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들어가며..시장에서의 경쟁과 경제의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대공황으로 인해 나타난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있었던 복지국가를 비판하면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의 선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의 자생적 질서를 인위적인 것으로 대체하려면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런 막강한 힘을 지닌 정부는 독재주의와전체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노예의 길」은 당시 히틀러의 독재와 소련에서 벌어진 전체주의의 아픈 경험을 다시 바라보고 사회주의색채를 띤 영국인들에게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이미 붕괴하기 시작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의도에서 쓰여졌다. 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경쟁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볼때 사회에 많이 기여를 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경쟁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며 이를통제하려는 노력은 사회주의라는 개념의 틀 안에서만 파악되어 왔다. 즉 자유주의의 큰 테두리 안에 공동체주의의 개념을 화합시키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이 책에서 하이에크가 집산주의와 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대비한 듯 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금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맹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크지만 양쪽의 의견모두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어떤 것도 완벽한 대안은 없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하이에크의 입장과 신자유주의 비판자들의 입장의 절충점이 필요할 것이다. 본론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큰 주제로 묶어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Ⅱ.본론▶ 정부의 계획, 규제 어떻게 보아야 하나?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가 대중의 능동성을 갉아먹고 정부의 규제로 비효율을 낳아 성장이 둔화된다고 한다. 따라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철폐, 작은 정부를 요구한다. 하이에크는기획은 곧 사회주의이며 사회주의는 집산주의라고 한다. 국가가 더 많이 계획하면 할수록개인은 계획이 어려워지며 독재체제는 모두 국가에 의한 기획이 발생시킨 과외의 결과라는것이다. 물론 계획시에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똑같이 고려할 수는 없다. 즉 신중한 차별을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줄어들며 국가가 계획하게 되면 결국 생활의 질을 높이기는 커녕 개인이 처한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없어 질이 낮아지게 된다고 한다.물론 국가의 획일적인 정책이 단기간의 성장이나 효율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더많다는 것은 개발독재를 경험한 우리가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시장에 맡기자는 식은 계획의 부정적인 측면만 바라본 결과이다. 공공재나 외부효과 등의 측면은 놔두고라도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 반드시 있다. 자유화, 민영화를 주장하는 나라들도 경제적 규제는 줄여나가도 사회적 규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에 합의하고 있다. 출발점이 뒤쳐진 사람들은 어느 정도 국가의 보조가 필요하며 공정한 경쟁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그들을 모두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경제문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정치적 민주주의를 국한시키면 민주주의는 유지가능하다는 말을 비판한다. 경제적 목적은 다른 목적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계획은 경제부분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유를 희생하여 보장을 추구하면 보장의 본질적 요소인다양한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는 다른 부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적뒷받침이 없으면 자유, 평등등 어느 가치가 더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논의는 중요하지 않을수 도 있다. 어느 정도의 자유의 희생을 통한 보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보장은 자유의 희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기회를 줄여서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생각될 수 있지만 보장을 받은 사람들이 다시 자유롭게 경쟁하고 사회에 기여를 하여 다른사람의 보장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활동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 지나친 국가의 개입이 아닌 적당한 개입과 계획은 적어도 자국민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법의 지배는 자유시대에만 발전한다?나치즘 시대는 형식적 법치주의로 대표된다. 법은 국민들에게 예측과 안정을 가져오며 사람들 사이의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준다. 나치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출현하였지만 자의적이며 비민주적인 행동을 하였다. 집산주의는 인도주의에 기초하지만 자기의 작은 집단 내에서만 가능하게 됨으로서 배타주의로 흘러 결국 인도주의는 받아들일 여지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전체 선에 적합하기만 하면 집산주의의 한계는 없다. 즉 전체 선과 부가증진되는 방법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것은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다.