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광고중 좋은 광고와 나쁜 광고좋은 광고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받아 들였을 때, 좋은 느낌이나 정말 필요한 정보를 주는 광고이거나 밝은 미소가 떠오르는, 또는 무언가 가슴에 와닿는 그런 광고가 아닐까? 좋은 광고는 그 한줄의 카피를 통해서지만 그 시대, 그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면, 혹은 사회에 일조한다는 느낌을 준다면 좋은 광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광고와 소비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광고도 좋은 광고이다.1.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광고 :나이키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광고로는 나이키를 들 수 있다. 나이키는 세계 최고 선수나 팀이 거의 나이키 소속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만큼 나이키는 스포츠 스타를 활용하여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데 능한 기업이다. 나이키가 스포츠 스타에게 투자하는 비용은 연 1억 달러(약 1400억 원)에 달한다. 미 프로농구 정규 멤버 중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스카티 피펜 등을 비롯 60%가 나이키와 용품 계약을 맺었다. 1996~97시즌 NBA 올스타 시상식에선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수상자가 나이키 계약자였다. 농구에선 더 이상 나이키와 견주어 볼 상대가 없을 정도이다.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축구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이키는 호나우도와 호마리오 등 톱스타를 광고모델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공식 후원자로서 자금과 용품을 대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이키 월드 투어라는 프로모션을 통해 전세계 대표팀과의 경기를 주선해 왔다. 그 결과 축구용품에서는 아디다스와 움브로에게 밀리는 시장 상황이었지만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는 축구 역시 나이키라는 등식을 암암리에 심는 데 성공을 거뒀던 것이다. 이 외에도 테니스의 안드레 아가시, 야구의 박찬호와 마이크 피아자, 1996년 올림픽 때 나이키가 만든 황금신발로 세계 신기록을 세운 육상 스타 마이클 존슨도 잘 알려진 나이키 맨이다. 가장 시장 진입이 어려웠던 골프의 경우도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무명의 타이거 우즈를 후원날드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요 녀석~ 다 눈치챘어' 이런 제스처로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이때 뜨는 카피문구. 정말 행복한 풍경이다. 뭉게구름이 피어난 푸른 하늘이 창문 너머로 보이고, 아이는 흔들 그네에 누워 있고, 어머니는 이런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광고는 행복한 풍경이 아니라 끔찍한 세뇌공작의 극단적인 한 예다. 햄버거 왕국, 맥도날드가 지금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맥도날드가 보이면 웃음을, 안보이면 울음을 짓게 하는 반복적인 주입으로 철저하게 세뇌시키고 있다. 파블로프가 개를 대상으로 한 조건반사 실험과 다를게 무엇인가.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울리자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어도 개가 침을 흘린다는 조건 반사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아이를 보자. 맥도날드라는 자극을 투입하자 웃음이라는 생리적인 반응이 툭 튀어나온다. 마음이 순수하게 느끼고 반응할 틈도 없이 훈련된 반응대로 움직이는 자동인형이 탄생한 것이다. 인간의 고유하고 순수한 정서, 울음과 웃음을 한낱 햄버거 따위가 멋대로 장악하려 들다니. 이 무슨 발칙하고 괘씸한 광고전략인가. 맥도날드는 119여개국에 25000여 매장을 거느린 세계 네크워크를 구축한 거대기업이다. 말하자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노예화 전략에 착수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를 우롱하며, 자율정신을 망가뜨리며. 우리모두는 맥도날드 앞으로 분노의 마음을 담아 '세뇌공작' 고발장이라도 내밀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이 노예화 광고의 가장 소름끼치는 광경은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꽂혀서 되돌아온다. 웃음과 울음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을 자애롭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 우리는 어리석은 어머니의 눈길로 광고를 바라봐서는 안된다. 맥도날드의 노예인형인 아이의 자동반응에 슬퍼하고 절망해야 한다. 주체의식이 결여된 바보, 마음을 잃어버린 노예의 시선을 떨쳐버리자. 맥도날드 광고를 바라볼 때는 눈을 부릅뜨고 정신차려서, 자신의 마음을 절대 놓치지 말 것. 그리고 분노할 것!LG텔레콤의 수 있는 기준이 없고 그만큼 개인의 선호와 취향이 중요합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정말로 움직이는 것은 '경험 을 지배하는 브랜드 이미지이다. 때문에 경험을 표현한 환타의 광고를 잘된것이라 할 수 있다.