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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복지]취업여성의 자녀 양육태도에 관한 연구
    Ⅰ. 서론1. 연구의 의의우리나라는 1960년대 산업화 정책 채택 이후 고도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지속적으로 증가되어 왔다. 특히 기혼여성의 취업률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두 배우자가 직업을 가지면서 자녀를 포함한 모든 가족의 생활을 설계하고 발전시키는 맞벌이 가정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일차적인 역할은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고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것이었으나), 최근에 이르러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직업적 역할과 가정 내 역할 수행의 문제들로 여성에게 점차적으로 요구되어지고 있는 역할 구조의 이중적인 측면(dual-career)은 간과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이 영 등은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전문직에 취업하고 있는 유아기 자녀를 둔 취업 모들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자기 발전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 취업하고 있으며, 이들이 취업 상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녀 관리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부모-자녀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사회인 가정은 하나의 인격체가 형성되고 성장해 나아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특히 그 안에서 여성 즉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본 논고에서는 여성의 취업이 자녀의 양육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연구하는데 의의를 둔다.2. 연구의 목적부모역할의 수행은 인간이 성장과정 속에서 가장 어렵고도 복잡한 과업으로 묘사되어 왔다. 특히 여성으로서 가정과 직장생활의 이중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취업모의 경우 퇴근 후에 직장 생활의 피로함으로 인하여 자녀 양육에 할애 할 관심과 노력, 시간을 빼앗기기도 하며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에 대해 어머니로서 자주 죄책감을 느낀다고 보고되어 왔다.Harrepp & Ridley (1975)에 의하면 “이 두 역할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자녀 양육 행동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하며, 이는 전문직 취업모를 대상으로 한 이영(1986)의 연구에서도 동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함정숙(1981)은 부모 또는 양육자가 자녀나 아동을 교육함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태도나 행동이라고 정의하였으며, 정원식(1985) 등은 가정에서의 인간관계가 모순 없이 원만하고 바람직하게 조성되어 가도록 노력하는 부모의 전체적인 태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양육태도란 부모가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과 사고라 정의내릴 수 있다.)1) 양육 태도의 유형부모의 양육태도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학자로 Symonds를 들 수 있다. 그는 부모-자녀관계를 거부-과보호, 그리고 지내-복종의 두 개의 차원으로 구분하였고 이를 또다시 거부는 소극적 거부형과 적극적 거부형으로, 과보호에는 불간섭과 불안형으로, 복종에는 복종형과 익애형, 지배에는 기대형과 엄격형으로 분류 될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그러나 Symonds의 양육태도도 모형은 부모의 양육태도를 체계화 했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공헌을 했으나, 정신분석학의 임상사례에 의해 부모의 양육태도를 설명하였으므로 부모의 양육태도가 부정적으로만 설명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이에 대해 Schaefer는 정상적인 부모의 태도를 장기적으로 연구하여 Symonds와는 다른 가설적 원형모형을 제시하였다. 그의 모형은 자녀양육에 관련된 각종 변수들 간의 상호관계를 검토하고 그 변수들 중에서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는 요인과 서로 대립되는 요인들을 고려하여 각 변수의 위치를 원형상에 나타내었다. 그 요인들을 애정-적대(수용-거부)와 자율-통제(소유-자유)의 두 개의 차원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양육태도에 대한 가설적 모형의 구체적인 내용은 )과 같다.) Schaefer의 양육태도에 대한 가설 모형Schaefer의 양육태도는 수용-거부, 자율-통제라는 차원을 어머니의 행동요인으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어 생각되어질 수 있다.(1) 수용적-자율적 태도자녀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며 사랑스럽게 대하며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양육태도를 지닌 부모은 어머니는 애정? 수용적이었으며 결혼만족도가 낮은 어머니는 적대 거부적인 양육태도를 보였다고 한다.다음으로 부모의 인성과 연령에 대해서는 한종혜의 연구에서 보면, 아버지의 인성 특성 중 충동성이 높을수록 권위통제적인 양육태도를 보였고, 활동성, 객관성, 사려성, 사회성이 높을수록 애정? 수용적인 양육태도를 보였다. 또한 어머니의 인성 특성 중 활동성, 지배성, 충동성이 낮을수록 민주? 자율적인 양육태도를 보였다. 이은수는 어머니의 인성 특성 중 객관성, 사려성, 사회성이 높을수록 어머니의 양육태도는 애정적, 외향적,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안정성이 낮을수록 양육태도가 외향적이었으며, 사회성이 낮을수록 의존성 조장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또한 부모의 연령의 경우 Arlene 등은 어머니의 연령이 적절할 때 어머니는 부모역할에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그 역할의 수행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자녀의 요구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이원영은 어머니의 연령이 증가할수록 자녀에게 독립심을 길러주려고 하지 않고 의존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그 밖에의 지역적인 요인으로 김재은은 도시가정의 훈육방법은 합리적? 비판적이었고, 지방가정은 전체적인 경향이 있다고 했으나, 오성심과 이종승은 지역에 따라 양육태도는 유의한 차이가 없다고 했다.)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취업과 양육태도와의 관계에 대한 견해로는 Hock(1980), Hoffman(1963), Mills&Stevens(1985)에 의해 어머니의 취업에 따른 차이가 없다는 연구와 안재연(1992)은 오히려 비취업모의 어머니 역할 수행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교육받은 비취업모는 자녀들에게 과대투자해서 지나치게 걱정하고 독립심을 격려해 주지 못한다고 한 것처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Hoffman과 Yarrow에 의하면 어머니의 양육태도에 미치는 것은 직업 유무 자체보다 직업과 관련된 요인들 즉, 어머니의 직업에 대한 태도라든지, 어미니의 교육정도 그리고 종사하는 직업의 종류나 가정의근로자로 분류하였다.본 조사의 직업분포는 전문직이 11명(22%), 행정 관리직 21(42%), 사무직 5명(10%), 서비스업 2명(4%), 판매직 5명(10%), 기능 근로자 6명(12%)로 구성되었다. 취업 동기로는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24명(48%), 자기 발전을 위해서가 25명(50%)으로 근소한 차이지만 자기 발전을 위해 취업을 한다는 의견 많았고, 가사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1명(2%)의 소수 의견도 있었다. 본 설문에 참여한 취업모가 대체적으로 고학력의 중산층이라는 사회적 위치에 있지만 취업의 동기가 자기 개발이라는 개인적인 성취감뿐만이 아니라, 가정 경제에도 어느 정도 이바지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참여 태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3. 