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말 대한민국의 중심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용산 새집으로 이사하였다.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 속에 이제야 번듯한 중앙 박물관을 가지게 된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훌륭히 지어져 개관하였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된다.세계 각국을 떠올릴 때 영국하면 대영박물관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프랑스 하면 루브르 박물관이 떠오르며 해외여행 시 꼭 찾는 곳이 각 국의 중앙 박물관이다. 각 나라의 박물관은 국가의 역사를 간직한 국가의 사랑방인 것이다. 이제 새롭게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이 대한민국의 사랑방으로서 한민족의 5000년 이야기를 나누게 될 사랑으로서 훌륭히 역할 하기를 기대하며 지난 일요일 용산의 새 박물관을 찾았다.1995년 일제의 잔재인 조선총독부 건물에 자리하고 있던 중앙박물관은 민족의 자존심과 긍지를 세우고자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고 10년간 경복궁의 작은 공간을 빌려 쓰다가 비로소 이전하게 된 새 박물관이 위치한 곳은 과거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곳이어서 더욱 숙연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대한민국의 중심 수도 서울, 그 넓은 땅에서 과거 외세의 흔적 들이 남아 있는 장소에서 또 다른 상처를 가진 땅으로 이전하게 된 박물관이 우리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용산이 어떤 땅이었던가? 멀리 임진왜란 때 일본 군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러일 전쟁 때 일본군이, 그 이후 다시 미군이. 한민족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여 수 백년 역사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땅이 아니었던가? 이제 민족의 상징인 박물관이 이 땅에 위치하게 되었으니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는 그 땅에 다른 외세가 들어서지 않게 해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 하며 박물관에 들어섰다.개인적으로 아주 어렸을 적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중앙청에 위치해 있던 중앙 박물관을 관람한 이후로 처음으로 국립 중앙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박물관 관람은 나를 무척 흥분되게 하였다. 특히 중, 고등학교 시절 책에서 보던 국보, 보물급 유물 들을 직접 본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흥분과 환희를 자아내었다.박물관이 너무 커서 짧은 시간 모든 유물을 다 둘러보지는 못할 것 같아서 다른 유물은 간략히 감상하고 책에서 보았거나 많이 보아온 유물들 그리고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끄는 유물 앞에서 오래 머물며 감상을 하였다. 고고관에서 나의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유물은 백제금동대향로이었다. 중학교 시정 역사 교과서 표지로 나왔던작품인데 그 당시 사진을 보면서는 이 작품이 훌륭한 유물이겠거니,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겠거니 하였지 이렇게 감탄이 나오게 할 줄은 몰랐었다. 이 작품 앞에서 나는 그 아름다움에 그냥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진정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란 말인가?무늬 하나하나의 섬세함과 생각보다 큰 규모가 나를 압도하였고 향로의 용도가 귀신을 달래고 악을 막는 것이 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왠지 모를 무서움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다음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금관일 것이다. 신라시대 귀족의 금관이라 여겨진다고 설명 되어 있는 이 금관은 당시 봉건 왕족의 권력을 상징하는 결정체일 것이다. 어린 시절 동화나 만화에서 보던 유럽의 왕들이 쓰던 관과는 많이 다른 한국의 멋을 가진 왕관. 일단 순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더 이상 설명 할 것이 있을까?