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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남미문화] 라틴음악과 살사에 관하여 평가B괜찮아요
    라틴음악과 살사에 관하여목 차Ⅰ. 서론Ⅱ. 라틴 음악의 특징1. 라틴 음악은 '혼혈 문화2. 강렬한 리듬과 단순한 박자3. 라틴족 특유의 다혈질적인 음악Ⅲ.라틴 음악의 대표적 장르1. 브라질 음악2. 콜롬비아3. 아르헨티나Ⅳ. 사용되는 악기Ⅴ. 쿠바에 뿌리를 둔 살사1. 쿠바와 살사2. 푸에르토리코의 영향3. 로맨틱 살사4. 현재의 살사Ⅵ. 살사의 근원Ⅶ. 영화에서 접했던 살사Ⅷ. 결 론◈ 참고 문헌 ◈Ⅰ. 서론라틴음악의 정의를 간단하게나마 말하자면 과거 유럽의 강대국들이면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등 라틴계 국가들에게 오랫동안 식민지로 지배되어 온 중남미 여러 나라(멕시코,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및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을 지칭)를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중남미 국가의 대중음악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는 라틴 아메리카 음악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라틴 뮤직, 라틴 음악이라 통용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라틴음악의 특징과 종류등을 알아보며 그 중에서도 요즘 국내에서도 유행을 하고 있는 살사에 대하여 그 종류와 연대기에 따른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겠다. 또한 단순히 춤의 행위가 아닌 그들의 살아있는 현재, 즉 전통의 내재됨을 알고 싶은것이 목적이다.Ⅱ. 라틴 음악의 특징1. 라틴 음악은 '혼혈 문화'라틴 음악은 유럽계의 멜로디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리듬감 강한 음악과 인디오의 애수 띤 선율이 혼합된 '혼혈문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2. 강렬한 리듬과 단순한 박자중남미에서 발생한 대다수 장르들은 리듬이 중시되고 박자가 단순하다. 이 점은 위에서 언급한 흑인 노예들의 음악 즉, 아프리카 리듬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중남미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타악기들이 존재하고 음악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3. 라틴족 특유의 다혈질적인 음악라틴족은 전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다혈질적 성격을 지녔다. 그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스페인이 넘실거린다.4. 정과 동의 공존라틴 음악은 대다수가 흥겨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면에 흐르는 정적인 슬픔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라틴 음악의 슬픔의 근원은 무엇인가하고 생각해보았다. 스페인은 780년 간, 포르투갈은 540년 간 기나긴 지배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두 나라의 음악에서는 아랍적인 숙명관과 그로 인한 비장함과 일종의 처연함까지 느껴진다.중남미 역시 힘을 앞세운 침략자들에게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밝은 음악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문화는 동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Ⅲ.라틴 음악의 대표적 장르1. 브라질 음악브라질 음악의 뿌리에는 아프리카 계통의 리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삼바 : 포르투갈어로 '흐느낌'을 뜻하는 이 음악은 본래 축제용, 카니발 음악이었다. 2박자 리듬과 솔로 싱어와 코러스가 주고받는 형태를 지녔으며 폴리뇨 다 비올라같은 뮤지션 이 널리 알려져 있다. 삼바는 보사노바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보사노바 : '새로운 물결'이란 의미에 걸맞게 보사노바는 삼바와 쿨 재즈가 결합되어 고급스러우면서도 부드럽고, 어딘지 모르게 슬픈 느낌을 주는 이 장르는 현재까지도 대다수 뮤지션들에게 애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바이아 :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의 수도, 살바도르를 중심으로 탄생한 이 장르는 여타 브라질 음악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역동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다양한 타악기 연주가 곁들여졌다.- 그 밖에 브라질 음악들위와 같은 대표적 장르 외에도 브라질에는 리우 데 자네이루를 중심으로 발생한 리우루츠, 람바다, 아마존, 유역의 원주민 음악들이 있다.2. 콜롬비아라틴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함께 가장 중요한 국가가 콜롬 비아다.- 쿰비아 : 삼바를 제외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듣는 남미 라틴 음악의 대부분이 쿰비아 라고 할 만큼 쿰비아는 중남미 라틴 음악의 커다란 뿌리를 잊어야 한다. 탱고는 때론 저속하고, 때론 우아하지만, 항상 느낌이 강하고, 리드미컬하며 정열적이라 한다.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극도로 표현한 것이다.- 탱고의 발생 : 탱고는 아르헨티나 사창가에서 태어났다고 표현된다. 탱고는 농촌의 음악이 아니라 세속적인 도시의 음악이다.- 탱고의 상징 : 탱고는 원주민과 이주민간의 갈등을 상징한 것으로, 춤을 자세히 보면 여자는 원주민이고 남자는 막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주민임을 알 수 있다. 여자 댄서를 두고 남자 댄서간의 갈등은 땅을 차지하려는 이민자들의 영역다툼이자 여자를 차지해 가정을 꾸리려는 싸움인 것이다.- 탱고의 발전 : 초기 탱고는 하층민들의 음악이었고 춤이었다. 이들은 일이 끝나고 나 서 삶을 표현하고 즐기기 위해 탱고를 추었고 그것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점차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탱고를 추기 시작하였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짐으로써 세계적인 춤이 되었다. 그 외에 누에바 칸시온음악과 안데스 음악, 멕시코 음악등이 있다.Ⅳ. 사용되는 악기1. CLAVE두 개의 딱딱한 막대기를 서로 부?히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며 이와 비슷한 유형의 악기들은 매우 많다.2. CONGA살사를 추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꽁가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살사음악을 연주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하고 보통 여러 가지 종류의 악기가 있다. 꽁가를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는 여러개의 꽁가를 사용하여 함께 연주를 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제일 가치있는 꽁가를 만들려면 나무를 통째로 잘라서 여러 가지 나무를 단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3.BONGO봉고는 작은 악기로서 양 무릅사이에 끼고 연주를 한다. 마콘도나 사보르 라띠노를 가면 그곳에서 간혹 사람들이 북을 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악기 이름이 봉고이다.4. GUIRO귀로라고 불리우며 흔히 빨래판 혹은 동그랗게 원추형으로 생긴 판을 나무막대기로 긁어서 소리를 나게 한다.5. MARACAS우리가 자주 접하는 악기이며 조그만거에서 약간 큰거까지 다양하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난 뮬라토 등 이들 세 갈래 구성원의 특 성을 조합하여 나름의 정체성을 구축해 왔으며 음악은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백인과 흑인을 무리없이 만나게 한 것은 바로 son이라는 음악이며 이는 곧 쿠바만이 아니라 스페인어권 카리브해 일대의 문화를 장악하게 되었다.son은 원래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쿠바 동부지방에서 생겨났다. 처음부터 son은 스페인적 요소와 아프로-쿠바적 요소의 혼합된 형태를 나타냈으며 두가지 기본적인 형식은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유사한 형태로 남아있다. 그리고 살사음악(쿠바인들은 son이나 guaracha라고 부른다.)의 대다수는 이런 유형을 따른다.1940년대에 있었던 또다른 음악적 발견은 맘보이다. 