자녀 양육 현황1) 자녀의 수, 성별 및 나이 분포 현황취업모의 조사 연령이 20~50대에 이르는 차이만큼 자녀의 나이 분포도 역시 다양하게 나타났다. 자녀의 수, 성별 및 연령대 분포는 과 같다.구 분분 포(%)합 계자 녀 수1명18(36%)50(100%)2명27(54%)3명 이상5(10%)성 별남 아47(54%)87(100%)여 아40(46%)자녀 연령대0~1세6(7%)87(100%)2~3세19(22%)4~6세11(13%)초등학교25(29%)중학교16(18%)고등학교5(6%)성 인5(6%) 조사 대상자의 자녀 수, 성별, 연령대 분포 현황자녀의 수는 1명이 18명(36%), 2명이 27명(54%), 3명 이상이 5명(10%)으로 2명의 자녀를 둔 취업모가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성별은 남아 47명(54%), 여아 40명(46%)으로 여아에 비해 남아의 성비가 높게 나타났다. 자녀의 연령대는 0~1세가 6명(7%), 2~3세가 19명(22%), 4~6세가 11명(13%), 초등학생 25명(29%), 중학생 16명(18%), 고등학생과 성인 각 5명(6%)로 본 설문에서 차지하는 20~30대 취업모의 비율(84%)을 반영하듯 유아기-아동기의 자녀 비율 71%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형태로 분포하고 있다.에 대한 만족도를 살펴보면 만족이 24명(48%), 보통 22명(44%), 불만족 4명(8%)으로 나타났다. 본 조사를 통해 여성의 취업이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동기도 있었지만 자기 발전을 위해서 직장생활을 택한다는 50%의 의견과 결부하면 대체적으로 스스로가 만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해석된다.4. 자녀 양육 현황 및 태도1) 자녀 양육 현황취업 모의 실질적 자녀 양육에 대한 현황은 과 같다. 자녀 양육 현황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크게 4가지의 경우로 분류하였는데,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지원만을 위주로 한다가 4명(8%), 경제적인 지원과 청결하고 안전한 보호를 위주로 한다가 14명(28%), 경제적인 지원, 안전한 보호와 영양, 건강관리도 하고 있다가 17명(34%), 경제적인 지원, 안전한 호오, 건강관리에 생활태도와 학습관리까지 한다가 15명(30%)으로 대체적으로 각 문항간의 확연한 차이 없이 고르게 응답하였다. 성인기의 자녀를 둔 취업모의 경우 자녀 스스로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시기이므로 주로구 분분 포(%)합 계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지원만을 위주로 한다.4(8%)50(100%)경제적인 지원과 청결하고 안전한 보호를 위주로 한다.14(28%)경제적인 지원, 안전한 보호와 영양, 건강관리도 한다.17(34%)위의 사항을 포함하여 생활태도와 학습관리까지 한다.15(30%) 조사 대상자의 자녀 양육 현황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지원만을 한다는 응답이 주요한 특징이었다.2) 자녀 양육 태도질문 내용구 분분 포(%)합 계(가)자녀가 스스로 일하게하는 편인가?아주 그런 편이다7(14%)50(100%)그런 편이다19(38%)그저 그렇다4(8%)아닌 편이다17(34%)전혀 아니다3(6%)(나)자녀가 짐스러울 때가많다 생각하는가?아주 그런 편이다8(16%)50(100%)그런 편이다26(52%)그저 그렇다9(18%)아닌 편이다7(14%)(다)자녀의 필요와 관심을자녀 입장에 생각하십니까?아주 그런 편이다7(14%)50(100%)그런 편이다27(54%)그저 그렇다7(14%)아닌 편있다.
    사회과학| 2006.08.09| 23페이지| 2,500원| 조회(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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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오래된 미래 요약 평가A+최고예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에의해 소개된 라다크라는 낯선 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서구화된 산업소비사회 중심의 세계와는 매우 동떨어진 제 3세계의 문화영역이라 생각한다. 티베트와 히말라야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오랜 전통을 유지해오며 살아갔던 그들의 모습과 세계화의 추세에 발맞춰 여느 개발도상국들과 같은 모습으로 산업화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반드시 정답만은 아니라는 점에 대하여 생각 하게 된다. 자유 무역화, 개방화라는 명목하의 개발이라는 것 즉, 서구문화 중심의 개발로 인하여 고유의 문화적 가치마저도 상실해 버리고 또한 현대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까지도 개선되지 않은 채 같은 전처를 밟아가고 있는 안타까움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 세계가 반성을 해야 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하여 개선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헬레나 호지는 라다크인들의 전통적 자급자족적인 생존 양식을 중심으로 현대문명과 결부시켜 라다크의 올바른 발전 과정을 모델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제 1부 전통라다크는 아마도“고갯길이 있는 땅”이라는 티베트 말에서 유래하듯이 히말라야 산맥의 고지대의 황무지에 위치해 있다. 북부 인도의 몬족과 아리안족이 최초로 살아가다가 티베트를 통해서 몽고 유목민이 진출함으로써 라다크인들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 울 정도로 그들의 문화형태와 유사하며, 실질적으로 티베트의 대승불교와 달라이 라마가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 받는다. 이러한 밀접한 문화적 접촉에도 불구하고 라다크는 독립적 왕국으로서 존재하였다. 하지만 외부세력의 침략과 현재에는 중국과의 이해갈등으로 인하여 인도의 중요한 전략지로 되어버렸다. 라다크의 기후적 특징과 이에 따르는 생활방식으로 연 300일 이상 햇빛이 비출 정도로 일조량이 많은 반면에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은 8개월 동안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기후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계절이 그들 생활을 지배한다. 이들은 높은 황무지에 흩어져 있는 작은 정착지에서 자급한없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무엇 하나 소홀히 여겨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지혜가 있는데, 이러한 검약 정신이야 말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생존해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써 작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일이다. 이들은 낭비란 것도 있을 수도 없으며 전통적으로 모든 것들을 재순환시키며 주어진 환경에서 의, 식, 주 모두 해결 해 내는 완전한 자립에 도달하였으며 외부세계로부터 의존하는 것은 소금이나 차, 금속류 한 두 가지뿐이다. 라다크인들이 이러한 혹심한 기후와 자원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 살아간다기보다는 그 이상의 여유를 즐기며 살아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최소한의 도구적 기술을 이용하여, 예를 들어 베틀과 쟁기와 같은 것들 외에는 생활의 편리함을 위한 것은 없고 순전히 인간의 힘과 짐승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는다. 물론 우리들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속도는 느리고 어찌 보면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으로 의, 식, 주를 모두 해결해 나아감과 동시에 시간을 넉넉히 가지며, 부드러운 속도로 일을 하며 여가를 즐기기까지 한다. 추수철과 같이 바쁜 시간에도 여유롭게 일을 진행해 나가며 노인과 아이 같이 일을 해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며 자신들의 속도로 웃음과 노래를 곁들이며 일을 한다. 이러한 여유로움은 4개월이라는 제한적인 시기에 노동을 하는 기후적인 영향에서도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자족함으로써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서 살아간다기보다는 그 이상의 정신적인 것을 누리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라다크인들은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며, 신체 또한 이곳 환경에 맞게 적당한 체격을 갖고 있다. 서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영아 사망률이 높고, 영양상태고 고르지 못하지만 이건 단순히 우리들의 관점에 불과하다. 