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漢代)의 시가는 체재면에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서한(西漢) 초의 잡언시(雜言詩)와 양한(兩漢)의 악부시(樂府詩), 동한(東漢) 말에 흥성한 5언시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의 형태는 완전히 분리시켜 논할 수 없으니, 그 이유는 잡언시와 악부시 속에는 이미 5언구의 형식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한(東漢) 반고(班固)의 영사시(詠史詩) 이후로 문인에 의해 본격적인 창작이 이루어진 5언시는 고시19수의 출현으로 중국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할 수 있다.1. 5언시의 발생양한(兩漢) 이전의 ≪시경≫과 ≪초사≫에서부터 5언구의 형식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역시 전편이 모두 5언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5언시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이들은 4언과 6언의 리듬 속에 5언구의 존재를 미미하게 보존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대에 이르러 초기에는 여전히 5언시는 보이지 않고 4언이 주를 이루고 있다. 즉 ≪시경≫이 하나의 경전으로서 문인들에게 읽혀짐으로써 문인들은 민간에 유행하던 5언체를 천대시하여 짓지 아니하고 단지 ≪시경≫의 형식만 애써 모방하였다. 따라서 문인들의 5언체 시가 한대 초기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1) 5언시의 기원일반적으로 5언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릉(李陵)의 , 반첩여(班첩여)의 , 매승(枚乘)의 , 탁문군(卓文君)의 등의 설이 있으나,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의심을 받아 부정되어 왔다. 특히 이들의 작품이 후인의 위작(僞作)이라는 것이 거의 밝혀졌다. 한대 이전의 시들 중에는 완전한 형식을 갖춘 5언시는 한 수도 없다. 그러나 동한 시기에는 고시19수 등 뛰어난 5언시가 존재하였으므로 문학의 흐름이라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의 기원을 서한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문헌상으로 볼 수 있는 최초의 5언시는 ≪한서(漢書)≫ 에 실려 있는 서한 성제(成帝) 때의 동요이다. 그러나 동요나 민요는 민간에 유전된 구송(口誦) 문학이니 그것이 사서(史書)에 기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이므로 이 단지 문헌상에 기재된 최초의 5언시일 뿐이지 이 이전에도 이미 이와 유사한 5언의 민요들이 존재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동한 반고(班固)의 는 5언체 시가 정식으로 성립한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史料)이다. 따라서 반고의 시는 유명 문인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최초의 5언시라 할 수 있다.결론적으로 5언시는 어떤 특정인, 특정 작품으로써 그 기원을 삼을 수 없고, 과 를 중심으로 서한 초에서 동한 초에 이르는 시기를 5언시의 발생기로 보고, 반고 이후의 시기를 그것의 성립기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2) 악부와 고시악부는 약 100여년 동안 존속해 오면서 이후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뒤이어 일어난 고시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시"라는 명칭은 한대에 유행한 5언의 정제한 시들을 말하는 것으로 "고시19수"가 그것을 대표한다. 고시의 명칭은 고대로부터 사용되었는데, ≪시품(詩品)≫과 ≪문심조룡(文心雕龍)≫·≪세설(世說)≫ 등에 고시의 명칭이 있는 것을 보면 위진(魏晋) 시대에 이미 그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말임을 알 수 있다.고시와 악부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 결과 많은 부분에서 고시와 악부고사(樂府古辭)를 혼동하게 되었다. 김학주 교수는 "소명태자의 ≪문선≫이나 서릉(徐陵)의 ≪옥대신영(玉臺新詠)≫의 경우처럼 한대의 노래의 가사였다고 생각되는 것을 악부고사, 이미 노래와는 관계없게 된 시들을 고시라 한다고 볼 수 있다. 고사와 고시의 혼동례는 이밖에도 일일이 매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하면서 "이것은 자유로웠던 형식의 악부시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5언으로 정형화하여 마침내는 한대의 악부시는 고시와 구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관점은 주이준(朱이尊)의 ≪폭서정집서(曝書亭集書)·옥대신영후(玉臺新詠後)≫에도 보인다. 그는 은 곧 잡곡가사(雜曲歌辭) 중 고사(古辭)를, 은 곧 고사(古辭)를 나타낸 것이라 하였다.이러한 예는 이외에도 많은데 왕성전(王成전)은 여기에 덧붙여 은 잡곡가사 속의 고사(古辭)이며, 와 고악부 편은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 악부는 3·4·5·6·7언의 다양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악부시집(樂府詩集)≫과 ≪고시기(古詩紀)≫에 실려 있는 악부고사 중 대부분은 5언시이거나 5언의 구절을 이루고 있으니, 고시는 악부를 떠나서는 완성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민가가 채입(採入)된 악부는 민가 속의 언어 요소가 부단히 5언으로 향하여 발전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새로운 형식에 대한 적응은 바로 고시19수의 작자 및 상류사회의 문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2. 고시19수(古詩十九首)1) 작자와 제작연대서한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민간의 5언시와 악부에 기초를 두고 중국문학사상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면서 탄생한 고시19수는 양나라 소명태자 소통이 ≪문선(文選)≫ 권29 상(上)에 이를 고시19수라는 제목으로 수록하면서 그것의 작자를 무명씨로 하고 제작연대를 미상으로 한데 기인하여 그 후에 여러 학자들이 이를 규명하기 위하여 많은 학설을 내세웠으나 아직도 정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1 작자서릉은 ≪옥대신영≫에서 소통이 무명씨로 선록한 고시19수 중 , , , , , (≪옥대신영≫에는 "中"이 "前"으로 되어 있음), , 의 8수와 시 1수를 합한 9수를 "매승잡시9수(枚乘雜詩九首)" 편에 수록하여 이후의 "매승작시설(枚乘作詩)"설을 유발시키는 근원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매승의 작시설은 종영(鍾嶸)의 ≪시품(詩品)≫과 당대 이선(李善)의 ≪문선주(文選注)≫에서 부정되었다.