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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철학] 백제의 사상 평가A좋아요
    百濟의 思想에 대한 硏究{- 目 次 -Ⅰ. 序論2. 百濟의 佛敎思想Ⅱ. 本論1) 兼益의 律學1. 百濟의 儒敎 思想2) 涅槃等經義와 法華經 연구1) 百濟의 天人觀3. 百濟의 道家思想2) 學術敎育과 儒敎思想Ⅲ. 結論3) 政治理念과 儒敎思想Ⅰ. 序論百濟는 高句麗와 마찬가지로 북방의 扶餘族 일파가 南下하여 漢江 流域에 있던 諸族을 통합하여 이룬 국가이다. 따라서 百濟의 建國說話도 북방의 부여계인 高句麗의 朱蒙說話에서 끌어오고 있다. 하지만 토착민들은 馬韓 계통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남방의 三韓 계통의 說話와 風俗도 百濟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곧 나라를 건국한 지배층에서는 扶餘·高句麗 계통에, 토착하여 살아왔던 사람들은 韓 땅에서 계승되어 온 그 나름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百濟는 한국 고대의 北方文化와 南方文化의 요소를 온전하게 두루 간직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질적 요소와 이질적 요소를 같이 가지고 있던 이 두 文化가 고대 한국 문화의 특징인 溫和함, 부드러움, 調和性 등으로 쉽게 融合되어 百濟 특유의 溫和하고 寬裕하며 調和를 중시하는 사상{) 宋恒龍, 『韓國道敎哲學史』, 成大 大東文化硏究院, p.17을 잉태시켰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 고대의 北方文化와 南方文化를 융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中國文化의 섭취에 있어서도 中國 北方文化 뿐만 아니라 다양한 中國 南方의 학술과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百濟는 비록 위치상 북쪽으로 好戰的이고 강한 漢四郡, 高句麗와 대치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國都를 南遷한 후로는 海路를 통해 중국 南方과 文物을 교류할 수 있었고, 또 아직 미개상태에 있던 일본과 접촉할 수 있어 당시로서는 國際交易의 중심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렇듯 部族의 複合性, 國都의 流動性, 그리고 交易의 國際性을 지닌 백제 문화의 특징은 開放性과 多樣性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본고에서는 百濟 문화에 수용되어 思想的, 倫理的으로 영향을 준 儒敎 思想, 佛敎 思想, 道家 思想에 하게 되는 수용과 그것의 단순한 전래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儒敎의 한국 수용 시기는 대략 삼국시대 高句麗의 太學設立(372년)과 때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시기는 儒敎가 高句麗 사회 내에서 상당한 기능을 발휘하면서 사회적으로 역할이 중요해지자 太學을 設立하여 이를 한층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을 강화한 시기라고 보여 儒敎가 사회 안에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百濟{) 『三國史記』24. 百濟本紀 2. 近肖古王 30年條, 古爾王 27年條 참조에, 그리고 200여년 후에 新羅{) 『三國史記』1. 新羅本紀 1. 逸聖王 11年 및 同 2. 新羅本紀 2年 伐休王 4年 참조.에 각각 儒敎가 정착, 수용되었음이 여러 기록들을 통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儒敎의 한국 전래 시기는 太學 設立 이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나, 그 전래 시기가 구체적으로 언제쯤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여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본 장에서는 儒敎 思想이 정착, 수용되어진 시기인 삼국시대의 삼국 가운데 百濟의 儒敎 思想에 대하여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1) 百濟의 天人觀儒敎思想의 형성과정에서는 중국 夏·殷·周 시대의 종교적 禮의 실천과 神을 接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서의 자세를 갖춘다는 종교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전통적인 종교 속에는 자연신의 숭배사상 요소와 조상숭배사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중국인들의 天에 대한 관념과 人間觀 형성의 바탕을 이루었다.이와 같은 天의 관념과 人間觀 형성 등은 백제의 儒敎 思想 수용 과정 속에서도 天人關係의 문제로 대두되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百濟의 시조 溫祚王은 開國元年에 東明王의 祠堂을 건립하였고, 17년에는 사당을 지어 國母를 제사지냈다.{) 『三國史記』,「溫祚王條」, 元年 夏五月立東明王廟 十七年……夏四月立廟以祀國母또한 20년에는 큰 제단을 세우고 몸소 天地에 祭祀지냈더니 기이한 새 다섯 마리가 나왔다는 기였다. 宋나라 元嘉曆을 사용하여 寅月로써 正月을 잡았다. 또한 의학과 약학을 해득하였으며, 점치는 법과 관상 보는 법도 알았다. 또 투호와 저포놀이도 있었으며 특히 바둑을 숭상하였다.{) 『周書』,「異域傳 百濟條」, 兵有弓箭刀 , 俗重騎射, 兼愛墳史, 其秀異者, 頗解屬文, 又解陰 陽五行, 用宋元嘉曆, 以建寅月爲歲首, 亦解醫藥卜筮占相之術, 有投壺樗蒲等雜戱 然尤尙奕棋또 『舊唐書』 百濟條에서는, 그 서적에는 五經子史가 있으며, 表疏文은 중국의 法式에 의한다. {) 『舊唐書』「百濟條」 其書籍有五經子史, 又表疏竝依中華之法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기사에 따르면 百濟人들은 經學, 文學, 醫學, 藥學 등 다방면에 능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百濟의 학술은 經學을 중심으로 한 漢學 전반에 걸쳤다고 말할 수 있다.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중국 漢代의 학술과 그 후의 魏晋南北朝의 학술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漢代에는 武帝가 태학을 세우고 오경박사를 둔 이래에, 儒學이 기타 諸子學을 물리치고 독존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오경을 訓 하고, 오경으로 정치, 문화, 제반의식의 근거로 삼았었다. 