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미래를 기억하라- 유발 하라리 著 ‘사피엔스’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 사피엔스만이 이 행성에 살아남았다. 몇 만 년에 걸쳐 이 종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과시하며 지구 전체의 주인이 되고 동시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다. 이제 사피엔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Ⅰ. 인지혁명1. 관용은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니다영장류목(目) 인류과(科) 호모속(屬) 사피엔스종(種). 사피엔스가 발길이 닿는 곳마다 그곳의 토착인류는 순식간에 멸종의 길을 걷는다. 솔로엔시스종(種)이 5만 년 전에, 그 직후 데니소바종이 사라지고 네안데르탈인 역시 3만 년 전 증발한다. 관용이라고는 없는 그들 사피엔스는 공생보다 홀로 살아남는 길을 택한다.이 수렵채집인 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할 때마다 동물들 역시 대량으로 멸종해 간다. 화전법으로 덤불숲을 평탄한 초원으로 변화시키고, 무분별한 사냥으로 약해진 생태계에 기후 변화가 겹치면서 수많은 동물들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오늘날도 많은 종이 산업공해와 인간의 자원 남용 탓에 멸종의 기로에 서 있다. 이 치명적인 종의 폭력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2.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 언어다른 종을 물리치고 오직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은 가장 큰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보이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넘어선,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특별한 ‘언어’. 언어를 통해 가상의 실재를 창조하는 능력은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정보’는 공유할 수 있었지만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어 대규모의 협력이 불가능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집단상상을 통해 유연하게 협력한 사피엔스의 집단은 이제 지구를 지배한다.II. 농업혁명1. 밀에 길들여진 사피엔스수렵채집을 하며 떠돌던 인간이 경작을 시작하며 농경지를 중심으로 정착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이 ‘인간답게’ 살기 시작한 계기라고 그 동안 배워왔다. 그런데 저자는 농업이 시작되어 곡물을 재배하는 생활이, 결코 인간의 도약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당시 사피엔스들의 삶은 농업으로 인해 더 열악해졌다.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가뭄에 더욱 취약해졌으며, 모유보다 죽을 먹임으로써 면역력이 약해졌다. 수렵채집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곡식을 위한 노동에 바쳤지만, 고기와 각종 열매를 골고루 섭취했던 과거보다 더 나은 식사를 제공받지도 못했다. 뒤늦게 노동, 질병, 영양실조로 열악해진 삶을 깨달았지만, 이미 밀을 중심으로 정착한 삶에 길들여진 그들은 수렵채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농업혁명이 그들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2. 유한한 개인을 무한한 인류에!그 당시 개개인에게 돌아간 혜택은 없었다. 하지만 인류 전체의 역사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밀 경작은 단위토지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호모 사피엔스 개체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강력한 신화를 바탕으로 삶을 조직화하는 상상의 질서가 뿌리내리고 밀집된 사회를 건설한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고 전 인류적인 발전을 위해 농업을 시작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농업은 개인의 열악한 삶 위에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를 쌓고 인류 진보의 기틀을 제공한다.수렵채집인이 정착하여 수확을 기대하며 생긴 미래에 대한 관심은,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욕망하게 했고,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바치지만 채워진 욕망만큼 또다시 욕망의 크기가 커지는 악순환이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농업혁명과 함께 인류는 진보했지만 개인은 욕망의 피라미드를 쌓으며 불행해졌다.III. 인류의 통합1. 인류 통일의 보편적 질서 - 화폐, 제국, 종교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언어를 통한 ‘이야기’가 만들어낸 신화와 허구는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그런데 각 집단의 문화는 균일하지 않으며 게다가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지만 이 무질서해 보이는 문화의 역사는 약간의 요철은 있지만 결국 통일이라는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 왔다. 그리고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인류의 통일에 기여하는 보편적 질서가 될 강력한 후보 세 가지가 출현했다. 화폐 질서, 제국의 질서, 그리고 종교.2. 전 지구적 문화의 형성화폐의 등장으로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이 출현하게 되었고, 수천 개의 고립된 문화가 시장이 지배한다는 믿음 하에 합쳐져 오늘날의 지구촌이 되었다. 제국은 수많은 작은 문화를 융합해 몇 개의 큰 문화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21세기 들어서는, 지구 온난화 문제처럼 본질적으로 세계적인 문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이제 지구상 어떤 국가도 글로벌 마켓, 글로벌 여론, 글로벌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이 세계는 진정한 ‘지구제국’이 되었다. 