그는 계획 역시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자의적인 것으로 보았다. 계획이라는 것은 관료와정치가들이 정한 규칙인데 계획사회에서는 자의적인 규칙이 합법화된다. 계획에 의해 보호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적 유용성과 얻게 되는 것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 못하고 자의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시장에서 매기는 유용성의 가치가 진정한 가치라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가격이 국가가 아닌 힘이 센 개인에 의해 왜곡될 수도있으며 가격결정 메커니즘 자체가 잘못 되었을 경우에는 더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 신자유주의 자체도 국가의 개입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이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기본적인 가정은 굳게 믿고 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한다면 물론 좋겠지만 문제는 시장실패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며 인위적인 조정은 필요하다.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으로 소유권과 가격만 정확하게 하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하지만 개인들이 모두 진실한 시장 참여자가 되지 못할 것이며 예외에 대한 관리는필요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조화하이에크는 보다 큰 자유를 약속하며 선전으로 포장된 사회주의 사회는 결국 자유를 말살하게 되며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란 이상은 결코 달성될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주의로 양분될 수 없다. 자유를 중시하느냐 평등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에가까운 사회와 사회주의에 가까운 사회는 있을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자유주의의 승리로 역사는 끝났다고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주의는 이론 그 자체만으로는 분명히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의 폐단이 심각해지면 또 다시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워 그대로 실천하는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는 합리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럴 듯하게 들린다. 자유 시장은어떠한 경우에도 존재할 수 없으며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의 체계적인 계획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문제는 정도인 것이다. 그는 자유경쟁만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인위적인 개입을 부정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국가의 개입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개입으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각 나라의 제도에 따라 국가의 역할, 이상적인 시장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시장도 여러 제도 중의 하나일 뿐이지 시장자체를 경제로볼 수는 없다. 만하임의 말처럼 대중사회의 위기 극복과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자유방임적 경쟁사회로부터 기획사회로의 이행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국가는 국민을간섭하고 지배하는 국가가 아닌 일하고 봉사하는 국가인 것이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자유사회를 위한 민주적 기획’을 지향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내재적인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정부의 기획은 필요하다. 가장 나쁜사람이 정상에 올라 기획을 하고 기획은 민주주의를 희생시킨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또한 민주주의는 자유에 있어서 평등을 추구하지만 사회주의는 억압과 노예상태의 평등을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읽고...민족 문제는 우리가 평소에 아무런 생각이 없이 막연하고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민족주의의 실체를 이루는 민족의 내용이 다양하고 개념이 다의적이기 때문에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해 일률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그리고 국가형성의 방법, 국가의 유지와 발전 형태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민족주의의 사상원리나 운동의 현상 또한 다양하다. 민족성은 민족의 생활과 전통, 문화를 보전하여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국가 성립 후에는 그 독립성을 지키고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구별되게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흔히 말하는 단일 민족이고 분단이 된 이후에야 통일 문제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사실 지금 통일 문제에 관해서도 언론에서 남북 정상회담,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가 아닌 우리들은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대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통일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인지도가 절반이 넘지 못한다. 이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분단이 당연시 되어오고 절실히 통일이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이지만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의 고유한 문화를 수립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이 이제껏 겪어온 역사적 경험의 차이를 무시하고 막연하게 동포애나 비현실적인 인종적 문제에 호소하여서는 현실적인 실마리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통일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만약 다시 우리 민족이 일본이나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면 어떨까? 