그러나 魏晋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주의가 대두하여 『老子』『莊子』『周易』 등 소위 三玄을 연구하는 것이 유행하였으며, 淸談文學 같은 낭만적인 문풍이 일어났고, 문학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남조에서 강하게 작용하였다.초기 백제는 漢, 高句麗 등의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아오다가 東晋과의 관계를 맺은{) 『南史』,「百濟條」 晋義熙二年, 以百濟王餘映爲……百濟王후부터는 남방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특히 梁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였다. 聖王은 19년(541)에 사신을 梁에 보내어, 조공하고 『涅槃經』과 毛詩博士와 工匠, 畵師 등을 청하여 얻어 왔으니,{) 『梁書』,「百濟條」 大同七年, 累遣使獻方物, 幷請涅槃等經義毛詩博士이때 남조풍의 毛詩가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경중에서 『詩』를 요청한 것은 당시 百濟의 문학적 요구가 높았었던 데에서 연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百수 있으며, 南堂이라는 政廳이 정비되어 여기서 의식을 갖추고 정사를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초기의 南堂은 部族集會所의 직접적인 後身으로써 회의기관이 되고, 실무를 집행하는 기관도 되는 국가의 중심적인 政廳이었으나, 후기에는 간간이 개최되는 중대회의 이외에는 의례적인 반형식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李丙燾,『古代南堂考』, p.15이는 고대 중국의 明堂과 똑같은 성격의 기관이었다. 이를 보면 南堂은 백제의 전통적인 집회소에서 『禮記』 明堂篇에 나오는 明堂制度를 수용하여 발전시킨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다음으로 百濟의 律令에 대하여 살펴보면 百濟는 律令의 반포와 시행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전하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武寧王陵에서 출토된 買地卷에 不從律令 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 律令이 天帝의 율령인가, 혹은 世間의 율령인가 하는 것은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百濟에서도 율령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律과 令의 本旨는 儒敎 思想의 근본 이념인 仁의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百濟에서 성립된 律令의 수용과 반포에는 그 전에 이미 율령의 基本思想이라고 할 수 있는 儒敎 思想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전제함도 가능하다.위의 내용을 통해 百濟에서는 儒敎의 典章制度 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관제와 행정조직, 복식, 의례 등에 활용함으로써 국가체제를 정비하였으며 이를 통치이념으로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2. 百濟의 佛敎 思想개인의 진실된 自覺과 解脫을 설파하는 自得의 宗敎思想인 佛敎{) 金谷治(外) 『中國思想史』조성을(역), 이론과 실천. 1986. p.181는 科學을 갖지 못했던 古代의 인간들이 自然 그 자체를 神으로 믿던 原始宗敎들과는 달리 심원한 哲學思想과 관련된 宗敎{) 謝世輝 『世界史를 西洋人의 눈으로 보지말고 東洋人의 눈으로 보자』, 韓國經濟新聞社, 1986, p. 53-62로서 印度의 宗敎改革運動 속에서 成立되었다. 그 후 아소카왕의 佛敎崇尙定策과 전파 노력에 힘입어 印度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점차 다. 다만 그가 온 이후의 일들, 즉 그가 온 이듬해에 漢山에 佛寺를 창건했으며 百濟人 승려 10인을 배출했다는 것과{) 주 32. 참조.阿莘王이 백성들에게 佛法을 믿어서 복을 구하라 는 교를 내리고,{) 東國大, 『佛敎文化史』, p.122法王이 살생을 금하는 명을 내린 후 이듬해(600)에 僧侶 30여명을 배출하고 도성에 王興寺를 창건하게 한 일,{) 『三國史記』26 法王 1年 冬十二月 下令禁殺生同 2年 春正月 創王興寺 度僧三十人武王이 彌勒寺를 益山에 창건하게 한 사례 등이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는 모두 百濟 佛敎의 展開過程이 왕실이 주체가 되어 祈福性을 중시하고 왕실을 위한 주술적 신앙 요소가 농후한 성격의 佛敎가 受容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1) 謙益의 律學百濟 佛敎의 독특한 특성으로는 戒律宗의 성행을 들 수 있다. 특히 謙益은 戒律을 연구하고 律藏을 구하기 위해 印度에 직접 가서 求法巡禮함으로써 다른 지역을 거치지 않은 印度 佛敎를 직접 접하고 돌아와 梵本 原典을 다수 번역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百濟 律宗의 始祖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내적으로는 초기 佛敎敎壇의 紀綱을 확립하고 출가승단의 位階秩序를 정립하였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일본 등 이웃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는 威德王 35년(日本崇峻元年, 588)에 일본의 善信尼 등 3尼가 건너와 律學을 배워갔고{) 『元亨釋書』, 善信尼……白(大臣)蘇馬子曰 出家之人 以戒爲地 願赴百濟受戒學 崇峻元年 馬 子付信百濟使 求法發遣 三年春信等三尼 自百濟歸, 惠聰도 威德王 37년(590)에 蘇我馬子에게 律學을 說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謙益의 이러한 엄격한 戒律適用은 百濟社會에 敎壇의 淸淨을 모범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 전체에 윤리적, 도덕적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를 안겨주고 있다.{) 李能和, 『朝鮮佛敎通史』참조.2) 涅槃等經義와 法華經 연구『三國史記』에 의하면 聖王 19년에 왕은 梁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겸해서 毛詩博士. 涅槃 등의 經義 및 그 匠·畵師 등을 청했다. {) 『三國있다.
