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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denver 덴버
    덴버(Denver)1. 덴버의 역사와 인구 구성덴버는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다. 처음에는 평원에 사는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인 수족(Sioux), 샤이엔(Cheyenne), 아라파호(Arapaho), 아파치(Apache), 크로우(Crow)족들이 그 주인이었다. 그들이 들소를 사냥해서 생활하고 있었던 땅이므로 개척과정에서 샌트 크리크 싸움(1864년)이나 리오 블랑코 카운티에서 일어난 The meeker Massagre(1879년)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보물을 찾아 이곳을 탐험하고 개척했던 스페인 탐험대들이 붉은 색이 빛나는 바위가 많은 이곳을 콜로라도(Colorado- 스페인어로 “붉은 색을 띤” 이란 형용사이다.)라고 이름 붙였다. 독립선언의 서명으로부터 100년 후에 연방에 가입했기 때문에 The Centennial State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Cherry Creek과 South Plate River가 만나는 지점에 덴버가 형성되었다. 모피 사냥꾼들이 인디언들과 최초로 사귄 곳이었다. 수많은 서부 지역의 도시들이 금의 발견으로 형성되었듯이.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1858년 Cherry Creek 과 South Plate River 지역의 합류점에서 금이 발견되어 “Pike Peak”이라고 불리는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 발견의 소문을 듣고 동부로부터 죽음을 무릎쓰고 대평원을 건너 Cherry Creek의 곳곳에 텐트를 쳤다. 자연적으로 붐 타운(Boom town-신흥도시)이 형성되면서 술집, 도박장들이 난립하고 마차들이 진흙 투성이의 길에 줄을 지었다. 그리고 서부의 무법자, 총잡이, 난봉꾼들이 덴버로 몰려 들어왔다.초기의 덴버는 상당히 고난을 당했다. 홍수, 대 화재 사건 등 도시 내부 문제뿐 아니라 인디언들과의 전쟁, 남북전쟁 등 미국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덴버에서 발생하였다. 계속적으로 주변의 계곡과 산에서 금이 더 많이 발견되자 동부에서 서부로으로 지나가는 도시가 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금광에서 나오는 부(富)는 덴버의 아름다운 거리와 저택들을 만드는데 쏟아 부어졌다. 그 결과 덴버는 세인트루이스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에서 가장 멋쟁이 도시가 되었고 “평원의 여왕”으로 불리게 되었다.금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땅과 자유, 돈 그리고 희망을 찾아 이곳에 몰려들었고 그들은 서부의 변경지역인 이곳 주변에서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이룩하였다. 초기 정착시기의 전체 카우보이 중 1/3이 흑인이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덴버에 정착했고 라틴계나 아시아계는 주로 철도 노동자들이었다. 그들 역시 이곳에 정착해서 덴버의 복합문화 건설에 일조하였다. 1903년부터 시작되었던 구(舊) 한말(韓末)의 한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 중에서 하와이에 정착했던 일부 한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LA에서 약 4시간 거리인 캘리포니아 곡창지역인 프레즈노(Fresno)에 농사꾼으로 일부는 정착하고 또 다른 일행들이 내륙 깊숙이 진출하면서 이곳 덴버까지 진출하여 로키 산맥의 금광과 일부 탄광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최근 발견되었다.현재 덴버매트로 일대는 타주의 대도시들과 달리 흑인을 많이 찾아볼 수 없고 주로 백인 일색이다.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비교적 안전하고 주거환경이 깨끗하며 교육수준도 우수하다. 이러한 질적으로 우수한 생활 수준과 엄청난 경제적 성장으로 인하여 최근에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타주에서의 이주율이 높은 증가를 보이고 있다.2. 지리적 특성해발 높이 때문에 'Mile High City'로 알려진 덴버는 이전의 목축 타운에서 생기와 정감이 넘치는 대도시로 발전해 왔다. 사계절을 갖고 있으며 300일이 넘는 연중 쾌청일 수를 자랑하고 있어 덴버를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경제의 중심지이며 많은 박물관, 미술관, 레스토랑, 바, 클럽 등이 모여있기도 한 곳이다. 덴버는 콜로라도주 주도로 로키 산맥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1,610m 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원도시이기 때문에 건조하고 서늘한 편이다. 이곳하고 돌아가는 예도 적지 않게 있다고 한다.미국 전체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로키 지역에서는 유일한 대도시이다. 덴버의 길들은 대각선으로 구획된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형성되어 있다. 브로드웨이는 동부와 서부로 avenues를 나눈다. 