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스미스의 동감의 사회학에 따르면 보편도덕 은 선한 사회의 기본 조건이며 그 근거는 모든 인간이 자연스레 가지고 있는 동감 에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기쁨, 슬픔, 고통, 환희, 분노 등과 같은 모든 종류의 열정에 대한 우리의 동포감정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동감을 중심으로 인간은 서로 반응하는 교섭행위를 함으로써 사회관계를 이루어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특수도덕 은 동포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동감 능력을 마비시키고 그 결과 도덕 감정 자체를 부패시킨다고 보았다.나도 스미스의 이러한 입장에 적극 동의한다. (이제 써나가는 내용들은 스미스의 입장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사회는 보편도덕의 원리가 적용되어지는 선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는 특수도덕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점차 복잡화, 다변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보편도덕 원리에 입각한 동감의 교섭행위는 과거에 비해 많이 부족해지고 상당수 변질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스미스가 말하는 상상에 의한 입장의 전환 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감의 사회학이라는 보편도덕의 원리가 현대화 과정에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이런 의미에서 먼저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나아감에 따른 변화와 현대사회의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현대사회에서 특수도덕이 적용되어지는 사례와 그 문제점을 바탕으로 보편도덕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고찰해 봄으로서 현대사회에서 동감의 사회학의 적용가능성에 대해 알아보겠다.Ⅱ.현대사회의 樣相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쳐 사회가 점차 근대화되어감에 따라 폐쇄적인 신분제가 붕괴되고 사회가 거대화·복잡화·전문화 되면서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의 변화가 일어났다.현대사회에는 인류사회와 제도가 각기 자신의 고유한 문화의 특수성을 간직하면서도, 전체인류와 통치제도가 그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들이 바로 선한 사회의 근거가 되는 보편 도덕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대다수 국가나 사회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전통적인 세계상, 가치체계, 규범체계에 대한 확신이 실생활에서 의문시되거나 구속력을 잃어버려 가는 가운데 삶의 의미와 가치 정향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보편도덕의 원리를 추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Ⅲ.현대사회에서 특수도덕의 적용사례와 문제점스미스는 인류의 역사를 지배 계급의 과도한 자기애를 정당화 하는 특수 도덕으로부터 인간의 자연 동감에 근거한 보편 도덕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특수도덕이 적용되고 있는 사례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먼저 전통사회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연고주의 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일 후에 있을 지방선거에 앞서 연고주의에 의한 잘못된 선거관행이 우리 선거문화의 가장 큰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외국의 경우도 이러한 연고주의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난히 친인척을 등용한 사례가 많은 조지 W 부시 정권의 연고주의가 최근 도마위에 올랐었다.또다른 예로 최근에 있었던 미국의 철강보호산업문제도 특수도덕의 적용사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미국과 EU는 부시 행정부가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3월 외국 철강제품에 대해 최고 30%의 관세를 부과한 조치를 둘러싸고 불화를 빚어 왔다. EU와 다른 철강생산국들은 미국의 세이프가드가 WTO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해 오는 등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이웃국가와의 분쟁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 것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 조취를 취하는 행위가 반드시 이기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 득과 실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다자간 모두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득을 최대한 확보하고 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협상전략과 능력이 요구될 것이다.이상 현대사회에서 특수도덕이 적용되는 사례들을 살펴보았다.전통사회에서 행해졌던 특수도덕이 현대에까지 적용된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발전에 저해요인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변화되어온 가운데 발생된 여러 가지 사회문제 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Ⅳ.현대사회에서 보편도덕의 필요성윗 글을 통해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특수도덕의 원리가 적용됨으로서 결국엔 집단이기주의를 낳게 되고 부패한 사회가 될것이라고 했던 스미스의 주장이 상당부분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보았다. 더군다나 각종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가 야기하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은 더욱더 보편 도덕의 원리가 현대사회에 절실한 것임을 보여준다. 위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보편도덕의 적용은 시장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생산력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제3세계를 보는 두 視角제3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크게 두가지 범주로 나누어 보면 하나는 서방세계의 학계에서 그동안 정통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자유쥬의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따르고 있는 급진주의적 시각이다.자유주의적 시각은 실증주의의 전통에 기반을 둔 것으로 서구사회에 있어 사회학 특히 행태과학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행태주의는 실증주의에서 강조된 경험적 연구를 일층 더 발전시켜 이론의 시험이나 자료정리를 위한 통계적 절차를 사회과학의 분석에 도입시켰다. 행태과학은 종래의 사회과학 연구방법들이 당위적 가치나 형식적 제도에 대한 분석에 중점을 두어온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반면, 인간이 왜 현재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분석의 초점을 두고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는 분석방법들과 유사한 과학적 분석 양식의 적용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결국 자유주의적 시각은 실증주의 및 행태주의를 근간으로 해서 과학적 분석도구들을 사용하여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이론들을 수립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사실상 그동안 서방학계에서 정통적인 패러다임의 골격을 형성시켜 왔다.급진주의적 시각은 역사주의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증주의적 전통과는 달리 역사주의는 객관적 세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나 또는 언제나 고도의 유동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현상들의 특성 때문에 근본적으로 어떤 한계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역사주의는 과학적 발전의 진보적 속성을 옹호하는 실증주의적 신념을 의문시하고 과학이란 결국 역사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역사주의는 본래 헤겔이나 마르크스등에 의해 대표되었다. 