저 정도의 금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금속공예가(?) 가 오랜 시간 동안 최고의 정성을 다하였을 것이다. 당대 기술의 최고 결정체이지 않겠는가? 저 관을 쓰고 이승에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관의 주인이 이제는 뼈마저 남지 않고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삶의 허망함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전시관을 옮겨 역사관에서는 과거의 국가의 형태와 생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각종 고서들은 내가 직접 읽지는 못하였지만 과거 사람들의 열심히 살던 모습을 전달해 주는 듯 했다. 현대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의 발전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고 있듯이 과거의 사람들도 모습은 많이 달랐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외국과 외교도 하고 항해도 하였으며 건물을 짓고, 상거래하고 각종 행정 적인 업무도 하였었다. 내가 없던 아득히 먼 과거에도 이 땅 위에서 누군가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나를 숙연하게 하였다.미술관Ⅰ의 서예실에서는 석봉 한호선생과 추사 김정희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글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컴퓨터 사용의 증가로 글씨를 잘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과거 우리의 조상들께서는 글씨가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 하여 글씨연습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특히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가 좋았는데 강하면서도 부드럽고전체 군형이 이루어진 선생의 글씨는 굳이 한문을 해석하지 않아도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위의 작품은 “묵소거사 자찬”으로 선생의 호인 묵소거사에 대해 스스로 찬을 쓴 글이다.'침묵을 지켜야 할 때 침묵을 지킨다면 그 때의 상황에 적절히 처신함이요, 웃어야 할 때 웃는다면 적절하게 처신함이라네. 옳고 그름을 결정할 시간에도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 가를 판단할 때에도 행동하면 자연스런 이치를 어기지 않고 고요히 있으면 인정을 거스르지 않는다네. 침묵할 때 침묵을 지키고, 웃을 때 웃는다는 의미는 대단하구나.'라는 내용의 글인데 나에게도 무엇인가 교훈을 주는 내용이었다.회화실에서 내 발길을 붙잡은 작품은 단연 김홍도 선생님의 풍속화였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지내던 작품들이며 간혹 티비 광고에도 사용되어 친근한 작품이다. 더욱이 그림의 내용 또한 서민들의 모습을 솔직히 있는 그대로 그린 그림이라 더욱 가깝게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잘 알고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기쁨이었다.미술관Ⅱ 에서는 청자실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도자기에는 분청 사기, 백자 같이 다른 훌륭한 작품들도 많지만 그 중 고려청자가 단연 으뜸이 아닌가 한다. 옆의 청자 연꽃넝쿨무늬 매병(靑磁 陰刻 蓮唐草文 梅甁) 은 고려 청자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국보 97호 이기도 한 이작품은 완벽한 곡선미를 자랑한다. 나의 미국인 친구 중 한명이 말하기를 유럽에서도 많은 도자기를 보았지만 이처럼 특이한 모양의 도자기를 본적은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고려청자의 가장 큰 자랑은 유약을 발라 만들어낸 특유의 빛깔일 것이다. 전시실에서 실제로 본 청색 빛깔은 어찌 이리 고운 색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찔하였다. 청자를 보며 한국 사회가 청자 빛처럼 맑고 투명하기를 소원했다.
