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 노 동 운 동 사1. 들어가며...이 땅의 노동운동은 대략 8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이 이 땅의 노동운동 역시 전진과 후퇴, 정체와 고양을 반복하면서 발전해왔다. 운동은 관망 속에서의 낙관이 아니라 대중의 자주성을 확대하는 능동적이고 목적의식적인 노력과 실천 속에서의 낙관과 결합될 때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시기의 운동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운동을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난에 찬 노동운동의 역사를 시대 및 시기구분해 보는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이 지니는 시대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고 오늘의 노동상황을 좀더 절박하게 보면서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2. 개략적인 한국의 노동운동사(1) 제국주의의 침략과 민족해방투쟁으로서의 노동운동(1920∼53)① 3·1운동과 진보적 노동운동의 태동(1920∼30)② 일제의 무단적 탄압과 비합법 노동운동(1930∼45)③ 8·15해방과 자주국가 건설투쟁으로서의 노동운동(1945∼53)(2) 진보적 노동운동의 단절과 민주노동운동의 모색(1953∼80)① 한국전쟁의 종전과 대한노총의 반공주의 노동운동(1953∼61)② 5·16쿠데타와 한국노총의 노사협조주의 노동운동(1961∼72)③ 10월 유신과 민주노동운동의 외로운 출발(1972∼80)(3) 광주민중항쟁과 자주·민주·통일로 가는 노동운동(1980∼① 광주민중항쟁의 좌절과 진보적 노동운동의 모색(1980∼87)② 6월항쟁과 민주노동운동의 대중적 전개(1987∼)) 「한국노동운동사」 한국민주노동자연합엮음, 1994년, 동녘(4) 현 단계의 노동운동3. 본문1920∼53년은 제국주의 및 국내 봉건세력의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여 고난에 찬 반제국·반봉건 투쟁을 전개했던 시기이다. 20년대의 노동운동은 3·1운동 이후 일제가 펼친 문화정책 속에서 인텔리가 지도부를 이루고 있던 조선 노동총동맹의 주도하에 변혁적 이념이 노동대중 속에 전파되면서 조직과 투쟁이 수행되던 긍정성과 함께 점차 그 이념이 사회개한 무단적 탄압을 하는 상황에서 이에 굴하지 않고 비합법 노동운동의 맥을 이어온 큰 성과와 함께 20년대의 우편향에 대한 좌편향으로서 정치주의, 비합법주의에 다소 경도된 작은 한계를 지닌다. 이 시기에 온 나라에서 벌어졌던 노동조합운동은 일제의 대륙병참기지가 되어 가던 흥남, 함흥, 원산일대에서 가장 활발했었고 일제가 파쇼 억압체제를 강화하고 조선을 병참기지로 재편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황국신민화를 강행하던 그때 분위기 때문에 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기 또는 암흑기를 맞이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잠복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45∼53년은 1930∼45년의 비합법 노동운동을 계승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또 다른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자주국가 수립 투쟁을 대중적으로 가열차게 전개했던 시기이면서 외세와 친일 반봉건세력의 탄압, 당시 지도부의 노선상의 오류(9월 총파업 이전의 합법·타협주의적 편향, 이후의 비합법·맹동주의적 편향)로 인해 그 꿈이 좌절된 시기로 볼 수 있다. 해방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자연발생적인 노동운동의 시작을 가져왔다. 즉 해방은 일제자본의 철수와 공업생산의 감소, 기술의 부족을 가져왔고, 이는 조선경제 전반, 나아가 노동계급의 생활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다. 공업생산의 감소는 노동자 수의 감소와 대량실업, 임금하락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생활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퇴직금과 상여금 요구 투쟁, 해고반대 투쟁 등을 벌이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투쟁과정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였으며 공장, 회사 단위에서 자치위원회·관리위원회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 노동계급의 활동은 전평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전평은 노동자의 일상이익을 옹호하고 경제부흥과 상업건설에 적극 참여하며, 민족통일 전선에 참여하여 인민정권 수립에 노력한다는 운동방침을 세웠으나 미군정의 탄압으로 그 운동성의 발휘가 어려워졌었다. 이후 9월 총파업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대한노총의 성립이 이루어졌고 보도연맹도 결성되었전평타도를 목적으로 급조된 대한노총 및 그 후신인 한국노총이 반공주의, 노사협조주의를 거쳐 어용화하는 가운데 민주노동운동이 고통스럽게 출발하던 시기이다. 1953∼61년은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대한노총의 지도부가 자신의 지위를 정치적 입신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는 가운데 하부에서 사업장 단위의 경제투쟁만이 전개되던 시기이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좌파 노동계급은 대부분 드러났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남한에서 활동하기란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승만 국가권력이나 반공을 이념으로 하는 우익 대한노총에 도전하거나 경쟁할 노동운동세력은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았다. 이후 60년 4월 혁명으로 이승만하야와 자유당정권의 붕괴가 이루어졌고 민족 자주통일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동시에 민중적 요구도 폭발적으로 표출되었고 교원노조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대한노총의 재편이 시도되었다. 1961∼72년은 한국노총이 노사협조주의의 깃발을 들고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하부에서 노동대중의 급격한 증가 및 노동대중의 빈곤, 그 상대적 심화를 토대로 비교적 활발한 경제투쟁이 전개되던 시기이다. 60년대에 들어와 군사정권이 수립되고 정부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선성장 후분배정책의 기조 속에서 미일자본에의 의존, 저입금, 저 농산물 가격정책을 기초로 한 수입대체 공업화로 불균형 성장이 지속되었다. 농촌의 몰락을 가져와 이농이 급증했고 도시로 집중된 이농민은 임금노동자의 증가를 가져왔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 확대되었고 부실기업이 속출하였으며 국제수지의 악화가 발생했다. 박정희의 쿠데타와 동시에 교원노조 간부가 대량 검거되었고 노동조합 해산령이 발효되었다. 위로부터의 노조 재편성 전략으로 산별노조가 결성되고 한국노총체제가 출범했다. 1972∼80년은 70년 전태일의 죽음을 통한 저항으로 시작되어 자본과 권력에 의한 극한의 탄압과 노동자들에 의한 극한의 저항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이다. 74년 현대조선 2만 노동자어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이러한 투쟁은 정부의 비호를 받는 정책사업장과 대재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모습은 유신 말기인 부마항쟁에서도 나타났다. 조직의 측면에서는 노동조합 자체를 논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노조가 새롭게 결성되었다. 70∼79년 사이에 무려 2천 5백개의 신규조직이 탄생했다. 한편 노조 민주화를 위한 투쟁도 확대되었다. 