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1. 일본 경제의 현황일본의 통상정책은 대외무역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 초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일본경제의 상황에 따라 정책을 변화시켜왔다. 이러한 변화는 다른 선진국 특히 미국과의 통상정책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세계최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해 대규모의 무역흑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물론이고 주요 중진국들과도 통상마찰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대규모 흑자문제에서 비롯된 통상마찰로 일본경제는 수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고로 인하여 일본제품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여 수출 감소와 수입증대로 국내경기가 후퇴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공공투자 확대와 감세정책을 실시하였고 재할인율 인하 등의 금융완화정책 등을 실시하여 비교적 단기간에 경기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일본경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엔고, 버블의 생성과 소멸, 금융시스템의 불안 등 대내외 여건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산업공동화 등 산업 및 무역구조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본은 규제완화 등의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였으나 정부 및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이 경제적 여건 변화에 비해 크게 미흡하여 구조전환이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과 경기가 하강하는 등의 요인이 겹쳐 1990년대 들어 장기불황을 초래하였고 최근까지 경기회복세도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엔고극복을 위한 저금리정책 등으로 인한 토지, 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에 기인한 버블은 1990년 들어 일본은행의 금융긴축정책으로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곧바로 복합불황복합불황이란 과잉투자에 희한 순환적인 자산디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함으로써 나타나는 불황을 의미한다.으로 이어져 기업의 불량채무와 금융기관 부실채권문제가 대두되었다.그리하여 1998년 4월 하시모토 수상은 일본의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아시아지역으역장벽을 들 수 있다. 일본정부가 정부조달에 있어서 외국기업의 입찰참여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외국기업의 제품을 규제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통상마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본 교역장벽의 핵심은 민간부문의 과점적 행동양식이라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업의 계열화와 유통체제이다. 일본의 제조업자는 판매업자에 대해서 경쟁기업의 제품판매를 금지함으로써 외국기업은 구조적으로 일본의 유통체제 내에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경우 일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유통망을 새로 구축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배타적인 판매제도가 실질적인 교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게이레쯔'라 불리우는 기업집단의 기업계열화를 통한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은 직·간접으로 강요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계열관계는 내부거래를 촉진하고 외국기업을 경쟁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결국 이것이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4. 일본 통상정책의 특징1) 비공식적 채널을 통한 민관협력체제의 구축일본의 통상정책은 정부와 의회의 긴밀한 협조 하에 입안되고 실행된다. 법이 정한 한도 내에서 정부는 상당히 구체적인 사항까지 입안·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내각이 집권당과 연합본부를 설치하여 이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부문간에는 자문기구를 통한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자문기구들은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와 무역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이러한 민관의 관계는 비공식적이면서도 일본특유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비공식적 채널을 통한 통상정책의 결정과 시행이 일본시장을 상당히 폐쇄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되고있기도 하다.2) 수출자율규제 활용일본은 외부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통상정책의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오늘날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일본의 주력 수출품목들은 지속적으로 일본의 무역흑자 폭을 확대시켜 왔다. 이에 따른 무역마찰이 심무역수지1일반기계4121(20.6)+39262전자부품3390(16.9)+19433유기화학1679(8.4)+12774산업용전자1116(5.6)+9935정밀기계1090(5.4)+9826제약원료 및 사진용,영화용재료897(4.1)+7807중전기기908(4.5)+7778기계요소,공구 및 금형829(4.1)+7349수송기계756(3.8)+67910기타 비철금속과 제품289(1.4)+225계15075(75.3)+12316전품목 총계20015(100.0)+8451은 대일무역수지적자가 가장 큰 상위 10대품목을 열거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대일수출입에 있어서 품목별 무역수지 적자규모는 일반기계가 약 39억 달러, 전자부품약19억 달러를 나타나고 있으며 일반기계를 필두로 하는 자본재분야에서의 대일무역적자가의 대부분이 발생하고 있다.2. 