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서론"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여성을 비하하거나 상품화하는 등 반 여성적 내용이 많다. 방송 프로그램은 방송인이 만든다. 방송인은 남자가 주축을 이룬다. 방송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권력이나 자본가도 거의 남성 중심이다. 고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남성중심적이며 여성에 대해서 차별적이다. 당연히 텔레비전에서 여성은 시청자를 자극하기 위한 상품이거나 다수의 여성 시청자를 의식한 장식품일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의 이러한 불공정성은 시정되어야 한다"방송미디어의 이러한 문제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차별적 요소들이 별반 개선되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텔레비전은 전형적인 헤게모니의 장이다. 텔레비전의 주요 내용과 형식은 동시대, 그 사회의 권력관계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 사회의 권력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프로그램의 내용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여성문제에 한정하자면,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실질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이 향상되지 않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차별적 내용은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매체를 통한 가부장적 지배전략 자체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많은 여성 연구자들과 여성단체의 모니터와 비평적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오늘날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이 얼마나 여성 차별적이고 남성중심적인지 이해할 수는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사실 여성차별적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은 남성중심 사회, 가부장주의의 결과이자 이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기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남성들이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경험에 부합되는 의미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위치를 누려온 결과 남성우월의 신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텔레비전은 그 신화를 조직적으로 유포하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프로그램이 양성평등적이며 민주적인 내용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제도개선 노력, 여론의지지 확산 등을 끈질간적인 감각의 경험을 넘어 광대한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확장시키는데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백선기·오은영, "텔레비전과 페미니즘: TV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을 중심으로," 방송연구 1995 겨울호이와 같이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는 현 상황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매스미디어는 여성과 여성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 열풍이 우리나라를 휩쓸면서 우리 문화가 표상하는 여성의 이미지 또한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특히 신세대 혹은 N세대가 커다란 사회적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젊은 층의 사고방식과 감각, 생활태도 등을 상징하는 '새로운 남성상'과 '새로운 여성상', 혹은 '새로운 남녀관계'가 대중문화물에 그려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감지하고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논의와는 별도로 '새로운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텔레비전을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본고에서는 드라마와 방송 저널리즘에 나타난 여성상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1.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여성'새로운 여성'이라는 문화 현상은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 시청자들이 문화산업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젊은 직장여성들과 여대생, 그리고 요즈음 미시족이란 새로운 유행어를 출현시킨 젊은 주부들을 겨냥하여 경쟁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텔레비전 드라마가 그려낸 여성의 모습들이 그 역사적 과정을 통해 변모되어 온 것처럼 오늘날 사회 변화와 함께 여성 등장인물들의 유형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이혼률이 증가하고 가족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갖게 됨에 따라 직장과 가정 및 그 각각에 대한 여성의 관계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유의미하게 변화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것, 혹은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혹은 이 시대 짓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드라마 속의 여성들은 어떻게 그려질까? 