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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사레포트 (서양미술사- 그리스~로코코 미술까지)
    1.그리스 미술 (기원전 4세기~1세기)"서양문명의 시작과 영광"(1)배경?기원전 1100년 경 북방에서 흘러 들어온 그리스 부족에 의해 유린된 미케네 문명. 새로운 부족은 본래 있던 원주민과 뒤섞여 많은 것 흡수.?이집트나 근동 국가들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아 아테네를 중심으로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그리스 미술이 번성?모든 시민이 도시 국가 생활에 참여. 자유롭고 개인적 성향을 가짐.(2)특징·? 비례와 조화를 통한 이상을 추구→개성적 용모나 개인적인 결점을 갖는 특정한 인물을 그리지 않음그리하여 주제는 이상화 되고 여성은 가능한한 아름답게 표현.?인간의 삶의 질을 우선으로 하는 인간중심,?개인의 업적이 중심이 되는 개인주의?규율이 정확하고 명쾌함?회화-채화(포도주나 기름 및 물을 넣기 위해 만들어진 단지)?내면적인 생활에도 관심을 가짐-‘인생은 명예로운 모함.죽음은 두려울 것 없는 환영’①아르카익 시대(기원전 7세기~6세기)?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의 아르카익 시대에는 소박하고 신선한 미를 추구했다.?소아시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인상 조각으로 대표된다.?동적이고 서술적인 회화를 추구 하였다.?정면성의 법칙-육체의 각 부분의 조립을 사실에 입각한 묘사적 의지에 의하기 보다는 견고한 형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구축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코레의 '소녀상', 코우로스의 '청년상' 등이 대표적이다.?치졸한 안면 표정- 아르카익 스마일이라 불리는 미소를 특색.?대표작 - 아티카식 흑색상 항아리, 기원전 525년경② 클래식(고전) 시대(기원전 5세기~4세기)?‘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성’ 빈켈만?단순성과 고요함을 추구하였다.?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의 클래식(고전) 시대에는 조화미, 이상미를 추구한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였다.?아르카익에 나타난 그리스인의 창조력은 클래식 시대로 가면 묘사주의의 확립을 가져왔다.?대표작 - 아티카식 백색 단지 부분, 기우너전 440-430년경·③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세기에서 1세기의 헬레니즘 시대는 세속적이고 반도에서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 공화국이 그리이스인들보다 정치력과 군사적으로 우세한 힘을 기르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리스를 정복하기에 이른다.?로마인들의 그리스 세계정복은 평소 그리이스 미술에 절대적 동경을 가지고 있던 로마인들에게 그리이스의 미술을 단번에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로마인들은 국제적 성격을 띤 미술을 전파하게 된다.?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의 복제, 모방에서 벗어나 그들의 필요에 따라 변형하였다.?북아프리카, 영국, 스페인, 페르시아만, 카스피해까지 그 들의 우수한 유물을 남겼다?회화보다는 토목 공학의 발전에 따른 건축에서(아치의 사용,장대, 웅대함) 로마시대의 미술을 잘 엿볼 수 있다.(2)특징?로마의 미술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 그리스 미술의 전통을 잇고 그들의 미술을 수용, 모방, 수집하여 필요한 부분을 차용하였으며 무수한 복제품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실증주의 - 자신들의 현실적 실용주의를 그리스에서 물려받은 예술 유산 속에 접목시켜 이른바 `실증주의`라는 양식을 탄생시켰는데, 이는 실제 존재했던 인물의 정확한 사실적 묘사와 웅장한 건축물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로마 미술은 그들의 정복지역의 종교와 관습등과 어울려 국제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며 신과 영웅들의 아름다운 형태를 시각화하는 방법을 후대에 가르쳐 주었고, 이것은 서양 미술의 모태가 되었다(3)회화?로마인들이 제작한 회화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나 그당시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던 이집트에서 발견된 유물로 로마의 회화를 짐작해 볼 수 밖에 없다.?벽화 그림에서 로마인들은 완벽한 단축법과 빛과 그림자에 의한 정교한 모델링으로 사물이 실물 과 같은 입체감을 띠고 있고 미약하게나마 원근법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각에서와 같이 회화에서도 그리스의 것들보다 훨씬 깊이감이 있는 공간을 표현했다.(4)대표작? 이집트의 파이윰 출토.? 100년경. 이집트 하와라 출토3.기독교 미술(4세기)(1)배경?4세기(311)에 람들은 성서에서 그 소재를 찾아왔다. 이러한 성서를 사본화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벽화나 모자이크, 패널화의 예술성에 필적하는 작품을 생성해내었다. 채색사본은 한정된 화면 안에 많은 얘기들을 효율적으로 넣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4.비잔틴미술(5세기~10세기)(1)배경?5∼15세기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방정교회 사회에 발전한 그리스도교 미술이다.?5세기에 걸치는 동안 정치적인 몰락을 겪은 서로마보다는 동로마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이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그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를 비잔틴 미술이라고 부르고 있다.(2)특징?시대적·지리적 위치로, 고대 헬레니즘 미술의 뒤를 이어 그 전통에 고대 아시아의 전통과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영향 등을 더하고, 신흥 그리스도교를 정신적 기초로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흥륭하였다.?보통 이것을 3기로 나누며, 전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로부터 아이코노클래즘[聖畵像破壞]의 마지막까지(6∼9세기), 중기는 마케도니아 및 콤네노스 왕조(9∼12세기), 후기는 팔라이오로고스 왕조(13∼15세기)이다.?전통의 준수와 명확성을 강조 하였다.?장식미술-장식은 특히 건축 내부에 집중되었다. 이 경우 장식이란 단순한 벽면 미화가 아니라, 조형적 수단에 의하여 공간 내부를 성화(聖化)하여 거기에 초자연적인 세계를 현실에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이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보다도 빛이며, 빛의 구성 요소로서의 색채이다. 이리하여 십자가, 여러 종교 용구, 제단 등이 황금·보석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비단 등을 사용한 호화로운 염직품이 귀하게 여겨졌고, 건축장식으로는 색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모자이크 미술의 발달을 가져왔다.?모자이크-풍부하고도 심오한 색채를 발산하는 돌이나 유리 입방체들을 꼼꼼히 짜맞춘 양식으로 교회의 내부를 장엄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5.로마네스크 미술(10세기~13세기)“교회의 승리 ”(1)배경?10세기 중반 카롤링거 왕일성을 낳고 있다.