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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적진리와 종교적진리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1.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를 구분하는 기준“진리”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확인해보니 “참된 이치 또는 도리”라고 나온다. 또한 논리학에서는 명제가 사실에 부합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철학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이라고 한다.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전자와 후자 모두 어떠한 원칙에 입각하여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어떠한 원칙“에 따라서 보편성과 정당성을 가질 수 도 못가질 수 도 있다.과학적 진리라는 것은 논리성과 경험적 법칙에 근거하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서 새로운 이론과 경험이 축적되게 된다면 실증적인 관찰을 통하여 이를 검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기존의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 법칙이 있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게 되면 기존의 법칙은 새로운 법칙으로 대체되게 되는 것이 과학적 진리의 상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한편 종교적 진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오류가 있지만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그 종교를 믿는 종교인 안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성을 가진다는 특징을 가진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보면 애굽 사람들과 바리새인등의 이방인들은 대체 누가 창조 한건지 설명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렇듯 성경 역시 과학적 사고에 입각하여 본다면 유태인들의 민족설화 정도의 의미 밖에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 결국 신은 유태인을 창조하였다는 의미이고 이는 유태인들이 가진 선민사상의 근거가 된다.결국 과학적 진리를 구분하는 기준은 논리적 사고와 축적된 경험 그리고 검증가능성 등을 들 수 있고 종교적 진리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종교자체의 교리와 경전 그리고 신도들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2. 진리가 상대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초래되는 문제점과학적 진리의 상대성은 과학적 진리가 언제나 “잠정적 진리”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데에 있다. 과학적 진리는 프톨레 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뒤엎었던 것처럼 언제든지 오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새로운 이론들을 공유하고 교류하지 못할 경우 사회 발전이 더디어지고 정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적 연구 역시 연구자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완전한 중립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는 과학적 진리에 불안정성을 초래하게 된다.
    사회과학| 2008.12.23| 2페이지| 1,500원| 조회(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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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적불평등에 관하여
    ■ about “사회 불평등”1. 사회 불평등은 불가피한 현상인가(현상적진단)?- 사회적 불평등이란 인종, 성별, 재산정도와 교육수준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게 되는 현상을 지칭한다.사회 불평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고 있으며, 그 원인이 사람들의 타고난 능력의 차이에 기인한 면도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의 물질적인 부에 대한 욕구나 명예, 권력에 대한 욕구에 비하여 우리가 가진 자원이 희소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화되어 있으므로 어느정도 제도개선 등의 노력에 의하여 줄일 수는 있겠으나 없앨 수는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다.2. 현대 사회에서 더 심화되고 있는가(시간적 변이)?- 과거 전통 사회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은 대체로 신분에 의해 결정되어졌다. 현대 민주주의가 시작된지 불과 백년 남짓이므로 그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욱더 심한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했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이라던가 중세 유럽의 영주와 농노 그리고 유럽과 북미지역의 흑인 노예 등 수많은 예가 존재한다. 또한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같이 귀족?왕족들은 국적을 초월하여 그들끼리 결혼을 하면 왕가를 형성하여 한 가문이 유럽의 여러나라를 지배하는 등 그들의 지배체계를 더욱더 공고히 하였다.그러나 과거의 불평등의 경우 때때로 물리적인 반란을 통하여 지배층이 바뀌는 경우도 존재하였고 (한고조 유방은 평민 출신으로서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고려시대 무인정권의 이의민은 천민 출신이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 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마을과 그 주변마을 정도의 세상 외에는 달리 접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므로 그들 자신이 불평등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려웠다.현대 사회에서 불평등은 언뜻 보기에는 민주주의 통해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므로 신분제 사회에서보다 훨씬 극복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더욱더 고착화 되어있다.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들면 교육의 정도와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도에 따라 사회적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목고와 명문대로 대표되는 학벌이 가장 대표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명문대학들의 입학정원을 늘리고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대폭 늘어난 특수목적 고등학교, 대학의 재외국민 특별전형등과 넓어진 수시입학제도 등은 부유층 자제들을 명문대학에 보내는 좋은 수단이 되고 있으며 명문대학내에서조차 재력과 집안의 배경이 있는 학생들만 사회의 좋은 위치에 진출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적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동시에 수많은 4년제 대학등을 신설하여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얼핏 보기에는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가져가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또한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신분이동을 용이하게 했던 고시제도를 점차 없애가고 전문대학원 체제로 변화하는 등 점점 신분계층화는 고착화되어가고 있다.정리하면, 과거의 사회적 불평등은 성별과 인종 계급등에 의해 정해졌다면 현대의 사회적 불평등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재산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3. 사회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가(공간적차이)?- 사회적 불평등은 동시에 그 사회가 가진 문화와 종교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특히나 남녀간의 불평등이 크게 존재하는데 명예 살인이라하여 남편이나 다른 가족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여성을 살해하는 행위가 존재하기도 하며 유럽에서는 아직도 집시들은 사회하층민으로서 부랑자 취급하고 모두가 혐오하는 등 인종간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또한 필리핀과 같은 국가에서는 전국민의 대부분이 카톨릭을 믿기 때문에 남부 민다나오 지역의 무슬림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등 종교로 인한 차별도 존재한다.