최근에 실시된 김명혜, 김훈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우리나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다음과 같다.대체로 우리나라 드라마 속의 여성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그려진다. 즉 사적인 존재(가정 안에서의 아내, 어머니, 딸, 며느리, 연인)와 공적인 존재(사회인으로서의 여성)가 그것이다. 이들의 성격 및 역할을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자.김명혜·김훈순, "여성 이미지의 정치적 함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중심으로", 언론학회, 언론학보, 1996, 가을호, pp.203~248.① 순종적인 아내는 사랑받지만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은 갈등제공자로 귀결된다.② 대체로 사회적인 일을 하는 여자는 부정적으로 그려진다.③ 어머니는 헌신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④ 때때로 어머니는 주책스럽고 허영적인 존재로 그려진다.⑤ 결혼하지 않은 딸은 철부지 여성으로 그려진다.⑥ 결혼한 여성은 효녀로 그려진다.⑦ 순종하는 며느리는 효부형으로 그려진다.⑧ 순종하지 않은 며느리는 악한 며느리로 그려진다.⑨ 유순한 순종형이 이상형으로 그려진다.⑩ 자아실현형의 여성은 악녀로 그려진다.⑪ 친구같은 여성은 매력없는 존재로 그려진다.⑫ 전문직 여성의 묘사는 그들의 애환보다는 성공결과만을 강조한다.⑬ 여성들은 직업보다는 사적인 관계에 주로 몰입한다.이상으로 우리나라 드라마에 등장한 여성들의 역할 및 성격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여성 묘사에는 일정한 이데올로기가 숨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김선남, 매스미디어와 여성, 범우사, 1997, pp.147~153.① 착한 여자형드라마 속의 대다수 여성들은 착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안에서 온갖 차별적인 대접을 받아온 여성들은 남성에게서 혹은 가족에게서 착한 여자가 되도록 길들여졌다. 즉 여성들은 희생을 최고의 가치로 수용받도록 교육받아 왔는데, 이것은 결국 여성의 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확립하려는 여성들로서, 이들은 주로 갈등 제공자가 되며 종국에는 파산, 이혼 등과 같은 불행을 얻음으로서 처벌을 받게 된다.특히 착한 여자는 성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부를 가계의 계승으로 지키기 때문에 여성으로 하여금 순결과 정절을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성생활이란 생식의 목적외에는 불필요한 것임며, 성을 밝히지 않은 것이 미덕인 것으로 내면화된다. 그래서 남성들의 정력은 '남성다움'으로, 여성들의 정숙 혹은 순결은 '여성다움'으로 설정되어 왔고, 이와 같은 성의 이중규범에 의하여 남성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며 능동적인 존재로, 반면에 여성은 소극적이고 의존적이며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결국 착한 여자는 철저하게 정절과 순결을 지향하는 존재이다.② 수퍼우먼형수퍼우먼 콤플렉스수퍼우먼 콤플렉스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관계없이 유능한 직장인 그리고 현모양처 역할을 완벽하게 하려는 신체적·심리적인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수퍼우먼 콤플렉스를 갖는 여성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심한 불안감, 초조감, 죄책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의 원인은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통념에서 기인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은 남녀간의 일이 서로 다르다고 믿는 데서 출발하는데, 남성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여서 사회적 일에, 반면 여성은 감정적이고 유약한 존재여서 가정일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본분은 가사일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직장일을 하더라도 가사일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일을 잘 병행하는 여성상을 지향하게 된다. 즉 좋은 아내와 헌신적인 어머니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직장일도 완벽하게 처리해야만 한다.드라마 속에서 이와 같은 여성상은 최근 들어 매우 두드러지고 있다. 즉 기존에는 오로지 가부장 제도를 내면화하는 이미지로 여성들을 그려왔지만 최근에는 이런 이미지와는 달리 사회로 활발하게 진출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인격체로 인정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순종적이고 의존적이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여성들은 갈등하게 되며, 여성 스스로 성공하는 것이 바로 '여성다움'과 모순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성은 '성공한 삶'과 '여자로서의 행복한 삶' 사이를 스스로 구분짓게 된다. 따라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성공과 성취에 대하여 불안감을 느끼며 심리적인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된다.이러한 형태의 여성상은 드라마에서 아주 흔하게 등장한다. 우리는 신데렐라처럼 되는 많은 드라마 주인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남자들의 선택이나 도움을 통하여 성공(사회적이든 가정적이든)을 하게 된다. 그래서 대다수의 드라마는 남녀간의 사랑이나 결혼문제를 소재로 삼으며 행복을 달성하는 해피엔딩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④ 외모지향형사회적 통념은 여성을 외모로 판단한다. 또한 여성들 스스로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다.