종교 역시,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묶어내고, 이데올로기나 신념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인 무수한 종교들 속에서 자유로운 현대인은 없다.상업, 제국 그리고 보편 종교는 모든 대륙의 사실상 모든 사피엔스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촌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가상의 실재를 믿게 만드는 인간의 강력한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1500년경 사피엔스는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중대한 발견을 한다.IV. 과학혁명1. 무지의 혁명현대 과학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라 무지의 혁명이었다.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의 지식으로 세상의 근본 문제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이 풀기 힘들었던 문제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하자, 인류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적용함으로써 어떤 문제든 다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가난, 질병, 노화, 죽음은 인류의 피치 못할 운명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의 무지가 낳은 결과였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 속에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다고 믿는다.2. 과학, 제국, 자본주의의 협력지난 5백 년간 현대 과학이 놀라운 업적을 성취한 것은 주로 그 연구가 모종의 정치, 경제,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누군가 믿기 때문이었고, 정부와 기업, 재단, 돈을 벌려는 사업가들이 과학 연구에 기꺼이 자금을 투자한 덕분이었다. 그 보답으로 과학자들은 실용적 지식,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기술적 장치를 공급하며 제국과 자본주의에 봉사하였다.근대 이전 세계에서 사람들은 부의 총량이 더 줄지는 않더라도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내가 부자가 되려면 누군가는 가난해져야 했다. 그 때 과학혁명과 진보라는 개념이 도래하고,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지구상의 파이 전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즉, 당신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나는 부자가 될 수 있다.이 진보적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고 신용경제를 바탕으로 한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탄생시킨다. 자본주의는 경제성장을 만들어 낼 과학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과학은 제국과 경제를 강력하게 만들고, 다시 제국은 산업을 키우고 경제는 과학을 돌보는 협력 고리 안에서 근대과학 발전, 제국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3. 에너지 결핍은 존재하지 않는다!현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신뢰 덕분이며, 자본주의자들이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할 의사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와 원자재가 고갈된다면 전체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과학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보여주며 시스템을 떠받쳐 왔다. 즉, 인류의 에너지와 원자재 사용량은 급격히 늘었지만 이용 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의 양도 함께 늘어났다. 불과 몇 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유일한 한계는 에너지를 아직 에너지로 활용하는 법을 모르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을 과학은 보여주었다.현대 과학에 의하면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V. 여기서 우리는 행복한가?지난 5백 년간 지구는 단일한 생태, 문화적 권역으로 통일되었고 경제는 지수적으로 성장했으며, 인류는 초인적 힘과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부의 총량이 늘고, 각 나라가 안전을 보장하며, 인권을 보호받고, 자유를 누리는 지금,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1. Ecodesign의 필요성현재 전 세계의 인류는 그들 자신을 위해 개발했다고 믿었던 많은 산업화의 산물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집안에 들어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세탁기를 돌리고 컴퓨터를 이용해 정보를 얻게 되는 편리함의 대가로 9시 뉴스에서 쓰레기의 산이 처치 곤란이라는 기자의 안타까운 보도를 들어야 한다. 게다가 산업화에서 늘 피해자로 인식되고 끊임없이 환경단체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하는 상처받은 자연은 모두의 마음속에 일종의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요즘에는 우리가 헤쳐놓은 자연으로부터 엄청난 홍수라는 대재앙을 맞으면서 개발과 환경파괴라는 원인과 결과 구도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다. 과연 우리는 꼭 개발 뒤에 남겨진 환경파괴라는 결과를 숙명처럼 맞이해야 하는가?아니다 라는 대답으로 나타난 개념이 바로 Ecodesign이다. 인류는 그들이 자연과 어울리면서 나눠 써야 했던 자연을 자기만 너무 헤프게 쓴 결과로 표면적으로는 부유해 보일지 모르나 실은 쓰레기 더미와 더러운 공기, 각종 위협을 불러들여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이제는 전 지구적 환경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에 따르는 생태학적 영향에 대해 고려하고 그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버리는 지금의 인류는 환경을 너무 많이 망쳐놓고 있다.