최근 대일 수출입동향의 특징1) 대일 수출동향대일수출은 1996-'98년 중 연평균 10% 감소하였으나 1999년 및 작년 1-11월중에는 일본경제의 완만한 회복에 따른 수요증가 등으로 각각 30% 및 32%로 큰 폭의 증가로 반전하였다. 이를 총수출증가율과 비교해 보면 1999년 이후 대일수출증가율은 총수출증가율(각각 1999년중 9% 및 금년 1-11월중 22%)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98년중 9.2%까지 하락하였던 대일수출비중이 2000년 1-11월중에는 11.9%로 다소 상승하였다. (단위 : 억달러, %)199519961997199819992000(1월∼11월)대일수출(A)170.5(26.1)157.7(-7.5)147.7(-6.3)122.4(-17.1)158.6(29.6)186.7(32.3)총수출(B)1,250.6(30.3)1,297.2(3.7)1,361.6(5.0)1323.1(-2.8)1,436.9(8.6)1,574.6(22.3)대일수출비중(A/B)13.612.210.89.211.011.9주) ( )내는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자료) 한국은행, 국제수지 각호1999년 이후 대일수출의 큰 폭 증가는 전기전자, 석유제품 등에 로부터 크게 증가시킨 것이 대일무역불균형을 확대시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 한국과 정치적, 문화적인접성이 강한 한편, 한국의 기업이 무역을 수행함에 있어서 언어의 친숙정도, 외환 및 무역절차에 대한 제도, 그리고 수입선의 장기사업계획수립등에 관련하여 일본이 타선진국들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던 것이 대일수입증대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다.2) 수입유발적 경제구조우리나라 수출과 대일 무역적자 추이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경기가 회복되거나 수출이 늘어나면 날수록 거꾸로 대일 무역적자는 오히려 커진다는 사실이다. 실제 80년대 후반 3저호황기, 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기, 그리고 올해 등 경기가 회복되고 수출이 늘어나날수록 대일 무역적자 역시 큰 폭으로 늘어남을 알 수 있다.이러한 현상은 우리 산업구조, 수출구조가 중화학공업으로 고도화될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은 부품, 소재 등 중간재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우리의 수출주력상품은 자동차, 조선, 가전, OA기기, 통신기기 등 조립가공제품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우리의 부품산업도 상당한 발전을 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극히 일부품목을 제외하고는 핵심부품과 소재는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을 할 수밖에 없는 품목이 상당수이다. 즉 그동안 추진해온 공업화전략으로 우리의 산업구조를 중간재 산업의 발달보다는 조립, 가공형 구조로 진행시켜 수입유발적인 경제구조가 어느 정도 체질화되어 있는데서 발생하는 적자인 셈이다. 때문에 수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대일무역적자도 이에 비례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수출이 늘수록 수입도 늘어나는 것은 간단히 수출의 수입유발계수로 설명할 수 있다. 수출의 수입유발계수란 수출을 한단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입품의 비율을 의미한다. 수입품의 국산대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수입유발계수는 줄어든다. 지난 85년 수출의 수입유발계수는 0.35였다. 즉 수출 1원어치를 하기위해서는 0.35원의 수입이 필요했다. 수입유발계수는 이후 지속적으로이다. 일부 전자부품의 경우 선진국들도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그러나 우리의 부품산업 흑자의 대부분은 동남아 등 저개발국으로의 수출증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부품산업 역시 대일적자폭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핵심부품은 여전히 상당부분 대일수입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표 참고)즉 부품산업 중에서도 저급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품목은 국산화도 꽤 진전되고 외국으로 수출도 많이 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부품은 여전히 넘보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무기기부품, 광학기기부품, 이륜차부품, 개폐기부품과 일부 전자부품의 경우 전체 수입 중 70∼80% 이상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현실이다.7) 일본기업글로벌 네트워크와의 경쟁과거 엔고와 대일무역적자의 관계를 보면 80년대 후반의 엔고 기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엔고와 함께 우리의 대일적자는 늘어나는 패턴을 보여 왔다. 특히 90년대 초반의 엔고 기에는 대일적자가 급증한 후 96년부터 98년까지의 엔저 기에는 오히려 대일적자가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엔고와 함께 원화도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있으나 엔화가 원화에 대해 강세를 보인 시기에도 우리의 대일적자는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원화에 대한 엔고 시기에 대일적자가 뚜렷하게 감소한 것은 IMF 위기를 겪은 97, 98년 정도 밖에 안되며, 이 때 역시 한국경제가 위축되면서 수입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특수 요인을 감안하면 대일적자 감소가 엔고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일무역 적자와 엔화 환율의 상관관계는 낮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80년대 후반과 달리 엔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일수출이 그 만큼 늘어나지 못한 것은 아시아 각국을 중심으로 강화된 일본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80년대 후반 엔고와 함께 일본 소비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일본 수입 가전 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은 처음에 시장점유율 1위로다.
