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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상설 공연 ‘임종’을 관람하고
    토요상설 공연 ‘임종’을 관람하고5월 26에 토요상설 공연을 보러 국립 국악원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저번에는 우면당에서 공연되었고, 이번 프로그램은 예악당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현대식 건물이지만 인테리어를 전통 건축 일부를 도입하여 꾸며져 있었다. 일반 공연장에도 음향효과를 위해 천장을 볼록 볼록하게 처리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예악당은 그 부분을 방패연이 여러 개 걸려있는 것처럼 꾸며 놓았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부분까지도 한국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꾸며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이번 공연은 ‘임종’이라는 제목이었으며, 여민락, 가야금 병창 춘향가 중 ‘사랑가’, 연화무, 시나위, 지름시조 ‘홀문창외’, 관현악 ‘대지’, 아쟁산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을 위주로 감상문을 작성하려고 한다.여민락궁중 의복을 차려입은 연주자들이 무대를 꽉 채운 모습을 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무대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앞 쪽 왼편부터 가야금, 아쟁, 거문고가 위치했고, 그 뒷줄에는 해금, 맨 뒷줄 왼쪽부터 대금, 피리 장구, 좌고가 있으며 맨 앞 오른쪽에는 박을 연주하는 분이 서 계셨다. 박을 연주함으로써 곡의 시작을 알렸다. 관악기의 소리가 곡의 선율을 이어갔으며, 현악기 소리는 상대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특히 피리의 소리는 무척 크고 고음이었지만, 중후한 대금의 저음과 조화를 이루었다. 뒷 배경에 그려진 산, 소나무, 학, 사슴 등은 궁중 음악에 잘 어울렸다. 연주는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시작하여, 점점 웅장한 느낌으로 변하였다. 여민락은 용비어천가를 배우면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곡이지만, 정작 감상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선대왕 중에 백성을 가장 생각하고 사랑하신 세종대왕께서는 이 여민락 역시 백성과 함께 즐기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웅장하고 화려한 분위기와 더불어 평화스럽고, 어우러지는 느낌까지 더해진 곡이었다고 생각되었다.가야금병창 춘향가 중 ‘사랑가’가야금 병창에서는 9명의 연주자들이 일렬로 앉았고, 맨 오른쪽에 고수가 위치하였다. 많지 않은 수라서 일렬로 앉았을 수도 있으나, 4명, 5명으로 나누어 두 줄로 앉았다면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춘향가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랑가라서 가사가 더욱 잘 들렸던 것 같다. 특히 ‘어화 둥둥 내사랑~’이나 ‘사랑, 사랑, 사랑, 내사랑이로구나’ 과 같은 부분이 들리면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졌다. 함께 노래를 하는 부분이 있고, 노래가 아닌 말로 대사를 하고 그에 대해 나머지 연주자들이 답변을 하기도 하였다. 노래와 함께 맑은 소리의 가야금은 잘 어울렸으며, 이에 고수의 추임새가 더하여져 흥을 돋우었다.연화무느린 궁중 음악에 맞추어 6명의 여인이 꽃병을 들고 춤을 춘다. 손가락에 옷자락을 끼워 하늘하늘 하면서도 화려하였다. 마치 선녀들의 옷과 같은 느낌이었다. 박을 두드리는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고, 그 동작은 아주 느리고 동선도 짧았다. 이것은 연화무가 궁중 무용 공연이기에 화려하지만 아주 점잖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시나위푸른색 빛이 도는 한복에 갓을 쓴 남자 7명과 남색저고리에 분홍 치마를 입은 여자 한명이 연주를 하였다. 앞 줄 왼쪽에서부터 아쟁, 거문고, 가야금이 위치했고, 뒷 줄은 왼쪽에서부터 해금, 대금, 피리, 장구, 징이 위치하였다. 앞 줄이 3명, 뒷 줄이 5명 앉아있으니 안정감 있는 구도였으며, 연주자들의 모습도 잘 보여 구성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시나위는 무속 음악에서 나온 기악 합주곡이다. 여러 악기들이 각기 다른 음을 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 점이 시나위의 매력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현악기와 관악기 모두 떠는 음을 많이 내어 더욱 슬픈 느낌을 자아내었다. 합주를 하다가 독주 부분이 있어 각 악기의 고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체능| 2007.06.11| 2페이지| 1,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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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 감상문
