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번 : 20055855 이 름 : 오 미 경 지도교수 : 정영교수님*가정폭력가족의 이해와 간호중재목 차Ⅰ. 서 론 Ⅱ. 본 론 1.가정폭력의 개념 이해 2.가정폭력의 순환과정 이해 3.가정폭력 현황과 특성 4.가정폭력가족의 이해 5.가정폭력가족에게 발생될 수 있는 건강문제 6.가정폭력에 대한 예방 및 대책 7.가정폭력에 대한 간호중재 Ⅲ. 결론 참고문헌*Ⅰ. 서 론가정폭력은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어야 한다. 또한 가정폭력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복잡한 과정이므로 한두 가지의 방법으로는 해결 될 수 없다(McHugh, 2005). 가정폭력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 때문에 가족 이외 외부인으로부터의 도움이나 치료적인 개입이 매우 어렵다.*지역사회 또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학대 받는 가족들이 접촉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가정 폭력 대상자 조기발견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지속되는 폭력 상황으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와 충격에 처해 있는 가족들에게 적절한 예방대책과 간호중재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겠다.*가정폭력의 개념 이해 1) 가정폭력: 신체적 또는 정신적 상해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가족 구성원간에 가하는 것 2) 가족 구성원: * 배우자, 이혼관계에 있는 배우자, 동거관계에 있는 배우자 * 본인 또는 배우자의 자녀나 양자, 양녀 * 계부모와 자녀의 관계 또는 배우자와 혼외 관계에 있는 자녀의 관계 * 동거하는 친족 관계에 있는 자Ⅱ. 본 론가정폭력의 개념이해 3) 가정폭력의 종류:*스토킹, 위협 및 협박, 고립시키는 것, 가부장적 사고에 의한 권위주의의 실천 등돈을 벌거나 쓰거나 혹은 관리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는것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을 강요하거나 말이나 행동으로 신체적 정서적 상해를 입히는 것신체적상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대신 말이나 에서 해마다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271,0622614939162,155*************154591,238*************02288071997기타방임성적 학대정신적 학대신체적 학대계연도별한국여성개발원(2000)의 연구에 의하면 가정폭력행위의 원인 중 취중에 의한 행위원인이 전체의 31.3%로 가장 많고, 분노·우발이 30.7%, 현실불만이 19.4% 등으로 나타났다. 부당한 대우학대가 6.1%, 부정행위와 경제적 빈곤이 5.3%이었고, 정신결함은 1.7%로 나타나 취중에 의한 행위와 분노·우발로 인한 행위가 전체의 62%를 차지했다. 백연옥(2000)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수강명령처분을 받은 42명의 가해자 중 40.5%가 본인의 음주를, 35.7%가 경제적 어려움을 가정폭력을 행사한 원인이라고 했다.가정폭력사건의 현황과 특성 ○ 가정폭력행위 원인별 현황○ 가정보호사건 가정구성원별 현황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보면, 배우자관계가 전체 89.4%로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이 직계존비속관계로 7%, 계부모자관계 또는 적모서자관계가 1.5%, 동거하는 친족관계가 2.2%로 나타났다.가정폭력사건의 현황과 특성가정폭력사건의 현황과 특성 ○ 가정폭력 가해자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세계적으로 가해자들의 90% 정도는 남성이고, 연령을 보면 20대나 30대 보다는 주로 40대와 50대의 연령에서 발생한다. 한국에서도 동일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이 외에 경제적 수준이나 학력 또는 직업 등과 같은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대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특별한 특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우리 나라의 발표를 보면 가해자 중 대부분이 저소득 계층의 고졸 이하의 사람들이다.*○ 가정폭력이 빈발한 이유 강은실(1991)의 가족폭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살펴보면, ① 위험이 높은 시기 : 가족의 발달주기 중 어떤 시기는 특별히 폭력의 가능성이 증가될 수 있다. ② 활동의 범위와 관심이 다름 : 일차집단으로서 가족은 다양한 활동범위를 갖고 있다. 이것은처가 많다.*(3) 가정폭력 피해아동의 특성 * 소심하면서도 무감각적인 행동을 한다. *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화를 잘 내고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리는 편이며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 비정상적인 가정에 속해있는 것을 창피해하고, 친구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 가정폭력에 대해 책임과 죄책감을 느낀다. * 남과 다르다고 느끼고 수치심을 느낀다. * 신체적 두려움을 갖는다. 손을 보면 피하려 한다. * 짜증을 잘 내고 충동적이 된다.*○ 가정폭력에서 아동들이 보고 듣는 것의 예와 아동들이 폭력상황에서 간접/ 직접적으로 입는 해의 예 * 가해자가 피해자(배우자)의 몸을 쇠 방망이로 내려 치고 얼굴과 머리를 때린다. * 가해자가 피해자(배우자)의 목을 조른다. * 가해자가 피해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피해자의 머리를 차고 칼 을 들고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 가해자가 피해자의 따귀를 때리고 팔을 꺾으며 부러뜨리겠다고 위협한다. * 물건(의자, 진공 청소기 등)으로 피해자를 때리고 벽에다 피해자의 머리를 박는다. * 피해자의 등을 차고 얼굴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 질질 끌고 다닌다. * 피해자에게 매달려 있던 아이가 대신 가해자의 주먹에 맞았다.