제 1 장 서 론제 1 절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국제거래의 확대로 글로벌시장이 형성되고 정보·통신·운송 기술의 혁신에 의한 거리상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다국적기업의 경영활동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글로벌경쟁시대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업들은 독자적 역량만으로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를 유지하기 어렵게 됨에 따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경영자원을 동원하여, 기술개발/ 조달/ 생산/ 판매 등 경영활동을 전세계적으로 전개하는 국제화전략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적과의 동침으로 불리는 전략적 제휴가 생존을 위한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확산되고 있다.그러나 전략적 제휴는 경쟁우위 획득을 위한 전략대안으로서 이익과 함께 내부적 활동뿐만 아니라 제휴파트너의 활동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복잡성의 증대, 자율권의 상실 및 정보 불균형 등의 위협적인 요소도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제휴기업간 관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경영자의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간 협력전략의 성공률이 저조하다는 것은 자주 언급된 바 있다.국제로지스틱스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비스제공자간, 그리고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간 제휴관계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국제물류서비스는 규제 완화의 확산으로 다수의 물류업체가 참여가능하고 서비스의 동질화가 용이하게 이루어져 경쟁이 치열해졌다. 따라서 서비스제공자와 이용자들은 단순한 거래 관계보다는 전략적 제휴를 통하여 위험을 분산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서 고객서비스를 향상시키고 비용절감을 도모하려는 목적에 따라 국제로지스틱스 당사자간 전략적 제휴의 필요성이 증대되기 시작한 것이다.이 같은 국제적인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컨테이너선사나 화주들도 서비스제공업체간 또는 서비스제공자와 이용자간 공식적 또는 비공식 적인 제휴관계를 구축하고 있거나 일부 업체들은 제휴관계의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최근까지 우리나라는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대기업 중심의 강제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문화적 특성이 다른적인 관리과정과 종료 후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지속적 전략과정에 관한 비중이 약하다. 즉, 파트너 선택은 제휴의 성공적인 수행에 결정적인 요인이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상황이 변화 할 수 있으므로 제휴의 관리적 특성이 전반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균형적인 단계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모형이 복잡하기 때문에 제휴 관리과정에 대한 개념적인 모형으로는 적합할 수 있으나, 실증적인 분석모형으로는 부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Pekar & Allio (1994)는 전략적 제휴의 관리과정을 전략개발단계, 파트너 평가단계, 계약·협정단계, 제휴운영 등의 4단계로 구분하였는데, 이는 제휴의 전략적 의의와 파트너 선정에 중점을 둔 관리단계 모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각 단계의 내용은 앞에서 살펴본 단계모형들과 유사하다.이상의 Schmitz (1994)와 Pekar & Allio(1994)의 제휴관리 단계모형 역시 앞의 조직적 변화과정과 유사한 관리과정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모형에서는 각 단계별 과업 및 준거규범이 제시되고 있지만 전략계획으로서의 의사결정상 문제가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는 요인들을 인식할 수 있는 모형의 검토가 필요하다.Yoshino & Rangan (1995)은 4단계의 전략적 제휴 전개과정을 제시하였다. 다른 연구가 제휴의 관리과정을 운영상 업무 특성에 따라 구분한 것에 비해 이들의 모형은 와 같이 제휴의 발전단계별로 고려되어야 할 전략적 규범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각 단계별 운영내용을 살펴보면 이 모형 역시 기존연구에서 제시된 단계모형과 내용상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경 영 활 동 의 재 고 찰전 략 적 재 평 가제 휴 의 역 할제 휴 전 략 의 구 체 화가 치 사 슬 의 분 해가 치 사 슬 의 재 구 성내부자원과 파트너지원예 비 시 스 템 의 구 축전 략 적 옵 션 의 유 지제 휴 의 구 축제 휴 의 중 요 성구 조 의 틀주 요 고 려 사 항협 상 의 역 할제 휴 의 평 가제 휴- 2> 전략적 제휴의 단계별 주요내용제 3 절 성공결정요인 구성개념의 이론적 배경본 절에서는 전략적 제휴의 성공결정요인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변수들의 이론적 배경을 살펴본다. 다음의 각 관점은 전략적 제휴의 고유이론은 아니지만 전략적 제휴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는데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것들로서 각 이론의 논리상 본 연구의 목적에 부합하는 바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1. 자원의존론적 관점자원의존이론에서 전략적 제휴의 생성은 기업의 외부적 의존성에서 야기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Pfeffer & Salancik, 1978)로 설명된다. 제휴 의사결정 가운데 파트너 선정은 핵심적인 과제로서 일반적으로 제휴는 강한 상호의존성을 갖는 기업간에 잘 나타난다. 따라서 자원의존이론은 조직간 상호의존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제휴파트너의 선정에 상대적으로 높은 설명력을 갖는다.자원의존이론적 배경하에서 조직간 관계형성을 설명하기 위한 연구가 많았는데(Oliver , 1990), Paulson(1976)의 연구에서는 보완적 자원을 보유함으로써 조직간 협력이 발생된다는 명제가 지지되었고) Paulson, S. K., A theory and comparative analysis of interorganizational dyads, Jouural of Sociology, Vol. 41, 1976, pp.311- 329., Burt, Christman & Kilburn(1980)은 시장제약을 줄이기 위해 기업간 협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Burt , R. S., K. P. Christman & C. Kilburn, Testing a structural theory of corporate co- operation : Interorganizational director ate ties as a strategy for avoiding market constraints on profits, American Sociological 는 조직적 능력을 가지므로 제휴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제휴에 관한 지식이 축적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보다 효율적인 제휴관리가 가능하므로 새로운 제휴를 계속적으로 개발하여 제휴네트워크가 확대된다.