그런 노력의 정책적 실현의 하나로 현재 선진국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는, 기업의 생산품에 대한 환경책임제도를 들 수 있다. 수출을 위해서는 현재 EU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제시하는 제품에 대한 환경기준을 만족해야 할 뿐 만 아니라 그 제품의 사용과 폐기처리단계까지 고려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제적, 환경적 비용에까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최종 처분되기까지의 각 단계에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고려되고 그 단계마다에서 그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실제로 국내 기업에서는 전과정평가를 도입하여 친 환경적 제품 시스템을 도입해 가고 있으며 이의 성패는 기업의 이윤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이처럼 Ecodesign은 우리의 지구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추구되어야 하는 하나의 해결책이다. Ecodesign은 무분별한 소비의 종국에 있는 인류 삶의 황폐화를 피하기 위해 지금부터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동원하여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기업의 수출과 이윤이라는 당장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현재의 환경을 인류와 생태계 전체가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한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모든 제품, 모든 정책을 친 환경적 시스템으로 바꾸고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2. Ecodesign의 정의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Ecodesign이란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활동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을 말한다. 이는 생산 단계에서 원료의 사용을 최소화시키거나 환경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실현된다. 또한 제품의 제조, 사용, 그리고 궁극적 처분에 이르기까지 그 제품이 전체 생태계에 줄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 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해지게 된다. 이런 노력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유지 가능한 개발이라는 원리에 부합하는 것은 물론, 제품 생산의 사회적, 경제적 체계를 환경적으로 최적화 시키는 최종 목표를 향해 있다.결국 Ecodesign은 으레 개발론자와 환경론자의 대립구도로 보아오던 기존의 환경보호 개념을 바꾸어 실현가능하고 이성적으로 타당한 대안, 즉 친 환경적 design으로 환경 소비를 최소화 해 환경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방법이다.3. 결론사실 환경공학과에 들어와 공부한 것들은 생산에 따르는 필연적 공해로부터 어떻게 우리 자신과 자연을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물이 오염되었으면 그 물을 깨끗하게 해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오염된 물을 우리가 사용하기 위한 방법도 공부했다. 또한 공기가 오염되면 그 공기를 원상에 가깝게 회복하기 위한 방법도 공부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학문은 산업의 발달 뒤에 남겨진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는 일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산업에 따르는 오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할 일이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그런 회의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으로 책임 있는 환경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개발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연보호는 바로 개발반대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발은 꼭 필요하며 개발과 환경보호 사이의 싸움은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다.
Ⅰ. 서 론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영향을 주고받는 일, 나와 관련이 있어서 상관 있다 고 부르는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 중에는 소풍가는 날의 날씨나 집 앞 가게의 콩나물 값처럼 일상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주식시장의 시세나 발전노조 근로자의 파업 같은, 사회 전체 구성원에게 파동처럼 전달되는 영향을 주는 일들도 있다. 또한 요즘엔 지지하고 믿었던 정치인들이 부정부패로 심판대에 서는 씁쓸한 일에도 마음을 써야 하고 우리 나라 축구 국가 대표팀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축구 중계도 봐야 한다. 내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눈이 빛나고 호기심이 발동하며 알고 싶어진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은 옆에서 무릎이 깨져도 그냥 지나치지만 애인이 되고 나면 그녀의 별볼일 없는 24시간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어떤 일이 나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별해 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려내는 현대인의 능력은 숨막히는 경쟁사회를 살아낸 오랜 세월동안 연습되어진 것이다. 