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있어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할 정신적 에너지는 사상(思想)의 배경이 설정되어야 한다. 고대 중국으로부터 동양예술이 이어져 내려온 것에 대한 의문은 어느 누구도 부인을 못한다. 동양의 예술은 기본적으로 동양철학의 바탕 위에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예술에 있어 기초가 될 수 있는 개념들은 도가, 유가, 불가의 삼가 사상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다.우선 도가의 자연은 동양예술의 미학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개념에 속하게 된다. 우리는 '장자'하면 먼저 도교철학을 생각한다. 자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무위란 노자 학설의 중심을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무위란 인간의 힘을 가하여서는 안되며 자연히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진리가 포함된 노.장자의 자연주의 철학은 확실히 동양화, 특히 산수화에 많은 관계가 있다. 장자는 미의 본질이 우주의 근원에 있고 우주의 근원은 무에 있다고 하였다. 또 정신은 미를 떠날 수 없고 미는 정신을 떠날 수 없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도가의 가치개념은 서로 태어나는 것, 서로 이룩하는 것, 서로 드러나는 것, 서로 아우는 것, 서로 어울리는 것, 그리고 서로 따르는 것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도가사상의 가치판단은 무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무위는 사물관계의 자연을 말한다. 미적 가치에 관한 보편적 인식은 부단한 의미 발생에 두게 된다. 사물관계의 자연을 가치의 차원에서 볼 때 도가사상은 그 작용이 사물의 상호작용일 뿐 대립작용이 아님을 밝혀 주고 있다.유교에서 후예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람의 행위에 있어 충신성이 있고 거기에 뒤따르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의가 없는 충신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그 충성심은 오래 가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회화에 있어서도 오색의 색질이 있으면 그 질을 잘 조화할 수 있는 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사상에 있어 인을 인식하는 것을 일체의 도덕과 진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고 인이 몰락하면 일체의 도덕도 허사로 빠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회화에 있어서도 반영하게 되는데 모든 인격의 표준을 인에 두듯이 덕망의 표현을 회화에서도 조화로서 도모하였다. 유가사상은 초기에 수기와 내성을 예술성과 윤리성으로 강조하였으나 후기에는 치인과 외작을 중심으로 윤리성과 정치성을 강조하게 된다. 불교 교리중의 하나인 선이란 만법을 총괄하는 것이다. 선은 마음의 근원이고 마음은 천지간에 널려있는 모든 사물마다 나타난 것이며 마음으로 인하여 사물마다의 형태를 깨달아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니 선화란 바로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라 하겠다. 즉 모든 것은 유형인데 이것을 불심으로 변통하여 보면 일월처럼 밝아지고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형적 '광명관'이라 한다. 이 무형적 광명이 곧 선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의 예술이란 침묵 속에 내재하는 무형적 공허미라고 할 수 있다.본래 동양화 속에는 동양 역사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동양 특유의 사상적 배경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철학이 있다. 이 철학의 주류는 크게 세 가지로서 유교, 도교, 불교인데 이중 불교(佛敎)의 교리 속에 숨어 있는 선종 사상은 동양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것이 곧 동양화상에 문인화(文人 )를 탄생시키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문인화를 대표하는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흔히 추사체(秋史體)로 유명한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를 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가’라고 질문하면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구체적인 예술작품에 나타난 양식이나 기법에 대한 분석과 그것을 통한 한국미를 탐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예술작품을 낳은 이론 및 철학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다. 동양의 위대한 예술작품에는 그것에 걸맞는 위대한 철학, 사상이 농축되어 있다. 예컨대 신라문화의 도덕성과 자연성, 숭고미와 소박미가 절묘하게 배합된 석굴암의 본존불이나 삼국시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등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철학, 예술, 종교 등 모든 조건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이데거가 탐구한 근본 문제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존재란 자기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이고, 자신의 존재가 자기 자신이 실행해야 할 과업으로 주어져 있다면 인간에게 세계에 대한 이해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전이해라 부르며 전이해는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전이해가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 이해함으로써 하이데거는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영향받고 미래를 예상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시간과 역사가 없다면 사물은 우리에게 나타나거나 드러날 수 없는 것을 뜻한다.