는 생각만 해 보아도 끔찍하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사라져버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조차도 민족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잊게 될 것이다. 민족주의의 정의는 변하지 않겠지만 시대에 따라서 그 목표는 달라져 왔다. 구한말 민족주의의 성격이 반봉건 반외세이었듯이 지금 우리나라가 민족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남북통일과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꼭 통일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우리는 구한말에 스스로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외세에 의해 식민지화라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분단과 남북전쟁의 비극을 맞이하였다. 이는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결과인 분단을 해결 해야지만 민족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분단이 된 이후에는 우리 민족 안에서는 특별히 이슈가 될 만큼 큰 민족문제는 없었다. 어쩌면 경제적, 정치적인 다른 문제에 비해 너무 민족문제가 소홀히 생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민족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우리 개개인은 존재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민족은 실상이 없는 이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실제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주체성과 연관시켜보면 주관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무형의 주체성이라는 것도 국민들 개개인이 자각을 하고 소중히 여겨야지만 지켜지는 것이지 저절로 형성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대사에서 보면 우리는 신라통일과 대한민국 건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통일은 신라, 백제, 고구려 주민들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체제, 하 나의 국토, 하나의 문화로 묶어냄으로써 비로소 한민족이란 세계사의 한 단 위를 만들어내었다. 신라는 이런 민족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임금 -신하-백성간의 내부 단결을 기초로 하여 외세를 주체적으로 활용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족 통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백제 고구려유민들을 포용하고 세계제국과의 결전 을 통해 국토를 지키고 국권을 수호하였다. 비록 외세에 의존한 통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민족사의 정통확립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이 책에서 저자가 지구화와 민족 문제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 지구촌, 세계화, 국제화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실제로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방에 앉아서 마치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이제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국경을 넘어서 세계민족이라는 개념까지 확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화는 곧 국경이 무너지고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지름길이라고 하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물론 세계화가 되면서부터 우리의 고유성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전통이 이제는 주위에서 항상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향수를 불러일으킬 때 찾아서 보고하는 정도에만 그치게 되었다. 저번 학기에 현대미술과 정체성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할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문화, 예술적인 면에까지 이제 우리의 정통성을 찾아 볼 수 없게 되고 미국적인 것, 상업적인 것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에 따라서 사람들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미국이 세계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막대한 경제력과 문화자본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여러 인종이 섞여서 살고 있지만 보수주의가 아주 강한 나라이다. 민족적 정체성은 어느 정도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다. 또 많은 인구 넓은 영토에서 강력한 경제력과 국가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경제력만 가지고 모든 나라를 통합시킬 수는 없다. 독일의 통일에서 보아도 경제적인 통일은 그 휴유증이 오래가기 마련이다.세계에는 미국처럼 다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가 많다.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에 가까운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런 다민족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집단의 각각의 민족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이 민족적 정체성은 여러 가지 차원을 통해 형성된다. 현지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수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모국 문화의 의도적인 지속과 강화를 통해 능동적으로 얻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교포들을 보면 자기들만의 모임이나 가족생활, 자녀들의 교육 등에서 한인임을 자각하고 민족문화 지속에 많은 힘을 쏟는다. 이들은 자신이 유지해 온 생활양식과 문화적인 관념을 생활 속에서 표현을 하거나 다음 세대에 의도적으로 전달을 함으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재생산시킨다. 