결국 매승이 지었다는 이 시들은은 유협(劉협)의 지적처럼 성제(成帝) 때 수집한 가요에도 보이지 않으며, ≪한서(漢書)·매승전(枚乘傳)≫과 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 사람인 사마상여(司馬相如)와 동방삭(東方朔) 등에게도 5언시는 없다. 또 서진(西晋) 초에 육기(陸機)가 이 9수를 모방 창작하였을 때에도 이라 제목을 달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매승의 작시설은 거의 믿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고시19수의 작자는 역시 무명씨로 돌릴 수 밖에 없으며, 이들은 어느 한 시대 한 사람에 쓰여진 것이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2 제작연대고시19수의 제작연대는 그것이 서한인지 동한인지로 나누어지는데, 서한이라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매승의 작시설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승의 작시설이 일단 부정된 이상 그것을 서한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서한 시대에는 결코 성숙한 5언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시대적 관점과 19수의 내용이 한결같이 이별과 인생무상을 노래한 점을 보면 19수의 제작은 동한시대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시 중의 "옥형지맹동(玉衡指孟冬)" 구를 통한 연대 고찰이 쟁점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고시19수는 동한 말 5언시가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혼란했던 정치 상황 아래에서 무명 작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농어촌 관광 활성화(체험관광)로농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1. 서 론관광자원의 개념광의의 관광자원협의의 관광자원2. 본 론농촌형 체험관광 종류와 실태3. 결 론학 교: 경성대학교학 과: 영어영문 학과학 년: 3학년학 번:2000314004성 명: 국 선 마Ⅰ. 서론관광이란 관광객을 끌어들여 그들에게 볼거리, 먹거리, 숙박시설 등을 제공하고 각종 관광대상을 체험함으로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관광지에서 관광자원을 체험하면서 주민과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이미 관광에 대한 높은 인식과 관심을 가지고 자국의 경제발전의 일환으로 체험 관광자원을 개발하여 높은 경제 효과를 달성하고 있다.이러한 관광현상을 거의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이미 문화관광진흥이란 국정 지표에 의하여 관광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아직도 체험관광자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현대산업사회에 있어서 관광은 Social Tourism, Mass Tourism으로 대중화 되어가고 있지만, 농촌, 산촌, 어촌, 문화촌 등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자원은 아직도 경제성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현대사회에 있어서 산업화된 농촌, 산촌, 어촌, 문화 관광은 대량생산체계를 갖추면서 단일 시장체계로 바뀌었고, 농수산물 유통은 자유로워지면서 농업, 어업에 대한 경쟁력이 점차 떨어져가고 있다.우리 나라는 수출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이루고 있는데다가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한 여파로 농산물 개방의 여파로 농촌 경쟁력은 상실되고 있다. 한편 국토개발의 여파로 인하여 환경적 어려움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이촌 향도로 인한 지역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농어촌경제는 점점 어려움을 더해가고 있는 실정이다.이와 같이, 어려워져 가는 농어촌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관광농어촌 계획을 추진한 바 있으나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체험관광자원은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복잡다단한 도시 생활권을 벗어나 쾌적한 농촌, 산촌, 어촌의 자연자원을 경험하려는 도시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서 가족단위의 건전한 관광 체험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서 관광자원을 활성화시키고 지역 경제 문제 해결의 간접적인 역할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바이다.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제는 쉬는 관광, 보는 관광에서 참여하고 체험하는 관광으로 발전시키고 체험관광자원을 개발하여 지역 주민의 소득증대효과를 높여야 될 때라고 본다. 즉, 지역주민들의 소자본을 가지고 체험관광자원을 대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안내하고, 숙박시설을 제공하고, 지역 토산품 판매 등을 통하여 소득을 올리며, 그 소득을 주민들에게 환수시켜 줌으로서 지역경제 자립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소모성 관광자원이나 천혜의 자연적 관광 자원을 체험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관광상품화 한 예를 볼 수 있다. 체험관광에 있어서는 자연적 관광자원의 비중이 높게 차지하고 있지만 보다 실질적인 것은 생산적 자원과 연결되는 프로그램이 더욱 중요성을 가진다.1. 관광자원의 개념관광자원(Tourism Resources) 이란 종교용어 Resurgere와 영어의 'Resources'에 해당된다. 일반용어로서의 'Resources'는 다분히 종교용어에서 어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관광자원은 관광의 주체인 관광객이 그의 관광욕구(Tourism Desire)와 관광동기(Tourism Motivation)의 대상이 되며, 관광행동의 목표물인 유형·무형의 모든 관광대상을 가리켜 말한다.이는 즉, 관광주체(Tourism subject)에 대한 관광객체(Tourism object)가 지니는 자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이러한 관광자원은 주체인 관광(Tourist)의 욕구여하에 따라 그 대상물의 가치가 달라지게 된다.관광자원은 관광사업 측면에서는 경제적 가치를 갖게 되며, 관광객 측면에서는 위락적·문화적·교육적 가치를 갖는 관광대상물로서도 복잡하게 전개된다.1) 광의의 관광자원광의의 관광자원이란 자연관광자원과 인문관광자원 및 관광인적자원을 포함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화한 Recreation 관광객의 지향성에 부응하며, 소박한 주체성에 더욱 비중을 둔 관광자원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같이 인간이 관광욕구의 대상이 되고 관광행동을 충족시켜주는 가치를 지닌 유형·무형의 모든 자원을 총칭하고 있다.2) 협의의 관광자원협의의 관광자원이라 하면, "인간의 관광동기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생태계 내의 유형·무형의 제 자원으로서 보존·보호하지 않으면 그 가치를 상실하거나 감소할 성질을 내포하고 있는 자원"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며, 또한 여기에 자연적·문화적 관광자원을 있는 그대로 보존 활용하는 개념과 기존 자원에 인공을 가하여 새로운 시설·공간을 조성하는 개념이 포함된다. 