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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북한 권력의 부자 세습
    (조선 역사)북한권력의 부자세습-후계자 김정일에 관한 연구인문사회학부편 도 진※ 참고문헌Ⅰ. 머 리 말1. 논문의 목적과 범위북한은 1950년대 후반까지 비교적 집단적 지도체제를 거쳐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전쟁을 이용하여 김일성 자신의 권력에 도전한 허가이등의 소련파, 박헌영, 이승엽등의 남로당계열, 최창익등의 연안파등을 숙청하고 자신의 항일무장 투쟁의 동지들인 빨치산들을 중심으로 김일성 단일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대두된 후계체제 논의 때부터 김정일은 권력의 핵심부에 이미 진입하였으며 1973년 당 조직 비서와 선전 선동비서를 겸직하면서 김일성의 절대적인 후원 아래 후계체제를 견고히 구축해 나아간다.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 구 소련과 동구권의 연이은 붕괴를 보며 북한 체제의 붕괴와 변화 가능성이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북한은 변화하기 보다 강성대국론, 선군정치, 우리 식 사회주의 등을 통하여 대내 외적인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고 있으며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한지 4년만에 당 총 비서직을 승계하였고 1998년에는 헌법을 개정하여 주석 직을 폐지하고 조선인민군 사령관과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북한을 통치 하고 있다.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김정일은 정권을 승계하기 위하여 30년을 준비해 왔으며 현재는 당 총 비서직과 국방위원장이라는 자격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김정일의 성장배경과 권력을 승계하기까지에 과정의 특성을 살펴봄 으로써 부자간의 권력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행위가 가능한 북한의 권력구도와 인간 김정일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며 또한 범위라고 하겠다.제일 먼저 부자간의 권력세습을 정당화하는 북한의 세가지에 이론들을 알아보겠고 김정일의 유년시절 등의 성장 배경을 통하여 인간 김정일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또한 김정일이 후계자로써 어떻게 김일성에게 인정 받도록 노력했는지 의 과정과 권력을 승계 받기까지의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권력승계를 합리화하는 이론들국제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계승해 나가야 완수될 수 있는 역사적 위업”이라는 논리이다.북한은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은 본질적으로 수령의 위업이며 그것은 한 세대에 끝날 수 없는 장기적이고 어려운 사업이라고 규정하여 혁명의 계속성을 수령과 후계자를 잇는 직결 고리로 삼아 후계자 문제를 도출해 내고 있다.북한은 그들이 수행하는 낡은 사회적 유물을 없애기 위한 투쟁으로서의 혁명의 위업을 ‘3대 혁명’(자연개조 , 사회개조, 인간개조)등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3대 혁명’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총 노선”으로 정식화된 데 이어 오늘날에는 “주체의 혁명의 위업을 완성할 때까지 튼튼하게 틀어쥐고 나가야 할 위대한 혁명적 지도”로 까지 발전, 영구 혁명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를 달성하기 위한 후계자 문제 거론은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2.수령 이론“수령 이론”은 특정개인, 즉 수령의 역할을 절대시하는 일종의 영웅관인 “수령 결정론”을 그 원리로 삼고 있으며 수령은 근로계급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하기 위한 혁명역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령은 역사의 주체혁명과업의 창시자로서 혁명의 유일한 최고 영수이며 그의 혁명 사상은 모든 인식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이고 사상의 지배적 기본 원천으로 규정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김일성 이외에 누구도 수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북한에서 본격적으로 김일성을 수령으로 지칭한 것은 1971년부터인데 이 때부터 북한의 각종 선전 매체에서는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수령론은 역사 발전에서 인민의 역할을 보다 중요시하는 역사적 유물론과는 달리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은 수령에 의하여 개척되고 승리의 길을 걷게 되며 수령의 영도 밑에서만 완성된다.”는 것으로서 이른바 수령 결정론을 핵심적 내용으로 보고 있다.즉, ‘수령은 당과 혁명의 탁월한 영도자’로서 1.혁명사상과 혁명이론을 창시하고 혁명승리의 전망을 제시하며 2.