이들도 눈병이나 호흡기 감염, 소화불량, 눈 주와 의원으로 구성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이곳에서의 삶에 대한 의식은 함께 살아가야 할 관계로서 가능한 마찰이나 갈등을 피하며,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조금씩 양보를 하며 긴밀하게 짜여진 공동체 내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안정적인 관계로서 살아간다.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제 3자의 입장에 경청하며 자발적인 중재자의 역할을 중시하는데, 이는 갈등보다는 평화가 낫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제3자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사자도 아닌 다름 사람의 개입이 간섭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도움으로 받아들이며 환영받는다. 이렇게 전통적인 라다크 마을이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빈부의 격차가 거의 없다는 것에서 기인할 수 있는데, 95%의 인구가 자신의 땅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산층이며, 나머지 반은 귀족과 하급계급은 몬족으로 초기 라다크 정착민이었고, 보통 목수나 대장장이들이며 이들은 사회적인 긴장관계를 야기 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자급자족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정 중심의 사회로 독립적인 형태로 공동의 의사를 결정해야 할 일이 거의 없지만, 승원에 관련된 공동의 일에 대한 경우나 만약을 위해서 ‘고바’라는 마을 의장이 존재한다. 큰 마을들은 열 가구 단위로 나누어져 대표를 마을 회의에 보내고 한번씩 돌아가며 의장을 맡게 되며, 만약의 갈등이 있을 경우 중재자 역할을 한다. 또한 ‘파스푼’이라는 협동이 많은 사회관습으로 기인한 하나의 제도로서 마을의 각 가정은 출생, 결혼, 사망의 시기에 서로서로 도와주는 몇 가구로 된 집단에 속해 있다. 이것은 공생의 사회에서 남을 돕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고가 기본으로 하는 상호부조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 결혼의 경우도 일처다부제가 일반이며 상황에 따라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의 자유로운 결혼형태를 선택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유는 희소한 자원에 대한 세심한 적응의 결과로 사회관계도 또한 유연하게 유지함으로써 땅과의 관계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될 수 있었던치러주며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비구니가 됨으로써 집안일을 도움과 동시에 의식을 치르며 가정의 편안함을 기리기도 한다. 승원의 공동 농장의 경우는 서구의 봉건적인 개념과는 달리 사회보상의 개념으로써 함께 경작한 토지에서의 수확물의 일부를 보상할 뿐만 아니라 힘든 가정의 경우 자녀가 중이 됨으로써 공동체에 의해 부양되게 된다. 이렇게 이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정신적으로 지지기반이 될 뿐 아니라 승원과 마을 사이의 주고받는 관계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포함되고 누구나 이익이 돌아오는 풍성한 문화적 종교적 전통을 지탱해 준다. 라다크인들은 언제나 활기차며 행복한 생활을 살아가며 삶의 기쁨을 누릴 줄 안다. 물론 이들에게도 슬픔과 문제란 것이 있지만 정도의 문제로 포괄적인 자아개념으로 모든 감정을 기쁨으로 포용해 낸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자존심이 저변에 깊게 뿌리 박혀 있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정석적으로 덜 의존적이다. 라다크인들의 만족과 마음의 평화는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 않는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이들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내면의 평정과 만족감을 키우는데 도움 되며, 종교는 사람이 건강하고 따뜻하고 안락하고 배부르더라도 무지하면 행복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라다크인들의 만족감은 자신이 삶의 흐름의 일부임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긴장을 풀고 그 흐름의 함께 움직이는데서 온다.제 2부 변화라다크의 모습은 1974년 관광객들에 의해 개방된 후 본격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이곳의 개발도 여느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서구화된 산업문명의 도입으로 인한 것이며 정부 주도하의 보급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개방의 물결에 따라 경찰력, 재판소, 은행,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선진 문화의 도입으로 개발 노력이 자극되며 공식부문이 빠르게 진행된 결과, 인구의 증가, 이농현상의 초래, 교통의 발달 등의 과정을 똑같이 답습하게 된다. 라다크 역시 관광객들에 의해 물질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변화되기 시작한다. 기존의 학교 교육을 통하여 기술을 습득하고 사회로의 진출을 권장하게 되었고, 농촌 경우도 서구식 관점으로 효율성을 맞추려는 등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들의 전통 사회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라마승이었다면 현대화된 부분에서는 기술자로 전이가 된, 정적이며 자비로운 관계를 권장하는 윤리적인 가치로부터 이제는 아무런 윤리적 토대가 없는 가치중립의 ‘객관성’의로 나아가는 변화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이들이 현대적 교육을 통해 문맹의 비율을 낮추어 외부 세상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게도 되었지만, 전통과 유리되어 농업에서 도시로 이동하게 되고 실업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간의 경쟁을 벌이며 세계 경제에서 제일 아래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된, 안타까운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전의 전통적인 경제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서로를 보살피는 책임의식이 있었다면 의존적인 생활 경제 속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스스로가 결정을 내일 수 없는 무력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모든 수준에서 수동성과 심지어는 무감각이 자리 잡게 된다. 이제 공공의 소유물은 더 이상 내가 관리해야 할 것이 아닌 정부의 영역으로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이상은 소중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 이기심으로 변질 된 것이다. 또한 텔레비전이다 라디오를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심리적으로 억눌리고 자의식이 강하게 되어 너와 나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기주의적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라다크 사람들이 서로간의 깊은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서 비롯하는 안정감과 정체감을 잃게 되자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하며 주어진 대중매체의 환상을 쫓아 개성의 상실을 초래하기 시작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지역경제와 공동체적 유대가 깨지면서 사람들은 익명적인 존재로 되어버려 심지어는 가족 관계마저도 피상적이고 덧없어 졌으며, 사람에 대한 판단은 물질적 소유물에 의해서 결정이 되어지는 물질만능주의라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이러한 라다크인들의 변
    인문/어학| 2006.03.22| 8페이지| 3,000원| 조회(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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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사 및 예술사]앤디 워홀(Andy Warhol) 작품 속에 나타난 시뮬라크르(Simulacre) 현상에 관한 연구 평가A좋아요