따라서 관광자원은 관광의 목적물이 되는 요소를 지닌 것과 관광재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 등을 총칭한다.또한 관광자원은 관광개발의 소재가 되어서 이를 개발함으로써 관광산업의 기저가 되어야 하는 자원이어야 한다. 동시에 관광자원은 자연과 인문, 무형의 관광자원이 상호 융합되어 하나의 커다란 매력성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완전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관광자원의 정의에서 본 바와 같이 관광자원이 아무리 풍부하고 우수하며 그의 개발이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이를 잘 가꾸고 다듬어주지 못한다고 하면 본래의 미의 상실은 물론이고, 관광가치성의 발휘와 개발의 효용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때문에 관광자원의 원형파손이나 파괴를 방지하고, 이의 보호·보존 관리방법을 모색하고, 문화 민족다운 긍지를 갖고 한국적 감각을 살린 관광자원을 개발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2. 관광자원의 분류1) 관광자원의 유형분류 목적과 의의관광자원에 대한 유형분류의 목적과 필요성은 관광 대상지를 구성하고 있는 사물, 즉 각종 자원들을 대상으로 하여 현재의 역할을 평가하고 이해하려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의 관광수요에 대처할 수 있는 잠재적 관광자원(Pote한 접근 방법은 기존의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관광자원으로서 관광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잠재적 관광자원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관광자원이 인간환경의 구성요소들로부터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구성하고 있는 각종 요인(Factor)과 요소(Elements)에 대한 많은 연구가 없이는 새로운 관광자원의 개발을 위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2) 관광자원의 유형분류 특색구미 지역의 분류는 포괄적이고 연속적인 성격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짙고, 관광개발을 전제로 한 관광자원의 범위를 시설, 교통, 상부구조(Super Structure), 하부구조(Infra Structure) 등이 결합된 포괄적 자원까지 확대하고 있다.일본의 경우는 이원적 형태로 분류하여 자연형과 인문형, 유형과 무형 관광자원 또는 동태형과 정태형 자원으로 양분하려는 경향이 있다.한국에서는 일본의 분류방식과 구미의 분류방식을 혼용하여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관광자원의 유형을 분류하여 보면 크게는 유형·무형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이보다 더 세분하게 되면 자연적, 문화적, 사회적, 산업적, 위락적 관광자원 등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3) 한국의 관광 자원별 대상 분류① 자연관광자원 : 자연의 풍경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원② 문화관광자원 : 유형·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역사·문화를 창출시킨 자원③ 사회관광자원 : 국민성과 민족성, 인정, 풍속,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 온 모든 생활자료, 예술, 예능 및 사회공공시설 등④ 산업관광자원 : 현대적인 각종 사업·경제시설을 관광대상으로 견학, 시찰 등을 통한 하나의 관광형태로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⑤ 위락관광자원 : 도시공원, 어린이 공원, 골프장, 캠프장, 수렵장, 수영장, 놀이시설 등 자연조성지역의 레크레이션시설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3. 체험관광자원의 개념 정의모든 관광객에 있어서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욕구충족의 대상물을 관광느낀 사람들이 잠시라고 도시를 탈출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러한 도시인들의 탈피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체험대상을 체험관광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농촌이나 산촌, 어촌으로 이탈하고 싶어하며 농어촌 생활을 체험하고 싶어한다. 특히 최근에 들어와서는 자녀들의 자연교육관이 높아지면서 농어촌 관광은 체험관광형태로 발전하고 있다.현대사회는 Social Tourism, Mass Tourism시대 즉, 대중관광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환경부담 문제가 제기되고 농어촌과 도시와의 수입불균형이 일어나고 인구이동으로 인한 이촌 향도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농어촌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농어촌 부수입을 촉진하기 위하여 체험관광을 장려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는 생태관광(Eco-Tourism)과 녹색관광(Green-Tourism)으로 연계되어진다.우리 나라에서는 보건적 관광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발 위주의 관광이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주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안관광이 출현하였고, 이러한 대안관광은 가치 중심적인 견해에서 시작된 것이다.4. 체험관광자원의 중요성체험관광자원에 대한 다양한 개념정의를 종합하여 보면, 그 중요성은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체험관광은 다른 관광의 유형에 비교하면 현장 교육의 중요한 가치를 갖는 건전한 사고방식의 관광이다. 둘째, 체험관광자원은 농촌·산촌·어촌·문화에 관광현상이 발생하여 경제적 소득 창출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넷째, 체험관광은 다른 형태의 관광에 비하여 체재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더하여 주고 있다. 특히 일반적 자료에 의하면 체험관광객은 다른 관광객에 비하여 비교적 연령층이 높거나 낮은 편이며, 소득수준과 교육순도 높은 편으로 나타나고 있다.(1) 농촌형 체험관광현황우리 나라는 1980년대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mycar시대를 맞아 자동차 문화를 기반으로 성립된 대중관광(Social Tou 있다.