조선 후기 미술의 특징Ⅰ.시대 개관 : 조선 후기(약 1700년∼약1850년)주요 임금 : 영조(재위1724~1776), 정조(1777~1800)Ⅱ.조선 후기 사회 ? 문화의 특징:1.사회? 문화의 전반적 특징-농민들의 경제력 향상, 사회의식의 확대, 사회적 지위의 향상 → 서민 문화가 크게 발 달 (판소리, 민화, 탈놀이 등등)-중인층의 활발한 문예활동-경제적인 변동으로 상업의 발달과 상평통보 가 널리 유통-사회적으로는 모내기법과 골뿌림법이 크게 발달-실학사상의 발전(실학자들이 토지 제도, 신분 제도, 상공업, 과학 기술, 조선의 역사,지리, 국어, 자연 등 각 분야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함(실학사상은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대표적 실학자: 유형원{반계수록}, 박제가{북학의}, 정약용{여유당전서}, 홍대용{의산 문답, 지동설, 담헌서}등)→위의 특징들이 조선 후기 미술 발전의 배경이 되므로 매우 중요2.서민 문화의 특징(1)내용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묘사,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신랄하게 고발(2)주인공 서민적인 인물(3)작자 서민인 경우도 있음Ⅲ.조선후기 미술1.회화(1)특징:-조선시대 후기는 우리 회화사에 있어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시기라 할 수 있 음(즉 다양한 화풍의 발전 : 진경산수화, 풍속화, 민화, 서양 화법의 수용)-초기의 회화가 송, 원대 회화의 영향을 바탕으로 한국적 특성을 형성했던 데 반하여, 후기의 회화는 명, 청대 회화를 수용하면서 보다 뚜렷한 민족적 자아의식을 발현-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선에 의해 이룩된 진경산수화의 완성과 김홍도에 의한 풍속화 의 발전 등 민족의식의 발현에 의한 새로운 화풍의 형성을 들 수 있다.-새로운 화풍의 발현은 앞에서 언급한 조선 후기의 사상적 발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조선 후기 특히 영조, 정조 연간에 부흥한 실학사상(實學思想)의 발전은 문화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2)조선 후기에 발달한 화풍1)진경산수화(조선 후기에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가)정의진경(眞境)이라고도 한다. 이는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의 전통을 바탕으로한 새로 운 화풍을 창출한 가운데 발달하였다. 종래의 형식화된 창작태도에서 벗어나, 현실 을 통해 고의(古意)와 이상을 찾고자 한 당시의 사상적 동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 다. 또 한국의 산천을 주자학적(朱子學的) 자연과 접목시키고 자 한 문인 사대부들 의 자연친화적 풍류의식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림의 소재는 전대와 마 찬가지로 명승명소(名勝名所)와 별서유거(別墅幽居)·야외아집류(野外雅集類) 등이 주 류를 이루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금강산과 관동지방, 한양 근교의 경관이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나)발전-조선 중기에 유행하였던 절파 화풍이 쇠퇴하고 중국에서 유입된 화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심사정, 강세황, 이인상 등은 중국 남종화법을 수용하여 나름대로의 필법을 구사해 개성 있는 화풍을 형성하였다.)-실경 산수화의 전통과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우리의 산천을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해 내는 진경산수화가 정선을 중심으로 발전 (우리의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실적 으로 그림)다)의의실경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려 하였던 근대지향적인 의의를 지님라)대표작-인왕제색도(견재 정선)이 작품은 만년에 접어들어 더욱 완숙해지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후 막 개이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인왕산(仁王山)의 모습을 실 감나게 묘사한 이 그림은, 물기가 남아 있는 거대한 암벽을 진한 먹을 중첩시켜 표 현함으로써 괴량감(塊量感)을 나타내었고, 산허리 부분과 그 아래 계곡은 아직도 연무(煙霧)에 싸여 있어 바위산의 육중한 골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인왕산도(강희언)18세기 작. 종이 바탕에 수묵과 담채. 36.6×53.7cm. 개인 소장. 강희언은 조선 후 기의 대가 정선(鄭?)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이 그림에도 그의 화풍을 따른 흔적이 엿보인다. 