72년의 한국모방(원풍모방), 72, 76년의 동일방직 노조민주화투쟁과 73년 콘트롤데이타 노조 결성, 74년의 반도상사 노조 결성, 75년 Y.H무역 노조 결성 등이 대표적이다.3) 「한국노동운동사」 한국민주노동자연합엮음, 1994년, 동녘그러나 당시 유일하게 정권으로부터 활동공간을 허용받은 종교단체 등의 도움으로 발전된 민주노조운동은 정치의식 면이나 타계급과의 현대 등에서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는 경제투쟁조차도 민주화투쟁, 정치투쟁의 의미를 갖는 시대였다.80년대는 광주민중항쟁이후 전체 민족민주운동은 외세와 군사독재정권의 본질을 꿰뚫고 질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광주민중항쟁의 경험이 미국을 민주화운동의 후원자로 여겼던 지난날의 잘못된 인식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80년대에 들어선 재야민주운동은 반독재 민주화운동 차원을 넘어서 체제변혁적인 운동으로 나아가게 되고 노동운동 또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80년대는 5월 광주 민중항쟁으로 그 막을 열었다. 군부독재에 대한 장엄한 민중항쟁과 그에 대한 외세 및 지배세력의 무자비한 탄압을 보면서 이 땅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문제들과 정면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운동이 극복해야 할 대상의 본질에 대해 보다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정치체제와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80년대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80년대 초중반 노동운동은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시 확연하게 구분된다. 초중반기는 새로운 친미군부독재체제의 등장과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시작되었다. 노동조합에 대한 폭력적 개입, 민주단체의 해산, 그리고 노동법 개정을 통한 노동기본권의 봉쇄 및 임금동결 등 강력한 노동통제정책 하에서 70년대 이래 싹트기 시작한 자주적 운동역량은 파괴되어 갔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수세적, 방어적 투쟁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역량을 키워갔다. 노동계급의 힘이 사회변혁의 가장 중요한 힘임을 자각한 많은 지식인들은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자본과 정권의 탄압으로 노동조합 등 합법적 노동운동 공간이 봉쇄되어 노동운동은 반합법, 비합법 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대중은 서서히 자생력을 갖게 되었으며 80년대 중반기 전국적 규모의 택시파업과 대우자동차, 구로동맹파업 들을 통하여 대중투쟁의 경험을 축적하였다. 또한 80년대 변혁운동사는 남한의 변혁을 담당할 지도부의 지도사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통의 역사였다. 87년을 경과하면서 노동운동은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노동조합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조직노동자의 수도 급증해 그야말로 노동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양적 성장과 더불어 민주노조운동이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조직화한 것이다. 87년 7월 울산의 현대엔진 노조 결성투쟁을 시발점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은 7∼9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89년까지 대중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노조는 노동자들 자신의 조직으로서 일반화되었으며 자주성, 민주성을 노조운동의 새로운 이념이자 관행으로 정착시켜 나갔다. 파업은 일상적인 노동자들의 투쟁무기로 일반화되었으며 지역과 업종을 뛰어넘어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성과는 90년 전노협결성으로 일차 전국조직 건설이라는 결실을 거두었고 91년 하반기에 ILO공대위를 구성하여 전노협 창립과정에 합류하지 못한 업종 및 대규모 사업장 노조까지 포괄하게 된다. 그리하여 94년 민주노총 준비위가 결성었다.
■ 들어가며...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슬로건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었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도 기초생활보장제 등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민주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애를 썼다. 시장을 살리면서도 지나친 시장화를 억제하고자 하는 정책상의 모순과 긴장 속에 4년여가 흘렀다. 임기 말인 지금, 이 국정이념이 성공적으로 수행됐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동안의 개혁을 두고 한쪽에서는 '사회주의적'이라 비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형편이다. 대규모 실업사태, 비정규직의 증가, 연봉제의 확산, 공기업 민영화 등의 현상을 두고 보자면, 후자의 비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모순이 현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누가 말했던가. 말하자면, 국민의 정부는 둘 사이의‘모순’을 해결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러한 상황에서 이정전. 서울대 교수가 지은 는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모순과 간극을 성찰하는 책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 책은 그가 10년 전에 펴낸 의 연장선에 놓인 저서라고 한다. 그 책에서는 마르크스경제학과 주류경제학 사이의 '대화'를 꾀했다면, 이 책에서는 시장비판론과 옹호론을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 책속으로...시장이란 가격을 매개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방식을 말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원리다. 그리고 생산해낸 수많은 상품들이 적절한 수요와 공급을 이루며 그에 맞게 가격이 저절로 최적화되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의 상충된 이해가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자본주의의 구동장치다. 모를 사람이 없는 얘기지만 이것을 가리켜 아담 스미스는『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희대의 표현을 쓰지 않았는가. 어쨌든 그의 책이 발간된 1776년부터 서양이 동양을 확실하게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말할 만큼 그의 사상은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보편적 경제원리가 되었다. 과연 이런 만고불변의 경제원리가 지금도 절대적일까?이책은 바로 시장과 시장의 원리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이고도 포괄적으로 다룬 교양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 자유, 도덕성, 사회의 위기, 행복 등과 관련지어 6가지 물음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시장의 현상을 넘어 자본주의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경제 자체의 진단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인간의 장기 거래, 성매매 등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자본주의논리를 깊숙히 해부한다.이 책은 다음의 여섯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시장과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은 가능한가, 시장은 진정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왜 사람들은 시장의 원리를 싫어하는가, 시장은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붕괴시키는가, 시장의 팽창이 과연 사회의 위기를 초래하는가. 이 질문들은 각각 독립된 한 장을 이룬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세세하게 풀어놓는 저자는 옹호론과 비판론. 