    토요상설 공연 ‘대려’를 관람하고4월 14일 국립국악원 토요상설공연을 관람하러 갔다. 토요상설 공연은 황종, 대려, 태주 등의 우리 국악 음계인 12율의 음명으로 매 프로그램의 이름을 정하여 놓았다. 이번에 내가 감상한 프로그램은 ‘대려’였다. 예술의 전당에서 매주 토요일 상설공연그동안 예술의 전당을 몇 차례 왔었지만, 국악원에서의 공연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국악원의 생김새는 기와집 모양으로 되어있었다. 예술의 전당의 모든 음악당은 그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특성에 맞추어 서로 다른 모습의 건축을 표현 하였다는 점에서 새삼 놀랐다. 특히 국악원은 한국의 전통미를 잘 살려, 우리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이곳을 찾는 외국인에게도 한국적인 면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하였다. 우면당에 들어서자 양쪽으로 개량한복을 입은 안내원들이 인사를 하였다. 깔끔한 옷차림과 친절한 말투, 국악에 맞는 개량한복. 역시 예술의 전당이구나 싶었다. 솔직히 여기에 도착하기 전에는 국악 공연을 관람하러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국악을 감상하러 온 것이다. 이곳에 온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조차 우리의 소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국악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대려’ 프로그램은 평조회상 ‘상령산’, 풍류(작곡: 이준호), 박접무, 앵두와 살구 이야기(작곡: 이병욱), 가야금 병창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 천년만세, 강강술래로 진행되었다. 이중에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을 위주로 감상문을 작성하려고 한다.평조회상 ‘상령산’앞줄은 왼쪽부터 가야금 5, 아쟁 2, 양금 2, 거문고 5, 가운데 줄에는 해금 7, 뒷줄은 대금 7, 피리 5, 장구 1, 좌고 1개가 배열되어있다. 맨 오른쪽에는 박을 든 연주자가 처음 시작과 마지막에 박을 침으로써 처음과 끝을 알린다. 상령산은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가 모두 사용되어 큰 규모의 합주를 이루었다.남자들은 홍적의를 입고 있으며, 여자들은 녹색 저고리에 남색치마를 입었다. 무대를 꽉 채운 연주자들은 시각적으로도 장엄해 보였으며, 그들의 의상만으로도 마치 왕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령산은 관악기가 주음을 이끌어 가고 있었으며, 특히 피리의 소리가 큰 것을 보니 향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거문고, 가야금, 아쟁 등은 곡의 뒷받침을 잘 해주어 관악과 현악의 소리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박접무뒷 배경은 큰 산에 사슴들이 노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6명의 무용수들은 녹색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었다. 그러나 저고리가 두루마기처럼 무릎까지 덥고 있으며, 소매가 허리까지 내려와 손을 펼쳤을 때 곡선이 아름다웠다. 손에는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흰색의 색동 한삼이 끼워져 있어 동작을 더욱 우아하고 멋스러운 효과를 내도록 해 주었다.첫 부분에 무용수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노래를 하였다. 가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음색은 맑고 고운 목소리를 내었다. 춤의 시작을 알리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였다. 춤을 출 때 소매의 움직임이 많아 마치 나비가 날개 짓 하는 것 같았다.맨 뒤에는 홍적의를 입고 연주해 주었다. 수업시간에 무용의 반주는 정박자로 연주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연주도 자세히 들어보았는데, 역시 정박으로 연주 되고 있었다. 박접무는 왕 앞에서 공연된 만큼 점잖으면서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춤이었다.가야금병창 흥부가 중 ‘제비노정기’다음은 가야금병창으로 가야금 연주자가 직접 연주하면서 노래하였다. 흥부가 중 한 대목인 제비노정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흥부가는 우리가 많이 접했던 대목들이라 가사도 더 잘 들렸으며 집중할 수 있었다. 정악과는 달리 민속악에서는 감정 표현이 자유롭기에, 표정도 훨씬 풍부하였고, 흥겨웠다. 가야금 병창을 들으면서 한 번 더 느꼈던 점은 우리의 소리가일정한 리듬과 일정한 글자 수로 소리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글의 우수성으로 언어 유희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빠른 비트의 흥얼거리고 읊어대는 힙합의 랩과 비교하였을 때 우리나라의 병창이나, 창, 판소리들은 느리고 음을 길게 끌고 하는 멋이 있다. 안타까운 점은 그 랩에는 익숙하여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는 반면, 우리는 우리의 국악의 소리에는 익숙하지 않아 화면의 자막이 아니었다면 어떤 내용인지, 가사를 잘 이해 못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천년만세무대에는 수묵화가 그려진 멋스런 병풍이 놓여 있었다. 여자 연주자들은 단아한 쑥색 저고리에 상아빛 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남자 연주자들은 상아빛 나는 한복에 갓을 쓰고 있었다. 이러한 복장과 병풍은 조선시대의 지조와 절개가 있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마치 양반집의 사랑방에서 연주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하였다.천년만세는 계면가락 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 도드리 이렇게 3개의 모음곡이라고 하였다. 이 곡은 조금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빨라졌다가 다시 느린 장단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각 곡마다 쉬는 것이 아니고 계속 이어져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장단의 변화에 따라 곡이 달라졌다고 생각해보았다.