이처럼 민족적인 정체성은 한 세대에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형성이 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한인들끼리 만나고 생각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물론 이들이 같이 모여 살고 조직을 만든다고 해서 한민족의 정체성이나 유대감이 형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이민 생활에서 한인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고 이를 같이 극복해내 가기 위해서 더욱 더 결속력을 다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민족적 정체성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나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이 된다. 한나라 사람들은 만나는 감정이나 경험이 반드시 민족적인 유대감이나 동질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접촉을 자주 함으로써 더욱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 위해서 생활 습관, 언어, 문화적 관념들이 형성이 되고 유지가 된다는 것이다.한국 문화를 나타내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라고 생각을 한다. 한나라의 언어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얼이 담겨 있다. 언어는 사람들의 생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언어에 의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금 사실상 우리 한글이 세계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고 있고 영어는 지구촌 시대에 몰라서는 안 되는 중요한 언어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원래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아서 영어 교육 조기화 열풍이 몇 년 전부터 거세게 불고 있다.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쓰게 하는 것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의 글인 한글에 대한 고유 문자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낮아져 가고 있다는 것이 그 문제이다.한인 이민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민의 역사가 짧고 한인들이 자율적인 생활권을 만들어 살아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민 1세대가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민 사회의 주도 세력이 이민 2세대, 3세대로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가 그대로 사용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비단 언어 현상에 국한된 문제만도 아니다. 한국식 생활관습과 태도, 사고방식에 모두 적용되는 문제이다. 이러한 한국 문화의 재생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가족 생활과 자녀 교육 또는 문화화 과정이다. 한인 이민사회가 자율적인 경제 및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민 세대가 흘러갈수록 다음 세대는 현지인들과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고 현지사회로 진출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문화가 어떻게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족 생활과 자녀 교육의 부분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가족 생활에서 한국식 생활 양식을 고수하는 것과 현지사회에 대한 적응이라는 측면은 항상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비록 몸은 한국인이지만 생활하는 곳이 현지이기 때문에 이민 생활에서 요구되는 문화적 변화에 대응해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Ⅰ. 서론18-19세기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프랑스혁명이 빠질 수 없다. 프랑스는 그 시대에 유럽대륙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이 시기 프랑스는 구제도인 신분제도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사회구조는 귀족적이고 봉건적인 성격을 지녔다. 평민들은 구제도의 모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상공업을 통해서 성장한 그들은 시민의식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으며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혁명의 시초가 된 것이다.프랑스의 왕정은 절대적 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무조건적 이며 무제한적 이라는 의미이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것이 왕에게서 나와서 왕에게로 돌아간다. 왕은 단지 신에게만 보고할 의무를 갖게 된다. 법률제정권한은 오직 왕에게만 속하며, 모든 정의는 왕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프랑스의 군주제는 국왕에게 막강한 권력을 보장했다.그러나 개혁이 필요한 부분들이나 개혁 주체에 대한 지배적인 생각은 군주제가 위로부터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제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후에 프랑스가 재정상의 위기를 겪게 되자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실패하자 특권 계급에 세금을 부여하게 되고 귀족들은 이 개혁안을 거부하고 대신 1614년이래 소집된 일이 없는 성직자, 귀족, 제3신분으로 이루어진 삼부회를 소집할 것을 요구했다.이들은 국왕에게 새로운 헌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개가를 올리고 국왕이 수락할 때까지 흩어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왕은 이에 승낙하는 듯 하였으나 바로 이들을 해산할 군대를 조직하여 왕이 음모를 꾸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 때 농민들은 공포에 질려있었고 1789년 군중들은 왕의 폭정을 상징하는 바스티유를 점거하였다. 이 사건은 폭동이 아니라 혁명이었다. 국왕은 이 때 다시 한번 굴복해야 했다. 