이러한 맥락에서 제휴의 형성은 기업이 전략수행에 가치 있는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다른 기업과 동적인 관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Miles, R. E. & Snow C. C., Organization : New concepts for new forms,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Vol. 28, No. 3, 1986, pp.62- 73. ; Thorelli, H., Networks : Between markets and hierarchies,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Vol. 7, 1986, pp.37- 51.네트워크 이론과도 일치한다. 즉, 전략적 제휴의 형성은 전략적 행위에 대한 자원기준이론적 맥락에서 검토될 수 있다. 제휴를 통하여 비거래 자산을 축적한다는 것은 곧 파트너가 보유한 자원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자신 역시 보유한 자산 일부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휴에 참여한 기업은 일부의 희생을 대가로 이익을 얻어야 하며, 이때 핵심적인 요소는 협력기업간의 보완성으로서) 보완성은 기술(skill)과 자원, 상호요구, 재무능력, 상대적 규모, 전략 및 운영정책의 양립성, 통신장애, 경영관리팀의 양립성, 파트너간의 믿음과 몰입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Killing, 1988 ; Beamish, 1987 ; Geringer , 1988).이는 파트너 선택의 중요한 판단기준의 하나이다. 많은 제휴가 가치사슬 활동을 통해 구축되었다는 것에서 보완성이 파트너 선택의 중요기준임을 유추할 수 있다. 파트너 보완성은 기술적 기량 및 자원, 전략 및 운영정책 등의 분야에 적용된다. Geringer (1988)는 파트너 선택의 첫 번째 기준으로서 한 파트너가 다른 파트너에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Shanghnessy는 성공결정요인으로 제휴의 개발단계에서 계약의 충실화를 중요시했다.Schmitz(1994)는 Bucklin & Sengupt a (1993)의 연구) Bucklin, Louis P. & Sanjit Sengupta, Organizing successful co-marketing alliances, Journal of Marketing, Vol. 57, April 1993, pp.32- 46.를 바탕으로 성공결정 요인을 추출하였다. 그의 연구는 제휴의 관리과정에서 파트너간의 관계특성과 같은 사회학적 요인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제휴의 성공결정 요인을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모형의 설정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Thomas & Trevino(1993)는 전략적 제휴의 구축과정에서 정보처리 시스템의 의의를 고찰하였다. 이들은 제휴의 성공이 정보처리 메카니즘의 선택, 제휴 수립시 힘의 관리, 정치활동 및 정보처리구조 등의 파트너간 의사소통 시스템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전략적 제휴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시장 구조, 품질 및 가격경쟁과 같은 경제적 요인에 대한 정보수집 및 분석 능력이 요구되는데,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은 전략적 제휴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인정된다. 제휴는 조직간 공동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므로 복잡성이 증대되고, 더욱이 파트너간 상이한 목표와 문화적인 배경을 갖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가 조화되지 않으면 관리상 혼란이 야기된다.Thomas & Trevino는 그들의 연구를 기초로 정보관리체계가 전략적 제휴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명제를 제시하였다) Thomas, James B. & L. K. Trevino, op.cit., pp.779- 812. 불확실성과 양의성은 파트너간 의사소통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되며, 풍부한 정보처리 메카니즘, 협력적인 갈등 해결방법, 정치적 활동, 정보처리능력이 클수록 제휴는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다.
과목: 법 경제학 (김정유 교수님)백화점 상품권의 신용카드 구입에 대한불허 법규 개선 방안학 교 : 동국 대학교학 과 : 경제학과 4학 번 : 19912742이 름 : 김 미 정1. 서 론현재는 백화점에서 상품권을 카드로 살 수 없는 법규를 만들어 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품권 카드결제 허용 여부를 놓고 신용카드 업계와 백화점 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업계간의 갈등이 커지자 정부부처 내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해지는데, 상품권 카드결제 허용의 효과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2. 본 론왜 백화점은 상품권의 카드결제를 반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상품권은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일종의 화폐인데, 백화점이 상품권을 발행 할 경우 그 시점부터 상품권이 사용되어서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는 일정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백화점이 현금으로 상품권을 팔았을 경우 그 돈을 이 기간 중 예금하면 백화점은 이자수입을 얻게 된다. 하지만 만일 백화점이 상품권에 대한 카드결제를 허용한다면, 백화점은 상품권을 사는 사람에게서 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자수입을 잃게 되기 때문에 백화점들은 상품권의 신용카드결제 허용을 반대하는 것이다.그렇지만 다른 면에서 본다면 카드결제가 백화점의 손해를 반드시 유도하는 것만은 아니다. 