    독후감/창작| 2007.06.11| 3페이지| 1,000원| 조회(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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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한국 성리학의 특징과 역사적 기능
    한국 성리학의 특징과 역사적 기능유교는 일반적으로 윤리도덕의 규범으로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유교는 종교적·철학적·예술적으로, 그리고 윤리적·교육적·정치적·법률적·제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을 본질적으로 함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교는 종합적이며 총체적이다. 따라서 유교를 특정 학문분야로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후기에 와서는 ‘형이상의 도’와 ‘형이하의 기’라든지‘이’‘기’와 같이 형이상하를 겸하는 구조적 측면과 ‘변’‘통’‘동’등 작용과 변화의 측면을 말하여, 유교사상의 다면적이고도 종합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주자학이 들어와 기능하기 이전에는 유교는 역시 그 역할을 유지. 발휘하면서도 불교, 도교, 및 그 밖의 토속신앙과도 근본적인 갈등을 빚지는 않았으며, 병행, 공존하거나 교섭, 혼합되는 현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송대 성리학이 종합된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신진사류들의 현실의식과 유불도관은 점차 달라지게 되어 반성적, 비판적,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주자학의 유입을 통한 유교의 변화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겠다.▶한국상고 및 삼국시대의 유교◀삼국 가운데 중국과 인접한 고구려가 먼저 중국문화를 접촉하여 수용, 발전시키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었으며, 다음으로 백제가 해상으로 중국과 통행함으로써 유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 사상을 받아들여 난숙하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방에 돌아앉아 중국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유교문화 역시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던 까닭에 삼국 가운데 가장 늦었다 할 것이다. 흔히 한국사상을 말할 때 고대의 삼국시대에는 불교를, 그리고 근세의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언명하는 수가 많은데, 특히 흥성하였던 시기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으나, 전래시기가 그런 것은 아니며, 실제로 유교가 전래하여 한국인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시기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이르다고 할 수 있다.한국고대의 유교사상을 이해하는 데 유의할 논점으로 생각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교는 삼국 시기였다. 이 고려국의 성립은 한민족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는 당시 후삼국으로서의 재분열상을 극복, 통일 시켰다는 것이며, 둘째는 고려가 성립함으로써 원삼국으로의 귀속적 성향을 불식하고 완전히 통합된 단일민족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그러한 가운데 오히려 과거의 신라국이 아닌 고려국의 처지에서 원삼국시대의 실체를 원상대로 파악하여 민족의 뿌리를 분명히 찾고 삼국의 ‘본기’를 객관적·사실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중세국가로서의 고려국이 뚜렷이 성립하고 국가체제를 완비시켰던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려가 앞으로 유지, 발전해 가는 데 감당해야 할 수많은 내우외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수많은 외침과 안으로는 반란을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난을 극복하고 국가적으로 유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신라를 계승하고 삼국시대 이래의 문화축척을 거력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고려시대의 유교적 기능은 그 이전 시대와 다름없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고려 초기의 과거제도 실시는 유교가 학문적으로 발전하고 지배적 정치이념으로 정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유학 소양을 갖춘 관료층이 성립·성장하면서, 유교 역시 지배적 정치이념으로 확립되어갔다. 