    인문/어학| 2002.12.12| 11페이지| 1,000원| 조회(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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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의 중관파와 유식파의 비교 평가A좋아요
    § 중관파와 유식파란?중관파인도 대승불교의 중요한 학파의 하나로, 중도(中道)를 관하는 학파라는 뜻이다.용수{) 나가르주나(N g rjuna). 남인도의 불교가(佛敎家)(150?-250?). 중관학파(中觀學派)의 개조(開祖). 空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대승불교(大乘佛敎)를 선양하고,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로 일컬어짐. 저 서에 중론송(中論頌) , 십이문론(十二門論) , 대지도론(大智度論) 등이 있음(龍樹 ; 150?-250?)의 《중론(中論)》을 기본으로 하여 반야공관(般若空觀)을 선양한 학파로서 후에 유식(唯識)을 설하는 유가행파(瑜伽行派)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2대 사상이 되었다. 《중론》의 설은 모든 존재가 연기성(緣起性 ; 相依相待的 관계)이기 때문에 그 자체의 고유한 자성이 없으며 그러므로 공이라 한다. 그런데 이 공은 유·무의 극단이 없는 것이므로 중도라는 것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데에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용수의 제자 제바{) 서기 170∼270년경 무렵에 생존한 인도의 논사. 용수의 제자. '애꾸눈 제바'라는 뜻으로 가나 제바라고도 불린다. 오로지 공의 법문만을 창도하는 저술을 남겨, 후세에는 용수에 버금하는 중관파의 조사로 받들어졌다. 외도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提婆 ; 170?-270?)는 《백론(百論)》등을 저술하여 외도와 소승의 교의를 논파하고, 제바의 제자 라후라발타라(羅 羅跋陀羅 ; 200?-300?)는 《중론》의 팔불(八不)의 의의를 주석하였다. 그러나 중관파가 학파로서 명확한 형태를 취한 것은 불호(佛護 ; 470?-540?) 시대로부터 고학의 근본은 무에 집착하는 일이 없는 공의 입장이다. 일체가 공이기 때문에 실천이 가능하며, 만약 공이 아니라면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불호 이후 공의 인식 방법에 대한 의견이 나뉘어 2파가 생겼다. 하나는 불호의 계통으로서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로 불리며, 또 하나는 청변(淸辨 ; 500?-570?)으로 대표되는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이다. 전자로부터는 월칭(中觀波)와 대립하면서 300-700년경까지 발전·변천하였다. 이 학파의 최초기의 경전은 ≪해심밀경(解深密經)≫과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毘達磨經)≫으로서 그 성립연대는 30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 후 미륵(彌勒){) 3, 4세경(270∼350년?)에 생존했던 인도의 학승.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반야, 공 사상의 토대를 확립한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이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등을 지어 그 학설을 발전시켰다. 미륵의 가르침을 받은 무착(無著 ; 310-390?)은 ≪섭대승론(攝大乘論)≫≪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등을 저술하고 아뢰야식(阿賴耶識){) 유식설(唯識說)에서 내세우는 가장 근원적인 식(識)이며 마음의 종자를 깊이 간직하고 있으므로 장 식(藏識), 다른 식(識)을 움직이는 기반이 되므로 근본식(根本識)이라고도 한다.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의 의식구조 및 유식무경(唯識無境), 유식관의 실천에 대한 조직적인 학설을 세웠다. 무착의 동생이며 제자가 된 세친(世親 ; 340-400?)은 미륵·무착의 제논서에 주석하여 많은 저작을 하였으며, 또한 종래의 제사상을 집성,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지어 유식사상을 대성하였다.세친 이후는 ≪유식삼십종≫의 해석을 중심으로 학파가 발전하였다. 덕혜(德惠 ; 420-500?){) 6세기경 생존. 남인도 출신의 학승. 유식(唯識) 10대 논사 중 한 사람으로서 3장(藏)에 통달했다. 마갈다국에서 수론(數論) 외도와 논쟁하여 이긴 뒤에 이름을 떨쳤다. 제자 중에 안혜(安慧)가 있다. 수상론(隨相論), 유식삼십송석(唯識三十頌釋) 등을 저술했다.의 아래에 안혜(安慧 ; 470-550?)가 나와 많은 주석서를 썼으며, 그 계통에서 조복천(調伏天)이 나왔다. 또한 안혜와 대개 같은 계통에 진제(眞諦 ; 499-569){) 499∼569년 생존. 서인도 우선니(優禪尼)국 출신의 학승. 양 무제의 초빙을 받고 546년에 중국으 로 와서, 많은 경전을 번역했다.記)를 저술하였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경 론을 한역하여 대역경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총 75부 1,330권을 번역했다.은 계현에게서 공부하고 귀국 후 ≪성유식론≫ 및 그 외의 많은 유식학파의 경·론을 번역하였다. 그의 문하 자은대사(慈恩大師) 규기(窺基 ; 632-682){) 632∼682년 생존. 법상종의 시조. 당 나라 때 경조(京兆) 장안(長安) 사람. 속성은 위지(尉遲), 이 름은 홍도(洪道). 648년에 현장(玄 )의 제자가 되어 광복사(廣福寺)에 머물렀다. 그 후 대자은사에 머물면서 현장과 함께 역경에 종사하였다. 682년 11월 13일 대자은사에서 세수 51세로 입적하였 다.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이 개창되었다. 또한 유식학파에는 난타(難陀)·승군(勝軍){) 7세기경 생존. 서인도 소랄타국(蘇剌 國)의 거사 이름. 안혜(安慧), 계현(戒賢) 등의 논사에게 배 웠으며, 외전(外典)에도 능통했다. 수많은 제자들에게 불법을 가르쳤으며, 세수 100여 세에 입적 했다고 전함.의 계통도 있으며 논리학 계통으로는 상갈라주(商 羅主)·법칭(法稱){)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초엽까지 생존했던 인물. 남인도 출신의 학승. 마갈다국의 호법(護法)에게 사사하였고, 진나(陳那)를 이어서 불교 논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진나의 집량론(集量論)에 대한 주 해서 등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갈릉가국( 陵伽國)에서 입적하였다.등이 있다.