대부분의 명소는 다운타운에 있으며, Colfax avenue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 작은 광장이 있으며, 북서쪽의 다운타운과 남쪽과 동쪽의 도시의 다른 지역과 경계가 된다.덴버는 지리적으로 미국 중서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다른 주로 이동하기가 편리하다. 콜로라도 주는 유타, 애리조나, 와이오밍, 뉴멕시코, 네브래스카, 캔자스, 오클라호마 등 7개 주와 접경하고 있으며, 덴버는 미국 동부와 서부를 잇는 도로와 철도의 요충지이다. 하늘 길도 마찬가지여서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나 동부의 뉴욕까지도 비행기로 3~4시간이면 도착한다. 덴버는 또 인근의 로키산맥과 콜로라도의 다양한 자연 경관을 둘러볼 수 있는 기점 역할을 한다. 실제로 덴버는 인근의 로키 산맥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미국서 가장 유명하고 고급스러운 스키 휴양지인 아스펜과 야외 온천욕을 비롯하여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글렌우드 스프링스 등 크고 작은 관광지에 둘러싸여 있다. 또한 겹겹이 펼쳐진 짙푸른 로키 산맥은 침묵의 평온 위에 솟아있는 이 도시를 고고히 감싸고 있다.1800년대 후반 ‘골드러시’가 가라앉으며 농업으로 눈을 돌린 미국인들은 콜로라도주에 이르러 동부와는 달리 물이 매우 귀한 현실에 맞닥뜨렸다. 콜로라도주는 콜로라도강을 비롯해 아칸소강, 리오그란데강 등 18개 주와 멕시코로 흘러드는 강들의 발원지이지만, 산맥 동쪽 들판은 연 강수량이 380㎜에 불과하다. 계곡과 들판 곳곳에 즐비한 2200개의 댐과 33만개에 이르는 지하수 관정은, 서부 개척의 고비로 떠올랐던 물 부족 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헤쳐온 콜로라도주 역사를 쉽게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빈발하던 갈등을 풀기 위해 형성되고 발전된 것이 문서로 명문화해 물을 둘러싼 분쟁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콜로라도주는 물을 유용하게 이용하는 이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선점주의’를 채택했다. 나중에 신청한 수리권은 기존 수리권을 해치지 않는 한도 안에서 허용된다. 수리권의 거래나 임대도 가능하다. 덴버에서는 물이 귀하다 보니 수리권은 토지소유권보다 더욱 소중한 사유재산권에 든다.덴버의 북쪽 South Plate River 지류의 한 관개수로는 이런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수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고, 바로 옆에는 물 행정관이 감독하는 유량계가 설치된 건물의 문도 잠겨 있다. 수리권에 정해진 수량만을 보내기 위해서다. 수량 70%가 산맥 서쪽으로 흐르는 반면 인구의 70%는 동쪽 들판에 살고 있는데다가 도시 인구가 갈수록 불어나면서 물은 생존과도 맞물리는 분쟁의 원인이 됐고, 이와 같은 이유로 주 대법원은 69년 물법원을 설치하고 연륜이 쌓인 판사들 가운데서 물 판사를 임명하기까지 했다. 또한 복잡하지만 매우 정밀한 절차와 규정이 만들어졌다.게다가, 98년부터 4년 이상 이어진 극심한 가뭄에 덴버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주 정부는 관정에서 뽑는 지하수를 50% 줄이도록 명령했고 잔디밭에 뿌리는 야외용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90년 덴버 남쪽 투포크댐 건설계획이 연방 환경청의 반대로 완전히 백지화된 이래 잠잠했던 댐 건설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덴버는 콜로라도주의 수도이기도 하며 전국에서도 훌륭한 건강보양도시로 유명하다. 로키산맥과 대평원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대도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맑은 공기를 자랑한다. 평원에 우뚝 솟은 다운타운의 스카이 라인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 아래 자리잡은 로키의 설봉들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낮의 열기와는 달리 해만 지면 상당히 조용해진다.이런 이유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프로스포츠 관람에 매달린다. 여러 가지 프로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곳 콜로라도 덴버 사람들에게 Denver Broncos (미식축구), Colorado Rockies (야구), Colorado Nuggets(농구) 등의 프로팀들은 굉장한 인기와 응원을 받으며 경기에 나서곤 한다.Denver Nuggets(농구) 팀은 미국 웨스턴콘퍼런스 중서부지구에 소속된 농구팀으로, 1967년 창단 하였다. '너게츠'는 금광이라는 뜻이다. 연고지인 덴버의 로키산맥에 금광이 개발되면서 생겨난 도시가 덴버이기 때문에 이런 팀명이 지어졌다. 덴버의 원래 이름은 로케츠였다. ABA 의 창단 팀으로써 출범할 당시에는 덴버 로케츠라는 이름으로 불러졌다. 너게츠가 NBA에 들어온 해는 1974년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덴버 너게츠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현재에 이른 것이다.3. 문화적 특성덴버는 시카고와 같이 현대적 건축미가 뛰어난 건물을 자랑거리로 삼거나 보스턴처럼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건물들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덴버 시내에는 독특하고 풍부한 개성을 보여주는 현대 건축물과 오래된 옛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덴버 국제공항과 컨벤션 센터, 리퍼블릭 플라자 빌딩 등은 현대 건축의 백미이다. 