고려 성종 무렵에 지배적 정치이념으로 확립된 유교사상은 왕도사상과 충효사상이 기본 내용이었다. 왕도사상에서는 군주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인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정치이념은 위정자들의 도덕적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기능과 함께 국가통치의 억압적 성격을 덮어 가리는 기능을 하였다. 그리고 충효사상은 충과 효를 동일한 성격의 도덕규범으로 간주하고, 자식이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듯이 신민은 군주의 권위에 복종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충효를 바탕으로 모든 인간관계에서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복종을 도덕적 의무로 가르쳤다. 이러한 충효사상은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집권국가와 신분제다. 주자학이 재래의 전통적 관념과 사회역사를 어떻게 변경, 전화시켰는가를 살펴보겠다. 고려후기에 다가가면서 이루어졌던 전환의 전말과 그 특징을 주자학{.주자학파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사회를 건설하며, 사장의 말폐를 지적하고 경학의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창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어렵고 중대한 문제로서, 일시적으로 발생하여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과 관련하여 알아보겠다.1 주자학은 불교에 대해서 교단적,교리적 비판을 했다. 종래에는 유, 불, 도가 상충하는 관계에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자학은 유교를 높이고 이단을 배척하는 이념이다. 고려시대에도 유, 불, 도는 갈등관계에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말에 주자학이 들어온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2 사장위주의 ‘말학’으로부터 경학을 중시하여 ‘근본’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사장이 발달한 시대로서 유자들도 문장가 아닌 사람이 없었으며, 특히 무신집정하에서 문예방면에 힘쓰고 문장의 조탁으로 흐르는 일은 여전하였다. 그러나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당시의 사류들은 모두 부허한 사장지학에 힘쓰기를 그만두고 질실한 경학에 힘 쓸 것을 주장하였다. 여말의 주자학자들은 한결같이 사장의 말폐를 지적하고 경학을 장려할 것을 주장하였다.3 여말의 사류들은 화이론적 역사관을 적용하고 새로운 국제관계를 정립함으로써 고려의 국권회복을 도모하였다. 고려는 국초로부터 대외관계에 이어서 중국의 선진문화는 받아들이지만 야만적인 정복국가에 대해서는 결연히 배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고려는 역대로 태조의 창업정신을 지켜왔다. 그러나 원의 침략에 직면하여 40년간의 오랜 항쟁 끝에 물리적으로 굴복되었고, 그 뒤 실질적인 속국으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이후 왕실을 비롯한 귀족층은 정치적으로 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북경을 수도로 하는 원나라는 중국문화를 기초로 하여 발전해갈 수밖에 없었으며, 원의 수도인 북경을 통하여 입수한 주자학은 춘추의리학을 바탕으로 한 존왕양이의 화이론적 민족주의를 내용으로 하적 인물을 배출함이며, 동시에 유교사상을 보편화하는 길이기도 하였다.6 여말의 주자학파는 재래의 의례, 복식 그리고 법제면 에서 불교식과 몽고풍이 혼합되었던 것을 《가례》에 의하여 유교식으로 변경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가례》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확대되어갔으며, 나아가 민간뿐만 아니라 종친에게도 그 법에 따라 적용하도록 하였다.7 전제의 개혁과 유교의 인정과의 관련성의 문제이다. 전제는 국가경제의 결정적 요인으로서 매우 중시되었다. 고려는 국초로부터 전시과를 실시하여, 그 나름의 합리적인 전제를 운영해왔으나. 후기에 와서는 문란해져서 과점(寡占)과 겸병(兼倂)의 폐단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 전제의 폐단과 개혁의 필요성은 식자들 공통의 인식이었다.고려말 사류는 양분되고 골이 깊어졌으니 그들은 모두 주자학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신진사류였으나, 그 뒤 한편으로 정몽주의 순절을 기리고 고려의 충신으로 남아 조선 초에 협력을 거부하였던 이들은 길재의 계통으로서 의리파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 조선조의 창업에 참여하여 새 나라를 건설하였던 정도전, 조준, 하륜 등의 참여파는 사공파가 되어 조선 초기의 양대 계통을 형성하였던 것이다.