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베버머리말이 글은 시민 계층이 자본주의 사회를 발전시키고 그 중심 세력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를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서 찾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막스베버는 시민계층의 윤리인 프로테스탄티즘이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금욕과 일에 힘쓰게 했음을 밝힌다. 이는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을 사람들의 윤리관 및 직업 의식에서 찾음으로써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의미도 가진다. 자본주의 사회를바라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돈'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이가치의 척도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없이 살 수가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을 벌고 싶어하고,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자유를 인정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무한정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가 '희소성의 원칙'이라는 것을 배워 알고 있듯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돈으로 대표되는 부(富)도, 비록 그것이 조금씩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 아주 많은 부(富)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조금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사회가 발전하고 분화되면서 이러한 부의 독점은 계급 또는 계층으로 나누어져 세습되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되면서 기존의 계층과는 다른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여, 새로운 물건과 부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들 신흥 부르주아지 계급 또는 시민 계층은 서양의 중세 사회에서 그다지 대접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해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그 이후 자본주의 시대에 세상을 지배하는 중심 세력이 될 수 있을까? 동 . 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이 돈을 버는 자유를 인정해 주고, 자기 자신의 재산을 갖게 해 주는 사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규모가 큰 기업이 나타났다. 이것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전개 과정이다.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많은 문제점도 지니고 있었다. 본래부터 어떠한 재산도 없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본래부터 재산이 있어서,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돈을 가지고 새로 공장을 세운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어, 이른바 빈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졌다.자본주의 사회가 보여 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세운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마르크스(K. Marx)와 베버(M. Weber)를 꼽을 수 있다. 흔히 베버는 자본주의 사회를 옹호한 학자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와 베버는 모두 19세기에 출생하여 살던 사회학자였으며 이들은 모두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그 폐해로 인해 자본주의는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주의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베버는 자본주의의 중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윤리관인 프로테스탄티즘이 어떻게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기능 하는지를 밝힘으로써 자본주의의 윤리적 기반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베버 역시 그 자본주의 정신이 소멸되어가는 것에 대해 경고와 우려를 표명하였다 물론, 베버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알고는 있었으나,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 주고 있는 어떤 정신이 있다는 점을 중시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것이라 보고, 결국 자본주의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생각 중에 누구의 것이 더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베버가 옹호한 초기의 자본주의 사회와 오늘날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열심히 학문에만 몰두하던 베버가 병에 걸려 평생을 고생하게 되는 것은, 그가 교수가 된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주로 종교 개혁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프로테스탄트에 의해서 자본주의 발전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 자본주의 발전과 프로테스탄트의 연결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본론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서두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종교 개혁을 수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질문의 형태로 제기하고는, 그의 저서 전체를 통하여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경제적으로 발전되어진 지역이 특별히 종교 개혁을 쉽게 받아들일 소지를 가졌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흔히 생각하듯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의 제목은 '문제'로, 자본주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제기이다.제1부 제1장은 '신앙과 사회계층'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여기에서 베버는 자본주의를 주도해 가는 계층이 종교적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종파에 속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와 초기 프로테스탄트 정신 사이의 관계를 순수한 종교적 성격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1부의 2장에서는 '자본주의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피면서, 이 정신이 자본주의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보여 주려고 애쓰고 있다.'자본주의 정신'이란 무엇인가베버는 자본주의 사회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단순히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은 언제나 인간 사회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갖게 된 금전 추구의 욕망에 윤리적인 통제가 가해지고 있었다는 점이 이전에 비해 특징적이라고 본다.