만약 카드결제가 허용된다면 카드로 상품권을 사면 편리하다는 이점을 이용해서 일반 소비자들의 상품권 구매가 늘어나기 때문에 상품권 매출의 증가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한도 이상의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상품권을 산 뒤 유통 시장에서 이를 되팔아 현금화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수요층도 발생한다. 그러므로 백화점이 잃게 되는 이자수입과 매출액 증가로 얻는 이익을 비교하면 백화점의 순이익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또한 신용카드사만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다. 카드 결제액이 늘어나면 카드사의 수수료 수입은 증가하지만 반면에 상품권을 산 뒤 이를 싼값에 현금으로 되파는 소위 '깡'을 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카드사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제때 대금결제를 하지 못하고 연체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신용카드사의 수익은 크게 떨어질 위험이 높다.소비자들에게 이익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소비자들은 카드 결제를 하는 것이 현금을 내는 것보다 편리하고 상품권 대금을 당장 갚을 필요가 없으므로 소비자는 그 돈을 일정기간 갖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백화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비자들도 이자소득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가 되고, 또 '깡'이 된 상품권을 산 뒤 이를 백화점에서 이용하면 결과적으로 싼값에 물건을 사게 되는 혜택을 볼 수 있다.일부에서는 이런 상품권이 대량으로 유통되면 백화점 측이 이에 맞서 물건값을 올릴 것이므로 결국 소비자의 부담이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그 한 예로 구두 상품권의 경우가 대표적이라는 이야기지만, 백화점 상품권과 구두 상품권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구두 상품권의 경우 특정 브랜드로 팔리기 때문에 값이 올라도 이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반면, 백화점 상품의 경우 어느 백화점이나 다루는 물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럴 여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한 백화점이 값을 올리면 그 백화점의 매출이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백화점들은 유명 구두 업체들이 하고 있는 가격인상 행위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Ⅰ. 들어가는 글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에도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의 사상 및 문화 전반에 걸친 유학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공자와 유학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반증해주고 있다. 공자를 가장 극단적인 보수반동가로 몰아 부치는 것부터 과격한 혁명가로 해석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儒學 은 봉건사상의 총화이며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철저하게 배격ㆍ청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현대사회에서도 유학은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계승ㆍ실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유학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과연 유학은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청산해야 할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에 불과한 것일까? 이제 오늘날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공자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보고 미래의 공자 사상의 위치에 대해 짚어 보도록 하자.Ⅱ. 내용우리는 현재에도 보이지 않는 사회 윤리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 행동이나 사고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 윤리와 가치관 역시 인간 활동의 문화적 소산이며 유산이기에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윤리 확립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를 규정하고 제약하는 인간관계와 윤리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을까?인류가 발생하여 공동생활을 하면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규칙이 생겼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세련된 형태로 집대성하고 그 가장 핵심적인 것을 다듬어 낸 것은 2500년 전에 살았던 공자와 맹자가 아니었을까 한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공자와 맹자에 대한 수많은 전론(專論)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그 수많은 전론들이 바라보는 공자나 맹자 사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더구나 공자의 사상은 박물관에 모셔 놓고 지적 호기자 자신은 저서를 남긴 일이 없을뿐더러 공자 사후 각종 공자 설화의 발전과 중국 사회의 변화에 따른 왜곡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이 공자 사상에 대한 논쟁은 그 정답을 가리기 힘들게 되었다.공자는 과묵한 편이었으며 예의를 존중하고 육체적인 안락과 부는 진정한 군자가 추구할 목표가 아니다 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금욕주의자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공자 자신은 덕과 성실에 반대되지 않는 한 쾌락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쾌락의 원천으로 학문을 사랑하였다. 쾌락이 바람직하며 인생의 필요한 일부라는 진리를 인식한 그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유교는 백성들의 향락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백성들의 쾌락을 보장할 수 있는 정부를 유교에서는 환영한다. 