-이 시기의 회화에선 선적인 성격과 표면의 색조 구성사이의 일관성 있는 조화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관성 있는 의장을 태어나게 했고, 표현력에서도 상당한 진보를 보인다.?채색 사본을 통해 로마네스크 회화를 볼 수 있다.(3)대표작 수도원장 웨드리쿠스의 복음서 삽화 1147년 직전 12세기 초 사르트르 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12세기 중반 스바비아 필사본 복음서 1150년경6.고딕미술(1)배경서양의 중세는 원시적인 방식과 세련되고 복잡한 방식이 기묘하게 혼합된 로마네스크 양식을 거쳐 수도원 중심의 문화권에서 도시의 성장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성당 중심의 문화가 도래한다.대성당은 많은 수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건축주인 사람을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며 도시 중심 문화권이 되면서 권력자들 또한 부를 과시하였다.기독교가 전래된 이래 신의 완벽한 반영을 목적으로 하는 당시 중세의 미술에 있어서 이러한 양식의 변화는 중세인을 하나로 묶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 종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뿐 아니라 고딕 양식에 있어서 모든 미술의 목적이 단지 종교의 목적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문이나 사상을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 또한 발전하고 있음 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고딕 양식은 특히 성당건축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이와 함께 조각, 회화, 공예까지 확대 발전하게 된다. 고딕 양식은 중세의 모든 미술 양식의 가장 완벽한 구현이라 할 수 있다.(2)특징뾰족한 첨탑과 수직을 강조한 건축(성당)화려하고 정교한 스테인드 글라스(장미창)기독교 중심의 초자연적, 상징적 종교미술프레스코화,- 벽에 바른 석고가 채 마리지 않은, 즉 젖어(FRESH)있을 때 그림을 그린다는 데에서 유래 하였다. 평면에서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 재발견.전투적 교회를 그리는 작품들미술가들과 사상사들은 한 중심지에서 다른 중심지로 옮겨 다니며 ‘국제적 양식’을 도래시킴- 주변세계 묘사 중심)은 쇠퇴하고 15세기 무렵에는 네덜란드 화가에 의하여 다루어졌다. 즉, 자연의 일면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고 미술가들은 점 차 성경의 인물 묘사에서 자연으로부터의 스케치를 중시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에는 프레스코 화가 남겨져 15세기까지 성행을 이루었다.(4)대표작품?조토 디 본도네1305년 경 ,프레스코1305년경 , 프레스코?랭부르 형제 1410년 경7.르네상스?잃어버린 고대의 문예 및 예술을 새시대에 재현한다는 뜻으로 이탈리아어(語)의 ‘재생 ·부활’을 의미하는 리나시타(rinscita)라는 어휘를 사용하였다.?인간과 자연에 대한 재발견*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배경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것등이다.중세를 암흑기로 여기며 다시 예술,문화의 도래와 번영을 목적으로 일어난 문화 운동으로특별히 조토와 단테의 출생지였던 부유한 상업도시 피렌체에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하는 흐름 이 강하게 나타났다. 피렌체는 새로운 아테네로 부상될 만큼 시민예술의 야심찬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예술가를 엘리트 집단 으로 인정하는 등 미술가의 지위가 향상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2)특징??초기 르네상스는 과학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사람의 인체에 대한 미술적,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짐-자연의 변화와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질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보다 과학적이고 확 실 한 표현을 함.?명암법이 형성- 어두운 데서 밝은 부분까지 확실한 입체감을 표현(3)대표작?마삿치오.성모와 성 요한이 있는 성 삼위일체.1426-7년?도메니코 베네치아노. 성모자와 성자들. 1445년 경?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 1480년경?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 다윗. 1450-57년?피에로 디 코지모 . 꿀벌의 발견.1498년 경?도메니코 기를란타이년경
    예체능| 2008.03.29| 11페이지| 1,000원| 조회(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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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고전 민담
    ◈ 목 차 ◈Ⅰ. 민담이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pageⅡ. 민담의 특징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1page1. 신화, 전설과의 비교2. 민담의 특징Ⅲ. 프로프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pageⅣ. 5개의 민담을 읽고 분석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page1. 기능에 따른 분석2. 스토리구성의 공통점Ⅴ. 러시아 고전 민담의 헐리우드 영화화 소식ㆍㆍㆍ8page1. 기사원문2. 사견Ⅰ. 민담이란공동체 집단 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사실성이 약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민담 속에는 우리의 삶이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녹아들어 있다. 그곳에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오랜 삶이 집어낸 삶의 지혜가 있다. 그리고 민담은 우리에게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식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신화와는 달리 신성시 되지 않으며, 구체적인 증거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설과도 구분된다. 자세한 것은 ‘민담의 특징’에 서술하였다.Ⅱ. 민담의 특징1. 신화, 전설과의 비교(1) 민담은 ‘고담’ 혹은 ‘이전 얘기’라고 하는데, 대개 ‘옛날 얘기’라는 뜻이다. 신화와 전설도 모두 옛날 얘기지만, 특히 민담을 옛날 얘기라고 하는 것은 민담이 흥미를 복돋우기 위해 자유롭게 꾸며내는 이야기인 때문이다. 민담은 신화처럼 신성한 내용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거나 전설처럼 진실성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지 않는다. “멀고 먼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라는 서두에서 보듯이 민담의 시공간은 막연하기 그지없다.(2) 마찬가지로 주인공도 반드시 특정인일 필요가 없다. 시공간과 주인공을 막연하게 설정하기 때문에 민담은 경험으로부터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살던 시간과 장소에서는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는 보편성을 갖게 한다. 