오른편 상단의 "暮春登桃花洞望仁旺山"이라는 화제가 말해주듯 자하문 근처의 도화동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전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인왕산의 특징인 암 벽보다도 계곡의 선을 더 강조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사실주의적인 사생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그리고 계곡의 마을들과 성벽·능선·바위 등의 경물처리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원 근법과 투시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일 뿐만 아니라 조선 후 기, 정선의 영향을 받은 정선 일파의 실경산수화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 고 있다.-도봉산도(김석신)는 인수봉을 중심으로 도봉산 전경을 담고 있다. 산만한 대각선 구도, 소나무 묘법이나 바위 표현은 겸재의 필법에 근거를 두었고 계곡의 간략한 물결 모습이 나 각이 진 바위 표현에는 단원의 영향도 엿보인다.먼 곳의 과장된 암봉은 마치 금강산의 개골산인 듯한 인상인데 이 역시 겸재의 수직준 법이 변모한 표현법으로 정수영의 필치와도 흡사하다. 전체적으로 필치가 거칠고 느슨 하며 바위와 소나무의 농묵 사용이 어색하기 하지만 소방한 느낌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2)풍속화-한껏 고양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우리의 생활상을 사실적이고도 해학적으 로 다룬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비롯한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짐-대표적 화가와 작품:가)단원 김홍도: 산수, 인물, 풍속, 신선등에 숙달한 천재적인 화가이다. 그의 인물 풍 속도는 이조 회화의 근대적 전환을 의미하는 현실 생활의 묘사를 추구하였으며, 특히 준찰구염(준擦句染), 몸통과 옷무늬의 필법을 창시하여 조선 회화의 혁신을 가져왔다.-서당:단원 김홍도의 대표적인 풍속화각각 의 인물들의 감정이 실감나게 잘 드러나 있어서 설명을 굳이 듣지 않 아도 어떤 상황과 분위 기인지 금방 알 수 있게 해준다.정면이 아닌 사선구도의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 역시 배경은 여백으로 처리되었으며, 굵은 선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옷주름등에서 김홍도 특유의 필치를 엿볼 수 있다.-벼타작:농부들이 볏단을 통나무에 내려치며 타작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일 하 는 농부들의 역동적인 동작과 얼굴 표정에서 고된 노동의 피로감보다는 함께 노동요를 부 르며 일하는 신명이 느껴진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옆에서 갓을 비껴쓰고 담뱃대를 물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양반의 모습은 그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을 것이다.나)혜원 신윤복: 조선사회의 근대적 의식을 발현하는 풍속을 사실적이고 간결한 선묘 와 구도로써 그렸다. 그는 주로 부녀자들이 즐겨 노는 에로틱한 장면을 잘 묘사 하였다.다)장승업: 대담함 몰골법과 여운있는 속필, 창윤한 먹색으로 단원 이후의 침체기를 부흥시킨 뛰어난 화가이다.3)서양 화법의 수용과 민화의 발전가)민화: 상업의 발달로 인해 부유한 상인 계층이 늘어나면서 발전한다. 즉 전반적으로 생활이 향상됨에 따라 일부 계층에서만 향유되던 그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됨에따라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수단으로 민화 양식이 발전하게 된다.ㄱ.소재 자연물, 농경, 무속 등ㄴ.민중의 기복적 염원과 미의식 표현ㄷ. 예술적 감상용이 아닌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ㄹ.장식장소와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는데 이를 화목(畵目)별로 분류하면 화조영 모도(花鳥翎毛圖)·어해도(魚蟹圖)·작호도(鵲虎圖)·십장생도(十長生圖)·산수도(山水圖)· 풍속도(風俗圖)·고사도(故事圖)·문자도(文字圖)·책가도(冊架圖)·무속도(巫俗圖)등이 있다.나)서양 화법의 영향: 강세황, 김수철2.도기조선 시대의 미술에서 회화와 더불어 한국적인 특색을 두드러지게보여주는 것은 말할 것 도 없이 도자기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청자에서 변천된 분청사기와 희고 고운 백자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들 분청 사기는 고려시대의 청자와는 달리 서민적이고 즉흥 적이며 소박한 특징을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조선왕조적인 특성이 담뿍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분청사기는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자취를 감추게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 로 세종조를 전후한 초기의 백자는 한결같이 균형이 잡히고 때깔이 곱고 단아하며 초기 에는 어기로만 사용되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차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작품 설명: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 국보 294호하나의 작품에 진사(辰砂)·철사(鐵砂)·청화(靑華)를 함께 곁들여서 장식한 한국 도자기는 이것 외에는 거의 예가 없다.