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다양한 전공자들이 듣고 있는 교양과목 수업에서, 보다 우리전공만의 특색을 보여 줄 수 있는 주제를 택하고자, 농요를 택하게 되었다. 농요를 선택하기에 앞서, 현대산업사회와 환경문제 중 이를 음악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특히 현대 산업사회로 오면서 안타깝게도 소멸되어버린 음악적 장르 중에서도 농요를 택하게 된 것이다.농요, 아니 좀더 넓게 한국음악 자체에 대한 이론적인 진행 단계는 아직 발전기의 초기단계에밖에 오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짧다. 또한, 음악적 담론만을 해석하려는 연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한 분야에만 집중된 현상을 보여주며, 이를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는 아직 미흡하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농요는 한국음악학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을 뿐이다. 또한 이 조차도 어디에서 어떠한 농요가 불려졌고, 그 사설은 어떠하고, 음계조직관계는 어떻고 정도만 나열하였을 뿐이지 역사적인 측면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았다.이제는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농요를 사회사적으로 접목시켜 보겠다는 의지하나만으로 희박한 자료와 정보 속에서 이번 주제를 시작하게 되었음을 미리 밝혀두도록 하겠다.2. 농요(農謠)란?농요(農謠)란 ‘농사’라는 뜻의 ‘농(農)’, ‘노래’라는 뜻의 ‘요(謠)’자가 합쳐진 것으로, 농경노동의 현장에서 가창되던 소리를 말한다. 즉, 농민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힘들고 바쁜 일손으로부터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노래를 부르곤 하였는데, 이 때 불리던 노래이다. 국악의 분류법상으로 보면 ‘민요’의 한 가지 형태라고 할 수 있다.‘들노래’ 또는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불리는 이 농요의 주제는 주로 농사와 관계되는 내용으로 남?녀의 연정, 남편에 대한 원망, 늙음에 대한 탄식, 신세타령, 자연친화적 내용들을 가사에 담고 있다. 이렇듯 농요는 전통사회 성원들의 감정과 욕구, 생활고, 자연 현상 등을 노래로 표현한 때문에 조상들이 살면서 생각하고 살아가던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농요는 정신적?문화적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그렇다면, 이 속에서 현대사회의 환경과 어떠한 관련성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음악, 좀 더 광범위하게 문화는 그 사회의 흐름과 아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그 과정 속에서 소멸과 생성, 발전과 쇠퇴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산업사회라는 측면은 다른 분야 못지않게 문화적 부분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모습은 치열한 경쟁사회이자, 세계화와 지역화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의 우리사회를 어디를 가든지 웰빙이란 글자를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웰빙 열풍 사회가 되어 버린 듯 하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코드로 웰빙족은 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 식품을 먹고, 화학조미료와 탄산음료를 꺼린다. 값비싼 레스토랑 식사 대신 가정에서 만든 슬로푸드를 선호한다. 동시에 요가, 피트니스, 필라티즈, 단학 등을 좋아한다. 아로마 테라피, 라이트 테라피 등의 자연요법에도 관심이 많다. 이러한 식생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농경사회의 모습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된다. 양적증대에만 급급하여 농약을 마구 뿌려대고, 대형농경기를 동원하고 되도록 많은 수확량을 올리려고 했던 초기의 산업사회와는 달리 현대의 산업사회에서는 질적 측면에 중점을 두어 웰빙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대응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즉, 농경사회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바로 현대사회의 모습 속에서 농요의 발전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앞에서 본 것처럼, 농요자체에 서로 협력하고, 일을 즐기면서 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있고, 이러한 점에서 삶에 치여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인들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사람의 온기 없이 트렉터만 돌아가는 논지와 사람들이 서로 부비면서 일해 가는 그 정경만으로도 정되어 보존, 전승되는 경우도 확실한 경제적인 보조 없이 단지 형식적으로 유지만 되고 있을 뿐이다.즉, 농업 생산양식의 변화로, ‘두레’ 노동은 완전히 소멸되고 ‘품앗이’도 거의 사라져 그 가락과 사설의 일부만이 잔존하고 있다. 전통적 농경 생활약식에서 우러나온 농요는 농어촌 생활에 밀착되던 맥락에서 떠남으로서 농민들의 의식 속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5. 농요의 쇠퇴 원인우리는 농요의 쇠퇴원인 사회? 경제 ?정치적 요인과 음악?문화적 측면의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1) 사회?경제?정치적 요인우선, 음악이 사회적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60년대의 초기 산업사회는 유래 없는 급격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즉, 어떠한 체계적 지식이나 이론 없이 짧은 시간에 정해진 정책들에 의해 우리사회의 모습은 빠르게 변화해 갔다. 물론 단기간 내에 나름대로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했다는 데에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지만, 여기에는 정신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남긴다.이러한 산업사회는 농촌의 젊은이들을 도시로 떠나게 만들었고, 그에 따라 노령화 현상이 발생하였으며, 산업사회의 양적 증대를 위해 최대의 수확량을 올릴 수 있는 기계들을 사용 하기에 급급하였다. 또한 강력한 효능을 자랑하는 여러 농약품이 개발되었고, 무시무시한 대형 농약 살포기 기계까지 만들어짐에 따라 더 이상 농사는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갔다.이러한 농업 생산양식의 변화로, ‘두레’ 노동은 완전히 소멸되고 ‘품앗이’도 거의 사라져 갔으며, 이에 따라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협동의 모습을 자랑하던 농촌사회는 그 모습을 감추게 된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모일 필요가 없는 농촌사회에서 농요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1960대 정부의 문화적 측면의 정책적 하나로 전통문화에 대해서 패쇄적인 정책을 이용하였음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다. 