    Ⅰ. 서 론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시각적으로 포화된 상태에 놓여 있다. 다양한 산업 상품과 매체들로 즐비 된 시각 환경에서 우리들의 일상은 ‘보여 지는 것’들로 채워지며 그러한 것들의 흐름에 맡겨진 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네트워크를 통한 인터넷의 보급으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들 또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시각 이미지들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TV와 같은 영상 매체나 신문, 잡지와 같은 활자 매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언제든지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어 습득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접하게 되는 과부가의 상태인 ‘정보의 홍수’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각적 과부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의 양상은 미술에도 나타나게 되는데, 예전의 미술이 예술가의 정신적인 노력에 의한 작품으로서 숭고한 의미를 지니며 형이상학적인 것을 재현(representation)해 내는 것으로 생각되어졌다면, 현대의 미술은 사진 기술의 발달과 매스미디어와 같은 전자매체의 발전으로 인하여 점차 시각적인 재현에 있어서도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새로운 재현의 개념이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예술 형식이 출현하게 되는데, 기존의 미학적 가치와의 충돌을 야기 시키는 아방가르드 미술이 출현한다. 팝아트(pop art) 미술을 예로 들자면, 이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매스미디어를 소재로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으나, 당시의 미학적 관점에서는 그저 키치(Kitsch)에 불과한 저급한 미술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으로 이행됨에 따라 팝아트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달라지 게 되었다.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인 앤디 워홀은 다양한 일상의 이미지들을 실크스크린이라는 기계적인 복제기법을 이용하여 기존의 예술 작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손쉽게 제작할 수 있었는데, 그로인해 평가 절하되었다. 워홀은 작품에 대한 진지한니라, 컴퓨터의 디지털 기호와 DNA 같은 순수기호들의 조합이 가상현실의 모조로서 무한대로 동일하게 모사된다는 점에서 원본과 사본, 현실과 재현의 차이 내지 간극이 없어진다. 여기서는 현실을 모방한 것이 재현이 아니라, 가상물들이 세계를 구성하며 궁극에는 재현마저 삼켜버리고 재현된 것을 통해서 현실이 확인되는 전도가 일어난다. 이와 같이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가상물들이 현실을 지배하게 되며, 이로서 과도실재는 원본보다 더 원본의 행세를 한다고 설명한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과도실재의 전형이 미국에 있는 디즈니랜드라고 설명한다.)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거기에 있다. … 디즈니랜드의 상상세계는 참도 거짓도 아니고, 실재의 허구를 미리 역으로 재생하기 위하여 설치된 저지기계이다. 그로부터 이 상상세계의 허약함과, 유치한 백치성이 나온다. 이 세계가 어린애 티를 내려 하는 이유는, 어른들이란 다른 곳, 즉 실제의 세상에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이며, 어른들의 유치성 그 자체가 그들의 실제 유치성을 환상으로 돌리기 위하여 여기서 어린애 흉내를 낸다.)그에 의하면 “디즈니랜드는 실재의 나라 실재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했으며 그것은 여타의 세계가 실재라는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하여 상상적인 세계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다.)3) 내파(implosion)보드리야르는 재현이 불가능해지고 의미가 사라지며 실재와 재현 등 서구 사유의 기반이 되었던 이분법적 차이가 소멸되는 현상을 내파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유는 미디어학자인 맥루언(Marshall Macluhan)의 미디어 이론을 만나 급격 진화하기 시작하는데, 맥루언에게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통하여 이제까지 미디어는 그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빈 그릇으로 여겨졌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도입으로 초래되는 사회의 환경 및 인간의 지각패턴의 변화이다. 이렇게 메시지보다 미디어에 주목하는 것은 기의(signified)보다 기표(s을 지배해버림으로써 허상만이 존재하는 실체의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그들은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잡지, 신문, 그 밖의 매체의 발달과 그로 인한 일상생활의 변화를 미술의 소재로 삼아서 평면적 또는 입체적 작품을 시도하였다. 이는 이제껏 미술사에서 다루었던 고급 미술과 순수 미술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상적이고 비전문가적이며 시각적 산물을 접목시켜 새로운 형태의 대중 예술 또는 저급 예술의 개념으로서 평가 되어지면서 기존의 저급 문화와 고급 미술 사이의 구분을 흐리는 미술형태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순수 미술을 지향하고 독창성 구축을 믿었던 비평가와 미술사가들에게 팝 아트는 상당히 우려할 만한 경향이었으며 논의의 주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하는 새로운 미술이 과거의 모더니즘과 결부된 관념적 기준들과 상충함을 알 수 있는데, 팝아트는 단순히 일상성의 수용에 머물지 않고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구조의 변이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팝아트가 구상적 요소와 대중적 이미지와의 관계를 넘어서 그것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논의가 모더니즘(modernism)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범주간의 충돌과 차이를 보여주고 있음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해 봤을 때, 팝아트를 단순히 대중문화의 관계에만 초점을 두고 평가하는 것은 자칫 미술사에서의 위치를 축소하고 제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팝아트는 모더니즘과의 결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 해 봤을 때, 네오 아방가르드(neo-avant-garde)의 중심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2. 소비사회에 있어서 시각: 시뮬라시옹의 시대보드리야르는 문화를 사회분석적 관점에서 소비사회의 논리로 파악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사회관계가 더 이상 마르크스적인 생산의 정신에 의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의 이데올리기(Ideologie)에 의해 또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소비에 의해 그려진다고 밝힌다. 그는 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의 마르크스주의적인 다는 것으로, 실크스크린 기법은 누가 제작했는지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기계적인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무수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미지의 처리방식은 사진의 단편성, 비서술적 성격을 이용해 변형했으며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이미지가 가지는 개성, 감격, 감동 등을 제거해 무감각, 냉담한 상태로 이끌었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 보조자를 채용하고 작품에 대한 타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전통적인 예술가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으로 예술이란 재능 있는 특별한 개인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예술과 예술가의 범위를 넓혀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워홀은 예술도 비즈니스의 일종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예술의 상업적 성격을 직시했다 점으로 예술작품을 상품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자신이 이미지 생산자임을 말과 행동에 의해 밝혔다. 