그래서 민담은 전설처럼 지역적 제한을 받지 않고 광범위하게 전승된다.(3) 신화와 전설이 집단적 성격이 강한 것과 달리 민담은 흥미 위주로 꾸며내는 이야기여서 전승자 개인의 특성이 강하와 변치 않는 요소가 있다.a. 왕이 주인공에게 독수리를 준다. 독수리가 주인공을 다른 왕국으로 데리고 간다.b. 노인이 수젠코에게 말을 준다. 말이 수젠코를 다른 왕국으로 데리고 간다.c. 마법사가 이반에게 작은 배를 준다. 배가 이반을 다른 궁전으로 데리고 간다.d. 공주가 이반에게 반지를 준다. 반지에서 나옴 젊은 사람이 이반을 다른 궁전으로 데리고 간다.프로프는 100편의 러시아 마법담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결론을 얻었다.첫째, 주인공의 기능은, 그것을 어떻게 그리고 누가 수행했든 상관하지 않고, 민담 안에서 견고하게 일정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것이 기본적인 민담성분을 구성한다.둘째, 마법담에 알려진 기능의 수효는 한정되어 있다.셋째, 기능의 배열 순서는 항상 동일하다.넷째, 모든 마법담은 하나의 구조적 유형으로 되어 있다.Ⅲ. 프로프와 블라디미르 프로프(Vladimir Prop)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였다.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러시아 민담을 연구하여, 1928년 이라는 책을 내었다. 이 책은 1950년 이후 구조주의 문학연구가들에 의해 크게 주목받았다. 프로프는 “이야기의 구성 요소들이 다른 구성 요소들 그리고 이야기 전체와 맺고 있는 관련성에 입각하여 해명”할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이전의 민담연구가들이 모두 민담의 주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던 것을 반성하고 민담의 형태에 대해서 연구했다. 이를 위해 그는, 우선 미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보다도 그들의 기능(function)을 문제 삼았다. 여러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러 상이한 인물들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기능을 민담의 기본 성분으로 생각했다. 프로프의 이러한 연구 성과는 처음으로 민담의 구조를 형태론적으로 분석 하였다는 연구사적 의의 이외에도, 이후 민담 구조 분석의 방법이 한 단계 크게 발전하는 데 확실한 토대가 되었다. 민담의 구조 연구를 한 차원 끌어올린 앨런 던데스에게 끼친 영향은 막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프는 기능이라는 민담의 기본능은 모두 31가지이다. 각 기능에는 다양한 변종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31가지 기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들은 일정한 순서로 배열된다. 물론 사소한 순서의 변화들은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변화들도 공식화된 좁은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프로프가 마법담을 분석하여 얻은 31가지 기능은 다음과 같다.다음은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세계민담전집 러시아 편’을 읽고 그 중에서 을 프로프의 31가지 기능에 따라 맞춰 분석해 보았다.1. 기능에 따른 분석(1) 가족의 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부재중이다.(부재)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는 자식은 물론 손자, 손녀가 없다. 그러던 중 축제일에 할아버지는 온 작은 눈덩이가 녹아 눈덩이 같이 하얗고 동그란 소녀가 나왔다. 두 노인은 매우 기뻐하면서 눈 소녀를 키우게 된다. 한 용감한 병사가 집에서 받은 100루블을 상사에게 빼앗기고 몽둥이로 맞는다. 주로 가족 구성원이 부재가 나타나지만 이 이야기는 돈을 빼앗긴 것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과 돈의 부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유한 형은 수컷 말을, 가난한 동생은 암말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다.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불운아 이반이라는 아들을 남겨두고 죽었다.(2) 주인공에게 금지의 말이 부과된다.(금지) 노부부의 개 주치카에게 병든 여우가 닭 우리로 들어가 몸을 녹이겠다고 한다. 우리 속에는 할머니가 넣어든 닭이 있었는데 주치카는 그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여우의 무리한 부탁을 받는다. 암말이 망아지를 낳았는데 형이 자기의 수레가 낳은 망아지라고 우기며 몰래 돈을 주고 재판관, 후에 차르에게 판정을 요구한다. 꿈을 꾸면 아버지에게 말을 하라는 명령에도 작은 아들 이반은 말을 하지 않는다.(3) 금지사항은 위반된다.(위반) 개 주치카는 여우를 우리로 들여보내고 여우는 우리 안에 닭을 두 마리 죽이고는 자기 굴로 끌고 가버린다. 그 일로 할아버지는 감시꾼이 될 능력이 없다고 주치카를 쫓아버린다.(4) 악당이 정보를 찾아내려 한다.(정찰) 차르에게서 네 가지 수수께끼인을 돕는데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한다.(10) 탐색자는 대항행동에 동의하거나 그것을 결정한다.(행동개시) 공주는 이반을 풀어주라고 명령한다.(11) 주인공이 집을 떠난다.(출발) 여름이 되어 친구들이 숲에 열매를 따러 눈 소녀를 데리고 나가도록 어렵게 노부부에게 허락을 받는다. 그러나 열매를 따느라 그만 눈 소녀를 잃어버리게 된다. 병사는 숲에서 뱀을 만나게 되고 뱀은 자신의 궁궐로 병사를 데리고 간다. 이 뱀은 나중에 병사가 당한 일들을 순조롭게 해결해주는 조력자가 된다. 이렇게 민담의 주인공들은 집을 떠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연치 않은 상황에서 원조자를 만난다. 이반의 아내는 융단을 만든 뒤 그것을 팔러나 지혜로운 조언을 구하도록 남편을 내보낸다. 이반은 친구들을 모아서 길을 떠난다. 신기하게도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 그들은 같은 옷을 입고 말을 타고 떠난다.(12) 주인공은 시험되고, 심문받고, 공격받는다. 그로 인해서 주인공에게 작용물이나 조력자를 얻는 방법을 준비시킨다.(조력자의 첫 기능) 혼자 남은 눈 소녀는 길을 헤매게 되었고 나무로 기어 올라가 도움을 청한다. 그때 곰과 회색 늑대, 여우가 차례로 다가와 “소녀야, 왜 울고 있지?..... 어서 내려오렴. 내가 너를 집으로 바래다주마!”라고 이야기 한다. 뱀은 병사에게 3년 동안 솥 옆에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면서 카샤를 끓이는 임무를 주었고 3년 뒤 세상을 돌아다니다 돌아와 솥 전체를 먹어치우고 충실히 봉사한 병사를 칭찬하며 다시 그를 고용한다. 차르는 다시 하룻밤 만에 비단실로 수건을 짜오고, 달걀 150개를 주며 병아리로 부화시키라는 불가능한 명령을 내린다. 이반은 노인에게 돈 대신 지혜로운 조언을 받고 융단을 판다. 비록 돈을 벌지 못했지만 아내가 시킨 일은 무슨 목적이 있을 거라고 믿고 조언을 듣는다. 노인들이 유산문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한 이반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13) 주인공이 미래의 조력자의 행동에 반응한다.(주인공의 반응) 곰과 회색 늑대, 여로 나서지를 못했던 것이다. 일을 잘 한 병사를 칭찬하며 뱀은 용맹스런 말 한 필과 입으면 누구든 보가트리가 되는 마법의 루바슈카를 주었다. 이반은 노인들에게서 머리에 쓰면 사람 눈에 안 보이는 모자와 하늘을 나는 담요, 신으면 빨리 달릴 수 있는 신발을 얻게 된다.(15) 주인공이 탐색 대상이 있는 곳에 이르고, 도달하거나 인도된다. 