텅빈 도시의 허공으로 휘파람 소리가 울리자 가볍게 커브링하며 도시의 골목골목을 질주하던 타이어가 여자의 다리 사이에서 가볍게 급제동하고 그위로 비눗방울과 민들레 홀씨가 가볍게 날린다. 한번쯤은 TV에서 본 적이 있는 블랙버드V의 광고이다. 현지 특수촬영팀이 만든 장비에 타이어를 달고 실제로 달리면서 찍었으며 비눗방울과 민들레 홀씨가 날리는 장면은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했다고 한다. 이 광고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예술적인 화면에 감탄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광고는 예술적인 화면뿐만 아니라 은근히 제품의 능력을 광고한다. 커브씬과 마지막 제동씬에서 그 것을 확인할 수 있다.TTL은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성공한 광고로 뽑힌다. 여기서는 한 TTL의 예술적인 측면을 설명한 글을 소개한다.TTL의 최신광고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물을 중심테마로 하고 있다. 물의 코드는 생명이다. 이전까지 소녀는 이 생명의 한가운데에 단지 위치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소의 변화가 있다. 이전의 수동적인 위치에서 능동적인 위치로의 전환을 이루었다. 그것은 소녀가 물뿌리개를 이용하여 창 밖의 무엇에게 물을 뿌리는 장면으로 형상화된다. 그것은 무엇인지는 모른다(물론 그 이전에 뿌리는 건 식물이다). 식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뿌려보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행위이지 대상이 아닌 것이다.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막연한 행위의 반복, 그것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아니던가? TTL의 광고는 언제나 우리 무리의 중심을 갈라친다. 그렇기에 더욱 되씹어볼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얘기가 빗나갔다. 아무튼 은경 양은 무엇엔가 물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 자신도 모를 수도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로 우리에게 전하는 TTL의 메시지인 것이다.나쁜 광고는 광고가 장사를 위한 하나의 보조수단으로서만 머물러 있는 광고를 들 수 있다. 어린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거나 말거나 시선을 끄는데만 급급한 광고가 그 예의 하나일 것이다. 허위·과장광고나 비교·모방광고 또는 섹스어필광고 또한 나쁜 광고이다.1.광고가 장사를 위한 도구로만 쓰인 경우: 불가리스불가리스광고를 보면 이걸 약국에서 사야할지 슈퍼에서 사야할지 구분이 안간다. ( "불가리스는 장까지 살아서 도달하는 락토바실러스, 에시토 필러스 유산균을 사용", "유산균이 300배나 많은 불가리스 사과로 효과를 보세요", "이런 분들이 드시면 좋습니다) 이런 카피를 보면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식품을 의약품으로 혼돈할 우려가 있는 이런 광고는 잘됐다고 할 수 없다.2.스타에 의존한 광고 : 참매실, 2%최근에 이 광고를 보았을 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핑클 4명의 화면과 멘트... 이런 광고를 보고 제품을 구입할 소비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물론 핑클팬클럽은 아주 잘 사먹겠지...) 이 광고의 기획은 이렇다.4가지 제품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이 광고는 참매실(성유리)촹참자두(이효리)촹참다래(이진)촹참모과(옥주현) 등 4가지 제품을 핑클 각 멤버와 연결한 후 각각의 색깔을 부여해 제품의 속성을 알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이 광고는 정확한 줄거리를 알려주기보다는 드라마 예고편처럼 중요장면을 보여주고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바람 핀 애인을 남긴 채 차를 타고 떠나는 유리, 남자를 유혹하는 효리, 남자 등에 업혀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이진, 떠나는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 주현 등. 언뜻 보면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되지만 한남자를 두고 4명이 서로 다른 사랑을 하는 모습이라는 게 제작사인 LG애드측의 설명이다. 한 남자가 주현의 옛 애인이면서 현재는 유리의 애인이지만 이진과 사귀는 바람둥이이고 효리에게 유혹을 받는다는 설정이다.하지만 누가 이 광고를 보고 이렇게 생각할까? . 상품명의 느낌이 한결 애틋하고 극적이다. 그 동안은 날 물로 보지마, 라고 흘겨보던 효리와 최진실을 내세워 물리적인 목마름을 해소하는 컨셉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몸에서 마음으로 이동했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완벽주의자가 되는 걸까, 2% 부족한 것도 견딜 수 없다.불멸의 테마인 사랑의 갈증. 극단적인 모습으로 헤어지는 연인의 모습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가라고 윽박지르는 남자의 눈엔 눈물이 흐르고 여자는 남자의 눈물어린 절규에 대해 원망도 미움도 아닌, 오히려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채워달라고 말한다.혹시 연인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사랑하고 있는건 아닐까. 정우성의 그 울부짖는 이별선언은 마치 과격한 형태의 사랑고백처럼 들린다.