이들은 우선 연구대상이나 범위에 있어 포괄성을 강조했으며 동태적인 사회변화와 그 원인을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는데 관심을 가졌다. 대체로 역사주의에서 제시된 기본가정들과 개념들은 급진주의적 시각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이 되었다.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에 있어 급진주의적 시각은 1960년대에 등장한 후기행태주의에 의해 잘 반영되었다. 후기 행태주의는 과학적 분석과 통칙성의 발견에만 집중한 나머지 연구내용보다도 방법과 기술만을 강조한 행태주의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후기 행태주의의 특성을 보면 먼저 행태주의에서 분석도구나 기술의 적용에 많은 관심이 주어진 반면 후기 행태주의에서는 실질적으로 문제의 해결에 학문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증대되었다. 또 행태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수적이며 위기상황에서 현실보다는 추상적 관념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음을 비판하고 그 대신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들의 현실에 대한 분석을 강조하였다. 후기행태주의는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성을 중요시한 행태주의와 상치되는 것으로 윤리적, 도덕적으로 학문이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전제에서 사실과 가치의 분리가 아니라 가치가 지식의 축적에 함유되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또한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전체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참여해야 한다고 했으며, 지식인들이 지식을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이나 사회개혁에 직접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매일매일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전반적으로 후기 행태주의는 행태주의와는 달리 그동안 서방학계에서 주도적인 분석패러다임으로 간주되어 온 기본전제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분석 시각의 정립을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후기 행태주의는 제3세계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보수적이고 정태적이기 보다는 급진적이고 변화지향적인 성향을 나타냈다. 나아가 후기 행태주의는 계급문제나 집단간의 갈등문제에 분석의 초점을 두고 전체적 상황을 분석, 설명하는데 관심을 두었다.자유주의적 시각과 급진주의적 시각을 비교, 검토해 보면 첫째로 자유주의적 시각은 해석이나 분석에 있어 무역사적인 경향이 있으며, 또한 미시적인 분석경향과 사회를 엄격히 구분된 상태로 간주하고 합리적 정향을 갖고 학문적 문제에만 분석의 초점을 두는 경향을 갖는다. 이에 반해 급진주의적 시각은 해석이나 분석에 있어 총체적이고, 사회를 거시적 입장에서 보고, 인간행태를 통일된 것이지만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시각은 분석과정에서 종합과학적 방법을 중요시한다. 둘째로 자유주의적 시각은 구성요소들이 균형상태에 있는 안정된 체계를 분석의 단위로 삼고 있는 반면 급진주의적 시각은 사회적 계층과 갈등관계에 있고 구성요소들이 위계적으로 계층화되어 있는 국가의 개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셋째로 자유주의적 시각은 사회에 대한 분석에 있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그리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영향력 행사를 위해 경쟁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참여와 그들간의 상호작용에 관계되는 이상적인 시민문화의 형성을 중요시한다. 이에 반해 급진주의적 시각은 사회에 대한 계급적 분석을 제시한다. 여기서 계급과 계급간의 갈등을 생산력과 생산양식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넷째로 두 개의 시각들이 다 같이 권위에 관계되고 있지만 자유주의적 시각은 점차 전문화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지방분권화된 질서를 강조하는 반면 급진주의적 시각은 광범위한 기반을 갖고 있는 중앙집권화된 권위를 강조한다. 다섯째로 자유주의적 시각은 지배자들을 여러 권력중심체들간에 합리적으로 분산되어 있다고 간주하고 특히 그들을 다양한 국민계층의 대표로서 간주한다. 그러나 급진주의적 시각은 지배자들을 사회적으로 중앙집권화되어 있고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어 통일성을 보이는 집단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자유주의적 시각은 발전을 진화적, 일방적, 물질주의적 그리고 진보적인 관점에서 규정하지만 급진주의적 시각은 그것을 혁명적, 다각적, 동태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특히 급진주의적 시각에서는 발전이란 모든 국민들의 기본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는데 초점이 주어진다. 외에도 자유주의적 시각에서는 정치와 경제는 분리된 것이며 각기 별개의 활동영역을 갖고 있다고 간주된다. 이에 반해 급진주의적 시각을 대표하고 있는 마르크시즘은 경제가 정치 및 정치구조를 결정한다고 보고 결국 두 개의 영역들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좀더 구체적으로 정치경제학에 대한 자유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간의 차이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우선 경제관계에 관해 자유주의자들은 조화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활동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내에서는 국제적이든 경제관계는 갈등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반드시 손해를 보고 다른 한쪽이 이득을 보는 제로썸게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간주하는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경제활동에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되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경제활동의 목표와 관련해서 자유주의는 세계의 부족한 자원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세계복지의 극대화에 경제활동의 목표를 두고 있는데 반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제관계의 분배효과에 관해 보다 많은 관심을 둔다. 즉 이들은 경제활동의 목표는 부와 권력의 재분배에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단위 및 공공정책과 관련해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중 데이비드 리카르도나 죠셉 슘페터같은 학자들은 계급갈등의 중요성을 인정하였지만 대체로 가구나 기업 등을 경제활동의 주요한 행위자들로 간주한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제적 계급을 중요시한다. 경제와 정치간의 관계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은 아담스미스의 고전적 이론에 의거해서 경제에서 중요하게 간주되는 부의 추구가 국가에 의해 간섭을 받아서는 안되며 오히려 국가의 활동은 그러한 경제적 목표의 추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경제와 정치의 분리를 원칙으로 하면서 그러한 분리는 부의 추구를 극대화 시키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실상 생산양식이 정치관계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보고 양자간의 모순성을 역사적인 법칙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즉 정치는 경제발전의 결과에 복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제경제와 관련해서 자유주의의 입장은 점증하는 상호의전의 세계경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는 상호의존의 국제경제는 본질적으로 위계적 체계라고 규정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결국 제국주의적 혹은 패권적 권력은 무역, 통화 및 투자를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조직화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