(1) 청화백자 흰바탕에 푸른색깔로 그림을 그려 넣은 것-백자에 푸른색을 내는 천연 코발트 안료로 무늬나 그림을 그려 구워낸 것이 청화 백 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5세기 중엽부터 청화 백자를 굽기 시작했으나 코발트 안료 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가져온 것을 중국을 통하여 수입하여 썼다. 그래서 회청(回靑) 또는 회회청이라 부른다. 따라서 조선 시대 전반기에는 이 회청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 실적이고 회화적인 무늬로 장식했는데, 후기에는 토청(土靑)이 개발되고 회청의 수입 이 원활해져 무늬가 일부 지나치게 번잡스러워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후기의 청화백자 에는 진사나 철화를 함께 사용하여 색깔을 내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흰색과 청색의 간결한 무늬가 조화를 이룬 청화 백자에 대한 기호가 매우 컸는데, 이것은 선 비 문화의 특징으로 지적되기도 한다.17,18세기에 크게 발전 한다.*대표작청화 백자 매죽문 항아리 : 15세기 중엽, 높이 39.9cm, 국보 제 219호==이 작품은 그릇의 모양, 유약, 문양의 배치와 표현 등 조선 초기 청화백자의 전형적인 예이다. 비스듬하게 경사진 주둥이에서 몸체의 윗부분에 이르러 한껏 부풀었다가 허리 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고 밑바닥이 반전되는 것은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항아리 형태이다. 주둥이에는 원과 연꽃을, 어깨와 그릇의 아랫부분에 환한 연판 문양을 넣은 것은 원나라 도자기에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연판 사이에 매화와 대나무를 그려 넣은 것은 한국화풍이다. 이런 회화는 화원의 솜씨로 보인다. 이 항아리는 조선 초기 청화백자가 중국 도자 양식을 따르다가 한국화되는 과도기적 양식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
1.분쟁 해결제도의 운영,개관WTO-상호간의 협의에 의해 통상분쟁이 신속히 해결되는 것을 선호한다. 상호간 해결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독립적 제 3자, 즉 패널이 분쟁해결을 담당하게 된다.-WTO 분쟁해결 제도 전반에 대한 운영은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분쟁 해결기구 (DSB)에서 관장한다.ICJ(국제사법재판소)-ICJ는 유엔의 사법 기관이고 ICJ 규정은 유엔 헌장과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고 있다.-유엔 헌장은 국제 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관한 주된 책임을 안정 보장 이사회에 맡겼다.-안보리는 모든 유형의 분쟁을 조사하도 그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지만, 법률적인 분쟁사안일 경우에는 분쟁 달사국들에게 우선 ICJ에 의뢰할 것을 권고 (유엔 총회도 법률 분쟁 사안에 있어서는 ICJ에 권고적 의견 요청)-대상: 영토 및 국경 분쟁, 국가 주권 문제, 외교관 및 영사조약 해석 문제, 무력의 불법 사용 금지문제, 자국민의 권익 침해 보호문제, 식민지 해방문제, 환경 문제, 국가 인권문제, 원자력 사용의 불법성 여부 문제 등 다양. (반이상 영토 관련 문제 였음)-국가들이 제소한 법률적 분쟁사안에 대한 판결이나 유엔의 기구로부터 요청 받는 법률적 사안에 대한 권고적 의견만을 내릴 수 있다. 다른 국제 법원으로부터 상소를 받을 권리 없다. 하위 재판소도 없다.2.법원, 준거법WTO- GATT 제22조 및 제23조와 DSU(분쟁해결규칙및 절차에 관한 양해)ICJ재판의 준거법-일반국제협약, 조약, 국제사회에서 법으로 인정되고있는 국제관습, 문명국에의해 인정되고있는 법의 일반 원칙, 재판상의 판결 또는 각국의 우수한 국제법 학자의 학설3.제소 주체WTO모든 WTO회원국(WTO 옵저버국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지방정부 또는 개인은 제소 불가(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WTO 분쟁해결절차에서 직접 구제 받을 수는 없으나, 그 국적국가가 개인의 이익을 사실상 대변할 수는 있다.)ICJ-오직 국가만이 분쟁사건을 재판소에 회부할 자격이 있다.