마지막으로 실크스크린에 의한 평면작업 뿐만이 아니라 영화, 잡지, 심지어는 음성방송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예술 활동이 한 부분에 국한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예술이 대중화와 대중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타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요한 특징들을 통하여 팝아티스트로서의 앤디 워홀은 미국 대중문화와 미술의 관계가 와해된 구체적인 실천이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2. 앤디 워홀과 시뮬라크르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이미지가 실재에 압도한 현대 상황을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한 대표적인 예술가를 앤디 워홀로 지적한다.) 그는 다른 팝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이미지들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현대사회의 상투형들을 직접적으로 이용했다. 특히 대중스타인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마오쩌둥 등에서부터 전기의자, 코카콜라 병, 지폐, 캠벨 수프 깡통 등 공장 조립라인에서 나온 기성품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소비 이미지들의 텅빈 기표를 생산해 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과거 장인적 생산과는 달만들어 이 사간을 이미지의 숙명적 전략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2) 나는 스타를 사랑 한다앤디 워홀의 일생에서 무척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광적인 스타 숭배자라는 점이다. 그의 친구 찰스 리센베이(Charles Lisanbay)는 워홀의 가장 중요한 욕구는 유명해지는 것이며, 마티스만큼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도 위대한 화가가 되고자 하는 꿈의 표현이라기보다 보잘 것 없는 콜라주 하나도 비싼 가격으로 상정되는 유명세를 획득하고 싶다는 것이 그 말의 진의라고 부연한다. 이러한 소망에 대해서 워홀 자신도 이렇게 적고 있다.당신이 정말 그 어떤 것이 되고 싶다면 이는 당신이 진정으로 그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당신이 바위처럼 되고 싶다면 당신은 정말 바위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인공의 우상을 사랑한다.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매스미디어의 영향권 안에 진입한 우리시대가 만들어낸 욕구라 할 수 있다. 워홀 또한 이 꿈을 공유함으로써 우리 시대 문화의 전형으로서의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스크린에서 보는 것과 같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일시적인 미에 워홀이 언제나 압도당했다는 사실이다. 즉 그의 감수성은 헐리우드의 로맨스처럼 결코 손에 닿을 수 없으며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그렇기 때문에 찰나에 불과한 불안하고 거짓된 피안의 세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그의 예술의 특성은 팝피즘(popism)이란 정신 속에 가장 잘 드러난다. 1980년 실지로 『팝피즘』)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냄으로써 자신의 예술의 정신을 설명하고 있는데, 팝피즘이란 글자 그대로 팝아트의 근간이 되는 정신을 의미하며 앤디 워홀은 같은 이름의 사진의 책 속에 1960년대 미국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팝피즘이란 이 시대의 미국의 현실 자체에 대한 조명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결국 팝피즘이란 미국의 문화와 사회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만화, 광고, 유명인, 코카콜라 등의 이미지들을 통해 추구한 것은 오늘날 전 세계의 문화로 확산되없다.)
    예체능| 2005.12.15| 37페이지| 4,000원| 조회(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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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개념]추상 미술의 개념에 대하여 평가A좋아요
    Ⅰ 서 론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추상미술’이라는 개념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 체험하고, 느끼는 많은 인지의 과정들도 추상적인 사고과정을 통한 것이며, 이러한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언어, 사회조직 등의 현대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추상적 표상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존재하였고 그러한 실례들을 추적해 볼 수 있다.신석기 시대의 고인돌이나 선돌의 모양을 보면 일종의 추상조각이며, 바위에 조각된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의 다양한 무늬 같은 상징적인 표현들은 추상화의 일종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있어서도 추상적인 창조물이 발견되었고 이집트 미술에서도 기하학적인 구조에 의해 표현된 조형감각을 수 없이 읽을 수 있다. 중세기미술의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도 구체적인 형상보다는 선과 색의 신비로운 아름다움만을 표현한 점에서 추상화에 가까운 것이다.추상화란 말은 엄격히 말한다면 ‘보여 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 한다’라는 구상의 개념과 반대적인 것으로서, 추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 막연한 것 즉 보여 지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 따른 추상화라는 말은 무언가 실존하지 않는 그림, 막연한 그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오늘에 이르러 추상회화는 예술의 대표적인 하나의 경향으로서, 자연의 현상을 초월하여 보다 높은 법칙성과 영구불변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예술 양식이다. 19세기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인 급격한 변화와 함께 예술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조형의미를 점진적으로 형성시켰고, 대상의 참 가치나 인간 내면의 세계를 보다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서구의 합리적인 조형의식은 전통적인 사실적 묘사의 조형성에서 탈피하여 보다 순수한 조형요소만의 조화를 꾀하는 “추상(abstraction)”을 출현시켰다.)1. 추상(abstraction)의 개념과 추상 미술(abstract art)추상(abstraction)이였으며,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명상을 하고 창조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세계보다는 감추어져 있는 내면세계의 신비를 선과 색채의 추상성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세잔(Paul Cezanne, 1839~1906)는 화면의 구조적 질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회화는 자연과 의존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동등한 법칙으로 이루어진 독립된 세계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는 선, 면, 공간구성 그리고 색채를 통해 자연이 감추고 있는 수많은 내적 가능성들을 표현하려 하였으며, 모든 자연의 형태는 본질적으로 원통형, 구형, 원뿔형 등의 기하학적인 입방체로 구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색채의 강한 힘에 주목하면서 색채는 형태만큼이나 견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화면의 견고한 구조를 위하여 고전주의적인 확고성과 엄격성을 도입하였으나, 고전주의 회화와는 달리 깊은 원근법을 제거하고 다시점(多視點)적인 시각을 도입하여 화면 전체를 질서 있게 분할, 구성하면서 회화의 평면성을 실현하였다. 