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국의 제정헌법과 개정헌법은 그 시대의 정치적 이념과 시대사상 그리고 정치 현실을 반영하는 역사적 생성물이다. 헌법의 제정권력은 헌법 질서를 시원적으로 창조하는 힘으로 다른 상위의 법에 의해 법적효력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근원적인 권력이며 ,절차상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다. 그러나 헌법도 변화하는 사회현실에 대하여 규범적 효력을 가지기 위하여, 또한 정치 세력간에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하여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하다.한국의 제정헌법은 1948년 5월 10일 시행된 남측의 총선거로 선출된 제헌의원들이 1948년 제헌국회를 구성화고 헌법제정의 작업에 착수했다. 제헌국회에서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 중심제가 혼합된 제헌헌법을 마련하고 1948년 7월 17일 대통령제와 단원제 국회를 주요 골자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공포·시행하기에 이르렀다.1948년 제정된 헌법은 그후 지금까지 55년여에 이르기까지 총 9차에 걸친 개정의 과정을 거쳐왔다. 주된 헌법의 개정 사유는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국가의 통치구조를 개선해나가는 방향이 아니라 주로 헌법의 효력을 무시하고 통치권자의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행하여 져왔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기본권의 천부인권성이 강조되어 오거나 새로운 기본권을 추가하여 오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주로 국가권력의 통치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변천하여 왔던 것이다.이러한 잦은 헌법의 개정으로 인하여 한국의 현대사는 많은 굴곡을 거쳐왔으며 달리 말하면 한국의 잦은 헌법 개정의 역사가 바로 굴곡많은 한국 현대사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잦은 헌법 개정은 헌법의 규범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기본법으로서의 헌법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그리고 불법하고 위법한 형태의 권력 지배과정을 헌법의 개정으로 정당화시키는 부작용도 나타내었다.아래에서는 이러한 한국 헌법의 개정과정을 서술하고 각 개정과정에서의 내용과 의의, 헌법적 특징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 헌법 개정과정의 한계를 중심으로 비판하면서 9차 개어있던 의원내각제요소인 국무원 불신임제를 함께 채택함.2) 의의내용면에서도 체계정당성을 무시하고 대통령제요소와 의원내각제 요소를 무리하게 혼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개헌의 절차에 있어서도 헌법규정과 법원리를 어기는 위헌·위법적인 것이었다. 헌법이 정하는 공고절차도 거치지 아니한 개헌안을 통과시켰을 뿐 아니라 국회의 의사결정도 독회절차와 자유토론이 생략된채 폭력적인 수단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3) 특징제 1차 헌법 개정은 그 개정과정에서부터 헌법규정과 법원리를 어기는 위헌·위법적인 것이었다. 헌법이 정하는 공고절차도 거치지 않고 국회의 의사결정에서도 독회절차와 자유로운 토론이 배제된 폭력적인 수단에 의하여 이루어 진 것이다. 이후 우리 헌법의 수난이 이 1차 헌법 개정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제 1차 헌법개정의 과정은 통치권자가 헌법에 대한 권위를 어떻게 부여하고 있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 1차 헌법개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재자로 변모하여 이후 2차 개헌까지 그 실체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3. 제2차 개정1) 내용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가능케 하기 위한 개헌안이었음. 그 밖의 내용으로 주권제약, 영토의 번경 등 중대사항에 대한 국민투표제, 국무총리제 폐지, 등, 자유경제체제의 도입 등이 있음.2) 의의개헌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무시한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개헌이었음. 수학에서 통하는 사사오입의 계산방법이 법규범의 해석에 적용되었음.3) 특징개헌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무시하고 법원리에서 전통적으로 쓰이지 않는 수학적 계산방법까지 동원한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개헌이었다. 1, 2차에 걸친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인 개헌으로 인해서 이승만 대통령은 그 후에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렇듯 헌법이라는 국가의 기본법,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민주적 통치질서를 규정하는 헌법을 무시한 통치권자의 최후가 어떠한지 첫 교훈을 주게 되었다.4. 