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목 차------------Ⅰ.서 론- - - - - - - - -7-11.연 구 의 목 적 및 방 법- - - - - - - - -7-1Ⅱ.행 정 이 념 의 이 론 적 검 토- - - - - - - - -7-11.능 률 성 과 민 주 성 의 의 미- - - - - - - - -7-12.능 률 성 과 민 주 성 의 대 립- - - - - - - - -7-23.능 률 성 과 민 주 성 향 상 을 위 한 이 론 적 모 델- - - - - - - - -7-4(1)능 률 적 인 행 정 모 델- - - - - - - - -7-4(2)민 주 적 인 행 정 모 델- - - - - - - - -7-5Ⅲ.한 국 행 정 의 능 률 성 과 민 주 성 의 분 석- - - - - - - - -7-51.한 국 행 정 의 능 률 성 의 저 해 요 인- - - - - - - - -7-52.한 국 행 정 의 민 주 성 의 저 해 요 인- - - - - - - - -7-5Ⅳ.한 국 행 정 의 능 률 성 과 민 주 성 의 향 상 방 안- - - - - - - - -7-61.한 국 행 정 의 능 률 성 향 상 방 안- - - - - - - - -7-62.한 국 행 정 의 민 주 성 향 상 방 안- - - - - - - - -7-6Ⅴ.결 론- - - - - - - - -7-7참 고 도 서서 론연구의 목적 및 방법행정은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이 모여 협동하는 행위(cooperative action)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협동적인 집단행동이라는 것이다.{1) 행정학, 백완기, p3바람직한 행정이 되기 위해서 행정은 주요 이념을 지향해야 한다. 행정 이념이란 행정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의존하는 일종의 기준으로서 흔히 바람직한 행정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 가의 지침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와 행정, 박수영외 공저, p93따라서 행정이 특별히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나 목표의 성격을 띄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행정은 행정운영상의 길잡이일 뿐, 윤영진 외 공저, p158∼159또한, 귤릭과 워릭은 능 률을 제 1의 공리라고 주장하였다.{) 행정학의 제문제, 지승우, p94사회적 능률성은 디목(Dimok, 1936)이 강조한 가치 개념으로, 그는 종래의 능률개념이 란 목적의식과 방향감각을 결하고 있어 기계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 면서 능률의 상대화·사회화·인간화를 주장하였다.{) 행정학, 백완기, p53즉 인간존엄성의 구현, 사회목적의 실현 등 사회적 차원에서 능률을 보아야 한다는 입장인데 사회적 능률성의 내용으로는 사회적 기능은 인간의 만족·목적·수단관계 등의 인간적인 면을 반영하는 질적인 능률 (인간적 능률)이고, 또한 합목적적이어야 된다. 즉 능률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합목적적 능률) 그리고 능률의 평가는 투입과 산출의 비율로 하지만, 이 평가가 절대적인 기준에 의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기준에 의해야 하고 사회적 능률 의 평가는 단기적이 아니고 장기적이어야 한다는(장기적 능률) 것 등이 포함된다.민주성이란 국민의 의사를 행정에 반영하고 국민을 위한 행정을 하자는 것이다.{) 행정학, 백완기, p51이러 한 행정의 민주성은 대외적으로 행정의 민주화는 국민의 의사가 우선하고 행정이 국민에 게 대하여 책임을 지고 국민의 요구에 대하여 대응성(responsiveness)을 가지는 것을 의 미하고, 대대적으로는 행정관리의 민주화로서 인간 욕구의 충족과 직장생활의 질을 향상 시키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행정의 민주화의 내용은 국민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 과 조직 구성원의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한 행정의 분권화, 행정 공개 원칙의 확립, 행정 통제의 강화, 행정 구제 제도의 확립, 행정 윤리의 확립, 관료제의 대표성, 행정인의 능력 발전 등을 포함하고 있다.능률성과 민주성의 대립바람직한 행정은 능률적인 동시에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양자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 두 이념이 상충되는 경우가 많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국가기능이 확대되고 입법국가로부터 행정국가로 전환됨에 따라 관료 역시 전문적인 기술인을 요구 하게 되고 엽관주의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본래의 의의가 없어지는 등 부정적인 면이 초 래되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무원이 대량 경질되어 자격이나 경험을 갖춘 유능한 공무원이 배제되고 인사행정이 정실화됨으로써 행정의 무질서와 비능률을 초래하였다. 또한 관료의 정당 사병화로 말미암아 관료가 국민이 아니라 정당을 위하여 주로 봉사하 게 되어 행정책임의 확보가 어렵게 되었다. 또한 불필요한 관직을 남설하여 공무원을 임 명하게 되는 까닭에 예산의 낭비가 심하게 되었다. 이러한 폐단의 극복과 정당정치의 부 패때문에 정당정치의 변질, 타락현상이 나타나면서 정당이 시민의 특권이익을 위한 공직 의 경질정책의 반영이라는 본래의 참다운 민주적 의미가 상실되었고 자본주의의 비약적 인 발전과 사회적, 경제적 조건의 변동에 따라 행정국가가 등장하였으며 행정기능이 양적 으로 증대되고 질적으로 변동하게 됨으로써 전문능력을 갖춘 유능한 관료가 요구되었다. 그리고 정당정치의 부패는 행정의 부패, 낭비, 비능률을 초래하였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능 률적인 행정이 요청되고 정부개혁운동, 행정조사운동이 벌어지는 등 실적주의 발달의 원 인이 되었다.실적주의란 공직에의 임면권(任免權)이 당파성이나 정실관계에서가 아니라 자격·능력 그리고 실적 등을 기준으로 행해지는 인사행정제도이다. 실적주의는 행정국가가 대두되고 엽관주의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이다. 실적주의적 인사행정은 소극적 실적 주의로부터 차츰 적극적 실적주의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데, 전자가 엽관주의의 방지에 중점을 둔 보호중심의 인사관리였다면, 후자는 전자를 포함하여 공무원의 능력발전 및 경 력발전에도 중점을 두는 관리중심의 인사관리라 할 수 있다. 실적주의는 오랜 기간에 걸 친 엽관주의에 대한 개혁운동이 1883년에 이르러 펜들턴법(Pendleton Act)의 제정으로 그 열매를 으로서의 지사, F. W. Taylor, Gilbreth의 기본동작연구, H. Emerson, Marshall, Ford의 콘베 이어 시스템을 이용한 유동작업·동시관리, Fayol의 관리일반원칙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테일러 시스템과 포드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테일러 시스템이란 전 생산공정을 최소단위로 분 해하여 각 요소별 동작의 형태·순서·소요시간 등을 시간연구와 동작연구에 의하여 표준화 하여 적정한 하루의 작업량을 과업으로 부여함으로써 최대한의 작업량을 달성하여 절약과 능 률을 실현하려는 기계적·합리적인 관리방법이다. 