    사회과학| 2008.12.23| 2페이지| 1,500원| 조회(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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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콘텐츠비즈니스 과제
    목 차1. 컬처노믹스의 국내 사례2. 콘텐츠 비즈니스를 위한 노력의 사례3. IPTV 도입과 관련한 콘텐츠 수급 사례4. 전통 문화의 재발견 및 글로벌화 사례5. 유익했던 다큐멘터리1. 문화와 경제가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소프트파워(커뮤니케이션 스킬 등)가 중시되는 컬처노믹스(culture+economics)시대를 맞이해 문화콘텐츠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던 국내 사례■ 컬쳐 노믹스란?-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는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교수인 피터듀런드(Peter Duelund)가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현재는 문화를 알아야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데,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 컬처노믹스를 사회 곳곳에서 문화마케팅을 넘어 문화를 소재로 부를 만드는 전략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컬처노믹스- 부산국제 영화제는 비교적 짧은 10여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여러 시행착오들을 뛰어넘어 국제 영화계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발돋움하고 있다.경제적인 측면에서 부산국제 영화제를 평가하자면 소요되는 경비에 비하여 입장 수입은 모자라므로 그 경제적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적 측면의 보이지않는 수익은 엄청난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 국제 영화제로 인하여 부산을 영화의 도시라는 새로운 도시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최근 문화예술과 스포츠 등에 대한 지원과 공익사업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부산국제영화제등을 적극 후원함으로써 문화마케팅의 한영역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2007년 부산영화제의 문화관광부와 부산시의 후원금이 약 44억원이고 여기에 민간 후원금이 약 80억원에 달한다.(2008년은 현재 진행중) 특히 네이버 등 IT기업들의 후원이 눈에 띈다. 실제로 IPTV, UCC등 콘텐츠 확보 전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을 위한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와 관련된 연관 산업또한 활성화 될 수 있다.정부나 지방 자치단체는 대부분 새로운 이벤트쪽에만 거액을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행사로 성장시킨 부산영화제를 지원함으로써 그 가치와 성과를 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공유하는 것이 문화산업지원에는 더욱 효과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유수의 영화제들도 모두 정부의 지원 아래 수십년간 지속되어왔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음으로써 부산영화제를 세계 최대의 영화제로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또한 한편으로는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 될 수 있는 부산영화제만의 독특한 개성을 확보하고 지역사회의 참여도를 높이고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영화제를 기획함으로써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한 경제효과를 그대화시켜야 할 것이다.참고 : WWW.PIFF.ORG(부산국제영화제 공식홈페이지)WWW.CINE21.COM(한겨레신문 운영 영화잡지 홈페이지)WWW.BUSAN.GO.KR(부산시 홈페이지)2. 사이버 세상에서 돌출하는 불법복제, 저작권 무시,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은 악재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콘텐츠비즈니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례■ 씨네21i 영화 합법 다운로드 이용자 30만명 돌파- 씨네21i는 웹하드에서 영화를 합법적으로 내려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2개월여 만에 이용건수가 30만 건을 넘어섰다고 27일 밝혔다. 6월 20일 '추격자'로 서비스를 시작한 씨네21i가 온라인 판권을 확보한 영화들의 유료 다운로드 이용건수는 이제까지 모두 30만여 건으로 하루 평균 5천건 정도다. (연합뉴스기사)- 특히 극장에서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던 영화들의 경우 온라인 다운로드 성적이 좋았다.- 기존에 웹하드를 통하여 영화1편당 몇백원 정도의 패킷요금만을 지불하고 불법 다운로드를 받아 이용하던 이용자는 여기에 약간의 콘텐츠 이용료를 더한 요금을 지불하고 합버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또한 무단으로 업로드된 파일역시 정상적인 저작권 파일로 전환되어 콘텐츠 요금이 부이는 보는 사람에게는 기쁨을 줄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저작권자에게는 굉장한 손실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또 음악 파일의 경우 해당 가수의 cd를 사지 않고 노래를 다운 받아서 들을 때이다. 