사실 맘보는 스윙과 재즈 형식을 내포한 아프로-쿠바 리듬의 혼재된 형태이다. 맘보의 시작은 대개 Prado라는 쿠바의 밴드리더로 보며, Beny Mor?와 같은 밴드리더는 son과 guaracha를 맘보와 조합했다. 맘보는 1950년대 뉴욕에서 절정에 달했다. 멕시코에서 주로 활동한 Prado, 그리고 그들만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뉴욕 맘보밴드들과 함께 쿠바음악은 쿠바섬 바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살사 붐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2. 푸에르토리코의 영향1800년대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푸에르토리코는 son, guaracha, rumba와 bolero 등 다양한 쿠바 음악스타일을 받아들였으며, 푸에르토리코 음악의 풍성함은 많은 부분이 쿠바로부터 얻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seis, bomba, plena 등은 쿠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푸에르토리코의 전통적인 형식으로서 단순히 쿠바의 모형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1920년대 이래 푸에르토리코 음악은 뉴욕으로 이주해간 이들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푸에르토리코 섬에서뿐 아니라 뉴욕에서도 널리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푸에르토리코 문화는 푸에르토리코 섬 내부의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Newyorican 문화와 분리될 수의 라틴댄스음악은 푸에르토리코 섬을 앞지를 정도로 풍성한열매를 맺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푸에르토리코보다 뉴욕에서 더 많은 살사밴드와 클럽을 만날 수 있다.3. 로맨틱 살사1970년대 말 살사는 예전의 적극적인 현실묘사에서 멀어져 감상적인 사랑을 주로 노래 하게 되었다. 이 시기 라디오와 음반을 통해 흥행하던 살사의 대부분은 훨씬 공격적이던 아프로-카리브 스타일의 Caliente나 Salsa Gorda보다는 Eddie Santiago나 Luis Enrique, Lalo Rogriruez 같은 이들의 부드럽고 감상적인 로맨틱 살사였다. 이런 종류의 살사에 대해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이들이 살사의 맥을 유지해왔던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4. 현재의 살사살사는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의 경계를 넘어 지금도 많은이들이 즐기고 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원래 힙합 혹은 하우스 쪽의 La India나 Mark Anthony 등의 가수들이 신선한 이미지의 살사스타로 청중들을 매혹시키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Victor Manuelle과 Rey Ruiz가 새로운 살사스타로 부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두 가수를 통해 50년대와 7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살사는 푸에르토리코 음악이라고들 말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살사의 뿌리를 아프리카 리듬이나 스페인 풍의 노랫말, 쿠바의 거리밴드들, 카리브해 일대의 노래와 댄스스타일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재즈로부터 찾기도 한다.살사에 관한 이야기나 그 역사는 살사가 연주되는 모든 공동체마다 독특하게 형성되어 있다. 살사는 매우 많은 종류의 라틴음악인들과 생각들 그리고 음악스타일을 포함하고 있기에 공동체 내부 혹은 국가들 사이의 소통수단이 되어왔다.Ⅵ. 살사의 근원카리브 해안의 이들 두 섬은 남미와 북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중간지대라는 뜻인 cubanacan이라는 인디안의 말에서 유래했다는 쿠바는 1492년 콜럼부스가 쿠바해안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스페인과 만났으며, 푸에라토리코는 1493년 콜럼부스의 두 었다.
    예체능| 2002.11.04| 11페이지| 1,000원| 조회(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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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법률제도에 대하여
    중국의 법률제도목 차1. 서 론2. 중국법률제도의 모순의 역사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나. 유가와 법가다. 가족과 국가3. 중국법률제도의 모순의 현실가. 사회주의시장경제나. 일국양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라. 법률지체4. 결론중국의 법률제도1. 서 론1983년경부터 홍콩을 통한 간접무역으로 시작된 한국과 중국간의 경제교류는 1992년 정식수교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2000년에는 우리나라의 대중수출은 232억달러, 대중수입은 113억달러로 총액은 345억달러에 달하며, 우리나라가 119억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나타내고 있다. 대중투자에 있어서도 2000말까지 직접투자건수는 15,000여건에 달하고 실제투자금액이 102억달러에 달하고 있다.이와 같이 무역, 투자등의 경제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중국의 법률제도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중국법률제도에 대한 이해나 인식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측면을 살펴보더라도, 중국과의 수교이후 본격적인 교류와 연구를 시작한 것이 채 10년이 되지 못하였다는 점, 법률가들중에서 중국어에 익숙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등 중국의 법률제도연구는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연구할 기반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측면을 살펴보더라도, 중국은 법률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경제제도는 최근 20년간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작하여 계획있는 상품경제체제를 거쳐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로 발전하여 왔는데, 현존하는 중국의 법률법규는 계획경제시대에 제정한 법률부터, 계획있는 상품경제시대에 제정한 법률과 사회주의시장경제시대에 제정한 법률이 혼재되어 있는 형편이다. 둘째, 분야별로 보면, 정치체제에 있어서는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경제체제에 있어서는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공법분야와 사법분야는 그 양상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로 분열의 시기보다는 통일의 시기가 길었다. 중국의 역사는 장구하다는 점이외에 또다른 하나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결합하여 대국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은 생활양식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도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함께 결합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또한 그러한 형태를 오래 지속한 경우는 없다. 오로지 중국만이 수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민족, 언어, 문화, 생활습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고, 유목민족와 농경민족은 번갈아가면서 통일왕조를 지배하였다. 즉, 진(秦), 원(元), 청(淸)은 기본적으로 유목민족이 지배하고, 한(漢), 송(宋), 명(明)은 기본적으로 농경민족이 지배한 통일왕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중국대륙을 가로지르는 큰 강으로는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이 있고, 중국전체지도를 놓고 보면 장강이 중국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중국의 중심, 즉, 통일왕조의 수도는 오히려 북쪽에 치우쳐있다고 볼 수 있는 황하를 끼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주요한 통일왕조의 수도인 장안(長安, 현재의 西安)과 북경(北京)은 물론이고, 낙양(洛陽), 개봉(開封)등이 모두 황하변에 위치하고 있다. 6대고도중 유일하게 장강변에 있는 남경(南京)은 중국이 분열된 시기 또는 농경민족에 의한 통일왕조의 초창기 일부시기에 수도였을 뿐이다. 