그러나 테일러의 과업관리는 인간이 육체 적·정신적 능력의 한계성을 노정시킴에 따라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기에 작업공정과정을 Gilbreth의 기본동작연구를 이용하여 세분화·전문화·표준화하고, 이를 인간이 아닌 기계로 대치하여 이동조립법 실시를 전개한 것이 바로 포드시스템이다. 포드시스템은 백색사회주의 라고도 하는데 경영을 사회에 대한 봉사의 수단으로 보았고 기업관리에 있어서 인간관계의 분석과 노사협조를 강조하였다. 또한 노무관리 개선을 중시하였다.(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하 루 8시간 근무제, 하루 5달러 임금 지급){) 脈 행정학, 남정집·오유묵 공저, p86∼87인간관계론은 1924∼1932년 사이에 시카고의 서부전기회사 호손공장의 실험으로 성립되었 으며, 하버드대학 경영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후에 E. Maya, Whitehead, F. Roethlisberger 등의 호손실험을 통해 정립되었는데 행정의 인간화·민주화·사회화·비경제 적 요인의 중시, 구성원 간의 욕구·취미·흥미·귀속성·혈연·지연을 중심으로 하는 비공식 조직의 중시, 사회적 능률성과 작업의 비경제적 동기의 강조, 동기부여의 외재성, 피동성 중시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맥그레거에 의해 제창된 X·Y-이론은 경영자나 관리자는 종업원을 대하는 관점이 경험을 통하거나 또는 타성적인 속단에서 보통 다음과 같은 인간관을 가진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일 을 싫어하며, 가 옴부즈만은 정부나 의회로부터 완전한 직무상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고 있다. 그 직무는 정부각료와 대법원장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의 비위(非違)에 관한 조사 ·판단 ·건의의 권한을 가지며, 시민으로부터 직접 제소를 받을 수 있다. 또 신문이나 기타 자료·정보에 의하여 스스로 인지한 문제를 직권으로 조사할 수도 있다. 옴부즈만은 재판이나 행정조치를 직접 취할 권한은 없지만, 어느 국가기관 에 대하여서나 건의할 수 있다. 오늘날 옴부즈만의 기능은 시민보호로부터 차차 보다 나은 공공행정의 촉진 으로 중점이 옮겨지고 있다.마지막으로 MBO는 management buy out의 약칭이다. 기업의 전부 또는 일부 사업부나 계 열사를 해당 사업부나 회사 내에 근무하고 있는 경영진과 임직원이 중심이 되어 인수하는 것 으로 경영자 매수 또는 경영자 인수라고도 하는데 이를 통해 분권화, 권한의 위임 등의 촉진 을 통한 관리를 할 수 있다.한국 행정의 능률성과 민주성의 분석한국 행정의 능률성의 저해요인한국 행정 능률성의 저해요인으로는 목적보다 수단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다원적이고도 정량적이지 못하고 업무 평가 면에서 지나치게 비용, 편익만 중요시하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며 행정의 노력, 시간, 경비의 남용에 대한 변명의 구실을 주고, 능률성의 개념을 흐렸다. 또한, 다양하고 대립적인 목적의 가중치를 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가치기 준이 없으며 생산성의 문제에서는 적절한 자료 분석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측정수치의 어느 한 쪽으로의 편중으로 인하여 다른 측면이 간과될 가능성 등이다.한국 행정의 민주성의 저해요인한국 행정의 민주성의 저해요인으로는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와 관주도의 경제개발 추진, 행정통제기능의 강화, 공직자윤리의 미확립, 물량위주의 전시행정 등을 들 수 있다.-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 권위주의는 평등의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지배·복종의 관 계를 강조하는 문화이다. 관우월주의나 관존민비사상은 권위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가 보편화되어 있는
{6 -{목 차------------Ⅰ.서 론- - - - - - - - -6-11.연 구 의 목 적 및 방 법- - - - - - - - -6-1Ⅱ.기 업 의 정 부 의 관 계 에 관 한 이 론 적 접 근- - - - - - - - -6-11.기 업 의 환 경- - - - - - - - -6-12.기 업 의 사 회 적 책 임- - - - - - - - -6-23.정 부 의 역 활- - - - - - - - -6-2Ⅲ.우 리 나 라 기 업 과 정 부 관 계 의 분 석- - - - - - - - -6-41.기 업 의 사 회 적 책 임 의 미 흡- - - - - - - - -6-42.정 부 의 역 활 의 한 계- - - - - - - - -6-4Ⅳ.결 론- - - - - - - - -6-51.한 국 행 정 의 능 률 성 향 상 방 안- - - - - - - - -6-52.한 국 행 정 의 민 주 성 향 상 방 안- - - - - - - - -6-5Ⅴ.결 론- - - - - - - - -6-5참 고 도 서서 론연구목적 및 방법기업과 정부의 바람직한 관계 모형을 설정하고 우리나라의 기업과 정부의 관계를 분석 하여 문제점을 파악하여 기업과 정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며 이에 따른 연구의 방법으로는 문헌연구가 사용되었다.기업과 정부의 역할에 관한 이론적 접근기업의 환경환경은 기업 경영자로 하여금 의사결정을 변화시키게 하는 요소이다. 이때의 환경은 사 회적 책임의 모델에서 외부자극을 의미하게 된다. 이 환경은 기업 경영자의 가치관과 태 도를 변화시켜 기업의 목표와 구조, 관리과정, 기술체계 등을 환경에 적응하도록 한다. 기 업이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대상으로서의 환경은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 즉, 기업은 어떤 환경에 대해 그 책임을 이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각 기업의 목적 과 기능에 따라 그 기업이 접하고 있는 환경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환경을 분 류하면 社會的 一般環境과 課業的 特殊環境으로 구분할 수 있다.먼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느냐에 의존한다. 사회적인 일반환경은 기업에 공통되는 환경이지만, 과업적 특수환 경은 기업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고 직접적인 영향력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업 에 따라서는 다른 기업의 사회적 일반환경이 자기기업의 과업적 특수환경이 되기도 한다. 과업적 특수환경에는 재화와 용역의 분배자이며 최종 소비자인 소비자와 원료, 시설, 부 품, 노동의 공급자인 공급자, 자기 기업의 소비자와 공급자에 대해 경쟁하는 다른 기업 등 의 경쟁자, 관련제품에 대한 기술적 요청의 충족, 기술발전에 따른 새로운 高質의 상품개 발 등의 기술, 정부의 산업에 대한 제도적 통제, 기업과 제품에 대한 대중 및 정부의 태도 등의 사회·정부기관이 있다.