물론, 문화재제도를 만들어서 경제적 보조를 주겠다는 음악이 산업사회에 들어와서 소멸하게 됨은 당연한 일이였을 것이다.6. 농요의 쇠퇴가 주는 시사점농요의 쇠퇴가 주는 시사점은 또한 산업사회의 병폐와의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인간소외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농요의 쇠퇴 이전에 농촌에서의 ‘두레’와 ‘품앗이’같은 협동적인 생활양식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 더 이전에 산업사회의 급격한 변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공장무인화등과 같이 농촌사회에서도 인간이 필요 없게 된 것과 다중, 이원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위치, 능력 등의 지위가 하락되고 가치가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를 중요시하는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면서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생겨나면서 인간을 경시하게 되며 또한 가상공간의 피상적인 인간관과 물신화가 확산되면서 인간성이 상실되고 무미건조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인간소외는 곧 산업, 정보사회의 병폐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음악사적인 측면에서도 큰 문제 거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즉 한국전통음악에서 각 지방의 사투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음악의 어법, 즉 토리)가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더구나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의 문화적 정책들과 악보화 되면서 오히려 침체 되어있던 국악의 장르를 오히려 축소시킨다. 급기야는 아예 국악이란 음악자체가 국악기로 연주만 한다 뿐이지 결국은 서양의 음악과 다를 바 없는 정체성을 잃은 문화가 되어 버릴 것이란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시된다.7. 농요의 현대사회에의 응용 가능한 대안산업사회의 시작과 과도기적 과정을 거치고 난 후인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 여기저기서 ‘웰빙(well being)'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는 의식주의 기본적인 생활면에 있어서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두는 정신적 행복을 중시하는 풍조가 일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우리는 이러한 점에 비추어 현 시대에 농요를 응용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수업시간마을이라는 것 자체가 농촌 사람들로만 형성된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자신이 먹을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고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농요를 부르며 일하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농약과 각종 화학 비료가 난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충해를 막기 위해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덜 쓰는 만큼 사람의 손이 더 필요했고, 그만큼 지금보다 덜 오염된 쌀을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농요를 대안마을에 보급시켜서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과정 중의 일부를 농요와 함께 일할 수 있게 한다면, 그만큼 농작물에 사람의 손이 더 가게 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체 의식도 함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는 농약과 화학비료가 덜 들어간, 사람의 정성과 손맛을 좀 더 느낄 수 있는 농산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로, 오리농법에 농요를 응용한 동요를 만들어 어린이에게 부르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수업시간에 들은 바로는, 요즘 오리농법을 이용한 농가가 늘면서 그에 따른 행사도 많이 열린다고 한다. 가족 단위로 신청을 받아서 가족 당 한 마리의 오리를 배분해 주고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배당 받은 오리를 논으로 보내게 하는데, 이 때문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자신의 오리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심리 마케팅이 오리 쌀 재배 농가와 한 가정과의 단골 관계를 맺게 하고, 이와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온 식구가 재배 농가를 자주 방문하여 자연 체험의 횟수를 늘리게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연유로 부모와 함께 농촌을 찾은 아이들이, 자신의 오리를 논으로 떠나보낼 때에는 “오리야 우리 쌀을 잘 지켜다오”와 같은 소망이 담긴 구호를 외치는데, 이러한 구호를 가사로 전환하고 농요를 응용한 동요를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부르게 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비록 농요를 부르며 논에서 농사를 직접 짓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환경문제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자연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즉,다.