병사는 힘겨운 전투에서 왕을 돕고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담요를 타고 왕자가 원하는 약혼자 엘레나 여왕의 나라로 간 이반과 친구들은 왕자가 머물고 있는 궁전으로 간다.(16) 주인공과 악당이 결투에서 맞붙는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병사와 공주의 대립은 있지만 직접적인 싸움은 나타나지 않지만 병사와 공주사이의 정신적인 갈등이 있었음은 알 수 있다.(17) 주인공이 낙인찍힌다. 평범한 병사와 결혼한 것이 불만이던 공주는 이웃나라 왕자와 음모를 꾸며 루바슈카를 빼앗는다.(18) 악당이 패배한다.(19) 최초의 불운이나 결핍이 해소된다. 소녀는 주치카의 보호아래 나무에서 무사히 내려오게 되었다.(20) 주인공이 돌아온다. 작은 눈 소녀는 주치카와 함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21) 주인공이 추적당한다. 루바슈카를 손에 넣은 왕자는 병사를 죽인다.(22) 주인공이 추적에서 벗어난다(그 추적으로부터 주인공의 구출).(23)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이 몰래 고국이나 또 다른 나라에 도착한다. 병사의 말이 뱀에게 가서 병사의 죽음을 전한다. 이반이 해외 교역을 위해 배를 타고 떠났는데 바다 속에서 괴물이 나타난다.(24) 가짜 주인공이 부당한 요구를 해온다. 이 민담에서 가짜 주인공으로 볼 수 있는 엘레나 공주는 왕자의 청혼에 승낙하기 전에 문제를 내고 그것을 맞히지 못할 경우 그의 목을 베겠다고 한다.(25) 난제가 주인공에게 주어진다. 차르는 가난한 아우의 딸이 진짜 현명하다면 걷지도 않고 말에 타지도 않고, 벌거벗지도 옷을 입지도 않고, 선물을 가진 채도 빈손인 채도 아닌 상태로 나타나라고 명령한다. 괴물은 재판해결을 위해 이반
    인문/어학| 2008.03.29| 9페이지| 1,000원| 조회(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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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법이론의 변천 및 각각의 특징
    1. 들어가며초등학교 때부터 어느 수업 시간이든지 한 번씩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다른 생명체와 구별 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꼭 나온다. 얼굴이나 몸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언어(Language)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 갈 수가 있다. 언어가 있기에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지금의 문명도 언어가 있기에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지금 내가 배우는 언어학은 공대처럼 몸으로 부딪히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상대처럼 조를 이뤄 한 기업을 분석하고 마케팅을 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재무 분석을 하는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잔잔한 호수 같은 정적인 학문이다.그런 언어학을 논하며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두 학문이 구조주와 변형생성문법이고 빠질 수 없는 두 사람이, 요즘 시쳇말로 하자면 언어학의 ‘거성’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쉬르와 촘스키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골치 아픈 존재이기도 한 두 학파와 두 사람을 살펴보고자 한다.2.문법이론의 변천 및 각각의 특징1)구조 문법(구조 언어학)기술 언어학이라고 하는 이 구조 언어학은 넓은 뜻으로 언어라는 것을 단순히 흩어진 요소의 집단이 아니고, 각 요소가 제각기 일정한 태턴의 일원으로서 긴밀한 구성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고방식에 바탕을 둔 언어학을 말한다. 어떤 언어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도 오직 그 특정한 것에만 주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것과 관련이 있는 다른 현상에 대하여도 유의하며, 전체의 구조 안에서의 역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사고 방식은 스위스의 언어학자 F.소쉬르가 처음으로 주장하여 프라하(체코슬라바키아), 코펜하겐(덴마크), 미국을 중심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좁은 뜻으로는 특히 1920~1950년대 미국에서 급속히 발달한 구조언어학을 말한다. 언어의 활동을 자극과 반응이라는 방식으로 포착하여 언어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고 각분석하고 분류한 것이다.2)변형생성문법(생성문법)좁은 의미에서 문법이라는 용어는 순수히 형태에만 관계하는 형태론과 통사론에 국한시켜 여러 분야와 대립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법의 여러 분야는 전통문법, 소쉬르 이후의 구조언어학, 미국의 구조언어학 등 계승 발전시킨 변형생성문법의 언어 이론은 여러 분야를 하부구조에서 상부구조로 단계적으로 구성하여 가는 것이 아니고, 통사론을 기본으로 하여 의미론과 음운론을 해석적인 부문으로 보는 점에서 독특한 관점을 지니는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 따르면 한 언어는 문법이란 것은 이상적인 청자-화자가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을 포함하여 무한히 많은 수의 문장을 생성해 낼 수 있는 언어능력을 기술하는 것이라고 가설 아래, 이 능력을 엄밀하게 형식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문법은 또한 문장의 구조를 표면구조와 심층구조로 나누어서 심층구조에서 표출되어 나오는 과정을 변형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작동이 화자의 언어능력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심층구조는 언어보편성을 띠고 있어서 각 언어 구조의 표면적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심층적으로는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변형생성문법은 그 기본 가정을 근본에 둔 채 여러 방향으로 언어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구조 문법이 전통 문법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하였다면 생성문법은 다분히 구조 문법의 지나치게 피상적인 취약점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형생성 문법의 특징을 샆펴 보면(1) 언어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내재적, 생득적인 것이며 배우 는 것이 아니라(man s linguistic ability is innate, not learned)는 이 성론적 입장(rationalism)을 취한다.(2) 언어들은 표면상 상이한 것 같지만 그 내면 구조에는 유사성이 많다. 언어 연구는 이러한 내면적 공통성(보편성)을 연역적인 방법으로 규명하는 것이 지, 객관적인 언어 자료를 분류하여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목표로 한다.3)있는 그대로의 언어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전통 문법의 규범성과 의미 중심의 심리적 주관성을 배제하고 형태 중심의 기계적 분석주의 방법론을 따른다. 