§ 중관파와 유식파의 비교우선, 중관파가 공사상(空思想)을 표명한 것에 비하여 유식파의 기본 사상은 일체 제법이 오직 유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각각의 학파에서 바라보는 인간관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중관파에서 본 인간관인도 불교사상은 부처님의 전법 이후,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아비달마교학, 세월이 흘러 아비달마교학이 석고화되자 그 실재론적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용수보살(150∼250 C.E.경)에 의해 창안된 중관학(中觀學), 비판적 역할을 망각한 중관학의 악취공(惡取空)적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출현한 유식학(唯識學), 중관학과 유식학의 취지가르치기 위한 설득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에 대해 묻는 경우 중관학적 견지에서는 공의 논리를 구사함으로써 도출되는 ‘진제적 해답’과 상식과 분별에 입각한 ‘속제적 해답’의 두 가지가 제시될 수 있다.먼저 진제적 해답에 대해 설명해 보자.공의 논리는 우리의 ‘사유능력’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용수보살에 의해 고안된 논리이다. 공의 논리에서는 어떤 의문이 주어질 때 그 의문에 입각하여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그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문 자체의 허구성을 지적함으로써 그 의문을 해소시킨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의문이라고 하더라도, 분별을 속성으로 하는 우리의 ‘사유’에 의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분별’은 이 세계의 실상인 연기(緣起)의 그물을 끊어버리기에 분별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실상을 벗어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시할 경우 중관학에서는 ‘인간이란 어떠어떠한 존재이다.’라는 식으로 분별적 답을 내리지 않고 인간이라는 개념의 실재성을 문제삼음으로써 애초에 제시된 의문의 무의미성을 일깨워주려고 한다. 중관학에서 구사하는 공의 논리가 극명하게 활용되고 있는 『중론(中論)』을 토대로 인간이라는 개념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경우 중관학에서는 질문자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어떤 의미의 인간에 대해 묻는 것인가? 짐승이나 천신, 아귀나 지옥중생과 다른 인간을 말하는가? 모든 행위의 시발점으로서의 인간을 말하는가, 아니면 모든 느낌의 종착점으로서의 인간을 말하는가? 부처와 대비된 인간을 말하는가? 그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고 인간의 독립적 실재성은 논리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질문자가 ‘천신 등과 인간은 다르다.’는 관점 하에서 인간의 정체를 묻는 경우, 중관논사는 만일 인간계가 천신 등의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라면 육도 윤회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며 질문자가 견지하던 애초의 관점을 비판할 것이다. 천신과 인간이 다를 경우 육도 각각은 단절되어 있어 대해 묻는 경우, 그 질문을 떠올린 사람의 생각 속에는 ‘인간’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규정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에서 사용되는 개념에 대한 선이해(先理解)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질문 속에 해답이 있다.”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중관학에서는 그 질문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입각점들의 논리적 타당성을 집요하게 추구한 후 그 허구성을 폭로함으로써 애초에 구성된 질문 자체의 무의미성을 일깨워 준다. 즉,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해소시킨다. 중관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희론적멸(戱論寂滅)이라고 표현한다.그러면 인간의 정체에 대한 중관학적 답변을 추정해 보자.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공(空)하다. 즉, 인간의 정체를 묻는 질문에 사용된 ‘인간’이라는 주어는 그 실체가 없다. 존재하지 않는 주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서술적 설명도 들어갈 틈이 없다.이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해 답변하지 않고(無記), 동문서답과 같이 연기(緣起)를 설하심으로써 질문이 떠오르게 만든 사고방식을 치료하셨던 부처님의 방식과 동일하며, 부처의 정체에 대한 물음에 대해 ‘마른 똥막대기’라든지, ‘마삼근’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질문자를 당혹하게 만든 과거 선승들의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불법은 ‘한 맛(一味)’이기 때문이다.비단 인간만 공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보면 「반야심경」에서 노래하듯이 눈도 없고 코도 없고 물질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깨달음도 없고 지혜도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생각의 재단(裁斷), 즉 분별에 의해 출현한 허구의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육조 혜능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다.이상은 공, 또는 이제 중 진제적 측면에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조망이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중관학을 지탱하는 두 축은 공과 이제설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중관학적 조망을 추출해 낼 경우 우리는 속제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설명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속제란 인간의 관습적 사고에 부응하여 발화되는 진리로 진제의 차원에서는 된다.