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이별을 선택해야 하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남자는 급기야 소리치게 된 것이다.나를 채워 줘, 장쯔이가 남긴 이 말 역시 이별을 받아들인다는 것일까 다시 기다리겠다는 의미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광고는 시리즈로 내보낼 예정이다. 이별 얘기부터 시작해 거꾸로 과거를 역추적하는 구성이다.곧 개봉할 영화 에서 정우성과 장쯔이는 고려무사와 명황실의 왕녀로 등장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광고가 더욱 애절하고 생생한 느낌으로 감정이 묻어나는 건 영화에서라도 이미 사랑에 빠져봤기 때문일까?아무리 들이부어도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목마름. 하지만 이별마저 사랑의 종착역이 될 수 없는, 이 연인들의 마음을 적셔 줄 감로수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다.3. 여성을 왜곡한 광고: 로레알, 디오스로레알 광고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모델. 로레알도 빅 모델을 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전략이 있다. 로레알의 모델들은 ‘Spokeswoman’이라고 불린다. 로레알의 공식 여성대변인이나 홍보대사인 셈이다.우선 TV광고를 예로 들어 보자. TV광고에서 이들은 로레알 제품의 품질이나 다른 뛰어난 점들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광고의 기본 스타일로 하고 있다. S다.
1987년 2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한방의료보험이 실시되고 있다. 첩약을 제외한 진찰, 입원, 침, 뜸, 부항 및 56개 기준 처방약재와 양도락 검사 맥진도 검사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하고 있다. 한방의료보험이 한방치료를 받는데 경제적 부담을 줄인 것은 사실이나 국민들의 첩약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1993년말까지 우리나라 한의사 면허 소지자는 7천5백69명으로 양방(치과 제외)의 14.7%. 이용률은 전체 치료원(약국 포함)중 양방 병,의원이 45.9%로 이용률과 거의 일치하나 한방 병,의원은(한약방 포함)은 4.3%로 양방의 8.9% 수준이다. 이에 비해 총의료비는 한방이 36630원으로 종합병원 15098의 2.4배이다. 한방이 이용률은 낮고 진료비는 비싸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한방이 의료보험에 제대로 흡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한의사의 보험 참여율은 50%를 밑돌아 한방의보는 파행을 면치못하고 있다. 한방의료 이용률이 낮은 이유로는 한방의료가 지나치게 처방수를 제한한데다 첩약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제약회사가 대량 생산한 엑기스를 배합하는 조제 방식이라 제대로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이다. 또 치료의학적 가치가 양방에 비해 낮은 것과 일반인의 무지와 편견을 악용, 보약을 팔기에 바쁜 한의사가 있는 것도 한방 이용률이 낮은 이유이다.정부측은 한약재의 효능 분석이나 표준화 작업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첩약 의보 실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보약 성격의 한약이 많기 때문에 한방의보 확대는 질환 치료라는 의료보험 취지에 비추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현재 한방의료보험제도및 실태상의 문제점으로는 첩약이 현행 급여범위에서 제외된데 따른 경제적 부담, 현행 보험약재인 단미엑스산제의 종류나 처방수부족과 처방의 재량권 배제, 한방의료기관이 의료보호법상의 의료보호진료기관에서 제외돼 영세민 이용이 힘든 점, 양방보다 한방의 급여범위가 훨씬 더 좁아 현실적으로 한방의 본인 일부부담금이 더 높게 책정된 점등을 들었다.
서양중세도시1. 서양중세도시 연구의 문제의식서양중세도시는 12∼13세기 서유럽의 봉건사회 下에서의 도시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서양중세도시의 특색·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이 앞으로 살펴볼 문제이다.먼저 일반적인 도시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도시는 경제적으로 농업에 기반을 두지 않으며, 상업이나 수공업의 중심지 또는 정치· 군사· 종교의 중심지이다. 이러한 도시의 특색은 동양과 서양에 있어서 그 특징이 차이가 나는데, 동양은 국왕이나 국왕이 파견한 관리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서양은 국왕과 군주보다 시민이나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특히 중세도시는 상인이나 수공업자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하였으며, 그 경제적 중심은 시장이다. 또한 국가권력이나 왕, 봉건영주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치적 자유도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이러한 서양중세도시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그 문제의식은 근대시민사회 성립의 맹아를 발견하려는 데에 있다. 중세사회 시민은 근대사회 시민과는 달리 신분으로서의 시민, 즉 중세의 농민, 귀족 등과 열을 같이하는 시민이며 봉건국가 內에서의 시민이라는 본질적인 차별점이 있다. 