인민대중을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고 이들을 조직화 하며 생명체의 중추)의 영도 밑에서 수령(사회 정치적 생명체의 뇌수)을 중신으로 결속됨으로써 영생하는 자주적인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사회 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김정일은 사회 정치적 생명체론 에서 수령을 “사회 정치적 생명체의 최고 뇌수, 생명의 중심으로서 중심인 동시에 자주적인 연구와 이해 관계를 분석 종합하여 하나의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 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다.수령은 이와 같이 결정적 역할이 바로 후계자론 을 제시하게 된 이론적 바탕이 된다. 즉 수령에 의해 창시되고 발전된 노동계급 혁명위업은 수령의 대에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수령의 역할을 이어받아 대를 이어 혁명위업을 완성할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그래서 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이 개척한 ‘김일성 사상’,‘혁명위업’ 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김일성을 미화시키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당연하다는 듯이 합리화시키고 있다.3.후계자 이론지금까지 살펴본 수령 이론이나 혁명 계승 적 이론은 김일성의 절대 권위를 영속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면 후계자 이론은 앞으로의 “새 세대 지도자”,즉 김정일의 권력 세습을 합리화 또는 정당화 시켜주기 위한 기본 이론이라 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후계자 문제를 역사적 경험과 결부시켜 공산주의 혁명위업의 운명과 관계되는 근본 문제로 보고 있다.북한에서 후계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수령의 후계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북한에서의 후계자 문제는 수령의 영도적 지휘와 역할을 승계하는 것을 의미하며후계자는 수령의 역할과 지위를 계승하여 그의 뒤를 이어나갈 지도자로서 미래의 수령을 뜻한다.이에 대해 김일성은 1986년 5월에 발표한 논문 ‘조선 로동당건설의 력사적 경험’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로동계급의 당건설에서 후계자문제는 정치적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계승하는 문제입니다. 수령의 영도적 지위와 역할은 그 후계자에 의해 변함 없이 계승되어야 합니다.’ 이러한의 위업에 끊임없이 충직한 후계자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 로동계급의 혁명위업 완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혁명과 건설을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 후계자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야심가, 음모가 들이 나타날 수 있고 권력 쟁탈전과 같은 혼란이 조성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김일성 사상에 충직하고 올바른 후계자의 선택과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이 이론에서는 후계자 역시 수령과 마찬가지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오직 수령에 의해 선택되고 육성되며, 일정한 여건을 갖춘 자 만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후계자의 필수 요건으로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 새로운 세대에 후계자, 그리고 후계자의 역사적 준비기간의 세가지를 들고 있다.북한은 이상과 같은 논리를 근거로 김정일을 ‘주체 위업의 유일한 후계자로 공식화하였고, 이것은 그가 김일성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후계자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탁월한 영도력, 그리고 숭고한 풍모와 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선전하여 김일성이 죽은 후에도 영향력을 지속하고 있다.그렇다면 사회주의 국가 체제에서도 전대미문의 사건인 권력의 부자세습을 김일성은 국내외에서 쏟아질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시행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는 다음의 세가지로 볼 수 있는데첫째, 중국과 소련의 경우 지도자가 물러난 이후 나타난 격하운동을 북한에서는 미연에 방지해 보자는 의도이다. 즉 모택동이나 스탈린 이후 나타나는 격하운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일성은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동지들 보다는 혈육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선택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둘째, 정치적 혼란과 승계위기를 방지하자는 의도이다. 즉, 김일성은 자신의 사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정치적 혼란과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주체사상에 의해서 획일적으로 통제되고 조직화된 북한의 정치권력을 존속시키기 위한 바램을 지녔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김일성은 승계의 제도적 조정기구와 구조적 절차를 마련하기보다는 김정일을 후계자로정1.