    인문/어학| 2001.06.10| 8페이지| 1,000원| 조회(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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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폭력 평가A+최고예요
    § 서론예전에 서울시 모교육감이 앞으로 교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할 경우 교장은 물론 교육감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언명한 바 있다. 폭력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있어 왔고 또 계속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폭력은 인간사회의 불가피한 한 병리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염려하는 이유는 우리는 폭력이 이 사회에서 문제해결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알고, 특히 학습도상에 있는 청소년들의 폭력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극히 우려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학생폭력을 예방하려면,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폭력은 본질적으로 말이 없는 것이다. 합리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력은 이성적 의사소통이 깨진 곳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 이 명제가 말해주듯이 폭력은 대화가 막힌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폭력의 정의를 내리고, 세밀하게 그 원인을 살피고 대처방안을 모색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본론우선, 폭력의 정의를 내려보자.* 폭력의 정의남학생 또는 여학생이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다른 학생의 부정적 행위에 반복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그 학생은 폭행당하고 있거나 희생자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여기서 부정적 행위 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불안을 끼치거나 또는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는 경우, 다시 말하면 공격적인 행동양식의 정의에 들어 맞는 짓을 하거나 하려고 하는 경우, 그 행위는 부정적 행위 가 된다. 부정적 행위는 위협하거나, 조롱하거나, 들볶거나, 별명을 부르는 짓 등 말로 할 수가 있다. 또는 때리거나, 밀치거나, 발로 차거나, 꼬집거나, 붙잡는 짓 등 물리적 접촉으로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상을 쓰거나, 더러운 몸짓을 하거나, 일부러 그룹에서 따돌리거나,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을 거절하는 짓 등으로 말이나 물리적 접촉 없이도 부정적 행위를 할 수가 있다.단 한번의 대단히 심한 학대를 특수한 경우에는 폭행는 중심그룹의 학생들과 비교할 때, 그 외부적 특이성이 한결 더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그렇다면, 외부적 특이성의 중요성과 관련한 견해가 왜 그토록 광범위한지 설명해보자. 우선, 중심그룹 학생의 약 75%가 적어도 한가지는 외부적 특이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우리 가운데 거의 전부가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희생자에게서 외부적 특이성을 찾아내 그것을 구실로 삼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는, 안경을 쓰거나 머리카락이 붉거나 체중이 과도하면서도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학생들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폭력학생은 폭력상황에 있어서 발견 가능한 외부적 특이성을 일부러 찾아내어 이용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적 특이성이 폭력의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여기서 우리는, 폭력문제의 기원에 있어서 외부적 특이성은 일반적으로 추측하는 것보다 월씬 미미한 역할을 한다 는 결론을 지을 수 있겠다.3 육체적 힘의 우월희생자 그룹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외부적 특이성 은 단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육체적 힘이다. 희생자들은 일반 학생에 비해서 육체적으로 힘이 모자라다. 반면에, 폭력학생은 평균수준보다 힘이 더 세고, 희생자보다는 특히 더 세다.이러한 것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진다. 그렇지만 이것이 힘이 센 남학생이 반드시 자기 힘을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폭력에 사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힘이 센 남학생 가운데 대단히 많은 숫자가 비공격적이다. 그러나 폭력 학생의 특징은 공격적 반응형태와 육체적 힘의 결합 이다. 반대로, 희생자의 특징은 불안한 반응형태와 육체적 열세의 결합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시할 것은 육체적 힘의 우월과 동료 학생간의 높은 인기도, 육체적 힘의 열세와 낮은 인기도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힘이 세다는 것은 남학생 사이에서 인기도를 결정하는 주요인이다. 그리고 당연히 인기도가 높으면 폭력에 희생당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른이든 다른 사람, 즉 모델 이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관찰하고 난 뒤에 자신이 한층 더 공격적으로 행동한다고 드러난다. 이런 결과는 물론 폭력학생이 모델로 작용하는 폭력학생과 희생자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효과를 가장 강하게 받는 학생들은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경우(수동적 폭력학생, 부하), 동료들 사이에 자연적인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자기 자신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경우 등일 것이다. 이런 형태의 효과에 대해서 사회적 전염 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밀접하게 관련되는 또 하나의 생리는 공격적 경향에 대한 통제 또는 금지의 약화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폭력행위가 대한 선생, 학부모, 동급생들로부터의 부정적인 결과는 매우 제한적인 정도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모델(폭력학생)은 흔히 자기 희생자에 대한 승리 를 통해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중립적인 학생(관찰자)들의 공격적 경향에 대한 통제를 약화시키고, 폭력에 참가하도록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평소에 얌전하고 비공격적이던 학생이 왜 어떤 때는 별다른 주저없이 폭력에 가담하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해주는 세 번째 요인이 있다. 