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적 교육 비판: 새로 자라는 어린이들만이 장래의 기둥감이요, 대들보이건만 이들은존중하지 아니하고 덕만 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싹은 위로 보내고, 뿌리는 일제히밑으로 가자! 어린이를 터주고 모시고 정성을 바치자! 라고 사람들에게 외쳤다.기존의 학교교육은 기성사회에 필요한 인간을 찍어내는 것 외에 어떠한 이상도 계획도 없다고 말하면서 덮어놓고 헌 사회 사람들의 생각과 제도 일반을 억지로 씌우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하였다. 전통적 윤리의 억압과 일본 식민을 반대하여 유리와 수신과목을 모두 지양하고 동화와 동요 그리고 그림을 통한 예술 교육을 제시하였다.*동화, 동요, 그림을 통한 예술교육: 동화는 아동의 정신생활에 있어 중요한 식물이라말했다. 아동의 마음에 기쁨과 유쾌한 흥을 주는 것이 동화의 생명이다. 평범한 일도 어린이의 세상에서는 예술화~ 동요를 통해 아동의 세계를 키워나가고자 한다. 동요는 진실과 세계가 담겨 있다. 동화, 동요, 그림과 같은 아동예술은 아이들에게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과동정, 그리고 감정 이 입력을 확대시켜줌으로써 타인과 나의 동일함 확대시키고 타인에대한 사랑을 확대시킨다.*역사 주체 자로서의 인식: 교육이란 그 시대 시대에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 주는 것. 단순한 아동존중이 아니라 전체적 전망 속에서의 아동 존중 교육으로 이는 조선현실의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다.*관념론(인문교육):플라톤에 있어서 궁극적 실재는 완전하고 영원한 이데아 (관념)이고, 기독교적 관념론자에 있어서는 신이며, 헤겔의 경우는 비인격적 정신이다.*실재론(과학교육):객관대상 중시, 존재 할 수 없는 것은 사고 할 수 없다.1)합리적: 종교적 실재론(스콜라주의), 고전적 실재론(아리스토텔레스)%토마토 주의자들은 물질과 정신이 최상의 지혜와 선으로 질서 정연하고 합리적인 우주를 창조한 신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고전적 실재론 자와 차이를 나타낸다.(성서, 자연, 예수) 형상 없는 질료는 있어도 질료 없는 형상은 없다2)자연적(과학적): 베이컨, 흄, 밀 등 회의적이고 경험적 특성을 띰.자연적 실재론은 정신적 세계의 존재를 부정, 또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프래그머티즘 교육: 변화만이 실재이다 (실험을 중시)교육은 학생 자신의 흥미와 대립되어서는 안되며 학생 자신의 흥미로부터 유발되어야 한다.교육은 생활 자체이며 생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마르크스: 목표는 인간해방이었다. 경제적 제약으로부터 해방, 인간적인 전체성의 회복,인간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 통일의 회복이 목표였다.(사적유물론):역사 자체가 인간 자신의 산물임을 말했다. 인간은 생산적인 노동을 할 때에만 생동적일 수 있으며 자기의 고유한 능력을 표현=(인간의 유적 본질)*프로이드: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性 자체는 역사, 문화, 사회, 특정시대 등.문화는 인간의 사회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생물적인 존재도 제약하여 본능구조 자체도 제악 한다. 그러나 이 제약이야말로 진보의 전제가 된다. 性 억압은 동시에 인간 문명창조의 기반(1)진보주의: 교육은 생활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생활 자체이다.학습은 아동의 흥미와 직접적으로 관련, 문제해결을 통한 학습이 교재를 통한 가르침보다 더 낫다, 교사의 역할은 지시하는 일이 아니라 조언하는 일, 학교는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조민주주의만이 참된 성장에 필요한 사상과 인간성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허용하고 격려*의의 및 한계점: 진보주의 교육은 아동의 흥미와 요구를 강조함으로써 교육의 대상인 아동에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아동이 배워야 할 학습내용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과 비난의 소리가 있다.
-目 次-Ⅰ. 序 論1. 硏究 動機 및 目的 ----------------------------------------12. 硏究의 方法 및 範圍 --------------------------------------2Ⅱ. 本 論1. 朝鮮族 의 歷史1) 朝鮮族의 形成過程 ---------------------------------------32) 朝鮮族의 正體性 -----------------------------------------32. 朝鮮族에 對한 韓國의 認識과 政策1) 朝鮮族에對한 交流와 問題點의 認識 ---------------------72) 朝鮮族 役割에 關한 視覺 ----------------------------------83) 對 朝鮮族 政策의 課題와 在外同胞政策 ------------------103. 韓中修交 以後 朝鮮族 社會의 變化1) 改革開放이 朝鮮族 社會에 미친 影響 --------------------122) 韓中修交가 朝鮮族 社會에 미친 影響 --------------------143) 延邊 朝鮮族自治區의 民族問題 -----------------------174. 韓民族에 대한 交流支援 展望과 問題點1) 交流支援의 原則과 基本方案 -------------------------------192) 部門別 交流支援의 課題와 展望 -----------------------------21Ⅲ. 結 論 ------ --------------------------------------22*參考文獻 --------------------------------------26Ⅰ. 序 論1. 