김정일의 성장배경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 소련의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서 태어 났으며 그의 소련 명은 유라였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민족의 지도자인데 소련의 영토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마땅치 않았는지 김정일의 출생지가 항일무장투쟁의 밀영지인 원시림이 우거진 백두산 깊은 산골 그것도 조선 쪽으로 양강도 삼지연 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 웃기지만 김일성과 김정숙의 당시 사정과 문헌들 그리고 사진들을 참고 할 때김정일이 때어난 땅은 틀림없이 소련 땅이다. 이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실들을 꾸며대는 북한의 태도는 잘못됐으며 김정일이 태어난 땅이 어디냐? 의 문제보다 항일 무장투사들에 부모를 가진 것에 더욱 더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한국전쟁은 그가 8세 때 일어났는데 전쟁 중에는 다른 빨치산들의 아이들과 만주의 혁명학원에 누이인 김경희와 다녔다고 한다.한국전쟁 후 김정일은 평양에 돌아와서 평양 제4 인민학교부터 남산 고급중학교 까지 일반 대중의 자녀들이 받는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국가주석의 아들로서 무난하 게 마쳤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마르크스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 등을 읽고 그것을강론했다는 등 다소 작위적이고 허풍스러운 형식으로 김정일의 비범함을 나타낸 글도 있다.김정일은 1960년 비록 부친의 이름을 딴 대학이지만 북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김일성 종합 대학에 입학하여 1964년에 졸업한다. 국가주석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외국유학을 다녀 올 수 있었을 텐데 민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김일성 대학에 입학했다며 북한에서는 이런 김정일을 민족의식이 강한 지도자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그는 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이 현지 지도를 나갈 때 따라다니며 인민대중의 생활상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생산실습으로 현장노동도하고정치생활도 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곧 당에 들어가는데 군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이런 김정일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북한의 정치풍토에 적응하게 되었고 자신의 부친이 이루고 아들
    사회과학| 2002.06.05| 12페이지| 2,000원| 조회(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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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루너의 발견학습과 현대 음악교육에의 적용(우주홀 회의)
    20세기 음악교육 연구 동향- 체험적 음악교육의 성과에 대한 기대목 차Ⅰ. 우즈홀 회의와 발견학습ⅰ) 브루너의 발견학습 등장 배경ⅱ) 발견 학습의 의미ⅲ) 발견학습의 교육적 특징과 장점ⅳ) 발견학습의 문제점과 한계Ⅴ) 발견학습의 적용Ⅱ. 발견학습의 응용ⅰ) 우리나라 음악교육과 발견학습ⅱ) 발견적 음악 학습의 발전 기대Ⅲ. 결 론Ⅰ. 우즈홀 회의와 발견학습ⅰ) 브루너의 발견학습 등장 배경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Squtnik호 가 소련에서 발사 되자 모든 미국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쟁국에 대한 자존심문제는 차지하고서라도 기초과학 교육을 서둘러 강화하지 않으면 소련에 과학기술이 뒤쳐져 우주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대륙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1959년 우주홀(Woods Hole)에서 학자들과 교육자들이 학생들의 과학교육을강화하기 위한 열흘간으 기간동안 회의를 하였다고 한다.위의 내용이 바로 우주홀 회의이다. 이 회의를 통하여 교육의 내용은 지식 구조로 되어야 한다는 브루너의 발견학습법이 새롭게 정립되었다.ⅱ) 발견 학습의 의미위의 내용을 통하여 브루너의 발견학습이 출현하게 된 사회적 배경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발견학습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학습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목적에 대하여잠시 살펴보도록 하자.발견의 의미는 학생들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여 결과로 얻어진 지식과 자료의 증거들을 이용 새로운 결과를 얻어내는 행위이며 브루너의 발견학습은 이와 동일한 행위로서 기본교재의 학습을 통하여 얻어진 사고와 탐구를 통하여 학문의 발견이라는 결과물을 얻게되는 학습방법이다.이는 지식습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이전까지 강의와 암기식 교육에 큰 변화를 준 학습법이었다.다음은 발견학습의 목적을 통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첫 번째 어떠한 개념의 일반화를 가르치기 위하여서이다.