물의 소유자는 태도를 바꾸어 달래고 감언이설로 주물을 어르며 엄숙하게 명령하고 꾸짖다가 결국 회초리로 때리는 행위를 한다. 예를 들어 가락국기나 수로부인의 이야기에서는 신에게 무조건 무릎을 꿇지 않고 위협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이 막대기로 땅을 치며 노래를 부른 행위는 모두 주술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기우제에서 신을 달래기 보다 신을 노하게 해서 비를 내리게 하려는 것도 신령에 대한 위협이다. 기우제단에 짐승의 피를 뿌리거나 오물을 던져 신으로 하여금 신성한 제단을 씻어 내릴 비를 내리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신에게 기도를 함으로써 주술의 힘을 이용하려 한다. 바위, 나무, 강, 미륵, 부처는 물론 조상과 하늘의 해와 별과 달에 이르기까지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주술표현의 방법이다.주술표현에서 두 번째로 살펴볼 방법은 의례다.의례는 신을 향한 인간의 봉사 적인 태도가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신 앞에 희생이나 공물을 바치고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기도 하며 주문과 기도를 행하기도 한다. 의례를 통해서 개인적인 결의가 신에게 표시되고 맹세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며 집단적인 의지가 전달되기도 한다. 의례를 표현하는 장소와 시간은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장소와 시간으로 바뀐다. 의례를 표현하.
1.정부의 기능우선 정부는 규칙 제정자로서 입법이나 행정을 통하여 입법이나 행정을 통하여 노사관계 전반에 적용되는 제도적인 체계를 만들어 내고, 또한 국민경제의 운영이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입장에서 고용문제, 최저임금결정, 노동쟁의 등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노동문제에 대해여 정책적인 유도나 직접적인 압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경우 정부는 노사관계의 당사자 뿐만 아니라 다른 근로자계층이나 소비자대중의 이해조정, 국민경제의 보호와 신장 등을 고려하게 되는데, 정치목표의 설정이나 정책의 선택을 위한 결정에 있어서는 집권당의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정부역할의 다른 측면은 사용자로서의 정부이다. 정부는 스스로 사용자 내지 경영자로서의 입장과 자격을 가지고 노사관계의 한쪽 당사자가 되어 그 일상적 운영에 관계한다.(1)혼합경제체제하의 정부기능-프리드만(W.Friedman)1)후생기능(state as provider)사회복지사업과 관련된 것으로써 이러한 자격하에서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최저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서비스 제공에 관한 책임을 지며 자유경쟁의 사회구조에서 파생되는 폐해를 완화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최소한도의 문명생활 을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보장할 책임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 간접적으로 연금, 의료보험, 실업보험 등을 통하여, 직접적으로는 노동자보상법 등을 통하여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를 보장함으로써 노사분규를 예방할 수 있다.2)규제기능(state as regulator)규제기능을 행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통제수단을 사용한다. 노사관계와 관련된 정부의 주요한 규제기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정부는 계약 및 재산의 자유에 관한 법률적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즉, 표준계약의 내용에 규제를 가하는 여러 가지 입법조처, 계약시 양당사자 중의 한쪽이 경제적 우월 또는 독점적 지위에 있을 때 그 지위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정법상 또는 사법상의 규제, 사적계약에 강제적인 계약조건을 삽입케 하는 . 이와 관련하여, 많은 학자들이 이익집단경쟁의 긍정적 효과와 중재자로서의 계획자의 역할에 대해서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즉 많은 경우, 정부의 계획자들은 해당 정책과 관련하여 기업들과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에 있으며, 따라서 계획이나 정책에 대한 전문적 판단이 반드시 올바르고 공정한 결정을 이끌어 낸다는 보장이 없게된다. 이 모든 점들은 공공복지 혹은 공공이해 등의 개념과 다원주의는 쉽사리 조화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해 준다.70년대 이후의 신(新)다원주의가 전통적 다원론자들이 부인했던 것, 즉 기업의 이해가 공공정책과 관련하여 특별한 우위를 점한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C.린드블롬에 의하면, 대기업들은 고용과 투자 그리고 자원의 배분과 관련하여 방대한 자율성을 행사한다. 특히 대기업들의 이러한 결정은 성장, 투자, 고용 등 일반 유권자들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닿아있고, 더욱이 기업들은 방대한 자금력으로 로비 등 대 정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의 이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여기에 기업의 언론매체에 대한 지배와 광고를 통한 소비자 취향의 형성 등 경제시장의 지배, 정치인과 정당의 기업에 대한 의존 등은 그대로 현실이다. 이는 곧 엘리트 이론과 맑스주의적 비판이 지적한 바, 기업은 모든 핵심적인 정책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지배하면서 거기에 대한 민주적 견제를 배제하고, 오직 부차적인 쟁점에 관해서만 정치적 토론의 대상으로 열어 둔다는, 즉 기업과 경제엘리트가 공공정책에 막대한 불균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현실에서 확인한 것이다.1.신자유주의의 배경과 의미1)노동당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의 대두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9년에 이르기까지 영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전후합의(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제시한 복지국가와 완전고용 모델이 당파를 불문하고 영국 정치에서 최우선의 국가목표로 수용된 것),즉 집단적 자율주의 또는 불개입주의 노사관계, 완전고용의 경제, 그조치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개별화전략에 의해 평조합원의 권한을 강화하고 사용자의 대항력을 보강하는 한편, 조직-비조직부문간의 경쟁을 촉진시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노사관계를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노조 조직 기업의 노사는 비노조부문과의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노동조합주의의 비용을 스스로 책임지고 부담하라는 것이었다.2)노조운영의 민주화보수당정부는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투표절차의 강제를 통해 말 없는 다수 온건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강화함으로써 소수 지도부의 무책임한 강경투쟁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1980년 노조의 투표비용 국가지원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1984년 중앙집행부 선출, 정치기금 설치 인준, 쟁의행위 찬반 여부 등에 대한 비밀투표를 의무화하고, 1993년에는 우편투표 제도를 의무화하면서 1980년대에 도입한 비용지원제도는 폐지했다. 