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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대종사 평가C아쉬워요
    대종사(大宗師)란 크게 높여야 할 스승이라는 뜻으로, 스승이란 도(道) 자체, 혹은 대도를 터득한 지인(至人)을 가리킨다. 장자는 자연이야말로 사람들이 법도로 삼아야 할 위대한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는 자연을 따르는 참된 사람 즉 진인(眞人)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되고 있다. 장자는 우리가 크게 존중할 스승으로 진인을 내세우고 있다. 진인은 변화하는 바깥 세계에는 관심이 없고, 집착하는 게 없으니 시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외물에 구애받지 않으니 근심걱정을 모르며, 잠자리에서는 꿈조차 꾸지 않는다. 이처럼 자연에 순응한 채 욕심없이 살아가는 그는 정치에 대해 늘 초월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은 구별이 있으면서 구별이 없다. 천인합일의 경지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진인 은 도 그대로의 존재이다. 도 를 큰 종사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노력하는 궁극 목표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노자 에서는 사람은 땅을 법도로 삼고, 도는 자연을 법도로 삼고 있으니 위대한 스승(大師)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참고로 에서는 천지가 위대하고 만물이 풍부하다 해도 그 중심이 되고 스승이 되는 것은 무심(無心) 이라 하였고 내편주(內篇注)에서는 대종사는 도가 온전하고 덕이 갖추어져 흔연히 대화(大化)하고, 스스로를 잊고 공(功)을 잊으며 이름(名)을 잊는다. 지인(至人), 신인(神人), 성인(聖人)이라 불리게 될 만한 자는 반드시 그와 같이 하여 만세에 걸쳐 그것을 중심으로 하고 스승으로 삼는 자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대종사라 부르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대종사편의 앞부분은 진정한 앎(1,2) , 진인(3,4,5,6) , 성인은(7) , 옛날의 진인은(8,9,10) , 죽고 사는 것(11) , 물고기는 물에, 사람은 도에(12) ,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13,14) , 큰 스승(15) , 도란?(16) 으로 이루어져 있다.세속적인 생활을 초월한 진인의 생활 태도를 말하는 하나의 서문으로써 여기서 장자는 인간적인 지식에 대한 이상적인 형태를 먼저 논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란 불완전한 기준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므로 완전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 한계이다. 그래서 참된 사람(眞人), 참된 앎(眞知)이란 무엇인가를 펼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천이생야(天而生也) : 하늘과 함께 산다. 자연 그대로 산다는 뜻.이 구절은 진인의 경지를 상징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후세의 신선설(神仙說)은 이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 양생술(養生術)로서 실행하게 되었다. 진인지식이종(眞人之息以踵)이라고 하는말도 그 호흡법으로서 채용되었다. 장자의 운명수순의 사상은 이 구절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생과 사를 같은 것으로 보는 만물제동(萬物劑同)의 입장에 서서 생사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진인이라 역설하고 있다. 진인은 삶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도 불사한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여 즐거워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하여 슬퍼할 것도 없다. 다만 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떠나갈 따름이다. 자신의 존재조차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 보고 이것 저것 여러가지로 마음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 주어진 일체를 솔직히 받아들이고 더욱이 일체에 집착하지 않고 이것을 자연에 되돌린다. 진인의 마음은 무심 그 자체이다.여기서는 자기의 마음도 잊고 자연과 화합해 있는 진인의 모양을 적고 있다. 성인이라 부를 수 있는 진인은 어떤 사람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따라서 호불해, 무광 같은 사람들처럼 임금 자리를 피해 자기 목숨을 끊었던 사람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절조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진인이 못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남에 의하여 지배당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무력을 사용하여 타국을 멸망시켰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백성은 나라가 멸망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면서도 백성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자야말로 성인의 이름에 상당한다. 작위적으로 질서를 형성시키려 하는 자는 성인이 아니며 의식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려는 자는 인자가 아니며, 일부러 자연에 순응하려는 자는 현자가 아니다. 이해에 사로잡혀 이익과 손해가 결국은 동일함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군자가 아니며, 명예에 사로잡혀 자기를 잃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본래의 자기를 잊어버리고 본성을 상실한 인간은 이를테면 노예와 같다.* 호불해, 무광, 백이, 숙제, 기자, 서여, 기타, 신도적모두 스스로의 절조를 지킴으로써 저명해진 인물이다. 호불해는 요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받는 것을 거절하고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무광은 은나라 탕왕으로부터 천하를 물려받자 여수에 돌을 지고 빠져 죽었다. 백이와 숙제는 같은 고죽국의 공자로 부친 사후에 왕위를 서로 양보하다가 나라를 버리고 주나라에 몸을 의탁하였다. 무왕이 주를 정벌하려 하자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주나라의 천하가 된 후 주의 녹을 먹는 것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여 수양산으로 들어가 굶어 죽었다. 