이를 위해서는 채록된 성 발화 자료만을 대상으로 언어 단위를 분석하여야 한다. 그 결과 음운론, 형태론이 발달하였다.2) 변형생성 문법1)유한한 문법 규칙이 무한한 문장을 생성시키며 그 유한 규칙의 체계가 문법이 다.2)언어능력과 언어수행은 구별되며 잠재적 언어 능력은 누구나 보편적, 선천적이 다. 후천적 언어 경험만으로 언어를 습득한다면 들어 보지도 못한 말을 무한히 창조해 내는 인간의 능력을 해명할 길이 없으며, 인간은 3세 전후로 언어 능력 이 갑자기 증대하여 13세 전후로 완성되는데 이는 선천적 언어 습득 장치를 가 정하지 않으면 해명할 수 없다.3)실제의 채록 자료보다는 이상적 모국어 화자가 지니는 언어만을 문법 연구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4)언어 분석의 목표는 문법적 문장과 비문법적 문장의 변별에 있고 문장 구조를 심층구조, 표면구조, 변형구조로 나눈다.5)의미 해석을 중시하여 의미부나 의미 해석규칙을 제안하므로 심리주의적 성격 을 한다.6)언어의 보편적 특성을 해명하는 보편 문법 원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 간 이해를 추구하는 인문 과학이 언어 과학이다.3) 요약문법은 전통문법, 구조주의 문법, 변형생성 문법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들은 완전히 독립된 부분이 아니고 상호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전통문법의 불만에 의해 1920년대에 와서 새로운 언어연구 방법인 구조문법이 발전되었으며 또한 생성문법은 다분히 구조 문법의 지나치게 피상적인 취약점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변형생성 문법은 즉 완전히 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전통문법과 구조문법에 새로이 건립된 것이다. 그러나 변형생성 문법은 전통문법과 가까운 편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며 객관적인 요소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며 구조문법 학자는 언어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으로만 그.. 나쁜 생각도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한 이론을 발표하고 뒤에 또 그 이론을 보완하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고 또 그 이론을 백지화하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고 그렇게 지금까지의 끊임없는 그의 활동에 대해 지난 학기에 권기양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촘스키는 천재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 이라는 말이 절로 가슴에 와 닿았다. 촘스키의 이론은 하나정도 놓쳐도 괜찮다. 왜냐면 곧 그 이론이 없어지고 새로운 촘스키의 이론이 나올 테니까....... 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혁신적인 이론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모르고서야 어떻게 촘스키를, 언어학을 논할 수 있겠는가2) 언어학 혁신의 아버지 , 촘스키이처럼 촘스키를 설명할 때의 어려움은 그의 대표 분야가 너무 다양하고, 그것들이 모두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언어학으로만 볼 때, 촘스키의 학문적 성과는 너무나 탁월하다. 그가 성장했던 1930년대의 미국의 언어학계는 블룸필드의 구조주의 문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블룸필드의 구조주의는 경험주의에 그 사상적 기초를 두고 있다. 블룸필드는 언어학이 과학적인 것이 되려면, 분석이나 연구는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에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종래의 이론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이성주의를 그의 문법이론의 기초로 택한다. 촘스키는 문법들은 매우 복잡한 것인데, 어떻게 아이들은 이렇게 복잡한 체계의 문법을 비교적 단기간에, 각각의 능력에 관계없이, 더구나 논리적으로 가능한 일정한 실수 없이 습득하는가?'라는 것과 '우리는 어떻게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문장을 만들어내고 이해하는가?'라는 것. 촘스키는 후천적인 경험에 의한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는 경험주의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미국의 구조주의가 규명하기 어려운 이러한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구조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선천적 능력을 강조하는 이성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자신의 변형생성문법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전에 들었던 김주영 교수님의 수업에서 촘스키의 언어생득설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한정된 수의 규칙과 그것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생득적으로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인간에게는 언어자료와 출력으로서의 문법 또는 언어 능력 간에 존재하는 생득적인 학습기제인 언어습득장치(language acquistion device, LAD)가 있다고 하였다.촘스키의 언어생득설을 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구상에 수많은 언어가 있지만 인간이 습득할 수 없는 언어는 없다는 것. 즉, 내가 만약 지구상 어떤 언어를 가진 곳에서 태어나더라도 백인이든 흑인이든 피부색에 상관없이 그 태어난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 촘스키의 이론이다. 그러면 지구가 아닌 달이나 화성에 가는 우주시대가 앞으로 열리게 된다면, 화성이나 달이나 지구가 아닌 어느 외계인이 사는 곳에서(외계인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내가 태어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언어를 가지게 될까? 촘스키는 보편적인 어떤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하였으니, 인간만의 특성이라 하였으니 인간의 언어는 인간만이 습득 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정말 외계인이 사는 어떤 우주에서 인간이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과연 그때는 촘스키는 어떤 이론을 내놓을까? 아니 과연 그때까지 촘스키는 살아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3) 촘스키 혁명(촘스키의 이론들)1957년에 나온 Syntactic Structures를 통해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 이론을 세상에 제시함으로써 소위 ‘촘스키 혁명’을 일으켰다. 그 이후 촘스키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자신의 언어 이론을 수정하고 발전시켰는데 때로는 촘스키의 이론에 대한 오해와 비판 또한 존재한다. 촘스키가 내놓은 이론들을 간단하게 살펴보겠다.Syntactic Structures(1957) 이 후 Aspect of the Theory of Syntax(1965)를 통해 표준이론(ST이론)을 발표하였는데 표준이론은 모든 문장의 의미가 오로지 심층구조의 정보만을 기초로 하여 해석된다는 이론으로 변형규칙이 적용되어도 의미의 였다.