어느 입장에도 선뜻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에 관한 '꼼꼼한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것이 저자의 일차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그가 정의하는 시장은 "가격을 매개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예컨대 돈 받고 애를 낳아주는 대리모가 있다면, 거기에 자궁시장 혹은 대리모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원리를 사회의 주된 구성원리로 삼는 사상이다. 이것의 핵심적 내용은 거래를 통한 상호이익 증진의 원리, 경쟁의 원리, 경제적 인센티브의 원리이다. 이 원리들은 수세기에 걸쳐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원동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널리 보면 시장은 사회가 가진 여러 제도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시장제도 외에 법이나 관습, 관례 등 폭넓은 사회 규범적 제도들 역시 중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의 무분별한 월경(越境)에 대한 경계다. 그렇다고 정부의 통제가 적절한 수준을 넘어 규제 차원으로 간다면 시장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 "민주주의가 시장의 발달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어느 범위를 넘어서면 오히려 시장의 발달을 저해한다"고 본다. 그럼 현재의 한국은 시장이 긍정적 기능을 하는 단계인가? 그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자본주의 경제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만드는 사람은 민주주의 정서와 능력을 이상적으로 갖춘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라는 한 진보적 학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우회적인 결론을 내린다.표제로 쓰인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딱부러지지 않는다. 시장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만 건전한 욕망을 길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욕망은 '고삐풀린 욕망'이기에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르기는 어렵다. 욕망의 적절한 조절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이야기다.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심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 보면, 마르크스의 주장은 노동의 문제를 좀 과장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의 본질이나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사회적 규칙에 근원적 변화가 없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일할 자유, 참된 자기계발의 자유를 충분히 그리고 골고루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결국 마르크스도 아담 스미스도 아닌 '제3의 길'을 구상하고 있다. 결론에서 그는 독일의 사회철학자 하버마스에 기대어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서 시장의 월권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공기업 노조의 파업과 이에 대한 강경진압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의사소통'의 회복을 부르짖는 저자의 목소리는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어차피 이론이란 '회색'에 불과한 것인가...책에서 다루는 큰 주제는 '시장(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대안적 구상'이라 할 수 있겠다. 전반부에서 저자는 시장이 과연 바람직한 개인적 삶을 제공하는가 라는 물음을 세 가지 차원에서 제기한다.첫째, 시장 효율성의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적 부의 증대가 우리의 삶을 그렇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R A 이스털린의 역설을 풀면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시장이해를 비판한다. 절대적 부의 증대가 아니라 상대적 격차의 감소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며, 또 시장은 뒤틀린 욕망과 무절제를 창출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 시장이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를 보장하기에 자유주의 사회와 유일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제형태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는 J S 밀, 임마누엘 칸트, '적극적 자유' 개념 등에 입각해서 진정한 자유는 자기계발과 자기완성의 자유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노동의 상품화를 비판한다. 또한 소비자의 상품선택의 자유도 시장이 강요한 선호 내지는 욕망체계에 따른 타율적 선택의 자유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셋째, 그는 시장이 시장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함으로써 본래적 인간관계를 파괴한다고 비판한다. 이윤동기에 따라 작동하는 시장은 인간존립의 조건인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도덕률, 양식, 공동체적 삶을 파괴한다는 점을 여러 예시를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를 '시장의 월경'이란 말로 축약한다.이처럼 시장은 인간을 행복하게도, 진정으로 자유롭게도 만들지 못하고, 인간사회의 공동체적 조건을 파괴한다. 그런 사회를 저자는 신자유주의사회라고 부른다.그러면 대안은 없는가.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가능성을 제안한다. 일단 그는 요즘 유행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의 사회적 자본이론 또는 사회적 신뢰이론의 토대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신뢰가 축적되면 그 자체가 개인들의 인간관계를 보다 윤택하게 만들 것이지만, 그 효과를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거래비용을 낮추어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라 생각된다. 그러니까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이 형성될 뿐 아니라, 지금껏 시장에 다소 식민화되어 있던 시민사회를 본래의 공공적 위치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고신뢰 사회에서는 시장과 시민사회(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그러면 이제 남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고신뢰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라는 문제다. 여기서 저자는 공정성 내지는 정의 원칙의 확립이 고신뢰 사회로 가기 위한 필수적 전제이며, 또 현대와 같이 분화된 사회에서는 영역별로 정의의 원칙이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경제영역, 정치영역, 사회화 영역으로 나누면서 그는 경제영역에서는 능력의 원칙(성과주의 또는 능률주의)을, 정치영역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약자보호)의 원칙을 내세운다.'시장원리가 점차 확산돼 생활에까지 들어오면 인간은 얼마나 피폐해 질까?' 지난 200년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뤄놓은 물질적 풍요를 누려온 인류는 계약제를 채택하고 무한경쟁체제를 도입하며 시장 원리가 능사라는 집단최면에 걸려 있다. 