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은 곧장 여성들 스스로 인생에 있어서 외모가 가장 중요하고 또한 모든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느끼게 한다. 따라서 선망할만한 아름다운 대상을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칫 외모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열등감으로 둔갑하여 결국 여성 스스로가 자존적 주체로부터 일탈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외모 콤플렉스이다. 다시 말해 외모 콤플렉스는 여성을 사회 속에서 주체적 자아를 적극 실현시키는 능동적이고 개성적인 존재로가 아니라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남성의 부속물로 평가절하하는 매커니즘이다.왜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아름답고 늘씬한 외모를 지니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누구나 가질 것이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여성이란 반드시 젊고 아름답고 날씬해야 한다는 그릇된 관념을 심어준다. 여성들의 외모를 강조하는 의식은 결국 여성 각자를 주체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것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에 기인한다. 외모지향적인 의식이란 여성의 주체적인 성의 표현이 아니다. 다.
염상섭의 '삼대'1. 작가 연보18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남. 본명은 尙燮, 필명은 想涉, 아호는 橫步, 천주교명은 바오로.1907년 대한제국 관립 사범보통학교에 입학. 1909년 관립 사범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보성소학교로 전학. 1911년 보성중학 입학. 이듬해 중퇴하고 일본 유학 떠남. 1913년 동경 마포중학 2학년에 편입. 1918년 게이오대학 문과 입학. 같은 해에 중퇴, 교토 도나항에서 기자생활.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오사카 천왕사공원에서 조선노동자대회를 열어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려 시도했으나 3월 18일 밤에 피검. 투옥. 학업중단.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정경부기자로 임명되어 일본의 정계지도자들 면담과 취재. 귀국하여 6월까지 경무국 출입기자로 근무. 7월 '폐허'동인을 남궁벽, 황석우, 김찬영, 김억, 오상순, 민태원 등과 결성. 정주 오산중학 교사로 재직. 이듬해 처녀작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탈고하여 '개벽'(8-10월)에 연재. 주간 종합지 '동명' 기자로 활동.1922년 단편 '암야'(개벽), 'E선생'(동명), 중편'제야'(개벽)를 발표. '묘지'를 '신생활'에 연재. 이듬해 '조선문인회' 결성에 참여. 주간지 '동명'편집장. '죽음과 그림자'를 '동명'에 '해바라기'와 '너희들은 무엇을 얻었느냐'를 '동아일보'에 발표.1924년 소설집 '남방처녀', '해바라기', '견우화' 간행. 중편 '묘지'가 '만세전'으로 출간. 이듬해 주간지 '동명'이 '시대일보'로 바뀌면서 사회부장직을 맡음.1926년 '신흥문학을 논하여 박영희 군의 소론을 박함'으로 프로문학파와 논전을 벌임. 다시 일본으로 감. 단편 '초연', '조그만 일', '유서'등을 발표. 작품집 '고독'발간. 1927년 '사랑과 죄'를 연재. 단편 '남충서', '밥', '미해결', '두 출발' 발표.1928년 귀국. 장편 '이심'(매일신보) 발표. 1929년 5월에 숙명淑明출신의 의성 김씨 영옥과 결혼. 장편 '광분'(조선일보)연재. '출분한 아내에선일보에 연재. 이어서 '삼대'의 후속편인 '무화과'를 매일신보에 연재. 1932년 장편 '백구'를 연재.1934년 '매일신보'에 입사. '모란꽃 필 때'를 연재. 1936년 장편 '불연속선' 연재.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초빙 만주로 감. 1938년 가족 모두 장춘으로 옮김. '삼천리'에 '자살미수'발표.1939년 '사랑과 죄'출간, 만주 안동으로 이사. 대동大東항건설국 홍보 담당 촉탁으로 근무. 장편 '개동開東'을 만선일보에 연재. 만선일보 그만둠. 1941년 '이심'출간.1945년 광복 후 만주 안동 조선인회 부회장직을 맡음. 귀국함.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맡음. 단편 '첫걸음' 발표.1947년 경향신문사를 그만두고 성균관대학교 강사생활. 1948년 '효풍'(자유신문)연재. 작품집 '삼대', '만세전', '삼팔선'간행. 1949년 단편집 '해방의 아들' 간행.1950년 장편 '난류'(조선일보) 연재. 6.25로 중단. 피난 못 가고 서울에 남았다가 9월에 해군 소령으로 임관, 정훈 장교로 복무. 이듬해 '해방의 아침', '거품', '탐내는 하꼬방', '잭나잎', '순정' 등 발표. 1953년 휴전으로 해군 복무를 끝내고 상경함. 북아현동에 기거.1954년 장편 '미망인'(한국일보)을 발표. 장편 '취우'로 서울시 문화상 수상. 예술원 초대회원에 추대됨. 서라벌 예술대학 초대학장에 취임. '모란꽃 필 때', '그리운 사랑', '신혼기', '취우' 간행. 1955년 장편 '지평선', '젊은 세대' 연재. 이듬해 '짖지 않는 개'로 제3회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장편 '화관' 연재. 1958년 장편 '대를 물려서' 연재. 1960년 단편집 '일대의 유업' 간행. 1962년 3. 1문학상 수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통령상을 받음.1963년 3월 14일 오전 9시,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집에서 직장암으로 별세. 서울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2. 연구사 개관염상섭에 관한 비평이나 연구는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대체로 50년대 이전까지는 소박연구는 60년대 들어 활발한 양상을 띠어 70년대 이후로 계속된다. 그러나 작가론이나 작품 중심의 논의가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단지 김종균의 단행본 연구서 '염상섭연구' 만이 그 자료의 방대함과 체계적 논의 방법으로 돋보일 뿐이다.80년대 이후 염상섭과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개별 작품론을 중심으로 그 질과 양 면에서 크게 발전하고 풍성해진다. 