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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
    1. 황룡사 9층탑 (요약)단기 2923년 경술년 4월 초파일에 자장(慈藏)율사가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진골출신의 높은 직위에 있었으나 늦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 부부는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며 아들을 낳으면 법해의 진량으로 키우겠다고 빈다. 그래서인지 자장은 초파일에 태어나게 된다. 그가 42세 되던 해에 선덕여왕이 황제 국임을 선언하며 즉위하였는데 이것이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이에 선덕여왕은 어릴 때부터 흠모하던 자장을 불러들여 재상을 삼으려고 하였는데 자장은 거부하고 출가하여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당나라에 문수보살이 있다는 청량산에서 기도하던 도중 꿈에 문수보살을 만나 게송을 받았으나 알 수 없었는데 이튿날 한 승려가 그 게송을 풀어 주었다. 그때 얻은 깨 닮음이 "삼라만상이 다 문수보살이다" 라는 것이다. 그의 명성이 당태종에게까지 전달될 정도 이었는데 선덕여왕의 귀국요청에 귀국 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귀국 길에 오르면서 신라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불법이 참으로 좋도다. 이렇게 좋은 불법을 가지고 귀국하여 신라를 불국토로 만들어야 하리라. 아니다. 이렇게 좋은 불법으로 신라를 지키고 부강하게 하는 비결을 얻으리라." 하였다.그가 이렇게 신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을 때에 태화의 연못에 신인이 나타났다. 신인이 자장에게 이르기를 황룡사를 지키는 황룡이 나의 장자로 신라를 지키고 있으니 9층탑을 세우라 하였다. 자장은 그때에 백성들의 호국사상을 통일시켜 탑위에 올려놓아 신라의 위용을 높이리라 마음먹고 귀국하자마자 대국통이 되어 황룡사 9층탑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1 -황룡사 9층탑의 총 지휘는 아비지가 하였으며 자그마치 80미터가 넘는 목탑이었기 때문에 고도의 예술성과 기술을 요했다. 단기 2978년 을사년 3월에 완성. 3년만이었다. 당시 장안의 모든 백성이 참석하여 자신의 마음속에도 9층탑을 쌓았다."일층은 일본, 이층은 중화, 삼층은 오월, 사층은 탁라, 오층은 응유, 육층은 말갈, 칠층은 단국, 팔층은 여적, 구층은 여백을 경계하여 쌓은 호국탑 입니다 황룡사에 이렇게 거룩한 9층탑이 있는 한 우리나라는 안전할 것입니다. 이 탑이 우리나라를 지켜줄 것입니다."그 해 통도사를 세워 계율종을 세워 많은 승려들을 입산시켜 수도하게 하였는데 통도사를 짓는 동안에 석벽아래 기거하며 석벽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를 먹으며 수도하였다. 그런데 두 마리의 개구리가 물을 혼탁하게 함으로 신통력으로 벽에 구멍을 뚫고 개구리를 들어가게 하였다. 많은 참배 객들이 통도사의 자장암에 들러 개구리보살을 보는 것으로 불심을 측량하게 되었다.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짓고 그곳에 만들어 놓은 개구리의 전설이 의미하는 바는 자장율사가 말년에 친견한 문수보살의 일화에 숨어져 있다.문수보살이 꿈에 나와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기다리는 곳에서 거지차림의 남루한 자가 죽은 개를 매고 와서 자장을 불렀다. 자장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여 돌려보냈는데 그 사람이 매고 있던 개가 사자보좌로 변하여 그 위에 올라앉아 거사가 한숨을 쉬며 사라져버렸다.자장은 그때서야 위의를 깨 닿고 그 빛을 찾아 올라갔으나 사라져 찾을 수가 없어지자 육신은 땅바닥에 벗어 던지고 혼령만 둥둥 떠서 문수보살을 따랐다. 그 해가 자장율사가 69세 되던 해 이었는데 그의 죽음은 통도사의 자장암에 숨겨져 있는 개구리로 태어났고 원효와 의상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2 -"자장 자장 우리아가∼ " 로 시작되는 자장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오던 정겨운 동요로만 알고 있었다. 황룡사 9층 석탑을 지을 때에 신라의 모든 백성들이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하는 등 공사장으로 인력을 나갔기 때문에 집에는 노약자와 어린이들만 남아 있었다. 어린아이가 울면 노인들은 그 아이를 토닥거리며 자장율사의 이름을 불러 잠을 재웠다고 한다. 너의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장율사와 함께 황룡사 9층탑을 지으러 갔단다. "자장 자장...."이것이 오늘날의 자장가의 유래가 될 정도로 그 당시 신라인들에게는 자장이 신앙의 대상이었고 희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숱하게 많은 외적들의 침입을 이겨내기 위해 간절한 마음이었던 신라인들의 자장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라인들의 호국염원이 살아 있는 9층탑이 50년 후에 벼락을 맞고 5차례의 중수를 걸쳐 그 위험을 유지했지만 결국 고종시기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지금은 허허벌판에 주춧돌 몇 개만 남아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실제로 그 모습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웅장하고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이 이야기를 다 믿지는 못한다. 또 실제로 삼국유사는 실화라기 보다는 신화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진정한 정신만큼은 실화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멀리서 보이는 목탑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는 잠시 자장가를 부르는 신라인이 되었던 것 같다......- 3 -2. 선덕여왕의 심화요탑설화(요약)신라의 여성들에게 신라의 미륵불을 낳아 달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던 진흥대왕의 손자인 진평왕은 스스로를 석가모니를 낳은 왕의 후신이라 생각했다. 황후를 마야부인이라 부르게 하고 석가와 같은 대성을 낳으라고 발원했다. 마야부인인 마흔살이 되어서야 석가를 잉태했고 아들을 낳으러 고향으로 가다가 꽃동산에서 아이를 낳다 죽었으니 그가 바로 덕만공주이다. 덕만공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는데 바로 선덕여왕이다.선덕여왕이 황제선언을 하였으나 여왕이기 때문에 고구려나 백제가 얕보았으며 심지어 당나라까지도 믿지 못하고 고구려와 화친을 맺으려하였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부처님의 가호로 지켜가고자 분황사를 창건했고 당나라에 조공을 보내어 당나라와 같은 연호가 아님을 이해시키는 외교술을 펴나감으로서 백성의 안위를 지켜냈다.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른 지 4년이 되던 해에 영묘(靈廟)사(寺) 를 창건하였는데 그 절에서 심화요탑설화가 기록되어 후래되고 있다. 도대체 선덕여왕은 어떻게 생겼을까? 온 백성이 궁금해 했다. 그러다가 영묘사에 생긴일인데, 지귀라는 자가 선덕여왕을 흠모하여 상사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왕이 얼마나 아름답길래 상사병에 걸렸을까 라고 생각하여 여왕을 신비스럽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장안은 여왕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는가 에서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며 존경하게 되기 시작했다.선덕여왕은 자장을 흠모했던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서 그의 아픈마음을 달래주기 위하여 영묘사에 불공을 갈 때에 몰래 소문을 냈다. 먼발치에서 라도 지켜보길 바랬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지귀는 영묘사에서 여왕을 기다리다가 여왕을 보게 된다는 안도감에 탑아래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인문/어학| 2003.09.24| 6페이지| 1,000원| 조회(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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