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족자산계급은 정권을 장악하고자 하기 이전에 먼저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 민족의 유일한 출로라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일종의 사조로서 출현하여 중국근대사상 제1차로 봉건주의경제사상인 '중본억말' 혹은 '중농억상'에 대한 반대명제를 구성하였다. 이는 적극적인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정관응은 초기민족자산계급의 요구와 희망을 집중적으로 반영하여 민족자본주의를 발전시키려면 외국자본주의 침략에 대항하고 경제침략이 포괄됨을 알아야 하며 '병전(兵戰)'의 부족을 보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그는 민족상공업 발전과 서양열가의 침략과 국가의 부강을 연결시켰는데 초기 개량파의 이러한 중상주의적 경제사상은 민족자보주의 경제발전의 객관적 요구를 반영하였다.진치는 서학 혹은 신학을 통상(通商)으로 귀결시켜 중국근대 초기 중상주의적 기본공식을구성하였다. 정관응은 비교적 전면적인 자본주의 성질의 경제 강령을 한걸음 더 발전시켜상전론은 단순한 경제강령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반침략적 애국주의 정치 성격을 갖추고있음을 지적했다. 또 민족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국가의 독립과 주권을 반드시 옹호해야 하며 제국주의의 불평등 조약에 의해 식민지에서 탈취되는 각종 특권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초기개량파 모두는 관세를 옹호할 것을 주장하고 나아가 서양열강이 중국의 해관과 관세를통제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제출한 상전론은 중국 군대역사상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내외의 반동세력의 결탁과 압박으로 인해 중국자본주의는 발전의 여질를 가질수 없었으며, 자본주의경제적 물질역량이 결핍되어 있었다. 상전론도 일종의 공허한 구호에불과하였으나 상전론의 영향은 이후 장기간의 역사시기에 있어서 중국 자산계급과 대표인물의 뇌리 속에 시종 박혀 있었으며, 표현형식의 하나로써 '실업구국론(實業救國論)'으로 널리알려졌다.상전론의 공상적 성질은 다른 방면에도 표현되었다. 즉 초기개량주의자는 이른바 '상전'을이용하여 제국주의가 발동한 무장침략 즉 '병전'에 대항한다는 환상을 하였다. 그들은 '재력으로 싸우고, 힘으로 싸우지 아니한다.'고 주장하면서 상전을 근거로 해야 '화목한 우의를 돈독히 하여 군대와 백성이 안락하다'고 하는 태평성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치는 중국이 상무를 진흥해야 외국의 멸시를 억제하고 수백년간 전쟁이 없다는 것을 보증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역사진행은 그들의 주관적인 희망으로는 전이되지 않는다. 진치가 위와같은 논의를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무장침략한 전쟁 즉 갑오전쟁이 발발하였다. 잔혹한 현실은 초기개량주의자들의 환상을 분쇄해 버렸다.5.4 시기의 민주와 과학사조는 광범위하고 심각한 사상해방운동이며, 그 현저한 특징은 민주와 과학의 기치를 선명하게 내걸고 그들과 상충되는 구사상, 구도덕과 구문화를 비판하고신사상, 신도덕과 신문화를 제창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근대에 민주화 과학의 제출은 민족자본주의의 발전과 서로 연결되는 것으로, 이러한 민족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산계급의 민주와 과학의 요구 또한 절실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중국무산계급도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여5.4운동 중 정치 무대에 등장하여 민주혁명의 영도적 계급이 되었다. 무산계급에게도 더욱새로운 민주와 과학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민주와 과학사조의 흥기는 신해혁명이래 정치형세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였다.신해혁명이 비록 청조봉건제도를 전복하고 민국을 건립한 역사적 승리였지만 자산계급혁명민주파의 유약으로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정권도 원세개를 대표로 하는 봉건군벌, 지주매판계급의 손아귀에 돌아갔다. 이와 같은 정치상의 반동, 암흑의 시기와 상응하여 사상문화영역에서도 봉건복고주의로 역류하는 광범위한 봉건미신이 성행하였다. 이와 동시에 사회상에서도 공교회, 영학회 등의 종교미신단체가 출현하고 봉건복고주의를 열광적으로 고취하고 귀신미신을 선양하여 혁명반격, 공화반대, 과학부인의 사상역류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반동역류에 대해서, 5.4시기의 진보적 인물들은 신해혁명의 실패에 따라 "공화정치가 황제전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볼 때 정치 혁명도 깊이 있게 진행되어"공화사상"을 선전하고 민주와 과학사상을 제창하고, 구예교, 구사상과 구문화를 비판해야했다. 이러한 5.4시기의 민주와 과학사조는 신해혁명이 진행한 1차 민주혁명의 "보충"이었다.5.4시기의 민주사조는 구민주주의로부터 신민주주의로의 변화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전입되기 전에 민주라는 구호는 기본적으로 구식 자산계급 민주혁명의구호였으며 자산계급 민주공화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가 전파된 이후 민주라는 구호는 새로운 내용을 갖게 되는데 무산계급영도하의 인민공화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신민주주의적 성질을 가진다.5.4시기 인물들이 논한 과학은 과학정신과 과학지식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포함한다. 과학정신이라는 것은 17세기 이래 근대 서양 실험과학적 관점과 이상주의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고 과학지식으로 말하면 근대 서양의 자연과학으로 고전역학과 19세기 하반기 이래의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