그 중에서 '삼대'에 관한 논고를 살펴보면 김부성의 , 신춘호의 , 강수길의 , 유재엽, 정수영의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염상섭에 관한 방대한 전기적 자료와 문학 세계에 대한 통찰을 아울러 염상섭의 생애와 문학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려 한 단행본 연구서로 김윤식의 '염상섭 연구'가 있다.3. 작품분석1) 시대적 현실 인식염상섭의 '삼대'는 식민지 체제하의 당대적 현실 묘사와 작가의 현실 인식을 한 가정 속에서의 세대간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양상을 통하여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삼대'는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로 내려오는 조씨 일가의 3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물들의 대립과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가계, 재산, 조상, 윤리, 돈, 상속 등 인간 현실의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문제들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한 가정 내에서 신구 시대를 대표하는 가족들의 대립, 갈등과 인간성의 파멸 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한 집안의 몰락상을 통하여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한국인의 삶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삼대'에서 조부 조의관은 구한말 봉건적 지주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집안에서는 철저한 가부장적인 권위로 군림하며, 사회 혼란기를 틈타 금전으로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재화와 가문의 보전에 대한 열망은 세대간의 갈등의 핵심적 원인이 된다.그의 아들 '상훈'은 개화기 시대에 속하는 인물이며, 당시의 무주체적인 인텔리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외국 유학을 통해 서구 문화를 접하고 조의관의 봉건적 가치를 거부함으로써 그로부터 배척당한다. 상훈은 정치적 활동의 좌절과다.손자인 덕기는 식민지세대에 속하는 인물로서, 조부 조의관의 봉건적 가치관과 부친 상훈의 이상주의적 개화의식을 적절히 조화하는 합리적 현실주의자이다. 즉 그는 부르주아 가정의 양심적인 당대 지식인의 전형이다.이들 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일으키는 갈등의 주요 원인은 주로 재산과 상속문제 즉 물질적인 돈에 문제이다. 예를 들어 조의관과 그의 아들 상훈의 재산관리 문제를 둘러싼 충돌은 상훈의 상속권 박탈과 손자 덕기에게로의 이양으로 귀결된다. 이밖에도 이야기의 갈등 양상의 대부분이 물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조씨 일가를 이외에도 '삼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또한 부수적으로 그들이 속한 시대의 이념이나 가치관을 나타낸다. 구시대의 봉건적 제도와 가치관에 얽매어 있는 완고한 보수주의자 조의관, 개인적 타락으로 스스로 파멸의 길로 빠져드는 진보적 개화주의자 조상훈, 조부와 부친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이해하려는 합리적인 현실주의자 조덕기, 목사의 아들로서 스스로 마르크시스트로 자처하고 행동하는 은신적 사회주의자 김병화, 일경에 체포돼 사상적 신념을 위해 자결하는 행동적 마르크시스트 장훈, 독립운동을 하다 순사하는 기독교적 민족주의자인 홍경애의 부친 등이 모두 그러한 인물들이다. 염상섭의 '삼대'가 식민지 시대의 여러 세대나 인물들의 모든 가치관의 충돌을 총체적으로 제시한 '갈등의 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렇게 당대의 다양한 인간군을 포괄적으로 제시한 데 있다고 하겠다.염상섭은 이처럼 '삼대'에서 한 가족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제시를 통해 식민지 시대의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문제를 잘 시사하고 있다.2) 가치중립성의 세계'삼대'의 등장인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 (a)조의관, 조상훈, 조덕기의 3대를 중심으로 하는 조씨 일가, (b)김병화, 피혁, 장훈, 필순 부, 홍경애 부 등 이념적 인물군, (c)매당집과 수원집을 가운데 두고 뭉친 퇴폐적 인물군이 그것이다. (a)와(b)가 중심축을 이루고 (c)가 관여를 하여 작품 전체적인 구성은 어느 한쪽중립성의 태도이다. 이러한 가치중립적 삶의 태도는 염상섭 문학을 일관하는 핵심이다.염상섭 문학의 이러한 특징은 염상섭이 창조한 독특한 인물 유형인 심퍼사이저sympathaizer를 통해서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삼대' 속에는 어떠한 사상운동도 절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덕기와 병화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 둘의 관계는 단지 친한 친구사이일 뿐이다. 병화의 마르크시즘에 대해서 덕기는 어떠한 대립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덕기가 타협이 가능한 상대적 세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사상문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개량주의 입장에 서있는 덕기가 단지 사회주의 입장에 있는 병화를 동정 또는 동조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 아래 놓여있는 가치중립적 삶의 태도를 잘 볼 수 있다.4. 삼대의 문학사적 위치1920년대 우리 문단은 민족주의적 운동에 뿌리를 박은 민족문학 운동과 프로문학의 두 운동이 있었다. 20년대 중반경에 프로문학이 강력히 대두되었고 그와 대응하여 민족문학 운동이 일어났다. 사실 1926년까지만 해도 민족주의문학파는 형성돼 있지 못한 상태였으나 그 이후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최남선 등 기존 문단의 주도적 인물들이 연합세력을 형성하여 프로문학에 대항하게 된 것이다. 이 두 파의 대립은 식민지 상황에서 문인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야기 시켰다. 이 두 문학운동은 단지 예술형식에 관한 견해차가 아닌 민족현실에 대한 대응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그 대립의 문제는 더욱 컸다. 이러한 민족현실에 대한 문제는 정치적인 것으로 연결되어 프로문학은 무력투쟁론을 주장하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 세력과 닿게 되며 민족문학은 3. 1운동시의 33인들 중 일부세력, 안창호, 그리고 민족자본가 등 우익 점진론자들과 이어진다.'삼대'는 이러한 문단적 상황 속에서 발표된 것으로, 민족현실의 일면을 훌륭하게 파헤쳐 보이는 한편 민족현실의 극복방법과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암시하려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여준다.