이 경우도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를 팬들이 앨범을 통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통신을 통해서 노래를 공짜로 들음으로써 피해를 입게 된다.중독성은 어떠한가. 한번 맛들인 “어둠의 자료”들을 제값내고 쓰라면 선뜻 지갑을 열 이들이 얼마나 될까. 국내 영화.음반 업계들이 볼멘 소리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애써 공들여 만든 문화 콘텐츠들이 음지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유통되고 있다. 제작비가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제작환경을 열악하게 해서 산업 전체가 고사될 수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어둠의 불법 다운로드를 양지로 끌어오기 위해 합법적 다운로드 서비스가 시험되고 있는 중이다. 동영상 파일의 정보를 분석해서 불법으로 업로드 된 파일 조차도 정식 파일과 마찬가지로 등록시켜 저작자에게 수익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기술적으로 파일정보를 분석해서 판별하는 가능성이 아직 100%완전 하지 못한데다가 이미 공짜에 길들여진 다운로더들의 이기심은 결국 어떤식으로든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짜로 콘텐츠를 향유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들을 해갈 것으로 보인다.그렇다고해서 이러한 시도들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참신한 시도들이 쌓여가고 네티즌들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계몽을 통해 “네티켓“을 확립시켜 가려는 노력들이 끊이 없이 이어진다면 저작권에 대한 보호에 관하여 지금보다는 나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참조 : www.cine21.com(한겨레신문 보유 영화잡지)http://www.yonhapnews.co.kr/ (연합뉴스)3. IPTV 도입과 관련한 성공적인 콘텐츠 수급(수요와 공급) 사례■ IPTV란 무엇이고 TV와 무엇이 다른가?- IPTV는 인터넷 프로토콜 텔레비전(Internet Protocol Television)의 줄및 비디오를 전달하는 서비스로 정의하고 있다.IPTV는 다양한 통신?방송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고 발전가능성이 큰 대표적인 통신?방송 융합서비스로서 인터넷망 이용, 양방향성, 무한한 수의 채널, 이용자 참여와 선택, 다양한 부가서비스 개발 가능성 등이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성격으로 볼 때 IPTV는 기존의 통신과 방송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기존의 통신이나 방송 어느 한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통신?방송 융합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방송은 방송사가 프로그램의 내용, 시각, 배열 등을 편성하여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송신하나(일방향성), IPTV는 이용자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콘텐츠를 제공(양방향성, Interactivity)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방송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실시간방송프로그램 전송서비스 및 방송프로그램 연동형 부가서비스(예: 방송을 보면서 방송에 등장하는 상품구매) 등을 포함한다는 면에서 통신의 개념에 포함시키기도 곤란한 측면이 있다.■ IPTV와 교육콘텐츠- IPTV 업계는 교육콘텐츠를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영어교육과 국제중학교등으로 사교육비 부담이 커진 학부모들을 겨냥해서 “안방학원”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다.이와 동시에 토익등의 어학시험, 자격증등을 준비하는 성인 교육 시장도 병행하여 가입자수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양방향 교육이 가능하다는 IPTV의 장점을 십분활용해서 고객이 학습에 적극 참여하고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 할 수도 있다.■ IPTV 서비스의 선봉장 : 교육콘텐츠- IPTV업계는 뉴미디어로서 가입자수를 확보할 컨텐츠 분야의 선봉장으로서 교육컨텐츠를 꼽고 있다. IPTV가 교육을 통하여 공익적 기여를 한다는 명분과함께 가입자를 유치하고 시청자지지 기반을 확립할 수 있는 기대 때문이다.과거 EBS채널을 통하여 교육 콘텐츠의 TV 진출이 성공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상호 의사소통이 중요한 교육 콘텐츠의 특성상 EBS의 경우 일방적, 획일적 교육이고 쌍방향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1회 세계한식요리경연대회-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한국일보사와 T.F.C 인터내셔널(회장 김영복)이 공동으로 개최한 ‘제1회 세계한식요리경연대회’가 세계 음식문화의 경연장인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뉴욕은 물론 해외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한식 음식경연대회다.