기자는 은나라의 공자로 주왕이 무도를 우려했으므로 광인을 가장하여 노예로 전락하였다. 서여는 오나라의 오자서라고 한다. 오왕 부차에 충간하려다가 죽었다. 기타는 탕왕이 무광에게 천하를 물려주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왕명이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제자와 함께 간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신도적은 기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신도 돌을 지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호불해, 무광, 백이, 숙제 등은 임금의 지위를 사양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이들을 지조있는 인물로서 추앙해 왔다. 그러나 장자가 보기에는 자기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인물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호불해, 무광, 백이, 숙제 들은 무엇에도얽매이지 않고 유유히 살아가는 진인의 경지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자는 지나치게 자연과의 일체를 강조하며, 자기 한 몸을 지키는 쪽으로만 치중한 감이 있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노자서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모순의 고발이나 천하경륜의 큰 뜻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장자 철학의 특징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장자를 무정부주의자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여기서는 진인이 나라를 다스릴 경우를 예상하고, 그럴 경우에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 가를 논하고 있다. 이것은 장자 본래의 사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소요유, 제물론 등에 나타났던 그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는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에 의해서 삽입된 것이라 여기는 학자들도 있는데, 장자의 사상을 정치에 적용시킬 경우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충분히 들게 하는 구절이다.이상 진인에 대한 설명이 4절에 걸쳐 계속되었다. 그 요점은 진인이란 모두 자연을 따르고 인위(人爲)를 쓰지 않으려고 한 인물들에 있다. 앞쪽에서 진인은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고 한 설명은 깊이 숨쉰다는 설명과 함께 무엇인가 독특한 수행법 같은 것이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연상을 일으키게 한다. 당시에 혹 그러한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진인 이야기 도중에 성인(聖人) 이야기가 끼여든 점이다. 하기는 진인을 성인과 한 가지로 볼 수도 있겠으나 성인을 말한 곳과 진인을 말한 곳에는 약간 이질적인 데가 있다. 혹시 다른 곳에 있던 글이 섞여 든 것은 아닐까?장자는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 보다는 배후에서 이를 움직이는 천명에 대해 경애심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의 생사란 애당초 천명이므로 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이렇게 체념으로 시작된 그의 인생관은 마침내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초월적인 경지에 이르게 된다.가뭄으로 바짝 마른 강 바닥에서 물고기가 서로의 거품으로 몸을 적시어 주는 것은 인(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은 부자연 스러운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도덕에 불과하다. 넘칠 듯이 물을 가득 채우고 있는 큰 강이나 호수는 자연 그대로의 사회라 할 수 있으니, 이러한 사회에서는 일체의 도덕이 불필요하며 상대방의 존재마저도 의식함이 없다. 이것이 장자가 주장하는 자연인 것이다. 못이 마르면 그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서로 물기와 거품을 뿜어대고 몸을 비빈다. 그러나 그보다는 넓은 강이나 호수에서 헤엄치며 서로를 잊는게 훨씬 편안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가의 인의니 도덕이니 하는 것으로 인간성을 다듬기보다는, 대자연의 품속에서 적성대로 살아가는게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 장자는 유가의 덕목이나 기존의 사회규범을 자연에 역행하고 인간성을 억압하는 것을 규정한다. 그는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과 적성이 따로 있는 것이므로 이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나 제도는 어떤 고정된 틀로써 모든 사람을 그 속에 집어 넣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인정(仁政)을 베푼다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성에 해악을 끼칠 뿐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개성과 창의력을 존중하여 간섭을 삼가면 저절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자연 속에서 온갖 동식물들이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결국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늘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있는 장자가 기성의 정치제도나 유가의 질서의식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이를 비판함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시간의 흐름이란 일체의 모든 것을 밀어붙이며 한시도 쉬는 일이 없다. 만약에 인간이 한가지 존재 방식만에 집착해서 청춘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차별하지 않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노년의 경지도 그리고 죽음마저도 즐거운 것이 될 것이다. 일체를 그대로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만물 제동의 입장에 선 운명관에서 도출되는 결론이다. 삶을 원하고 죽음을 꺼리는 심리에 대한 비판이다. 죽음이야말로 영원한 안식이라는 사상이 전반에 나타나고 있으나, 후반에서는 삶의 예찬 비슷한 표현이 나옴으로써 모순된 느낌을 준다. 더구나 이 1절은 전후의 절과도 내용에 연결성이 없다.