장강과는 달리 황하는 유난히 범람도 심하고 중국의 전체지도를 놓고 볼 때 상당해 북쪽에 치우쳐있음에도 왜 중국은 수도를 황하변에 정하였을까? 그 이유는 결국 중국의 통일왕조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결합체였다는데서 찾아야 할 것같다. 즉, 유목민족이 생활할 수 있는 유목의 남방한계선과 농경민족이 생활할 수 있는 농경의 북방한계선이 만나는 지역이 바로 황하변이기 때문에 역대 통일왕조의 수도는 황하변에 형성되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황하변에 통일왕조의 수도를 정한 것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섞여있는 특색때문이었고, 이와 같이 양민족을의 동중서(董重舒)이다. 동중서는 유가는 명분이나 귀족, 백성들의 호응은 받는 장점이 있는 반면, 황제는 권위약화를 두려워하여 미온적이고 국가통치의 실무적인 수단으로서 측면에서의 문제점이 있다는 점과 법가는 국가통치의 실무적인 수단으로서 우수한 기능을 가지는 점과 황제의 권위강화로 인하여 황제가 원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진에 의하여 이미 실패하였고, 귀족과 백성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이에 동중서는 정통사상 이라는 것을 확립하는데, 주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통치이념으로 유가와 법가를 병용할 것을 주장한다. 그 이론으로는 음양오행설과 천인감응론을 드는데, 주요내용은 자연현상에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지만 가을에는 만물이 죽는다. 이와 같이 하늘의 도리도 봄과 가을이 다르다. 통치도 마찬가지이다. 봄에는 덕으로 다스려야 하나, 가을에는 형으로 다스려야 한다 라고 하여 자연현상을 빗대어 교묘하게 유가와 법가를 병용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성립시킨다. 둘째는 유가와 법가를 병용하되 유가를 주로 하고 법가는 보조로 한다(德主刑輔)는 점이다. 법가의 방식대로 국가를 통치하되 유가의 기본원리에 어긋나는 부분은 유가의 방식을 따른다는 점이다. 셋째는 성문법을 기반으로 하되 판례에 의하여 수정하는 점진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통치이념에 맞추기 위하여는 유교이념을 반영한 법률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필요한데, 동중서는 이러한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일단, 이전의 법률을 그대로 사용한다. 다만, 시행과정에서 유교적인 원리에 어긋나는 점이 있으면 시행하지 아니하거나 수정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이는 춘추결옥(春秋決獄, 혹은 引經決獄) 과 논심정죄(論心定罪) 로 나타나는데, 춘추결옥은 유교경전 특히, 춘추에 대한 공자의 말씀과 다른 법률이 있는 경우에는 재판과정에서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진율에는 범죄자를 숨겨주는 것이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공자의 말씀중 父爲子隱 子爲父隱 의 禮 , 家訓 , 閨範 , 齊家 , 家則 , 鄕約 등으로 불리우고, 명청시대에는 족보내에 家規 , 家法 등을 기재하고 있다.을 제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반입법권, 반사법권을 가진다. 둘째, 가법에 의하여 가족을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국가권력은 관여하지 아니한다.{ 진율에 따르면 존장이 자손과 노비를 때리거나, 죽이거나, 형벌을 주는 경우에 후자는 관청에 고소하지 못한다. 고소하더라도 수리하지 않는다. 라고 규정하고 있었다고 함.셋째, 가족중의 어느 하나가 대역죄등을 저지른 경우에 연좌제에 의하여 가족 전부를 처벌한다.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중대범죄를 십악(十惡)으로 부르며, 이러한 십악의 경우에는 가족구성원이 존장을 관청에 고소할 수 있고, 상호 범죄를 은닉한 경우에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십악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가에 대한 범죄가 4개, 가족에 대한 범죄가 4개, 국가 및 가족에 대한 범죄가 2개로서{ 국가에 대한 범죄는 謀反(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 謀大逆(종묘, 산릉 및 궁궐을 훼손하는 범죄), 謀叛(국가를 배신하고 역적을 따르는 행위), 大不敬(황제에 무례한 언행을 하는 것)이고, 가족에 대한 범죄는 惡逆(조부모, 부모, 백숙부모를 살해하는 것), 不孝(직계존속을 공경하지 않는 것), 不睦(집안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 內亂(간통)이고, 국가 및 가족에 모두 걸치는 것으로는 不道(몰살, 사지절단등 잔인한 범죄), 不義(관리살해, 상중에 즐기는 것등)가 있다., 중국에서 가족질서를 보호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한 일로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이와 같이 국가와 개인의 사이에 가족이라는 단위가 존재하고 그러한 단위가 반입법권, 반사법권을 가지는 전통은 근대에도 인민공사등의 형태로 변형되어 존재하여 왔다. 현재에도 국가를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단위 는 개인이 아닌 직장을 의미하고 있다.3. 중국법률제도의 모순의 현실가. 사회주의시장경제중국의 정치경제체제는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이다. 정치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를 유지하고 있고, 이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위기에 처한 국유기업의 개혁방안으로 주식제개조가 채택되면서, 주식제 가 공유제인지 사유제인지에 대하여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개조하면 국가는 주식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주식회사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주식회사가 소유하는 생산수단이 공유인지 사유인지의 이론적 문제에 대하여 논란이 남아있는 것이다. 중국정부로서는 주식제개조를 생산수단의 사유화라고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식회사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을 공유제라고 강변하기는 자본주의사회의 주식회사와 비교할 때 논리를 정립하기 어려운 난감한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이다.중국은 이와 같이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서로 모순되고, 도저히 하나로 합쳐질 수 없을 것같은 두 개의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체제를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이 역사적으로 명분 과 실리 가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할 때 어느 하나를 쉽게 버리지 아니하고 양자를 정합하여 방향을 정하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또한, 동구권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초기에는 시장사회주의 등의 방식으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한 체제를 추진하다가 얼마되지 않아 시장경제를 바로 채택한 것과도 대비된다.나. 일국양제중국은 통일정책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대한 실험을 하게 된다. 하나의 국가내에 자본주의 와 사회주의 를 공존하는 방식인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으로 홍콩, 마카오, 대만을 통일할 것을 결정한 것이다. 홍콩지방정부에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을 기본적으로 부여하고, 단지 주권의 표현인 외교권{ 외교권중에서도 경제, 사회, 문화, 사법등에 관한 분야는 홍콩지방정부가 권한을 갖는다.과 군사권{ 중국정부는 대만에 대하여는 군사권까지도 부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만을 북경 중앙정부가 보유하는 방식이다.홍콩은 원래 영국정부가 남경조약(1842), 북경조약(1860)에 의하여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할양받은 후 청일전쟁후 전탁홍콩계지전조(展拓香港界址專條, 1898)로 있다.