즉, 공자는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정부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전적인 쾌락의 방종과 무의미한 억제를 피하는 유교의 균형이 공자의 전형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다.공자는 종교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힘의 세계에 관한 일이지만, 공자는 견디기 힘든 혼란한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아주 실제적인 문제에 몰두하였다. 공자는 혈통에 의거한 것보다는 군주가 되는 자의 자질, 즉 능력이 중요하다는 혁명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통치자의 자격은 개인의 능력과 덕망에 달렸다고 공자는 개인의 노력의 중요성과 최선을 다해야 할 도덕적 책임 및 노력의 효험을 거듭 강조하였다.道는 공자 철학의 중심개념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道는 개인, 국가 및 천하가 모두 이에 따라 행동하고 또 인도되어야만 하는 방식이다. 정의나 건전한 상식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으로서의 道란 개념은 불의를 행하지 말라는 단조로운 도덕률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때로는 위험한 행동조차 요구하는 원리의 집합체이다.공자는 家를 중시하였고 국가의 축소판으로 이해하였다. 따라 있었지만 각자는 자기의 위치, 기능 및 존엄성을 갖고 있었다. 공자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신분으로 이와 같은 공동체에서 살기를 바랐다. 공자는 사해내의 모든 사람이 형제라 하여 세계국가를 이상으로 삼았다.모든 계층의 사람은 그들 스스로의 가치가 있으며, 단지 국가의 목적성취를 위한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 자체로서도 대우받아야 한다는 혁명적인 사상을 공자는 이미 오래 전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공자가 생각한 이상적 사회는 강제에 의한 사회가 아닌 자유로운 주체자로 구성된 협동사회였고, 여기서는 개인이 중요하다. 사회 구성원의 상당부분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면 그 사회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는 개인의 문제부터 착수하여 자성, 덕의 함양 및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장래 위정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한편, 공자는 모든 사람이 잠재적으로 평등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지위가 높다고 두려워하지 않았고, 가난하다고 경멸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학문과 수양을 통해서 그 잠재력을 발휘한 사람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며, 따라서 식견 있는 한 사람의 의견이 생각 없는 대중의 의견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공자가 봉건제도를 공고히 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는 공자를 잘못 오해한 것이다. 공자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에 관심이 있었다. 공자가 살았던 세상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 시대에 현저하게 결여된 것을 갖춘 국가, 즉 모든 백성이 평화와 안전 및 풍요를 향유할 수 있는 국가를 최선의 국가로 생각하였다. 국가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다 같이 그 목적에 대한 이해를 함께하고 그 이익을 함께 향유하는 협동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궁핍을 먼저 해결하고, 후에 교육을 제공해야 하며, 치자와 피치자가 어우러질 수 있는 협동적 분위기를 조성해야한다고 공자는 생각하였다. 즉, 세습귀족의 전제정치 대신 덕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모든 백성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으며 강자가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실례로 그는 행정의 중심을 군주가 아닌 대신에게 두었다. 대신의 충성은 개인인 군주가 아니라 道에 바쳐야 하며 관리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공자가 제시한 이상 사회의 모습이 인류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로선 너무나 혁명적인 사상이었던 유교는 공자 사후 급속히 백성들에게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제자마다 각기 독특한 학풍을 세우긴 했지만 공자 사상의 중요한 핵심은 변치 않고 이어져 갔다.그러나 길고도 다양한 중국 역사 속에서 그 본래의 모습이 완전하게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유교와 공자 사상에 살 을 붙이는 작업은 곧 본질적 윤리에 대한 개별적 윤리의 보강이라고 말 할 수 있을 듯 하다. 공자 사상에 붙여야 할 살 은 시대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으로 갈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을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 동본 금혼 조항에 비추어 보면 먼저 근친간의 방지라는 본질적 문제와 당시 사회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씨족사회였다는 구체적 사실을 구별해 낼 수 있다. 따라서 씨족사회가 붕괴된 오늘날엔 우생학적으로도 불리한 것으로 밝혀진 근친간을 막을 수 있는 경계 안에서 새로운 사회 규범을 세워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교조 문제에 있어서도 스승이란 학생에게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본질적인 대전제와 함께 과거 교사란 지배 계층의 자제에게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소양과 교양을 가르치던 사람이었으나 오늘날 이 같은 교육의 의미는 대중 교육과 같은 건전한 시민 양성으로 바뀌었다는 구체적 사실을 구별해 낼 수 있다. 따라서 군사부일체라는 유교 윤리에도 새로운 해석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196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는 많은 부작용이 일어났다. 서구에서 수백년에 걸쳐 일어났던 변화를 반세기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따라잡으려고 하는 욕심은 이러한 부작용들을 묵과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공백에 기인한 것이 크다.