硏究 動機 및 目的朝鮮族은 우리와 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 또한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들이 처한 상황 역시 이웃나라의 일인양 방관하고 있다.비록 짧은 기간의 조사와 연구로 그들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지만 본 논문을 통해 그들의 생활과 우리와 이루어지고 있는 교류와 앞으로 조선족과 우리와의 관계를 전망해 보고자 본 中國의 성립이후 朝鮮族의 정치적 위상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모택동의 장정에 참가한 주덕해, 문정일 등에 이해 민족자치가 추진되고 연변 朝鮮族 자치주가 성립되면서 주덕해가 주장으로 선출된 점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新中國 形成 직후 朝鮮族 최고 교육기관인 연변대학이 설립을 주도하였고, 1952년부터 성 급의 朝鮮族 자치구의 설립을 도모하여, 1954년 그보다 한 급 아래인 자치주를 탄생시켰다. 특히 연변지역에서 朝鮮族의 자치가 실현되는 과정을 통해 中國에 대한 자부심과 國家意識이 강화되는 변화가 있었다.네 번째는 남북분단이 가져온 韓國戰爭의 발발도 朝鮮族의 國家意識 形成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승우,「한중수교 이후 조선족에 대한 중국의 민족정책 연구」,한양대 정치학 석사학위논문,1997, p.29.韓半島의 분단은 朝鮮族에게는 통일조국이 아니었던 까닭에 한반도의 반쪽만을 지배하는 남한이나 북한 어느 쪽에 국민적 정체성을 갖기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 발발후 中國에 의해 抗美援助로 이루어진 전쟁의 참여는 朝鮮族에게 스스로를 中國 국민으로 생각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韓半島의 어느 한쪽을 자신의 국가라고 여기기 보다 당시 살고있던 中國에 대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게 했다.(2) 民族意識과 母國意識中國의 民族政策은 民族意識이 國家意識에 결코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에 입각하여 수립되었다. 오히려 높은 民族意識은 中國에 대한 國家意識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政策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朝鮮族 社會에서는 매우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도 그러한 배경에는 朝鮮族의 강한 민족 정체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朝鮮族의 정체의식 또는 정체감은 지정학적 배경과 문화적 특수성에 의해 강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상복·권태환, 前揭書, p.96.中國으로 이주한 이후부터 朝鮮族은 뚜렷한 民族的 정체성을 유지하여 왔다. 이들은 대부분 하나의 민족집 實體가 알려진 中國 朝鮮族에 대해 國內 一般의 認識과 政府의 政策은 狀況 變化에 따라 二重의 잣대를 適用해 왔다고 불 수 있다. 朝鮮族의 방한이 허용되기 시작한 초창기만 해도 一般 國民들은 따뜻한 同胞愛로 歡待했으며 政府次元에서도 出入國管理에 관대했다. 그 결과 朝鮮族의 친척방문이 급증했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최장 3개월의 체제기한이 경과하고도 출국하지 않고 不法 滯留者로 남아 國內 勞動市場 流入됨으로써 社會問題를 야기했던 것이다.) 金泰弘, 金時中, 前揭書, p.85.현재 韓國에서 朝鮮族을 擧論할 때 가장 頻繁하게 言及되는 것은 朝鮮族의 國內 不法就業과 滯留, 朝鮮族이 介入된 犯罪活動, 中國으로부터의 送出過程에 얽힌 詐欺事件 등을 列擧할 수 있다.認識의 對象을 國內에 滯留중인 朝鮮族에 局限하지 않고 中國의 朝鮮族 社會에까지 擴大할 경우 國內 言論에서 廣範圍하게 言及되는 것은 朝鮮族의 對韓 交流가 招來한 否定的 결과와 問題點 등이다. 즉, 朝鮮族 社會의 이완내지 해체 현상이다.현재 朝鮮族에 關한 認識은 朝鮮族의 존재가 최초로 일반에 普遍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1980년 말의 同胞愛的 視覺에서 이탈하여, 朝鮮族과 관련한 問題點이 浮刻됨에 따라 다소 否定的인 認識이 廣範圍하게 流布되고 있는 것으로 分析된다.) 李秀行, 前揭書, pp.55∼56.2) 朝鮮族 役割에 關한 視覺앞에서 朝鮮族의 對韓 交流過程을 통해 朝鮮族 存在의 認識과 問題點 浮刻을 살펴보았으나 朝鮮族의 役割에 관한 國內의 肯定的 期待와 연관지어 考慮할 때, 朝鮮族과 관련하여 國內에서 浮刻된 問題點은 相對的으로 局部的인 문제로 看做할 수도 있다.朝鮮族이 지닌 特別한 位置에 注目하여 朝鮮族의 役割에 관한 視覺을 韓國의 安保的統一, 韓中經協, 韓中 文化交流에의 寄與 側面에서 考察해 보기로 한다.먼저 安保統一側面에서 살펴보면 남북한의 경색됐던 交流 분위기가 金大中 政府의 出帆 以後햇볕정책의 基調아래 현대그룹의 金剛山 開發 計劃등 일부 企業의 經協을 통해 多少解消되고는 있으나 基本的으로 南北間의 對立 局面이달해 왔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1998. 9. 4. 10면.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같은 핏줄을 갖는 民族이면서도 엄연한 中國 公民이라는 側面에서 법적으로 外國人으로 規定하고 이들이 中國에 잘 統合된 民族 勢力으로 육성되어 가도록 하는 方向에서 支援과 관계를 정립해 가야 하는 現實的 制約이 있다.) 박두복, 前揭書, p.44.그러나 우리 政府의 傳統的 在外同胞政策 基調인 現地同化와 이것에 기반한 지나친 現地政府 의식 역시 再考의 여지가 있다.) 이종훈,「在中同胞 政策의 再定立 方向」『立法調査硏究 통권243호』(서울:국회도서관, 1997), p.9.韓國政府의 朝鮮族 政策의 向後 推進方向과 관련하여 中國의 華僑政策을 대비해보는 것은 示唆하는 바가 크다. 