저자는 시장이 자본주의의 유용한 구동장치이긴 하지만 민주주의, 자유, 도덕성, 사회의 위기, 행복 등과 관련된 6가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 환경문제, 인간장기 및 성매매 등을 다루면서 사회에 만연된 자본논리를 파헤치고 있다. 특히 법, 관습, 관례, 종교 등 사회를 움직이는 다양한 제도가 있지만 현재 시장의 의미는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며 무분별한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시장원리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를 자세히 소개하며 시장에서의 행위가 부도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만 저자는 시장에 대해 일방적인 비판을 가하기보다는 현재 진행중인 보수-혁신 양진영의 핵심쟁점도 가감없이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은 없는 것인지 살피자고 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올바른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돌변할지 그 선택은 인류 전체의 몫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
◈ 전문직의 사회학 ◈들어가며...이 책은 전문직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집단이 배타적 특권을 쟁취해 가는 과정을 규명한다. 논의의 시작은 기존의 사회학이 맑스주의든 기능주의든 간에 구조중심적 설명에 치우친 나머지 그 설명력의 한계를 드러낸 현실에 대한 재성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전문직의 특권 추구가 사회계층 체계에서 차지하는 의미, 전문직 프로젝트가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들을 배제하는 방식,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들이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권력을 획득하는 모습 등을 비교역사적 방법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문직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1장에서는 '전문직 프로젝트'라는 개념이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직업영역을 다룬다. 전문직이란 참단적이거나 복잡하거나 혹은 비밀스럽거나 나해한 지식에 기반을 둔 직업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됨을 명시하고 라슨의 저작을 중심으로 전문직 사회학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흐름을 소개한다.우선 화자는 기능주의사회학과 전문직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상호작용론적인 대안에 대해 이야기 한다. 즉 뒤르켐의 영향으로 1960년대 후반까지는 전문직 사회학 분야에서 기능주의 이론이 우세했었다. 이는 뒤르켐이 전문직의 윤리를 강조했던 것에 연유하는 것으로 그는 전문직 집단이 도덕적 권위가 쇠퇴하고 있는 근대사회를 구원할 것이라 믿었는데 그의 이러한 관점은 당시 이후 많은 사회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그들은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으로 기능적인 특성들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전문직에 대한 '자질론'적 접근방식을 취하여 전문직 연구에서 사회학의 임무는 이상형적 전문직의 특징들을 나열하고 그것에 비추어 실제 직업집단이 전문직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믿었다.70년대 초반에 이르면 정통기능주의는 점차 비판받으며 거부되기에 이른다. 전문직에 대한 기능주의적 관점이 전문직사회학 분야를 완전히 장악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면 기능주의자 자신들이 기능주의적 편향을 알고 있었고 전문직 연구가 부용하는 집단적 행위를 총칭해 전문직프로젝트라 하고(다르게 말해, 근대 사회에서 지식이 전문화되면서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 배타적인 조직형성을 하고 이들이 국민, 국가와 상호작용을 통해 성원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사회적 폐쇄를 획득해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음) 이러한 전문직프로젝트에 관한 개념정리가 앞으로의 논의에 길잡이 역할을 하고 이론적 틀로써 작용할 것이라 주장한다. 전문직과 사회계층화자는 전문직사회학이 계층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전문직이 근대 산업자본주의사회의 출현과 함께 오늘날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근대사회는 지식에 기반한 사회이기 때문에 지식에 기반을 둔 직업범주로서의 전문직은 근대사회구성체의 필수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직에 대한 연구, 특히 전문직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는 근대 계급체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규명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화자는 주장한다.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화자는 사회계급의 이론화를 조명한다. 맑스의 생산관계 중심의 사회계급 논의와 네오맑시안의 견해, 그리고 베버의 계층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가들의 연구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화자는 맑스가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올바르게 파악했으며 그리고 그의 분석방식이 한세기 반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나, 그같은 특징을 일방적으로 최고의 단일원인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당시에도 물론 지금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계층문제를 다룸에 있어 베버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전문직에 대한 사회계급의 이론화를 검토한다. 그런 다음 역사 속에서의 자본가 계급, 노동자 계급, 중간계급 등의 계급개념을 여러 이론가들의 연구를 통해 요약적으로 제시한다. 화자는 이러한 계급에 대한 이론화가 특히 중간계급의 상이한 분파들, 그 중에서도 전문직 집단들에 대한 개념화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으로는 현대의 계급들. 즉 다렌도르프가 처음으로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고자 하며, 독점은 국가에 의해서만 허용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전문직은 국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국가의 특성을 밝히는 것이 필수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직프로젝트에 대한 강조는 본질적으로 통시적이고 역사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의 특성을 도출하는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역사사회학자들의 저작에 눈을 돌려보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홀, 겔너, 틸리, 코리건과 세이어, 반 등의 연구를 개략적으로 제시한다.그런 다음 앞서 말한 네 나라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데 우선 영국은 하부구조적 권력이 일찍 발달하여 전제권력이 약했고, 시민사회가 국가에 상당히 침투해 있었다는 데 특징이 있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국가는 전문직집단들에게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공식권한을 부여했으며 국가는 최소한의 감독기능만을 행사했고 바로 이것이 전문직프로젝트를 번성시킨 기름진 토양이었음을 밝힌다. 