세잔의「생 빅투아르 산」연작은 그가 자연을 바라보면서 깊이 사색한 후에 회화의 법칙에 의해 구성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보여주며, 자연과 대등한 조화를 가진 미술의 법칙을 만들어 회화를 거의 추상적으로 재구성하는 데까지 접근하여 추상회화의 진정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20세기에 들어오면 19세기의 탐구한 실험이 추상회화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게 되는데, 야수주의(Fauvism)의 대표적인 화가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색채의 물질성을 강조함으로서 20세기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이는 색채의 자율성의 실현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현대미술의 개념을 드러내며, 주제를 인식한다는 것은 회화와 ‘나’ 자산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미술가들은 ‘시각의 원인’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아를 화폭에 담기 원했고, 캔버스는 미술가의 자아와 개념,의 시기로서 신문, 악보, 트럼프, 벽지 등의 콜라주(collage) 기법으로 평면적 이미지를 도입하고 잃어버리기 시작한 재현성을 회복시키는 시도가 행해졌으며 이 콜라주 기법은 화가들의 표현 방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피카소의「기타」에서 보듯이 벽지, 신문지 등 실재의 오브제를 직접적으로 화면에 콜라주하고 문자를 화면에 도입함으로써 일루저니즘(Illusionism)을 완전히 대체하는 조형적 리얼리티를 완성하였다. 서양미술은 전통적으로 실재를 더욱 정확하게 재현하는 환영적 묘사를 통해 실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이것이 결국 거짓 실재일 뿐이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실재의 사물을 화면에 도입하여 전통적 회화에서 리얼리즘을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일루저니즘을 완전히 극복하였으며 회화적 사실 혹은 회화적 현실이 갖고 있는 리얼리티를 주장함으로써 자연을 재현하는 회화의 기능에 의문을 던진다. 회화에 콜라주 된 사물들은 바깥세상에서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 기능과는 상관없는 회화의 세계에 종속되며 이는 화면에서 벽지 혹은 노끈 등 결코 벽지와 노끈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또한 화면의 문자는 언어가 갖는 구체적인 사물지시의 기능을 통해 회화는 재현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의 독립된 세계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며 문자는 공간의 일루저니즘을 배격하여 화면을 평면화 시키는데 기여하고 있고, 공간을 촉각적이고 물질적으로 만들고 있다.종합적 입체주의를 통해 실재와 재현된 것과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은 재현의 문제를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점을 던졌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예술과 외부적 현실의 관계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평면적, 자율적, 비환영적인 구조로서의 회화의 실재를 명확히 확립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들이 도입한 실재의 오브제들은 자연을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회화에서 실질적인 대상은 추상적 요소인 선, 평면, 색채 등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2. 추상미술의 탄생과 발전1910년부터 제 1차 세계대전동안에 유럽 각3년에 해체되고 만다. 청기사 그룹은 회화의 정신성의 고찰과 인간 내면의 내적 감정과 다양한 문화의 습득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추상형태가 탄생되는 데 공헌하였으며 특히『청기사 연감지』를 통해 추상회화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추상회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다루었으며, 파리의 마티스,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세잔 등을 소개하면서 현대미술의 동향을 소개하기도 하고, 시(詩), 음악, 희곡 등의 내적 필연성의 발전에 이용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기도 하였다.무엇보다도 ‘회화의 음악화’에 관심을 가진 칸딘스키에 의해 이것에는 음악과 관계된 것을 많이 다루었다. 왜냐하면 음악은 인간의 내적 감정에서 만들어진 가장 순수한 추상이기 때문으로 내적 소리의 울림을 회화의 형태로 창조하고자 하였다.- 인상, 즉흥, 구성의 시대1910년부터 1914년까지「인상」(Impression),「즉흥」(Improvisation),「구성」(Composi-tion)연작을 통해 추상회화에 도달 한다. 이 세 요소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간취한 자연의 내적 생명력을 회화의 리듬과 생명의 힘으로 표현하기 위한 탐구과정을 보여주며, 이러한 실험단계는 화가의 직관을 성숙시키는 단계이며, 칸딘스키는 추상회화를 위한 직관과 이성, 무의식과 의식 능력을 고양시켰다. ‘인상’은 자연과 대면했을 때 심리적인 첫 느낌의 인상을 의미하며, ‘즉흥’은 인상에서 한 걸음 나아가 무의식적이고 자동발생적인 내적 감정의 충만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인상’과 ‘즉흥’을 탐구하면서 직관을 계발시켰으며 이러한 직관은 일종의 영혼의 울림이다. ‘구성’은 인상과 즉흥의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상태를 이지적이고 이성적인 지적 성찰과 더불어 연구하는 단계로써 지성, 지각, 명석한 의도, 명확한 목적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추상회화의 창조를 의미한다. 칸딘스키는 “구성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항상 감동적이다. 나는 내 인생의 목적으로서 구성을 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기하학적인 추상형체는 문장에 비유하면 문법과 같은 것으로, 그것은 변화하는 자연현상에 부여하는 인간의 질서의식 내지는 절대의식으로써 선과 색만으로 불변의 절대적인 질서를 신비롭게 확립하려 한다. 이 점에서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작품을 다시 본다면 그것은 자연적 대상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순수한 선과 색의 묶음이라 할 수 밖에 없으며, 칸딘스키가 강한 내적 충동을 선과 색으로 격렬하게 표현했다면, 몬드리안은 형태에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질서를 선과 색의 비례로 냉정하게 표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렇듯 추상화는 선과 색만으로 감정을 표현할 뿐 아니라 우주의 사물에 내재한 질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형태만 추상한 것에서 넘어 의미의 추상성도 함께 깨우쳐 주어 그림에 대한 새로운 차원인 창조성의 문제를 열어주었으며 이것이야 말로 20세기 화가에게 새롭게 문제가 된 추상의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이 자연적인 대상에 추종하는 한, 자연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색채화가 들로네의 말을 수정하여 자연적 대상이란 주제마저 빼어버린 절대주의 추상 화가들은 조형의 요소라 할 수 있는 점, 선, 면 그리고 색만을 주제로 삼으려는 지고한 목표를 수립하였으며 이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으로 치우쳐 장식적인 경향을 낳기도 했지만, 순수 조형을 주제로 비시각적인 것을 시각화한 그 공적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Neo Plasticism)추상회화는 1910년대의 활발한 탐구를 거쳐 1920년대에 이르면 유럽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조형적 형태언어가 되는데, 그 중 네덜란드에서는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이 ‘신조형주의’(Neo Plasticism)회화를 주장하였다. 이 당시 유럽에서 실험된 기하학적 조형형태의 특징은 제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 전개되었으며 모드리안은 입체주의를 거쳐 유토피아의 희망을 적용시키면서 극단적으로 감축되는 순수형태다.