뉴욕 맨해튼의 요리 전문교육기관 ‘French Culinary Institute’에서 지난9월 28일 열린 대회에는 4개 권역으로 나뉘어 진행된 국내예선 통과팀과 미주 지역 예선통과팀 등 모두 32개팀 51명이 참가했다.이들은 파스타를 곁들인 곰탕, 해물비빔칼국수, 포도즙 냉채 등 다양한 아이디어와 풍부한 맛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우리 음식의 세계화 가능성을 과시해 보였다.■ 한식의 세계화- 음식은 단순히 “먹는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소비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뉴욕의 문화를 함께 마시고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며 베트남을 친근하게 느끼게 된다. 이처럼 음식은 훌륭한 외교사절의 역할을 수행하기도하며 그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게 하기도 한다.음식을 통하여 그 나라를 알리고 이는 서로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서로의 생활습관과 문화를 공유하며 상호 교류를 증진시켜 경제적으로도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많은 사람들이 밥과 국대신 토스트와 우유 또는 커피로 아침을 대신한다. 또한 피자나 햄버거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음식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대하는 음식이 되었고 중국음식점이나 이탈리아 음식점은 물론이고 동남아나 인도 음식점도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우리의 식탁에서는 세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하지만 우리나라의 한식의 세계화 정도를 말하자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물론 김치가 건강식으로서 세계에 알려지고 비빔밥과 불고기등의 음식이 알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세계 12대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한식은 여전히 너무나도 우리만의 음식으로 남아있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경제 수준이 떨어진다는 멕시코나 태국, 인도등의 음식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다.
    경영/경제| 2008.12.23| 11페이지| 2,500원| 조회(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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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의 종교문화 평가A+최고예요
    ■ 들어가며작년 2007년 8월 나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어학연수라고는 하였지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될지도 모르는 여행이었기에 약 3개월만에 다니던 어학원을 그만두고 나홀로 필리핀 국내여행의 길을 떠났다. 약 한달반 정도를 혼자서 필리핀 여행을 다녔는데 애초 여행을 염두에 두고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많은 짐을 다 가지고 여행을 다니는게 그렇게 고생스러울 수가 없었다. 보라카이와 같은 유명한 관광지부터 루손섬 북부의 산악지방까지... 하지만 필리핀 여행을 하며 의외로 상쾌한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여행도중에 정말 많은 수의 외국인 여행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현지 필리핀인들을 포함해서 그들과의 대화는 어학원에서는 배울 수가 없었던 실전(?)영어를 익히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사실 4개월반 정도의 필리핀 생활동안 영어가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외국인들을 대할 때 막연한 두려움을 없앨 수가 있었던 좋은 경험들이었다.필리핀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필리핀내의 유명 관광지를 포함해서 어디를 가던 만날 수 있었던 오래된 성당들과 알게모르게 필리피노 그들의 성격에 묻어나오는 카톨릭스러움(?)이라고 생각된다.마침 이번학기 종교와 문화의 과제로서 좋은 주제가 주어진 것 같아서 필리핀의 종교와 관련해서 쓰기로 한다. 필리핀은 아시아 유일의 카톨릭 국가라고 할 수 있을뿐 아니라 남부의 민다나오 지방에서는 무슬림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는 등 종교적 특이성이 충분한 곳이기 때문이다.14세기 후반 무슬림들이 필리핀에 들어오기 전부터, 또한 마젤란이 세부 막탄섬에 도착하기 전부터 필리핀에는 애니미즘이 원시종교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슬림들의 포교, 레가스피에 의한 식민지화와 함께 카톨릭이 전래되면서부터 필리핀 시민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결과 필리핀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종교문화권이 성립되었다. 대부분의 필리핀 전 지역은 크리스정복이 시작되었다. 필리핀을 정복한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스페인의 정복의 확장이었다.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스페인국왕 필리페의 이름을 따서 필리핀이라고 불리워졌다.마젤란과 빌라로보스에 의한 필리핀 회심자들이 생겨나긴 했으나 정치적 정복처럼 영구적인 기독교를 심은 것은 레가스피에 의해서였다. 