두 번째로 미국은 영국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나라로서 전문직조직의 부재 또는 취약성은 확실히 지리적 분산과 급격한 사회변동 탓이었음을 설명한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조직의 부재로 자신들의 지식을 통제하고 전수해줄 수단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평판을 확립하고 자신들의 시장영역에 진입하고자 하는 일반인들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미국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생적인 그들의 위상을 지니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는 구체제 정치체계가 중앙집중화된 절대왕정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큰 차이를 보인다고 화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혁명의 시기 하부구조적 권력이 굳건하고 효과적으로 확립되어 전문직집단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한다. 독일은 살펴본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국가구조가 강력해서 전문직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시민사회가 국가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대학체계가 오랜 역사와 활발한 활동을 지니고 있어 전문직의 확립에 어느 정도의화자는 전문직 형성의 세 가지 사례의료분야, 건축분야, 회계분야를 들어 국가와 전문직의 관계에서 국가의 다양한 결정화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이 세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등록제를 확보하기 위해, 또한 그를 통함으로써 사회적 폐쇄를 달성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에 대한 과정을 개관한다. 특히 회계사의 경우를 보다 상세하게 검토하는데 그 이유는 70년간이나 등록제를 확보하여 법적 독점이나 폐쇄 등을 달성하려는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실패들 중에서 가장 큰 위기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상이한 시점에서 발생하는 국가와 전문직간의 특정한 상호작용에 대한 비교를 병행한다.화자는 마지막으로 국가와 전문직 그리고 역사적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전문직이 '국가형성과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확언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관계를 맺거나 국가의 영역을 침해하는 전문직의 행위가 국가형성과는 전혀 무관한 동기나 목적을 지니고 수행되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들을 비사로 재해석하기보다는 당시의 전문직이 공공연히 추구했던 목표와 국가의 대응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화자는 이 장의 결론을 내리면서 전문직단체와 국가 간의 상호작용이 특정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정한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가장 중요한 점은 전문직 단체의 갈등은 타 전문직단체들과의 갈등이거나 해당 전문직단체 내부의 갈등이었지 국가와의 갈등이 아니었다는 점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의료, 건축, 회계분야 전문직에 있어 등록제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폐쇄나 시장독점에는 별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자는 국가가 시기에 따라 취한 서로 다른 행동과 대응방식 그리고 지정학적 정책들과 관련하여 국가가 취하는 다양한 입장들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오늘날 전문같은 의식을 지니고 가부장제의 특수 사례로서 사회적 폐쇄를 언급한다. 즉 전문직집단의 기성성원들(남성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성원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조직폐쇄 수단을 말하는데 여성들이 일의 영역에서 전문직프로젝트와 사회적 폐쇄라는 수단을 이용함으로써 가부장제라는 견고한 성벽에 어느 정도의 틈새를 열어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유쾌한 아이러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간호분야 전문직에서 사회적 폐쇄의 한 형태를 이용해 부분적 성공을 거두었고(비록 여성을 기계적으로 종속적 위치로 전락시키는 가부장제 담론을 통해 여성을 불리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지만) 간호사자격증제와 등록제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지금까지 남성들이 이용해왔던 명확히 확립된 전문직프로젝트 전략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다음으로 화자는 비간호분야 전문직에서의 여성들의 현황을 살피고 여성들의 활동에 대해 다소의 옹호하는 입장을 보인다.이 장의 결론에서 화자는 근대 산업사회의 도래가 직업집단이 전문직프로젝트를 추구할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귀속적 자질보다는 성취를 사회적 지위의 기초로 강조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여성들은 다중적인 불이익을 감수하게 되었으며 면밀한 제약을 받는 귀속적 지위의 잔여물들만 물려받은 채 새로운 지위형태의 기초가 되는 성취에 접근할 기회를 거의 박탈당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가부장적 담론과 관행들은 그 뿌리가 깊으며 남성의 사회화과정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화과정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뿌리뽑기가 그만큼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화자는 여성들의 전문직프로젝트가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화자는 그 논거를 국가가 법적, 합리적 원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국가는 여전히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원천인 다중적 불평등을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들을 개방적인 자세로 맞아들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찾고 있다. 지식과 전문직화자는 첫머리에서 "전문직업주의를 발생시키는 핵심적
◈ 개 요 ◈1. 들어가며...환경문제는 사회문제로 이어지며, 주요한 사회학적 이슈이다.2. 서론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사회문제로의 인식을 유도하기 위해 영월(동강)댐문제를 살펴보자3. 본론1) 영월댐 진행상황2) 영월댐 문제의 사회문제적 접근3) 보호론자들의 입장▶ 무너지는 생태계▶ 보장되지 않은 안전▶ 물에 잠기는 선조들의 숨결▶ 동강을 세계적 관광지로..▶ 물부족 문제의 해결책이 영월댐밖에 없는가?▶ 영월댐 건설이 홍수방지 대책이 될 수는 없다3) 개발론자들(환경부와 수자원공사)의 입장▶ 수도권의 물부족. 방치할 수는 없다.▶ 이상이 현실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4. 결론용수 확보의 필요성에는 양측 모두 인정하고 있으나 방법론적 입장에서 차이를 보이므로 어떠한 방법으로든 용수는 확보되어야 하고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아 누가 옳은가 단정짓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따라서 추후의 경과를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영월댐 문제는 단지 환경부, 수자원공사와 동강보호단체, 환경론자들만의 문제가아닌 사회전체의 문제이며 이를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5. 마치며...