파리를 방문한 그는 국민주권을 승인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농민을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하나뿐임을 깨닫고 봉건적 체제와 구조세법을 폐지한다는 법령을 공포하였다. 그 다음에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채택해 자유, 평등, 저항권, 사유재산권 등을 천명하였다.Ⅱ. 두에 둔 보수적인 정치가였다. 그는 힘의 정치를 강행하여 헌법에 규정된 의회의 예산 승인 없이 통치했다. 그는 국내정치에 있어서는 비민주적이었으나 대외적으로는 일관된 평화정책과 동맹정책의 성공으로 유럽의 새로운 역학 관계 속에서 독일의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소독일 정신 속에서 독일의 통일을 추구했다.독일은 스페인에서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외교적 갈등에 의해 야기된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71)에서 나폴레옹3세를 격파하고 승리함으로써 엘사스-로렌 지방을 획득하였으며 많은 전쟁 보상금을 받았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생겨난 애국심으로 남부독일의 영방들이 북독일 연맹과 합세하여 독일 제국이 되었다. 1871년 1월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독일 황제가 되었으며, 비스마르크는 19년간 제국의 총리로 통치하였다.3. 프로이센19세기 초에 프로이센의 교육제도는 유럽에서 최고였으며, 특히 베를린대학은 어떤 대학보다도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왕국의 서쪽 지방은 프로이센의 영토가 된 적이 없는 곳이었으며, 주로 로마 카톨릭 교도들로 이루어진 이 지역들은 프로이센과는 이질적이어서 교회와 국가 사이에는 격렬한 갈등이 자주 일어났다. 프로이센의 관료제는 능률성과 청렴함에서 높은 수준을 이루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럽에서는 독특한 현상이었다. 1818년 통관세를 낮춘 단순화된 관세제도가 왕국 전역에 시행되었고 이 관세제도는 1852년 오스트리아와 함부르크를 제외한 전 독일 지역으로 확대된 1834년 관세동맹의 모태가 되었다.그리고 1850년대는 경제적 부흥의 시기였다. 중공업과 기계공업이 발달하였고 이에 프로이센은 독일의 경제적인 지도국가가 될 수 있었다. 경제적 부흥은 자유주의적인 시민계급의 정치적 자아의식을 강화시키게 되었다. 1861년에 독일 진보당이 프로이센에서 만들어지고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한 당으로 자리잡고서 정부가 군대를 보수적으로 다시 구조조정을 하려고 했을 때 재정지원을 거부하였다. 새로운 수상 이센의 신화"를 대하는 비판가들은 관료주의 국가에서 나중에 국가 사회주의로 이끌어 가려했던 덕목의 역사적인 줄기를 끌어냈다. 보수적인 역사가들은 이 옛 가치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한 보호막으로서, 단결된 일반 존재의 기초로서 해명한다.비평가들에 따르면 군부 국가가 그들의 시민을 신하로 교육했다는 것이다. 군국주의, 명령과 복종, 봉사와 업적에 대한 무조건의 준비 태세, 자기훈육과 절약, 의무의식 등은 민주주의적인 정신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하지만 매수되지 않는 행정부와 독립된 사법부는 프로이센으로부터 유럽대륙의 가장 근대화된 국가를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이 모델을 모범으로 삼았다.4.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독일 통일의 결정적 계기가 된 프로이센과 프랑스와의 전쟁. 보·불 전쟁이라고도 한다.프로이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군비를 늘리어, 1866년에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일으켜 7주만에 승리를 거두고 북부 독일 연방을 구성하였다.나폴레옹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자 프로이센에서는 민족주의 감정이 크게 치솟았다. 프로이센의 민족주의 기운도 다른 독일 국가에 못지 않게 강했으며 마침내 해방전쟁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에는 주로 용병으로 구성되었던 프로이센군을 순수한 국민군으로 개편하고 이 군대를 움직일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는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나 애국심을 자극하고 자유를 예찬했으며, 더 나아가 낭만주의에 입각해 역사를 해석하기에 이르렀다.이어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을 방해하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뒤 1870년에 전쟁을 일으켜 파리를 점령하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프로이센의 왕이 독일 황제가 되어 독일의 통일을 이룩하였다. 프랑스와의 전쟁(1870~71)으로 프로이센은 새로 수립된 제국의 맹주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프로이센군은 다른 독일 국가의 군대를 모두 흡수했다.5. 프로이센의 비판글프로이센의 신화"를 대하는 비판가들은 관료주의 국가에서 나중에 국가 사회주의로주장했다. 프로이센의 왕들은 낭비벽에 시달렸고 종교적인 관용은 사업수완에 의한 타산이었다는 것이다.그들은 갈등도 회의장에서 해결했다.군국주의와 프로이센의 덕목은 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리드리히 황제 치세 하에서 비록 군비 지급이 엄청나게 팽창했지만 호헨촐러른가의 왕에게는 "최후의 방책", 즉 마지막 가능성으로 간주되었다. 이 왕가는 자주 갈등들을 전장에서 풀기보다는 회의에서 해결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프로이센의 덕목들을 도구화했다.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이 의무이행은 비인간화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6. 독특한 견해빌 게이츠-나폴레옹은 닮은 꼴"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현대판 나폴레옹인가?영국 BBC방송은 최근 게이츠와 프랑스의 천재적 군사전략가인 나폴레옹 황제를 비교분석했다. 뉴요커의 자유기고가 켄 올레터의 저서에 따르면, 잭슨 판사는 “게이츠는 자신과 MS에 관한 나폴레옹식 인식, 파워와 완전한 성공에서 비롯된 오만에 빠져있다”고 비난했다. 게이츠는 10대에 나폴레옹 전기를 읽으면서 그의 영웅적 행동에 심취했다. 따라서 게이츠가 나폴레옹처럼 행동한다고 잭슨이 비난하고 나선 것은 상당한 아이러니다.나폴레옹은 유럽전역에서 연전연승하며 프랑스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는 무모하게 전선을 확대함으로써 모스크바·라이프치히·워털루 전투에서 패배,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돼 여생을 마쳤다.게이츠는 자신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경쟁사를 연거푸 제압하고 세계를 정복했다. 