中國의 對外 華僑政策은 크게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대별된다.첫째, 華僑에 대하여 二重國籍을 認定하지 않고 居住國의 國籍을 取得하도록 권유한다. 즉, 華僑의 華人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둘째, 華僑의 政堂한 權利를 保障하며 華僑 居住國 政府에 대하여 華僑의 合法的 權益을 保障할 것을 要求한다. 셋째, 華僑가 居住國과 居住國의 法律을 존중하고 居住國 國民과 友好關係를 維持하며 장기간에 걸쳐 공존할 수 있도록 敎育한다. 넷째, 華僑同胞의 愛國主義 精神을 守護하고 發揚하며 家族보다는 나라를 사랑하도록 장려함으로써 華僑同胞의 全體團結을 도모한다.) 김화섭,『東北아시아 中華經濟圈과 韓國經濟』(서울:産業硏究院,1997), p.52.中國의 對外 華僑政策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관련 법률에서 규정한 '在外國民'은 '華僑'와, '在外同胞'는 '華人'에 상응한 槪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中國에서는 華人政策이라는 것이 별도로 規定되어 있지는 않으나 國內로 돌아온 歸僑와 華人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中國의 對內 華僑政策은 1991년부터 시행된「中華人民共和國 歸僑僑眷權益保護法」에 집약되어있다. 이 法律은전문 22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제 3조에 對華僑政策의 基本 方針이 나타나 있는데 歸僑, 僑眷의 權利와거나 朝鮮族을 대상으로 사기, 노동자로 認識, 심지어는 거지로 認識하기 시작하면서 朝鮮族 社會에서는 한국에 대한 불신과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狀況은 해가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狀況이다.) 조선일보, 1989. 10. 14. 11면.韓中修交 以後 '코리안드림'을 품고 1994년 7월까지 2백여 만명의 朝鮮族 가운데 12만명이 한국을 訪問하고 돌아갔다. 韓國과 朝鮮族 社會와의 文化的·經濟的 異質〈조선일보 1989년 10월 14일 11면〉感으로 인한 이러한 사건들은 朝鮮族이 지니고 있는 母國에 대한 자부심을 불신감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따라서 朝鮮族들의 한국에 대한 母國觀念은 친근감과 적대감이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적이고 갈등적인 성격의 母國觀念이 되고 있다.) 이승우, 前揭書, p.61.(2) 朝鮮族 社會의 政體性 危機남한과의 交流와 친척 訪問이 빈번해지면서 연변과 같이 朝鮮族 밀집 지역에는 남한의 문물과 함께 대중문화가 급격히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젊은 층과 나이든 세대와의 가치관에 틈이 벌어지고, 물질주의적인 성향이 확산되어 사회통합이 위협을 받고 있다. 매년 한국 관광객들이 쓰고 가는 엄청난 액수의 돈과 한국에서 돈을 벌어온 朝鮮族들의 부가 연변의 경제수준을 향상시키면서 연변은 전통적 가치관보다는 금전만능주의가 판치는 '범죄의 온상'으로 변화했다.) 세계일보, 1996. 8. 18. 5면.또한 오락문화의 범람으로 음성문화도 발양되고 있다. 그동안 공산당 치하에서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억제되어 오던 것이 갑자기 열린 改革開放 體制에서 갑자기 분출되어 음성문화가 확산되었다는 점과 장사꾼들이 음성문화를 통해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이러한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이러한 문화적 충돌의 현실은 朝鮮族들이 지니고 있던 고유의 文化를 파괴하면서 朝鮮族 社會를 연구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變化시켰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발전했지만, 意識形態, 生活習慣 등이 연변조선족과.
제 1장 序 論 - - - - - - - - - - - - - - - - - - - - - -(박장진)1. 硏究의 動機 및 目的 - - - - - - - - - - - - - - - - - - - - -12. 硏究의 範圍와 限界點 - - - - - - - - - - - - - - - - - - - - 2제 Ⅱ장 本論1. 中國의 少數民族 - - - - - - - - - - - - - - - - - - - - - -2(김태원, 조윤정)2. 漢族과 少數民族의 關係(1) 中國 少數民族의 形成과 現況 - - - - - - - - - - - - - - - - -5(오정심)(2) 中國의 少數民族 政策과 變天 過程 - - - - - - - - - - - - - - 6(하정명)(3) 漢族과 少數民族의 關係 - - - - - - - - - - - - - - - - - - -10(오정심)3. 漢族과 티벳 民族의 關係(1) 歷史的 背景 - - - - - - - - - - - - - - - - - - - - - - - -13(김현미)(2) 中國의 對티벳 政策과 限界 - - - - - - - - - - - - - - - - - 15(박장진)(3) 漢族과 티벳 民族의 葛藤 - - - - - - - - - - - - - - - - - - 17(오기수)제 Ⅲ장 結論 - - - - - - - - - - - - - - - - - - - - - - - - -22(오기수)*參考文獻 - - - - - - - - - - - - - - - - - - - - - - - - 24Ⅰ 序論1. 