《마더데레사의 사랑의 삶》199920057 서윤정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다. 13살 때 세례를 받은 기독교 신자였으나 중학교 3학년 이후로 교회에 가 본 적이 별로 없다. 마음속으로는 주님을 영접했지만 요즘은 성전에 나가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께 기도드리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기도도 많이 하고 찬양으로 마음을 주님께 마음을 드렸었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러한 믿음과 열정이 없다. 나의 믿음이 많이 부족하여 지금은 방황하는 '길 잃은 어린 양'인 것이다. 그런 내가 평소 너무 존경하고, 꼭 한번은 그의 생애를 알고 싶어했던 마더 데레사 수녀님. 태어나 성당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테레사 수녀님을 볼 때마다 종교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곤 했다.행동을 통해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큰 사랑과 지고의 선을 보여주는 삶을 살다간 마더 데레사! 그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거리, 처참한 빈민가로 몸을 던져 끊임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삶을 살았다. 도대체 자기희생의 불가사의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마더 데레사의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꽃 봉우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1910년 8월 26일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의 스코프예에서 아버지 니콜라 보야주와 어머니 드라나필의 3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해 인도에서 선교활동 하기로 결심하고 이의 실천을 위해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훈련을 받았다. 수녀가 된 후 그는 학교와 수녀원을 떠나 거리의 빈민굴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돕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빈민굴에서 학교를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도시를 휩쓰는 위험과 질병과 고통에 맞서 용감히 싸웠고, 수녀들과 함께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하였다. 이 선교회에 속한 수녀들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더럽고 누추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랑을 심어주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였다.한번은 테레사 수녀님이 계셨던 캘커타에 다른 수녀님께서 도우러 가셨는데 그 수녀님은 그곳 사람들을 너무도 측은히 여겨 안쓰럽게 쳐다보셨다. 그걸 보신 테레사 수녀님은 그 수녀님을 호통치시며 '그렇게 불쌍하게 생각할 거면 당장 여길 떠나라'고 하셨다. '이 곳 사람들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뭐가 불쌍하단 말이냐.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곳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하시며 결국 그 수녀님을 다시 돌려보내셨다고 한다.이 얘기는,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너무나 친해진 한 친구의 어머니께 내게 해 주셨던 얘기다. 처음으로 마더 데레사가 나의 생각에 변화를 주었음을 느끼게 해 준 일화였다. 그 친구의 동생은 내 동생과 동갑인 20살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남학생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뇌성마비를 앓은 장애인이다. 친구에게 그런 동생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어떡해…"였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아무 문제도 없고 괜찮은데 왜 그러냐며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나는 측은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들은 얘기지만 그런 내 모습에 참 많이 서운했다고 한다. "내 동생도 그냥 착하고 사랑스런 사람일 뿐인데 사람들은 우리가족을 안됐다고 생각해. 단지 몸이 좀 불편할 뿐 그 사람들하고 다른 건 없는데 말야… 제일 싫은 게 사람들이 내 동생을 무슨 벌레라도 보듯 하는 거야. 똑같은 사람이고, 오히려 자기들보다 훨씬 순수한데…"라며 눈물을 짓던 친구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솔직히 그 동생을 직접 보기 전까지,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동생과 맘이 통할 때까지 친구네가 평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늘 그 동생생각을 하면 가슴 한쪽이 시리곤 했었으니까. 솔직히 우리 가정에 평범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었고, 그런 면에서 조금은 우위의 입장에서 그 친구네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친구 집에 처음 놀러갔을 때, 동생을 불쌍히 여기며 더 잘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에서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나의 쓸데없는 측은지심을 읽으셨던 것 같다. 