    법학| 2003.11.04| 14페이지| 1,000원| 조회(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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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광고] 인터넷 광고의 전략 및 효과에 관한 사례연구
    인터넷 광고의 전략 및 효과에 관한사례분석 연구< 목 차 >제 1 장 서 론 1제 1 절 문제의 제기 1제 2 절 연구의 목적 3제 2 장 인터넷 광고의 현황분석 4제 1 절 인터넷 광고의 유형과 특징 41. 인터넷광고의 정의 42. 인터넷 광고의 유형 63. 기존 광고에 대한 인터넷광고의 특장점 94. 인터넷 광고효과의 측정과 유형 15제 2 절 인터넷과 인터넷광고 현황 221. 인터넷 미디어 환경 221-1. 개인컴퓨팅환경의 변화 221-2. 국내 인터넷 사용자 특성 232. 인터넷 광고시장 환경 252-1. 국내 인터넷 광고시장 현황 252-2. 업종별 인터넷 광고현황 27제 3 장 국내기업의 인터넷 캠페인 사례분석 30제 1 절 사례분석을 위한 사전연구 301-1. 인터넷 광고에 대한 사용자 태도 조사 301-2. 조사결과의 요약 32제 2 절 사례의 선정과 연구방법 34제 3 절 캠페인별 사례분석 361. 삼성전자 온라인가족 캠페인 371-1. 캠페인의 목적 381-2. 단계별 캠페인의 전개 391-3. 광고의 집행 411-4. 캠페인 결과 462. 한국통신프리텔 PCS 016 가입자 유치 캠페인 482-1. 캠페인의 배경과 단계 492-2. 전략 단계별 캠페인 진행과 성과 502-3. 캠페인 결과 58제 4 절 분석의 결과 58제 5 절 성공적인 인터넷광고 집행 63제 4 장 결 론 68제 1 절 요약 및 결론 68제 2 절 연구의 한계 및 제언 70참고문헌 72본 글의 연구목적은 네트워크의 발전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미디어인 인터넷과 인터넷 광고의 타당성과 강점을 조명해 보고 기업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활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매체로서의 인터넷광고의 효율적인 집행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며 다음과 같은 두가지 연구를 통해 연구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첫째, 매체 일반에 관한 것으로 인터넷과 인터넷광고가 타매체와 구분되는 특성과 강점, 매체시장의 현황, 그리고 사용자의 특성을 살펴봄으로서 차세대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의 적극적인 대가지 규격이 존재한다. 표현되는 방식에 따라서는 고정형과 애니메이션으로 소비자와의 의사교환 여부에 따라 단방향배너와 양방향 배너로 나눌 수 있다.2 협찬광고협찬광고란 인터넷 매체와의 협찬형식을 통해 웹 컨텐츠내에 광고메시지,브랜드,제품등을 삽입하는 형태이다. 이는 배너의 변형인 버튼식 광고의 경우도 있으며 컨텐츠의 텍스트내에 브랜드 및 기업명등이 소개되고 이 글씨만 다른 색상으로 처리, 돌출도를 높이는 형태의 문자광고도 있다. 이 경우도 이 텍스트를 클릭하면 해당 기업,제품의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3 틈새광고틈새광고(Interstitials)는 웹의 컨텐츠 페이지사이에 전체화면으로 삽입되어 광고메시지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컨텐츠를 클릭할 때 다음 페이지로 연결되기 전 중간에 한페이지로 광고메시지를 보여주는 형태인 Spash Screens와 페이지 중간에 표출되지만 광고메시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거나 게임을 하게 하여 클릭을 유도하는 형식인 Intermercials가 있다.4 삽입광고(Nested Ad)삽입광고는 웹 매체의 사이트내에 목적하는 광고 컨텐츠를 삽입하여 운영하는 광고 형식으로서 다음과 같은 2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Microsite로서 배너광고를 집행하는 웹매체내에 하이퍼 링크되는 광고메시지를 함께 삽입하는 형태이다. 둘째는 Within Banner로서 JAVA, CGI, Shockwave 등의 신기술을 사용하여 제작된 배너로써 광고메시지로 하이퍼링크하지 않고 배너내부에서 인터엑티브하게 재구성하여 제품 전시, 고객명단 접수, 판매접수 등을 하는 형태이다.5 선택형 Ad Platforms쌍방향 매체로서의 인터넷의 특성과 신기술을 접합한 광고 기술로서 다음고 같은 형태가 대표적인 유형이다.. Chat : 다수의 방문자와 개인당 30분이상의 방문시간을 갖는 인터넷 Chatting에 광고목적으로 Chat room을 이용하는 광고 형식. Push Ad : 신기술인 Push Technology를 이용하여 PC가 운행되고 있지않는4 Ad click, click through사용자가 광고배너를 클릭했을 경우 측정되는 수치를 말하며, 광고 노출에 비해 사용자 반응을 측정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표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더 나아가 노출에 대한 클릭수를 나타내는 클릭율은 광고캠페인 전개시 광고 집행자의 관점- 광고메시지,크리에이티브등-에서 비교 가능한 데이터를 제공해준다는 장점이 있다.위에서 살펴본 방법 중 가장 널리 쓰이는 효과측정방법은 매스미디어의 효과측정의 기본이 되는 광고 노출을 통한 Impressions이다. 이는 인터넷 광고도 4대매체 광고처럼 노출을 통한 Impressions 효과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Impressions는 역시 4대매체와는 엄연히 다른 특성을 보이는 인터넷 광고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미국 Vanderbilt대학의 Novak과 Hoffman 교수가 제기한 방안이 학계와 관련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 광고 효과측정의 기준을 와 같이 Exposure Metrics와 Interactive Metrics로 구분함으로써, 소비자가 인터넷 광고에 노출했는가에 대한 정량적 분석과, 그들이 실제로 특정 광고 내용에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가에 대한 정성적 분석을 함께 가능하게끔 하고자 했다. 