흔히들 에디슨이 1+1=2가 아니라 1+1=1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암기식 교육에서 이루어 질수 있는 문제점으로 왜 1+1이 1이 아닌 2인지를 학생스스로가 탐구하여 일반화함으로써 수학공식에 대한 이해를 보다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로 탐구과정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어떤 사물에 대하여 외우는 것 보다 정확한 학습법은 직접적 체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지식이다.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지식의 습득은 반드시 탐구과정을 거쳐 학생스스로가 발견해야 하는 만큼 발견학습을 통한 탐구과정 학습은 바람직하다고 볼수 있다.세 번째로 과학에 대한 본성에 대하여 학습하기 위해서이다.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던 것에 대한 그리고 있던 것에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과정인 만큼 과학적인 학습태도 습득을 위해서는 발견학습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ⅲ) 발견학습의 교육적 특징과 장점발견학습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뜻처럼 브루너의 발견학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학습자의 능동적인 참여로 인하여 체험으로 얻는 지식이다.이전까지 교육의 지식 전달체계는 단순히 교육자로부터 학습자로의 지식 전달이 주된 흐름이었지만 발견학습에서의 학습자의 역할과 교육자의 역할은 많은 변화를 가진다. 이러한 부분들이 어떠한 교육적인 특징을 통하여 어떠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먼저 특징을 살펴보자면 첫 번째로 교제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정해져있는 한부분에 국한된 교제로의 학습만이 가능했던 이전과는 달리 주변의 다양한 도구들과 교육내용을 담고 있는 다양한 교제를 활용할 수 있다. 라는 점인데 어떠한 체험적인 지식을 발견하기 위하여 모든 도구를 사용 그리고 다양한 교제사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이 될수 있겠다.두 번째로는 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 학습의 효과가 높다는 것인데 자전거 타기를 예로 들자면 자전거 타는 법을 설명듣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 끝에 얻어지는 지식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물론 자전거 타는 것과 발견 학습은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발견학습의 체험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것 이므로 크게 무리가 있는 예시는 아닌 것 같다.자전거 타기의 예를 통해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체험적인 지식은 전달받은 지식보다 보다 작접 적이고 사실적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기억의 잔존성과 전이에 있어서 학습적인 효과가 높다고 하겠다.마지막으로 논리력을 증진 시킬 수 있다는 점인데 발견을 하기 위해서는 탐구 과정이 필요하고 탐구 과정을 위해서는 논리적인 탐구계획이 필수적이다.바로 이러한 점이 발견학습 과 논리력 증진의 밀접한 관련성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ⅳ) 발견학습의 문제점과 한계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발견학습은 교육적인 효과가 높은 교육법이라 말할 수 있겠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여러 문제점과 교육적인 한계도 가지고 있는데 다음을 통하여 알아보도록 하자.먼저 교육시간이 많이 걸리고 내용이 제한된다는 점이다.일단 탐구과정을 통하여 학습하려 할 때에는 학습시작 전부터 체계적인 계획과 구조화 작업 그리고 많은 탐구 도구들을 준비하여야 하는데 교육시간보다 준비시간이 길어져 자칫 교육시간의 집중력 저하와 전체교육시간이 줄어드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사전적인 내용전달이 아니기 때문에 탐구에 국한된 정보만을 지식으로 습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져 학습능률저하와 지식의 폭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두 번째로는 발견의 오판이다.모든 탐구 과정과 발견학습은 준비과정이 중요한데 준비과정에서의 실수가 탐구의 잘못된결과를 산출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학습자들의 연령대를 생각 했을 때 교육준비물과 교육계획이 많아지고 길어 질 수록 실수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라는 가정이 가능하고 바로 이러한 부분은 탐구적인 발견 행위가 잘못된 결과의 학습적인 습득으로 교육적인 효과가 반감되는 사항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세 번째로는 강의식의 이전 학습과는 달리 학습의 전달이 불확실하다는 점인데 기존의 강의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제공되는 반면 발견학습은 오히려 학생들 간의 교육성과의 불균형을 초래 할 수 있다는 점이다.