이와는 반대로 콜로라도 주청사, 덴버 시청사, 브라운 팰리스 호텔, 트리니티 교회, 센트럴 장로 교회는 고전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덴버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로 콜로라도 주청사를 들 수 있겠는데, 워싱턴에 있는 미국의 국회의사당과 모습이 흡사하다. 눈부신 금빛 돔의 장엄한 모습은 단연 독보적이다. 콜로라도 주청사 안에는 화려한 문양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데 일반인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돔 위에서 시내를 조망하거나 멀리 병풍과 같이 펼쳐진 로키산맥의 눈 덮힌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다.콜로라도 주청사와 덴버 시청사 사이에 넓게 펼쳐진 플라워 가든은 다른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시민 공원이다. 이곳에선 ‘시빅 센터 파크’로 불린다. 그리스 양식의 원형 기둥으로 장식된 조형물이 서로 마주보는 가운데 커다란 분수대가 그 사이에 놓여져 있어 시원함을 더해준다. 꽃이 활짝 핀 정원을 거닐다보면 마치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지열린다.
    사회과학| 2003.06.05| 7페이지| 1,000원| 조회(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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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 한강 감상문
    『한강』을 읽고서유럽학대학 영어학부200100334 2학년김 나 연드디어 『한강』을 읽었다. 남들은 한 달만에 읽었다는데 난 장장 3개월이 지나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내 대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레포트 때문에 읽기 싫은 걸 억지로 읽었다는 것이 조금 창피하긴 하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에 와서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때처럼 머릿속에 쏙쏙 넣어주는 공부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대학이라는 곳에서는 내가 생각할 수 있도록, 또 그 생각으로 인해서 내가 훨씬 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대학생활 2년 동안에 내가 훌쩍 커버린 느낌이다. 중학교 때 단짝친구가 『아리랑』을 다 읽은 것을 보고 나서 질투심(?)에 덩달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그 친구한테 전화를 했더니 『한강』은 아직 안 읽었고 『태백산맥』은 읽었단다. (-.-)^ 나는 이 책에서 역사의 흐름만 알게 된 것이 아니다. 6.25이후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이야기를 번번이 들으면서도 이해를 못했다. 뒤죽박죽 섞인 그 복잡한 정치이야기며 사상이야기들은 이해하기도 힘이 들었고 별 관심도 갖지 못했다. 그저 머리 아픈 시대라고 나 나름대로 정의 내리고는 무시해 버렸었다. 사실 을 처음 읽고자 했을 때부터 그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내키지 않았었다. 그 머리 아픈 시대의 이야기를 10권이나 읽어야 한다니.. 하지만 10권을 읽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 그전의 시대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게 돌아가는 현대사가 차츰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느끼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들을 풀어내지 못했던 나에게는 정말 큰 수확이었다.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만큼 삶의 질곡이 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한강』은 그러한 인생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삶의 아이러니가 바로 인생이라고 말이다. 굳이 풀어내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인생에 대해 굳이 답을 찾 분단은 단순히 해방이후 주변 열강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분단은 민족의 모순으로 이미 일제시대부터 역사에 내재되어 있었다. 일제의 토지수탈로 자신의 땅을 잃어버린 많은 민중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도시 노동자로 변모하거나 멀리 만주로 이주해야 했다. 많은 민중들에게 민족의 해방이란 잃어버린 자신의 땅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일제에 기생하며 부귀영화를 누려왔던 친일파들의 위세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연스럽게 남한 민중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빨치산의 형성을 통해 민족은 반공과 대립으로 분열되며, 이후 한국의 역사는 한국전쟁을 통해 분단을 이루게 된다.