{) 기업의 목적과 책임, 최종태, 기업체정화추진중앙위원회(1984), p138위와 같은 두 가지의 환경분류에 입각할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본적으로는 과업 환경에 대한 것이 되고 좀더 확대될 경우에는 일반환경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론적으로 기업의 활동은 첫째, 기업의 책임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시장경제하에서 기업이 자원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 둘째, 기업에게 주어진 각종 규 제나 사회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일, 마지막으로 기업은 자발적으로 변화하는 사 회가치나 우선 순위에 적절히 대응하는 일로 정리할 수 있다.그러므로 기업은 돈의 힘을 빌려서 정치에 개입하거나 시장기구 이외의 방법으로 이윤 을 추구해서는 안되고 기업이 이와 같은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본다. 이론상으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대상으로는 고객, 기업 소속의 직원, 지역사회 그 리고 주주가 있다. 그러나 행정규제지대가 큰 몫을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기업이 관리 (care)'하는 대상에는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언론이 포함된다. 구체적으로 금융경색이 심 한 나라에서는 금융권과 채권자들도 관리대상이 된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할 대상집단도 다양하고 규모도 커진다고한 불신증가, 정부규제의 강화, 공해증가, 빈곤층증가 등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기업이 성공적으로 기업활동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지탱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기업이 존립하는 환경정화도 장기적으로는 기 업의 이윤추구활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정부의 역할기업을 둘러싼 환경주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지역사회·소비자·종업원·주주·은 행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기업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정부다. 정부는 때로는 지원도 해주지만 여러 형태로 기업경영에 간여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의 관계가 저음부터 이렇게 설정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업과 정부의 관련영역이 커진 책임의 일부는 기업들 의 자업자득의 측면도 있다. 그러나 현대기업에서의 정부영향력의 점증추세는 정부가 여 러 환경주체들의 의견을 수렴시키고 이를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사회적 추세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한 서구의 경우 초기의 기업들은 비교적 자유방임의 상태에서 활 동할 수 있었다. 자유스러운 경제동기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활동할 때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의 조화에 의하여 자원의 가장 효율적인 이용이 이루어진다는 논리가 그 밑바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자본의 논리를 쫓아 규모가 증대되고 경제력 이 집중되자 기업의 권력은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한 권력의 부작용이 보 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됨에 따라 기업과 관련된 여러 주체들의 견제와 압력을 받게 되 었다. 즉 대항세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정부는 하나의 공익을 대표하는 주체로서 기업에 대한 권력주체로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의 관계에 있어 역사적으로 정부의 역할은 다소 차이가 있다. 1930년대의 정부의 위치는 여타 압력주체들의 한 부분 으로서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양상은 다소 다르다.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직접적 인 관계의 場도 있지만 공익을 대표한다는 입장에서 여러 환경주체의 압력을 수렴하고 대변한다는 입장에 , 고객, 종업원, 경쟁기업의 이해를 보 호하는 역할을 한다. 여덟째, 정부는 기업활동을 직접 경영하는 것은 아니나, 규제, 감독, 감시, 공동결정을 통해 기업의 중요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기업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회목표에 부합하게끔 압력을 행사하고 연구개발비, 세금인센 티브등을 증가시킴으로써 이전지출(移轉支出)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방식들이 기업의 경영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이렇게 많은 부분에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게 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시장에 있어서의 결함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정치적 이유이 다. 종전에는 주로 전자가 주된 이유였으나 최근에는 후자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먼저, 시장에 있어서의 결함에 대해 알아보면 경쟁적 시장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면 이 는 문제에 대한 가장 최선의 해결책이다. 왜냐하면 이는 민주사회에 가장 긴요하고 정부 의 개입없이도 사회적 복지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시장 메카니즘의 비효율성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정부는 교정조치의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 메카니즘의 결함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자연독 점(공익사업 규제, 최저생산량, 이윤결정 등에 개입), 천연자원의 남용(장기적 자원보존을 위한 규제), 기업끼리의 경쟁이 과열되어 상호간에 파괴적인 상태로 갈 상태가 있을 경우, 외부비용, 불충분한 정보(제품의 품질·내용표시에 대한 정보, 작업위험에 대한 정보 등의 규정) 등이 그것이다.다음, 사회·정치적 이유로써는 점차 종업원이나 일반 국민은 생활의 질적 향상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이는 기업과 정부에 대한 압력을 주고 있고, 보다 큰 개인에 대한 배려가 정부규제의 원인이 된다. 이에는 보다 안전한 작업조건·차별철폐·의료혜택 등이 포함된다. 