이렇게 하이데거를 이해할 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그()는 생각에 빠져 무겁게 침묵하며 앉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해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의 모든 신체는 머리가 되고 그의 혈관의 피들은 전부 뇌수가 되어, 문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위에 프레임의 정상에 세 명의 남성 인물들이 깊은 곳을 내려다보듯이 모두가 머리를 밑을 향해 굽히고 서 있다. 각각은 한 손을 뻗쳐 그들을 아래로 끌어내릴 것 같은 심연을 향해 가리키고 있다. 은 이 무게를 그 자신 속에 감당해야만 한다.이는 1903년에 발표된 마리아 릴케의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참고했을 때,하이데거는 생각하는 사람이 그 자신 속에서 감당해야할 무게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민감성의 개념창의성의 한 요소인 민감성은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주변의 환경의 정보들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보이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탐색 영역을 넓히는 능력을 의미한다※민감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 방법영, 유아들의 민감성은 연령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영아들의 창의적인 발달은 각 연령단계마다 그 자체의 특성이 있고, 이러한 점차적인 창의적 발달은 만4세 이후의 창의성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매우 중요하므로, 9개월부터 36개월 정도의 영아들의 창의성 발달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9개월에서 12개월 사이는 창의성의 기본 요인인 민감성을 키우기 위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시기로서, 뚜렷하게 창의적인 행동을 보이지는 않지만, 창의성을 키워나가는 준비를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는 감각 능력이 발달되어 주변환경을 탐색하고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예컨대 동물 및 교통 기관 등 다양한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드럽고 딱딱한, 매끄럽고 거친, 따뜻하고 찬, 단단하고 물렁한 감촉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맛있는 냄새와 싫어하는 냄새에 관심을 가지고, 친숙한 음식의 맛을 구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시각적, 청각적, 미각적, 후각적, 촉각적 활동들을 다양하게 제공하여 민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만 4세 이후의 창의력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13~18개월의 영아들의 신체적 발달을 보면 블록을 2~4개 정도 쌓을 수 있고, 병속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낼 수 있다. 또한 주의를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고, 물체의 소리를 듣고 찾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연필이나 크레용을 쥐고 긁적거리게 된다. 감각기능을 보면 소리를 듣고 소리나는 물체를 찾아보게 하거나, 따뜻한 것과 찬 것을 변별해보게 하는 활동을 하게 하여 창의성의 기본이 되는 민감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 더불어 모방놀이, 호기심, 문제해결 등을 시작하게 된다.19~24개월 시기 영아들의 신체적 특징은 5~6개의 블럭을 차례로 꽂거나 위로 쌓을 수 있다. 또한 크레용으로 긋기 흉내를 낼 수 있게 된다. 민감성을 기르기 위해 기본적인 감각 변별 기능을 길러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이 시기에는 재생과 기억능력이 발달되어 창의력이 기본 요인인 상상력 발달에 도움이 되고 가상놀이와 문제해결 능력도 이전에 비교해서 더욱 발달되므로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여 창의성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만 2~3 세 시기가 되면 신체적인 발달이 왕성해 지고, 인형놀이, 병원놀이, 혼자놀이 등에서 더욱 상상력이 가미된다. 민감성이 더욱 발달되므로 사물의 차이 변별, 소리 차이의 변별, 사물의 차이를 촉각으로 느끼고 식별하기, 음식의 맛을 보고, 짠맛, 단맛 등을 식별하기, 냄새 식별하기, 두 가지 이상의 감각으로 사물을 식별하는 활동을 하도록 한다. 또한 호기심과 질문이 더욱 많아지고 상상력과 더불어 추리력도 발달한다.민감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명한 듯한 현상에서도 문제를 찾아내 보고, 친밀한 것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해보며, 이상한 것을 친밀하게 생각해 볼 뿐 아니라, 주변의 모습 관찰하고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새로운 모습 찾아보는 것이 좋다.
※자아존중감의 개념자아존중감은 우리 안에 있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능력 있고 사랑스러운 인간으로서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신념에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우리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서 '자아존중함'이라고 불린다.우리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할 때,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를 지니게 된다. 반면에, 우리가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 받을 수 없으며, 능력이 없다고 여길 때에 우리의 자아존중감은 떨어진다.※자아존중감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 방법학교는 아동에게 보상을 주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교사와 친구로부터 받는 평가 때문에 아동의 불안이 증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동은 무력감, 실패, 친구로부터의 거부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체계를 발달시켜야 한다. 