1. 내담자에 대한 정보oo대학교 사범대학 4학년 여학생2. 내담자가 상담 받고 싶어 하는 문제 및 고민거리연애관련 상담 - 이성친구와 헤어진 후의 외로움, 허전함, 공허감, 우울증3. 상담내용 녹취록상담자1 : 안녕하세요?내담자1 : 안녕하세요?(작은 소리로)내담자2 : (다시 한 번 더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상담자2 : 지금부터 상담을 시작 할게요(웃음).내담자3 : 네상담자3 : 자, 편안한 자세로(웃음)내담자4 : 하아(숨을 크게 들이킴)...네상담자4 : 편안하게 생각하시고내담자5 : 네상담자5 : 생각하는 걸 자유롭게 말씀하시면 됩니다.내담자6 : 네상담자6 : 요즘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시나요?내담자7 : 음....고민이라기 보다요..제가 헤어진 남자 친구가 있는데..평소에 친구들이랑 있을 때에는 괜찮다가도...혼자 방에 있거나..그러니깐 헤어졌던 남자친구가 나한테 잘 해주거나..되게..같이 공유했던 생각들이나..뭐..그런 잘 맞았던 점 같은 게 생각이 나면..제가 다시 그런 사람을 못 만날 것 같고..그 사람을, 그 사람에 대해 인연 같고..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나고..상담자7 : 네에..내담자8 : 그냥 막연히..어떤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게 생기는데..그걸 어디다가 분출 해야되고, 그 사람과 연락을 하고 싶은데, 연락할 방법도 없고 그러니까 자꾸 메일도 보내고...그냥 그 사람이 있었던 단체라던가 그런...곳에...그 사람의 흔적이 있는 곳을 자꾸 찾아가게 되거든요? 그게 왜..일반적으로 스토커라고 하면...그 사람이 따라 다니고..근데..나는 그게...그렇게 나쁜 짓이라고 생각을 안 했는데..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일종의 스토커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상담자8 : 네에...내담자9 : 친구들한테도 얘기를 하면...집착이라 그러고...그 사람한테도...그 사람의 생활에..그러니깐 스토커를 하면 연예인 같은 경우에는 생활에서 고통을 받잖아요...나, 내가 하는 행동이, 나는 아무렇게 하지 않지만...내 감정만 생각하고, 그 전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시간이 지나면...저한테는 그 사람이 되게 소중하고, 나는 지금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친구들이 헤어져 있는데, 헤어졌는데...그 사람을 못 잊는다는 둥, 되게 힘들어 하거나 하면...왜 그 사람 밖에 없는 게 아닌데, 왜 그럴까?...상담자22 : 아아..내담자24 : 좀 더...다른 사람의 사랑은 깊이 있게 안 느껴지고 그러니깐...상담자23 : 헤어진 친구들을 보면 왜 저렇게 힘들어할까 싶은데, 막상 자신의 모습을 보면 같은 모습이라는 거죠?내담자25 : (상담자의 말에 상당히 공감하며, 흥분하여 함께 말함) 어! 어! 헤어지면, 왜 저럴까...어...어...근데 막상 세상에 좋은 사람 많은데 왜 그러지?상담자24 : 네내담자26 : 막상...내가 겪고 보니까...그니깐 지금 그런 생각이 동시에 다른 사람한테는 하면서, 또, 나는 아닌 것 같거든요. 근데 그게 어떤 면에서는, 사람이라기 보달까, 제가 좀 느끼는 게...그 전에 남자친구가 없었을 때에는, 혼자서도 잘 있고, 예를 들면 의자가 하나가 있으면, 1인석에 나 혼자 앉아 있었는데, 남자 친구랑 사귀고 나서 헤어지니깐 이제 의자가 2인석이 됐는데, 2인석에 나 혼자 앉고 한 자리를 비워둔, 그래서 그 옆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줘야, 채워야만 할 것 같은, 어떤 사람에 대한 집착이, 혼자 못 있구, 옆에...왜, 그 사람이 내가 혼자라면 나는 왜 혼자지? 이런 생각 별로 안 했는데, 그냥 지금은 뭐, 혼자니깐, 빨리 누군가를 만들어야겠다...상담자25 : 빈 자리를 없애야겠다?(웃음). 허전함?내담자27 : 네 허전함상담자26 : 소외감? 공허감. 그런 게 굉장히 표기가 나요 지금.내담자28 : 그래서...막,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빈자리, 그 공허감을 채워줄 수,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잘 못 만나니깐 오히려..옛날 사람한테 더 집착하게 되고, 불안한 것 같거든요?상담자27 : 그런 집착이나,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었나요? 소개팅이나 미팅 등 새쯤에는 정말 마음...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일도 못 하겠구...가끔 그러면...그냥...막연히 그 사람이, 그럴 때에는 이제, 마음이 내가 통제가 안되니깐, 그 사람한테 메일을 보내거나, 그러니깐 그런...어떤...거를...뭐라고 해야하지...분출 한다고 해야되나? 그렇게 하고 나면 좀 낫고, 그래서 그 사람이 답메일을 안 보내더라도, 그 사람이 수신 확인된 것만 봐도... 일단 그 사람이 뭔가, 액션, 이라고 해야 되나, 어떤 행동을 취한 거를 내가 느꼈으니깐, 그 사람의 존재감을 느꼈으니깐 마음의 안정을 찾거든요?상담자34 : 네내담자36 : 제 고민은...내가 뭔가를 해야될 때...갑자기 마음이 붕 떠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그냥...지금은 일단 막연한 사람이 그 사람이니깐...그 사람한테도...그런 마음들이 가고...집착 하게 되고...그래서 그 사람한테 연락을 하게 되고, 그래서 괴롭게 되고...내 마음을 통제 못한다는 게...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추슬러야 될 지...상담자35 : 그러면, 그 남자친구를 사귀기 전에는 지금처럼 그런 공허함이라던지...그런 허전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나요?내담자37 : 그냥...뭐...가끔...예쁘게...한다고 해야 되나?상담자36 : 네(웃음)내담자38 : 그냥...뭐...뭐...예쁘게 해서...할 일이 없을 때에..(웃음)...나두 이럴 때 데이트 하러 갈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거고, 공부를 못 하거나...상담자37 : 자기가 하는 일에 방해를 받을 정도로...내담자39 : 네! 그렇진 않고 그냥,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내가 생각을 접으면 그만 둘 수 있었는데..(한참 후에) 허전하고...그냥 지금 고민을 어떻게...이런...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무기력! 나한테 어떤 소중했던..게 없어졌을 때...그런 거를 어떻게 극복해야 되고...일단은 어떻 집중해야 되는지가...그 때의 마음을, 충동적인 마음을 어떤 식으로 분출해야 되는지...만약에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싶으면, 연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내담자46 : 네. 네상담자45 : 만약에 그런 경우 때문에 수신확인이 안 된다면, 기간이 장기적으로 된다면,내담자47 : 네상담자46 :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실 것 같아요?내담자48 : 그러면...제 생각에는 한 번 정도 더 보내고, 두 번 정도, 그러니깐 그건 내가 안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한 번 정도 더 보내고, 또 수신확인이 안 되어 있으면, 그 때는 왠지 단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왠지 뭔가 가능성이 있고...돌아올 것 같기 때문에 내가 더...이렇게...극단적으로 더...어쩌면 내가 슬픈 것 보다 더 왜곡해서...왜냐면 그렇게 슬프게 해야 오빠가 올 것 같으니까, 내가 슬프다는 게 오빠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내 감정을 확대하는 것도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예를 들면 그 전에 오빠랑 전화를 할 때 느꼈는데, 분명히 오빠가 좋고, 오빠를 붙잡고 싶고, 이 상황이 슬픈데, 말하면서 더 슬픔을 확장하..한다는 걸 느꼈어요. 예를 들면, 만약에 오빠랑 얘기를 하면서 막 울고 있는데, 갑자기 뭐...친구한테 문자나 그런 게 와서, 그런 걸 보내야 되면, 갑자기 눈물을 그치고, 오빠 잠깐만, 하고 문자 답장을 보내는, 그런 모습을 오빠가 보면서, 오빠가 참 의아해 했거든요. 근데 나는...그 때 그 눈물이 정말 거짓이 아닌데, 좀 거짓은 아니지만 좀 더 확장하고, 더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간절하게 붙잡을까...그런..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더...뭐라 그러지? 확대..한다고 해야 되나? 감정을 더 증폭시키고...상담자47 : 스스로요?