(국가 및 국제기구간, 또는 두 개이상의 국제 기구간 분쟁사안, 개인이나 기업 및 비정부간 기구(NGO)가 당사자인 분쟁사안은 다룰 수 없다.-ICJ소송 당사자 자격은 ICJ규정 당사국들 뿐만 아니라 비규정 당사국으로서 “ICJ 자판 관할권을 인정하고 재판결과를 준수” 할 것이라는 선언물을 ICJ법원 행정처에 기탁하는 국가들에게도 주어진다.(유엔 회원국은 당연직 회원국)4.관할권WTO모든 회원국은 다른 회원국이 취한 특정 조치로 인해 WTO협정에서 인정한 자국의 이익이 ‘무효화’ 되거나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면, 그 다른 회원국을 상대로 WTO에 제소 가능)1.위반제소(violation complaint)- 협정 위반의 경우-->‘무효화’,‘침해’의 당연 존재 추정2.비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협정의 위반 없이 양허(허락,협정 등등으로 해석 가능한 듯) 당시의 기대이익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무효화’,‘침해의’ 입증 필요(ex:무관세 협정이후 관세가 아닌 보조금으로 인한 문제 발생)-일국이 제소하면 관할 권이 생긴다ICJ-분쟁 당사국이 국제법적 분쟁해결을 의뢰하는 경우에 한해 ICJ는 분쟁에 개입 가능(분쟁 해결 수단을 해당 국가가 자유로이 선탁 할 수있다는 국가 주권 사상에서 비롯)-아래 세가지 방식을 통해 ICJ의 재판 관할권을 인정1)둘 또는 그 이상의 분쟁당사국들이 해당 분쟁 사건을 ICJ에 의뢰하기로 합의하고 관련특별협정을 체결한 후 이를 ICJ에 제출(임의 관할권)2)사전에 일반 국제 협약이나 양자 조약내에 조약의 해석이나 적용상 다른 당사국과 분쟁이 발생 했을 경우에 ICJ의 관할권을 인장한다는 규정을 사전에 정해두는 경우.(강제 관할 규정)(강제관할권)3)ICJ 규정 당사국들이 금후 자국이 연루된 법률문제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ICJ의 자동 개입을 인정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경우. “선택조항”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ICJ에만 특별하게 존재하는 제도로서 공 선택조항을 수락한 국가간에 발생하는 분쟁에 있어서는, 동 국가들 사이에 특별한 합의 없이도,ICJ가 관할권을 강제적으로 행사 가능.(강제 관할권) 선택조항은 동조항을 수락할 때 일정 조건을 달아 유보할 수 있다.-권고적의견의 관할권ICJ에 권고적 의견을 요청할 수있는 주체는 유엔 총회, 안전보장이사회 등 유엔의 기관과 국제노동기구(ILO),국제통화기금(IMF),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16개 전문 기구로 제한 되어있다. -활동 범위내에서 야기되는 법률문제에 대해서만 권고적 의견 요청 가능-국가가 아닌 개인간의 분쟁에 개입 불가, 전쟁 범죄자와 같은 개인을 처벌 할 수 없다.-ICJ는 상소법원이 아니지만 ICJ가 관할권을 가진 소송사건과 관련되 중재판결의 타당성에 대해 판결 할 수는 있다.5.절차WTO(분쟁해결 절차)1.WTO제소 및 협의위의 제소 가능 사안이 발생 시 WTO제소와 동시에 상대국과 협의 시작,협의 실패 시 WTO총재에게 다른 방식을 통한 중재 및 도움 요청2.패널-패널 설치-->패널위원 선정--->심리--->패널 보고서 채택-패널은 상설이 아니고 패널위원은 보통 3명으로 구성되나, 양 당사국이 합의 한 경우 5명도 가능 하다.WTO 사묵국이 양당사국에 패널 후보를 추천하고 양당사국이 패널 위원 선출(WTO 재판 부의 조직과 비교)-심리 : 서면이유서, 구두변론회의(변론 공개하지 않음)-*비교*3.상소-일방 또는 양측 모두 패널의 결정에 대해 상소 가능-상소는 패널의 법률해석 및 법적 측면에 기초(사실문제 재판단. 재검토 불가)4.패널보고이행 및 보복 절차-패널 보고서에 기초한 DSB의 권고사항을 당사국이 제대로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작업-패소국은 패널보고서 또는 상소기구보고서의 권고사항을 따라야 한다. 합리적 이행 기간 내에 이행에 실패 하게 되면 피제소국(패소국)은 상호 수용 가능 한 보상(예컨대 제소국 관심 분야에서의 관세인하)을 결정하기 위하여 제소국(승소국)과 협상-합리적 이행 기간만료후 20일 이내에 만족스러운 보상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제소국은 양허 또는 다른 의무의 일시 정지 등 제한 된 무역 보복조치를 취할 수있도록 DSB에 요청(회원국이 만장일치로 거부 하지 않는한 보복 조치 허가)-원칙적으로 무역보복조치는 해당 분쟁과 동일한 분야에 대해 취해져야하지만 이 조치가 비현실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다면 동일한 협정강의 다른 분야에 대해 보복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이마저 비현실, 비효과 적이고 상황이 심각할 경우 WTO하의 가른 하위 협정의 권리 의무에 대하여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