『한강』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분단 이후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이다. 당시 대학생들의 생활, 사회의 모습, 우리 여성의 모습, 정치인들의 행동과 만행,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있지만 중심이었던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생활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있다. 소설 속에는 실재했던 많은 사건들과 이름만 달리하는 우리들의 부모, 형제, 이웃들의 모습이 즐비하다. 한편의 영화처럼 한국 근대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진실을 재구성하여 역사의 부당성을 통렬히 파헤친다. 다만 실재했던 박정희 대통령이나 박태준 포철회장 등을 등장시켜 인물사적 재평가를 요구한다.공산주의를 지향하여 북쪽으로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유일민, 유일표 형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절망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숱한 이념적 갈등과 사회에 대한 실망을 가지고 결국 사회에 진출해서는 민족의 이념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모든 사회적 활동을 차단 당해 절망에 빠지고 사랑도 버려야했던 우리시대의 아픔을 이들 형제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와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는 농촌인의 도시생활을 보여줌으로써 무너져가는 농촌문화의너무나도 어이없는 권력욕으로 국민들의 저항을 받았던 이승만 정권은 그렇게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박정희를 통해 일어난 군사정권의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에 대해서 모든 힘을 집중시키고 그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서민들의 애환은 커져만 가고 권력에 대한 치부는 늘어만 갔다. "난 인생의 절반은 포기했어. 그렇다고 승려가 되거나 신부가 될 수도 없잖아. 내 기질에 전혀 맞지 않으니까. 난 여기가 딱 좋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유일표가 하는 말이었다. 고등학교 때 정치가 지망생이었던 그가 넝마주이들과 함께 재건대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너무 기막히고 어이없었다. 아버지 때문에 새파랗게 젊고 능력이 있는 그가 그렇게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박정희 정권,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던 그 시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시대, 노동자들보다는 기업을 위한 없는 사람들보다는 있는 사람들의 위해 돌아가던 시절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이념보다도 아버지의 이념 때문에 고통받아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땅을 버리고도 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말 살아있는 이야기처럼 보여주었다.작가는 한국 현대사를 '분단의 강화 속에 경제발전을 이룩해 낸 시대'로 규정한다. 이제 분단이라는 상황은 남한과 북한에 자리잡은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남한의 정치권력은 '반공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가지 무기로 민중들의 다양한 욕구를 억압하고 독재를 정당화한다. 일제시대의 수탈과 전쟁의 상흔으로 절대적 빈곤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던 많은 민중들에게 '경제발전'은 삶의 우선적인 과제였다. 영웅사관에 입각한 이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박정희의 공으로 돌리지만 『한강』은 그것이 얼마나 그릇된 관점인지를 온전하게 밝혀낸다. 지나온 시간들이기에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분명 암담하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많은 했던 숱한 서민들, 독일로 광부와 간호원이 되어서 돈벌러 떠나고, 월남전에 참전하고, 사우디에서 그 불볕더위와 싸우면서 외화를 벌어 들여 그저 하루 세끼 마음껏 먹고 자식들 학비 걱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세대가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착취를 당하면서도 한마디 불평도 하지 못하고 각종 재해로 시달리는 모습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해 노동 운동에 뛰어들어 박해를 자초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불리기 위해 권력과 야합하고 서로 다투고 배신을 일삼는 정치의 이면들, 분단의 피해자로 모든 삶에 제약을 받으면서 늘 사회의 어둠을 찾아 다녀야 했던 사람들, 신분상승을 이루었지만 진정한 인간적인 삶에서는 성공하지 못해 고독한 사람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숱한 삶을 만났다. 