학령기의 아동은 생산적인 것에 모든 노력을 쏟음으로 부단한 에너지의 발산을 보여 준다. 이 시기에는 아동에게 자신감이 생겨 관심 있는 일에 대해 부단히 노력하여 성취감을 맛보게 되고 부모와 선생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근면성이 발달된다. 그러나 실패와 불인정이 반복되면 열등감이 우세하게 된다.교사는 아동에게 다양한 작업 경험을 통해 성공의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은 근면성을 성취하기 위하여 노력하므로 일 지향적이다. 최선을 다하는 긍정적인 작업 습관을 형성키 위해 가정과 학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수준의 일감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근면의 중요성을 통하여 장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아동의 자아존중감과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하여 격려해 주는 것을 몸에 익혀야 할 것이다. 여기서 '격려한다'(encourage)라는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instill courage)라는 뜻이다.격려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를 꺾지 말아야 한다. 그릇되게 행동하는 아이는 보통 기가 꺾인 아이이다. 이러한 아이는 어디선가부터 긍정적인 행위를 통하여 삶의 문제를 직면하는 용기를 잃어버렸다. 아동들의 자아존중감을 낮추면, 그로 인하여 아동은 낙심하게 되고,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을 보고 교사는 더욱 처벌하고 더욱 기를 꺾어 주게 된다. 아동들의 자아존중감과 용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부정적 기대감을 줄이고 실수를 지적하는 것을 삼가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며 완벽주의를 심어주어서도 안되고, 어리다고 느끼면서 과잉보호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기를 살리는 방식에는 자신감을 보여 주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자아존중감과 용기의 주춧돌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 낼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이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에 성공을 거둘 때에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자라난다. 그러나 문제에 부딪치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는 데에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교사는 아동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거나 아동의 견해나 충고를 구하고, 교사가 끼어들어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물리치면서, 아동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줌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다.아동은 잘 못하는 것보다는 잘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 엄청난 격려를 받는다. 아동이 숙제를 완성하도록 돕는 일이든, 정직하게 되라고 가르치던지 간에 작은 단계로 나누어 가르치는 과정을 통하여 아동이 그 과업을 성취하도록 도와줌으로써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아동의 장점을 인식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격려하며 완벽을 목표로 하지 말고 진보자체를 목표로 하면 또 다른 방향의 격려가 가능하다.아동의 자아존중감은 성취를 통해서만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소속된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 깊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수용 받는 것이지 자기네가 성취한 업적이 수용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소속감을 느끼고자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자기를 받아들인다고 느끼는 아동은 든든한 울타리와 같은 자아존중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근거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구축하게 된다. 크게 성공한 사람이나 세계적인 거부 중에서도 자아존중감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왜 만족할 수가 없는가에 대하여 의아해하며 고독한 절망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우리를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 만일 부모에게서 이러한 수용을 받지 못하면 부모의 대리자나 또는 교사에게서 수용 받고 싶어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통하여 인류 공통의 욕구인 무조건적인 수용의 욕구를 충족하기도 한다. 교사는 인간의 성취의 개념을 구분하고 인간의 가치와 그릇된 행동의 개념을 구별하며 아동의 독자성을 인정할 때 아동을 수용하고 격려 할 수 있다.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리포트 덕분에 나는 오래된 미래라는 대단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책을 봤을 때, 요즘 잘 쓰지도 않는 누런 재생지에 코팅도 되지 않은 책을 보고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생지로 만들어 한없이 가벼운 이 책이 한없이 무거운 내용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가볍게 다가와 무겁게 느껴지는 책 . 이 말 그대로가 라는 책에 대한 평가이다.이 책의 서문은 책 전체의 내용과 작가 헬레나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한다.