현재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그 예를 찾기 힘들게 도덕(윤리)을 하나의 교과 과목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과목을 통하여 가르치는 주된 덕목이 바로 유학의 근본사상인 忠, 孝, 禮이다. 이러한 전통사상에 대한 강조는 앞에서 말한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른 정신적 공백을 매꾸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학교 교육을 통해서 유학사상을 접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가 유학사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사상들이 교과서에 머물뿐,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교과서 밖에서 忠, 孝, 禮를 실제로 보고 배울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儒學思想을 아무도 실천하지 않는, 현실과 동떨어진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박물관의 박제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유학이 강조하는 인간관계의 핵심은 가족관계이다. 다른 인간관계는 가족관계의 연장 혹은 확대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우리의 가족제도는 농경시대의 대가족제도에서 산업화 사회의 핵가족제도로 바뀌었다. 조부모가 없이 부모와 자란 자녀들은 효를 실천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고, 사회가 급속히 분화함에 따라 가정이 잠자리로의 공간으로 기능이 좁아짐에 따라 그 교육적인 역할도 불가피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치열한 입시경쟁과 가정에서의 침묵은 공동체로서의 우리 가 아닌 개개인으로서의 나 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가정의 실추는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사이에서, 도덕주의와 물질주의 사이에서, 평등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그리고 합리주의와 인정주의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여긴다. 우리 사회의 유학적 전통은 집단주의, 도덕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연줄에 기초한 인정주의 등의 이념을 파생시켰다. 한편 해방이후 우리 사회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수용과 산업화 및 도시화 등을 겪으면서 개인주의, 물질주의, 평등주의, 그리고 합리다.
1. 서론종교는 자기완성을 얻고자 함으로 인간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종교는 전통사상의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여성을 가부장적인 제도에 예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종교는 절대적 개념(天里)으로 여겨지는 남성 중심의 교리가 아닌 인류가 창조한 하나의 문화현상이므로 그것이 처했던 역사적 시대상황과 사회현상을 배제하고 이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변천하는 시대와 다방면의 사회적인 여건에 의해 인간이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를 밝힘으로서 종교의 여성에 대한 본질적인 모습도 뚜렷히 부각 될 수 있다. 수천년 동안 인간의 깊숙히 침잠해 온 종교의 본래적 양태를 이해하지 않은 채 아무래 인권을 강조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더라도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 가 버릴 우려가 많다. 왜냐하면 인구 비례상으로 종교인구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종교만큼 인간의 심층 의식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문화 현상은 드물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 전반적으로 보면 여성의 활동이 활발한 제도종교(불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에서 남녀차별이 천리인 듯 고정 관념화하여 가부장적 제도를 고수 해왔고, 오히려 샤머니즘과 같은 확산종교에서의 남녀 평등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렇다면 종교가 여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살펴보고 다가올 미래에 종교가 여성의 중요성을 자각하여 여성해방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자.2. 본론1. 유교의 여성관유교의 여성관은 그 성질에 있어서 천과 지는 서로 다르나 관계를 가질 때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게 되어 상호 전화의 가능성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입견에 의해 양을 높이고 음을 낮추고, 남을 높이고 여를 낮추는 관념이 싹트기 시작하여 이분화· 고정화되었다. 이는 유교적 가족제도와 사회제도의 성립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여성의 순종, 복종을 당위화하였다.『주서』의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과 『논어』의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 어렵다...(위설로 인정)"라는 말로 여자 비하를 합리화하고, 『예기』에서는 삼종지도· 칠거지악을 나열함으로 여성의 독립적 인격부정과 여성의 행동거지를 남성중심사회에 알맞게 규정지어 후대 각종 여계서의 표본으로 가르쳤다. 그렇지만 공자와 맹자같은 성인들은 남녀를 예의 윤리로 구분 짓거나 사회 경제적인 생산 분담자로 구분하여서 상하 개념보다 조화되고 독립된 가족 구성원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이처럼 유교적 윤리관은 고대국가에서 가부장적 사회체제를 편성해 가는 과정에서 성립 되었기에 유교적 여성관은 시대적 문화 산물임을 보여준다.2. 기독교의 여성관창세기의 창조신화에서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의존적 존재이며, 남성에 대한 여성의 절대복종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하나라고 한다. 이는 최초 율법을 깨트린 이브에게 "남편이 널 다스리며 해산의 고통을.."이란 타락신화를 통해 기독교 여성관의 가장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고린도전서에서 계층적인 상하복종관계를(여자-남자-그리스도 -하나님) 지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남성의 지배를 자연적인 섭리로 지칭하여 결국 천주교에서는 수녀를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로 규정짓는다.