인터넷 광고 효과측정의 분석 범주Vehicle LevelPage LevelAd LevelExposureMetrics-Site Exposures-Site ExposuresDuplication-Site Reach-Site FrequencyPage ExposuresPage ReachPage FrequencyBanner Ad ExposuresTarget Ad ExposuresBanner Ad ReachTarget Ad ReachBanner Ad Reach DuplicationBanner Ad FrequencyTarget Ad FrequencyBanner Ad Visit Frequen33.7-40.7-36.8-51.9소 계26,09541,182-36.6뉴미디어C A T VPC통신1,1665371,282380-9.141.3소 계1,7031,6622.5총 계27,79842,854-35.1출처 : 제일기획 사보 1999년.3월호인터넷 광고는 PC통신이 웹 베이스로 통신환경을 바꾸어감에 따라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2000년에는 540억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2-2. 업종별 인터넷 광고현황매스미디어과 구별되는 인터넷의 여러 가지 특성들 중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고객과의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얻어진 고객의 정보를 통해 일대일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어떤 업종이 인터넷을 통해 사업을 하기 적합한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McKinsey의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소프트웨어,뉴스,금융정보,교육,여행관련사업,보험등이 인터넷에 적합한 업종들로 나타나 있으며 상대적으로 보석류,고급의류,정유,편의점 등은 적합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재언, "인터넷 마케팅이란?" (www.im-research.com/publications/public.htm)그러나 현재 인터넷을 통한 비즈니스와 광고등을 살펴볼 때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으며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광고업계에서는 온라인미디어가 'Mass Communication'과 'Personal Communication'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감안해 인터넷을 기존 마케팅 믹스상의 취약부문을 보완,강화하는 인터엑티브 매체로 포지셔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사는 마케팅믹스에 인터넷을 적극 도입하여 자체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이와 연결된 키오스크를 공항, 백화점과 같은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와 Dealer Shop에 설치함으로써 고객에게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기존 마케팅 수단과의 시너지효과도 얻고 있다.)손승현,"인터넷 광고 활성화 변모하고 있고, 이에 따라 시장 밀어붙이기식보다는 틈새시장 공략이, 무차별 공략에서 소비자와의 관계 중심으로, 매스마케팅에서 다이렉트마케팅으로, 크리에이티브에 의한 설득보다는 관계형성을 통한 설득으로 마케팅의 이슈가 바뀌어 가고 있다. 즉, 일대다(One to many)가 아닌 일대일(One to one) 다이렉트 마케팅과 관계 마케팅(Relationship marketing), 그리고 최근에 제시되는 방향인 'Club Marketing'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양윤창, "광고,마케팅의 새로운 대안- 인터넷".『Marketing Forum』,(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1998년 여름호 ) , p 47이러한 마케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고객의 Data base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고객은 현 고객뿐만이 아닌 잠재고객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단순한 자사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 리스트가 아니다. 고객 Data base는 세분화될 수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정보의 발신과 피드백이 용이하여야 한다. 이러한 DB마케팅의 조건의 충족시킬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인터넷, 온라인 미디어인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의 중요한 매체강점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매체는 흉내낼 수 없는 강점이기도 하다.1. 삼성전자 온라인가족 캠페인삼성전자는 97년 8월14일부터 PC통신 유니텔과 삼성전자 웹페이지를 통해 삼성전자 온라인 가족 캠페인을 전개하였다.1-1. 캠페인의 목적삼성전자의 온라인 가족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라인 집단내에 삼성 Family를 구축하는데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온라인내에 삼성Family라는 고객 집단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캠페인은 이 집단의 회원수를 보다 많이 확보하고 고객 리스트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진행 되었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온라인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려고 한 것은 급변해가는 시장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의 해결방안으로 관계마케팅을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온라다.