하지만 그는 나폴레옹처럼 대규모 인명살상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없다.신체적 특징은 어떠한가?162cm의 나폴레옹은 당시에도 장신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작은 키는 종종 그가 과도한 업적을 추구했던 주 요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178cm인 게이츠도 미국 남성의 평균신장이 183cm인 요즘에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두 사람은 헤어스타일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중년의 나이에 모두 짧은 머리로 넓은 이마를 드러낸다. 나폴레옹은 또한 절도 있는 자세로 유명했다. 반면, 종 모욕과 은근한 무시로 비쳐질 수 있는 신랄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다. 과거 앨 고어 부통령에 일침을 가했던 그의 유머는 유명하다.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혁신시킨 “코드”(Code)의 이용.나폴레옹은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에 부응, 1804년 개정된 이 법전은 프랑스 국민에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여했다.게이츠 역시 일반시민의 힘을 강화한 코드의 아버지로 종종 불린다. MS-DOS는 1980년대 초 PC산업의 초기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법전이 그 명확성과 엄정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데 비해 MS의 OS는 복잡성으로 인해 종종 비난을 받는다. 게이츠는 반독점소송을 초래한 하나의 요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MS의 시장지배가 혁신과 발전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폴레옹도 자신의 지배가 역사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명언 : “우리는 혁신한다” 2001.02.12.7. 나폴레옹에 대한 견해나폴레옹은 명령으로 이기고 훈령에 졌다!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기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시일변도의 호령{) 군대나 행정조직에서 부하관리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세 가지 방식은 호령(號令)·명령(命 令)·훈령(訓令)으로 이루어진다.- 호령: 수령자에게 일방적으로 임무만을 지시하는 방식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명령: 발령자의 의도 및 수령자의 임무를 알려주는 방식 ‘이렇게 할 것이니까 너는 이 것과 저것을 하라’- 훈령: 발령자의 의도만을 알리는 방식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방식에 의하지 않고 목표와 임무를 동시에 전파하는 명령방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 모든 것에 일일이 전권을 행사하던 전제군주의 일방적인 지시에 의한 호령에 익숙한 군대와 대적함에 있어서, 목표와 임무를 명확히 주지시켜 작전을 수행하는 새로운 명령방식에 훈련된 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하지만, 그러한 명령방식을 고안한 천재적인 용병가인 나폴레옹도 유럽의 연합군대에 패배다.
그 동안 역사 과목을 들으면서 고대사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는 많았지만 근.현대사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는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21세기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여러 가지 일을 골라 내가 잘 알고 있지 못하였던 사실에 대하여 사실(史實)과 그것에 대한 견해를 다루었다. 또한 20세기의 근·현대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에 대한 생각도 쓰고 있다.이 책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생활 주변에서 주제를 얻어 그 주제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이었다. 대한제국의 망령이 되살아나는가 에서는 성직자 한 분이 찾아와서 대한제국의 황실 복위에 대한 문제를 꺼내놓는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성직자에게 강의 를 해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 강의 의 내용을 글로 옮겨 놓았다. 이렇듯 생활 주변에서 생긴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수필을 읽는 듯 책을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역사라는 커다란 틀에 넣고 그 잘잘못을 확실하게 따진다는 데에 있다. 전체의 역사를 기준으로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앞으로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각 분야별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면서 과거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군정권 등이 행한 정치를 반역사적 행위로 규정하고 그 잘못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역사가들만의 생각이며 일반 사람들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듯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역사관에도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 그것을 역사의 흐름으로 본다면 과거의 반역사적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고 앞으로는 반역사적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책에서 다루는 주제도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 복제, 이민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선택하였다.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에서는 6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국사 교과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국사 교과서 문제는 최근에도 이슈화되었던 것 중에 하나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사는 일종 교과서이기 때문에 편찬하는 사람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중·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가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국가에서 만들어 아직까지도 국가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중·고등학교 학생에 교과서가 미칠 영향은 생각해 보았다. 