개인적 책임감의 감소이다. 폭력과 같은 부정적 행동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여럿이 참가했을 경우 상당히 감소한다는 것은 사회심리학에서 잘 알려져 있다. 책임감의 분산 또는 희석은 또한 폭력 이후에 죄책감을 별로 일으키지 않는다.끝으로, 장시간에 걸쳐서는 동료학생들의 희생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반복되는 공격과 욕설의 결과, 희생자가 전혀 무가치한 인간, 오히려 당연히 맞아야 하는 그런 인간으로 점차 보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도 폭력학생들의 죄책감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한다.6 다른 요인들텔레비전, 비디오, 영화에서 많은 폭력장면을 보아온 아이들과 10대들은 한층 공격적이 되고, 희생자에 대해서 동정심을 덜 느낀다. 이를 통해 언론매체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폭력의 수준을 증가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는 등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되기 쉬운 학생ⅰ) 얌전하고 말수도 적고, 집단의 움직임에서 뒤쳐져 버린 학생. 자기 욕구를 좀처럼 말이 나 행동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학생.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학생. 이런 특 징을 지닌 학생들은 소극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위협 을 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상대하기가 편한 유형이다.ⅱ)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우물쭈물하는 학생이다. 이런 학생은 활동적인 학생에게 아부하는 경향도 있고, 일단 학교 폭력이 시작되면 아무 말 않고 따르기 때문에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ⅲ) 너무나 성실해서 농담이 통하지 않는 학생.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연예계 이야기 나 만화 등 적당한 화제에 끼어들지 못하는 학생들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이런 태도 는 자칫 잘난 척하거나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져 학교 폭력의 대상이 되기 쉽다.ⅳ) 덩치가 크고 운동도 잘하는데 폭력 조직에 가입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학생이다. 이러한 학생에 대해서는 폭력의 강도가 세고 지속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가해 학생에 대한 관찰응징으로써의 폭력쉽게 학교 폭력의 대상이 되곤 하는 학생은 집단 속에서 뭔가 약간 이질적인 면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튀는 학생, 잘난 척하는 학생 은 기를 죽여야 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이 학생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얻게 되고, 폭력은 이에 대한 응징으로 나타난다.또한,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을 열등감이나 피해 의식이라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학생들은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에게 굴종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과 피해 의식을 상쇄하려는 심리를 갖게 된다.나는 이기고 상대는 진다부모는 뭐든지 잘 하라고 기대하며 재촉하고, 꾸중이 앞서고, 학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최고이고 자신들은 별로 잘 하는 일이 없어 점점 설자리를 잃어 간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자 징후ⅰ) 욕설이나 험담이 많이 나돈다.욕설이나 험담이 친구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면 주의해야 한다. 학생들 사이 에서 장난스레 오가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지가 엿보이고 학생들 끼리 인간 관계가 나빠진다면, 학교 폭력의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ⅱ) 잘못했을 때 놀리거나 비웃거나 한다.수업 시간 같은 때 잡을 잘못 말했을 때 비웃는다. 이는 학급 속에 포용하는 분위기가 싹트지 않고 인간 관계가 삐걱거릴 뿐만 아니라, 희롱하거나 비웃고 조롱함으로써 앞으 로는 발표하거나 대답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고 정서 불안이 된다. 이것이 또다시 학교 폭 력을 당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ⅲ) 학급 집단 속에 몇 개의 폐쇄적인 소집단이 생긴다.개개의 소집단 사이에 교류가 있을 때는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인 소집단일 경우는 그 그늘에 학교 폭력의 존재를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ⅳ) 집단에서 활동할 때 독자적 활동이 두드러진다.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활동하는 것이 두드러질 때는 학교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 닌가 의심해 보아도 좋다.ⅴ) 학급에 무력감이 느껴진다.체념이나 선생한테 뭘 호소해 봐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충만해지면 그 그늘에서 상당히 심각한 폭력 등의 문제 행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학급 학생들에게서 무력 감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지를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학부모가 발견할 수 있는 징후ⅰ) 비싼 옷이나 운동화 등을 자주 잃어버리거나 그것들이 망가진다.ⅱ) 몸에 다친 상처나 멍 자국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물어보면 그냥 넘어졌다거나 운동하 다 다쳤다고만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ⅲ) 교과서나 가방, 공책 등에 폭언이나 욕설이 쓰여져 있거나 하면 학교 폭력의 징후이다.ⅳ) 용돈이 모자란다고 하거나 말도 없이 집에서 돈을 집어간다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해도 좋다.ⅴ) 풀이 죽어서 돌아와 맥없이 풀썩 주저앉기도 한다. 입맛이 없다며 평소에 잘 먹던 음식 에도 손을 대지 않으면 주의해한다.