이는 물론 새로운 제도에 대한 압력은 아니고 과거정책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밀수나 부동산 투기, 뇌물 구성원은 강제나 강요가 아니라 계약을 통해 만난 사람 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을 합법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조직으로 기업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합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철저한 이윤극대화를 통해 보다 많은 이익과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계약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들의 계약 내용에 따라 그들이 생산한 부가가치를 분배해 나가는 것 이 당연한 일이다. 기업이란 조직이 공익을 먼저 생각하거나 공익을 상당부분 생각해야 한다면 이는 이미 기업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사회가 이러한 가치규범을 기 업에게 강요한다면 이는 많은 문제점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턴 프리드맨과 같은 학자는 자유사회의 존립을 위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는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게임의 구칙 내에서 이윤추구이며, 다만 사기 나 부정수단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자유로운 경쟁 에 잠가하는 페어플레이만이 윤리적으로 요구될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밀턴 프리드만은 회사에 의한 자선적 기 부행위는 바로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활동을 전공으로 하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론의 태반은 돈을 사용하는 소비행위가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업이 생산활동 이외의 분야에 종사할 때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비효율이 발생 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는 것이 근사하게 보일지 모 르지만 이것의 이면에는 상당한 비효율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을 재정리하면, 이해당사자들의 공헌에 따라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능률성은 기업고유의 업무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 때에 달성될 수 있다.정부의 역할의 한계한국사회는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기존의 사회체제와 윤리체제의 붕괴를 경험하였 다. 1960년대 이래 산업화과정을 겪어오면서 전통사회적 가치관은 전면 붕괴되고 이를 대 체할만한 사회어렵다.
{6 -서 론으랏차차 스모부 를 통해 본 스모(相撲)가끔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일본 NHK방송에서 이상한 경기를 보여줄 때가 있다. 기 저귀를 아슬아슬하게 차고 머리를 이상스레 벗어 넘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한 남 자들이 서로를 밀어내기에 여념이 없는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일본의 전통 경기인 스모 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씨름과 대 비되어 항상 거론되는 것이 일본의 스모 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거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그들의 몸매를 보면 작고 아기자기함으로 대표되는 일본 문화에서 어떻게 저런 스포츠가 인기를 끄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면 만약 이 스모 를 소재로 해서 영 화를 만든다면 일본 외 다른 나라에서 통할 수 있을까? 그들의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이 해 못한 채 그러한 영화를 보고 즐길 수 있을까? 이러한 독특함에 보편적 정서를 담아 세계 시장에 통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모든 질문들은 '수오 마사유끼' 감독의 '으라 차차 스모부'를 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스모는 균형미의 기적이다.영화는 한가로운 교정을 배경으로 아나야마 교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장 꼭도의 스모 예찬으로 시작한다. 세계 일주를 하던 중 스모를 본 세계적인 문호 장 꼭도가 스모를 예 찬한 내용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누가 엉덩이를 볼쌍 사납게 내놓고 스모를 하 겠는가? 여기서 이 영화가 가진 전략은 명확해진다. 일본의 국기이자 일본의 전통을 상징 하는 스모이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외면당하는 스모를 장 꼭도라는 이방인의 시선으 로 바라본 스모 예찬으로 시작해서 스모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한다. 가장 전통적인 소재이지만 이미 그 효력을 다해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소 재를 끌고 들어와서 그가 가지는 특유의 잔잔한 재미를 첨가해서 하나의 훌륭한 대중 상 품으로 다시 포장해서 관객에게 내어놓는 것이다.영화는 이런 전략을 착실히 따라간다. 정말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스모선수로서 경기를 갖는다. 처 음 장 꼭도의 시선으로 스모를 바라보던 감독은 영화 속에서도 이방인의 시선으로 스모 를 바라보며 스모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타자의 시선으로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며 마무리짓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제라면 결국 가장 전통적인, 가장 일본적인 것이 세 계적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스모의 개념스모의 어원레슬링의 한 종류인 스모(相撲)는 일본 국기(國技)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고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마와시 라 불리는 샅바와 오이초 라고 불리는 독특한 머리 모양과 함께 스모는 도효 와 순위 제도 등의 전통적 관습을 따르고 있으며 신도의 종교적 의식과 결합되었다. 스모는 한자로는 상박(相撲)또는 각력(角力)으로 표시하고, 일본어로 스모(すもう)라고 읽는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지지 않으려고 버티다 , 다투다 등을 뜻하 는 동사인 스마우(すまふ)에서 비롯되었는데{) 일본을 강하게 만든 문화코드 16, 나무와 숲, 김용의, p101몽고 씨름과 한국 씨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흔히들 스모를 일본의 국기로 알고 있으나, 국가가 스모를 일본의 국기로 지정한 적은 없다. 다만 1909년에 도쿄의 료고쿠에 스모 전용 경기장을 건립하면서 그 이름을 국 기관으로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기는 곧 스모라는 인식이 차츰 확산, 오늘에 이르고 있다.스모의 기원과 역사일본 스모의 지리적 기원에 관해서는 북방 전래설과 남방 전래설이 제기되고 있다. 