硏究의 動機 및 目的우리는 티벳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기껏해야 노벨 平和賞을 받은 달라이 라마의 조국이고, 고지대가 주요 지형형태이고 티벳佛敎인 라마교가 있는 곳이라는 기본적인 지식밖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보니 티벳은 현재 中國내에 속해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自治區로서 그들의 상황은 과거 韓國의 구한말시대와 많은 類似性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에 의한 亡운남4,593,072維吾爾族(uygur)신강7,207,024苗族(miao)귀주, 호남, 운남, 광서, 중경, 호북, 사천7,383,622彛族(yi)운남, 사천, 귀주6,578,524壯族(zhuang)광서, 운남, 광동15,555,820布依族(bouyei)귀주2,548,294朝鮮族(korean)길림, 흑룡강, 요녕1,923,361滿族(man)요녕, 하북, 흑룡강, 길림, 내몽고, 북경9,846,776동족(dong)귀주, 호남, 광서2,508,624瑤族(yao)광서, 호남, 운남, 광동2,137,033白族(bai)운남, 귀주, 호남1,598,052土家族(tujia)호남, 호북, 중경, 귀주5,725,049哈尼族(hani)운남1,254,800哈薩克族(kazak)신강1,110,758태족(dai)운남1,025,402黎族(li)해남1,112,498율속족(lisu)운남, 사천574,589와족(va)운남351,980여족(she)복건, 절강, 강서, 광동634,700高山族(gaoshan)대만, 복건2,877拉祜族(lahu)운남411,545水族(shui)귀주, 광서347,116東鄕族(dongxiang)감숙, 신강373,669納西族(naxi)운남277,750景頗族(jingpo)운남119,276柯爾克孜族(kirgiz))신강143,537土族(tu)청해, 감숙192,568達幹爾族(daur)내몽고, 흑룡강121,463마료族(mulao)광서160,648羌族(qiang)사천198,303布郞族(blang)운남82,398撒拉族(salar)청해87,546毛南族(maonan)광서72,370흘료족(gelao)귀주438,191錫伯族(xibe)요녕, 신강172,932阿昌族(achang)운남27,718普米族(primi)운남29,721塔吉克族(tajik)신강33,223怒族(nu)운남27,190烏孜別克族(uzbek)신강14,763俄羅斯族(russian)신강, 흑룡강13,500鄂溫克族(ewenki)내몽고26,379德昻族(deang)운남15,461保安族(baoan)감숙11,683裕固族(yugur)감숙12,993자결권이 부정되는 대신 민족 구역자치제도에 기반한 점진적인 민족 융화정책이 시행되던 시기이다. 정책은 신생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의 건설과 유지에 초점이 두어졌으며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의 원칙이 수립되었던 시기라 할 수 있다.세 번째 시기는 1959년 티벳의 라사 반란까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까지 이어지는 시기로서 강압적인 민족 동화정책이 시행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소수민족의 정체성은 부정되었고 계급 노선에 기반한 급진적 공산주의 이념이 강요되었다. 두 번째 시기(1949-1959)와 세 번째 시기(1950-1976)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은 정책의 속도와 폭력성이다. 구체적으로 이는 소수민족 사회의 개조와 관련해서 드러났는데 소수민족 사회의 전통적 생활양식과 소수민족의 언어 및 종교 생활을 새로운 지배질서에 맞게 개조하는 것에 있어 강압적이냐 온건적이냐, 급진적이냐 점진적이냐의 차이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민족동화정책이 시행되었던 세 번째 시기는 소수민족 사회의 강제적인 변화가 시도되었으며 소수민족 사회의 개조에 있어 강제적인 방법보다는 자발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소수민족 사회를 중국에 통합시키기 위하여 제도를 구축하려고 노력한 시기라고 분석 될 수 있다.마지막으로 개혁, 개방 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기로 문혁시기의 정책 노선이 수정되어 다시 점진적인 민족융화정책이 시행되는 시기이다. 여기서 개혁, 개방 이후의 소수민족 정책을 인구, 경제, 문화, 간부, 정부 정책부분으로 나누어 보다 구체적으로 정책의 성격을 살펴 볼 것이다.① 인구정책(人口政策)일반적으로 중국에서 인구정책이라 함은 과다, 과밀한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산제한정책을 말한다. 인구 정책에 있어 출산 제한이라는 목표와 다르게 소수민족에 대한 인구 정책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한족에게 적용하는 '1가구 1자녀 원칙'을 소수민족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예외적인 조치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수민족 인구정책은 먼저 '출산제한 정책'에서 족이 집거하는 민족지구가 64.3%라는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중앙정부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소수민족지구는 주로 중국의 중서부에 위치해 있는데 5개 자치구의 경우 서장(티벳)장족자치구, 신강위구르족자치구, 영하회자치구, 내몽고자치구, 광서장족자치구 등이 해당된다. 이 지역은 모두 서부 대개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그리고 소수민족 거주지의 특징은 한족이 중국 대륙의 중원에 주로 본거지를 두고 있는 반면에 소수민족이 집거 하는 지역은 주로 국경이 있는 변방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중국 국경지역 면적은 전체 중국 국경면적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총 연장 약 2만㎞의 국경선이 이들 소수민족 지역에 속한다. 이들 지역은 중국의 안보 문제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효율적인 통치와 안정 및 단결이라는 관점에서 국가의 통합과 통일의 유지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둘째, 경제적 측면에서 중요성이다. 