성리학은 유교에 철학적 세계관을 부여하고, 유교를 심성 수양의 도리로 확립한 새로운 학풍을 가리킨다. 성리학은 자연과 사회의 발생, 운동을 이와 기{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 소멸하여 그런 점에서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런데 기는 맑음과 흐림, 무거움과 가벼움 등에 따른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기로써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과 등급성을 갖는다. 결국 자연, 인간, 사회가 모두 위계적 질서를 갖는 것이다. 한편 태극, 천리, 이는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실재로서 기의 존재 근거이며, 동시에 만물에 내재하는 원리로서 기의 운동 법칙이 되기도 한다.의 개념에 의해 설명한다. 고려말, 조선 초에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높이는 방향을 취한 국가교학의 정비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의 성리학이 주목되었다. 성리학이격적인 탐구는 이언적과 서경덕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특히 심성의 문제에 대한 깊은 연구는 이황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이의 《성학집요》에서 보듯이 성리학에 바탕을 둔 경세론도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었다.가 학문의 중심 내용으로 자리잡았다. 16세기의 성리학의 발달은 한국철학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먼저 조선 전기의 창업 및 수성과정에 있어서 주요사항을 고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교이념에 입각한 법전의 편찬에 관해서 이다. 법전의 편찬은 기본적으로 유교의 이념과 경전사상에 준거하였다. 조선조는 유교입국으로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을 보더라도 유교의 경전사상이 주자학적 해석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와같이, 조선조를 통하여 국법이 유교를 기본으로 하여 일관하여왔음은 조선조의 국가적 성격을 알게 하는 것이다. 유교가 어떻게 국가적, 사회적으로 응용될 수 있었는가를 고찰하는 데 법전의 탐구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라 하겠다. 둘째, 성균관과 향교를 건립함으로써 선성, 선현을 존숭하여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고, 유교를 내용으로 하는 학교교육을 실시하여 유식한 인재를 양성한 일이다. 셋째, 조선 전기에 이룩된 학술문화의 원리로서 유학사상과 주자학에 대한 인식이다. 건국시에 갈등을 빚었으나 조선조의 입장에서도 고려에 대한 충절의 뜻을 인정할 수 있는 일이었고, 고려 충신의 자제와 제자도 조선에 출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정은 되찾아야 하며, 국가는 발전되어야 하고 학술문화 {.정도전-《심문천답》: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하여 선악응보를 넘어선 유가의 의리정신을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불씨잡변》:이단을 비판하고 유교이념을 천명하고자 하였는바, 이와같은 이론구성은 전적으로 주자의 성리철학에 기본하는 것이며, 또 그 활용이었던 것이다.길재- 유교의 기본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를 중시하여 실천하도록 하였으며, 스스로 모범을 보이으로써 조선조 의리사상의 귀감으로 높이 추앙을 받았다.도 발달되어야 했다. 예를 들면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이룩한 세종조의 었다.
    교육학| 2006.10.30| 9페이지| 1,0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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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거]춘천지역 주거 발달 과정의 특징(지리 공간의 이해)
    춘천지역 주거 발달 과정의 특징< 강원 도청은 왜 봉의산에 있을까? >서 론조선 후기에 간행된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평양 외성 다음으로 춘천을 꼽고 있다. 춘천에서 살 때 다른 지역은 홍수, 태풍, 가뭄 등의 피해를 입을 때에도 춘천은 크게 피해를 입었던 적이 없었고, 사람이 사는데 좋은 환경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상지나 삼각주에서 4대 문명이 발달하였듯이 인간이 거주하는데 필요조건은 공간과 비옥한 토지, 풍부한 물이다. 과연 춘천은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그리고 춘천에서 수동인 차를 몰고 시청이나 도청을 다녀오려면 진땀을 빼야만 했던 기억이 있다. 