그때 어머님께서 내게 위의 테레사 수녀님의 일화를 말씀해 주셨다.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아끼는 친구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 동생의 눈에는 보통의 20살 정도의 남학생들이 갖지 못하는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고, 미소에는 가족들의 사랑에서 우러나는 따스함이 있었다. 나는 왜 안됐다는 생각에 가려 저 맑은 영혼을 알지 못했는지… 내 자신이 너무도 어리석게 느껴졌다.그때는 사랑으로 대하는 법을 잘 몰랐었던 것 같다. 정말 불쌍한 건 그 진리를 잘 몰랐던 나였음을 깨달았다.테레사 수녀는 그의 책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구려가요와 백제가요 조사고구려가요삼국 중에서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고구려는 당시의 위(魏) 오(吳)로부터 많은 문물과 한적(漢籍)을 받아들여 한문학(漢文學)을 형성하였는데, 시가도 한문학의 하나로 발달하였다. 현재 남은 것으로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와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가 있고, 작품의 유래만 전하는 것으로는 《내원성가(來遠城歌)》 《연양가(延陽歌)》 《명주가(溟洲歌)》 등이 있다.·《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을지문덕이 지은 것으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오언고시라고 삼국사기에 전한다. 수 양제가 우중문, 우문술 두 장군을 휘하에 두고 132만 대군을 이끌고 612년(고구려 영양왕 23년) 고구려를 침범했을 때, 하루에도 몇 차례 거짓으로 패하여 적군을 유인하던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적군을 대파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이 때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보낸 한시로서, 적장에 대한 거짓 찬양으로써 우롱하고 있는 고구려 장수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도다.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 그대 전쟁에 이겨 이미 공이 높으니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황조가(黃鳥歌)》BC 17년(유리왕 3)에 된 노래로서, 《삼국사기》에 실려 전하는 유래와 한역가(漢譯歌)는 다음과 같다.유리왕은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화희(禾姬)와 치희(雉姬) 두 여인을 계실(繼室)로 맞았는데, 이들은 늘 서로 쟁총(爭寵)하던 끝에 왕이 기산(箕山)에 사냥을 가 궁궐을 비운 틈에 화희가 치희를 모욕하여 한(漢)나라로 쫓아 버렸다. 왕이 사냥에서 돌아와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뒤를 쫓았으나 벌써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왕이 탄식하며 나무 밑에서 쉬는데, 짝을 지어 날아가는 황조(黃鳥:꾀꼬리)를 보고 감탄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실연의 아픔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의탁하여 우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짤막한 한 편의 노래이지만 그 속에 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작가의 심경이 잘 표현되어 있다.翩翩黃鳥 꾀꼬리 오락가락雌雄相依 암수 서로 노니는데念我之獨 외로워라 이 내 몸은誰其與歸 뉘와곰 돌아가랴·그 밖의 노래《내원성가(來遠城歌)》: 내원성은 정주(靜州) 물 가운데 있는 성 이름인데, 오랑캐가 귀순해 오면 거기 머무르게 했으므로 성 이름도 멀리서 왔다는 뜻을 가진 말로 정하고, 노래를 지어서 기념했다고 한다.《연양가(延陽歌)》: '연양'은 연산부(延山府)라고 밝혀져 있다. 오늘날의 평안북도 영변인 연산부 또한 고구려의 옛 땅이며 통일신라의 영역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곳이다. 노래의 사연은 어떤 사람이 남에게 쓰이는 바 되어 죽기를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다가 자기 신세를 나무에다 비해서 노래했다는 것이다.《명주가(溟洲歌)》: 지금의 강릉인 지역 이름을 노래 제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이 노래도 위의 둘과 같다. 이 노래는 노래에 따르는 사연이 다른 것들보다 더 자세하게 적혀 있다. 어느 서생이 명주에 갔다가 양가집 처녀와 사랑을 맺고 과거를 해 입신한 다음 부모에게 청혼할 것을 기약하고 서울로 갔다. 그 처녀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을 수 없게 된 위기에 봉착하고, 서생은 물고기의 뱃속에서 나온 편지를 통해 그 사정을 알고 급히 달려가 그 노래를 불렀다 한다. 처녀의 부모는 기이한 일에 감동되어 서생을 사위로 맞았다고 한다.백제가요현재 가사가 전하는 것은 《서동요(薯童謠)》와 《정읍사(井邑詞)》는 둘뿐인데 《서동요》는 실제로 백제의 가요인지 의심스러운 데가 많으며, 《정읍사》도 후기 작품으로 추측된다. 《무등산가(無等山歌)》 《방등산곡(方等山曲)》 《선운산가(禪雲山歌)》 《지리산가(智異山歌)》 등은 곡명과 그 유래만 《고려사악지(高麗史樂志)》에 전한다.·《정읍사(井邑詞)》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구백제(舊百濟) 지방의 노래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내용은 정읍현(井邑縣)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밤길에 위해(危害)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나타낸 노래이다. 형식은 6행 1연이며, 조선시대에 궁중음악으로 쓰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 권5에 실려 전하는 가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Ⅰ. 서 론1. 