소수민족 지역은 가스, 석유, 석탄, 금을 미롯한 주요 지하자원이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으며 육류, 우유, 면 등의 주요 원산지이기도 하다. 특히 외국과의 교류에 있어서 소수민족지역의 관광산업이 상당한 기여를 하기 때문에 소수민족 문제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도 있다. 또한 소수민족지구는 서부 대개발 정책의 '신실크로드'로서 중앙아시아를 통해 유럽으로의 시장진출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동북부지역은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경제교류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셋째, 정치안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수민족지구와의 갈등구조나 불안은 중국전체의 정치적 안정을 해치는 요인이 된다. 이들 소수민족 지역중 한 곳이라도 분리독립을 한다면 구소련이나 동구의 경우와 같이 각 소수민족지구로 확산되어 중국체제 자체의 위협오인이 될 수 있다. 소수민족 지역의 안정은 중국 전체의 안정과 발전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신강 지구의 안정은 범투르크계 및 범이슬람과 관련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 중국 동북지역의 안정과 관계가 된다라는 回族의 한 封建領主는 중앙아시아의 浩罕汗國의 아구뽀(阿古栢)와 결탁하여 新彊 地域에 침입했다. 2년후 아구뽀는 이 地域 에 "체다살國"을 건립하고 天山 이남의 광대한 地域과 천산 이북의 일부를 장악했다. 이 地域에서 그에 의하여 살해된 非이슬람敎徒는 4만 명에 이르렀다. 아구뽀와 영.러시아의 제국주의가 결탁으로 영.러 상인들은 신강 地域에서 自由 通商이나 창고의 건축 허가를 부여받았으며 남부 新彊에서 인접國家로 통하는 도로의 통행권도 확보했다. 1876년 淸朝는 좌종당(左宗棠) 을 파견해서 아구뽀와 金相印을 격파하고 신강성을 건설해서 新彊과 中國 내륙과의 政治, 經濟, 文化 關係를 긴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티벳은 中國 서남에 위치하며 英國 지배하의 印度와 접경해 있어서 軍事, 經濟的으로 매우 중요한 意義를 지녔기 때문에 영.러 제국주의 제국은 부단하게 宣敎師나 調査隊를 파견해서 지리를 탐사하거나 商貿視察團이라는 명목으로 티벳에 들어가서 활동을 했다. 침략자의 월경을 방지하기 위해서 티벳 民族은 파탕에 陣地를 구축했다. 칸파춈에서는 英國 조사단과 수개월간 대치해서 일보의 越境도 허락하지 않았다. 티벳 地方 政府와 인민들은 티벳 商人과 英國人과의 무역을 금지시키는 한편, 찬또산(降吐山)에 陣地를 구축해서 변경을 방위했다. 1888년에 영국 침략자는 찬또산을 행해 무력 침공을 개시했다. 티벳 民族은 화승총, 활, 칼, 투석기 등 조잡한 武器로 우수한 裝備를 갖춘 영국군과 싸웠다. 각지에서 전선에 집결한 티벳 民族은 1만 여명에 달했으며 완강하게 영국군의 越境 侵犯이 자행되어 티벳은 결국 降伏하고 말았다. 그러나 1890년 청나라는 영국과 淸.英條約을 체결하고 찬또산에서 간뽀춈 이남의 광대한 領土를 英國에 할양했다. 그때부터 티벳의 門戶가 개방되어 英國은 티벳 經濟의 통제와 내정의 간섭을 강화했다.그 이후 티벳은 1950년 中國人民解放軍이 침공하여 점령하기 이전까지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고유한 文化와 宗敎를 유지하며 自主權을 행사한 政治的 實體로956)
★ 동 , 서양의 술1. 동, 서양의 술- 아시아문화를 몬순형, 유럽문화를 목축형, 중근동(中近東)의 문화를 사막형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유럽의 목축형 문화는 포도주, 맥주, 미드(벌꿀술), 위스키, 브랜디 같은 술을 낳게 되었다. 이들 술은 어느 것이고 곰팡이(누룩)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몬순(계절풍)형 문화권의 모든 술은 곰팡이를 이용하고 있어 매우 대조적이다. 곰팡이를 쓰는 술은 모두 쌀, 조, 보리 등 곡류가 주원료이며 이들 곡식에 곰팡이를 번식시킨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 곰팡이는 습도가 높은 동양에서 자연 발생 적으로 그 이용이 가능했던 것이다. 즉 계절풍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동양에서 발달한 주조 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여름철에 비가 적고 건조한 풍토의 유럽에선 포도가 술의 원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포도주와 브랜디가 만들어졌고 추워서 포도의 재배가 불가능한 북유럽에선 맥주가 발달하게 되었다. 맥주는 곡류인 보리를 원료로 하지만 곰팡이 대신 맥아(엿기름)를 이용해서 술을 만드는 것이다. 대서양의 섬나라인 영국은 유럽에선 가장 다습한 기후이기 때문에 재배가 어려운 포도를 원료로 한 포도주 양주는 불가능하였는데 영국에 이주해 온 북구계 민족에 의해 맥아를 원료로 하는 맥주나 그것을 증류해서 만든 위스키가 발달하게 되었다. 포도는 결실기에서 수확기에 이르는 동안 습도가 높게 되면 포도 과피에 여러 가지 유해 미생물이 번식해서 포도의 수확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만다. 오늘날에는 농약이 발달해서 우리나라와 같은 고온다습한 나라도포도 재배가 가능해졌으나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엔 포도 재배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2. 술꾼의 유형- 술은 마시고 취하는 양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은 처음 술을 마실 때의 습관이 몸에 밴 경우가 꽤 많다고 한다. 