북 방 전래설은 몽골 지역을 기원으로 해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며, 남방전래설은 남아시아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 먼저 일본의 남부 지역으로 전래 되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또 스모의 역사적 기원과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주장으로는 농 경 기원설이 있다. 즉 스모는 원래 곡식의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 의례로 출발했을 것이란 주장으로, 일본의 민속사학자와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정설로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문헌상에 보이는 일본 스모의 원형에 관해 논할 때에는 흔히치 시대에 들 어서게 되면서 점차 스모는 종교적이고 의식적인 색채가 옅어졌고 힘겨루기식의 격투기 가 되는 마치 요즘의 인기 스타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을 그린 니시키에는 브로마이드 사진처럼 팔리기도 했었다. 이러한 스모가 세속적인 흐름 속에서 다시 신성시되게 된 것 은 1925년에 천황배가 스모협회를 통하여 우승자에게 주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스 모는 스포츠와 신성한 의식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갖추게 되었고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 다. 스모에 있어서 신성한 의식이라고 하는 측면은, 예를 들면 소금을 뿌리는 것은 정화를 의미하는 의식이고 여성이 도효 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부정을 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몇 년 전 여성이 일본의 문부대신을 맡았을 때 우승 선수에게 문부대신배(文 部大臣杯)를 수여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스모의 구성요소리키시(力士)일본스모협회에 소속되어 스모를 직업으로 하는 프로 씨름꾼을 리키시라 부르며, 본명 대신에 연예인처럼 일종의 예명을 사용하는데, 이를 시코나라 한다. 시코란 스모에서 리키 시가 양다리를 벌리고 약간 주저앉은 자세로, 양쪽 다리를 번갈아가며 높이 쳐든 후에 힘 차게 지면을 밟는 동작을 말한다. 이 시코나는 스승이나 선배 혹은 후원자가 지어주는 경 우가 대부분으로, 스승의 이름 중에서 한 글자를 물려받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리키시 가 성장해서 계급이 높아짐에 따라 시코나가 바뀐다는 점이다. 리키시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스모협회가 정해놓은 의무교육을 마친 23세 미만의 남자, 키 173㎝ 이상, 몸무게 75 ㎏ 이상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키와 몸무게는 리키시가 갖추어야 될 최소한의 신체조건이다. 리키시는 스모베야라 부르는 스모팀에 반드시 소속해야 하는데, 본인이 입문하기를 희망하는 스모베야의 오야카타(親方)의 허락을 받아서 소속이 정해진 다. 오야카타는 스모를 지도하는 감독 겸 운영자로 새로 들어온 리키시를 일본스모협회에 등록함으로써 본격적인 리키시의 길을 걷게 된다土俵)스모를 볼 때 리키시 못지 않게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한국의 씨름판에 해당하는 도효이다. 이 도효는 혼바쇼가 열릴 때에 새로 만들어 혼바쇼가 끝나면 부수게 되어 있 다. 도효와 관련해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 도효에 여자가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금기 사 항이다. 금기의 이유는 도효는 신성한 공간이므로 달마다 월경을 하는 여자가 올라가면 부정을 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혼바쇼가 열리기 전날에는 반드시 도효마쓰리 라 부르는 제사를 지내는 등 혼바쇼 기간중의 도효는 신이 거주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간주 되고 있다.도효의 위를 보면 일본의 전통가옥 형태를 한 지붕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일본어로는 쓰리야네 라고 하며, 신메즈쿠리 라 부르는 전통가옥의 지붕양식이다. 이는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을 모셔놓은 이세신궁의 지붕과 같은 양식이다. 원래는 이 지붕 밑의 네 귀퉁이에 기둥이 세워져 있었으나, 1952년부터 리키시의 부상과 TV중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없애버렸다. 기둥 대신에 지붕의 네 귀퉁이 밑에 늘어뜨려 놓은 것이 네 가지 색깔로 된 커다란 수술이다. 청색, 주색, 백색, 흑색으로 된 이 수술은, 각각 사신도에 등장하는 청룡, 주작, 백호, 현무로 연결되며, 청춘, 주하, 백추, 현동이라는 사계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러나 이같은 사신 신앙이나 방위설에 근거한 해석은 도효가 정비되어 가는 과정에서 스 모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해석으로, 원래부터 도효에 이같은 상징적 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에도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구경꾼들 이 모여서 둥근 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스모를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이전에는 지금 과 같은 도효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을 강하게 만든 문화코드 16, 나무와 숲, 김용의, p115같은 맥락에서 주목을 끄는 것이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미즈히키막 의 존재이다. 미즈히 키 막 은 불전이나 무대 등에 둘러치는 막을 말한다. 속설에 의하면 여기에는 물의 기운으 로 불의 기 이 리키 시의 머리 상투는 일찍이 일본의 근대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메이지 4년에 단발령이 내 려졌을 때도 리키시의 상투만큼은 제외되었을 정도로 리키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 물이다.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머리 상투는 오이초 라 부르는 머리모양으로, 이는 머리 상투의 앞부분을 마치 은행잎처럼 넓게 펼친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오이초는 주료 이 상의 리키시가 혼바쇼에 출전할 때만 틀어맬 수 있다. 마쿠노시타 이하의 계급에서는 리 키시가 일상적으로 매는 존마게 라 부르는 평범한 머리 상투를 하고 혼바쇼에 나가도록 되어 있다. 리키시가 스모를 할 때에 매는 샅바를 마와시 라 하는데, 특히 도효 위에서 매 는 마와시를 시메코미라 한다. 마쿠노시타 이하의 리키시는 도효에 오를 때도 연습용 마 와시와 같은 것을 메도록 하고 있으나, 주료 이상의 리키시는 연습용과 다른 명주로 된 마와시를 멜 수가 있다. 