    사회과학| 2001.06.10| 11페이지| 1,000원| 조회(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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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과 소설의 관계 평가B괜찮아요
    한국 문학사에서 傳과 小說의 관계는 대단히 복잡하다. 이러한 전과 소설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몇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선, 장르의 문제를 보면,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다. 전을 敎述文學으로 보고, 소설을 敍事文學으로 나누어 보는 견해도 많지만, 전, 그리고 전이라고 한 소설, 소설을 객관적으로 분류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점들을 인정하고 가장 무난한 시각으로 바라보려면 소설이라는 것의 개념을 類개념으로 확충하여 전을 그 개념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 하다.형식의 문제를 살펴보면 일단, 전의 종류는 인물전이라 할 수 있는 史傳, 사물들을 의인화해서 쓰는 假傳, 남의 전을 짓듯이 짓는 자서전인 托傳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 중에서 주로 史傳의 列傳이 중심이 되므로 이를 통해 소설과의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겠다. 史傳의 형식은 도입부의 인정기술, 본문으로서의 사적기술, 그리고 논평부가 있어서 이미 드러난 규범적 가치를 다시 인정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여기서 가치를 인정하기 위한 인간에 대한 서술은 자의성이 포함되는 부분이어서 소설의 형식과도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내용의 문제를 보면, 전의 내용에 있어서 전의 내용을 규제하는 것으로는 입전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이미 세상에 드러나 가치있는 행동을 한 사람, 곧 모범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소설의 인물은 그 대상이 무제한적으로 열려 있다.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는 인물을 그린다. 전이 사실의 진실에 접근한다면 소설은 허구의 진실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전과 소설의 역사적인 관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과 소설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제기 것도 어찌 보면 전이 점차로 소설화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이에 따라 이 둘간의 객관적인 구분이 조금씩 힘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전이 소설화되는 動因은 소설을 천시하는 문인들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의 형식적인 구속의 한계를 자각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소설의 형식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데에 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모는 새로운 형식을 요구하지만, 사대부들의 의식의 한계로 인하여 결국 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소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전의 변모된 모습은 두가지 정도로 볼 수 있겠는데, 하나는 상상력의 개입으로 인한 허구성의 신장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적 갈등의 심화된 모습이라고 하겠다.이상을 대략 정리하여 보면, 傳이라는 것은 굳이 분류하자면 교술문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小說은 서사문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전은 이를 통해서 교훈을 주는 것이 주가 된다고 할 수 있고, 소설은 물론 교훈도 중시하지만 그것보다는 story를 중시하여 전보다 문학적으로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점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 전은 이미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을 때, 또한 그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질 때 입전하는 것이므로 가치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지만, 소설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은 인간의 한계를 깨달아서 그것을 고민해 나가는 것이므로 대략 비극적인 종말이 많거나, 아니면 진행 과정 속에서의 역경을 그린 경우가 많지만, 소설은 현실 생활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소설을 통해서 풀려는 의도가 있으므로 행복한 상황을 주로 설정한다. 전과 소설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소설이 강하게 가진 서사적인 성격, 즉 허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있는 일이 아닌 있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전이라는 것은 큰 의미로서는 소설 속에 포함된다라고 할 수 있으나 전과 소설을 같이 보기에는 전 나름의 성격이 있으므로 전을 소설이라고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인문/어학| 2001.06.10| 1페이지| 1,000원| 조회(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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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직한 교사상 평가A좋아요
    바람직한 교사상 이라는 주제를 보니 얼마 전 한 교육 연구원이 교육에 관하여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그 연구원은 지하철 정류장에 걸려 있는 글 중에 낙담케 하는 자의 죄’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교육의 문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낙담케 하는 자의 죄 라는 글의 내용은 한 병사가 전선에서 비관적인 말로 전우들을 낙심하게 한 죄로 벌을 받았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것은 같은 현실이라도 이를 희망적으로 도전하는가 아니면 비관하고 체념하는가에 따라 이후의 양상이 천양지차일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을 낙담케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우쳐주는 것이다.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이 글은 요즈음 우리 교육의 상황에 대해 깨닫게 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요즘 우리는 전반적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비관적이다. 현직 선생님들을 만나뵈어도 교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를 말씀하시는 분은 많지만, 정말 보람된 직업이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시는 분은 드물다. 학부모들은 학교는 사교육 기관에 비하여 무언가 늘 부족하고, 그 부족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학원, 과외 등이 필수적이라는 생각들을 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떠한가? 예전의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을 기대하기 보다는 선생님이 얼마나 지식을 잘 전달하는가로 교사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약간은 냉담한 모습으로 학교를 바라본다. 이런 속에서 사람들은 정부가 지난 수년 간 추진해온 교육개혁은 모두 실패했으며, 오히려 그러한 무리한 개혁이 교육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라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그러나, 과연 그런가? 우리 교육이 비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 교육을 냉담하게 봐야할 만큼 비관적인가? 정말로 우리의 교육은 구제불능인가? 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아이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자기들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면서 자기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러기보다는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야 아이들을 옳은 길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에 책임을 지고 있는 교사들은 바람직한 문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그러한 문화에 아이들이 점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렇다. 지금은 교육 현실을 마구잡이로 비난해서 모두를 낙담시킬 때가 아니다. 그러기보다는 우리 모두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는 원인들과 그 해소 방안을 찾아 희망을 나누어야 할 때이다. 