토마스 낫슈는 술에 취하는 상태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원숭이 타입 : 노래 부르거나 큰 소리를 치며 뛰는 타입사자 타입 : 술잔을 던지기도 하고 싸움을 잘 걸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타입돼지 타입 : 몸놀림이 둔하고 또 한 잔이라고 소리치는 타입양(羊)타입 : 매우 약은 체하나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타입우는 타입 : 별일도 아닌데 울며, 달랠수록 더 우는 타입진짜로 취하는 타입 : 술만 취하면 깊이 잠드는 타입산양 타입 : 여자에게 장난을 잘 치는 타입여우 타입 : 네덜란드 상인처럼 상대를 취하게 하고 거래를 하는 타입1.동양1).중국술을 가까이 하지 않더라도, 술 하면 떠오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 태백(李 太白) 술을 마시다가 달을 잡으려고 강속에 들어갔다가 빠져 죽었다는 시인, 이 태백 .술을 사랑했던 그가 유려하게 써 내려간 그의 작품들은 아직껏 모든 이의 감탄을 자아냅니다.혼자드는 술잔(月下獨酌)꽃 사이 한병 술, 친구없이 혼자 든다술잔 들어 달님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달님은 술을 마실줄도 모르고, 그림자는 흉내만 내는구나잠시 달님이랑 그림자랑 함께 즐기자, 이 봄이 가기 전에내 노래에 달님은 서성거리고, 내 춤에 그림자는 흐늘거린다취하기 전엔 즐겁지만, 취한 다음엔 각각 흩어지리영원히 맺은 담담한 우정, 우리의 기약은 아득한 은하수중국에서는 禹의 딸인 儀 이 처음 곡주를 빚었다고 하는데, 동양의 술은 대부분 곡류를원료로 한다. 곡류를 효모가 이용하기 위해서는 당화효소에 의한 당화과정이 필요한데서양에서는 이 당화효소를 보리를 발아시킨 맥아에서 얻고 있으나 동양에서는 대부분곰팡이 유래의 효소를 이용하는 점이 다르다. 곡류를 당화시키기 전에 먼저 일부의 곡류에곰팡이를 키운 것을 누룩(곡자)이라고 하는데 중국과 한국의 누룩은 구성하는 곰팡이가틀리는데 중국의 누룩은 떡누룩으로서 거미집곰팡이(Rhizopus속)가 증식하며, 한국의누룩은 알갱이누룩으로서 주로 누룩곰팡이(Aspergillus속)로 이뤄진다. 중국의 술은 크게백주(白酒), 황주(黃酒), 약미주 및 과실주로 나눌 수 있다.1.백주(증류주)세계에서 가장 알콜도수가 높은 술, 분주(汾酒), 마오타이주, 양천백주(瀁川白酒)등이다.2.황주(양조주)대표적인 것으로 샤오싱주(紹興酒), 라오주(老酒), 린판주(淋飯酒), 자판주(加飯酒),샨냥주(善釀酒)등이 있다.2).한국우리나라의 술에 관한 고기 록에 따르면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함께 삼한시대의제천, 앙고, 동명 등의 행사에 이미 전통곡주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시기에 주국(酒麴)과 곡아(穀芽)를 이용했다고 하며, 일본고사기에 는 4세기경 백제사람 인번(仁番)이 술빚은 법을 전하여 주신으로 모시게되었다는 기록이 있다.통일신라에서는 상류사회에서 청주 음용이 성행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 초에 경미(梗米)와 주국을 이용한 곡주양조법이정착되어 청주류, 탁주류 및 혼양주법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13세기 고려말에 원나라에서 증류주법이 전래되어 소주(燒酒)가 확산되기 시작하여15-19세기까지 다양한 양조곡주, 증류주, 과실주, 혼성주류 등이 가정마다 제조,음용되었으며 일본과 중국에 소주를 수출하기도 하여 조선시대를 우리나라 술의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한글로 최초로 전문 요리서인 음식디미방(1670)에는 총 132조목중 51조목이 술에관한 것이며 17세기말의 주방문(酒方文)에는 12조목이, 1715년의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61조목의 전통주 제법이 기록되어 있다.우리나라의 전통주류를 오늘날의 분류법에 따라 분류하면 양조곡주와 증류주,기타주류로 나눌 수 있다. 양조곡주는 거르는 방법에 따라 탁, 약, 청주로 분류되며
술의 어원술 의 古字는 酉(닭,서쪽,익을)자이다.酉字는 밑이 뾰족한 항아리(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편리)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반면 술의 고유한 우리말은 "수블/수불" 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수울","수을"로 기록되어 있어, 이 수블은 "수블 > 수울 > 수을 > 술"로 변해왔음을 알수 있다."수블"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술을 빛는 과정에서 비롯된것이 아닌가 한다. 즉, 술을 쪄서 익히고 여기에 누룩과 주모(酒母)를 버무려 넣고 일정양의 물을 부어빛는다.이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이루어 져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부글부글 물이 끓어오르며 거품이 괴는 현상은 옛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이를 마치 물에서 난데없이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수불"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1.한국술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酒器)가 놓인 곳으로 가서 절하고 술을 받아야 한다.감히 제자리에 않은 체로 어른에게서 술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어른이 이를 만류하면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와서 마신다. 어른이 술잔을 들어서 아직도 마시지 않으면 젊은이는 감히 마시지 못한다. 어른이 마시고 난 후에 마시는 것이 예의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면 특히 행동을 삼가 하는데, 먼저 어른에게 술잔을 올리고 어른이 술잔을 주시면 반드시 두 손으로 받는다. 