참고로 이 마와시는 더러워져도 절대 빨지 않고,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불에 태운다고 한다. 또한 주료 이상은 도효이리 라 부르는 의식 등이 있을 때에 앞치마처럼 허리에 두르는 게쇼마와시 를 가질 수 있으나, 마쿠노시타 이하는 가질 수 없다. 이 게쇼마와시 는 한 벌에 백만엔 이상 간다고 하며, 리키시의 후원회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관례이다. 그리고 주료 이상의 리키시에게는 일본스모협회에서 월급이 지급되지만, 마쿠노시타 이하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또 주료 이상에게는 심부름이나 보 조 역할을 맡아 하는 리키시가 따르지만, 마쿠노시타 이하에는 따르지 않는다. 그 밖에도 식사할 때 계급이 높은 리키시가 먼저 한다든지, 신칸센 을 이용할 때에도 좌석의 등급을 다르게 배정하는 등 리키시의 계급에 따른 엄격한 신분제도를 적용하고 있다.스모의 의례성과 종교성기본적으로 스모는 도효 라 부르는 씨름판 위에서 리키시 라 부르는 두 사람의 프로 씨 름꾼이 힘과 기술을 다하여 승패를 가름하는 스포츠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스포츠이되 일 종이 의례에 가깝게 고도로 양식화한
{5 -신화와 문학의 관계신화와 문학은 공통점이 있는데 상징성이라는 본질면에서 그리고 고사성(古 事性)이라는 형식면에서 모두 동일한 언어예술이라는 점이다. 신화와 문학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언어공간에 있고, 신화에는 문학의 구조 원리가 순수한 형 식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언어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신화도 곧 문학이고, 기 능과 효용측면에서 본다면 문학의 원초적 간계 바로 문학이전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중국신화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신화 가 문학의 원형이 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위에서 열거한 신화와 문학의 특성 때문이다. 신화는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초인적인 이야기이므로 이는 사 람들의 흥미를 자아내게 하며 이것은 문학이 요구하고 있는 바와 같다. 때문 에 신화가 문학으로 발전하거나 많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라고 본다. 모든 중 국사나 중국소설사는 중국소설은 중국신화에서 유래되었다 고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별다른 이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신화와 문학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본질적인 면 : 인간의 상상력에서 출발했고 실재한 사물이나 진실에 바탕을 둔 상상 력의 발휘라는 공통점.형식적인 면 : 언어예술이라는 공통점효용적인 면 : 신화는 문학의 원형이다. 즉, 신화의 내용이 후세로 내려오면서 문학작 품의 재료, 소재가 되었다.신화 본연의 각도에서 보면 문학으로 발전이 진행되면 될수록 원래 형태는 사라지는 대신 문학적 예술성은 한층 강화된다. 다시 말해서 구두문학에서 성문문학으로, 민간문학에서 순문학으로 이행되면 될수록 원초적 신화의 특 성과 기능은 사라지고 예술적 가치와 효과는 재고되는데, 왕효렴은 이를 신 화의 해소(解消)작용 과 순화(醇化)작용 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소작용이란, 신화가 구전에서 성문으로 변할 때 신화에 내재한 비문학성은 점점 희박해 지고 문학성이 농후해져, 본래 자연본의를 탐구하거나 역사발전을 해석하며, 혹은 제의에 실용되는 효과 등 신화에 내재한 실제적 공리주의가 점점 사라 지는 것이다. 순화작용이란, 신화가 문학화 되면서 예술적 가치와 효과면에 서 문학작품상의 감상 의의가 점점 재고되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중국신화가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형태로 신화적인 면이 문학속에 나타 나는지 소설, 시, 희곡 그리고 현대문학으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신화와 소설초기소설로서의 신화중국에서 소설이란 말은 전국시대 말기에 나타났는데, 소설은 소가진설(小家珍說) , 즉 소가들이 꾸며내는 진기한 이야기 라는 뜻이다. 처음엔 하찮은 내용이었으나 발전을 거듭 하여 명청시대에는 삼국연의 , 수호전 , 서유기 , 금병매 , 유림외서 , 홍루몽 등의소설이 나와서 경전의 가치를 능가했으며 사회를 바로잡고 국운을 좌지우지하는 역학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선진시대에 신화가 초기소설로서의 몫을 다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 신화의 원류로서 중국신화의 내용을 보겠다. 이하에서 알아볼 중국의 창조신화, 영웅신화 의 내용은 이미 지난 수업시간에 언급된바 있으므로 간단히 살펴보겠다.창조신화한나라 초 회남왕 유안의 「회남자」 천문혼 에 기록된 내용은 텅 빈 무형의 상태인 태소에서 허공이 생기고, 우주가 생기고 기가 생겨났다. 청양하고 청묘한 것은 하늘이 되고, 중탁한 것이 엉키어 땅이 되었다. 는 것이다. 그리고 천지간 정기는 음양을 가 지게되고 이것이 합하여 계절이되고 다시 계절의정기가 흩어져 만물이 되었다 고 한다.서정의 「오운역년기」에 기록된 내용은 위의 내용과 크게 다를 것이 없겠으나 특이 한 것은 모든 것을 반고가 주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나눈 반고의 죽음 으로부터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한다.이러한 창세신화는 신비하고 웅장한 감이 있어 소설적인 이야기 감이 되기에 부족함 이 없어 보인다.영웅신화중국신화의 대표적 영웅들로 여와, 치우, 과보, 후예, 우 또한 그밖에 많은 이들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신화는 이미 앞에서 나왔으므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영웅신화 는 특히 소설의 원류고서 그 관계가 밀접하다. 그것은 개인의 영웅적인 일대기를 중심으 로 엮은 고사가 소설 자체가 지니는 속성과 잘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대신 화는 -다른 나라의 신화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신비하고 초인적인 것들로 재미있는 이야 기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하겠다.신화와 시중국 민간시가를 모아놓은 최초의 책 시경 을 비롯, 굴원의 작품으로 대표되 는 초사 가 있다. 초사 는 작품들 속에서 신화재료를 이용하여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환상으로 당시 초나라의 부패한 정치, 상황에 대한 울분을 펼쳐보였다. 한나라때에 들어와 신화의 영향을 확실하게 받고 또 신화에서 소 재를 많이 따온 것은 라고 하는 문체였다. 헌데 아쉽게도 라는 문체는 궁정이나 궁전의 번성함을 묘사하는 것을 주로 삼아 임금에게 바쳐졌기 에 신화는 모두 문장을 꾸미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조식의 영지편 , 정미편 , 원적의 영회 , 곽박의 유선시 , 도연명의 산해경 등등이 이때 쓰여진 신화바탕 의 작품들이다.당으로 넘어가면서 신화를 재료를 취한 것보다 신화에서 재료를 취한 것이 더 많다. 그리고 신화에서 재료를 취해 온 것이라도 어느 정도 신화의 요소를 띄 고 있다. 아마도 이때 도교를 중시하고 노장 사상을 숭상하고 있던 까닭일 것 이다. 아무튼 당시 시인들 중에서 신화적 분위기를 채용한 시인들이 있으니 이 백, 이하, 이상은 등이 대표적이다.이중 우리에게도 유명한 이백의 시를 살펴보자.- 여와가 황토를 갖고 놀다 덩어리로 사람을 만들었다네- 정위조는 나뭇가지와 돌을 힘써 물어오고 산을 등에 지고 있던 거북이 들은 고종될 곳 을 잃었네- 옛날에 예가 아홉 마리 까마귀를 떨어뜨려 한르과 사람이 모두 편안해 졌다네- 흰 토끼가 약을 찧으니 가을에서 다시 봄이 되었지만 항아는 홀로 외로이 살고 있어 누구와 이웃될까- 요희는 천제의 딸, 정채롭게 아침구름으로 변했다네당시 어지러운 시대적 분위기와 사회적 환경에서 이백은 우울한 현실에 고민 하다가 신화와 선화에서 제재를 취하여 굴원처럼 자신의 우울함을 표현한 것이 다. 다른 예는 촉도난 같은 작품을 보면 다섯 장사의 촉땅으로의 여정을 보여 주며 안록산의 난 을 피한 통치자들의 우매함을 비판하였다.