모든 것이 생생한 리얼리티로 남는다. 하지만 이렇게 이루어진 경제적 부는 정경유착으로 다져진 일부 권력층과 재벌에게 독점되었으며 하층민의 생활은 거의 나아진 것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경제발전'의 실상이다.『한강』은 시대적 소품을 적절히 활용하여 역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해 낸다. 회충약, 모닝커피, 원기소, 버스 차장, 프로 레슬링, 장발 단속 등의 소품들은 등장 인물들의 구체적 삶과 어우러져 독자들을 과거로 소급해 낸다. 이렇게 재구성된 역사는 이제 머리로 이해하는 역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역사가 된다. '소설은 현미경적 구체성으로 그리고 망원경적 총체성으로 인간 세상을 비추고 밝히는 거울이고 등불'이라는 작가의 지적처럼 소설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잉태한다.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던 점은 등장 인물들이 스스로에게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소설에 간간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등장한다. '민족'의 이름으로 '나'를 대신하고, '이념'의 이름으로 '나'를 대신하던 시대에 '나'를 '나'로서 호명하는 것은 사치이며, 때로는 배신이 된다. 격동의 역사가 훑고 지나간 후에야 의 거대한 흐름을 정지시킬 수 없듯이 그들은 '경제발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간다. 실존의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은 지금의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지역감정이나 독재의 폐해 등과 같은 우리사회의 모순, 아픔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하는 이유, 답답하게 돌아가는 이유를 작가는 이 세 가지에서 찾는다. 이 세 가지는 제각각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면서 이 사회의 아픔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더욱 가중시킨다. 그것들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두루두루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지난 수십 년 간의 주요 사건들이 교묘하게 엮여져있고 이를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추적한다. 한 마디로 말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소설판이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진짜 언론탄압이 무엇이었으며, 지금 목소리 높이는 자들이 그때 어떤 행동을 취했었는지, DJ 정권들이 지역차별 인사가 판을 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지역 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이승만이 이 나라의 국부라며 칭송하는 자들에게 이승만이 왜 물러나야 했으며 이 사회에 끼친 해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위 박정희 신드롬, 박정희 향수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아직까지도 유효한지 등을 알기 쉽게 동시에 날카롭게 서술하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막막한 심정을 생각하면 내 가슴도 함께 답답해진다. 이승만대통령이고 박정희 대통령이고 얘기만 들었지 그들의 독재가 얼마나 국민들의 숨통을 조였는지 겪어보지 못한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권력이라는 것이 뭔지, 나처럼 그저 평범한 소시민일 뿐인 사람으로서는 그 권력이라는 것에 눈 시뻘게지게 덤벼드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조금만 나라에 비판적인 말을 해도 빨갱이로 몰려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걸 보면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한강'의 시대를 산다는 것은 꽤나 힘이
    독후감/창작| 2003.06.05| 5페이지| 1,0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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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방] 영국의 방송과 광고