한국 관광산업의 현실과 나아가야할 방향서두1.머리말2. 위기의 한국관광1) 확대되는 여행수지 적자2) 높은 물가와 불편한 교통3) 부족한 관광시설과 상품4) 정부의 미온적 정책대응3. 관광도 산업이다1) 관광, 사치성 소비산업2) 전략산업으로서 관광산업 육성4.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1) 특화된 관광지 및 상품개발2)민간참여확대3) 해외레저산업 투자 활성화4) 고부가가치 관광산업의 육성5) 해외홍보 강화5. 맺음말학교: 경성대학교학과: 영어영문학과학번: 2000314004성명: 국 선 미관광산업은 그동안 사치성 소비산업으로 인식하여 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 국제경쟁력은 저하되고 여행수지 적자폭은 매년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행수지의 적자 개선을 위해 국민의 해외여행을 묶는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이제부터라도 관광자원개발에 적극 투자하여 외국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1세기 한국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임기응변식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1. 머리말굴뚝없는 산업, 고부가 청정산업, 21세기 고성장산업 등 관광산업에 붙는 별명에 걸맞게 세계관광시장은 지난해만 하더라도 1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각국의 관광산업도 확대일로에 있다. 그러나 세계관광시장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한국관광은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관광산업의 경쟁력은 서비스, 비용, 관광상품의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다. 우리의 관광산업은 서비스면에서는 불친절로, 비용면에서는 높은 물가수준으로 그리고 관광상품면에서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의 부족으로 경쟁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고 있다. 즉 보고 즐길거리는 적은데 높은 물가와 교통혼잡, 불친절로 외국인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적자는 매년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정부조차 관광을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사치성 소비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우리경제의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증가하고 국제수지 방어가 현안으로 등장하였다..4)이같은 추세는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올들어 5월까지의 여행수지적자가 벌써 12억3,00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유학·연수경비를 제외한 순수 여행관련 경비만 보더라도 7억6,000만달러의 적자5)를 기록하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관광당국은 올해 420만명 정도의 외국관광객이 입국해 69억달러를 쓰고 갈 것이며, 또 내국인 550만명이 해외로 빠져나가 해외관광지에서 84억달러를 쓰고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여행수지 적자는 지난해와 비슷한 15억달러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5월까지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수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여행수지 적자폭은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2) 높은 물가와 불편한 교통이같은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여행수지 적자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한국관광의 총체적인 경쟁력 저하에 있다. 관광산업의 경쟁력은 자연, 문화, 교통, 국민성 등 한 국가의 총체적인 능력이 모두 반영되어 결정되어지기 때문에 국민의 의식구조가 국제수준으로 향상되지 않으면 안된다. 교통 체증으로 인한 시간지체와 언어소통 장애, 관광정보 및 안내책자 부족, 불친절한 태도는 외국인 관광객이 단골로 지적하는 불편 사항이다. 뿐만 아니라 관광산업에 대한 투자부족은 관광시설의 공급부족으로 이어지고 높은 물가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전반적인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의 소매물가는 도쿄와 홍콩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 대도시들보다 훨씬 비싸고 지난 6년간 소비자 물가상승률도 무려 41.8%나 상승하여 필리핀과 홍콩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았다.6) 이러니 외국관광객의 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서울 이태원상가의 가격경쟁력도 동남아 국가에 비해 떨어지고 있어 한국에서의 쇼핑관광은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뿐만 아니라 호텔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10개국 수도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관광산업의 내수시장 기반이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내국인은 해외로 나가게 되고 외국인들은 더욱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서울에서 체류하지만 서울에서 호텔 수용능력은 비싼 지가, 건설입지 제한, 건축허가 제한 등으로 건설이 부진한 상황이다. 수도권 내에서는 초기에 막대한 자본투자가 소요되는 호텔과 관광단지에 대한 대기업의 투자가 제한된 결과 용인 민속촌과 롯데월드, 에버랜드 정도가 관광객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일본, 동남아 관광객은 제주도와 경주를 방문하지만 백제문화권과 호남문화권은 여전히 외래관광객들에게는 불모지대로 남아 있다.더욱이 지역별로 차별화되고 특화된 관광지, 우리의 5천년 문화와 삶의 양식을 제대로 보여줄 곳은 드물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관광상품이다. 또한 세계관광의 조류가 환경보전과 문화유적의 온전한 보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환경친화적인 관광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경주만 보더라도 석굴암과 불국사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제적인 유적지이지만 고분과 고층빌딩, 문화재와 향락시설이 뒤범벅이 된 기형적인 도시로 문화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이렇다 할 이벤트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관광산업은 투자가 필수적이다. 