이는 노조의 경제적 비용부담을 높이고 조합원에 대해서는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개인의 경제적 사정 등을 고려하여 의사를 결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1998년 이후에는 조합원이 조합의 재정 및 회계운영에 관한 사항과 노조규약 준수 여부에 관한 자료 요구권을 보장하고, 이이가 있을 때에는 정부기관(CROTUM)의 물적, 인적 도움을 받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등 그 동안 외면해온 조합원 개개인의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졌다.3)노동조합 거부권 보호 강화1979년 이전까지는 소극적 단결권이 집단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인식되어 클로즈드 숍이나 조합비 일괄공제는 물론, 노조의 징계에 대한 조합원의 항변이나 구제장치가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집단주의에 대한 공격을 목표로 하고 잇던 보수당정부가 이러한 사항을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먼저 클로즈드숍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클로즈드숍의 불법화는 10년에 결쳐 매우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먼저 클로즈드숍을 강요하는 2차 행동이 1982년 금지되고,1988년에는 클로즈드 획책하였고 다만 정부개입을 반노동자적, 친독점자본적 방향으로 조정하였던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사회적 코포라티즘1.개념:노동자계급의 자율적 조직화와 제반 사회적 권리 및 노조( 및 자본)의 국가로부터의 직접적인 이익 대변을 인정하는 속에서 국가를 매개로 하여 노자간의 계급갈등을 계급타협으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장치인 포섭적-민중통합적 코포라티즘 을 가리킨다.윤리적 정치철학에 영향을 받은 이념으로 강력하게 조직화된 이해집단들이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비교적 집권화된 정부에서 나타난다. 또한 국가 코포라티즘과 구별되어 다당제적 정치시스템과 구성원들에게 통제력을 갖는 집권화된 이익집단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적 코포라티즘은 각 이익집단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각 이익집단의 의견은 존중되지만 지나친 분산은 지양되고 있다.2.사회적 코포라티즘이념의 예(독일의 경우)흐름:19세기 중반부터 산업화 시작1948년부터 자유경쟁의 원칙을 중시하면서 사회주의 정책성향을 띰1979년 오일쇼크를 계기로 경제구조 개혁 착수(주로 상품시장 개혁)1993년 친기업가적 경제개혁 추진(각종 규제완화,시장개방)1997년 사회복지혜택 축소,법인세 인하 시도 실패1999년 슈뢰더 정권 세제개혁과 정부지출 삭감등 재정개혁 정책 착수독일에서의 사회적 코포라티즘1)독일의 사회적 자본주의독일은 1948년부터 자유경쟁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사회주의 정책성향을 띠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운영해 왔다. 시장내 자유경쟁을 보장하면서도 국민의 복지를 이유로 정부가 시장경제 에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한 것이다.특히 사회복지를 위한 의료산업등 사회정책 관련부문에서 국가가 조정 및 통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노동시장 정책,재산분배정책, 주택건설정책,교육정책등과 관련해서도 자유경쟁의 시장경제를 조정. 통제하고 있다.독일의 시장경제는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사회주의적 요인에 의해 국가통제를 받고 있어 세계적인 글로벌화 추세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은 대외적으로 불유지되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하나는 멕시코 노동정치(labor politics)의 이데올로기적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까르데나스 정권 이후 지속된 계급정치의 정교한 '제도화'이다.멕시코 혁명은 노동계급보다는 도시중간층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이 주도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멕시코 노동계급은 주기적인 대중파업을 통해 멕시코 혁명 주체들에 도전함으로써 멕시코 혁명의 성격을 민중주의적인 것으로 바꾸어 나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16-17년의 제헌의회에는 노동자, 농민의 대표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었고, 연방헌법에는 농민적 토지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토지개혁 조항들과 함께 노동자에 대한 법률적, 사회적 보호 조항들도 포함될 수 있었다. 결사의 자유와 파업권, 최저임금제도, 8시간 노동제, 해고수당, 아동노동 규제 등을 포함한 제헌헌법의 노동자 기본권리 조항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근대적 노동입법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것이었다. 멕시코 혁명은 노동자, 민중의 혁명으로 포장될 수 있었으며, 이후"혁명적 민족주의"는 곧 멕시코 노동계급, 노동운동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 졌다. 이제 멕시코 노동운동의 과제는 법규정에 훨씬 못미치는 현실의 노동조건을 이 기준에 맞게 변경시켜 가는 것, 즉 "혁명의 지속"이라 여겨지게 되었다.(Vandenbush, 1996: 65) 장기간에 걸쳐 노동계급과 노동운동을 '국가'에 통합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형성된 것이다.코포라티즘 계급정치체제의 제도적 정교화는 이후 까르데나스 정권 시기(1934-40)에 결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간헐적으로 부분적인 개편을 거치기는 했으나, 이 틀은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의해 부식될 때까지 장기간에 걸쳐 강력히 유지되었다. 까르데나스에 의해 "멕시코 혁명의 제도화"라는 맥락에서 추진된 이 제도화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국가-정당-노동조합관계의 제도화였다. 까르데나스는 집권 제도혁명당(PRI)을 개혁하여 이를 농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