내담자49 : 네. 스스로.상담자48 : 그러면, 아 그러면 상대방한테 내가, 내가 당신에 대해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내담자50 : (내담자의 말을 가로 막으며) 네네 그걸 어필하기 위해서! 네..상담자49 : 어필하기 위한 마음이 있는데..내담자51 : 네. 맞아요상담자50 :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런 허전해 하는 마음이, 꼭 그 ...상담자61 : 다른 사람을 볼 때도, 그 기준에 맞춰서 보게 되고..내담자61 : 네. 네. 그러니깐, 딱 보고, 그러니깐, 그냥, 친근감이 안 드니깐, 이 사람이 내 인연, 내 사람이 아닌가보다, 남인가 보다.상담자62 : 아아...내담자62 : 그게 시간이 지나거나...상담자63 : 그 후에도 몇 번 더 새로운 남자를 만났을 거 아니에요.내담자63 : 네상담자64 : 분명히 그 사람이랑 다를 텐데, 사람이 다르니깐.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무조건 다른 사람은 내 기준에 안 맞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내담자64 : 근데..좀 더...상담자65 : 계속 하게 돼요?내담자65 : 그렇기보다...되게...좀...음...좀...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면, 그 전에 오빠랑은 손을 잡아도..되게 좋았거든요? 성적으루? 뭐 예를 들면...어...그냥 손을 잡아두 내 몸이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나? 근데...다른 사람은...이렇게 보면...그 때는 보기만 해도 정말 좋고, 아 되게 내, 가 되게 좋아하는구나. 이런 게 막 느껴졌는데...다른 사람들은 그런, 예를 들면 손을 잡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안 들어요. 그래서 나는...그것두 하나의 고민이에요.상담자66 : 이성친구의 호감이 안 생긴다는 거에요?내담자66 : 아니요. 그러니까, 되게 좋은 사람이긴 한데...그러니까..그 때 처음 느꼈던...예를 들, 그런 게...만약에 그 전에 오빠는, 아 내가 되게 손을 잡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이 드는 반면에, 그 외의 사람들은 그냥 인간적으로 되게 좋고...그냥 뭐...인간적으로 정말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이런 것처럼, 그런...생각으로는 아, 이런 사람은 좋아해도 되고,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인데, 어떤...호르몬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쪽에서는...별로 아무렇지 않으니깐, 떨린다거나...만약에 손에서 땀이 난다거나...상담자67 : 네내담자67 : 식은..땀이라
2004학년도 2학기 국악사 기말레포트『유랑예인집단』 에 관하여...제출자제 출 일 : 2004. 12. 16담당교수 :▶목 차◀Ⅰ. 유랑예인집단의 정의Ⅱ. 유랑예인집단의 유래 및 흐름Ⅲ. 유랑예인집단의 발달사Ⅳ. 유랑예인집단의 종류1 사당패2 초라니패3 솟대쟁이패4 광대패5 중매구패6 광대패7 대광대패8 무동패9 얘기장사10 풍각장이패11 남사당패12 굿중패Ⅴ. 풍속도로 본 유랑예인집단1 사당연희2 굿중패모양3 박첨지 놀음하는 모양4 죽방울 받는 모양5 부벽유연6 삼일유가Ⅵ. 유랑예인집단의 역할 및 의의◈ 참고문헌 ◈Ⅰ. 유랑예인집단의 정의예인집단이란 주로 기층민중 출신의 예술인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술인집단이라고 감히 말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노래, 악기, 춤, 인형극, 곡예, 재담 등의 예술 장르를 통합적으로 다루었으면서도 대중성을 띠고 있었고 또 예술성을 집단적으로 창출하였기 때문이다.먼저 예인집단이란 말을 유랑이란 용어에 의미를 두어 이해해 보면, 그 말 그대로 한 곳에 정착해 있는 것이 아니라, 떠돌이 신세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공연 수입으로 살아가던 예인집단을 말한다. 노동은 선생님의 저서)에는 유랑예인집단을 ‘떠돌이 예인집단’이라고 칭하면서 ‘붙박이 예인집단’을 그 반대 용어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특정 지역에 농업이나 향리로서 관청에 종사하면서 그 지역을 중심으로 연행하는 예인집단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떠돌아다니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는 예인집단까지 포함한다.그 각각의 종류를 간단히 보면, 유랑예인집단은 구성원과 장르를 중심으로 사당패, 걸립패, 솟대쟁이패, 광대패, 남사당패 등 많은 패가 있다. 붙박이 예인집단은 서울의 사계축을 중심으로 남자들이 구성한 선소리패가 대표적이다.Ⅱ. 유랑예인집단의 유래 및 흐름유랑예인집단의 유래와 흐름을 이해하려면 조선 후기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조선후기는 우리의 역사에서 큰 변화를 겪는 시기였고 그 중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조선후기의 가장 큰 특징은 산대, 노량진 산대, 퇴계원 산대, 사직골 딱딱이패 등이 붙박이 형태로 자리 잡은 데 비하여 여기에 흡수되지 못한 연행인들은 떠돌이 예인집단으로 흡수되게 되는 것이다.Ⅲ. 유랑예인집단의 발달사유랑예인집단은 마을과 장시, 시전, 조창 등 상업 발달 지역을 떠돌아 다니면서 순회 공연을 하며 살았다. 마을의 행사는 물론 궁중 행사, 도시인들의 수연과 혼인행사, 진사나 3일 유가 행사에 초청받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비록 사회정치적 위상이 신청인들과 함께 조선 정치 사회에서 극도의 소외 계층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도시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19세기에 독자적인 전문 예인집단으로 발전하면서 점차 지위가 향상되어 가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밑에서 민족 사회가 굴절된 채 전개되자 해체되어 갔다.유랑예인집단에 관련된 부분이 나오는 자료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아래의 표는 예인들의 연행에 대한 기록이다. 이러한 연행은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처럼 신라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예인들의 연행은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성현의 「관계뢰관극시」나 「선조실록」의 시대와 달리 조선 후기에 들어와 전문 예인들이 다양화되었거나 집단화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표에 나타난 예인집단만 하더라도 사당패, 초란이패, 풍각장이 각설이패, 광대패, 무당패, 초막산민이라는 풍물패, 나악이나 나산봉으로 불려진 산대놀이패, 꼭두각시패, 굿중패, 솟대쟁이패 등이 1920년대까지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약용의 지적처럼 “목민관은 이를 금하지 않고 때로는 관가의 뜰에까지 이들을 끌어들어 심지어 관가의 인식구들까지 발을 드리우는” 사태가 전개될 정도로 예인집단은 전 계층의 기반 위에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료로 알 수 있다.Ⅳ. 유랑예인집단의 종류유랑예인집단의 종류는 연행 종목이나 구성원에 따라 사당패, 초라니패, 솟대쟁이패, 걸립패, 중매구패, 광대패, 대광대패, 무동패, 얘기장사, 풍각장이패, 구음 장단으로, 장구를 맨 사당들은 ‘토르릉 토르릉 토르륵 다꿍 통다끙 통다꿍 통다꿍’ 등의 구음 장단을 기본으로 공연하고 있었다. 