왜 세상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하나의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항상 이러했는가? 과거에는 더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티베트 고원 위의 오래된 문화의 나라 라다크에서 16년 이상의 경험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우리의 산업문화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라다크에 가기 전에 나는〈진보〉의 방향은 어쨌든 불가피한 것이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공원 한가운데를 질러가는 새 도로나 200년 된 교회가 서있던 자리에 철골과 유리로 된 은행이 들어서는 것이나, 길모퉁이의 가겟집 대신에 수퍼마켓이 생기는 것이나 우리 삶이 나날이 더 힘들고 빠르게 느껴지는 사실을 모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라다크가 나에게 미래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었고 커다란 힘과 희망을 나에게 주었다.서문에서 나타나듯이 헬레나는 라다크로 가기 전에 인류의 진보는 어쨌든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인류의 진보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필히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헬레나가 라다크에서 체험한 16년은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이 오해와 편견이었음을 확신하게 하는 기간이었다. 나 역시 이 책을 접하고 나서 나의 무관심한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오래된 미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즉, 제 1부인 전통 , 제 2부인 변화 , 제 3부인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각각의 아름다운 과거의 라다크를 살펴보며, 점점 붕괴해 가는 현재의 라다크를 고발하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라다크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드러내려는 의도라 볼 수 있다.◎ 제 1 부 전통티베트 고원의 라다크는 엄혹한 기후와 척박한 땅을 가진 황무지이다. 지난 1947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인도에 속하게 된 라다크는 티베트 말로 '고갯길이 있는 땅'이란 뜻. 실제로 히말라야의 그늘 속에 커다란 산맥들이 이리저리 얽혀 만든 고산지대에 라다크는 있다. 바로 이 곳이 약 13만여 명의 주민들이 오랜 세월 평화롭게 살아 온 라다크 공동체의 터전이다.라다크의 삶은 우리가 보기에 원시적 이라고 할 정도(물론 물질문명에 길들어진 서구인의 관점에서)로 자연친화적 이다. 그들은 곡식이 자라는 넉 달 동안은 하루종일 노래 부르고 웃으면서 농사를 짓는다. 혹한이 불어닥치는 나머지 여덟 달 동안은 흥겨운 축제로 보내거나 한가롭게 명상을 하며 보낸다. 라다크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아무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또는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가족과 같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묶여진 공동체 속에서 자연과 일치된 삶을 살며, 평화롭고 충만한 생의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라다크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식은 사람들의 모든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사람들이 가장 경멸하는 대상은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데서도 그러한 일면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사람의 체온과 친밀감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들이 어른이 되고 다시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들의 아이들을 체온과 친밀감으로 키우는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가 서로 나누는 마음이 깔려 있는 라다크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라다크의 공동체적 삶은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는 비인간적인 삶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라다크의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지 않으며 가족과 이웃에게서부터 다른 마을 사람들과 낯선 사람에 이르기까지 남을 돕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볼 수 없는 깊은 유대로서 협동하며 척박한 곳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 간 것이다.◎ 제 2 부 변화가난하지만 가난함을 몰랐던 라다크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다가온다. 서구에서 온 관광객들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 끊임없이 여가를 즐기고 하루에 관광객 한 사람이 쓰는 돈은 라다크의 한 가족이 일 년 동안 쓰는 양과 맞먹었다. 이 이방인들과 비교하며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난하게 느끼기 시작했다.1975년 체왕 팔조르라는 사람은 라다크 마을을 소개하며 여기는 가난 같은 건 없어요. 라고 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8년 뒤인 1983년 그는 서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나 가난해요.난 이렇게 변화된 라다크의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애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물질적인 면을 바라보는 관광객에 의해 라다크는 가난한 나라로 평가된다. 서구 문명의 침투로 지금껏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해오던 전통은 갑자기 가치 없는 것으로 바뀌고 서구적인 것이 모든 것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또 한 서구 문화의 갑작스런 유입은 라다크 사람들을 열등감에 빠지게 하였다.