특히나 중요한 점은 탐구 학습의 올바른 결과는 모든 학생들에게서 이루어 진다기 보다는몇몇 우수하고 학습동기가 높은 일부 학생들에게서 올바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브루너의 발견학습은 이전의 주된 교육법이었던 강의식 교육보다 효과적인 장점들도 많지만 무시해서는 안 될 만큼의 단점들과 교육의 결과에 있어서의 한계도 있었다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Ⅴ) 발견학습의 적용발견학습의 적용에 있어서의 유의할 부분과 학습적인 조력자로서의 기존 학습법과 많은 변화를 하는 발견학습에서의 교육자 역할을 살펴봄으로서 발견학습의 올바른 적용을 모색해보기로 한다.먼저 발견학습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학습 시 유의해야 할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첫 번째로 발견학습시의 체계적인 학습계획과 단계별 진행을 통한 최선의 결과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그마한 실수로도 잘못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럴 경우 학습적인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부분을 명심하도록 해야한다.두 번째로는 기존 강의수업 시간보다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유의하고 시간의 적절한 분배와 실 교육시간의 충분한 확보 그리고 동일한 결과가 얻어 질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학습에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세 번째는 지시에 따른 학생들의 움직임이 아닌 최소한의 설명으로 학습자들이 능동적인 탐구에 임할 수 있도록 능동적인 학생들 태도를 이끄는데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위의 유의점을 학습 시 잘 참고하여야 학습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실수를 줄이고 최상의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하겠다.또한 이러한 유의할 사항보다 더욱 더 중요한 부분은 교육을 주도하고 조력하는 교육자들의 역할이다.기존의 직접적인 지식전달에서 많은 부분이 변화 했듯이 교육자들의 역할 또한 변화하였음을 살펴보도록 하자.우선 질문문답 과정에서의 교육법이 변하여야 하는데 기존 강의식 교육에서의 질문은 바로 답을 해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으나 발견교육서는 바로 답을 해주기보다는 탐구의 방법과과정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야하겠다. 질문은 발견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인 만큼 학습자 스스로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다음은 용어의 사용이다. 발견교육의 한계점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몇몇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학습의 동기가 강한 학생들만 탐구의 올바른 결과를 발견 한다 가정했을 때 교사는 모든 학생들이 이해 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어휘를 통하여 지도를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탐구의 과정과 올바른 결과를 유도할 수 있는 적절한 자료 제시와 활용방법을 교육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탐구 능률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위에서 살펴본 발견 학습의 유의할 점과 교육자의 역할은 탐구 학습의 유용함의 근간을 좌우 할 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Ⅱ. 발견학습의 응용ⅰ) 우리나라 음악교육과 발견학습앞에서 우주홀 회의와 그로인하여 정립된 브루너의 발견학습의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았다 면 지금부터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발견학습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우리나라에는 초 중 고등학교 가 편제되어있는 공교육 기간 동안 음악 교육을 받고 있으며교육기간동안 기초적이고 실용적인 음악적인 지식을 교육받고 있다.과거강의식의 음악 교육은 음악이라는 학문의 즐거움을 즐기고 전달하기보다는 주로 학문적인 측면에서 지식을 전달받고 암기한 다음 성적을 올리기 위한 시험과목의 한 부분이 되어 왔으며 더군다나 입시에서 음악교육이 소외 되면서 일종의 액서사리 같은 교양과목의 신분이 되어왔음이 오늘날 우리나라 음악교육의 현주소이다.강의식의 교육자 중심의 일방적인 강의에서 미국의 발견식 학습으로 교육의 방향이 흘러가고 있는 부분 또한 오늘날 우리 교육의 모습인데 과거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청각교재의 활용 그리고 발표 , 토론수업등 학습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현 교육 추세를 보았을 때 이러한 판단이 가능하다. 이러한 발견 학습적 요소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음악 교육을 과거보다 능동적으로 그리고 학습자들이 음악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참여 하는 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교육학| 2008.01.06| 7페이지| 2,000원| 조회(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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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문] 북한의 한자폐지와 한글전용 평가C아쉬워요