생활정보, 경제소식, 스포츠뉴스, 정치뉴스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보고 듣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한 번 들이마셨다 내뱉는 한 줌의 공기처럼 필요한 정보만 쑥 빼어 가지고 나머지는 그냥 흘려보내게 된다. 항상 시간이 모자라고 또 갈수록 모자라지는 시간을 불평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관있는 일에 관심을 가질 것, 상관없는 일에는 괜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 것이런 간단한 도식은 깨기가 결코 쉽지 않다. 나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것 같은 일에 투자하는 5분의 시간은 축구 전후반 90분보다 길고 지루하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의 의식에 존재하는 진리이자 한계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보편적인 취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일들, 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 내 전공과 관련 있는 학문들이 내 주요 관심거리이역의 확장과 그 길을 같이 해왔다. 즉, 하늘에 대한 인간의 사색이 처음에는 막연한 우주관으로 시작되어 그것이 가까운 곳, 관측 가능한 영역부터 그 범위를 점점 넓혀 갔다. 망원경의 발달에 힘입어 우주는 더욱 넓은 곳으로 확장되어갔고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여 고찰한 이후에는 드디어 광속도 C의 90% 속도로 확장하는 전 우주가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1) 과거의 우주론우주론은 보통 동양의 것보다 서양의 이론을 정설로 여긴다. 동양에서는 우주에 대한 관측이나 그에 따른 자료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동양의 우주론은 배제하고 서양의 고대 우주론에 대해서만 살펴보겠다.서양의 우주론은 약 15세기∼20세기 전부터 우주를 관측하기 시작하였던 그리스인들과 함께 시작되고 발전되었다. 당시의 우주관은 논리학, 자연학, 형이상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은 각각 다른 원리의 지배를 받는 천상계와 지상계로 구분되고 우주는 둥근 구의 모양이며 그 우주의 중심에 움직이지 않은 채 고정된 지구가 놓여있다고 하였다. 이런 가정 하에 지구 주위를 하루에 한바퀴씩 회전하는 천구와의 관계를 설명하였고 태양과 그 밖의 많은 별들은 이런 천구의 틀 속에 박혀 있어서 천구 전체와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관측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끔씩 경로를 바꾸는 행성들의 이례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프톨레마이우스는 천구의의 계속적인 추가로 한 개의 천구의로 설명하였던 기존의 우주관을 수정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복잡한 구도로 보완했다. 정지해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하늘에는 신이 있고 땅에는 인간이 있다는 신학적 해석과도 잘 어울렸다. 그리하여 이 모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조화를 이루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등장할 때까지 서구 천문학을장 먼저 허블의 도플러 효과 관측으로 그 기반을 마련했다. 그 뒤 우주 팽창설은 퀘이사라는, 우주 초기의 빛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타임캡슐을 발견함으로써 더욱 확신을 갖게 했다. 관측 결과 퀘이사는 활동 은하보다 더욱 대규모적인 폭발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우주초기의 은하 핵으로 지금도 광속도의 90%(허블이 이야기한 우주 팽창 법칙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속도)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또한 대폭발설로 탄생된 우주는 75%의 수소와 25%의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수치들은 오늘날 측정한 우주에 분포하는 이들 원소의 비율과 잘 일치 {) 마지막 3분, 45p하고 있다. 그래서 관측된 헬륨의 양 또한 대폭발설의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우주론자의 대다수가 빅뱅이론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1965-66년에 벨 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이 라디오 안테나의 마이크로파 잡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우주배경복사를 확인하면서부터이다. 우주는 탄생 초기 높은 온도의 불덩어리로 시작되었으나 우주가 팽창하면서 냉각되어 현재 약 3K의 흑체 복사가 남아 있다고 주장한 가모브의 이론과 공간의 모든 방향으로부터 같은 세기로 들어오는 전파가 맞아떨어짐으로써 빅뱅의 흔들릴 수 없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었다.빅뱅이론을 뒷받침하게된 우주배경복사는 이후로도 많은 관측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1989년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기 위해 코비(COBE)위성을 발사했는데, 우주공간에서 우주배경복사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온전하게 측정하는 성공을 거두었다.그런데 그 뒤 학자들 사이에서 빅뱅 모델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 문제가 되었다. 즉, 현재 관측가능한 우주의 크기와 추정되는 우주의 나이를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의 열평형 상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의 이 수수께끼를 학자들은 지평선 문제라고 부르는데 1979년 앨런 구스가 주장한 인플레이션(inflation) 이론이 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했다.인플레이션 이론대로라면 c를 갖는다. 자유공간의 광속도는 한계속도이며 에너지나 정보를 지닌 어떤 것도 이보다 빠를 수 없다.이제 특수상대론의 결론을 현실에 옮겨놓으면 우리가 고대부터 가지고 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알게 된다. 우선 절대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관측되는) 사건이란 없다. 