일본의 「하우스텐보스」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테마파크로 제3섹터 방식으로 개발,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730만명의 외국관광객이 135달러를 쓰고가 싱가포르 국내총생산(GDP)의 12%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렸다. 센토사섬을 리조트로 개발하고 부족한 자연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섬 빈탄에 싱가포르 자본으로 아시아 최대의 휴양단지를 개발한 덕택이다. 볼 것도 없고 살 것도 없으며 거기다 비용만 많이 드는 한국관광이 위기에 직면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4) 정부의 미온적 정책대응늘어나는 관광수지 적자와 열악한 국내 관광여건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어떠한가? 과거 88올림픽을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다. 이같은 소극적인 정책과 전략으로 관광산업의 육성을 기대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관광수지 적자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21세기 관광발전을 위한 기반조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3. 관광도 산업이다1) 관광, 사치성 소비산업공해문제나 환경파괴의 위험없이 외화를 벌어들이고 세계와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청정산업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여가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즐길 수 있게 함으로써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 새로운 관광지의 개발은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와 고용창출은 물론 국민복지에도 기여하고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같은 경제외적 효과 때문에 선진 각국에서는 관광을 환경, 정보통신 등과 함께 21세기를 주도할 3대산업으로 인식하고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95년 147억달러, 미국은 136억달러, 프랑스는 113억달러의 관광흑자를 기록했다.그러나 우리나라 관광은 산업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1차, 2차, 3차산업이라는 교과서적인 산업분류 체계상 3차산업에 속하니 만큼 관광에도 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을 뿐이다. 관광산업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부정적이다. 아직도 관광산업을 사치·소비성 향락산업으로 간주함으로써 각종 규제가 여전하고 호텔이나 골프장에 대한 정부지원은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것으로 비난 받는다. 대기업에서 리조트나 호텔사업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부동산 투기와 과소비를 조장한다며 못마땅해 한다.그 결과 관광산업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었고 이제와서 외래 관광객 수요를 제대로 수용할 시설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고용을 창출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좀 거창하게 말하면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산업군에서 관광을 제외하는 푸대접의 결과인 것이다.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민관이 한 목소리로 “관광도 산업”이라고 외치고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피니언 리더나 일반국민들의 관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과제이다.2) 전략산업으로서 관광산업 육성관광산업이 지니는 경제적인 효과는 엄청나다. 지난해 한국을 다녀간컵을 겨냥한 관광산업 육성이 아니라 「21세기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국민복지의 증대와 지역개발 촉진, 고용기회 증대, 국민소득의 증대, 교역의 촉진, 조세수입의 증가 등을 고려한 범정부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 된다.4.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1) 특화된 관광지 및 상품개발관광산업의 당면한 문제는 볼거리가 절대 부족하다는 점과 지역적으로 차별화되지 않아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는 관광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그러나 자치단체의 관광지개발 계획의 내용을 보면 대규모 관광단지 일변도로서 천편일률적인 관광지를 양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독특한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한 특화된 개발전략이 아니면 경쟁력이 생기질 않는다. 한국적인 철학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적 테마를 발굴하고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 지역의 특성에 맞게 소규모 농어촌관광지를 개발하여 민속과 역사 문화를 있는 그대로 관광객에게 체험하도록 하는 등 새로운 매력물(attraction)을 개발하고 관광마케팅 전략을 수립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예를 들면 허브 가든, 탐조여행 등 환경친화적인 생태관광(eco tourism)상품 개발, 현지에서 직접 만들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관광(cultural tourism)상품을 개발하고 농어촌에 체류하면서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는 녹색관광(green tourism), 지역사회가 주도가 되어 관광개발에 나서는 지역중심형 관광(community tourism) 등 새로운 관광개발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물론 테마파크, 리조트, 호텔 등 고부가가치 관광시설이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데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 경우 우선 국민관광 수요를 충족시킨 후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외국인을 겨냥해 개발할 것이 아니라 뒤떨어진 경쟁력 때문에 동남아에 빼앗기는 내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지역별로 특화된 이벤트와 축제의 개발, 특산물 등 다양한 볼거리를