    4.북한의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북한은 1949년 이후 한자의 사용을 폐지하고 한글만을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문을 포함한 모든 출판물을 비롯하여 국가공문서까지 한자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면서도 김일성은 1966년 교시를 통해서 한자의 교육을 강조하기도 하였고 그 결과 대학교 과정까지 총 3000여자의 기본 한자를 익히도록 되어있다. 한자가 교육되면서도 사용되지 않는 기형적인 북한의 한글전용정책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북한에서는 이조시대에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결과로 중국식 한자말이 범람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제시대 때에는 일본의 민족 어 말살정책에 의하여 일본식 한자어와 일본어가 많이 침투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김일성은 남한의 표준어 정책에 대하여 신랄하게 혹평을 했는데 문제는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에 있다고 하여 "남조선 신문 같은 것을 보면 영어나 일본말을 섞어 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한자말은 중국 사람들까지도 쓰지 않는 것을 망탕 쓰고 있다. 사실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에서 한자말과 일본말, 영어를 빼버리면 우리말은 (을,를)과 같은 토만 남는 형편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한의 표준어에는 우리말의 민족적인 특성이 점차 없어져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이러한 김일성의 생각 때문일까? 북한은 1949년부터 한자를 전면 폐지하고 교과서는 물론이고 신문 잡지 등등 공공 출판물에서는 한자사용을 금지하도록 하였는데 '사회과학원 언어학 연구소'(1970년)는 한자 사용의 폐지는 조선말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것으로 사대주의, 부르주아 요소를 없애버린 위대한 업적이고, 김일성의 혁명 사상과 그 전개력의 위대한 열매이며, 조선말 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를 개척한 큰 사건이라고 극찬하였다.그러나 역설적으로 1949년 한자사용이 전면적으로 폐지된 후 10년이 지난 1959년 북한의 고급중학교(당시 우리의 중학교2학년~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의 한문 교과서가 편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자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1964년 교시 끝 부분을 보면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조선말을 잘못 쓰는 것으로 보아 학교들에서 조선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이러한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북한의 언어정책과 교육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자어와 한자 문제를 소홀히 여긴 결과라고 생각된다.1966년 교시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데 대하여'에서도 1964년 교시에 이어 학생들의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우리는 한자말을 되도록 쓰지 않도록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필요한 한자는 대주고 그것을 쓰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남조선 출판물과 지난날의 문헌에 한자가 적지 않게 있는 것만큼 사람들이 그것을 읽을 수 있게 하려면 한자를 어느 정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우리가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쳐 준다고 하여 어떤 형식으로든지 교과서에 한자를 넣어서는 안됩니다. 교과서들에 한자를 넣으면 남조선 모양으로 됩니다.- '김일성의 1966년 교시' 중에서-북한에서는 1949년 한자의 전면 폐지이후 20년 이상이나 한글 전용을 해왔다. 이러한 정책들은 러시아나 중국의 언어와 섞이지 않고 우리말의 고유한 특성과 전통을 지켜내 왔다는 측면에서는 외래어가 남발하는 우리 남한의 표준어를 비교하여 볼 때 매우 훌륭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자를 전혀 쓰지 않고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북한의 정책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은 바로 북한의 일반 대중들의 국어 어휘에 대한 이해 능력 저하로 나타났다.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북한의 국어학자들은 북한의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1968년부터 한자 교육이 본격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지금은 약 3000자 정도의 한자를 교육과정에서 익히도록 되었다.