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어 목가적인 분위기는 붕괴했으나, 상당한 재산이 모아져도 이자를 노리는 고리대금업에 사용되지 않고 다시 사업에 재투자되었다. 그 유는 합리화 과정에 참여하고 성공한 대 자본주의 정신'이다.이렇게 베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돈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에 재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을 벌고 나면 편안하게 살고 싶어하는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한 새로운 자본가들은 남들과 비교해서 윤리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보장해 준 것이 바로 개혁된 기독교, 즉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그러한 새로운 방식의 기업가들이 냉정하게 자제심을 잃지 않고 도덕적, 경제적 파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특별히 굳건한 성격이 요구되었다. 즉, 그러한 혁신 과정에서 불가결한 엄격하고도 단호한 윤리적 자질이 필요했던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과거의 전통에는 맞지 않는 특별히 다른 방식의 윤리적 자질이었다.근대 자본주의 정신과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의 밀접한 관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나서, 베버는 기독교의 직업 의식도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신의 부르심에 응해서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한다는 기독교적 직업관 이 사람들로 하여금 쓸데 없는 욕심을 버리고 오직 일과 금욕에만 힘 쓸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금욕과 자본주의 정신의 관계베버는 프로테스탄트, 그 중에서도 청교도들의 직업관 과 금욕적 생활 방식이 직접적으로 자본주의적 생황 양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 시민계급은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종교 개혁을 수용한 사람들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금전 추구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윤리적인 통제를 가함으로써 향락, 방탕, 재산을 낭비하는 일을 절제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금욕하는 것을 윤리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이렇게 얻은 자본의 양은 그의 신앙의 진실성을 나타낸다고 본다. 이는 자본의 획득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여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을 돕는다. 또한, 신이 내리신 직업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여야 한다는 청교도적 세계관은 이러특히 사치품의 소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에 이 금욕은 재화 획득을 전통적인 윤리적 장애로부터 해방시키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다.금욕주의에 의하면, 목적으로서의 부의 추구는 비난 받아야 할 최악의 것이라고 보면서도, 직업 노동의 열매인 부의 획득은 신의 축복이라고 보았다. 또한, 부단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세속적 직업 노동을 최고의 금욕을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거듭난 자와 그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표라고 본다.베버는 이와 같이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금욕주의적 직업관 이 자본의 획득, 즉 돈 버는 일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윤리적 정당화가 역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베버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그러면서 청교도들의 금욕 정신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청교도는 직업인이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금욕이 수도원의 방에서 나와 직업 생활로 옮겨지고 현세적 윤리를 지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 금욕은 나름대로 기계를 통한 생산이 기술과 자본에 의존하는 근대적 경제 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결말이러한 베버의 판단은 일단 옳다고 생각된다. 돈을 갖고 있는 것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얻어진 결과라면,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윤리적인 정당성, 즉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될 수 있다. 이것은 누구나 돈을 벌어야만 살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실이다.베버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 이미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이미 베버가 살고 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도 빛을 잃고 이었다는 것을 베버의 언급에서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들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는 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이 사회를 지탱해 줄 수 . ♣
오귀스트 콩트*오귀스트 콩트 생애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성격이 변질되어가던 1798년 몽펠리에서 하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오귀스트 콩트는 1814년 몽펠리에를 떠나 파리 이공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는 1816년 학생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가 다른 학생들과 함께 퇴학 처분을 당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기서 지낸 시절은 콩트의 생애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혁명으로 말미암아 구체제를 떠받치던 온갖 제도들과 확신들이 사라져버린 무질서 상태에 처해 있던 당시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재조직하려는 꿈을 키웠던 것이다.그후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생시몽을 만나 그의 제자 겸 조수가 된다. 이 대가와의 만남은 그의 실증주의 사상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1824년 생시몽과의 관계를 단절하기까지 약 7년간의 세월은 콩트의 실증주의 사상이 점점 무르익는 기간이었다.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당시의 학자들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던 그는 몇몇 초라한 자리를 제외하고는 사회에서 어떠한 공식적인 자리도 얻지 못했다.1830년부터 1842년에 걸쳐 실증철학강의 라는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를 모두 여섯 권으로 출간한다. 그리고 1851년부터 1854년 사이에 또 하나의 대작인 실증철학체계 라는 책을 출간하고 1857년 사망했다.*실증주의 기본정신과 3단계론실증정신은 주어진 현상의 관찰과 분류에 만족하고, 형이상학적 정신처럼 추상적인 이유나 원인을 캐려 하지 않으며, 신학적 정신처럼 초월 의지를 통해 드러나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려 하지도 않는다. 