*우리 나라의 교육열이 높다는 증거와 그러한 증거들을 가져오는 원인.우리 나라의 교육열이 높다는 증거를 가장 먼저 찾아 볼 수 있는 것을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입시위주의 교육을 통한 대학 진학에서이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나라 교육열의 최종목적은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일단 일류대학을 들어가고 나서 그 뒤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학을 들어간 자녀에 대해 그토록 열성적이던 부모들의 교육열이 거의 사라져버린다. 일단 일류대학만 가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구성원에 대한 가치를 학벌이나 학력 또는 성적 등으로 뽑는 것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나라 높은 교육열에 대한 증거와 관련사항을 잠시 엿보았는데, 이제 우리의 교육열에 대하여 과연 교육열이 무엇인가와 높은 교육열이 현 우리사회에서 나타난다는 증거 및 그러한 원인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먼저, 교육열이 과연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될 것같다. 교육열이란 개념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인데 이것은 교육동기의 정도를 표현하는 한 가지 언어로 생각할 수 있다. 김희복(1992)의 검토에 의하면 교육열에 관한 몇 가지 논의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하고 있다. 교육열은 '욕구', '욕망', '열기'. '열의' 등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심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열은 교육에 대한 동기 그 자체가 아니라, 교육동기의 정도를 나타낸다. 즉, 교육동기가 대단히 높은 경우 그것을 교육열이라고 부를 수 있다.그러면 우리의 교육열은 과연 어떤 것이기에 그토록 높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이것은 우리사회의 교육열이 어떤 목적이나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인의 교육열은 교육 목적의식에 의해 방향지어진 것이 아니라, 교육결과(과거급제.학력.학벌.성적.순위)로 얻게 되는 사회적 가치에 의해 방향지어진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교육열은 보다 학력열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은 다시 밀과외로 행해지기까지 했다. 돈이 좀 넘친다 싶으면 몇 백만원씩하는 돈을 매월 들여서라도 각 과목마다 개인교사를 두어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현 우리 사회의 실정이다. 각종 학원을 비롯하여 종류가 수없이 다양한 학습지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서로 자신들의 것을 선택하도록 광고를 연일 한다. 이것 역시 우리의 교육열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들이다. 우리 나라 신문지상을 보면 가끔씩 설문조사를 해서 퍼센트로서 자신이 또는 부모가 원하는 학력수준등이 도표로 나오기도하며, 우리 나라의 사교육비 실태라는 등의 항목으로 가정 생계비의 몇 퍼센트 정도가 자녀들의 교육비로 들어가는 지에 대한 조사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것만 있느냐 그렇지 않다. 대입 시험기간을 전후하여 한 바탕 대 소동이 우리나라에서는 벌어진다. 연일 신문지상이나 텔레비젼에서는 입시경쟁률이니 출제 경향이니 시험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시험치는 날을 즈음하여 상업적으로는 찹쌀떡이나 엿 또는 포크등 갖가지 상업적 요소가 가미된 상품들이 수험생들을 타켓으로 상업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교육열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 도대체 이처럼 높은 교육열의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일단 우리 나라 교육열 형성의 배경을 크게 보면, 한국 사회의 자원구조, 신분구조, 정서구조로 나누어 볼 수있다. 자원 구조면에서는 우리 나라는 인적.물적 자원 중에서 물적 자원이 극히 빈약하고 인적 자원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분구조면에서는 구시대적인 신분구조가 어느 사회보다도 급격히 무너진 사회이다. 신분구조의 붕괴는 곧 신분적 측면에서 개방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며, 교육이 개방사회에서의 지위획득이나 출세의 수문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회의 신분이나 지위투쟁에서 학교의 분배기능은 급격히 높아지게 되고, 부모의 교육열은 높아지게 된다. 또한 기독교화 개신교의 폭넓은 보급도 교육열의 보급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형성하게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의 교육열,(교육열이라 일컫기보다는 경쟁열이라고 일컫는 것 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을 형성하게된 연원을 따져 보도록 하자. 우리의 전통적 교육관을 보면 어느 한 분야에서 암기만을 잘한다거나 시험만을 잘친다고 해서 훌륭하게 교육되었다고는 하지 않는다. 분명 과거의 우리사회는 요즈음과 같은 성적에 따른 인간기준의 평가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답게 처신할 줄 아느냐에 기준을 두었다. 인과 예를 숭상하며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등의 전인격적인 삶의 과정이 그 당시 사람들의 교육이었다. 물론 오늘날 역시 전인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사회여건속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되고, 교육열은 반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경쟁률로 바뀌어져 있다. 분명 이것은 과거의 우리 조상들의 교육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조선사회에서의 교육열을 보면 이 당시에도 교육열이 높았다. 그러나 그 당시의 교육열은 과거시험 합격만을 절대 기치로 삼는 경쟁열이 아니라 사람답게 되기 위한 전인격적 삶의 교육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조선조 후기로 오면 과거시험과는 무관한 상민층에도 배운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 동학혁명을 비롯한 갖가지 사회적 저항운동에서 우주적 질서와 원리로서의 사람다움과 국가다움의 질서회복을 혁명 내지 저항의 명분으로 하는 기치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서 삼국시대 역시 나름대로의 전인교육이 행해졌다. 