    사회과학| 2003.04.25| 81페이지| 3,000원| 조회(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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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 인터넷신문의 법적한계와 책임
    인터넷 신문의 법적 책임과 한계목 차1. 서론2.기사의 전재, 인용과 저작권 침해가. 기사 등에 대한 저작권보호범위나. 저작권 침해의 유형(1)다른 매체의 기사를 전재하는 경우(2)다른 매체의 기사를 인용하는 경우(3)다른 매체의 기사를 뉴스소스로 활용하는 경우(4)링크의 문제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보호방안라. 신문기사의 저작권 귀속문제3. 명예훼손 및 신용훼손의 문제가.형법상 명예훼손죄나. 반론보도청구의 문제다. 정정보도 및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의 문제4. 개인정보보호의 문제5. 결론인터넷 신문의 법적 책임과 한계1. 서론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우리사회의 많은 부분이 변화하고 있는데, 그 중 미디어영역에서는 오프라인상의 인쇄신문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온라인 신문들의 대거 등장을 주요한 변화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온라인신문이 등장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새롭게 제기되는 법적 쟁점들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2.기사의 전재, 인용과 저작권 침해가. 기사 등에 대한 저작권보호범위우리나라 저작권법은 “문학·학문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을 저작물이라고 규정하고(제2조 제1호),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서 창작성이 있는 것을 저작물로써 보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창작성이란 기존의 다른 저작물을 베끼지 않았다는 것 또는 저작물의 작성이 개인적인 정신적 활동의 소산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온라인 신문의 사이트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작성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신문의 논설, 논평, 사설, 칼럼, 기고문 등은 물론 일반기사의 경우에도 기자의 사상이나 감정이 표현되어 창작성이 있다면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됩니다.그런데 일반적인 사실보도 기사는 수집된 정보를 소재로 육하원칙에 의하여 간결하고도 건조한 문체로 작성되어, 동일한 사실을 전달하는 신문기사는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 작성될 것이 예상되므로, 보도기사의 경우 저작권보호범위에 속하는지 여부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한편 텍스트 형식의 기사뿐아니라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 등도 현을 일도양단적으로 분리하기 어려우므로, 사실위주의 보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개된 보도자료나 공개정보를 그대로 게재한 것이 아닌 한 사실구성 및 편집방법 어휘선택에 창작성이 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온라인 신문은 기존의 오프라인 신문에 비하여 더욱 빠르고 생생한 정보전달을 생명으로 하고 있으므로 최초로 특정사실을 게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최초로 취재한 자는 적지않은 비용과 노력을 들였으므로 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사실위주의 보도인 경우도 이를 전재하거나 요약하여 게재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에서 온라인 신문의 기사를 전재한 경우는 더 광범위하게 저작권 침해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한편 원저작자의 동의없이 기사를 전재하는 경우는 출처를 명시하더라도 저작권침해(저작권법제34조)가 될 수 있습니다.(2)다른 매체의 기사를 인용하는 경우저작권법은 “공포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25조).인용은 타인의 저작물을 복제하는 것과 다름없어 원저작물의 저작재산권에 대한 침해가 될 것이지만, 새로운 문화발전을 기하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므로 공익과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엄격한 요건하에 자유이용을 허락한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입니다.“정당한 범위안에서”라는 요건은 인용되는 분량, 내용상 주종의 구분, 저작물의 형태, 이용목적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될 것인데, 창작부분보다 인용부분의 분량이 많거나 인용저작물이 배포됨으로써 피인용저작물에 대한 시장수요가 상당한 정도로 감소된다면 인용은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어야한다는 요건은 인용의 목적과 방법이 그 집단이나 일반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행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상업적 목적이 있거나, 출처를 명시하지 않거나, 일반인으로 하여금 인용 경우다른 매체의 기사 중 사실보도에 해당하는 부분을 기초로 완전히 새로운 기사를 작성하였거나, 다른 매체의 기사에 나타난 사상과 감정을 소화하여 자신의 표현으로 나타내었다면 이는 인용이 아니라 독자적인 저작물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작성된 기사는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음은 물론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4)링크의 문제다른 회사 또는 개인의 홈페이지 안에 있는 문서, 신문기사, 사진, 소리파일 등의 창작성 있는 자료를 저작자의 허락없이 온라인 신문의 홈페이지에 복제해 둔 경우는 저작권침해에 해당하며, 비록 출처를 명시하였다고 하더라도 면책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한편 특정 온라인 신문이 다른 온라인 신문을 링크시켜놓은 경우 단순 링크의 경우라면 저작권법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다만 링크를 하면서 마치 특정 온라인신문이 자신과 제휴관계에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문구나 로고 등을 사용한다면 이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브라우징 프레임 소유자의 주소가 유지되면서 타깃 프레임의 내용만이 나타나도록 링크시키는 경우에는 저작권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보호방안온라인 신문 사이트 게재내용을 다른 매체나 제3자가 허락없이 전재하거나, 정당한 범위와 공정한 관행을 벗어나 인용하는 경우, 해당 온라인 신문사는 제3자나 다른 매체 운영자를 저작권침해죄로 형사고소할 수 있고(저작권법 제98조 제1호, 제100조 제1호 등), 침해의 정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저작권법 제91조, 제93조 등).최근 콘텐츠의 재산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무단전재나 인용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타인의 홈페이지 내용을 복제해가는 것이 저작권침해가 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므로, 홈페이지의 일정한 곳 및 해당 기사 말미에 기사를 무단전재 또는 무단인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취지의 경고문을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인 등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비실명기사의 경우 위 단체명의저작물의 요건을 충족하면 사용자인 언론사에게 저작권이 귀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일률적인 구분에 대하여 실명기사의 경우에도 기자의 표시가 신문사 내의 단순한 업무분담을 표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는 신문사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유력합니다. 따라서 다른 매체의 기사에 대한 이용계약을 맺는 경우 언론사와 기사작성자 모두를 계약당사자로 하거나, 언론사만을 계약당사자로 하되 공급되는 기사의 저작권 또는 사용권이 그 언론사에게 있다는 확인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한편 기사이용계약시 이용범위가 오프라인상에 게재하는 것에 한정되는지, 온라인상에 게재하는 것도 허용되는지, 나아가 CD-ROM형태로 제작하는 것도 포함되는지를 명확히 해두어야 사후 분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3. 명예훼손 및 신용훼손의 문제온라인 신문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의 내용이 특정인(회사 포함)의 명예나 신용을 훼손시킨 경우에는 민법상 금전적 손해배상책임과 정정보도의 책임(민법 제751조, 제764조),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신용훼손죄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형법 제307조 등).가.형법상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제310조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명예훼손죄의 면책요건을 규정하고 있습니다.우선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 중 “사실의 적시”는 기자가 스스로 경험한 것으로서 표시되든, 다른 사실로부터 추측한 결론으로서 표시되든 혹은 남으로부터 들은 것으로 표시되든 불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그러나 사실이 적시된 기사내용에 의하여 결과적으로 특정인의 명예에 훼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기사내용이 허위가 아닌 진실한 사실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10조의 규정은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의 보호와 헌법 제21조에 의한 정당한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상충되는 두 법익의 조화를 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두 법익간의 조화와 균형을 고려한다면 적시된 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온라인 신문의 속성상 신속한 기사작성과 게재가 요구되기는 하겠지만, 편집과정에서 해당기사가 특정회사나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의 명예나 신용을 훼손할 가능성은 없는지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관계자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하거나 반론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온라인 신문 기사의 경우 오프라인 신문에 비하여 순간적 영향력은 적을지 모르지만, 그 전파의 속도가 빠르고, 전달범위가 광범위하며, 장기간 게재상태에 있는 등 그 속성상 결과적 피해는 더 커질 수 있으므로 기사작성과 게재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나. 반론보도청구의 문제우리나라의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이하 “정간법”이라고 약칭) 제16조와 방송법 제91조는 정기간행물이나 방송에 공표된 사실적 주장에 의하여 피해를 받은 자는 그 사실보도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월이내에 언론사 또는 방송사업자에게 반론보도문의 게재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론보도청구권은 보도와 피해자 간에 개별적 연관성만 있으면 보도된 내용이 진실한 경우라도 성립되며, 언론사의 고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허용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편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를 거치지 않고는 법원에 반론보도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없으며(정간법 제19조 제1항), 반론보도는 같은 정기간행물, 동일지면,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크기로 게재하여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제16조 제3항, 제5항 등 참조).그런데 현행 정간법은 온라인 신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입법되어 있어, 현행법상으로는 온라인 신문사가 운영하면서 기사를 게재하는 사이트가 위 법의 규율대상인 신문·통신·잡지·기타조).