보편적 동시성을 허용하지 않는 시간의 이 독특한 성질 {) 엘러건트 유니버스, 69p은 '빛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속도로 움직인다 는 사실 하나만으로 간단하게 설명된다. 한 관찰자가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고 판단하는 두 개의 사건을, 이 관찰자에 대하여 운동하고 있는 다른 관찰자는 동시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그리고 또 한 가지, 상대론의 지배를 받는 세계는 길이나 시간조차도 절대적인 값을 갖지 않는다. 즉, 움직이고 있는 시계의 경과시간은 정지하고 있는 시계의 것보다 느리게 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효과는 후에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소립자를 이용한 실험에서 검증되었다. 뮤온(muon)의 운동 속도가 시속 66억 7천만 마일(광속의 99.7%)로 가속되면, 뮤온의 수명이 10배로 길어진다 {) 엘러건트 유니버스, 77p. 또한 속도 v로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보고 있는 관찰자에게는 물체의 길이가 운동방향으로 수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 현상은 움직이는 물체가 가진 시계가 느리게 감으로써 어떤 거리를 통과하는데 걸리는 소요시간이 그만큼 짧게 나타나고, 거리 = 속도 × 시간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결국 물체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다. 만일 물체의 속도가 광속의 98%에 이르면 그 물체는 원래 길이의 20%가지 줄어든다.그런데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런 수명연장이나 길이수축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빨리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장거리 운전을 불평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론에 의한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광속에 가까운 아주 높은 속도가 필요한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런 속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들 중 우리의 눈하는 우주는 그것이 탄생하던 순간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작은 점 안에 거의 무한대의 밀도로 응축되어 있다가 빅뱅과 함께 폭발하면서 지금도 팽창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블랙홀이란 아주 큰 밀도를 가지는 응축된 별의 주위가 심하게 왜곡되어 초중력에 의해 모든 별, 심지어는 빛까지도 빨려 들어가는 우주의 가상적인 구멍으로 최근 이 홀의 존재를 입증하는 많은 관측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그런데 뉴턴의 중력이론과의 마찰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나선 일반상대론은 또 하나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 문제는 바로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사이의 충돌이다. 이 두 개의 이론은 적용되는 영역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상들은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블랙홀의 중심부, 또는 빅뱅 직전의 우주처럼 작은 크기에 질량이 응축되어 있는 경우에는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두 개의 이론을 한데 합쳐놓고 계산해 보니 어떤 물리적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무한대라는 말도 안되는 값이 나온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들이 응축되어 있는 초기 우주와 블랙홀의 중심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리적 과정들은 영원히 미지로 남을 수 밖에 없다 {) 엘러건트 유니버스, 142p.그 동안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일하는 일은 여전히 현대 이론 물리학의 최대 난제이다.그렇다면 이렇게 골치아픈 문제를 들고 나온 양자역학은 과연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 알아보기로 한다.(3) 양자역학양자역학은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로부터 시작한다. 플랑크는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의 스펙트럼 분포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 가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흑체는 에너지를 빛(전자기파)의 형태로 방출하는데 이 전자기파들의 분포를 계산해 내는 일에 19세기 물리학자들이 몰두했다. 막스 플랑크도 그 중 한 사람으로서 전자기파이다.
"화양연화"... 1년 전 어느 날, 그와의 쓸쓸한 이별 뒤 불꺼진 방에 혼자 앉아 보던 그 영화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감독은 사랑의 기억이 가슴속에 어떻게 새겨지는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사랑했던 날들이 존재했던 공간과 그 시간이 어떤 영상으로 남게 되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추억이 되면 아직은 사랑했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순간과 우리를 둘러싸던 풍경이 내게 속삭이게 될 말을 미리 들어버린 사람 같았다.화면을 가득 채운 검은색 바탕에 두드러져 보이는 흰 색 글씨...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1962년의 홍콩, 같은 아파트에 두 가구가 동시에 이사를 오게되면서 시작되는 이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예감 속에 시작을 한다.수출 회사의 여비서인 첸(장만옥)의 남편은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고 남편이 없는 집에서 그녀는 눈부신 드레스를 입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린다. 