영월댐 문제를 시민운동의 발달과 전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번 문제를 통해 사회문제의 형성과 발달, 그리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집단간의 지향점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문제를 인식하는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1. 들어가며...현재 우리는 경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많은 경제적 부와 편의를 위해 온 지구가 몰두해온 결과, 지구의 환경은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즉, 산업혁명이후 계속된 산업 생산의 확산으로 회복할 수 없는 환경의 파괴가 이루어져 온 것이다.심각해진 환경문제는 그 본질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파생시키게 되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개발을 통해 제반 시설의 개발을 지속해야 한다는 개발론자들과 더 이상의 개발은 환경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대립,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해에 홍수조절과 용수확보를 위해 2001년까지 7억톤 규모의 다목적댐이 건설될 예정이었다.건설계획수립과 병행하여 영월댐 건설의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졌다. 건설교통부는 1996년 환경영향평가서를 마련하여 1997년 6월에 환경부에 이를 제출하고 협의하였다. 그러나 환경부는 해당 환경영향평가서가 동강이 보호대상 희귀동식물의 서식지라는 사실조차 기술하지 않는 등 그 내용이 부실함을 들어 보완을 요구하였다. 1998년 2월에 제출된 보완서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재보완을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월댐 건설에 대한 반대여론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종교인, 예술인 등 각계 각층에서 반대성명이 잇따랐으며, 98년 7월에는 국회에서 '강원도 영월 동강 다목적댐 건설계획 전면 재검토 결의안'이 발의되었다. 이렇게 각계의 반대가 심하고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보완요구가 계속되자, 영월댐 건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1998년 12월 종료할 예정이었던 건설예정지의 생태환경조사가 1999년 8월까지 연장되었다. 이에 따라 1999년 초로 예정되었던 댐 건설 예정지 일대의 토지매입과 보상 등 공사 시작 시기도 1999년 말로 미루어져 사실상 2001년 댐을 완공하려던 원래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2) 영월댐 문제의 사회문제적 접근우선 영월댐 문제를 사회문제로 보는 요건을 살펴보면 첫째로 사회적 사실에 기반한다는 사실이다. 거대조직인 정부의 방침으로 댐을 건설한다는 계획에 맞서 개인이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역부족이므로 개인의 밖에 있으며 개인이 그러하도록 강제되고 있는 사회적 사실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는 상대성으로서 영월댐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댐건설 이후 나타나는 영향은 범국민적이라 할 수 있겠다. 셋째는 변경가능성을 들 수 있다. 즉, 환경영향평가를 통해서 부적합판정이 나온다면 정부로서도 건설을 포기하거나 다른 방안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얼마든지 변경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현재 적으로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아직 이 지역의 생태계에 대한 완전한 실태 파악이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영월댐 건설이 문제가 된 후 실시된 각종 조사 때마다 새로운 동식물의 서식이 확인되고 있어, 영월댐 건설로 인한 환경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2. 사라지는 수억년의 신비동강지역은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생물자원의 보고일뿐만 아니라 석회암 절벽과 동굴, 하안단구, 포인트바 등 다양한 하천지형이 나타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특히 석회암 동굴은 수억년에 걸쳐 형성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영구 천연기념물(제260호)로 지정된 백룡동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기기묘묘한 모습을 간직한 석순과 종유석, 석화와 산호가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사이로 동굴노래기와 붉은 박쥐 등 다양한 희귀동물들이 지나다닌다. 만일 영월댐이 건설되어 동굴이 물에 잠긴다면 이 모습은 영영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백령동굴 외에도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석회동굴이 동강유역에는 수없이 많이 있다. 당초 수자원공사는 '6개의 동굴이 댐 수몰지 내에 분포하고 있으나, 이 동굴들은 백룡동굴을 제외한 대부분이 30m를 넘지 않으며 모든 동굴이 하천 인근에 있어 유역 외로의 유출 가능성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진이 동굴전문 사진작가 석동일씨와 함께 답사한 바에 따르면 연포동굴(650m), 능암덕산 동굴(380m), 수달동굴(380m), 사자동굴(300m) 베틀동굴(250m) 등 50여개의 새동굴이 확인되었다.그리고 환경운동연합의 탐사 결과 1백 92개의 동굴이 발견되었으며, 이중 수몰지역 내에 위치한 동굴만 60여개였다. 즉, 조사가 거듭될 때마다 그 수가 늘어나는 동강 유역의 석회동굴도 동식물처럼 아직 그 정확한 분포상태가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댐건설의 피해는 예상보다 클 수밖에 없다.▶ 보장되지 않은 안전성(물에 녹는 석회암)영월댐은 물에 녹기 쉬운 석회암 지대에 지어져 건설 후 지반이 침해될 위험이 있다. 건설도 함께 사라진다.영월댐 인근에 산재한 유적지들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덕천리, 운치리, 용탄리 등 신석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기의 유적들은 영월댐이 완공되면 모두 물에 잠긴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수많은 유적들 중 고고학적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곳이 덕천리 한 곳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머지 유적들은 모두 환경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들이며, 따라서 얼마만큼의 유적이 새로 발견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이다.삼국시대 삼국 항쟁의 무대였던 동강 유역에는 고성산성 등 많은 산성들이 발견되었다. 이들 산성들은 높은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직접 물에 잠길 염려는 없지만, 주변 저지대에 각종 유적들이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된 곳 또한 동강 유역이다. 청령포, 노산대, 망향탑 등 비운의 왕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구구절절히 베어 있는 유적들이 곳곳에 퍼져 있다. 동강은 또한 정선 아리랑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려가 망하자 이곳에 들어왔다는 충신들의 한시가 세월을 흐르며 변형되었다는 정선아리랑은 19세기 말 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동강 유역이 목재 운송의 중심지가 되자 한강을 타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동강 유역이 제대로 조사도 되지 못하고 물에 잠긴다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으므로 댐 건설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동강을 세계적 관광지로..동강에 가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 나라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너무나 아름답다' 며 동강의 비경에 찬사를 보낸다. 