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열렬히 받아드려 선글래스, 워크맨, 청바지을 향해 정신없이 쫓아 다녔고 아이들은 새로운 주문처럼 된 "한닢만, 한닢만"이라는 말을 하며 졸라 됐다. 새로운 경제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간격을 증대 시켜 부자는 더 부유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은 아주 가난해졌다.서구의 도구와 기계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은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바빠졌고 일은 서둘러야 했다. 그 결과 그들은 주변의 세계의 미묘한 변화에 대한, 한때는 예민했던 감각, 날씨의 작은 변화나 별을 감지하는 능력을 잃어버려 가고 있었다. 전통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라마승이었지만, 이제는 기술자가 존경받았다. 라다크에 서구의 교육도 들어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12,000피트 고도에서 보리를 키우는 일이나 햇볕에 말린 벽돌로 집을 짓는 것에 관해서는 나와있지 않는다.서구의 교육은 지역의 자원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욱 나쁜 것은 라다크 아이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 이였다. 아이들은 자부심을 잃었고 자신들의 전통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서구교육은 사람들을 농업에서 끌어내어 도시로 부르고 현금경제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아주 제한된 일자리를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중앙 집중화된 경제는 많은 양의 에너지 사용에 의존하고 자원의 더 많은 소비를 초래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것을 다른 곳의 생산품에 의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자급하는 생활을 잊어버렸다. 음식, 의복, 건축재료 모두를 밖으로부터 들여와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전통마을에서는 어떤 종류의 쓰레기도 없었지만 이제 음식찌꺼기 플라스틱 유리 포장재 등 쓰레기가 쌓이고 인간의 배설물도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쓰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지역의 농업은 붕괴되었으며 가까운 마을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사는 것보다 수입 밀가루를 사는 것이 더 싸게 되었다. 농사를 짓는 것은 '비경제적인' 일이 된 것이다.라다크의 서구식 개발의 폐해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개인의 불안정이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개인의 자존심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남자와 여자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사이에 간격이 생겨놨다. 여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돼버렸고 새로운 주도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남자들 역시 고통받았다. 아이들과의 접촉은 드물어 졌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경쟁해야하는 압력을 받았다.이제 라다크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자연에 기초를 둔 전통적인 사회는 여러 가지 결함과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현재의 라다크는 그렇지 못하다. 세계 자본주의의 최하층에 편입되어 인정은 급격히 메말라가고 생활양식은 파괴되었다. 자급자족하며 살던 그들은 햄버거를 먹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하게 되었다.◎ 제 3 부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이 장에서 작가는 라다크의 전통적 삶과 서구 문명으로 인해 파괴된 라다크를 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인류의 미래를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저자가 주장하는 반개발(anti-development)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개발'의 일차적 목표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미래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반개발은 새로운,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인간적인 진보의 개념을 증진하고 보급해야 한다. 나아가 지속 불가능한 개발을 향한 무분별한 돌진을 막기 위한 전지구적인 노력이 쏟아져야 한다.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과 지구 사이에 존재해 온 '오래된' 유대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한 유대 관계의 온전한 모습은 바로 라다크였으며, 라다크의 붕괴는 미래 인류 역사의 소멸을 뜻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생각이다. 따라서 인류의 미래는 이미 '오래된'과거에 있다는 저자의 인식은 우리 시대의 산적한 삶을 해결해 나가는 데 귀중한 화두가 된다. 이미 라다크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이를 잘 암시해 준다.'생태학'과 '태양에너지'라는 용어는 라다크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이해되고 있으며, 환경과 라다크 장래의 복지를 의식적으로 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 중 라다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원예가인 체왕 릭진 라그루크는 손해를 보더라도 유기 농법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을 시작했다. 라다크 사람에게는 개발의 많은 함정을 피할 기회가 있다. 이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