제3차 개정1에 관련된 반민주행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헌법적인 근거규정을 마련키 위한 개헌이었다.3) 특징제 4차에 이루어진 헌법 개정의 주요 특징은 바로 3.15 부정선거 대상자들에 대한 소급적인 처벌을 위하여 이루어 졌다는 데 있다.제 2공화국은 3차와 4차에 걸친 헌법을 개정하는 동안 개정 헌법의 규범을 충분히 발휘하지도 못한채 5.16 군사쿠데타로 그 종언을 맞게 되는데, 국민들의 분출한 저항으로 이루어진 헌법의 개정과 그 권력의 탄생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전에 종말을 고한 것은 아쉽다고 할 것이다.6. 제5차 개정(5.16군사쿠데타)1) 내용통치구조적 면에서 단원제국회와 대통령제로 환원하였음.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신설하였음.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중요성을 기본권조항에서 처음 언급하였음. 정당국가조항을 강화해서 국회의원이 임기중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하는 경우에는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했음. 헌법재판소제도 대신에 위헌법률의 사법심사제를 도입하였음. 또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선거제도를 폐지하고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에 의해서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하였음.2) 의의개헌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신설함으로써 헌법의 최고법규성이 더욱 명백히 되었다 볼 수도 있으나, 그 당시 국민의 정치수준을 고려해 볼 때, 이는 독재정치를 위한 발판이었다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기본권조항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중요성을 언급하였으나, 기본권제한의 가능성은 더 커졌다.3) 특징군사 쿠데타로 인한 제 5차의 헌법 개정은 또 한번 초헌법적인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서 헌정을 중단하고 헌법을 개정한 과정이었다. 군사혁명세력들은 국가의 혼란을 긴급 구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이후로 계속된 한국 현대사의 군사독재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기존 헌법질서를 완전히 파괴한 속에서 새롭게 헌법의 제정과정을 가져오면서 제 5차의 헌법 개정이 헌법의 새로운 제정인가 하는 부분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군사혁명세력은 제 5차의 헌법개정이 제헌헌법을 계승적인 헌법 개정에 다름아닌 것이다.8. 제7차 개정(유신헌법)1) 내용국민의 기본권은 일반적인 법률유보와 개별적인 법률유보에 의해 그 본질적 내용까지도 침해할 수가 있게 되었고, 인신권과 재산권 그리고 참정권이 내용이 크게 축소되었다.또 통치구조면에서도 대통령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대통령의 선거권과 국회의원정수의 1/3의 선출권을 주고 대통령 임기연장과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법관임명권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강화헌법위원회 신설, 헌법개정절차의 이원화, 국정감사제 폐지2) 의의대통령의 권한 대폭강화, 중임제한규정 없애 1인장기집권의 길을 열어놓고, 국회의 기능과 지위를 약화시켰으며, 대통령의 법관임명권을 통해 사법권을 독립을 침해하였다. 또한 헌법개정에 대해 국민투표로 확정하는 방법과 국회의결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의결로 확정하는 2원적 개헌방법을 채택함으로써 개헌에 있어서도 대통령의 뜻은 쉽게 관철되지만, 국회의 개헌의지는 실현되기가 어렵게 만들었다.3) 특징유신헌법은 초법적으로 헌법의 기능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에서 유신헌법이 혁명적인 특징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유신조치가 기존 제 3공화국 헌법의 규범적 효력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또한 유신조치는 국가의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초헌법적인 비상조치 내지는 초헌법적인 긴급조치였고 이 긴급조치에 의해서 3공화국 헌법이 전면개정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는 유신헌법의 전문에서 제 3공화국 헌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설명한다.하지만 유신헌법은 어쩌든 헌정체제를 중단시키고 초헌법적인 비상조치에 의해서, 그리고 그 주체세력이 여전히 집권세력이었다는 점을 볼 때 하향혁명식, 혹은 정변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유신헌법은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기본적 보장도 무시하고 안보논리에 기반하여 대통령의 1인독재를 위한 조치였음은 분명하다.