신문사 편집장인 남자 차우(양조위) 역시 그의 아내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더 많다. 늘 외로운 이들의 첫 만남은 미디엄 쇼트, 정상적인 속도로 포착하는 카메라처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 일상적인 만남이다. 아파트 복도나 계단에서의 몇 번의 마주침은 퍽이나 평범하고 '이웃 좋다는 게 뭐예요' 라고 말할 만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하나 다를 것이 없다.그러던 어느 날 카메라는 갑자기 숨을 죽인다. 국수를 사기 위해 늘상 오가던 비오는 골목 아래 계단을 첸이 걷고 다른 한 방향에서 차우가 걸어나와 첸을 느리게 스쳐지나간다. 분명 찰나일 그 순간이 슬로우 모션으로, 거의 정지화면인 듯이 느리게 보여진다. 숨이 멈출 듯이 느리게 흘러가는 클로즈업된 화면과, 이 영화의 테마로 사용된 삼박자의 반복되는 음악은 두 사람이 어깨가 스칠 듯 비켜가는 그 순간을 가슴이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지켜보게 한다.그 뒤 영화는 멜로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사는 공간의 상황 그리고 너무 짧아서 결코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짧은 순간을 표현해낸다.반복과 시간의 건너뜀, 일상적인 속도를 벗어난 카메라... 감독의 이 독특한 선택은 어쩌면 내게는 너무 당연해 보였다. 사랑이 내 모든 걸 지배하던 그 때에는 그 앞에서는 항상 조심스러웠고 저만치 앞서 있는 그에게 내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서, 저기 앞에 나타난 그가 내 쪽으로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살피느라 그 몇 초가 몇 분, 몇 시간처럼 길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가 내게 걸어오던 그 몇 발자국은 분명 찰나였을텐데 온통 그에게만 쏠려있던 가슴 두근거리던 감정이 그 시간을 한없이 늘어뜨렸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던 길에서도 나는 그와 걷던 그 길에 묻어있던 그 때의 긴 시간을 보았고, 이젠 시간만 지났지 그 때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공간에서 나는 다른 날,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던 그의 모습을, 내게 영원처럼 소중했던 그 순간을 수없이 반복해서 보았다. 감독은 사랑한 날들의 추억이 담긴 공간과 시간이 마음속에서 어떤 영상으로 자리하고 있는지를 마치 겪어 본 사람처럼 정말로 알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 일상적인 것들은 일기장에 적어두어도 기억해내기 힘들만큼 의미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후에 사랑의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될 순간은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으로, 평범한 곳이지만 그만큼 특별한 공간으로 살아 있었다.몇 번의 마주침이 계속되던 어느 순간, 첸은 차우가 남편이 즐겨하는 넥타이를 하고 다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차우는 첸이 아내가 즐겨 가지고 다니는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둘은 각자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애인 사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 뒤 이들은 같이 식사를 하고 서로의 배우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절대 잘못돼선 안돼요' 라고 다짐하고, 이들 배우자들의 불륜을 연극처럼 재현하면서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서로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이라는 같은 상처를 안은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무협소설을 쓰는 일을 공유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영화에서 몇 번 보이지 않는 첸과 차우가 웃는 장면은 이 몇 컷 안에 들어가 있고 이 순간들은 모두 그들이 기억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서 매우 느리고 아름답게 보여진다.차우의 작업실에 함께 앉아 무협 소설을 쓴 기억, 사람들 사이의 소문을 피해 서로를 외면해야 했던 긴 기다림의 시간들, 의미 없는 마작을 구경하며 차우를 그리워하는 외로운 첸의 씬, 신문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따로 떨어져 창 밖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처럼 내뿜는 차우의 진한 담배 연기 모두가 슬로우모션 때로는 스톱모션으로, 느리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온 몸의 감각을 죄어오는 듯한 강한 인상으로 관객을 자극한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이 들어차 있던 공간이 느린 배우, 느린 카메라와 함께 삼박자의 리드미컬한 선율을 타고나면 어느 순간도, 화면 속 어느 것 하나도 눈길을 뗄 수 없는, 느리게, 느리게만 가도 더 붙잡아 두고 싶도록 안타까운 장면이 탄생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화상 밖 공간에서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는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상대를 찾으면서도 '우린 그들과 달라요' 라고 그들 스스로를, 시간이 갈수록 변해 가는 서로를 향한 감정을 계속 애써 부정하려 한다.영화에서는 씬이 바뀌는 사이사이에 커다란 시계를 자주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계속 보여지는 시계는 그 순간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지나가 버렸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한은 영원하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또 동시에 이 시간이 흘러간 뒤에 찾아올 향수와 아쉬움을 짙게 머금고 있는 듯 했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놓여있던 자리에 공존하던 순간은 기억을 통해 가슴속에 자리잡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그리움의 시간인 것이다.