    예체능| 2005.10.18| 14페이지| 2,000원| 조회(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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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원로의 미술 -스키타이 민족] 스키타이 미술
    Ⅰ 서론우리의 세계는 동양과 서양으로 크게 구분하여 생각되어진다. 현세의 인류가 기원을 하고, 진보해 나아감에 따라서 문명이 발생되었고, 이에 따라 조금 더 포괄적인 문화 형태가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인류의 문화는 지역마다 각각의 독특한 형대의 문화권을 형성고있었으며, 또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 나가게 되어 현재에까지 이르게 된다. 인류 문화의 발전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게 된다면 어느 일정한 장소에서 문화가 발생하여, 그 범위 안에만 국한되어 영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기존의 것과는 이질적인 것, 즉 다른 문화의 마찰을 통한 영향으로서, 인류의 문화는 좀더 진보된 새로운 문화 형태를 형성해 나가게 되는 촉매제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로 다른 문화간의 교섭(交涉)이란 것은 인류 문화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실크로드(Silk Road)란 곳은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문화가 서로 교섭하게 되는 하나의 정점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에 남아 있는 유적, 유물을 통해 우리는 교류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앞으로 실크로드 주요한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고, 실크로드의 여러 문화 형태 중에서 특히 스키타이(Scythian) 민족 이 이룩해낸 문화와 영향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실크로드(Silk Road)란 ?실크로드(Silk Road)란 중앙 아시아를 경유하는 고대의 동·서의 교통로로서, 비단 길 이라 함은 이 교역로를 통해서 중국의 주요 수출품인 비단에 연유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며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絲綢之路) 라 하였다. 이러한 용어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토펜(Ferdinand von Richthofen, 1833-1905)이 그의 저서 『China (1877)』에서 "자이덴슈트라센(Seidenstra en)"이라는 조어를 사용한 것이 최초였으며, 중국에서 중앙 아시, 남족을 천산남로라 부르고, 나아가 남로서에는 천산 남록(南麓)을 따라 서역북로, 곤륜북로를 따라 서역남도가 있었다. 중국의 수도인 장안을 출발하여 하서(河西) 땅에 들어가, 양주( 州)를 거쳐 국경 마을 사주(沙州)에 이르며, 그 서쪽에는 옥문관(玉門關), 양관(陽關)이 있고, 이의 서쪽이 서역이다. 한대에는 누란이 북도와 남도의 분기점이었으며, 남도는 체르첸, 호탄, 야르칸도 북도는 카라샤르, 쿠차, 아쿠스, 가슈갈을 경유하여 파미르 고원을 향한다. 그 후 옥문관에서 쿠물, 투르판을 거쳐 카라샬에 이어지는 새 길이 만들어져서, 누란을 경유하는 옛길이 건조가 심하여 쇠토한 것과 동시에 북도의 간선이 되었다. 파미르 또는 천산의 험한 길을 넘으면 서부 토르키스탄에 들어서는데, 소그디아나의 사마르칸드는 그 중심부이고 여기에 남으로 인도 방면, 서로는 이란 방면으로 카라반 루트가 뻗어 있다.단순히 비단을 나른다 는 의미로서는 스탭-해상 루트로 나누어서 설명하기도 하나, 우리는 동·서의 문화가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지리적으로 중앙 아시아 지역의 실크로드 즉 초원 로를 중심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실크로드는 단순히 동서의 교통로로써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운반되는 문화의 교류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어지고, 현재 파키스탄과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를 잇는 포장도로로서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2 스키타이 미술(1) 스키타이(Scythian)의 역사와 문화B.C. 8∼7세기 중앙 아시아에서 러시아 남부 지방으로 이주했던 유목민족으로 원래 이란인에 속하며, 현재는 크림 지역을 중심으로 B.C. 4∼2세기에 사르마티아인에게 흡수될 때까지 강력한 강국을 형성하여 5세기 이상 유지했던 민족으로서 이들의 역사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대부분 근거하고 있다. 스키타이는 용맹성과 특히 전투 중 말타기 솜씨가 빼어났으며, 이로 인해 다른 부족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아시아에서 이동한 뒤 이미 카프카스와 흑해 북부 평원을 점령하고 있던 킴메리족의 디아인의 아나톨리아 지방으로부터의 공격으로서, 이들의 영토는 페르시아 경계지역과 쿠반을 거쳐 러시아 남부까지로 축소되었다. 스키타이는 전투력뿐만이 아니라 문명에 있어서도 탁월했는데, 이들 중 부유한 귀족계급이었던 로열 스키타이는 러시아 남부와 크림지역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이들은 B.C. 513년 다리우스왕의 침범할 수 없었을 정도로 강한 세력이었다. 로열 스키타이의 정점에는 왕이 있었으며, 왕의 권력은 그 아들에게 계승이 되었다. 헤로도토스 시대에 이르러서 스키타이 왕족이 그리스인들과 통혼하게 되었고, 339년 아테아스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 2세와의 전투 중 사망함으로서 마침내 스키타이는 2세기에 이르면 마침내 멸망을 하게 되는데, 마지막 왕이었던 팔라쿠스의 이름은 역사에 남아 있다.(2) 스키타이 미술(Scythian Art)스탭 아트(Steppes Art)라고도 하며, 이들에 관해서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의 성과로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추세로, 스키타이 미술은 내몽골에 있는 알타이산맥의 동쪽에서 유럽 대륙의 러시아에 이르는 중앙 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니던 유목민족이 만든 장식 공예품을 말하며, 주로 말·천막·수레를 장식하는 물건과 보석류로 이루어져 있다. 