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향연(饗宴)을 읽고..사랑에 관하여..22년을 살아온 동안 자의든 타의든 철학에 관한 책이라고는 윤리 책 이외에는 읽어 본 기억이 없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나마 이번에 성의 철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철학을 맛이나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으로 생각한다. 명색이 지식인이라는 대학생이 되어서 교양을 쌓아야 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역시 철학은 내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첫 수업부터 어찌나 날 막막하게 만들던지... 고등 학교 윤리 시간에 들어 본 철학자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아 반가웠지만 이름만 기억이 날 뿐, 그 밖의 내용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미 결심한 터라 나름대로 열심히 수업을 듣던 중, 드디어 과제가 나왔다. 플라톤의 향연. 읽고 독후감 쓸 것. 답답한 가슴을 안고 나는 그 길로 도서관으로 갔다. 향연이란 책을 찾아 빌려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한자가 많아 읽기가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리스 사람들의 긴 이름들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겨우 한 번을 읽고 며칠 후, 서점에 가서 한자가 거의 없는 향연 책을 한 권 샀다. 다 읽고 난 지금, 사랑이란 단어의 의미와 문제점들에 대한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그리고 동성애에 관한 생각들이 너무도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 여기서는 그냥 일반적인 에로스에 대한 생각만 말하려고 한다.사랑이라.. 사랑이란 단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 중에 한 단어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지만, 그 누구도 사랑이란 어떤 것이다, 라고 정의 할 수 없는 단어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어떻게 정립되어 있는지, 아니, 정립은 되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에 자꾸만 흔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생각들은 더욱 그러하였다.이 책은, 총 7명의 사람들이 향연에서 한 대화들을 아폴로도로스가 그의 친구에게 전해주는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아폴로도로스는 소크라테스의 숭배자이며 그가 향연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그도 아리스토데모스라는 친구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또 다시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향연은, 아가톤이라는 시인이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축하연을 벌인 후, 그 다음 날 아가톤의 집에서 열렸다. 소크라테스는 축하연에 참석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축하연에서의 과음으로 지친 상태였다. 그들은 식사를 끝낸 뒤 토론을 시작했는데, 축하연에서 술을 많이 마셨으니 오늘은 조금만 마시고 얘기를 많이 나누자고 합의를 했다. 그리고 곧 논제가 정해졌는데, 에뤼크시마코스가 에로스'는 가장 위대하고 연로한 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도 찬미를 보내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파이드로스의 의견을 말하며 에로스를 찬양하는 것을 논제로 정하자고 말했고, 모두들 찬성했다. 그리곤 파이드로스부터 파우사니아스, 에뤼크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순으로 에로스를 찬양하고 뒤늦게 등장한 알키비아데스는 갑자기 논제가 바뀌어 소크라테스를 찬미한다. 나는 그 중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이야기는 생각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의 문답 후에, 디오티마라고 불리는 부인으로부터 에로스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를 했는데, 디오티마의 문답법을 통한 그들의 대화가 이해하기 어려웠고, 아가톤이 빠진 모순에 나 역시 빠졌으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또 에로스는 선과 악, 미와 추의 중간 지점에 있는 존재이며 신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중간에 위치하는 위대한 정령이라고 하며 디오티마는 에로스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에로스를 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찬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찬양했기 때문이다.우선 파이드로스의 연설을 읽어보면, 그는 에로스 신에 대한 찬미를 주로 연설했는데, 아름답게 살려는 인간의 마음을 평생토록 사로잡는 것을 사랑이요, 상대방을 위하여 죽음도 사양치 않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자들 뿐이다, 라고 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여 잘 이해가 가지 않으나 사랑하는 사람은 그 상대방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파이드로스가 예로 든 알케스티스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남편의 부모조차도 하지 못했던 그런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죽을 만큼 슬퍼하고 눈물은 흘리겠지만.. 요즘은 더욱더 그런 사랑이 희귀하단 생각이 든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 신이 우리에게 복지(福祉)를 마련해 주는 근원이라고 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며 애인 앞에서 불명예를 당하는 일을 몹시 싫어하며, 아름다움을 사모하게 된다. 특히 애인 앞에서 그들은 매우 용감하므로, 만일 쌍쌍의 연인으로만 구성된 나라나 군대가 있다면 그들은 추태를 꺼리고 체면을 존중해서 그 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라고 했다. 에로스는 연인들에게 사랑을 통하여 용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이 말도 일리가 있다. 물론 이것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여 나라나 군대에까지 적용시키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올바르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이기를 원하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본능적으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도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에로스, 즉, 사랑이 덕과 행복을 얻는데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류에게 최대의 권위(權威)를 지니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는 파이드로스의 의견에 찬성한다.파우사니아스는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영혼을, 정신을, 즉 고상한 것을 사랑하는 것과 영혼보다는 육체를 탐내는 세속적인 사랑. 영원한 대상을 사랑하지 않으므로 영구성이 없다고 하는 세속적인 사랑.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무엇을 바라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 사실 그것을 사랑이라 표현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 추한 것이고 세속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은 나도 생각이 비슷하나, 조금 다른 점을 이야기하자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과 육체 모두를 사랑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육체만을 탐하는 사랑은, 그 사랑하던 육체가 시들고 병들면 사랑이 식어버리고 도망을 치게 마련이라고 한 파우사니아스처럼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세속적인 사랑이라 표현한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영혼만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은 대부분 눈으로 느끼는 감각에 의하여 그 사람을 먼저 알게되고,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만나보지도 않고 정신적인 교류만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영화나 소설 등에서 보면 펜팔이나 채팅 등을 통해 사람을 사귀게 되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 의심이 든다. 그렇게 사랑이라 믿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경우라 하더라도 막상 눈으로 본 그 사람의 모습이 자신이 생각했던 형상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면? 소위 말하는 환상 이 깨어지지는 않을까 싶다. 내가 말하는 사랑을 느끼게 되는, 또는 사랑해야하는 육체 는 아름답다거나 예쁘거나하는 그런 모습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비정상적인 육체, 흉하거나 추한 육체라 할지라도 그 모습을 눈을 통해 보고 느끼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