또한 영화에서 감독은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차우가 머물던 호텔의 방 번호로 자신의 차기작의 제목[2046]을 발견하도록 , 첸이 간다. 하지만 첸이 차우를 혼자 남겨두고 지나가 버린 그 길에는 아무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없는 그 공간도 그들에게는 모든 것을 들킬 것만 같은 공간이었고 그들의 내면과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습이라는 창살이 쳐져있는 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간수의 눈길이 늘 마음에 걸렸다. 계속해서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결국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그들은 분명히 결백하지 않았고 1960년대 홍콩을 살아내야 하는 그들의 사회적 양심은 끝내 그들을 이별로 이끌어 간다.반면 차우의 아내와 첸의 남편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침묵하는 차우와 첸에 의해서, 그리고 홍콩의 일상,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즐기는 불륜이라는 이유로 아무 방해 없이 그들만의 시간을 갖는다. 화상 밖에만 존재하는 그들에게는 그렇게도 쉬웠던 선택이 1960년대 홍콩이라는 화상에 갇혀버린 차우와 첸에게는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방 안에 햇빛 한 줌조차 들지 않는 어둡고 덥고 습기찬 60년대 홍콩, 그 안을 살았던 첸과 차우의 모습은 지독하게 아름답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의미한다는 화양연화... 감독은 그 고통이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을 밖으로 풀어 놓아버린 차우의 아내와 첸의 남편 사이의 사랑이 화양연화가 아니고 서로의 마음속에 묻어버리고 꽃피우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의 감정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감독은 얘기하고 있었다.어느 비오는 날 밤 차우는 첸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별을 고한다. 차우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낸다' 고 말하지만 실은 사랑으로 그녀를 가질 만큼의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떠나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첸과 차우는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이 때 카메라는 약간 대각선으로 이동하고, 프레임은 느려진다. 이별을 말하는 차우의 깊고 슬픈 눈,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첸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눈... 그리고 어느 순간에 멈춘 카메라는, 차우가를 같이 듣게 된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담으면서 둘 사이에 존재하는 아파트 벽을 부담스러울 만치 두꺼운 세로선으로 화면 한가운데에 잡아넣는다. 그것은 그들이 결코 뛰어 넘지 못하는 사회적, 관습적 벽, 자신들의 도덕적 의무감이라는 벽을 상징하고 서로 등지고 기대선 벽 앞으로 존재하는 각자의 공간은 이제 그 벽을 인정함으로써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 하는 그들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하필이면 그 순간 그들의 처연한 표정을 감싸는 그 노래, 화양연화는 가장 아름다운 때가 실연 직전의 순간이라고, 벽을 뛰어넘어 실현되지 못한 소망을 품고 있는 찰나만이 영원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이뤄졌다면 그 시간들은 그저 가치가 마비되고 의미가 흩뜨려지면서 일상이 되어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우의 아내와 첸의 남편의 사랑은 그 끝을 굳이 따라가 보지 않아도 헤어짐이라는 결말을 맞았을 것이며 더는 남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우와 첸은 그들의 사랑을 그냥 가슴에 채워둔 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때문에 결코 그들의 사랑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제도에 순응하는 나약한 사람들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차우와 헤어진 그 후부터 첸은 차우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 때부터 영화의 배경음악은 삼박자의 안정적인 템포로 느리게 흘러갔던 테마 대신 냇킹콜의 'Quizas, Quizas, Quizas' 로 바뀌고 그 슬프고도 달콤한 목소리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단지 '기억'해야하는 고통을 위로해주는 듯 깊은 울림을 준다.또 다시 힘들고 느리게 흘러가는 외로운 시간이 지나고, 혼자서 울리는 전화벨 속에 묻혀버린 '싱가폴로 같이 떠나요' 라는 독백으로 차우는, 첸은 알지도 못하는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싱가폴에 사는 차우를 찾아온 첸은 전화가 연결되자 아무 말도 못한 채 전화를 끊고, 직감적으
I will tell you about David Helfgott who gave me the deep impression for enthusiasm among people I respect. I have knew him through the movie ‘Shine’. The ‘Shine’traced his real life and his passion of music.He took the piano lessons from his father who forced him to be the top. After some years he was recognized as a young man of promise at last. Moreover he got the chance to go abroad and study at the music school. But his father opposed his study abroad. However he went his own way for beloved music with the wounded 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