이에 반해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기 되어지고 있다. 땅에서 남성이 만들어 졌다고 땅에 종속될 수 없듯이 여성의 위치 또한 종속 될 수 없다는 해석과 타락에 대한 벌로 여성에게 주어진 해산의 고통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기에 가부장적 제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한 것이 아닌 타락이후에 생겼다란 해석이다. 그렇기에 여성신학에서는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로, 마리아는 여성의 이상형으로, 복음의 사회성을 여성의 입장에서 재해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끝으로, 예수님의 평등을 가르쳐야 할 곳인 교회 안에서 여성의 민주화 운동이 사회보다 비참한 형태에 있으며 이런 뜻에서 교회내의 모든 문제가 먼저 민주화로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여겨진다.3. 이슬람교의 여성관이슬람 종교는 세계 종교들 가운데 가장 늦게 발생한 종교로 알라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5가지 실천 덕목을 갖고 있다. 종교학자들이 무하마드의 여성에 대한 견해가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슬람교가 출현하기 직전 여성들은 거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였지만(발이란 결혼풍습) 무하마드는 일부일처제와 이혼하려는 부부에게 타협점을 찾도록 하고 여성도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등 코란은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권리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전쟁으로 인해 남성이 10% 정도 감소했기에 관습과의 타협으로 일부 다체제를 허용하였다.그 후 무하마드가 죽은 후 이슬람 여성들의 지위는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하락되어 베일 속에서 종교와 학문과는 완전히 배제된다. 여성들의 삶은 오직 아들을 낳기 위한 존재, 희생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로서의 존재로만 인식되어질 뿐 혹이라도 여성들이 읽고 쓰면 엄청난 재앙이 따르고 더불어 요가와 주술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 악마적인 힘을 없애야 한다는 마녀사냥이 성행하기도 하였다.1930년에 이르러 여권의 성장으로 베일 안쓰기 운동이 벌여졌으며 대중매체에 이슬람 여성들의 생활방식이 알려짐에 따라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모든 국민들의 재능을 필요로 하게되어 여성들의 교육환경 등이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신들리기 방법을 이용하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종교적 안정장치와 신비주의 교단에서의 성소의 역할을 통해 여성의 한계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모두 진정한 신앙심의 발로로 이슬람의 여성관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려면 결국 성소를 찾는 여성의 수가 줄어들어 여성들이 절망적 생활을 벗어나도록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는 것일 것이다.4. 무속의 여성관한국 사회에서 무속이라는 종교현상은 여성학이라는 관점에서 독특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무속의 사제자나 의식에서 여성위주이고 여성참여가 압도적이어 유교문화가 남성적이라면 무속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바리공주 등) 또한 여성으로 간주되고 무속신들은 병립신관으로 위계조직을 갖고 있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여성사회 그리고 인간관계의 비계급성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조상굿에 등장하는 조상은 제사에서 보는 조상과는 달리 자신의 불만과 불평을 얘기하며 자손에게 재앙을 내리는 능동적이고 이기적인 조상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조상의 이미지가 남성에게는 긍정적이고 이상적인데 반해, 여성들에게는 시댁의 친척, 시가의 조상들로밖에 여기지 않아 여자들은 기피의 대상으로 부정적, 현실적으로 보아지고 이는 결국 한국 부계가족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개념 반영으로 보여진다.5. 불교의 여성관고대 사회의 인도 여성들은 인더스 문명 원주민들의 여성숭배 경향과 모계제 사회의 관습을 반영한 것으로 리그베다 시대의 여성 지위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보여 많은 제사와 종교의례는 개방되어 있었고 남녀는 동일하게 교육을 받았었다. 그러나 베다 후기 문헌에 이르면, 아리안족들의 부계조직 영향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하락되고 완전히 멸시받는 존재가 되어서 이 시대 여성이 존재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자아이를 낳음으로써 구원받는 것이었다. 따라서 불교가 발생하던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여성은 사회 활동을 할 수 없었으며 이는 불교 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비구니의 계율(비구 348계)을 비구계(250계)보다 많이 편찬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하려는 차원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불교에서 석가모니 붓다와 그 직제자들 시대에는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번뇌를 소멸시켜 불교가 이상으로 하는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멸 후 수세기가 경과하면서 남자는 성불하지만 여자는 불가능하다는 사상(여인불성불설: 女人不成佛說)이 부각되어 여성은 성불보다는 작복에 기울게 되고 불교 인력의 비효율적 교육·관리가 보여졌다. 법화경의 용녀성불설에서는 여인성불과 찰나성불의 두 사상를 한꺼번에 표현하면서 당시 존재하는 여인오장설로 인한 변성남자사상 (변성성불설: 變成成佛說)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대승경전시대인 2세기 ∼4세기에 이르러 남성과 여성은 같이 중생·보살로 표현됨과 더불어 『승만경』은 여래장 사상의 내용을 담아 여성의 몸 그대로 성불할 수 있다는 즉신성불(則身成佛) 사상이 표면화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