레가스피의 지시에 의하면, 모든 탐험가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행동해야하며, 주님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을 공경해야 하며, 원주민들을 잘 대우해야 하며, 종을 사고파는 일에 종사하지 말아야 했다.레가스피와 함께 5명의 어거스틴 수도승들이 왔으나 그 중에 3명만이 필리핀 섬에 남았다. 어거스틴 교단에 이어서 1577년에 프란시스교단이 도착했으며, 1578년에 도미니크 교단이 교황의 명령으로 마닐라에 주교구 성당을 세우기 위해 들어왔으며, 이러서 제수잇 교단 이들어왔다. 이들은 점유한 후 1세기 동안 종교적 열정과 군사적 정복의 결합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필리핀 회심자들을 얻는 데 성공하게 했다.기독교는 필리핀 사회에 많은 일을 했으며 오늘날 필리핀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시아에서 단지 명목상 그리스도인 국가로 만든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스페인은 필립 2세에 의해 식민정책의 주요목적으로 신앙을 전파 하게 하여 교회, 병원, 학교들을 세웠으며 원주민 성직자들을 훈련시켰다. 처음 필리핀 감독 조르게 바르린(Jorge Barlin)이 생겨난 후로 1905년까지 주교감독이 생기지 않았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로 부터 북쪽으로 퍼질 때 가톨릭이 이슬람의 전진을 막는 역할을 했다.식민지 지배를 시작하면서 스페인은 자연현상 하나하나에 대해 별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필리핀의 토착종교인 애니미즘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라는 카톨릭교의 그들의 신보다 전능한 신의 존재를 전파하였다.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였으며, 남부의 만다나오 섬과 루손 섬 북부의 산악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평야지방에 살던 필리핀인들은 모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 결여 카톨릭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과 그때까지 기독교화 되지 않은 남부의 민다나오와 루손 북부의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개신교 신자로 개종시켰다. 그 당시 필리핀 합병을 눈앞에 둔 미국의 기독교파는 회합을 열어 필리핀 선교의 기본방침을 논의하였다. 그들 중 다수의 사람들이 필리핀에서는 카톨릭 교회에 의한 암흑정치가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 하에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필리핀에 들어왔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1899년 이후 이들에 의해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카톨릭 교회의 지침으로 금지되어 있는 성서를 각 언어로 번역하였다. 10여 년 동안 미국 선교사들이 복음주의적인 교회의 전통을 전파하였다.사실상, 필리핀에서의 프로테스탄트는 출발부터 비연합과 분파에 의해 어려움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중의 3% 이하로 나타나는 200개 이상의 교파가 있었으나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 UCCP)와 필리핀국민교회평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the Philippines; NCCP)의 설립으로 몇몇 교파들의 성공적 연합이 이루어져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질서가 그런대로 잡히는 듯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의 중산층 위주의 NCCP 교회들과 여러 섬에 산재해 있는 다수의 복음주의적 교파들 사이에 깊은 차이와 상당한 적대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필리핀의 프로테스탄트는 항상 미국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므로 이와 관련지어 생각하여야 한다. 미국의 대부분 주요 교파들과 몇몇의 소수 교파들은 필리핀에 많은 선교단체들을 보내어 카톨릭 신부들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고지대 부족들과 도시 중산층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으며,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은 교육과 의학 분야에서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새로운 필리핀 공립학교 제도를 세우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던 대부분의 미국인 학교선생들은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로서 저지대 소규모 마을글레니아 니 크리스토(Iglesia ni Kristo), 셋째, 기타 토착교단들이다. 필리핀에서 만난 친구중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는 목사가 없다고 했던 친구가 있는데 아마도 이중하나일것으로 생각된다.-필리핀 독립교회(Philippine Independent Church)필리핀 독립교회는 초대사제 그레고리오 아글리파이(Gregorio Aglipay; 1860-1940)에 의해 설립되었다. 1895년 對스페인 독립운동이 필리핀에서 혁명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에 의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민족주의적인 필리핀인 사제 아글리파이가 동참함으로써 필리핀 카톨릭 교회에서는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종교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카타르시스를 지니고 아글리파이가 이끌었던 필리핀 독립교회에 합류하였다. 