동강의 대부분이 배로만 접근이 가능한 까닭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 아름다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계림이나 미국의 그랜드캐년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이 시도되기도 한 동강은 높이높이 솟은 산들을 휘감아 굽이굽이 흐르며 곳곳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놓았다. 특히 동강의 백미로 꼽히는 어라연은을 감안한다면 댐을 짓지 않고도 수도관의 보수를 통해 비숫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선진국에서는 매년 노후 수도관의 교체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또 현재 그 실적이 미미한, 한번 사용한 물을 재처리해 다시 사용하는 중수도 설치 사업, 터무니없이 싼 물값의 현실화, 이미 개발되어 있는 절수 장치의 광범위한 보급 등을 통해 낭비되는 물의 상당 부분을 절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누수방지와 절수대책 이외에 녹색댐 건설, 지하수 처리를 통해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도 유용한 대책이 될 수 있다.물과 관련해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영월댐 건설로 인해 확보되는 물이 과연 식수로 적합한가 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현재 동강의 수질이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1.3-1.8ppm으로 2급수이지만, 댐이 건설되면 오염도가 높아져 3급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댐이 석회암 지대에 건설되기 때문에 물이 식수로는 부적합한 강알칼리성이 된다. 이는 폐광에서 흘러나오는 중금속과 결합하여 수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동강유역 주변의 축산 농가 등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도 문제이다. 임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98년 9월 동강의 물에서 일반세균은 ml당 최고 1만4천마리가 검출되었는데 이는 먹는 물 수질기준인 100마리의 140배에 달한다. 최저 200마리에서 최고 1만 4천마리까지 발견된 이들 일반세균은 인근 축산농가 등에서 유입된 오폐수가 원인이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물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영월댐이 건설되더라도 과연 그 물이 식수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하겠다.▶ 유일한 홍수방지 대책은 아니다.건설교통부와 수자원 공사는 90년과 95년의 엄청난 홍수 피해를 상기하여 볼 때 홍수 조절을 위한 다목적댐이 반드시 건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홍수조절을 위해 반드시 다목적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충북대 김진수 박사는 '수도권 홍수는 한강 본류의 물 때문이 아니라 중랑천 등 장이다.
1. 들어가며...최근 학계나 언론에서는 시민단체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시민단체의 급격한 부상을 신호로 시민사회에 대한 이론적인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경험적인 연구나 다른 나라와의 비교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우리나라내의 크고 작은 수많은 시민단체들에 대한 연구 역시 부족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수많은 소규모의 단체들이 최근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우리들의 일상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지만 별 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역할, 활동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즉 증가하고 있는 시민단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소개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이러한 현실 속에서 시민단체를 직접 방문해서 그들의 업무환경을 시찰해보고 상근자와의 피부접촉을 통한 시민단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미흡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기반을 정립하고 우리의 바람직한 현실인식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2. 탐방기우리는 우선 인터넷을 통해 방문할 시민단체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터넷상 시민단체의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일부 메이저급 시민단체를 제외하고는 매우 빈약했다. 그래서 쉽게 방문단체를 선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여기다' 싶은 단체는 그 단체의 성격이 다소 확실하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범주에 속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호했다.- 또한 어느 정도 괜찮은 것 같아서 연락해보면 전화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통화가 되더라도 그리 썩 반기지는 않는 것 같아서 상당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고 우리의 방문의사와 함께 인터뷰 질문을 미리 메일로도 보내봤으나 답장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냥 메일로만 대충의 답변을 해오는 단체가 있었으나 방문해서 인터뷰하는 것은 수락하지 않았다.우리가 방문단체를 선정하는 데서부터 이러한 어려움을 겪다 보니 다소의 의욕상실과 우리나라의 시민단체에 대한 실망이 앞섰다. 우리가 어느 잡지사나 방송국 기자가 아닌 대학생으로서 단지 레포트나 제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수고를 요청한다고 해도 시민단체의 성격상 이에 대한 배려를 해줘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의 인력부족과 열악한 업무환경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처음부터 이러한 어려움을 겪다보니 과연 아직은 우리나라의 시민단체가 성숙하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 검색을 계속해 전화통화를 한 결과 "환경과 생명"이라는 환경단체에서 방문해도 좋다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약속시간을 잡게 되었다. 2002년 4월 25일 목요일 P.M.4:00 드디어 우리는 광화문역에 도착해 빌딩숲을 헤치고 종로구 백강빌딩 13층에 위치한 "환경과 생명"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무실에는 상근자들의 책상이 한 쪽에 마련되어 있었고 한편으로는 각종 책자와 자료가 쌓여있는 것으로 보이는 서가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미리 약속했던 남궁진 간사를 만날 수 있었다.우리는 그 곳에 있으면서 생각보다는 환경이 열악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외관상 괜찮은 사무실이 있었고 회원현황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회원을 유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막연히 유치하게 그러한 생각을 한 것은 성급한 것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될 수 있는 한 속내를 비추지 않으려 하는 그들에게서 다소의 업무 활동의 어려움, 그들이 생각하고 있던 시민단체 운동의 회의, 재정적인 어려움 등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것들까지를 우리에게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지는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일상적 인사말 말을 한 후에 차를 마시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 내용을 개략적으로 소개하자면...............