    contentsⅠ. 서문Ⅱ. 영국의 방송 정책의 특징Ⅲ. 영국의 방송 광고 환경1. 광고주 현황2. 방송법에 나타난 영국의 미디어 정책3.광고 규제4. 광고업계의 로비Ⅳ. 영국의 방송 협찬 광고Ⅴ. 영국 프로그램 공급 시장의 장점 과 약점Ⅵ. 방송 구조의 변화에 따른 영향Ⅶ. 국제 시장에서의 영국의 역할Ⅷ. 참고 문헌영국의 방송과 광고Ⅰ. 서문몇 년 전, 한국에서 텔레토비가 한참 유행했었다. 머리에 안테나, 배에는 텔레비전을 달고 있는 각각 4가지색의 옷을 입은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실제이름은 팅키윙키, 딥시, 라라, 포) 등 4명의 인형들이 건강하게 춤추면서 반복동작과 율동을 보여주는 유아 상대의 방송프로그램이다.이것은 영국의 BBC가 1997년 4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이래 25개국에 배포되었는데, 한국은 1998년 10월 KBS 2TV에서 ‘꼬꼬마 텔레토비’란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하였다.이 때부터 영국의 BBC 방송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는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흥미로 그쳤었지만, 이번 기회에 BBC 방송을 넘어, 영국의 방송, 그리고 광고에 대해 깊게 공부해보려 한다.Ⅱ.영국의 방송 정책의 특징영국의 방송은 전통적으로 의회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공공 서비스라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대처 정부하에서 제정된 1990년 방송법은 경쟁과 선택을 핵심개념으로 하는 시장 원리를 대폭 도입함으로써 상업방송의 새로운 체제가 출범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상업방송 체제의 개편에 이어 전개된 BBC의 미래 위상에 관한 논의과정에서도 보수당 정부의 방송 정책은 BBC의 경영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BBC의 새 경영진은 프로듀서 선택제와 같은 내부시장 제도를 도입하여 급진적인 경영효율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시청자의 선택을 강조하는 편성전략을 통해 다채널 경쟁국면에서 공영방송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따라서 198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 동안 영국 방송 정책의 중심적인 화두는 '경쟁'과 '선택'이라는 보수당 정부의 시장 주도적인 개념들이었다.Ⅲ. 영국의 방송광고 환경1. 광고주 현황영국에서는 총 광고주 수와 매체별 광고주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지역 민영 상업 텔레비전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매체의 광고가 여러 군데에서 분산 구매되기 때문이며, 둘째, 영국에서 출판되는 거의 모든 광고 관련 자료가 광고주 수를 100대 광고주로 제한하여 집계하기 때문이다. 대충이나마 전체 광고주 수와 그 현황을 파악하려면 영국광고주협회인 ISBA(The Incorporated Society of British Advertisers Ltd) 자료에 수록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광고매출액이 가장 높은 매체는 신문이다. 그 다음으로 매출액이 높은 매체는 텔레비전, DM, 옥외/교통, 라디오, 영화 순이다.2. 방송법에 나타난 영국의 미디어 정책영국 미디어 정책은 뚜렷한 미디어 정책 철학 하에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 방법은 언제나 점진적이다. 이것은 전통을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영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유럽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영국의 미디어 역사가 가장 큰 변화기를 맞은 것은 아마 대처 정부 시절일 것이다. 대처가 집권하면서 영국에 불기 시작한 탈규제 시장화 개념은 미디어 정책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처 정부는 영국 미디어 산업구조의 문제점으로 시장성이 결여된 운영과 기업정신을 지적하고 더 많은 공중파 채널과 위성 채널을 허락함으로써, 국민들의 채널 선택권을 늘리고 기존의 안일한 공중파 텔레비전 산업에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하였다.3. 광고 규제광고 규제와 관련한 법정 기관으로는 ITC와 방송심의위원회(Broadcasting Standard Council), 두 기관이 있다. 이 두 기관의 차이점은 ITC가 광고내용과 광고의 외형적인 사항을 규제하는 반면, 방송심의위원회는 단지 광고의 내용적인 사항만 규제하는 것이다. 광고내용의 규제에서도 ITC는 심의 기준을 마련하고 심의하는 기능이 있는 반면에, 방송심의위원회는 ITC가 마련한 심의기준에 따라 광고를 심의하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송심의위원회는 광고내용 중 특정 분야인 성적묘사 등 광고내용의 품위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만 심의하고 있어 ITC에 비해 협소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①광고 외적 규제ㆍ담배 광고는 전면 금지이다. 영화나 비디오 광고 중 영화등급 18 또는15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광고할 수 없다.ㆍITV에서 여성 생리대 광고물은 주중 16:00 ~ 21:00 사이와 주말이나 공휴일 21:00 이전에는 광고를 할 수 없다.ㆍ방송시간 1시간당 평균 7분을 초과할 수 없으며, 1시간당 최대 12분을 초과할 수 없다.ㆍ의약품 광고는 21:00시 이전에는 할 수 없으며, 어린이용 비타민이나 복용량 제한 규정이 있는 비타민 광고는 어린이 프로그램 시간대에 할 수 없다. 성인과 어린이가 같이 복용할 수 있는 비타민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이가 비타민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광고는 21:00 이전에 광고를 할 수 없다.② 광고 내적 규제ㆍ정치, 경제적으로 특정 이익을 대변하는 광고는 금지한다. 