이러한 유신헌법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치권자들이 극복하려 하하나 그것이 개정당시의 주체에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여됨으로 인해서 국민적인 헌법의 개정이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점이다. 이는 군부세력들의 새로운 집권세력으로의 등장으로 인한 정치주도세력에 의한 헌법의 제정의 과정이 된 점이다. 이는 제 5공화국의 정권을 그 헌법의 내용적 민주성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의 출범이 얼마나 민주적인 과정을 거쳤는가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 권위주의적인 정권으로 규정받는데서 잘 알 수 있다.10. 제9차 개정1) 내용대통령직선제를 주요골자로 하는 개헌내용2) 의의우리 헌정사에서 여야합의로 이루어진 최초의 평화적인 헌법개정이었다는 헌정사적 의의를 갖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국회의 의결을 거친 개헌안은 헌법이 정한 대로 10월 27일 국민투표에 붙여져 국민의 찬성을 얻어 헌법이 개정이 확정되고 10월 29일 공포되었다.3) 특징제 9차 개정헌법은 이제까지 한국헌법의 개정과정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는 국민의 민주적 열망을 담아 헌법을 개정하는 가운데에도 지난 헌법의 규정속에서 헌법의 개정을 진행하고 8차 개정헌법에서 추가되었던 많은 민주적 요소를 더욱 확대·강화하는 과정이 되었다. 9차 개정헌법은 특징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고, 특히 국가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의 여러 요건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기간 대통령 중심의 최고 통치권자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더욱 분산·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였다. 또한 헌법의 규범적 효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를 설치한 점등도 특징 할 만하다.전체적으로 9차 개정헌법은 긴 기간동안 계속되었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의 요구에 걸맞게 민주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여 개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9차 개정헌법 또한 여러 정치적인 상황을 맞게 되면서 현재까지도 개헌에 대한 요구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Ⅲ. 한국 헌법 개정과정의 비판1. 통치구조 중심으로 이뤄진 헌법 개정의 과정주로 헌법의 개정이 진행되면 대통령 선거의 방식이 변한다든가,
Ⅰ. 들어가며어린 시절의 나는 또래의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기가 배꼽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이 우스꽝스러운 논리는 성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보수적 관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통념은 정숙하고 교양있는 여자는 성적 쾌락을 즐겨서는 안 되며 다만 성을 출산의 수단으로만 여겨야 하며, 다소곳하고 말없고 성(sex)이라고는 도대체 알아선 안 되는 것이라고 밀어붙인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천연 기념물 로 지정될 만큼 보기 드물다. 금기어처럼 여겨지던 性 이라는 테마가 유행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당당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얼마전, 라는 영화를 보고 나는 우리 사회의 성 에 대한 인식이 변화를 요구받고 있으며 그것이 변화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한편 내 속에 갇혀 있는 부끄러운 본능-성욕구-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성의 사각지대에서 방황하는 처녀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성. 그것이 얼마나 도덕적이고, 예의(?)를 갖춘 것인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두운 곳에서 음란한 문화로 통하던 성(sex)의 화두가 사회의 밖으로 나오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여성을 그것의 피해자-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에서 향유자로 이끌어내게 된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혼전순결에 대한 찬반양론에서부터 부부의 가족계획을 위한 피임에 이르기까지 성에 대한 인식은 남녀가 공유하고 합의해 나가야 하는 것이기에 사회의 관념 속에서 끼리-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의 문화로 치부되는 것은 모순이며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유부녀들이 수다떠는 정도로, 유부남들이 술자리에서 안주거리 삼는 정도로 부부 사이의 성관계를 전락시키는 것을 거부한다.