작가 이청준(李淸俊 1939∼ )이청준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한때 《사상계(思想界)》를 비롯한 문학잡지사에서 근무했다. 1965년《사상계》신인작품 모집에 단편소설 이 당선되어 문단에 진출했고, 이후 단편 , , , 등을 발표하여 작가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68년 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계속해서 , 등을 발표하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을 묘사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가리어진 진실을 탐색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밖의 주요작품으로 , 등이 있으며, 창작집으로「별을 보여드립니다」「예언자」「당신들의 천국」「자유의 문」「서편제」등 중·장편집이 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창작문학상·이상문학상 등을 받았다.2. 이청준의 작품세계이청준의 작품세계는 하나의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향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경향이라고 하는 이유는 물론 그의 작품의 소재가 다양하다는 것도 포함된다. 그의 작품 속에는 6.25전쟁이라는 충격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활 쏘는 사람이나 매잡이나 항아리 굽는 사람과 같은 장인의 이야기도 있고 오늘날의 단순한 월급쟁이 이야기도 있으며 소설을 쓰거나 잡지사 기자를 하는 지식인의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소재의 다양성에 기여한 것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겠지만 그리고 바로 그 소재의 다양성이 필연적으로 주제의 다양성을 불러일으키는 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의 소설이 여러 가지 경향을 띠고 있다고 하는 것은 각각의 소설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이 다양하고 따라서 그 추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그래서 삶이나 문학에 대해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도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이러한 다양성은 작가 자신이 세계를 보는 관점이나 자신의 삶을 보는 관점의 다양성에서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작가 자신이 세계나 삶에 대해서 이미 기성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가 목격했던 현상은 고향 마을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하나의 미덕으로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작가는 이 부끄러움을 창작원리의 중추적 요소로 삼아 부끄러움의 마음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되짚고 자기 결함을 찾아냄으로써 반성과 부정이라는 이청준 소설의 특질이 형성되어 나간다. 그러나 중학교 입학과 함께 고향을 떠나 광주로 나가게 되면서 그는 고향의 가난을 열등감 속에서 의식하게 된다.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까지 줄곧 물질적인 궁핍에 쫓기면서 가난에 대한 자의식은 깊어만 갔다. 서울대 독문과 재학 중이던 1965년 《사상계》의 신인 문학상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등단한 작가의 초기 작품 세계에는 이러한 의식들이 잘 나타나 있다. 그 외 그의 작품 세게는 현실을 관념적으로 인식하여 독자와 함께 답을 찾아가는 난해한 소설('쓰여지지 않은 자서전', '조율사', '소문의 벽', '황홀한 실종'), 언어에 대한 의미 탐구(연작소설 '언어사회학 서설', '남도 사람'), 자신의 세계에서 진실한 가치를 추구하는 장인의 삶('줄', '매잡이', '과녁')을 다루고 있다. 다소 관념성이 강해 이해하기 힘든 작가라는 평도 있지만 최인훈과 함께 한국 현대소설사에서 가장 지적인 작가로 기록 될만한 개성 있는 작가이다.그는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 문학상을, '잔인한 도시'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의 문학적 탐험은 8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긴장을 잃지 않고 있다.이청준에게 있어 글쓰기는 남이 갖지 않은 자기 의식을 기초로 개인사에서의 원죄의식, 또는 고향에 대한 귀향적 속성, 그리고 소멸해가고 소외 받는 것에 대한 구원의 길 등을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다양한 속성의 주제와 글들을 보여준다. 그런 이청준의 유년시절은 불운하다. 책 읽기를 즐기기는 했지만,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과 6·25라는 전쟁은 작가에게 의미심장한 흔적과 자취를 남겨놓고 있다. 또한 대학 초년 시절에는 4·19와 5·16을 체험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인데, 사회적인 뜻에서 말하는 자유의 상한선을 보여준오묘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마련해 놓는다.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60년대에 발표된 그의 소설 , , 등과 같이 전통적인 장인들의 세계를 그려낸 소설들에서도 어두운 현실세계를 거부하고 그 세계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이청준의 작가 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청준이 1968년에 《신동아》에 발표한 소설 를 통해 이러한 작가 의식을 살펴보겠다.Ⅱ. 본 론1. 줄거리지난 봄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만 민태준 형은, 그가 이승에 있었다는 흔적으로 단 한 가지의 유물만을 남겨 놓고 갔었다.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별로 값지지도 않은 몇 권의 대학 노트로 되어있는 비망록이었다.주인공인 나는 민태준 형의 자살에 접하여 당황한다. 결핵을 앓고 있던 형은 지난 해 봄 갑자기 단 한 가지 유물만 남기고 세상을 떴다.