반주는 남사당들이 삼현육각 편성을 선호하고 있었다.3 솟대쟁이패동네 입구에 세워 놓은 솟대처럼 굵고 긴 장대를 세우고 쌍줄을 양쪽에 매달아 연행하는 떠돌이 예인집단을 솟대쟁이패라 한다. 그 장대 길이가 보통 10여 길이었다. 솟대쟁이패를 솟대패로 줄여 말하기도 하는데, 이들의 주 종목은 솟대놀이와 죽방울 놀이였다.조선 전기부터 솟대놀이는 신청 출신들의 외국 사신맞이 환영행사 등 국가적인 행사가 있는 유사시에 정부의 나례도감을 통하여 나타났던 것이고, 나례도감 소속의 재인들은 솟대놀이 이외의 산대놀이?꼭두극?줄타기 등 연희를 마친 후에 경향 각지를 떠돌면서 연행할 수 있었다.솟대쟁이패는 솟대타기(쌍줄백이)를 비롯하여 새미놀이?살판(땅재주)?풍물이 전문이었고, 이 밖에 버나(접시돌리기)?병신굿(탈놀음)?얼른(요술) 등을 공연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놀이가 모두 재담과 노래와 기악 반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쌍줄에서 노는 살판쇠나 멍석에서 노는 살판쇠는 매호씨(어릿광대)와 재담을 주고받았으며, 이들의 지시에 의해 꽹과리?징?장구?북?날라리로 연주하는 잽이(악사)들이 7채가락?덩덕궁이?자진가락 등으로 연주하였다. 솟대쟁이패는 솟대타기와 땅재주, 그리고 새미놀이 등이 주 종목이라는 점에서 남사당패의 공연 종목과 겹치고 있으며, 실제로 뛰어난 솟대쟁이패의 살판쇠는 남사당패로 스카웃 될 정도로 교류가 있었다. 솟대쟁이패와 남사당패가 서로 다른 점 중에 하나로 전자가 주로 낮에 공연하는 데 비하여 후자는 밤에 주로 공연한다는 점이다. 솟대쟁이패는 그 구성원이 농민 출신이나 신청 출신 등의 기층민중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조직은 남사당패와 비슷하였다.솟대쟁이패의 연행종목이 역사적으로 발전되지 않고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과 일본 곡마단에 의하였다. 1930년대 이후 남사당패와 합류하였다가 해체되어 갔다용되고 있는 악기 편성법, 곧 삼현육각 편성을 하고 여기에다 판소리와 지역에 따라 발전한 민요, 춤, 일종의 음악극으로 엮어지는 줄타기와 땅재주 등을 종합적으로 펼쳐 나갔다.광대패가 발생한 것은 ‘굿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경제적 궁핍과 정치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마을 수령과 서리들이 신청 조직원들에게 부과한 무세와 환곡 제도를 이용하여 탐학과 무단 지배를 자행하게 되자 ‘이를 감당할 수가 없어 직업을 잃고 떠도는 자가 열에 팔?구’가 된 데서 떠돌이 광대패가 나왔던 것이다. 18세기부터 19세기 내내 이들은 ‘죽기를 작정하고 다른 곳으로 회피’하고 있었지만, ‘종교에서 변모된 예술’을 가지고 기층민중들을 만나고 있었다.7 대광대패대광대패는 장대타기와 탈놀음을 주 종목으로 삼는 연희패이다. ‘대광대’라는 말은 이들이 긴 대나무 장대와 서낭당 각시 인형을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 “대광대 들어 왔소”라고 자처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백 척 장대처럼 보이는 긴 장대 위에서 연행하는 장대 놀이가 이미 조선 전기부터 주요 연행 장르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대광대패는 장대타기와 탈놀음만 하지는 않았다. 고깔 쓴 기악 연주가들의 연주와 무동놀이, 죽방울 받기, 춤 등 종합적이었다. 대광대패가 솟대쟁이패와 다른 점은, 솟대쟁이패가 솟대 장대에 매단 쌍줄을 이용하는 데 비하여 대광대패는 쌍줄 없이 대나무 끝 십자형에서 노는 것이어서 재료나 그 내용이 달랐다.신청 출신의 무부들을 광대라 부르는 것이 일반화된 이래, 광대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바꿔 썼다. 환칠한 얼굴이랄지, 또는 가면이나 가면연희자 등으로 전용한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대광대패가 반드시 신청 출신으로만 조직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광대패와 그 성격이 달랐다는 말이다. 한편, 떠돌이 대광대패가 경상도 여러 지역에 오늘날과 같은 5광대와 야유를 정착화 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대광대패 중 19세기 후반 경상도 초계군 밤마리에 일정 기간 동안 정착한 밤마리 대광대패가 그 영이었지만, 해금?꽹과리?퉁소?북?가야금?무동 등을 편의에 따라 편성하여 니나니 가락이나 시나위 또는 봉장취나 판소리 등을 연주하는 모습은 ‘그 소리가 심리 애절하여 듣는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돈을 던져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풍각장이패가 다루고 있는 시나위와 봉장취 또는 판소리 등이 원래 신청의 음?악이고 보면 풍각장이패가 이들 조직에서 이탈한 떠돌이 예인들이어서 그 질은 뛰어난 예인들인 경우도 있으나, 신청이나 광대패들보다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한편, 풍각장이패는 처음부터 신청 출신으로 조직된 패가 아니었다. 조선 초기에 그들은 백정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중 18세기의 경우는 그 활동이 대부분 신청 출신들이었으므로, 그 음악 수준도 조선 초기의 형태와 달리 수준급이었다.이러한 풍각장이패가 사라진 것은 일제하였다. 거지들조차 음악 예술인일 수 있었던 것은 봉건 음악 사회의 사회경제적인 억압 조건에서 비롯된 점 말고도 한국 기층민중인들의 ‘생활의 음악화-음악의 생활화’의 기반이 사회적으로 탄탄하였기 때문이다.11 남사당패남사당패는 연희 종목의 다양성과 질, 그리고 구성 인원 면에서 떠돌이 예인집단 중에서 광대패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기도 한 대표적인 예인집단이다.여자들로 구성된 사당패와 구별 짓기 위해서도 남자들로 구성된 남사당패는 35-50여 명의 구성원들이 풍물?버나(대접 돌리기)?살판(땅재주?어름(줄타기)?덧뵈기(탈놀이)?덜미(곡두각시놀음) 등 여섯 가지 대표적인 놀이를 가지고 농촌?어촌?조창?장시?도시 등을 떠돌며 연행하였다.남사당패가 1900년대 이전에는 결혼하지 않은 철저한 남색 조직이었기 때문에 삐리가 암동모(아내)가 되어 가열 이상의 숫동모(남편)와 부부로서 짝을 이루어 성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삐리들은 경우에 따라 뱃사람, 머슴, 떠돌이 장사꾼들에게 몸을 팔아 그 몸값을 받는 허우채의 수입원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당시 사회?윤리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있다.