특히 신라의 화랑도는 집단수행을 통한 충이나 효, 의 등을 강조하였고 자연을 통한 경험과 집단적인 춤과 노래 등을 통해 조금더 전인적인 교육이 행해졌다. 요컨데 우리의 오랜 문화적 전통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교육열은 오늘날의 교육열처럼 단세포적이고 편협한 단편적 지식 암기위주의 실리주의적 경쟁열이 아니라 삶의 과정 전체를 포함하는 전인격적 도의 교육의 실천이었으며, 교육방법에서도 개인적, 지성적 측면보다는 집단적, 감성적 경쟁훈련 등을 교육의 전부라고 잘못 인식하여 그 이외의 삶의 경험과 시간에 대해서는 전혀 교육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려 들지 않는 오늘의 편협된 교육관은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연유하였으며 앞으로 그 결과는 어찌 나타날 것인가?우리국민들의 교육열이 넓은 의미에서 사람답게 가르치려는 교육열이 아니라 제도교육 속의 경쟁에만 집착하는 교육열로 편협하게 변질된 배경에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즉 학교교육의 권위와 사회적 가치를 절대화하고 가정생활과 문화적 습속 등 학교밖에서 배우는 모든 경험에 대해서는 교육적 가치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도록 가르친 일제 식민지교육정책과 그런 정책수행의 전위대양성소라 할 일제하의 사범학교 교육 속에 연원이 감추어져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왜 우리나라 국민들이 학교교육 아닌 가정교육이나 지역사회의 교육적 기능에 대해 점점 자신을 못 갖게 되었는지를 교육을 인식하는 식민지적 의식구조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학교교육의 경쟁에 물두하면서 스스로 교육열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자기기만일 수 있다. 즉 제도교육 이 외의 교육적 경험과 전통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도록 가르치는 식민지교육정책의 함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한국인들이 자신없는 가정교육영역에서의 직무유기에 대한 죄의식을 스스로 감추기 위해 더욱 열심히 교육경쟁에 뛰어드는 척 하는 과장된 집단의식이고 위선이면 일종의 집단적 불안신경증 증세일 수 있다. 문제는 그러면 어찌해서 일제 식민지 교육정책의 영향이 일제 지배가 끝난 지 4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에 와서 점점 더 극단화되어 나타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진단부위가 바로 이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도교육을 향한 우리국민들의 교육열이 일제시대보다 해방 이후 점점 급상승하게 된 이유를 학계에서는 흔히 일제하에서 억압되고 제한되어 있었던 제도교육 기회 때문에 쌓인 국민들의 교육욕구가 해방 이후 일시에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설명해 왔다. 물론 이런 상식적가 보이자, 일제는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심층 연구하여 정책적 전략을 세워 대처하였다. 어쨌거나 우리국민들은 1920년대 말까지도 제도 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민중적 문화교육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3.1독립운동도 교육학적으로는 그런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고 신간회운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1920년대부터의 이른바 문화통치정책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국민들이 누려온 제도교육의 힘보다 강한 문화교육적 영향력에 대한 대응정책이었다고 설명될 수 있다. 일제의 한국문화 조사사업, 한국역사편수 작업, 경성제대 설치, 사범교육체제의 확립.강화정책 등 식민지 정책 전개과정속에 일관되게 추진된 것이 한국인들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 및 생활 습속에 대해 한국인 스스로가 열등감을 갖도록 만들고 일제가 전개하는 제도권교육의 권위에 압도당하도록 의식화하려는 문화통치 전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방 이후 제도교육권에서의 교육열 폭발현상을 설명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일제하에서 억압되어 온 우리민족의 비제도적 교육 역량부분에 대한 관심이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해방 이후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학자 수는 지극히 적었고 그나마도 교육전문가는 전무하였다. 그 결과 해방 이후 교육정책과 행정을 담당한 문교 관료체제가 철저하게 일제 식민지 교육행정체제 때의 인사 및 행정원칙을 답습했을 뿐만 아니라 급증한 각급 제도교육 기관들에서도 철저하게 일제식 제도교육의 인사원칙을 따라 교직원을 충원하였고 교육기관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적잖게 남아 있었을 각 분야의 전통적 장인들이나 선비, 학자들이 우리의 교육문화와 학문전통을 후대에 전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이렇게 해서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에 일제하에서 식민지교육을 박도 자라 초.중등학교 교사들이 대거 대학으로 밀려들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해방 직후는 물론 그 이후에도 줄곧 한국의 교육전문가 집단은 대부분이 학교교육 제일주의라고 하는 식민지시대 이래의 고정된 교육관을 맹신하는 일종의 편집증적 식민지교육 전문가들로 구
鄕歌傳統의 方向과 목 명 :담당교수 :제 출 일 :제 출 자 :序 論신라의 향가는 고려전기까지 지속되었다. 고려 전기대표적인 향가로는 균여의 보현시원가열한수이다. 그 시기는 광종이 지방호족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고려전기의 통치질서를 확립하고자 할 때이다. 균여는 화엄종의 종단을 통일하고 광종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념수립을 담당했다.균여는 고려인으로서의 임무를 자각하고 신라와는 다른 고려의 통치질서를 수립하는데 깊이 관여하면서 향가를 계승했다. 그렇기 때문에 향가를 지은 이유를 역사의 커다란 전환이 이루어 졌어도 고려 전기의 사회와 문화가 신라의 경우와 근본적인 동질성을 지니고 있었던 데서 찾아야 한다.다음장부터 고려시기에 있었던 향가작품과 작품이 지어진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本 論1, 고려향가가 지어진 시대적 배경고려전기의 지배층은 두갈래로서 한쪽은 서라벌의 전통을 이은 문신귀족이다. 이들은 신라 육두품 출신으로서 신라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다가 고려가 들어서자 최고의 지위에까지 오를수 있는 신분을 확득하고 문화창조를 주도했다. 