또한 물건의 생산과 유통에 제약을 가한 중세 길드제도는 근대 자본주의 성립에 장애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 서양중세도시는 근대사회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으며,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2. 도시와 국가여기서 보고자 하는 것은 서양중세사회에 있어서 도시와 국가와의 상관관계, 또는 시민과 국민과의 상관관계이다.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동양과 서양의 도시는 그 형태면 에서 많은 부분이 차이가 난다. 동양은 지리적으로 하천 유역에 국가가 세워지고 발달했고,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하천을 통제할 수 있는 강한 절대권력이 일찍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국가의 원리가 강하게 지배하며, 국왕의 지배력이 절대적인 전제군주국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서양은 공동체 또는 집단으로서의 도시생활이 등장하는데, 고전고대도시는 국가 자체가 도시인 도시국가로서 국왕이나 귀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역시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은 드러나는데, 서양의 고대가 나타나는 원리는 공동체 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원시사회는 혈연적, 종족적, 씨족적 공동체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그러다가 말기에 이르면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군사력과 토지· 노예를 소유한 유력한 가부장들이 나타나게 된다. 각기 다른 조상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아테네에 모여 아테네 여신을 함께 섬기게 되며, 이 과정이 바로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 도시 안에서 유력한 가부장끼리는 대등한 지위로 도시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민의 원리인 것이다. 이 고대 그리스 시민은 귀족적 성격에서 점차 보병· 수병의 평민적 성격을 띄게 되는데, 이러한 시민의 특권은 민회, 투표, 행정과 사법 등에서 잘 드러나며 시민의 자유와 자치가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동양은 가장 강력한 가부장이 국왕이 되어 나머지 가부장을 노예 형태로 지배하며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이 바로 전제군주제의 과정이며, 강과 운하의 자연 환경 속에서 관개사업을 위해서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게 되는 불가피한 과정인 것이다.봉건사회에 이르면 동양은 고대의 전제군주제가 지속된다. 서양봉건사회의 특질은 경제적으로 영주와 사유재산· 정치적 권리가 없는 농노로 이루어지는 장원제도이며, 하나의 장원은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게 된다. 즉 장원경제는 상품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세도시의 발생의 의미는 장원 안에서 부자유한 농민과는 다른 계층이 등장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바로 상인들인데, 봉건영주 입장에서는 상인에게 특권을 주고 끌어들이면 화폐가 생기게 되며,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국제무역교류가 이 상인계층의 배경이 되며, 이 상인들은 생산의 상품화를 주도하여 경제적 변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점차 상인이 늘자 국왕과 영주는 그들에게 하나의 도시를 할당하고 대신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이 도시에는 특권이 부여되고, 자유롭고 평등한 상인들의 동지적 단결체인 길드, 즉 자본주의가 확립되게 된다.3. 서양중세도시의 성격과 동양에서의 모습서양에 있어서의 도시의 특색은 크게 두 가지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공동체적 구조 an associational structure, 즉 도시의 자치체로서의 성격이다. 또 하나는 특권을 갖는 시민으로서의 신분 bourgeois estate, 즉 자치체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시민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도시의 특색이 동양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 결여되어 있다.동양은 오히려 농촌이 도시보다 자치적인 현상을 보여주는데, 특히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도의 세습적 카스트는 상인길드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자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직업에 있어서 종교적 분리로 인해 도시공동체와 시민이 나타나지 못했다. 즉 카스트 장벽은 카스트간의 fraternization을 막은 셈이다. 중국의 행·작도 마찬가지이다. 동양의 도시는 주민의 자치도시가 아닌 왕의 권력하의 행정단위에 불과하다.동양에서도 자치적 단체, 자치 공동체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농촌의 촌락공동체나 또는 도시에서 인도의 카스트, 중국의 종족적 직업단체 - 한 씨족이 한 직업을 전담하는 - 등이 있다. 이러한 공동체는 왕권의 지배하에 있지만 부분적으로 자치적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고, 또한 하나의 자치집단은 도시 안에서 시민으로서의 공동의 이익으로서의 횡적 연결은 없고 일종의 이기적 자치단체로서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4. 