나만해도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내용을 배우게 되면 교과서 중심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다른 의견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흘려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교과서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느꼈다. 또한 역사교과서 문제로 인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일본을 보며 어쩌면 일본과 우리나라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였다. 과연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고 다른 나라와 큰 갈등이 없는 나라에서는 교과서를 어떻게 만드는 지도 궁금해 졌다.박정희 정권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에서는 유전자를 이용한 동물의 복제가 성공하고 또한 DNA 지도가 그려진 현대 사회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 1위로 뽑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다루었다. 98년 IMF로 어려운 경제사정을 맞았음에도 국민의 이익과는 관계없이 정쟁에만 힘쓰는 정치를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처럼 일을 밀어 부치는, 추진력 있는 사람이 또 다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면서 다시 경제성장이라는 큰 미명아래에서 억압과 통제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문화를 거의 말살시킨 사람이 박정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이 지금의 뿌리깊은 정경유착을 만들어내게 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4.18마라톤을 뛴다. 1학년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서 하는 행사이니깐 나도 참여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뛰었는데 이 책에서 바라보는 4.19에 대한 생각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4·19를 혁명으로 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 4·19에 대하여 접근하여 4·19는 혁명 이 아닌 단순한 운동 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역사적으로 본 혁명에 대한 정의는 나에게 4·19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준 것 같았다.6·25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와 대를 이어 동족 상잔할 것인가 에서는 한 민족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지금도 국토에 획을 그어 남북분단이라는 아픔을 남긴 6·25전쟁에 대하여 다루었다. 지금도 이산가족이 상봉을 하게 되면 신문과 방송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이산가족상봉을 보면서 그런 아픔을 겪지 않은 나는 가슴이 조금 뭉클할 뿐이지 그 사람들처럼 진정으로 그 감회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끔씩 북한이 남침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두려워 하지만 이산가족들은 혹시나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간절할 것이다.그리고 아직도 매년 몇 만 명의 사람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군대에 징병되고 있는 현실은 물론 국방은 나라에서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지만 그것에 특히 북한의 남침에 대한 경계라는 것과 혹시나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 민족을 서로 죽여야만 하는 우리 민족의 현실이 가슴아프기만 하다.이러한 국토 분단 이후 반세기 동안 논란이 많았던 통일에 대하여서도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우선 분단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현대사의 전개와 남북한 정부에 관한 문제 또, 역사적 전통성과 현재의 김대중 정권의 역사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다루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화에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분단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민족 국가의 성립을 위하여 몸 바쳤던 민족주의자들을 남한에서 내 몰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소련에 의한 군정이 이루어진 북한측과 달리 남한에서는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청산 또한 소홀히 이루어졌다. 아직까지 식민지시기에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이 재벌형태로 남아서 경제뿐 아니라 정치영역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히려 민족적인 차원에서 보면 해방 후 북한처럼 강력하고 급진적으로 식민지 잔재를 없앤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지금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오늘날처럼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단순히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은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감이 없는 것 같다. 민족주의에 대한 위기감은 지금 더 심화되고 있다.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갑자기 민족국가가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며 아무리 세계화가 되고 국경의 벽이 무너지고 있어도 국가 고유의 정체성은 살려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부에서의 도전이 많은 지금 오히려 내부적으로 더 단단히 화합하고 협력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