    인문/어학| 2008.03.29| 10페이지| 1,000원| 조회(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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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말선초 유불교체와 주자학의 정착
    여말선초 유불교체와 주자학의 정착1. 머 리 말여말선초의 사상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자학의 도입?정착에 따른 유불교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불교체의 사상적 전환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와 유교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갖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힐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불교와 병존 할 수 있었던 고려시대 육와 불교를 배척하는 조선시대 유교가 어떠한 점에서 서로 다른 것이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유불교체를 통해 조선사회에 정착한 주자학이 조선초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떠한 사상적 특징을 보이는지도 아울러 밝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사회윤리라는 한정된 측면에서나마 이러한 문제를 밝혀 보고자 한다.유교사회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도덕적인 시각에서 사회를 파악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교에서는 윤리도덕사상이 곧 사회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게 되는데, 그 윤리도덕사상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 충효사상이다. 이 글에서 충효사상을 중심으로 유불교체의 사회사상사적 의미를 파악해 보겠다.2. 불교의 사회윤리에 대한 유학자들의 견해고려말기에 주자학이 도입된 이후에는 유학자들이 이전과는 달리 불교에 대한 태도가 변하였다. 중국의 주자학이 불교와의 사상적 대결을 통해 확립된 것인 만큼 애초부터 주자학에는 그 이전의 유교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렬한 불교 배척정신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려 말기 유학자들은 불교를 명확히 이단으로 간주하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의 비인륜적 성격을 띤 종교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불교의 혁파를 주장하는 유학자들이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공양왕조부터였다. 이 시기 여러 관료, 유생들은 ‘천불안유이도’라 하여 ‘삼강오상지도’로서의 유교와 ‘무부무군지교’로서의 불교는 양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였다. 고려말기 유학자들은 대부분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였으나 그렇다고 모두 불교 혁파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나라의 불교는 세속적인 윤리도덕을 무조건 부정하지는 않았다. 군주와 부모의 중요성을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유교 못지않게 충효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다만 그 충과 효의 이념과 실천방식이 유교와 다를 뿐이었다. 불교의 효의 가장 큰 특징은 세속적 효만으로는 완전한 효행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하며, 세속적 효에 대해서는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완전한 효행은《부모은중경》에서 보이듯이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통해 부모의 사후 추복을 강조하였다.그런데 여말선초의 유학자들 중 이러한 불교적 효행에 유교의 그것과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인간의 도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효이며, 이 효를 중시하는 점에서는 유교나 불교가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이다.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내세우는 충의 실천방식도 유교의 그것과는 달랐다. 불교의 경우는 결국 신앙을 통해 충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며, 혹은 그러한 신앙 자체가 충을 실천하는 해우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 유학자들 가운데서는 이러한 불교적 충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이들이 많았다.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의 충효는 유교의 충효와는 달리 종교적 신앙을 통해 군친의 수복(壽福)이나 사후 추복을 비는 것이다. 이에 불교가 비인륜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단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유교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유불교체의 내용과 의미를 살피고자 할 때 우선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주자학자들의 이러한 태도가 어떠한 사상적 기반 위에서 가능한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불교와 유교의 사회윤리 혹은 충효사상에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사고방식을 밝히는 것이다. 그 다음 불교의 사회윤리와는 전혀 다른 유교적인 사회윤리가 어떠한 것인지를 밝힐 수 있다면 유불교체의 사회사상적 내용을 이해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3. 불교윤리와 유교윤리의 공통점과 차이점1) 불교와 유교의‘은(恩)’사상불교의 근본사상은 초현세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가 현세의 인간관계를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원초불교 단계부터 나름대로의 사회윤리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은’사상이었다. ‘은’사상은 모든 인간관계를 시은(施恩)과 보은(報恩)의 관계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이러한 관계로 맺어지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전형을 모자관계에서 구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다른 예로는 군신관계, 사제관계 등이 있다. 이러한 ‘은’사상은 불교에만 독특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유교윤리사상에서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은’사상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가족윤리의 기본사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은’사상은 군신윤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이었다.이러한 ‘은’사상의 성격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시은과 보은이 결코 대등한 인간의 쌍무적인 도덕적 의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성립하면 부모의 은혜는 이미 주어진 것, 혹은 전제된 것이며 따라서 그 속에서 강조되는 도덕적 의무는 자식의 일방적 효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유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자애 여부와 상관없이 자식의 효도를 강조한다.2) 유교의 ‘의’사상'의(義)‘는 유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 가운데 하나로서, 그 내용은 사용되는 문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지닌다. 사회윤리로서의 '의’사상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가리킨다. 이러한 정신적 도덕적 가치가 구현되어야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간관계가 군신관계이며, 따라서 ‘군신유의’라고 하였다. 또 가족윤리에서도 이러한 ‘의’사상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의’의 개념은 보편적 규범으로서의 의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복종, 신하의 군주에 대한 복종보다 우월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의리의 실천은 신자뿐만 아니라 군친도 함께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다. ‘의’는 객관적 규범이며 이를 실현하는 것은 동시에 주체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유교에서 자식과 신하가 충성과 효도를 다하는 것은 당위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규범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충효는 개인의 자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이러한 도리의 실천이 단순히 도덕적 의무로 요청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이법을 실현하는 것으로까지 격상된다. 