주저앉은 교사들의 사기를 북돋고 그들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학생들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며,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에 기대를 걸고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앞 뒤 가리지 않고 자녀를 경쟁의 대열로 몰아넣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경쟁풍토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이런 노력과 더불어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내가 정의할 수 있는 바람직한 교사상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우선은,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학생이 교사를 찾는다고 올린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벌써 선생님을 뵙지 못한지가 10년하고도 1년이 더 지나버렸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태어나서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신을 후회한 적도 많았는데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가장 잘한 게 반에서 10등 정도였고 대개는 꼴찌를 했었던 저인지라 집에서도 이놈이 대학이라도 갈 수 있을까 라고 염려를 많이 했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께서 항상 불화가 계셔서 집에 있기도 불편하던 때였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라는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3학년이 되어 존경하는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시게 되니 절로 공부가 아니 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2학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장으로 뽑히던 날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반 반장들은 던 아이들이라서 적잖이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추석이 될 쯤 선생님께 편지를 썼어요. 반장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내용과 예전에 추석문화와 요즘의 추석문화가 많이 변했다는 등의 글을 적어 우편으로 보냈는데 글쎄 추석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반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으시고서는 누가 썼는지는 밝히지 않으시고 이런 편지가 왔었는데 선생님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뿌듯한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며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저는 걸상에 앉아서 얼마나 낯뜨겁던지 혼났고 그래도 혹시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또 편지 쓴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반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선생님께서는 저를 부르시더니 고맙다고 하시며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곱게 포장해서 책갈피를 꽂아서 주시면서 사랑하는 현식이에게 열심히 하라는 당부말씀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은 항상 마음으로 상대방과 대화해야 한다는 걸 말이죠.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선량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1년동안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지금도 저에게는 모든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정말 이 글을 읽으니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어른이 된 우리가 읽어보면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들도 학생들에게는 참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받은 편지에 대하여 관심을 보여준 것... 그 일 하나가 어떤 학생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고, 졸업을 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선생님을 그리워하도록 만드니 말이다. 최근 유행하는 동창 찾기 인터넷 사이트에는 동창을 찾는 것 이외에도 은사님을 찾아주는 메뉴가 있다. 가끔씩 그 곳에 들어가 보곤 하는데 하루에도 20개가 넘는 글들이 올라온다. 다양한 사연들과 함께 옛 은사를 찾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뿌린 사랑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곤 이리도 많이 만들어 내셨으니 말이다.두 번째로는, 학생과 더불어 토론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전국시대의 유명한 사상가였던 순자는 권학(勸學) 편에서 이렇게 말했다.君子曰, 學不可以已. 靑取之於藍, 而靑於藍, 氷水爲之, 而寒於水(군자가 말하기를, 배움이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청색은 그것을 쪽빛에서 취하였지만, 쪽빛보다도 푸르고, 얼음은 물이 그렇게 된 것이지만 물보다 차다.)이 말 속에서 순자가 강조하는 것은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항상 노력해야 하며 중도에 그만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학문이 더욱 원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흔히, 사람들은 위의 말에서 나온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을 스승보다 제자가 실력이 뛰어날 때 인용하곤 한다. 내가 아는 몇몇 선생님들은 가끔씩 학생들과 세대차이가 난다, 대화가 안 통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물론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말이 다 틀린 것이고, 다 고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다 보면 학생들의 순수함 속에서 교사된 사람들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스스로가 세운 원칙을 잃어버리지는 않되 그 속에서 유연함을 발휘하여 아이들의 문화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지니고 함께 토론해 나가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참된 교사가 갖추어야 할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세 번째로는, 전문성과 책임성을 가진 교사가 되어야 한다.여기서 말하는 전문성과 책임성은 최소한 자기의 교과에 대하여는 전문성을 지녀야 하고, 자기가 교과에 대하여 전해 준 지식에 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이를 위해서 교사가 해야 할 바를 자료를 참고하여 세가지를 말하고 싶다.우선, 자기 교과에 대한 세밀한 설문조사를 하자교사에게는 자기 교과에 대한 탁월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자기 교과에 대한 아이들의 느낌, 생각, 이해 수준, 흥미로워하는 부분, 대한 정보,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과 많은 반을 수업하다 보면, 수업 대상인 아이들에 대한 세밀한 체크가 힘들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손쉽게 적용해 볼 수 있는 게 설문조사다. 설문조사는 다소 딱딱하기는 하지만,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아이들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있다. 물론 첫 시간부터 설문조사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교과 관련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면서 반응을 체크한 다음, 학생들 스스로 설문지를 만들고 조사한 뒤 통계를 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둘째로, 수업 일기를 쓰자수업에 대해 어떤식으로든지 학생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교사는 답답하다. 그런데, 교사들의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주의 집중이 좋은 것을 토대로 만족감을 느끼며, 자기 수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화되지 않은 느낌들에는 늘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언어화된 아이들의 피드백을 통해서만 특정 교과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실증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수업일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일기를 통해서 아이들의 교과에 대한 느낌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고, 수업 이후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을 토대로 조금씩 교과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셋째로, 홈페이지를 활용하자요즘은 교사 홈페이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들 홈페이지 중에는 교과지도에 중점을 둔 홈페이지도 있고, 학급 아이들과의 대화의 장을 위한 홈페이지도 있다. 전자보다 후자가 많고, 또 만들기도 쉽다. 게시판 정도만 있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과지도에 중점을 둔 경우는 몇몇 것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베껴 와 채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정작 교사가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홈페이지는 많지 않다. 이러한 점들을 개선하여 정말 학생들에게 교과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든다면 이것 또한 교사가 교과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추도록 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바람직한 교사상의 마지막으로는, 자아발전을 한다.
    교육학| 2001.06.10| 5페이지| 1,000원| 조회(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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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 리뷰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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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01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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