{5 -장광직 선생의 신화, 미술, 제사 에서 저자는 중국문명의 기본적인 형태가 이루어진 하·은·주 시기를 이라 명명하고, 그 시기의 중국사회와 문명을 연구함에 있어 역사, 신화, 무속, 문자 등의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중국문명의 기원과 특징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즉 중국문명의 기원이 정치권위의 흥기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볼 때 하·은·주시대의 정치문화는 무술적 색채를 매우 강하게 띠고 있다. 당시의 군왕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더욱 공고하게 하기 위해 당시 민중들의 무속적 종교관을 이용했는데, 즉 자기 선조의 탄생신화를 꾸며 만들어 자기 씨족의 정치적 권위를 당위화시켰고, 하늘상제와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독점·운용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와 독재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했다. 청동기의 사용에 있어서도 생산성 도구를 제작하는 데 쓰인 예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대부분이 제기를 만들거나 전쟁과 관련된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아도 중국문명이 무속적 관념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고대중국에서 정치적 권위를 획득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조건들로서 씨족·제사·예술·문자·도덕적 권위·무력·재력 등을 나열하고 그것들의 내용 및 상관관계를 추적하고 있다.고대 중국의 하(夏)·상(商)·주(周) 세 왕조는 각각 다른 씨족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하(夏)왕조는 정사(正史)에 기록된 최초의 정치왕조로서 사성( 姓)의 씨족에 의해 창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기가 너무 오래되어 관계사료가 유실되었으므로 시조의 탄생신화 또한 확실치 않다. 상(商)왕조는 자성(子姓)의 씨족에 의해서 건립되었으며 그 시조는 설 이다. 주(周)왕조는 3대 가운데 가장 뒤늦은 왕조로 희성(姬姓)씨족에 의해 건립되었다. 하(夏)·상(商)·주(周) 세 왕조가 각각 다른 사( )·자(子)·희(姬)의 씨족들에 의해서 건립되었으니, 각 왕조의 흥망은 많은 씨족들이 병존해 있는 정치영역 위에서 각 씨족들의 운명을 결-cousin marriages)가 있었던 듯하다. 고종사촌간의 혼인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지위가 평등한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이종사촌간의 혼인은 주로 지위가 같지 않은 친족간에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미묘하면서도 불안정한 정치적 평형을 유지하려 했던 것 같다.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고대중국의 정치모습 속에는 수백개의 서로 다른 씨족과 종족에 의해 이루어진 성읍들이 분포되어 있었고, 그 성읍들은 친족관계나 멀고 가까운 관계에 따라 정치적 등급이 있는 체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씨족과 종족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성읍·씨족·종족의 등급분별은 그 평형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씨족들이 각기 자신을 신(神)의 후예라 일컬으며 정치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친족제도에 의한 등급분류는 엄격한 등급체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고, 등급분류를 위한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게 되었다. 많은 경쟁자들이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새롭게 정치적 등급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공(功, merit)을 기초로 하는 가치평판(價値評判)이었다. 그러나 하왕조나 상왕조와는 달리 주왕조 사람들은 천명이 선택한 권력은 하늘의 뜻과 같이 막강하다는 전형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통치자는 천명을 받았다고 하였다. 또한 다른 왕조로부터 왕권을 탈취하지 않은 하왕조와는 다르게 상왕조는 하로부터 통치권을 탈취했기 때문에 찬탈행위에 대한 변호와 합리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주왕조와 같은 관념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통치권은 보응(報應, deservedness)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관념이 있었던 듯하다. 고대 중국에 있어 왕조의 순환은 문명의 성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개별사회집단의 정치적 운명이 뒤바뀌고, 지도자의 통치권이 도덕적 권위를 얻느냐 잃느냐 하는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공(功)으로서 통치권을 갖는 기초로 삼는 것이 분명한 유학의 이상이기는 하지만 고대중국에서는 통치권을 잡는 데 필요한 제왕들이 곧 무당들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은 갑골복사를 통해 알 수 있는데 당시 왕들의 행위는 바로 무당의 일과 같았다. 물론 왕만이 당시의 유일한 무당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에 고대중국의 무당들의 모습과 행위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전의 고대중국의 무당에 관하여 무엇보다도 설득력있고 확실한 자료는 갑골문자나 동물의 문양 등이 그려져 있는 상주시대의 기물이다. 상왕조 때의 점복(占卜)행사는 오로지 임금의 의식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실시되었는데 이때 사용되는 동물의 뼈는 모두가 희귀한 것들로서 아마도 그러한 것들로 천지를 교통하는 수단으로 삼아 그 가치를 높이고자 헹던 듯 싶다. 