과학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과제는 검증할 수 있는 사상들간의 관계를 밝히고 그것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증주의는 사물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이러한 사실들 사이에 존재하는 법칙들에 대한 논의를 지향한다. 따라서 실증주의는 불확실하고 절대적인 어떤 것에 대한 추상적 탐구에 몰입하기보다는 확실하고 상대적인 사실을 관찰하고자 한다. 또한 실증주의는 과거의 신학적 허구와 형이상학 추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증주의는 하나의 체계를 찾아내고자 하지만, 그 체계는 신학체제에서 중시되었던 초월적인 것도 아니며,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추상적인 것도 아니다. 실증주의가 구축하고자 하는 질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 세상의 질서이다.콩트의 실증철학의 주요 개념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가장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인간 정신의 진보가 거쳐야 할 3단계 이론이다. 그것은 각각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단계이다. 신학의 단계는 인간 지성의 출발점이고 실증의 단계는 인간 지성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며, 형이상학의 단계는 이 둘 사이의 과도기이다.우선, 신학의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모든 현상의 원인을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의지와 섭리 속에서 찾고자 했다. 이 단계는 처음의 물신숭배의 시기에서 다신교의 시기를 거쳐 결국 일신교의 시기에 와서 완성된다. 이 단계에서 인간 정신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을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존재나 힘에 귀속시킨다. 그러나 신학의 단계가 끝나고 형이상학의 단계로 넘어감에 따라, 초자연적 절대자라는 관념은 어떤 추상적 본질이라는 관념으로 바뀌어 온갖 현상들을 지배하는 근원적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 탐구가 등장한다. 여기서 문제는 초자연적 의지와 섭리가 아니라 본질 원리로서의 궁극적인 동기이다. 콩트에 의하면, 이 단계는 사실 초자연적인 힘을 추상적 힘으로 바꿔 놓은 것일 뿐, 본질적으로 신학의 단계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 정신 발달의 궁극적 지향점인 실증의 단계에 오면, 형이상학의 단계의 특징을 이루고 있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는 거부되며, 사람들은 구체적인 현상들에 대한 정확한 관찰을 통해 사실들 사이의 일반 법칙을 발견하고자한다.사회유기체에 대한 콩트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는데, 사회정학과 사회동학이 그것이다. 사회정학은 사회질서를 탐구하는 각 부분들의 기능, 특징과 이들 간의 공존관계를 연구하며 사회의 존재조건들 사이의 조화와 질서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성과 사회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 동학은 사회 진보의 원리를 규명하고 사회의 운동법칙을 탐구하는 것이다. 콩트는 사회를 연속성의 개념으로 바라보고자 하는데, 그 근본적인 설명 원칙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인간 정신의 진보를 설명하는 3단계 의 법칙이다. 사회 정학이 인간성과 사회성의 기본 질서를 보여준 것처럼, 사회동학은 이러한 기본 질서가 결국 실증주의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 각각의 연구 대상은 간단히 질서 와 진보 라고 할 수 있다. 질서와 진보의 구분은 결국 균형과 운동의 구분으로, 사회의 재조직화에 없어서는 안 될 두 개의 중요한 개념이다.*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철학지금까지 오귀스트 콩트에 대한 기본이론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실증주의 논리를 통해 정신 을 규제하고, 도덕을 통해 마음 을 규제하고, 정치를 통해 행동 을 규제하고자 한다. 실증주의는 삶의 기술이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에 관한 이론에 대한 추상적인 탐구가 아니라 정신, 마음, 행동이라는 안간 정신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이다. 정신에 대한 마음의 우위를 그는 주장했다. 감정 속에 확립해야 할 질서는 이기적 본능들에 대한 사회성과 이타성의 우위이다. 그는 실증주의만이 현실성과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사회에 대한 철학의 책임 한계를 정하고 있는 이러한 거대한 종합이 현실적이고 항구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학의 3중의 영역, 즉 사변의 영역, 감정의 영역, 행동의 영역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변의 영역은 철학적 요소이고 감정의 영역은 여성적 요소, 행동의 영역은 민중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의 재조직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콩트는 실증주의 체제가 어떤 계급의 도움을 받아서 실현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데, 그들은 바로 노동자와 여성이다. 우선, 새로운 학설을 잘 받아들이고 사회의 재조직화를 담당하는 계급은, 이기적이고 야망에 차 있으며 형이상학적 편견에 젖어 있는 부르주아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치권력을 맡겨서는 안 된다. 민중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사회적 위기상황이나 소요의 수단으로서만 가능하다. 정상적 상황에서 민중의 의견은 여론을 통하여 반영된다. 정치가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완화시키는 것이 민중의 여론이다. 여론의 주된 관심은 정부의 형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내적인 재조직화, 다시 말해 각각의 계급들 사이의 관계와 부의 생산과 재분배의 문제에서 각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것이다.콩트는 실증주의가 확산되고 그 기능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여성은 물질적이거나 정치적인 활동을 완화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은 여성의 고유한 임무인 감정적 영향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은 여성의 고유한 감정적 영향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성은 사랑할 줄 알고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철학자들은 여성에게서 감정의 가치와 우위를 배운다. 노동자들은 여성에게서 사회적 헌신의 매력을 배운다. 여성은 철학자들을 지성의 메마름에서부터 끌어내며, 노동자들로 하여금 철학자들이 말하는 이타주의를 받아들이게 한다. 여성은 살롱에서 사상가들과 정치가들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이 바로 공공생활에 대한 여성의 영향력이다. 살롱을 자주 드나들 수 없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이 가정에서 행사된다. 처음에는 아내로서 나중에는 어머니로서, 여성은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평등이나 자유를 핑계 삼아 여성을 명령이나 활동적인 기능들에서 남성과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여성의 자연스런 목표에 반하는 일이다. 인류의 진정한 진보는 여성을 모든 종류의 권위와 노동으로부터 점점 더 배제시켜, 가정생활의 테두리 속에 집중시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