불교의 경우 적어도 여말선초 때까지 이러한 사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주자학에서는 ‘인의예지지성’은 충효를 비롯한 도덕적 실천으로 객관화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객관적인 도덕규범의 실천과 내면의 심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 연관이 없고, 따라서 심성의 수양이 객관적 도덕규범의 실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정도전은 도덕규범의 실천으로 객관화되지 않은 심성 수양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3. 유불교체와 선초의 주자학여말선초에 주자학이 도입 정착되는 데 따른 사회윤리의 변화 즉, 유불교체로 표현되는 사상적 전환의 내용 가운데 그 사회윤리적 측면에서의 전환은 바로 이 ‘의’사상이 자리 잡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말기에는 군주와 신하의 사적 결합이 심화되면서 이에 따른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토지제도, 인사제도의 문란 등이 군주와 신하의 사적인 결합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불교적 충, 혹은 불교적 군신윤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군주와 신하의 사적인 결합을 유지 강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군신의 사적인 결합 혹은 유대관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개혁할 수 있는 이념을 갖추고 있는 유교윤리 즉 ‘의’사상이 대두되었다. 이 ‘의’ 사상은 군신관계를 보편적 규범을 실현하기 위한 관계로 간주함으로써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공적 성격이어야 함을 강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공의는 군주와 관료층, 즉 당시 지배층 전체의 이해관계를 보편적인 도덕규범으로 추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말선초에 주자학의 ‘의’사상에 따라 재확립된 군신윤리는 군신관계를 이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관계로 설명함으로써 집권적 관료제의 정상적 운영을 뒷받침하는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교에서는 ‘군신의합’을 내세우는데 바로 그 군신간의 의리를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가 간쟁과 납간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또한 집권적 관료제를 확립하는 데에서 관료들의 주체성을 주장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이와 같이 조선초기의 군신관계에서 신하의 간쟁과 군주의 납간이라는 쌍무적인 규범이 요구되었던 것은 군신간에는 사적인 시은과 보은에 의해서는 성취될 수 없는 보편적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의’사상은 군주의 현실적인 권위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를 설정한다.그런데 조선초기에는 군신의 현실적인 역관계에 따라 신하의 상대적 주체성이 아직 완전하게 자리 잡지는 못했다.5. 맺 음 말고려와 조선시대 사회윤리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가족윤리와 군신윤리였는데, ‘은’사상은 부모와 자식,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시은과 보은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임에 비해, ‘의 ’사상은 그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보편적 도덕규범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고려시대의 불교윤리는 애초부터 ‘의’사상과 무관하였고, 유교윤리는 비록 ‘의’사상을 포함하고는 있었으나 아직은 ‘은’사상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의미밖에 갖지 못했다.여말선초에 주자학이 도입 정착되면서 이러한 사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주자학은 이전까지의 유교와는 달리 ‘의’사상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했고, 이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변화가 급격한 것은 아니었으며 모든 사회윤리가 ‘의’사상에 따라 재편된 것도 아니었다. ‘의’사상에 바탕을 둔 주자학적인 가족윤리, 즉 종법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인문/어학| 2006.12.03| 5페이지| 1,000원| 조회(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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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초기 국가권력과 양반
    조선 초기 국가권력과 양반1. 서언조선 국가의 정치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대체로 일치되고 있는데, 그간의 연구에서 제시된 국가의 유형은 봉건사회설에 기반한 봉건국가론과 근세사회설에 기반한 근세국가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봉건국가론의 경우에도 조선사회를 봉건사회로 규정하면서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해가 관철되는 국가로 파악하는 데는 동일한 입장이지만, 그 내부에는 토지국유제를 전제로 하여 기본적인 생산관계를 국가-농민으로 보면서 국가는 농민에 기생하는 봉건적 특권세력이 국가적 규모로 결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토지사유제를 전제로 하여 국가도 최대의 지주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생산관계는 지주-전호농민으로 보면서 국가는 지주계급의 이해가 반영 혹은 관철되는 양반지주 연합정권으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위와 같이 봉건국가론은 국가가 지주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입장이지만 유일의 지주인가, 여러 지주 가운데 하나일 뿐인가 하는 점이 각각 다르다. 이 경우 국가와 지배층 혹은 국가와 농민 그리고 지배층과 농민의 상호관계나 위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국가가 유일한 지주일 때, 양반층은 근본적으로 토지소유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의 토지소유의 경제적 실현 곧 지대 수취의 과정에 기생하든가, 국가의 시혜적 수조권 분급에 의존하는 존재이다. 이런 경우 양반층과 농민의 관계는 사회에서의 지배 기능에 따른 신분으로 표현된다.사적 소유에 근거한 봉건국가론에서는 국가는 지주이면서 동시에 같은 지주들의 계급적 이해가 반영된 존재이고, 양반층 역시 토지를 소유한 지주이다. 이 경우 양반층은 생산력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 지배계급들의 경제적 이해를 보전해주는 기능을 하였던 수조권적 지배의 의존에서 점차 벗어나 좀더 직접적인 토지소유를 통한 농민지배를 실현시켜나간다. 양반은 그 수취체제의 운영에서 단순히 기생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국가권력의 협조자로 때로는 동일한 물적 토대를 지닌 국가와 계급내의 대립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위와 같이 봉건국가론 안에도 토지소유제를 어떻치체제로 권력이 집중되는 시기에 종전의 호민?가계층은 새로운 관료제에 편입되고 그들의 기반인 부락사회는 지방제도로 개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방제도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지배단위로 기능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여야 했다.점차 중앙의 지배층은 국왕을 정점으로 한 관료기구에 강제적 혹은 자발적으로 편제되어갔고, 지방 토착세력은 이들에게 용인되던 군 단위의 지배권을 상실해갔다.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구체적 실현기구인 지방제가 처음부터 완벽한 지배기능을 갖고 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방제는 재지세력의 존재형태와 아울러 그를 통제 포섭하는 제도적 장치의 차이에 따라 서서히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하부단위로 자리잡아갔다. 아울러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역사적인 전개는 삼국시기에 틀을 갖추게 되고, 고려시기에 와서 전형적인 틀을 세우게 되다가 여말선초를 통하여 재편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한편 중세사회의 농민층은 전체적으로 공민(公民) 또는 자유민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지주에 의한 사적 개별적인 ‘직접적인 지배?