어머니가 섹스 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우리 사회의 성에 관한 인식이 변화해 가는 속도는 그 모순에 비해 터무니없이 늦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바로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야기-물론 동시에 아버지들의 이야기-가흔히 연상하는 그런 술렁거리고 떨리는 첫날밤이 아니다. 그렇다. 그것은 너무나 슬프고 서글픈 첫날밤 이야기다. 먼 옛날 어느 신랑과 신부에게 주어졌던 첫날밤.한 잔 술을 걸치고 잠시 밖에 나가려던 신랑이 문지방을 넘으려는데 그만 다리가 문고리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신랑은 신부가 욕정에 못 이겨 나를 이렇게 붙드는구나 생각한 나머지 정절도 없는 색녀와는 살 수 없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곧장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어느 날 우연히 이제는 노인이 다 된 그 신랑이 옛날 자기의 신방 앞을 지나게 되었다. 기왕에 과거지사인 것, 어떻게 됐을까 하여 신방문을 열어보니 신부가 족두리도 풀지 않은 채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직도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놀라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든 신랑이 신부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으니 그만 신부가 재로 푹 내려앉고 말았다.이 이야기는 잘 아는 대로 질마재 신화다.또 하나 떠오르는 슬픈 첫날밤 이야기는 바로 테스의 첫날밤이다. 영화의 영향으로 어느덧 내겐 테스=나타샤 킨스키 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테스는 첫날밤 사랑하는 사람에게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남편에게 과거 자신의 수치스러웠던 겁탈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고백한다. 그러나 따뜻한 위로와 위안 대신에 돌아온 것은 남편의 철저한 냉소와 모멸이었다. 테스가 먼저 남편의 지난날 과거를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발단이 된 테스는 사랑도 잃고 운명의 험한 질곡을 넘나들다 종국에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나는 왜 첫날밤이라는 화두의 그 은밀하고 아기자기하며 재미난 이야기들은 다 제쳐두고 이런 슬프고 비극적인 첫날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비록 문학 속의 이야기지만 동과 서, 그리고 과거와 근대를 가로질러 걸쳐 있는 이러한 류의 비극이 현대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채 동일하게 양산되고 있다는 서글픔 때문일 것이다. 그 동일한 비극이라는 것의 핵심은 위의 두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잘못 끼워진 이기심과 욕망의 첫단추가 부른 화로 인해 사랑이 깨지고 가정이 파괴되는 광경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내가 너무 세상에 관해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반성에도 불구하고 문득 얼마 전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 소송을 걸고 이에 따른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는 신문기사가 뇌리에 떠오르는 순간, 동시에 내겐 또 한 명의 질마재 신화 속의 신부와 테스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첫날밤과 처녀막명절이면 친척들이 모두 모인다. 어렸을 땐 그것도 하나의 재미였지만 지금은 끔찍한 행사 중의 하나다. 친척들이 모이면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모여 놀게 마련인데, 여자들이 하는 일이래야 음식 만들기 아니면 소식 전하기이다. 좋게 표현해서 소식 전하기이지 사실대로 말하면 수다떨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노처녀인 우리 사촌 언니가 주로 소재가 되었다. 너는 시집 안 가니? 우리 옆집에 총각이 하나 있는데, 좀 키가 작긴 해도 사람은 그만인데... 의 짝 끼워 맞추기(찾아주기는 결코 아님)부터 시작해서 그래 결혼하면 뭐하니. 혼자 사는 게 제일 좋다. 시집가봐야 설거지나 하고 부엌데기 신세지, 뭐 별 거 있니? 의 독신 예찬론, 혼자 있을 때 부지런히 즐겨라. 시집가면 말짱 꽝이다. 의 미혼 전성시대론, 그래도 여잔 시집가서 남편 그늘에 사는 게 최고 상팔자야. 의 그늘 찬양론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가끔은 나조차도 그 지겨운 소리가 듣기 싫어 언니에게 빨리 결혼해 버리라고 협박(?)을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친척끼리 모여서 하는 얘기라는 게 항상 새로운 소재거리가 있다면 좋으련만 매번 모이는 사람이 거기서 거기이니 이야기 소재도 거기서 거기이다. 특별한 소식이라야 누가 결혼한다더라, 누가 아기 났다더라, 누구 아기 돌이라더라, 뭐 이 정도. 그 외에는 매일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하여튼 끝없이 되풀이니의 남편이 바람피우는 이야기.(그러면서 여자들은 자기 남편들에게 단속시키는 말을 잊지 않았다.)단지 미혼이라는 이유로 나(실지 어리다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와 언니는 흥미진진한 그러면서도 가슴 답답한 그 이야기에서 제외되었다. 