스키타이인들은 나무·가죽·뼈, 아플리케 펠트, 청동·철·은·금·호박금(고대에 쓰인 금·은의 합금)등 매우 다양한 재료로 공예품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황금으로 주조한 공예품을 최고로 꼽는다.주로 유물은 중앙아시아나 남러시아초원에서 발견되며, 대부분이 쿠반지방의 코스트롬스카야고분·켈레르마스고분·우리스키고분·엘리자벤스카야고분, 드네프르강 하류지역의 솔로하고분·체르토믈리크고분·알렉산드로폴스크고분이 주요 유적으로서, 아타이산맥의 파지리크에 있는 여러 고분에서는 자수와 아플리케 도안으로 가장자리를 화려하게 장식한 옷가지가 보존된 채 발굴되었으며, 파지리크에서는 펠트에 아플리케를 한 벽걸이 장식이 발견되었고,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위대한 여신이나 의인화된 짐승을 등장하는 종교적 장면을 나타낸 것도 있고, 기하학적 무5세기)에는 고대 오리엔트 미술 양식의 영향, 후기(B.C.4 ∼3세기)에는 그리스의 영향이 보이며, 스키타이 미술의 주요한 특징은 무기·병구·마구 등의 장신문양으로 동물의 모습과 투쟁을 부조 또는 투조로 표현한 약동적인 스키타이풍의 동물의장으로서 전기에 이미 나타나며, 금·은·청동·목제품에 전형적인 예가 있다. 전기의 대표적인 쿠르간에는 리토이, 코스트로무스카야, 우리스키 아우르 등과 후기에는 소로하, 크리 오파 등이 있다. 후기의 금세공은 호사스럽고 섬세한 작품의 대다수는 흑해북안의 제품으로서 그리스인 공인에 의한 제품이며, 그리스 기술을 습득한 스키타이 공인의 작품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진다. 스키타이 미술은 흑해 북안뿐만이 아니라 서쪽으로는 도나우강에서 동쪽은 몽고 유목민에게 전파되었고 다소 지역차를 보이면서 보편적인 북방 유라시아 고대 유목민 미술을 창조하였다.* 동물의장, 동물모양 (Animal Style){ B.C .6세기, 코스트롬스카야고분 출토스키타이의 미술의 주요한 특징은 동물의장(Animal Style) 이다. 이러한 형태는 동물 1마리의 모습만이 아니라 2마리 이상이 싸우는 장면도 많고,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나, 신화에 나오는 동물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유형은 먼 옛날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스키타이인들은 자신들만의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 냈다. 이러한 소규모의 공예적 장식품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들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적인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서 대부분의 장식품은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하게 제작되나, 대부분이 값이 놓은 황금 재료로 만들었으며, 또한 표현에 있어서 매우 섬세하여 금속 세공기술이 매우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대표적인 작품으로서 길이가 약 30.5cm인 황금 조각작품은 반쯤 누워 있는 수사슴의 모습을 뛰어난 솜씨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스키타이 전사들이 갖고 다닌 둥근 방패의 가운데 장식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아름다운 황금 수사슴은 쿠반강의 코스트롬스카야 이렇듯 스키타이의 동물 모양의 미술은 우아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한꺼번에 주는 매력이며, 이와 같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나, 전투를 하고 있는 동물의 모습의 두 가지의 도상은 훗날에도 반복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3 스키타이 미술의 영향(1) 게르만·바이킹·켈트인의 동물양식로마 제국 게르만 민족에 의해서 멸망이 되고, 중세 기독교 사회가 열리던 서양 역사 속에서 스키타이인의 동물문양 양식이 전해지는데, 이들의 정교한 금세공의 장신구를 중세의 게르만 민족과 지중해 미술에 전하는데, 스키타이의 예술은 고트, 반달, 바이킹 족에게 전해져 기하학적으로 아름다운 장식무늬로 변화된다. 스카타이인들은 3세기에 그들의 지배자인 고트족에게 자신들의 동물양식을 전했고, 고트족은 다시 게르만의 여러 계파에게 전했다. 게르만인들은 스키타이의 동물양식이나 사람의 형체를 거의 알아 볼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로 흡수했으며, 근동에서 전해져온 에나멜을 입히는 칠보자기(cloisonne)기술로 작은 몰걸이나 팔지, 귀고리 같은 금속을 만들어 장식하였다. 영국에서 발견된 금제장식의 는 스키타이 인들의 동물양식이 게르만 인들에 의해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654년에 죽은 앵글리아 왕 안나의 무덤에서 1937년에 발견된 이 작은 여인의 손지갑 덮개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 졌으며, 지갑 표면에는 두 야수와 그 사이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무늬가 있고, 한가운데는 오리를 한 마리씩 낚아챈 두 마리의 독수리 장식이 달려 있다. 새들과 사람의 형상은 거의 기하학적으로 패턴화 되었으며, 이 위에는 다른 세 개의 기하학적 장신문양이 있다. 바깥쪽 문양은 선적인 양식이지만 한가운데는 뱀과 곰·물개들의 동물이 서로 얽혀 있다.(2) 한반도의 영향:- 고신라 고분 출토 금제감장보검金製嵌裝寶劍{고신라 고분출토한국 고대미술품에서 중앙아시아의 영향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삼국시대 신라 고분 출토품들은 그러한 성격을 가장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데, 대표적 작품으로 신라 고.
    예체능| 2004.06.14| 6페이지| 3,000원| 조회(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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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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