2004학년도 2학기 이상심리학 레포트영화 를통해 본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학 번 :소 속 :이 름 :담당교수 :제 출 일 : 2004. 12. 17. 금▶ 목 차 ◀Ⅰ. 들어가면서Ⅱ. 영화‘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통해 본 강박장애 사례1 영화‘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줄거리2 영화‘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강박행동1) 정돈에 대한 집착2) 청결에 대한 집착3) 철저한 계획성4) 융통성 없는 사고5) 반복?확인행동과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Ⅲ. 강박장애의 진단기준과 임상적 특징1 강박장애의 진단기준2 강박장애의 임상적 특징1) 강박사고와 강박행동2) 강박장애의 하위유형3) 강박장애와 동반되는 장애Ⅳ. 강박장애의 원인론1 정신분석적 이론2 인지적 이론3 행동이론4 생물학적 이론Ⅴ. 강박장애의 치료법1 약물치료2 정신분석적 치료3 인지행동치료4 병원 입원치료Ⅵ. 맺음말◈ 참고문헌 ◈Ⅰ. 들어가면서불안은 생활 속에 흔히 경험하는 감정으로, 위협적인 상황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이다. 적절한 불안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경보로써 정상적인 현상이지만, 이것이 수시로 작동하여 부적절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나타나게 되면 병적인 불안이 된다. 이런 병적인 불안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이나 현실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불안장애이다.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는 이러한 불안장애의 하위유형으로, 심한 불안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강박사고와 불안을 중화하는데 기여하는 강박행동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장애이다.강박장애는 DSM-Ⅲ에서 불안장애의 한 유형으로 포함되기 이전에는 ‘강박신경증’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왔고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왔지만 그 실체가 제대로 알려진 것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강박장애는 매우 희귀하고, 고치기 어려운 병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지만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강박장애가 결코 드물거나 희귀한 장애가 아님확인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의 주의는 거의 자신과 자신의 규칙에 집중되어 있어서 타인의 관심사에는 무관심하고 타인의 말을 자르기 일쑤이며 주변 환경의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지금까지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통해 강박장애의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다음 항에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된 강박장애의 진단기준과 임상적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강박장애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위한 논의를 전개해 보기로 한다.Ⅲ. 강박장애의 진단기준과 임상적 특징1 강박장애의 진단기준강박장애는 지속적이고 통제가 불가능한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 차거나, 혹은 고통스럽고 일상생활의 기능을 방해하는 어떤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 장애를 말한다. DSM-Ⅳ에서는 강박장애를 불안장애의 한 하위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제시된 진단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강박사고 또는 강박행동◆ 강박사고는 ①, ②, ③, ④로 정의된다.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사고, 충동 또는 심상으로서 이러한 증상은 장애가 진행되는 어 느 시점에서 침투적이고 부적절한 것이라고 경험되며 심한 불안과 고통을 초래한다.② 사고, 충동, 심상은 실생활 문제를 단순히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③ 개인은 이러한 사고, 충동, 심상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려 하며 다른 생각이나 행동에 의해 완화시키려고 한다.④ 개인은 강박적인 사고, 충동, 심상이 개인 자신의 정신적 산물임을 인정한다.◆ 강박행동은 ①, ②로 정의된다.① 반복적인 행동(손씻기, 정돈하기, 확인하기) 또는 정신적인 활동(기도하기, 숫자 세기) 으로서 개인은 이러한 행동이 강박사고에 대한 반응으로서 또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것으로 느낀다.② 이러한 행동이나 정신적 활동은 고통을 예방하거나 감소시키고, 두려운 사건이나 상황 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나 정신적 활동이 완화하거나 방지하려 고 하는 것과 실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명백하게 지나친 것이다.2) 이 장애가 진행되는 목표는 수 시간, 심지어는 하루의 대부분을 소요하는 정교한 행동절차에 의해서만 달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갈색의 물건이면 무엇이든지 멀리하는 것 같은, 특정 대상을 회피하려는 행동, 숫자를 세거나 특정한 숫자를 중얼거리거나 부적 또는 신체의 특정부위를 만지는 것 같이 주술적 보호행위를 반복하는 것, 그리고 이미 끝마친 행위가 진짜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7~8번 되돌아가서 체크해 보는 것, 즉 전등불을 끄거나 장금장치 및 수도꼭지가 잠겨졌는지, 창문이나 대문이 잠겼는지, 금고가 손님용 테이블보 밑으로 멀리 떨어져서 감추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행동이 여기에 포함된다.강박행동에 대한 임상적 정의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와는 다소 다르다. 우리는 강박적 노름꾼, 강박적으로 계속 먹기만 하는 사람, 그리고 강박적 음주자로 기술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노름하고, 먹고, 마시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임상적으로는 이런 행동이 강박행동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을 하는 가운데 종종 쾌락이 느껴지며, 그런 행동이 자아이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강박행동은 환자에게는 자신의 성격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면, Stern & Cobb(1978)은 조사된 강박장애자들 중 78%가 자신의 의식적 행동을 멈추긴 불가능해도 ‘다소 어리석은’ 또는 ‘불합리한’ 짓으로 여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강박장애로 인해 흔히 발생하는 결과는 다른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환자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10초마다 손을 씻어야 되거나, 지나치는 문마다 그 문고리를 매번 만지지 않을 수 없거나, 목욕탕 바닥 위에 있는 타일을 전부 세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배우자, 자식, 친구 또는 동료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하거나 심지어는 불쾌감을 가져다 주기 쉽다. 이와 같이 주변의 중요한 인물들이 경험하는 적대적 감정에는 죄책감이 깃들기 쉽다. 왜냐하면, 어떤 수준에선가 이들은 강박장애자가 각 5%정도로 보고 되었다.)