질문: "먼저 환경과 생명의 소개를 간단히 좀 해주십시요."답변: "네, 사단법인 "환경과 생명"은 환경 운동의 성숙과 전환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로 지난 8년여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 환경 담론과 환경 논의를 선도하면서 수준 높은 녹색 지성지이자 교양지로서 성가를 높여온 계간 『환경과생명』을 모태로 하여 지난 2001년 10월 29일 창립 총회를 열었고 12월 18일 환경부로부터 사단법인 최종 설립 허가를 받아 사단법인 "환경과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전 지구적인 환경·생태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이제 환경과 생명의 문제는 21세기의 가장 긴급하고도 중차대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환경 위기는 단순히 자연 생태계의 파괴나 훼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위기, 모든 삶과 생명의 위기, 가치관의 위기, 인류 문명의 총체적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1990년대 이후 수많은 시민 환경 단체들이 속속 등장했고 환경 운동 또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나 급속하고도 맹목적인 산업화·근대화와 권위주의적인 개발 독재의 외길을 달려온 우리 사회를 아직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정치·경제·사회 체제와 주류적 가치관 및 삶의 방식이 반환경적·반생명적이라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환경 운동의 질적인 성숙과 전환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환경·생태·생명 문제를 두루 아우르는 이른바 '녹색 담론'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부쩍 높아지고 있고, 이러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적으로 특화된 환경 단체의 역할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 시대의 환경 의제를 앞장서 설정해 문제제기하고 환경 운동의 방향과 내용을 제시하며 환경 담론 및 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가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창립된 환경과 생명은 환경 전문 잡지인 계간 『환경과생명』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환경과생명』은 그간 8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환경 담론과 환경 운동과 환경 정책이 서로 만나 소통하는 지적인 녹색 토론의 광장으로서, 우리 사회 환경 담론과 환경 논의를 선도하면서 수준 높은 녹색 지성지이자 이론지이자 교양지로서의 성가를 높여 왔습니다. 특히 환경 문제를 주제나 소재로 다루는 잡지가 매우 많지만, 복잡다기한 환경·생태 관련 논의를 심층적·체계적·집중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중심으로 밀도 있는 학술적 환경 논의를 펼쳐온 잡지로는 『환경과생명』이 거의 유일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환경과생명』은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환경 분야에 헌신하고 있는 많은 이들로부터 나름대로의 호평과 함께, 진지한 격려와 성원과 관심도 많이 받아 왔습니다.이처럼 『환경과생명』이 그간 쌓아온 성과를 토대로 탄생한 "환경과 생명"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역량이 활동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녹색 운동은 양적으로는 급속히 성장했지만, 질적으로 빈곤하고 내용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에 "환경과 생명"은 전문성과 대중성, 학술성과 운동성의 창조적 결합을 도모하면서 녹색 담론 및 이론의 연구와 관련 토론의 활성화, 새로운 녹색 의제의 발굴과 공론화, 녹색 운동의 방향 제시와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 연구 및 토론 공동체 형성과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녹색 미래를 향한 이론과 실천의 쌍방향적 가교의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환경과 생명"은 인간과 자연과 사회가 서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면서 조화와 균형, 공존과 상생을 이루는 새로운 녹색 대안 사회를 열어가는 견인차가 될 것입니다.질문: 그렇군요.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데요. 앞서 말한 전문성과 대중성, 학술성과 운동성의 창조적 결합... 이에 대한 토론의 활성화 등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또한 그러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역량의 확보는 이루어져 있는 건가요? 다소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미리 알고 온 바로는 『환경과생명』을 출간하는 활동만이 구체적으로 표면화되어 있고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성과가 부족하다고 보이는데요답변: (살짝 웃으며)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지적입니다. 우리 단체의 소개를 해달라길래 준비하고 있던 자료로 다소 거창하게 말했습니다. 모든 단체가 높은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단체도 예외는 아니죠. 말 그대로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가 잡고 있는 목적을 지금 이 시점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메이저급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나름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고 그를 위한 노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예로 이사장을 중심으로 몇몇 기업체 대표, 환경 연구소 소장, 사무처장, 관력학과 교수 등을 이사진과 감사, 운영위원회를 두고 기자, 교수 연구위원으로 구성된 연구위원회를 수반함과 동시에 잘 알려진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소속된 자문위원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앞서 말한 거창한 목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환경에 대한 녹색담론,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초청한 각계인사와 회원들 각 위원들, 시민들이 참여한 토론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매월 단체가 정한 날짜에 정기적인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체의 창립과 더불어 '환경상'을 제정하여 환경연구·개선에 기여한 개인 단체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시상하여 환경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자체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여러 환경단체와 유기적인 연락과 교류를 통해 연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자료·정보의 보급과 교류를 통해 환경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중점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시민환경운동의 위상을 점검하기 위해 외국의 시민 환경 단체 및 환경 관련 매체와의 교류·협력을 기획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