운전 미숙인 탓도 있지만, 어찌나 언덕이 가파른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그 때 ‘왜 이렇게 높은 곳에 도청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분지 지형에서의 인간 거주 형태를 살펴보면, 분지의 가장자리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형태인데 춘천은 봉의산을 중심으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이에 춘천분지의 지형 환경을 이해하고, 춘천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거주지 확산이 일어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본 론1. 춘천의 일반 현황1) 춘천의 위치춘천은 동경 127도, 북위 37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북쪽의 오봉산(779M), 서쪽의 삼악산(654M), 동쪽의 대룡산(899m), 남쪽의 금병산(652m)로 둘러싸인 분지이다.2) 춘천 연 강수량인간거주의 조건 중에 중요한 것이 물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강수량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조사하였다. 우리나라는 보통 여름에 강수량이 집중된 것이 일반적이다. 춘천 역시 여름(6월~9월)에 집중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7~8월의 경우 모두 300mm 를 넘는다. 기상청에서 발표한 전국의 강수량을 살펴보면, 68곳이 측정 되어 있는데, 이중 1년에 1개월만 300mm를 넘는 곳이 10군데, 2개월이 300mm를 넘는 곳이 7군데였다. 이를 보아 춘천은 연 강수량은 다른 지역과 비슷하더라도, 타 지역에 비해 여름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기 때문에 이 점이 인간 거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상청 홈페이지 참고로 그래프 작성 >3) 위성사진을 통해 본 춘천지도를 살펴보면 춘천은 남북으로 타원형을 이루고, 북에서 남으로 북한강이 흐르고 북동쪽에서 남서방향으로 소양강이 흐르고 있다. 소양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보이는 산이 춘천의 중심지인 봉의산이다.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여 흐르는 곳에는 섬이 보인다.2. 춘천 분지 형성 - 편마암과 화강암의 차별 침식고기 조산대인 우리나라는 산지 내부라 할지라도 인간이 거주할 만한 공간이 있다. 태평양판의 횡압력에 의해 한반도 전반에 걸쳐 일어난 중생대의 조산운동에 의해 산맥이 형성되었다. 지표면의 갈라진 틈을 절리라고 하는데, 이곳으로 물이 들어가면 풍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높은 산들의 계곡과 계곡의 교차점에는 풍화가 더 활발하게 작용하여 분지가 형성되어 인간이 거주할 수 있다. 춘천도 바로 이 같은 작용으로 형성되었다.춘천의 차별 침식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기 위하여 지질도를 분석하였다. 지질도를 살펴보면 가장자리 빗금 쳐진 부분은 편마암의 일종(흑운모 편암, 창촌리층, 방곡리층, 의암 규암층, 구곡리층, 평촌리층은 변성퇴적암류)이고, 가운데 부분은 화강암임을 알 수 있다. 화강암은 물리적? 화학적으로 매우 강한 암석이다. 하지만 다양한 광물들로 이루어져 있어 풍하에 가장 약한 흑운모 같은 광물이 떨어지게 되면, 다른 광물도 결합이 끊어지게 된다. 따라서 풍화 시 많은 모래가 나오며, 모래의 특성 때문에 보수력은 매우 낮고 투수력은 높다. 따라서 화강암 지대에는 물이 풍부하지 않는 것이다..< 춘천 지질도 >)풍화는 수분이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데, 화강암 지역에서는 수분이 지하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기에 지하 20m 깊이까지 풍화되어 두꺼운 토양층을 발달시킨다. 반면에 편마암은 물리? 화학적으로는 매우 약한 암석이다. 편마암은 점토로 이루어진 퇴적암이 열과 압력을 받으며 변한 것이다. 이러한 점토가 수분의 이동 통로인 절리를 막아버리기 때문에 표층만 풍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 같은 성격차이 때문에 화강암과 편마암이 함께 분포하는 곳에서는 차별침식이 일어난다. 그 결과 화강암지대는 평지로 변하여 인간 거주의 공간이 되었고, 편마암 지대는 높은 산지로 남게 되었다.3. 일반적인 분지의 거주지 발달 과정 - 대전을 중심으로 -대전은 산지로 둘러싸인 사각형 모양의 분지에 위치한 도시이다. 분지 내부는 충적지와 화강암의 심층풍화로 형성된 구릉지대로 구분된다. 분지를 둘러싼 산지는 변성퇴적암으로 구성되어 춘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환경이다.대전의 시가지 확산 과정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대전은 회덕, 진잠, 유성이었다. 