    법학| 2003.04.25| 8페이지| 1,000원| 조회(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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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의 민속놀이 - 연희를 중심으로
    고려시대의 민속놀이에 대해서- 연희를 중심으로목 차1. 서론2. 고려시대 연희의 분류와 내용1) 예능적 내용(1) 처용희(2) 나희(3) 산대잡희(4) 수희2) 경기적 내용(1) 격구(2) 수박희(3) 각저희(4) 석전희3) 유희적 내용(1) 추천희(2) 지연희(3) 호기희(4) 척초희, 초인희(5) 농환희(6) 장간희(7) 죽마희(8) 투란희4) 오락적 내용(1) 위기(2) 투호(3) 저포희(4) 쌍륙3. 맺음말1. 서론고려시대의 민속놀이는 삼국시대보다 훨씬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민간차원보다는 국가에서 또는 궁중에서 이를 장려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연희는 일반적으로 오락·경기·예능·무예·신앙·명절과 관계가 긴밀하므로 그 개념 속에는 경쟁성과 유희성, 오락성, 예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고려시대의 연희 고찰 .. 역사민속학 제9호고려시대의 사회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민중의 삶과 궁중의 풍속을 올바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여러 문헌에 나타난 놀이문화를 조감할 때 고려시대는 가히 풍성한 놀이유산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지나침에 따른 병폐도 나타났고 역작용도 없지 않았으나, 조선조의 연희문화에 대체로 영향을 끼쳤고 삼국시대 놀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려시대에는 미풍양속을 선양하고 유지코자했으며, 자연스런 민풍의 정착을 꾀하였다. 반면에 궁중에서는 나름대로 王化之風을 창출하기 위해 어진 사람의 등용, 학문숭상, 노인공경, 문학·예술존중, 백성과의 화합을 추구했는데, 국가가 놀이를 장려하는 한편 그것이 민간에 보급되도록 노력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연희의 분류는 학자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기구상·계절적·관념적·지리적·존재상의 분류가 시도된 바 있다. 이러한 분류에 이어 무예적 유희와 일반유희, 오락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박희·운동·경기·무술유희·연예잡희·아녀의 노름, 신앙성 놀이, 명절놀이 경기놀이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이밖에 명절놀이와예종 이후 잡희가 확대되어 나희로서 정착되었으며 여기에는 倡優·雜伎人·遊伎 등에 의해 가무백희가 행해졌던 것이다. 이색의 에는 五方鬼舞·處容戱·太平舞·百獸舞·西域胡人戱·吐火·呑刀·步索·人形劇 등이 소개되어 있다.《고려사》에 전하는 大儺의 예는 12세 이상 16세 이하를 子로 삼아 가면을 씌우고, 24인을 1대로 하고, 방상씨를 만들고 웅피를 쓰는 등, 고각군 20명이 1대가 되어 악귀를 쫓으며 엄숙하게 진행되었다.)《高麗史》卷64, 志18, 禮6, 季冬大儺儀대체로 고려 초의 나례는《당서》에 나와 있는 儺儀를 모방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초기에는 앞서 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잡희가 없었다. 후기에 나희가 성행한 것은 처용희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金學主, ,《亞細亞硏究》6, 1963, 110쪽예종 11년(1116) 12월 다음과 같은 나례의 기사를 통하여 나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宦者가 儺者를 나누어 좌우로 삼아서 勝福을 구하니, 왕이 또 친왕에게 명하여 이를 나누어 주관케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倡優·雜伎와 외관의 雜伎에 이르기까지 징발당하지 않음이 없어 원근이 다 모여들고 깃발이 길에 뻗쳐 궁궐에 가득찼다. 이 날에 시관이 각문에 머리숙여 간절히 간하니 이에 명하여 심히 해괴한 자를 쫓아 내었으나 저녁이 되어 다시 모여들었다. 왕이 장차 음악을 관람코자 하니 좌우가 소란히 다투어 먼저 재기를 보이고자 하여 도무지 조리가 없으므로 다시 400여 명을 쫓아 내었다. (高麗史 卷 64, 志19, 禮7)이상에 나타나듯이 창우·잡기·외관의 유기에 이르기까지 징발당해 나례를 행했으며, 임금 앞에서 재주를 선보이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3) 산대잡희山臺는 연희를 위해서 만든 무대로 신라 진흥왕 때 행해진 팔관회에서 산대희의 출현을 볼 수 있다.) 《增補文獻備考》卷107, 樂考18, 俗部 樂2이 때 채붕백희를 했던 것인데, 綵棚이 산의 형태를 이룬 것을 특히 山棚 또는 山臺라고 불렀다.《고려사》에서 "양부악관 및 산대악인에게 하사한 花酒와 시 3월 신유, 4월 무인왕이 수희를 보고자 하여 내시 박회준 등에게 명하여 50여 척의 배에 모두 채범을 달고 악기와 채붕 및 고기잡는 기구를 싣고 앞에서 유희를 벌리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귀신놀이를 하는데 불을 머금고 토하다가 잘못하여 한 배를 태우므로 왕이 크게 웃었다. (高麗史 卷 122, 列傳35, 白善淵)위의 내용을 볼 때 수희는 물 위에 배를 띄워 놓고 그 곳에서 어부가를 부르거나, 고기잡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불을 머금었다가 뱉는 등의 잡희를 지칭한다고 하겠다. 대체로 일반적 놀이라기보다는 왕을 위한 일시적인 선유놀이로 파악된다.2) 경기적 내용(1) 격구「擊毬」는 막대기로 공을 쳐서 문안에 넣는 경기로서 무예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에는 성행하였다. 주로 무관들의 무예훈련으로도 이용되었으며, 귀족자제들이 배웠는데 특이하게 부녀자들까지 격구를 한 기록도 있다.격구는 打毬·擊棒·弄杖戱·抛毬·棒戱·擊鞠 등으로도 불렀는데 우리말로는 장치기·공치기·얼레공이라고도 한다.) 