1902년 10월 아글리파이는 바티칸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하고 공식적으로 필리핀 독립 교회를 설립하였다.필리핀 독립교회가 설립된 이래 약 5년 동안은 그 세력이 급속히 확대 성장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교회지도자들이 미국으로부터 조기독립을 요구하는 정치운동에 전념함으로써, 또한 성직자의 양성 등 교회운영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남으로써 많은 신자들이 필리핀 독립교회를 떠나감에 따라 1938년을 정점으로 그 세력이 현격히 약화되었다. 더욱이 처음에 필리핀 독립교회와 로만 카톨릭교와의 교리적인 차이점을 덜 강조했던 아글리파이가 후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스스로 유일 신격을 주장하는 유니타리언니즘(Unitarianism) 쪽으로 움직였는데, 이것이 결국 필리핀 독립교회의 신자수를 줄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지금은 세력이 약한 군소종파로 남아 있다.필리핀 독립교회는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신학을 재정비하고 타종파와의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최근 미국 성공회(the Protestant Episcopal Church of the United States)성서연구 등의 과정을 거친 후에 인정되며, 침례에 의해 세례를 받는다.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가 그러한 독선적인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이 끝난 후부터 많은 신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전쟁 후에 벌어진 급격한 사회변동에서 혼란을 겪으며 의지할 곳을 찾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이 교회는 개신교의 부흥회와 유사한 대중 집회를 통하여 필리핀인들의 잠재적 개종의식을 유인하는데 성공하였으며, 교회의 메시지는 항상 간단 명료하며 보통의 필리핀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주어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창시자인 휄릭스 마날로가 1963년에 사망하고 그 아들 엘라뇨 마날로가 교회감독을 맡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는 1968년 하와이에 지부교회를 설립한 이래 해외 필리핀계 이민사회와 해외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는 세계 각국에 지부교회를 설립하고 있다. 또한 이 교회는 지금도 필리핀의 모든 지역에서 기독교 신자의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뿌리가 단단한 토착 기독교 종파로 존재하고 있다.-기타 토착적인 교단기타 토착적인 교단들은 기독교와 토착종교와의 경계선상에서 운영되며, 필리핀 각지에 산재해 있다.19세기 말 스페인에 의해 처형된 국민적 영웅 호셀 리잘(Jose Rizal)의 이름을 딴 명칭의 ‘리잘리스타’는 리잘을 초인간적인 존재로 믿고, 기독교와 리잘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단을 말한다. 마닐라 남부의 라구나주 칼란바에 있는 “이글레시아 와따 왓트 난 라히” 교회는 신자들이 수천 명에 달하며 리잘을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애를 보낸 존재로 믿고 있으며, 교단 중앙에 그리스도와 나란히 리잘 상이 그려져 있다.라구나 주와 퀘손 주 경계에 위치한 바나하오 산(2,177m)의 남측 드롤레스로부터 산타루치아, 키나브하얀에 걸쳐 펼쳐지는 성지에는 크고 작은 교단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 교단의 신자들은 바나하오 산을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성지, 말하자면 새로운 예루살렘으한다.
    사회과학| 2008.12.23| 11페이지| 2,500원| 조회(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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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통상]한중통상마찰의 현황과 과제
    < 목 차 >Ⅰ. 서 론Ⅱ. 본 론(1) 한중 교역 관계의 발전상황1) 한중 무역 관계와 증대하는 한중교류관계2) 최대 투자 대상국 : 중국3) 양국간 합자 영역의 확대(2) 한중 통상마찰의 현황1) 통상마찰2) 대중 무역 흑자3) 한중간 통상주의 확대 필요4) 한중 통상마찰의 원인(3) 한중 통상 마찰의 사례1) 한중 마늘분쟁2) 한중 쌀 수입량 분쟁(4) 한중 통상 마찰의 해결방안Ⅲ. 결 론“한중 통상마찰의 현황과 과제”Ⅰ. 서 론전후 세계 질서를 주도해온 GATT체제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계기로 보다 강력한 무역체제인 WTO로 대체 되었다. WTO체제는 서비스 및 지적 재산권과 같은 새로운 규정들을 갖추게 됨으로써, 사실상 모든 국제 교역이 WTO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WTO는 단순한 협의체 성격의 국제 협정에 불과했던 GATT와는 달리 의사결정이나 분쟁 해결절차에 있어서 보다 구속력 있는 공식 기구라는 점에서 안정된 국제 무역 질서의 확립에 기여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 역할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WTO의 출범은 특히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농수산물 및 서비스 시장의 개방이나 보조금 규율의 강화에 따라 관세인하 및 비관세 장벽의 철폐. 