회덕은 갑천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산록대 위치하여 갑천의 범람에 따른 홍수피해로부터 벗어나 선사 시대부터 주거지가 입지했다. 진잠은 갑천으로부터 3.8Km 떨어진 대전 분지내의 소규모 분지에 해당한다. 유성 역시 갑천으로부터 약 2.1Km 떨어진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모두 갑천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고도가 저습지보다 높기에 범람에 의한 홍수 피해로부터 안전한 곳이었다. 이러한 구릉지와 하천 주변의 자연제방을 밭으로 이용하였고, 하천 주변의 저습지는 홍수 피해가 잦아 주민의 거주나 논농사는 부적당하였던 것이다.제방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이 확보 된 다음부터는 저습지에도 인간이 정착하여 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대전의 시가지 확산 과정은 대전 분지의 외곽 지대인 산록대로부터 안쪽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전의 시기별 시가지 확산과정 >)화강암은 풍화시에 많은 모래가 나오기에 물이 풍부하지 않다. 하지만 분지 외각의 변성 퇴적암 지대를 통과하는 대전의 지류는 녹색 댐의 효과로 하천에 유량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또한 편마암지대는 점토 때문에 보수력이 있고, 영양 염류가 풍부하여 활엽수 등의 식생 밀도가 높다. 또한 점토와 유기물과 영양염류가 함께 결합하면 전기적인 특성을 띠어 비가와도 잘 떨어지지 않기에 홍수 시 산사태의 영향에서도 안전할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영향으로 대전은 산록대에서 인간이 거주하였을 것이다.4. 춘천의 거주지 발달1) 선사시대의 유적지춘천은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지를 지도해 표시해 보면 어디서부터 인간의 거주가 시작되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환경을 개척하지 못하고 순응해야 했기에, 지금보다 거주지 선택에 있어 환경적인 요소가 더 고려되어야 했을 것이다.지도에 선사 시대의 유적지를 표시해본 결과 소양강과 북한강 부근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자유 곡류를 하고 있기에, 강물에 의해 운반된 물질이 퇴적된 범람원일 것이다. 범람원 중에서도 취락이 형성된 곳은 배수가 잘 되는 자연제방이다. 배후 습지에는 비가 오면 피해를 입기 때문에, 예전에는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 제방의 토양은 배수가 잘 되기 때문에 벼농사 보다는 밭작물을 재배했을 것이다.
    사회과학| 2006.10.30| 6페이지| 1,000원| 조회(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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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실생활에서의 발명 평가A좋아요
    1. 작품제작 동기 및 목적 브러쉬를 이용하여 머리를 빗으면 두피 마사지도 된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긴 사람이 머리를 빗고 나면 빗 안에 머리카락이 잔뜩 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튀어나와 있는 머리카락을 잡아 당겨본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좀 더 쉽게 제거하기 위하여 실 핀이나 이쑤시개 같은 가는 막대기로 브러쉬 바닥을 긁어서 머리카락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시간도 걸리고, 브러쉬 바닥면에 먼지가 낄 수 있다. 이러한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자 머리카락을 쉽게 제거하는 브러쉬를 고안하게 되었다. 2. 작품 내용 브러쉬 솔 부분의 바닥 면에 판을 깔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① 제거판으로 인해 빗질하는데 불편감이 없어야 한다.② 제거판을 쉽게 제거 가능해야 한다. 라는 것을 고려하여 발명을 하게 되었다. 브러쉬 바닥면을 위로 들어올리면 머리카락이 쉽게 제거된다. 제거판을 분리하는 방법을 두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핸드폰 배터리 분리부분을 이용하는 것과 두 번째는 돌려서 제거하는 방법이다. 3. 제작 과정1) 핸드폰 배터리 분리부분을 응용① 브러쉬의 종류가 플라스틱일 경우 이용 가능② 브러쉬가 나무일 경우라도 분리 부분만 플라스틱 재질을 쓴다면 이용 가능하다. 2) 돌려서 분리하는 방법① 브러쉬 부분이 동그란 것에 응용할 수 있다. ② 제거판은 오른쪽으로 돌린 후 위로 들어 올리면 제거 되도록 만든다. ③ 제거판의 원리는 서로 맞물리도록 하여 평상시엔 빠지지 않다가 머리카락 제거 시 돌리면 빠질 수 있도록 한다.
    교육학| 2006.10.30| 1페이지| 1,000원| 조회(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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