골품제 철폐를 요구하던 오랜 숙원을 이룰 기회를 얻어 신라와 결별했지만 신라문화의 유산과 수준을 자랑해야 새오아조에서 발언권을 강화할수 있었던 것이다.또한쪽은 신라말 지방호족으로서 세력을 키우다가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고 귀족의 신분을 획득한 층으로서 진취적인 기상을 자랑하며, 고구려나 발해의 전통을 내세우기도 했다.그런 사정으로 지방호족출신이라도 문화활동에 참가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신라의 전례를따라야만 했다. 그때 각지방에서는 선종이 일어났는데 신라의 질서를 해체하고 다음시대를여는데 적지않은 작용을 했다.그후 고려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의 확립이 추진되는 시기가 되어서 지방호족세력과 밀착된 선종보다 왕권강화의 이념을 제공하는 화엄종같은 교종이 더 큰 구실을 하게 되었다. 균여는 신라불교의 정통적인 맥락을 계승하자는 움직임을 가진 사람으로서 신라의 화엄종과 함께 향가를 고려의 것으로 이었다.2. 균여의 「보현시원가」균여가 화엄종으로 불교계를 휘어잡으려 했을 때 가장 장애가 되는 쪽은 선종이었다. 신라말에 지방 호족 세력과 관련되어 일어났던 선문구산이 전통을 잇고 고려가 통일을 이룩한 다음에도 계속 민심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통치자 위주의 귀족불교를 이룩하는데 그치지 않고 교리를 펴서 하층에 접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보현시원가는 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그 한 대목을 노래로 풀이한 것이다. 균여는 노래를 짓게 된 연유를 밝힌 서문에서 한문경전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라도 요점을 이해하고 마음에 새겨둘수 있게 하기 위해 사뇌가를 지었다.대개 사뇌란 세상사람들이 희롱하며 즐기는 도구요, 소원이란 보살이 행실을 닦는데 긴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얕은 곳을 건너야 깊은데로 돌아가고,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서 먼 데 이르게 되듯이, 세 속의 도리를 따르지 않고서는 둔한 바탕을 인도할 길이 없으며, 세속적인 말에 기탁하지 않고서는 크고 넓은 인연을 나타낼 수 없다. 이제 쉽사리 알수 있는 가까운 일에 의거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먼 뜻을 깨치도록 하지고, 열 가지 큰 소원을 말한 글에 따라서 열한수의 거친 노래를 짓는다.여기서 사뇌를 세상사람들이 희롱하는 도구요, 세속적인 말로 된 거친 노래라고 한데서 사뇌가 당시에 널리 유행하던 사정을 알아 볼 수 있다. 신라의 사뇌가에는 신심의 발로인 수행을 경전에 의거해서 나타낸 것은 없었는데, 균여는 자기 심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대신 이미 정해져 있는 교리를 담은 교술적 사뇌가를 내놓았다.균여의 사뇌가는 총괄하는 이름은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현시원가라고도 하고, 보현십종원왕가라고도 한다. 열한 수 가운데 열수에서는 화엄경의 한 대목을 순서대로 풀이하고, 마지막 한수에 자기 나름대로 총괄하는 말을 보탰다.노래의 제목과 내용을 차레대로 살펴보자「예경제불가」는 여러부처에게 두루 절하자는 노래이다.「칭찬여래가」는 여래를 칭송하자는 노래이다.「광수공덕가」는 부처공양하는 공덕을 널리 닦자는 노래이다.「참회업장가」는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그르친 바를 참회하자는 노래이다「수희공덕가」는 다른사람이 공덕 닦는 것을 기뻐하자는 노래이다.「청천법륜가」는 법륜을 굴려서 설법해주기를 부처에게 청하자는 노래이다.「청불주세가」는 부처가 항상 세상에 머물기를 바라자는 노래이다「상수불학가」는 항상 부처를 따라 배우자는 노래이다「항순중생가」는 항상 중생의 뜻을 따라주자는 노래이다「보개회향가」는 스스로 닦은 공덕을 모두 다른사람에 돌려주자는 노래이다.「총결무진가」는 두어서 끝없는 사연을 마무리하는 노래이다.삼국유사에 전하는 향가가 14수에 지나지 않는데, 보현시원가는 모두 11수이니 그 비중이 대단하다. 이렇게 많은 잡품을 남긴 사람이 신라때에는 없었다. 월명사난 충담사쯤 되면 노래짓는 것을 업으로 삼았겠지만, 지금까지 전하는 작품은 두편씩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균여는 자기 직분을 시인으로 삼은 사람이 아닌데도 지은 노래를 고스란히 전할 수 있었다.2. 예종의 「도이장가」도이장가를 지은 사연을 살펴보자 예종이 1220년에 서경에 가서 팔관회를 보는데,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말을타고 뛰면서 뜰을 돌아다니더라고 했다. 이상하게 여겨 묻자 좌우에서 "이분들은 신숭겸, 김낙 입니다"하고서 행사의 내력을 설명했다. 그러자 슬픔에 잠겼던 예종은 감격해서, 두 공신의 후예를 묻고서는 한시와 함께 향가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력과 지은 작품이 「장절공유사」라고 줄여서 부를수 있는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님을 온전케 하온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니넋은 가셨으되 몸 세우고 하신 말씀직분 맡으려고 활 잡는 이 마음 새로워지기를좋다. 두 공신이여, 오래오래 곧은 자취를 나타내신저향가는 단가이장이라고 했다. 단가는 토막노래이고 이장은 두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이다.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 부르며 감격을 바로 나타냈기에 사뇌가 형식을 갖출 겨를이 없었고,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단락지우느라고 토막 노래 둘을 만들었던 것 싶다."몸세우고 하신 말씀"은 일어선 거동을 말하고 "직분 맡으려고"이하는 뜰을 돌면서 춤을 춘 것을 그렇게 한 행위라고 보았다는데 근거를 두었다. 마음, 넋, 몸을 나누어서 말해서 주목되는데 죽었으니 넋이 갔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친 다고 했으므로 마음은 죽은 다음에도 남아 있다고 한 것을 알수 있다.도이장가는 안정되지 못한 작품으로 넉줄향가가 아니라 두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두부분사이에 균형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죽은사람을 추모하는 노래의 오랜 전통을 이었더라도 향가 본래의 격식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예종이 지은 벌곡조를 살펴보면 예종이 자기 잘못이나 정치의 득실을 알고자해서 언로를 크게 열었으나 신하들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자 그 노래를 지어 신하들을 풍자했다.비두로기 새다 비두로기 새다 우루믈 우루딪버곡더이힝 난 됴해 버곡더이힝 난 됴해대체로보아 두줄 향가로 부각되었던 민요형식이다. '비두로기'는 비둘기이고 '버곡더'은 뻐꾸기이다. 비둘기도 울음을 울지만 뻐꾸기가 좋다는 말이다. 예종이지은 벌곡조에 견주어 보면,자기 잘못이나 정치의 득실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신하들이 뻐뀌처럼 울어줄 것을 기대했는데 비둘기인양 울고 말았다고 풍자한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