단 선거를 대비한 정당 광고는 예외이다.ㆍ현재 또는 최근 방송된(마지막회 방송분이 나간 후 2년 이내)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 중 중요한 대목을 발췌하여 만든 광고는 허용되지 않는다.ㆍ1.2도 이하의 주류를 마시는 자연에서는 실제 모델 연령이 18세 이상이거나 아니면 분장상으로 18세 이상으로 보여야 하며, 1.2도 이상의 주류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모델이 실제 25세 이상이거나, 25세 이상으로 보이도록 분장하여야 한다.ㆍ결혼 소개소 광고의 경우, 독신생활의 고독함을 감정적으로 과잉 표현하거나 마치 독신 생활이 사회적으로 합당하지 않는 것처럼 표현해서는 안된다.ㆍ어린이들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구별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광고 속에 나오는 장난감이나 게임기류들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특수효과를 이용해서는 안된다.ㆍ값비싼 어린이용품 광고에는 반드시 가격이 명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값비싼'이란 일반 소매상에서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닌 것을 말한다. 상품의 가격대가 고정적이지 않고 여러 종류가 있을 때에는 가장 값비싼 가격대가 표시되어야 한다.4. 광고업계의 로비광고업계는 오래 전부터 영국에서 상업방송의 확대를 위해 맹렬하게 로비활동을 벌여왔고, 그 결과 ITV와 상업라디오가 출범하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남은 과제는 거대한 BBC 채널과 네트워크에 광고를 도입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광고업계는 1984년을 전후하여 BBC 수신료 인상 논쟁이 가열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대대적인 로비를 벌이게 된다. 더욱이 이들은 대처수상이 BBC 의 수신료 제도에 대해 비판적이고 광고도입을 선호한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광고주 연합단체 및 광고대행사를 총동원하여 BBC 공격에 가담하였다.Ⅳ.영국의 방송협찬 광고영국의 방송협찬광고 시장은 미국이나 다른 여러 유럽 국가에 비하여 아직 덜 발달되어있다. 영국에서 협찬광고가 처음 시도될 때에는 주로 제휴기업의 로고를 프로그램에 제시하였다. 협찬 광고주와 프로그램을 연계시켜 그로부터 긍정적 효과를 얻거나 혹은 공동제작이나 바터제와 같은 형식의 관행을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영국의 텔레비전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협찬광고의 평가 방법은 단순하다. ITV 계약사들로부터 공급될 수 있는 협찬광고의 최대물량은 방대하다. 광고주가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을 인식시킬 수 있는 협찬광고의 기회는 이제 더 길게,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확대되었다. 현재 ITC 계약사들이 협찬광고를 통해 수입을 늘리려는 노력에 제한을 주는 것은 경제적인 것뿐이다. 즉 협찬광고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와 광고주가 협찬광고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Ⅴ.영국 프로그램 공급시장의 장점과 약점영국은 창조산업 측면에서 대단히 잘 정착되어 있다. 그 이유는 산업을 시장원리에 맡겨놓지 않고 프로그램과 콘텐츠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방송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BBC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물론 상업 방송에도 싼 가격에 주파수를 이용하도록 해줌으로써 결국 공영 방송과 유사한 보조금을 지원해주게 되는 동시 지원 정책을 시행해 왔다.영국 텔레비전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대체로 필요한 프로그램 재원을 전액 지원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영국 텔레비전의 제작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시장은 거의 없을 것이다.영국 텔레비전의 대단한 강점은 시장 점유율이 10&인 채널도 프로그램의 가치 창출에 투자할 수 있고, 동시에 점유율이 30%인 채널도 그 수준에 맞는 가치 창출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규제 정책의 두드러진 업적으로 영국 편성시간이 대단히 높은 비율의 국내용 제작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과 국내 시청자 우선 편성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정책이 국제적 성공을 위한 최상의 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실질적인 경쟁 압력의 부재로 인하여 영국 방송사들의 치열한 국제 시장에서 좌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과학| 2003.06.05| 7페이지| 1,000원| 조회(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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