예속관계’와 함께 공적 국가적으로 집약 편성된 지배?예속관계가 중첩적으로 놓여 있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중세사회가 진행되면서 점차 상부구조의 국가권력은 단순한 제도적 유제로서가 아니고, 사적 지주가 제각기 개별적인 지대수취를 위하여 의존하고 이용하는 권력 또는 권위로서 기능하게 되었다.2) 중앙집권적 관료제 유지의 기반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유지하는 역사적 조건은 중세사회의 생산력 수준과 생산관계,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짜여진 국가의 토지지배방식에 있었다. 중세의 토지에는 사적 소유권과 국가의 조세수취권, 곧 수조권이 행사되고 있었다. 소유권을 둘러싸고는 소토지를 소유한 농민층의 자영통제와 대토지를 소유한 지배층의 지주전호제가 전개되고, 후자를 둘러싸고는 수조권자 사이의 전주전객제가 성립되었다. 바로 토지를 둘러싼 농민지배의 두 가지 길이 지배체제의 구조를 유지시켜나간 중요한 조건이었다. 조(俎)?용(庸)?조(調)라는 세 모습, 곧 전조와 노동력투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비된 중앙지권적 관료제의 운영이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관료제는 그의 물적 토대인 전시과가 정비도고, 관료충원방식인 과거제가 시행되면서 점차 그 틀이 확립되어 갔다.과거제 등을 통해 관료군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관료의 충원은 음서제와 과거제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천거제가 입사한 유자격자를 현직에 배임시키든지 초직과 전직하는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료제를 운영하기 위해 대규모의 관료가 필요했고, 이는 통치기구의 확대와 더불어 점차 그 숫자가 증가하고 있었다.한편 고려전기는 나말여초 이래 강력한 국가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났던 재지세력을 점차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하고 편제시키면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하였다. 중앙의 정치기구를 정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현제를 정비하였다. 그러한 정비과정에서 호구와 토지전결 수의 파악이 이루어지고, 통치 실현의 기초인 각종 적(籍)을 작성하였다. 재지세력은 전시과?공훈전 등을 지급받음으로써 토지소유자 계급으로 위치할 뿐만 아니라 토성(土姓)을 분정 받았으며 본관제가 시행되면서 촌락사회에서 지배세력으로 존재하였다. 국가권력은 재지세력을 국가권력의 큰 테두리 안에 포섭하면서 동시에 재지세력의 현실적 지배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지배체제를 구축하여갔던 것이다.이러한 제도정비를 통하여 국가로서는 재지세력 아래에 있는 공민과 토지를 파악하여 재정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역을 매개로 재지지배세력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정치적으로 비호해줌과 동시에 지배체제 내부로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또한 민(民)의 입장에서는 나말 이래의 재지세력에 대한 사적인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국가의 공민이 되었던 것이다.고려전기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확립과정은 이렇게 각 세력의 재편성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지세력이 비록 국가권력하에 통제되어 국가권력 실현의 최말단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그 스적인 수탈대상이 되었다. 이는 고려후기 농장 형성의 한 요인이었다. 또한 고려후기 농민층에 의한 신전 개발의 성행은 산전의 확대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것은 세역농법을 점차 소멸시키면서 상경화로 추진되었다.수조권 운영의 분란은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물적 토대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조권의 확보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었고, 수조권적 토지지배와 생산력 수준의 제고를 배경으로 하는 토지소유의 집중화는 성장하고 있는 중소지주의 경제적 기반을 잠식할 가능성을 지닌 것이었다. 결국 위와 같은 문제와 생산력 수준의 제고에 따른 결부제의 모순을 동시에 해결할 방법으로 과전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생산력 수준의 제고에 따라 지주층이 확산되는 한편 소농민의 몰락이 진행되었으며, 그에 따른 사전개혁의 결과로 나타난 과전법의 정비로 상대적인 안정을 갖게 되는 농민이 광범위하게 창출되었다. 또한 과전법은 수조권의 강화 팽창을 저지함으로써 소유권의 안정적 성장을 상대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전진성이 있다. 이 전진성은 동시에 지주전호제의 확대를 약속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주층은 고려말이래 국가권력에 근거하여 사전의 재조정을 통하여 토지 및 농민지배의 영역을 확대하고 아울러 그를 통한 소유권의 확대를 보증 받고 있었다.고려사회의 개혁을 추구하는 양반사대부들은 왕권강화에 의한 중앙집권체제와 양반사대부들에 의한 관료정치를 추구하였다. 그들의 사상 기반이 된 신유학은 관료로서의 학문 기반이 될 뿐만 아니라 개혁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국가권력 내부의 구조와 그 외곽의 기본적인 지배방식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조선국가의 건설은 단순히 세력교체가 아닌 국가와 지배계급간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의미도 있다. 아울러 현실적인 정치세력인 군주와 관료간의 상호 위상을 조정하는 것이기도 했다.4. 조선국가의 지배체제와 양반층의 동향1) 중앙 및 지방통치기구의 운용과 양반조선사회의 국가유형은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해가 관철되는 봉건국가이며 맞추어 권농문을 반포하는 등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권농정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국가는 수령과 관찰사를 통하여 농업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를 위한 조처를 강구했다. 국가는 진대(賑貸) 혹은 진제 등을 통한 진휼정책을 시행하였다. 국가에 의한 진휼정책이 일반농민, 트기 하층의 농민을 대상으로 삼아 시행되었기에 때로는 국가와 재지세력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또한 이 시대의 수취제는 수취제 자체로 보아서는 국가 권력의 실현으로서, 그리고 국가권력의 물적 토대의 마련이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양반층 가운데 관료층으로 통치기구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일부의 양반에 대한 경제적 보전과 같은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안정적인 농민의 존재를 전제로, 그리고 유도되면서 운영되는 점에서는 양반층의 잉여생산물에 대한 수탈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부세수취는 철저히 신분제를 바탕으로 운영되었다.5. 결 어조선사회의 국가유형은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해가 관철되는 봉건국가이며 정치체제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였다. 이러한 정치체제는 지배계급인 양반층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중세사회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는 고대사회의 기성을 가진 유제였으며, 사회의 변화발전에 따라 그 운용과 내부의 성격이 변화한 것이었다. 그러한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유지되는 기반은 중세사회의 생산력 수준과 생산관계,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짜여진 국가의 토지지배방식에 있었다.조선국가는 고려후기 확대된 양반층의 정치 참여를 실현하는 지배체제였다. 동일한 중세봉건사회이면서 지배층의 정치참여가 확대되어 더 면밀한 관료제를 운영하게 된 것이 조선국가의 정치체제의 한 특징이었다. 이러한 국가권력은 양반층에 대하여 통제를 가하기도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와 피지배 두 계급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기도 했다.조선국가는 농업재생산에 일정하게 관여하였다. 농업생산과정의 일부에까지 깊숙이 개입한 권농은, 양반 지배계급의 계급적 이해가 반영된 것이라 하여, 다른 세력과의 관계 가운데 이루다.
    인문/어학| 2006.12.03| 11페이지| 1,000원| 조회(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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