또 어른이 마신 뒤에야 비로소 잔을 비우며,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므로 돌아앉거나 상체를 뒤로 돌려 마시기도 한다.술잔을 어른께 드리고 술을 따를 때 도포의 도련이 음식물에 닿을까 보아 왼손으로 옷을 쥐고 오른손으로 따르는 풍속이 생겼다. 이런 예법은 현대에 이르러 소매가 넓지 않은 옷을 입고 살면서도 왼손으로 오른팔 아래 대고 술을 따르는 풍습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주도라는 것이 다소 까다롭고 어려워 보이지만 술을 한잔 먹을 때도 어른에 대한 예의를 중시했던 우리 조상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어있다 하겠다.전통주도의 요체는 정성을 다하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고 술을 마시는 일은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이 기본인 것이다.2.중국중국에는 모두 4500여 종의 술이 생산되고 있고, 이 가운데 명주 칭호를 받는 술로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마오타이, 죽엽청주, 오량액을 비롯해 8가지가 있다.이들 명주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45도 이상의 독한 술로 좋은 물과 양질의 고량을 원료로 하는 순곡주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명주는 대부분 가짜가 많고 비싸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우리나라의 고량주와 비슷한 백주(白酒)를 즐긴다.백주는 중국인들에게 일상적인 음료수일 뿐 아니라 주요한 교제 수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한 중국 역사상 영웅 호걸들은 대부분 술을 엄청나게 즐기는 호주가로 묘사돼 있으며, 따라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술을 마시는 것이 큰 자랑거리로 여겨지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다.또 중국인들에게 공적이건 사적인 일이건 대부분 술자리에서 결정되며 특히 사업상 상담 책임자가 술이 약할 경우, 우리의 술상무라고 할만한 陪酒員을 동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음주관습 때문에 중국의 술 산업은 매년 급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전국에 4 만 여 개의 술 공장이 가동 중이다.중국은 식량절약과 국민건강 보호 차원에서 백주 덜 마시기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고 있다. 지난 해 중국은 국무원 산하 23개 부서가 공식 연회석상에서 공직자가 백주를 마시지 말 것을 결의했다.이에 따라 최근 포도주 소비가 점차 늘어나고 젊은이들은 맥주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반부패 투쟁의 명분으로 근무 시간 중 백주 금주운동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3.일본일본의 직장인들이 찾는 대표적인 선술집은 '술이 있는 곳' 이라는 뜻의 이자카야(居酒屋)다. 이런 대중적인 술집은 문 앞에 빨간 종이등(아카초칭-赤提燈)을 내걸어서 눈에 잘 띈다.큰 길가에 있는 이자카야 '무사시 보'는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보편적인 선술집으로 생맥주 한 잔에 4백엔, 간단한 안주 한 접시에 7∼8백엔을 받는다.모듬 생선회도 한 접시에막 전차를 놓치면 큰일난다는 현실적인 인식들도 작용한다.각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많이 시키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본의 선술집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취해서 주 정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 꺼려하는 문화 속에서 형성된 술집 풍속 도다. 이런 모습은 술값을 치를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와리깡'이라고 해서 일행이 똑같이 나눠 내거나 자기가 시켜서 먹고 마신 것에 대한 값만 내는 것이 보통이다. 언뜻 야박하게도 보이지만 역시 남에게 신세지기를 삼가고 분수를 지키려는 일본인들의 합리성이 엿보인다. 주머니 사정에도 건강 에도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일본의 음주문화다.일본의 술 자판기 폐지 일본은 자동 판매기의 천국이다. 물론 술도 자동 판매기에서 살 수 있다.일본 전역에는 20만 대에 가까운 주류 자판기가 있다. 대부분 맥주를 파는 자판기지만 그 가운데는 위스키나 청주를 파는 것도 있다. 자판기를 통한 주류판매고는 연간 4천억 엔. 일본 전체 술 시장의 10%나 된다. 이런 주류 자판기 가 문제시 되는 것은 미성년자들이 자판기에서 술을 사서 마신다는 점이다.여론이 들끊자 주류판매상들은 밤 11시부터는 주류 자판기를 끄겠다는 개선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이번에는 아예 미성년자 들이 술을 살 수 없는 연령 식별 자판기를 개발했다. 이 자판기에서 술을 자려면 운전 면허증을 집어 넣어야 한다. 면허증에 표시된 연령이 스물 살을 넘어야만 술이 나온다.그러나 이런 자판기도 미성년자가 다른 사람의 면허증으로 술을 사면 그만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류 자판기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 소매주류판매조합은 오는 1999년까지 모든 주류 자판기를 없애기로 결의했다. 연간 4천억 엔의 수입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건전한 음주 문화를 위해서는 판매업자와 소비자들의 협조와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영국영국은 미국과 다른 술의 역사를 갖고 있다.