이 시기에는 왕과 신령이 서로 상합하는 의식이 분명히 있었고, 그 만남은 모종의 중개인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점복활동 또한 중개자의 역할을 하는 복인과 조상의 영이 상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동물 문양은 은상과 서주 초기의 청동장식예술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상왕조 말기인 안양(安陽)시기에 최고조로 발전했는데 상대 말기와 서주 초기에 이르러 동물 문양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이러한 동물 문양은 두 종류, 즉 실존하는 동물과 신화적인 동물로 분류된다. 더불어 상주시대 청동기의 동물 문양은 항상 기물 위에 대칭으로 표현되었다는 것, 가끔 사람의 모습과 함께 등장한다는 두 가지의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왕족이 양조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저승에 있는 왕족의 조상들 또한 같은 식의 배열을 하리라 믿었으며, 왕실을 위해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무당도 필히 소(昭), 목(穆)의 두 조를 겸하여 살펴야 했으므로 제사를 행할 때 무당을 돕는 동물정령도 쌍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항상 기물 위에 대칭으로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주시대 청동기의 동물 문양은 물(物)을 사용해서 하늘과 땅이 화합할 수 있게 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의 복도 받고자 하였던 것이니 주조한 정에 각종 희생동물의 형상을 새겨넣었다는 해석에 의심의 지역, 대문구문화지역, 용산문화, 동남연해문화지역 등으로부터 얻은 도기부호의 주요특징은 한 도기에 하나의 부호만이 새겨져 있고,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호가 도기를 굽기 전에 새겨놓은 것이며, 매 유적지마다 출토된 도기의 수량에 비해 부호가 있는 도기의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부호의 종류 또한 매우 적고 두 군데 이상의 유적지에서 동시에 출현하는 부호의 수는 더욱 적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찍이 특수한 조건이나 어떠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도기 위에 부호를 새기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같은 관습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하는 것과, 여러 곳에서 동시에 출현하는 부호들은 아마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같은 사물을 표시하는 상동부호(相同符號)일 것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도기부호는 상주시대 복사(卜辭)속의 갑골문자와 완전히 똑같다. 이는 유사 이전의 도기부호가 비록 문자는 아닐지라도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단편적인 부호 역할을 했을 것이며, 최소한 중국 최초 문자의 기원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도기부호는 표시하고자 하는 바의 양이었는데, 바로 당시에 몇 개의 사회집단이나 종족집단을 구분하던 표시로도 볼 수 있다. 즉 이름이나 족휘 등의 부호나 관념이 이전에 이미 존재해 있어 그 도기가 특정한 이름을 갖는 어느 종족에 속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고대중국의 문자 가운데 최소한 어느 일부분은 그 종족의 정치나 종교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족휘로부터 변천되어왔을 가능성이 많다. 문자의 힘은 그것과 지식의 불가분의 관계에서 기인된다. 왜냐하면, 지식은 이미 돌아가신 조상들로부터 오는 것이고, 살아있는 후손들은 문자라는 매개체를 빌어 조상과 교통할 수 있으며 더불어 그들의 지혜를 전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 있어서 역사지식은 지식을 점유하고 있던 집단의 구성원들에 의해 장악되었는데 지식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었으며, 역사학이라는 것은 이 목적에 도된다면 중국문명이 시작될 때에 정치문화는 그 가운데에서 주인공역을 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취락형태의 연구는 광대한 구역 가운데에서 동시대 유적지간의 서열을 밝혀내는 데에 있어 기본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중국 청동기시대의 취락형태와 관련되는 자료가 매우 결핍되어 있어 단지 문자자료만을 주요증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 또한, 건축과 분묘의 관찰을 통하여 사회적인 지위의 차별을 구별하는데 특정한 규모와 일정한 부유 수준을 갖는 건축물 혹은 분묘는 또한 특수한 방법에 의해 분류되고 있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 사회와 정치의 층차별 집단모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조직적인 푠력행위의 증거는 바로 전쟁이 이미 사회의 필수요소로 등장하였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무력동원은 개인의 행위나 우연한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인데 화살촉 공장이나 대열을 갖추고 있는 사병 등이 있는 유적의 발견, 혹은 희귀금속을, 생산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사용하지 않고 무기를 제조하는 데 사용하였다는 것 등은 모두 전쟁이 이미 국가의 중요한 직능으로 자리잡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천지를 교통하는 데 사용되었던 물질적 수단들은 분명히 고고학 방면의 연구를 통하여 정치권위의 존재에 대한 유력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고고자료가 가르쳐주는 바로는 황하유역에서 농업을 흥기시킨 배리강문화로부터 촌락농업이 고도로 발전한 앙소문화까지는 위에서 서술한 특징을 갖는 정치권위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고, 또한 당시 이미 명확한 사회나 정치의 분화가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섬서의 앙소문화에 이르러서는 세 가지 주의할 만한 요소가 발견되고 있다. 첫째는 서안 부근에서 발견된 반파와 강채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앙소문화 촌락의 배치형태이다. 이 촌락의 형태는 가옥 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단일친족체임을 강력하게 증명한다. 둘째, 반파와 강채의 많은 앙소문화 유적지에서는 도기를 만든 사람의 기호가 새겨져 있는 도기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에 씨족과 종족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