종교와 군사적 측면이 도시 성립에 미친 영향서양에서 하나의 도시가 하나의 단체적 신앙을 소유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 사실은 도시의 성립에 있어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동지적 결합 Confraternity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동양 도시에서의 신은 각 씨족이나 혈연의 배경과 관계되는 개별적 신앙인데 비해, 서양은 그 도시생활의 종교적 배경이 공동의 신앙심이다. 즉 서양의 도시는 법 앞에서의 종교적 또는 비종교적 평등, 통혼권 동양은 원시적 종교의 전통에 의해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로만 카톨릭이 도시공동체 성립을 촉진한 것이고. 기독교는 유일 종교로 등장하였다.서양에 있어서 민족이동 등으로 인해 군사조직은 씨족적 또는 카스트적 제도보다 우선하게 되었다. 서양의 군사조직은 동양의 군사조직인 용병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른데, 시민 자신이 군사력을 담당한 시민자치군대로서 시민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단결력은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족이동 과정에서 기존의 폐쇄적 체제로는 전쟁수행이 어려워 졌고, 서양 고전고대의 경우 출발 당시에는 씨족이 존재하긴 했었지만 차차 군사적 공동체로 대체되어 갔다. (gen -> phratry -> phyle) 즉 사회조직이 군사단위로 이루어 졌다.5. 고대와 중세의 도시성립과 씨족제 전통오리엔트 도시와 아시아 도시에는 계속 씨족제 전통이 남아 있었고, 그리스의 경우에도 처음 출발 시엔 기본적으로 씨족제 전통이 있었다. 로마의 경우엔 처음에 혈연적 관계를 존중하다가 나중에 행정단위로 전환하였다. 아테네와 로마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자유스러운 개인에 기반하였다기 보다 자유스럽고 집주를 원하던 씨족에 기반 하였다. 중세도시에 있어서는 그 구성요인이 완전히 혈연관계에서 독립한 자유스러운 개인들의 집주이며 공동체이다. 종교에 있어서도 유태교는 씨족제적 전통이 강하나 기독교는 개방적이며 비전통적이다.도시는 2차적이며 비 원생적이다. 오리엔트·동양은 씨족의 전통이 그대로 잔존하여 하나로 융합하였다. 서양 고전고대는 씨족제 전통을 가지고 2차적 집주를 하지만 빨리 전통에서 벗어나 하나의 공동체로 집결하였다. 중세에 혈연관계는 이미 민족이동 후 소멸하고 개인자격으로 공동체에 들어가며 기독교를 통해 종교적으로 융합하였다.6. 중세도시의 구조적 특색과 기능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양중세도시의 구조적 특색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성벽 burg이고, 두 번째는 시장이며, 세 번째는 시청사 Rat Hous이다. 시청사는 도시 시민들의 신분러나 11∼12세기에 이르면 상인과 도시의 영주는 대립하게 되고, 상인들은 도시자치권을 획득하고자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12세기 이후에는 영주는 사라지고 도시공동체 시대가 12∼14세기에 열리게 된다. 12세기에서 13세기 중반까지는 상인길드가 도시의 실권을 장악하고, 도시자치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것을 막스베버는 귀족도시 라 불렀는데, 시청이나 시참사회의 구성을 상인길드가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13세기 중엽 이후에는 상인길드에 포함되어 있던 수공업자들이 독자적 길드를 조직하게 된다.8. 길드와 중세도시길드는 중세도시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성장하는데 크게 3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 번째는 8∼11세기에 古길드 라고 불리는 단계인데, 8세기 이후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끝나고 서양사회에 있어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는 과도기적 시기이다. 이 때에 서유럽에 등장하는 세력은 봉건영주를 중심으로 하는 Lordship 과 古길드를 중심으로 하는 Fellowship , 이 두 세력이다. 古길드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교회이고, 또 자치단체, 기사단, 병원, 고아원 등이 있다. 이 시기엔 아직 상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인길드나 수공업자길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古길드는 단지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서로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두 번째는 11∼12세기에 출현한 상인길드이다. 이 시기에 이르면 종래의 잡다한 길드는 사라지고, 도시발달과 함께 상인길드만이 남게 된다. 상업부활로 인해 국제적 무역이 발달하게 되고, 여기저기 이동하는 상인이 생겨나게 된다. 이 상인들에 의해 생겨난 상인길드 안에는 자연스럽게 시장법, 상인법, 관세법 등이 형성되게 된다. 이 이동하던 상인들이 점차 정착하게 되면서, 상인길드와 부근 도시영주간의 세력 다툼이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바로 도시혁명 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도시혁명으로 상인길드는 자치권을 획득하게 된다.세 번째는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동직길드 의 시기인데, 13세기 후반 많와 자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