술의 이용가능성을 규제하는 법의 제정, 영가세를 보여왔다. 그런데 영국인의 절대 음주량은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독일 등 인근 국가에 비해 오히려 적다.그런데도 간경화 사망률이 지난 20년간 현격한 증가를 보이고 음주운전이나 미성년자 음주 등 음주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이는 마시는 양보다 취하도록 마시는 습관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영국정부의 대책 중 하나는 적정 음주량의 제시와 권유다. 의학계에서도 음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적정음주가 건강에 주는 이점을 전파하고 있다.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남자는 21잔, 여자는 14잔이고 위험음주량은 남자 50잔, 여자 35잔이다. 이 양은 미국과 캐나다 등이 권유하는 적정량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준인데, 영국인이 체질적으로 술에 강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음주수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해결전략은 피해축소전략이다. 이는 술을 마신 후 발생 가능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에서는 깨질 때 완전히 바스러지는 잔을 사용한다고 한다. 음주 후 폭행으로 인한 사고를 막자는 의도이다. 영국인은 음주에 대해 일면 관대하고 일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절주를 벌인 적도 있지만 오히려 음주량은 증가하여 실패한 영국에서 그러한 태도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음주에 호의적인 영국인도 최근 10여 년간은 정력적으로 술 문제를 없애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술 문제를 건드리고 있지 음주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미국)술 판매를 엄격히 제한하는 미국 자유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이지만 술에 관한 한 무한정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옥외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미국에 사는 교민들이 가끔 야유회를 하면서 술을 마시다 미국 경찰에 단속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운동경기장에 술을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옥외에서 술 마시는데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보니 심지어는 알코올 중독자들도 거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술 병을 종이 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일요일에 집에 손님을 초대해 파티를 열 경우라면 토요일에 미리 술을 사두어야 한다.미국인들의 음주 행태를 보면 우리와 너무도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우선 주량을 봐도 한국인들보다 훨씬 적게 마신다.물론 양주가 우리나라 소주에 비하면 독하기는 하지만, 한국인들끼리 양주 한 병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은 혀를 내두른다. 한국의 남자 직장인들이 퇴근해서 각종 술자리를 갖는 것에 비해 미국인들은 곧바로 헬스클럽에 들르거나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을 하면서 건강을 다진다.남자들끼리 몰려 다니는 경우는 드물고 술자리 사교 모임엔 부부동반이 상식이다. 남편들은 일찍 집으로 들어가 부인을 도와 저녁 준비를 하거나 설거지를 거들거나 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 곳에서나 술을 살 수 없고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술을 마실 수 있으며 맘껏 취할 수 있고 술 때문에 벌인 실수도 적당히 양해가 되는 한국의 음주문화.(러시아)러시아 사회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이면 러시아의 3대 명품은 보드카, 빵, 여자이고 3대 졸작은 날씨, 돈(루블), 남자라고 하는 데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보드카가 남자를 졸작으로 만들고 여자를 명품답게 하는데 일조하며 가치하락으로 졸작이 된 루블을 대신하고 있다는 데에도 동의할 것이다. 러시아 여성들은 남자들이 보드카만 마시다 보니 정치가 엉망이 되고 집안일은 물론 부부생활에도 시원찮은 쓸모없는 졸작이 된데 비해 자신들은 주부이면서 동시에 직장인으로 가정경제를 떠맡는 실질적인 가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사실 러시아 남성들의 많은 문제들은 아내보다 더 소중한 보드카 때문에 생기고 있다. 러시아 알코올 중독 전문가들은 매년 50만명이 술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주장하고 있다.특히 겨울철 동사자의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변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전체 이혼의 절반, 각종 범죄의 2/3 이상, 중요사고의 60%가 술 대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