강박사고와 강박적 의식(ritual)은 다른 장애에서도 발견되는데 몇몇 장애들이 특정한 공통증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강박장애와 연관된 또는 강박장애 범주의 장애란 개념이 나오기도 하였다. 강박장애와 연관된 장애들은 외모(신체변형장애), 신체감각(이인증), 체중(신경성 식욕부진증) 및 신체질환(건강염려증)에 대한 강박적 사고?집착이나 또는 틱(뚜렛장애), 발모증, 성적 강박행동, 병적도박이나 충동장애와 같은 행동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 이들 장애들은 증상뿐만 아니라 치료에 대한 반응, 병발 질환, 가족력, 성별, 병이 시작된 나이, 경과, 병전 성격 특성과 원인 등에 유사성이 있다.Ⅳ. 강박장애의 원인론강박 증상에 관한 정신의학적 관심은 주지한 바 있듯이 1838년 Esquirol이 처음으로 강박적 의심을 기술하고 1861년 Morel이 강박적 사고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이후 Werstphal은 1878년 강박적 사고를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는 억제할 수 없는 지속적인 사고로 정의하였으며, 1895년 Magnan은 강박적 사고를 어떤 단어, 사고, 영상이 저항할 수 없는 괴로운 불안과 더불어 무의식적으로 마음에 떠오르는 대뇌활동의 한 유형으로 기술했다. 1895년 Freud는 강박증상이 항문기의 정상적 성장과 발달의 장애로 인하여 생긴다고 설명하였으며, 1903년 Janet는 신경쇠약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정신적 에너지의 감소가 사고와 행동을 조절하는 고도의 정신작용인 의지와 주의의 장애를 초래하여 강박증상이 생긴다고 하였다. 여기서 강박장애의 원인에 대하여 처음으로 합리적 설명을 한 것은 Freud와 Janet이며 현재 강박장애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에는 생물학적 이론, 인지행동 이론, 정신분석적 이론, 학습이론 등이 있다. 장애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장애의 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치료와 예방에 대한 직?간접적인 열쇠가 된다.1 정신분석적 이론정신분석적 입장에서는 특정한 방어기제를 통해 무각으로 인한 결과를 두려워하게 된다. 위험성을 중화시키기 위한 시도로는 명백한 강박행동이나 강박적 사고 혹은 물건을 제자리에 두거나 사고를 억압하거나 위안을 찾으려는 행동을 보인다. 인지 평가 모델에서 Rachman은 강박장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해에 대한 책임감을 떠맡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많은 연구에서 책임감과 강박장애 증세 사이에는 유의한 상관관계가 보고 되었으며 책임감을 조절하면 증상을 일시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하였다.3 행동이론행동이론의 입장에서는 이 장애를, 학습된 행동으로서 그 행동의 결과에 의해 강화된 것으로 본다. 강박행동의 한 가지 결과는 불안 감소이다. 예를 들면, 강박적 손 씻기는 오물이나 세균에 의해 감염된다는 강박적 선입견을 감소시키는 조작적 회피반응으로 간주된다. 마찬가지로,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행위는 이런 확인행동의 의식이 끝마쳐지지 않았을 때 환자에게 예상되는 재난에 대한 불안을 감소시켜 줄 수 있다. 자기 보고식 검사를 이용해서 측정한 불안과 정신생리학적 반응에 반영된 불안은 이런 강박적 행동에 의해 사실상 감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의하면, 모든 강박적 행위가 불안을 똑같이 감소시켜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Rachman&Hodgson은 청결을 지향하는 강박행동을 나타내는 환자들이, 확인하는 강박행동을 나타내는 환자들보다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경우가 더욱 많다고 보고했다. 더욱이, 불안의 감소는 강박관념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강박장애의 강박관념은 정상인들이 공포영화 같은 스트레스 자극에 대해 갖는 다소 이와 유사한 불가항력적 사고와 꼭 마찬가지로, 당사자를 불안하게 만든다.4 생물학적 이론생물학적 입장에서는 뇌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기능이상이 강박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강박장애 환자들이 융통성 없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고 이러한 행동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전두엽의 기능손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일부 연구에서 전두엽의 기능손상과 강박증상 간에이다.
국악분석1레포트한국음악의 분류들어가면서한국음악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승되면서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되었다. 본 레포트에서는 이 중 이훈구, “序”,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 장사훈의 『최신 국악총론』), 장사훈, 한만영의 『국악개론』), 김해숙, 백대웅, 최태현의 『전통음악개론』) 등 4권의 책에 실린 한국음악의 분류를 바탕으로 한국음악 분류법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를 비교 및 분석하여 가장 적당한 분류방법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본문1 이훈구, “序”, 정노식, 『조선창극사』1. 궁정악(아악)(1) 제악 : 종묘악, 대성전악, 사직악, 천제악, 군제악 등(2) 연악 : 무극악, 무도악(3) 군악 : 개선곡, 거동곡 등2. 민중악(1) 기악 : 영산회상곡(2) 성악 : 노래(가사, 가곡), 소리(창극조), 민요(남도, 경기, 서도, 기타가요)이 분류법은 수용공간 또는 수용자를 기준으로 최상위 분류를 궁정악(아악)과 민중악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궁정악은 기능을 기준으로, 민중악의 경우는 연주형태를 기준으로 각각의 하위분류를 하는 등 분류기준이 서로 대칭적이지 않아 기준의 통일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성악은 다시 노래?소리?민요 등의 항목으로 세분화시키는데, 소리(창극조)를 노래와 따로 분리시켜 분류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민요는 남도?경기?서도가요로 분류된 것으로 보아 전문소리꾼이 부르던 창민요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인지 이 분류법에는 비전문소리꾼들이 부르던 민요와 풍물은 분류에서 빠져 있다.이 뿐만 아니라 민간의 삼현육각, 무의식음악(굿음악), 불교음악 등도 분류에서 제외되어 있다.초기의 분류법이어서 명확한 분류 기준도 없을 뿐더러 많은 음악들을 포함해야 할 카테고리가 다양하지 않아, 많은 음악들이 분류에서 제외되어 있다.본문2 장사훈, 『최신 국악총론』1. 아악(1) 다스름(2) 관현합주 : 향피리 중심음악 거문고 중심음악 기타 (3) 관악합주 : 향피리중심음악 당피리중심음악 (4) 취타 : 대취타취타 2. 의식음악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경모궁제례악, 범패, 무악3. 가악가곡, 가사, 시조4. 민속악판소리, 시나위와 산조, 잡가, 민요, 농악이 분류법은 최상위 분류를 아악?의식음악?가악?민속악으로 분류하였다.