그리고 반덤핑 및 세이프가드 등 각종 규범의 명료화?객관화 등으로 우리의 세계시장 진출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WTO의 순기능은 향후 우리나라의 교역량 확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상황 하에서 특히 중요한 변화가 바로 중국의 WTO가입이다. 중국은 WTO가입을 위해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완화하고, 통상 규범을 개선하면서 서비스와 투자를 개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중국은 비록 일인당 GNP가 개발도상국 수준이기는 하나, 13억의 인구와 거대한 영토 그리고 1조7천억 달러(2000년 현재)에 이르는 경제 규모를 보유한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국가로 평가될 수 있다. 중국 따르면 2000년 한국은 낮은 관세로(31%) 중국 마늘 3.2톤을 수입하고, 그 이후 매년 점차적으로 5.25%를 증가 수입하고, 중국은 한국에서 생산한 핸드폰 무선전화기와 폴리프로필렌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 하였다. 이 협의의 유효기간은 3년이다.? 총 교역액 : 2004년 한중간 총 교역액은 794억 달러(한국 관세청 통계기준)로 우리나라에 있어 서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다.? 수출 :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한중 수교당시인 1992년의 26.5억 달러에서 2004년에는 497.6억 달러로 약 19배 증가하였다. 대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기간 3.5%에서 19.6%로 증가하였다.? 무역수지 : 2004년 기준 대 중국 무역수지는 201.8억 달러로 전체 무역 수지 293.8억 달러의 68.7%를 차지하고 있으며, 교역 대상국중 1위의 무역 흑자국이다.[한국의 5대교역국-2004년기준](단 위: 억 달러)순위국가총교역액수출수입무역수지1중국7944982962022미국*************일본680218462-2444홍콩214181331485대만172997326?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홍콩을 제외할 경우 중국의 3대 교역국이며 대만 다음으로 두 번째의 무역 역조국이 됨.2) 최대 투자 대상국 중국한국의 중국에 대한 투자 신장률도 아주 급격하다. 2002년 재정경제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에 의한 중국 투자액은 17.2%가 되고 대외투자총액 미화 50.6억달러(신고기준)의 34%, 아시아 투자 미화 24.9억 달러의 70%를 차지하여 처음으로 미국 투자액 미화 13.7억 달러를 초과하여 한국 기업의 최대 투자국이 되었다.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홍콩을 제외할 경우 미국, 일본 다음가는 세 번째의 3개 교역국이다. 중국의 연간 직접투자 유치 총액에서 한국의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1993년 1.5% 수준에서 2002년 5.2%로 상승했다. 중국측 통계를 기준으로 2002년 일본과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 금액은 각각 41.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추세속에서 중국측은 지난 10년간 지속되어온 대 한 무역역조에 대하여 무역 불균형의 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줄곧 대중국 무역에서 흑자를 유지하여 왔는데 2002년에는 무역 흑자 규모 64억 달러로 전체 무역흑자의 약 62% 정도를 대 중국 무역이 차지하고 있다. 2003년에 들어서는 흑자 규모가 더욱 커져서 9월 기준으로 이미 88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측 입장에서는 한국 측에서 중국 제품-농수산물-에 대하여 통관상의 행정절차에서 각종 편의와 우대조치를 강화하고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낮춰준다면 중국의 대한 수출이 늘어날 여지가 매우 많은 것으로 판단, 주장하고 있다. 한국 측에서는 한중간의 무역 불균형중의 상당부분은 한국 기업의 대중 투자의 급격한 증대로 인하여 한국의 대중 수출이 대중 수입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점을 들어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하므로 양국간 무역량 확대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양국 간 통상마찰 증대의 또 다른 원인은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에 수반하여 전자, IT, 철강, 석유화학 등 경합분야가 증가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즉 양국 간 경제교류에서 상호 보완 부문보다 경쟁부문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양국경제 모두 고속성장 속에서 공업화와 산업구조 조정이 빠르게 진전되는 추세에서 불가피한 변화이다. 이는 최근 중국의 대한 반덤핑 제기가 증가하는 데서 확인된다. 중국의 대외 반덤핑 제기 건수는 2003년 10월 10일 현재 18개 품목의 반덤핑 최종판정과 6개 품목의 조사대상 품목이 있는데, 이중 한국과 관련된 것은 19개 품목(철강, 석유화학제품이 대부분)에 달해, 한국은 중국의 최다 반덤핑 제소 대상국이다.3) 한중 간 통상주의 확대 필요한중간의 통상마찰 증대 문제는 앞으로 그 내용과 성격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 구조는 한국이 중국으로 부품과 소재를 수출하고 중국으로부터 조립 또는 가공된 완제품을 수입하는 구조에 세이프가드 발동과 그 만료일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물론 국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이 마늘을 포함한 농산물의 중국으로 수입보다 낮다고는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이익집단에 대한 손해집단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판단된다.