지금까지는 북한의 한글전용과 한자 폐지 정책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북한의 한자 폐지정책은 그 민족의 전통을 지킨다는 의도는 분명 좋았지만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과 학생들에게도 가르치지 않은 것 등등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볼 수 있고 뒤늦게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아서 교육과정에 포함시켜놓고도 그것 또한 통일 교육의 일환으로써 어쩔수 없이 배워야 한다라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 또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1986년에 출판된 불멸의 총서 '닻은 올랐다'의 몇 부분을 통하여 위에서 언급했던 한자폐지 정책의 폐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그러자 청년들은 이라느니 이라느니 느니 하면서 별의별 찬사를 다 퍼부었다.이 부분은 책 183쪽의 한 부분인데 여기서도 '천하절색'과 '경국지색'등의 사자성어들과 '찬사','특출'등의 한자어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조수를 타고 구미 자본주의가 촉수를 뻗기 시작하자 봉건 위정자들은 제 가끔씩 자기 파의 비위에 맞는 상전을 등에 업고 나라를 팔아먹는데 열을 올리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왜놈에게 먹힌 것은 결국 수 백년 동안 지속되어온 파쟁의 후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 부분은 191쪽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서도 '조수','촉수','봉건 위정자','상전','파쟁의 후과'등의 한자가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문/어학| 2002.06.19| 3페이지| 1,000원| 조회(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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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주의론]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변용 평가A좋아요
    제6장.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변용Ⅰ. 네오 마르크스주의1.네오 마르크스주의의 형성배경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네오 마르크스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원인은 소련 공산주의의 정치적 팽창에 대한 혐오감과 서구 자본주의의 비인간화 및 각종 산업사회의 병폐 때문이었다. 좀 더 자세히 출현 배경을 고찰하자면 1914년 제2인터네셔날 붕괴 후 약 20년 간의 노동운동 퇴조기동안 유럽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게 되는데 그들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번영과 의회민주주의 발달로 인한 혁명에 대한 패배주의와 자기반성에 주로 치중하게된다. 연구분야 또한 현실 과학보다는 현실 우회적인 철학, 미학, 문학 등을 다루게된다. 루카치, 코르쉬, 비판이론가 호르크 하이머 , 마루쿠제등등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지적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2.네오 마르크스주의의 개념네오 마르크스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레닌 이후의 소련 및 동구 공산권의 공산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왜곡 시켰다고 보고, 마르크스 초기 저서들을 중심으로 휴머니즘 입장에서 그의 사상과 이론을 현대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동구와 서구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상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마르크스주의의 분류(1)오리지날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형성된 원래의 사상체계(2)후기 또는 제도적 마르크스주의- 소련 공산주의를 비롯한 통치 체제로서의 마르크스주의(3)네오 마르크스주의- 후기마르크스주의를 왜곡됐다며 반대, 본래의 마르크스주의로 돌아가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비판적인 이론과 사상을 총괄하는 말이다.3.네오마르크스주의의 유형네오 마르크스주의의 유파참 여 학 자 들네오 마르크스주의의 선구자그람시, 르페브르, 루카치, 알뛰세, 코르쉬동구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콜라코브스키, 시크, 사프, 코시크, 페브로비치, 스타크, 블로흐서구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프랑크푸르트학파호르크 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구조주의파알뛰세, 레비스트라우스실존주의파코예프, 사르트르미국의 정치경제 학자들스위지, 바란(1) 동구 네오 마르크스주의- 국가 기관 내지 당의 전체주의적 통치방식을 비판하고 사회주의제도 제도 내에서의 민주주의적인 방식의 체택을 주장한다.(2)서구 네오 마르크스주의ⅰ. 프랑크 푸르트학파- 러시아의 10월 혁명과 독일혁명 등을 통하여 독일의 좌파 지식인들 은 사상적 갈등을 겪게되고 그래서 1923년 프랑크푸르트에 사회연구소가 창설되었다. 그 리고 이 학파의 공통적인 입장은 비판이론 이다.ⅱ. 