이는 다시 말해 1은 궁중과 중인의 기악, 2는 의식음악, 3은 궁중과 중인의 성악, 4는 서민의 민속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의식음악인 2를 제외하고 보면, 1+3=>아악(궁중과 중인의 기악과 성악), 그리고 서민층이 수용자이던 음악들을 모두 한 데 모아서 분류한 4=>민속악 등으로 2분하여 볼 수도 있다.이 분류법은 분류의 기준이 명확하게 하나로 정해져있지 않고, 수용대상(궁중, 중인, 서민 등), 수용공간, 기능(의식음악, 가악, 민속악 등), 연주형태(관현합주, 관악합주 등) 등의 관계가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어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의식을 기준으로 하여 분류하였을 때, ‘아악’을 최상위 분류로 삼기 위해서는 그에 대칭이 되는 당악, 향악 등으로 분류해야 함이 마땅하나 그렇지 않고, 당악, 향악에 속하는 음악들은 또 다른 기준의 하위분류에 의해 각각 다른 곳에 나뉘어져 속해 있는 것이다.)이러한 분류법은 이후 20c후반에 등장하는 ‘정악과 민속악’의 분류법의 시초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현재 가장 흔히 쓰이는 분류법이나, 그 기준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오해의 소지가 많다.본문3 장사훈, 한만영, 『국악개론』1. 아악(1) 제례악 : 문묘악, 종묘악, 경모궁악(2) 관현합주a. 향피리가 중심이 되는 음악 : 평조회상, 여민락b.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음악(줄풍류) : 현악영산회상,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 리 등(3) 관악a. 당피리 중심의 음악 : 보허자, 낙양춘, 만, 본령, 해령b. 향피리 중심의 음악 : 삼현육각, 대풍류, 관악영산회상, 정읍, 동동, 자진한입 등c. 취타 : 대취타,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4) 가악 : 가곡, 가사, 시조2. 범패3. 무악4. 산조5. 판소리6. 잡가 : 12잡가, 휘모리잡가, 서도잡가, 산타령, 가야금병창7. 민요8. 농악이 책에서는 ‘아악?당악?향악’, ‘정악?민속악’ 등의 2가지 분류법에 대해 우선 간략히 소개한 뒤, 이 분류법들이 오늘날의 분류법으로 왜 부적당한지, 그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용도, 악기의 편성법, 효능 등을 감안하여 ‘쟝르별 분류법’이라는 새로운 분류법을 소개하고 있다.이 분류법은 최상위 분류를 아악?범패?무악?산조?판소리?잡가?민요?농악 등의 8가지로 하고, 아악을 다시 제례악?관현합주?관악?가악 등의 하위항목으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아악’이란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어서 종래의 좁은 의미의 아악과 정악을 모두 포함시킨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우선, 이 분류법은 최상위 분류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분류 가지 수가 너무 많아서 전체를 큰 덩어리로 잡아 한 눈에 파악하기가 힘들다.아악은 제례악?관현합주?관악?가악 등으로 다시 세분화 하는데, 이렇게 분류되는 명확한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어떤 상위그룹을 하위항목으로 세분화 할 때에는 그 기준이 명확하여 하위항목끼리는 서로 대칭이 되어야 하는데, 아악이란 음악을 4가지 하위항목으로 분류하는 것을 예로 들어보면, 음악의 용도를 기준으로 제례악을 따로 분류하고, 나머지 3가지 항목은 악기편성을 기준으로 또한 따로 분류하고 있다. 한 가지 상위그룹을 세분화 하는 데에 여러 가지 기준이 섞여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법은 통일성과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많다.또한 이 분류법을 좀 더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이전에 많이 사용되던 ‘계층’에 의한 분류법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다시 말해, 이전의 분류법에서는 ‘궁중과 서민층’이라는 계층에 의한 2분법적 분류가 흔히 사용되었으나, 이 분류법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표면적으로 눈에 띄지는 않는다.그러나 이것 역시 최상위 분류인 아악을 궁중이나 지식계급 사이에서 즐기던 음악으로 본다면, 나머지 2(범패)~8(농악)을 서민층의 음악으로 한 데 묶어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왜 아악은 크게 하나로 묶어 분류하면서 서민층의 음악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의문도 또한 생길 것이다.본문4 김해숙외, 『전통음악개론』1. 가?무?악 종합예술형태 :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 굿음악, 범패2. 기악연주형태 : 여민락, 수제천?동동, 보허자?보허사, 낙양춘, 영산회상, 자진한잎?청성자 진한잎, 취타, 대풍류, 산조, 시나위, 풍물놀이?사물놀이3. 성악연행형태 : 민요 잡가, 가곡?가사?시조, 판소리, 단가와 창극, 가야금 병창이 책의 분류법은 연주형태를 기준으로, 가?무?악 종합예술형태?기악연주형태?성악연행형태 등의 3가지로 크게 분류하였다.이 분류법은 오로지 연주형태에만 의존한 분류법이기 때문에, 계층이나 악기의 용도 및 편성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다.또한 각 3가지의 하위분류가 더 세분화되지 않고 그대로 여러 음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포괄적인 분류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악기의 용도나 편성, 또는 계층에 따라 조금 더 세분화 시키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기악연주형태에 따른 분류는 관악, 현악, 관현합주, 독주곡, 기타 등의 하위 개념으로 분류하면 전체 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게 세분화 할 수 있다. 또는 각 3가지 분류를 계층에 따라 각각 궁중음악, 서민층 음악 등으로 세분화 하여 나누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이 분류법에서 의문스러운 점은 창극의 분류인데, 여기에서는 창극을 성악의 형태로 분류해 놓았지만, 창극을 노래와 음악과 춤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적인 예술로써 볼 때, 가?무?악의 종합예술형태로 분류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맺음말지금까지 네 권에 실린 한국음악의 분류법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듯이, 각 책의 저자마다 그 분류법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한 가장 큰 이유는 분류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상위개념을 여러 가지 하위개념으로 분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분류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하위개념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대칭적인 구조를 이루고, 전체적으로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