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별로 값지지도 않는 몇 권의 대학 노트로 되어 있는 비망록이었다. 형의 생전에 나는 형으로부터 여행 비망록의 한 부분을 본 바가 있었다. 그것은 전라북도 창원에 있는 어느 지방에 살고 있는 매잡이) 매잡이란 무엇인가 ?작품 속에 나타나 있는 대로 살피면 - 매를 잡는 사내. - 사전에는 없음. (현지에서는 라고 함. ) 매잡이의 는 잡는 이 라는 뜻이기보다는 민형이 참고로 보인 것처럼 잡는 것. 즉 의 에 가까운 듯. 매잡이 사내는 언제나 매를 팔뚝에 올려 앉히고 다녔다.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돈과 취재 요령을 적은 메모지를 주며 그곳을 취재해 보라고 권하였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첫 번째 '매잡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다. 이 작품에는 이렇게 첫 번째 '매잡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 경위와 내용을 소개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두 번째 '매잡이'가 된다.나는 민태준이 준 소설의 소재가 적인 메모지를 들고 민태준이 매잡이에 대하여 취재한 마을을 찾아 벙어리인 중식이라는 소년을 찾아간다. 중식은 쉰 살짜리 매잡이인 곽돌(郭乭)과 같이 '번개쇠'라는 매로 꿩사냥을 하는 소년이다. 나는게서 매 값을 구한 곽돌은 매를 가지고 나온 친구에게 매 값을 주었으나 받지 않고 가 버린다. 곽돌은 매 값으로 술을 마시고 매를 가지고 와 중식이네 닭을 먹인 후 날려보낸다. 곽돌은 그 뒤에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지 않고 죽는다. 한편 날아간 매는 다시 중식의 손에 돌아오고 나는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다. 얼마 지나 세 번째의 유언에 따라 봉투를 뜯어 본 나는 깜짝 놀란다. 그것은 완벽한 '매잡이' 소설이었다. 이렇게 해서 '매잡이'란 세 편의 소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의문의 소설가인 민형은 완벽한 '매잡이' 소설을 작성해 놓았던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민형의 취재 노트에서 왜 석 장이 찢겨졌는지 이해하게 된다.이번에 또 소설을 쓰게 된 나의 관심은 아무래도 민형과 그의 소설에 대한 쪽이며, 곽서방과 소년을 포함한 매잡이의 풍속 자체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형에게서처럼 나에게 절실한 나의 풍속이 될 수는 없었다. 나 자신이 이미 그렇게 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2. 액자소설로서의 '매잡이'액자소설(額子小說)은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끼여있는 소설을 말한다. 한 작품이 『내부 이야기』와 『외부 이야기』로 이루어지는 구성 방식이다.『내부이야기』는 이야기 속의 핵심을 가리키며, 『외부이야기』는 이를 둘러 싼 이야기로서 후자의 액자가 된다. 액자식구성은 시점이 바뀌며, 특히 내부 이야기는 신빙성을 위해 서술자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사건 자체를 객관화한다. 외부 이야기가 액자의 역할을 하고 내부이야기가 핵심을 이룬다. 내부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이 기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이 작품은 사라져 가는 전통을 고집하다가 죽어 가는 매잡이 곽돌의 기이한 삶을 그리고 있는데, 액자 소설의 구성 방식을 통해서 그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가 액자 양식을 택한 것은 밖의 민태준과 안의 매잡이의 삶이 유사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이 작품에서는 서술자인 '나'가 첫 번째 '매잡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 경위와 내용을 소개하가능케 해주는 장치·지난 봄 소설의 소재가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민형으로부터 엽서를 받고 찾아가니 여비까지 주면서 매잡이를 만나 보라고 함 그러면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함.·나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찾아감, 거기에서 벙어리 소년 중식을 만남, 그는 경계의 눈빛이 뚜렷하나 매를 가진 소년임, 그를 통해 서영감네 헛간에서 입을 다물고 죽어가고 있는 곽돌(매잡이)을 만남, 중식을 통해 곽돌의 사연을 들음.②곽돌은 매잡이라는 옛 관습을 지키는 최후의 사나이·곽돌은 버버리 한 놈을 데리고 사냥을 나섬-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냥을 했으나 지금은 곽서방은 마을의 천덕꾸러기였다. 그러나 꿩을 잡기는 고사하고 매마저 날아가 버렸다. 사실 매잡이들의 단골 주인인 서영감조차도 지금은 곽돌을 '요순 세상의 선비로군'하고 나무라고 자신에게 빌붙어 사는 곽돌을 싫어함.·원래 매가 날아가 버리면 매는 그 주인에게로 틀림없이 돌아온다. 이때에는 매잡이는 매값을 주거나, 그 마을에서 사냥을 해 주는 것이 관습이었다. 곽돌은 서영감에게 때를 서서 매값을 구해서 장터로 나감, 매를 가져온 친구는 매값을 받기는 고사하고 술값까지 치르고 아직까지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곽돌을 나무람.·그 날 술을 마시고 돌아온 곽돌은 입을 다물고 음식을 끊고 누워 있음. 나는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소년과 수확없는 사냥을 함.·어느 날 곽돌이 입을 열었다고 중식이 나를 붙잡고 곽돌에게로 가니 곽돌이 "민 선생을 만나지요, 내 이야기를 전해 주시겠소? 민선생은 좋은 사람입니다. 아마 민 선생은 짐작할는지 모르지요"라는 말을 하고 입을 다물고 죽음.③서울로 돌아온 나는 민형의 죽음을 접함. 오늘 아침 민형이 남긴 매잡이 소설을 발견함.·민형과 곽돌은 이익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장인의 세계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죽는다는 것은 장인정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 힘듦을 보여줌.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청준은 소설의 액자식 구성을 통해 허위의 세계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