구조주의 학파- 알뛰세가 표방하는 구조주의적 네오 마르크스주의이다. (반역사주의,반 인간주의)ⅲ. 미국 정치경제 학자들- 독점 자본주의를 체계적으로 해명하려고 시도했다.4.네오 마르크스주의 주요 사상(1)인본주의와 소외론-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마르크스의 초기작품들에 초점을 맞추어 마르크스를 인본주의로 보며 그의 노동소외론도 인본주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인간 소외현상은 사유재산제가 폐지된 사회주의사회에서도 나타나고있다고 주장.(2)현실문명 비판- 경제착취, 빈곤화이론, 계급투쟁 등 마르크스의 혁명적 개념들이 자본주의의 발달로 산업사회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새로운 인간학적 문제점과 산업사회의 문명비판을 제기하였다. 호르크 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근대 산업사회가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가고있어서 인간해방에 역행하고 있음을 지적했고 마루쿠제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억압이라는 개념을 도입, 막스의 계급착취라는 억압관계에 대체시켰다.(3)관료주의 비판- 현대 관료제도 속에 인간소외의 근원을 찾고 이 관료제의 극복이야말로 공산주의 확립의 방법임을 해명하려 했다.(4)혁명과 지식인의 역할- 현대사회에서의 노동자계급은 직업의 안정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이미 자본주의사회에 동화되어 혁명의식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지식인과 학생이 인간해방을 위한 혁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주장. 그러나 지식인에 대한 혁명 관은 당시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 확산된 학생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결과적으로는 과격 폭력시위를 유발함.5. 네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평가막스주의에 대한 소련과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교조적 해석에 제동을 걸고, 새롭고 다양한 차원에서 해석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학문적 연구의 개방화를 촉진하였고 인간가치 전도현상 등 현대 사회의 제반문제점의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많은 연구업적을 쌓음.*문제점*(1) 막스의 기본사상이 사회혁명론에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2) 명확한 대안이 없는 현실비판 이데올로기이다.(3) 이론이 구체적인 현실에 의거해 대안을 명시하거나 투쟁의 무기나 방법에 대한 적절한 제시가 결핍된 채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무책임하게 주장하고 있다.(4) 공산주의사회와 자본주의사회를 동시에 비판한다는 중도 지향적 성격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자본주의사회의 비판에 치중.(5) 목표를 구현하고자 내세운 실천방법에 있어서 지나치게 급격했다.ⅱ. 뉴 레프트운동1.뉴 레프트운동의 사상적 배경①스탈린 사후 개최된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후르시쵸프의 스탈린 비판.②위의 영향으로 6월과 10월의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발생한 반소 자유화 운동.③1960년대부터 야기된 중*소의 이념분쟁으로 인한 공산권의 분열④1960년 "New Left Review"지의 창간과 더불어 시작된 뉴 레프트 운동의 유럽, 일본, 미국 등의 확산.⑤뉴 레프트 운동의 정신적 혹은 이념적 지주였던 네오 막스주의의 보급과 확산.⑥철학적으로 헤겔의 변증법, 사회이론으로는 막스의 소외 이론과 휴머니즘, 문학적으로는 프로이드의 에로스 사상을 통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2.뉴 레프트 운동의 개념뉴 레프트는 신좌익 또는 신 좌파로 불리워진다. 기존의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 정당을 구 좌익이라고 한다면, 신좌익 사회주의적 전통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서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소련식 공산주의의 그 어느 쪽에도 정치적으로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집단을 일컫음.3.뉴 레프트 운동의 전개 양상체계화된 이론이나 공인된 전략, 전술이나 조직화된 세력이 없으므로 처음에는 간헐적, 산발적 소규모의 비판, 제한운동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에는 점진주의에 환멸을 느끼면서 과격한 행동을 취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감. 사회적인 사건과 관련하여 나타남(반전 반핵 운동, 민권 운동 등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격해짐. 1968년 전후가 절정기. 미국, 독일 등의 각 대학의 소요와 시위, 프랑스 5월 사태, 일본의 동경대학 사태 등이 대표적 사건이나 대안 없는 비판과 맹목적 파괴로 대중으로부터 외면 당하게되고 점점 소멸되었다
    사회과학| 2002.04.04| 4페이지| 무료| 조회(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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