④ WTO 규정의 모호성이다.WTO 체제가 출범한지 8년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이 체제 하에서의 세이프가드 제도는 개발도상국 내지는 일부 품목에 대해 생산성이 없는 국가에 대해서는 그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세이프가드 발동요건에서 피해의 정도의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동기간의 문제이다. 발동기간을 원칙적으로 4년으로 규정한 것은 피해 국에 시장접근의 용이성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또한 이 발동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에 발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용한 선진국의 시장진입을 가능하게 해준 또 하나의 요인이다.(3) 한중 통상마찰의 사례1) 한중 마늘분쟁마늘분쟁은 우리 정부가 수입되는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금을 높여 판매 가격을 엄청나게 높여 버리는 데에서 시작하였다. 중국 정부도 이에 맞서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완전히 중단, 상황이 심각하게 된것이다. 이후 양국 대표가 지루한 협상을 벌인 끝에 타협은 하였지만 그 배경과 과정을 알 필요는 있다.마늘은 생산농가의 1/3수준인 42만여호에 이르며 시장규모가 1조원에 달하여 쌀 다음가는 중요한 농산품이다.한중간 마늘분쟁의 원인이 되었던 따른 중국산 마늘수입 증가 현황은 아래 표와 같다.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는 중국산 마늘에 인하여 국내 마늘 가격 하락으로 국내마늘 생산농가의 피해가 확산되었다. 농업생산자단체인 농협중앙회는 마늘 농가를 대표하여 무역위원회에 산업피해구제를 신청하였던 것이다. 마늘의 생산량 및 수입량19961997199819992000국내 생산량455,955톤393,834톤393,903톤483,778톤474,000톤중국산 수입량9,497톤18,389톤35,996톤37,252톤측이 지적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복잡한 유통구조가 국내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음으로써 수입가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이것은 마늘이라는 상품의 특성상 유통과정상에 필요한 경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하고 또한 이것이 피해를 직접적으로 야기 시키는 원인이라 하기는 적합하지 않지만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③ 대응조치 선택의 문제점중국과 같이 WTO회원국이 아닌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교역에서 세이프가드와 같은 산업구제조치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마늘에 대한 수입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의 인과관계의 여부 등이 국내적 요인 등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과 중국 측이 대 한국 무역 적자를 여러 차례 지적한 것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의 보복조치는 예상 가능하였을 것이다. 결국 긴급관세 부과로 1000만 달러미만의 수입규제효과를 위해 무려 55배 이상에 달하는 5억 달러 규모의 수출시장을 상실하는 보복조치를 초래하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통상정책의 실패라 평가된다.당시 중국 측과의 협의를 통하여 보복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고 쿼터에 대한 저율관세와 그이외에 대하여는 고율 관세를 매기는 탄력적인 대응을 했어야 했다. 또한 국내 마늘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마늘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국내적 요인에 대한 개선의 노력을 함께 했어야 했다.④ 정치권 개입 의혹의 문제점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세이프가드가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마늘농가에 대한 득표 전략이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총선 10일 전인 4월 3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총선을 앞두고 국내 마늘 생산 농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입마늘에 조속히 긴급관세를 부과해 줄 것 을 정부에 요청하였다는 「수입마늘에 대한 긴급관세부과」보도 자료가 공식적으로 발표됨에 따라 중국 측을 자극하였다.⑤ 국제법상 중국정부의 보복조치 위법성의 문제당시 WTO의 정식 회원국이 아닌 중국은 DSU상의 절차규칙을 준수할 법적인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경영/경제| 2006.07.01| 13페이지| 2,500원| 조회(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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