羅絢成,《韓國遊戱史硏究》 百祥文化史, 1977, 2쪽《海東繹史》에는 격구가 당나라에서 행해진 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려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무예적 유희인 격구는 태조 원년(918) 상주의 阿字盖가 귀순하려 하자 그를 맞는 의식을 구정에서 익히도록 한 것으로 보면)《高麗史》卷1, 世家1, 태조 원년 9월 갑오이미 고려 초에 격구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예종 5년(1110) 9월에 왕은 격구를 보고 물건을 하사했으며, 11년에는 여자격구가 행해지는 것을 보고 폐지토록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남성격구는 계속되어 왕 스스로 즐기거나 관람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의종은 격구를 좋아했으며 능하였기에 격구 잘 하는 사람을 뽑아 관직을 주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대간들이 이를 말렸다. 그러나 격구에 관심이 컸던 왕은 의종 2년(1148) 북원에서 다시 격구를 하였고, 다음 해에도 서루 등에 나아가 사흘 동안 관람하였다. 또한 22년 신기군의 弄馬戱를 관람하였다. 의종은 수희도 즐 5종의 병기를 가지고 손으로 재주를 부리며 승부를 가리는 무술 또는 자유대련의 형식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의 수박희는 상대를 잡지 않고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 넘어뜨리는 무예의 하나로 주연이나 아동의 유희로 민간에서 성행하였다.) 崔南善,《朝鮮常識》風俗篇, 東明社, 1948, 99쪽(3) 각저희「角 戱」는 角力戱·角戱·相撲 등으로도 부르는 씨름의 일종이다. 수박희와 달리 두 사람이 달려들어 서로 잡고 힘을 겨루며 묘기를 부려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소박한 경기형식의 놀이다.우리나라에서 씨름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고구려의 옛 도읍지 환도에서 1905년에 발견된 각저총 현실의 벽화이다. 이것이 오늘날 씨름과 흡사함을 볼 때 당시 고구려인들의 취미를 엿볼 수 있다.고려는 고구려의 풍속을 많이 계승하고 있으나 씨름의 경우는 크게 성했던 것을 보이지는 않는다. 고려가 원과 교류한 후반기에 격구희 등과 같이 궁중에서 각저희가 행해진 것으로 나타난다. 충혜왕과 그의 몽고인 왕비는 씨름을 좋아하였는데 정사는 신하들에게 맡긴 채 내시들과 씨름을 하기도 했다.충혜왕의 이러한 행동은 문제를 일으켜 왕과 이를 지적하는 신하간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고 학자들을 미워하는 계기가 되자 구경하는 것에 그쳤다.고려시대의 씨름은 이처럼 御前技로 성행하였던 것 같다.)《高麗史》卷36, 世家36, 충혜왕 4년 춘2월 갑진, 11월 병인중국인들이 고려 때 씨름의 모양을 본떠서「高麗技」라 하기도 하고 「 技」라고도 했는데 그 기술은 다음과 같았다.그 방법은 두 사람이 서로 상대하여 구부리고 각자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왼손으로는 상대방의 오른발을 잡고 일시에 일어나며 상대를 번쩍 들어 팽개친다. 그리하여 밑에 깔리는 자가 지는 것이다. 內句 (안걸이), 外句(밭걸이), 輪起 (둘러메치기) 등 여러 자세가 있고 그 중 힘이 세고 손이 민첩하여 자주 내기하여 이기는 사람을 都結局이라 한다. (洪錫謨, 東國歲時記 5월 단오).(4) 석전희石戰은 돌팔매질을 하여 승부를 다툰 것으로 눈을 어지럽게 하였다"고 했다.)《高麗史》卷129, 列傳42, 崔忠獻 附 怡궁중의 화려함과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민간에서도 단오날에 그네뛰기를 하였다. 이규보는 단오에 그네뛰는 여자들을 보고서 "나라풍속에 단오 때면 여자가 이 놀이를 한다"고 설명한 후 선녀가 하늘에서 오는 듯하다고 시를 지었고,) 李奎報,《東國李相國集》後集 卷3, 古律詩 端午見 韆女戱고려가요 가운데 나오는 그네뛰기는 씨름과 함께 단오날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2) 지연희「紙鳶戱」는 종이연날리기로서 이것은 민간에서 주로 아동들에 의해 행해졌다. 일명 風鳶·風箏·飛鳶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말 최영 장군의 일화로 전한다. 물론 이것은 설화에 지나지 않고, 신라 때부터 연을 이용한 전술이 이용되었음은《삼국유사》김유신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진덕왕이 즉위한 해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자 이를 여왕의 패망징조라고들 말하였다. 이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고 이를 바람에 따라 띄워 불덩이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 별이 다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三國遺事》卷41, 列傳1, 金庾信이를 보면 신라 때에 이미 연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려 충선왕이 세자로 있을 때 궁노가 동네 아이들의 연을 빼앗아다가 바쳤다는 기사는 민간에서 연날리기가 놀이되고 있던 것을 짐작케 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가을철에 연날리기로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웃아이들을 보고 시를 지은 것이 실려 있다.) 李奎報,《東國李相國集》後集, 卷1, 古律詩 七月三日詠風(3) 호기희「呼旗戱」는 불탄일에 있었던 아이들 행사이다. 음력 4월 8일이 되면 거의 한 달 전부터 여러 아이들이 초파일 행사비용을 모으기 위해 장대에 종이를 오려 붙이고 제각기 어깨에 메고 소리지르며 쌀과 천 등을 구하러 돌아 다닌다.)《高麗史》卷40, 世家40, 공민왕 13년 4월 신축공민왕 때부터는 초파일 연등행사가 나라풍속으로 행해져 궁중에서도 아이들의 호기희를 관람하고 포를 하사하였다. 이런 아이들의 호기놀이는 초 있다.
    사회과학| 2002.11.27| 12페이지| 1,000원| 조회(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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