우리 나라 풍토가 여성들은 성에 무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탓에, 성에 무지한 것이 여성답고 처녀답다고 여기는 탓에 유일한 성교육 통로인 여성들의 성 담론에 낄 수 없었다. 남성들의 세계에 접해보지 못했으니 서른이 다 되가는 미혼 남성이 집안 어른들의 성 담론에 얼마나 끼여들 수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이것은 내가 보기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처사였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성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는 시기에는 제외되었다가 정작 성에 대해 다 알고 난 후에 성 이야기를 자유스럽게 할 수 있다니, 이건 좀 모순 아닌가. 어쨌든 그렇게 배제된 상황에서 내가 언뜻언뜻 흘려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이렇다.그 아주머니는 나이가 어려서 시집을 왔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도망을 간 그 아저씨와 그런 아내를 둔 그 아저씨의 아버지는 나이가 어린 까닭에 성에 대해 무지할 거라고, 순결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 아주머니와의 혼담을 서둘러 성사시켰다. 그런데 첫날밤 그 아주머니의 처녀막이 터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남편 되는 아저씨는 물론이고 시아버지와 시누이들까지 모두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주머니를 처녀가 아니라고 단정하고는 온갖 시집살이를 시켰다. 고달픈 결혼생활이 몇 년째 흐르고, 시누이들이 시집을 가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아주머니에게도 다른 아줌마들과 어울릴 약간의 시간이 생겼다. 아줌마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생기면서 성에 대해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던 그 아주머니는 첫날밤 자신의 처녀막이 터지지 않은 것을 알았고, 그때서야 남편의 처녀도 아닌 주제에 라는 정말 날벼락 같은 소리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다른 아줌마들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처녀막은 심한 운동 누이는 시집가서 잘만 사는데, 진짜 처녀였던 그 아주머니가 골병든(그 아주머니는 신경통으로 일 년에 한 번은 병원에 입원하신다) 몸으로 지금의 그 나이에 남편에게 큰소리친다고 해서 무에 그리 통쾌할 것인가.사실 어른들 말로 옛날 같으면 애가 몇 명은 있을 법한 나이의 나는 가끔 두렵다. 제주도 호텔 옥상에는 자신의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신랑들이 피우고 간 담배꽁초가 수북하다는 이야기를 들르며 그들 중 진짜 총각은 과연 몇 명이며, 그 아주머니와 같은 피해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장담을 과연 할 수 있을지. 세상이 많이 바뀌어 여자들도 알 건 다 안다는 사고 방식으로 여자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야한 농담을 하며 장단 못 맞추는 여자는 내숭이라고 내모는 남자들이 자기 여자의 순결에 정말 너그러울 수 있을지.한때, 드라마 사랑한다면 의 남자주인공 이동휘 역을 맡은 박신양이 인기였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를 감싸안는 모습이 여성들에게 어필되었기 때문이라고. 만약 성경험이 있는 남자(이 경우 성폭행일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를 감싸안는 여자가 주인공이 된다면 그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처럼 매력적으로 비춰질까?힘든 일도 마다 않고 남자 동기들과 동등하게 일하다가도 내 취미인 자전거 하이킹을 맘껏 즐기다가도 난 가끔 멈칫한다. 처녀막은 안녕하신지.신체 검사 때 파손된 처녀막 소송에서 이긴 어느 노처녀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며 통쾌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비웃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선다. 지금도 이 나라엔 처녀막 하나에 목숨 건 여자들과 처녀막 하나에 울고 웃는 남자들이 너무 많으므로. 결혼을 앞두고 처녀막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만큼 당당하게 살고 싶다.즐거운 본능, 솔직한 섹스섹스라는 말은 참 어색하고 어려우며, 가끔씩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남자들은 정력 을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여기는 반면 여자들은 정숙 을 여성다움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데서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자들은 성적 호기심이나 관심, 그리고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을 죄악시하며 여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