    인문/어학| 2001.02.24| 5페이지| 1,000원| 조회(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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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ort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에대해 평가B괜찮아요
    99011176 최은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뫼비우스의 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클라인씨의 병의 의미를 생각해보자.작가가 의미한 난장이는 아버지를 비롯한 빈민 및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난장이가 아버지와 약한 자를 뜻한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은 무슨 뜻일까? 그 공은 약한 자의 바램이다.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소중한 꿈인 것이다. 전체 내용을 보면 처음에 난장이 가족과 꼽추가족이 집을 빼앗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들, 혹은 그들과 반대되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난장이는 그의 아들에게 공을 쏘아올린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그의 꿈? 영수에게 말했던 그의 아버지의 꿈은 달나라에 가는 것, 그리고 그 천문대를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또 소박하고, 하지만 아름답고 조용한 소원인 것 같다. 글자 그대로 그런 일은 이뤄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결국 아버지는 달나라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꿈, 너무나도 현실적인 그 소망들은 난장이 가족에 비해서 너무나도 편하게 살면서, 주어진 것만 잘 하면 되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조금 더 아름다운 꿈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닐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가 타고 가려던 우주선을 의미할 것이다. 아니면 그 우주선으로 얘기되는 그의 희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장이는 단순히 이 책에 나오는 영수, 영호, 영희의 아버지, 김불이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았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삶에 안주하는 그런 사람들, 현실의 무게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난장이다. 이 세상에 난장이가 아닌 사람은 없다. 어릴 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가 난장이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커가면서 현실을 알아간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을 눌러버리고 작은 난장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작은 공을 쏘아올린다는 그 희망. 작가는 우리에게 그러한 희망을 한번 더 심어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이 소설은 산업화 시대의 소외된 도시 근로자의 아픔과 가진 자의 횡포와 없는 자의 고통을 목격한 작가가 현실 인식의 한 작은 소재로 그리고 있다. 이 작가의 현실 인식을 잘 드러낼 단서로 뫼비우스의 띠 에서 보면 뫼비우스의 띠가 의미하는 바는 이 두 계층 사이에서의 진정한 안과 겉은 없으며 지금의 이 현실 세계는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 쪽 면만 갖는 기묘한 세계라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 에서 수학선생님은 마지막 시간에 뫼비우스의 띠를 칠판에 그려 놓고 그 상징적인 의미를 암시적으로 이야기한다. 클라인씨의 병 에서 역시 노동운동의 학습 시간에 강사인 과학자가 클라인씨의 병을 그려 놓고 주인공에게 그 숨은 뜻을 깨닫도록 한다. 이 둘은 각각 평면과 입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이 양자가 평면이든 입체든 모두 안과 밖 이면과 표면을 공유할 수 있는 물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징을 통해 주인공이 깨달은 바는 이 세계란 본래 안과 밖이 없듯이 모든 인간도 안과 밖이 없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살아야 하는 공간이며 나아가 자유롭게 자신의 창조적 삶을 실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클라인씨의 병은 동시에 그러한 사회의 구현을 위한 실천적 방법까지도 암시해 준다. 그것은 그 스스로 구속의 벽을 깨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분화된 대립 구조의 공간만이 아니라, 이를 타계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이상 공간을 설정한다. 뫼비우스의 띠 와 클라인씨의 병 으로 상징되는 안과 밖이 없는 공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의 구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는 이상 공간의 모습은 단순히 현실이 아닌 환상이나 관념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이상 세계를 이 지상에 실현코자 하는 의지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문/어학| 2000.12.04| 2페이지| 1,000원| 조회(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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