*가정폭력가족에게 발생될 수 있는 건강문제 ○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건강문제 1) 신체적 상해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호흡곤란, 골절, 실명, 청각장애 등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2) 우울과 불안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극도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들이 나타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물질남용, 자살 등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나타난다.(김선아, 김소야자, 남경아, 박정아, 이현아, 2003; WHO,2002). 3) 임신기간 중 구타는 신생아에게 저체중아, 유산과 조산 및 사산아출생의 빈도를 높인다. 모체에게는 체중증가의 저조 , 감염, 빈혈 등의 합병증을 발생한다.*○가정폭력 피해아동에게 발생될 수 있는 건강문제 (1) 감정적 영향 • 죄의식: 폭력에 책임이 자신에게 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 불안정하다. • 친구가 없다. ▶ 초등학생 (위의 증상과 더불어) • 학교 공부를 힘들어 하고 결석을 자주한다. • 집중력이 떨어진다. • 친구들과 잘 싸운다. • 어른에게 반항을 잘 한다. • 폭력적이다. • 소심하고 불안정하다 (여학생일 경우). • 우울증이 나타난다.*○ 성장과정을 중심으로 미치는 영향 ▶ 청소년 • 우울증, 폭력, 비행 등의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 • 남학생들은 가해자의 행동을 배워서 그대로따라 할수있다. • 대인관계상에 어려움이 있다. (예: 믿고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 장기 영향 * 청소년기에 갑작스럽게 행동․신체상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 사람을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다. * 지능이 낮고 성장이 느리며 건강이 안 좋다. * 불행하고 비생산적이며 폭력적인 성인이 된다.*가정폭력에 대한 예방 및 대책 ○ 여성학대의 예방 및 대책 (1) 예방적 차원 ① 여성에 대한 법적인 보호조치 : 구타당하는 아내가 신속하고 안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 ② 관계기관의 대책과 협력 체계의 마련 : 병원이나 상담소, 지역사회 등에서의 조기발견과 적절한 지지 및 원조, 상호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2) 조기발견 및 조기 대책 ① 위기차단과 보호 : 발견 즉시 즉각적인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친척집, 친구집, 병원, 긴급대피소(예 쉼터), 경찰서, 상담소, 사회사업기관, 종교기관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한다. ② 피해자의 응급치료 : 신체적 상해, 정신증상들이 있는 경우에는 신속한 의료적 처치가 필요하다. 차후의 법적인 조치가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상해 정도에 대한 의료적인 증거를 남긴다. ③ 피해자에 대한 개입 : 초기에는 지시적인 개입을 삼가고 위기개입의 자세가 요망. ④ 가해자에 대한 개입 : 가해자가 성적인 문제가 있는지, 정신병적인지, 알콜이나 약물복용에 의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 감별하는 것이 중요.*(3) 폭력재발방지 대 아니라는 것을 확신 시키는 등의 지지적 간호를 제공한다.④ 모든 의학적 , 간호학적 증거를 기록에 남기고 상처에 대한 사진 등의 증거물을 확보하고 필요시에 복사본을 제시한다. 학대는 불법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등 의료법률(Medicolegal)과 관련된 간호를 제공한다. ⑤ 학대를 당한 여성에게 필요시에는 입원을 권유하고 머무를 안전한 장소가 있는지 확인하며 피난처 등 지역사회 자원의 이름, 전화번호 등 정보를 제공한다.*1) 아동학대 피해자 간호중재 ① 학대 초기부터 그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하여 고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부모를 조기에 사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부모가 아이를 기르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도록 도와 준다. ② 임산부에게 약물남용의 위험, 자녀양육법, 양육시 접촉, 목소리, 영양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한다.③ 아동학대로 고통 받고 있는 아동의 발견에서 시작되며 직업이 있는 어머니를 가진 아동에게는 day care가 필요하며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가 홀로 집에 남아 있어 학대의 위험이 더욱 크다. 반드시 학대사실을 잘 기록하여 객관성을 유지하고 법정자료로 이용 할 수 있어야 한다. ④ 심한 고통 속에 있는 부모와 자녀에게 모든 상황을 고려한 세심한 관찰과 간호가 중요하며 지역사회내의 유요한 자원을 찾아 연결하도록 한다.*상담원이 알아야 할 관련 법률 1. 신고의무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별법-이하 생략- 제4조) 아동상담소, 가정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따른가정폭력관련상담소 및 보호시설,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따른 성폭력피해상담소 및 보호시설(이하 상담소등 )에 근무하는 상담원과 그 장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등과의 상담을 통하여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이를 즉시 신고하여야 한다 2. 비밀 엄수 등의 임무 (18조) 1) 상담소등에 근무하는 상담원과 그 장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 2) 가정보호사
과제 주제:일본의 전통 의상은 기모노이고,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은 한복이다. 두 가지 의상을 비교하고, 한복을 세계적으로 알릴방안에 대해 논하여라.자료를 찾던 중에 우연히 방송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모델들이 도전하여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겨뤄 우승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최종 도전은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고 표현해내야 이기는 것이었다. 이번 과제 모토와 비슷한 것에 관심 있게 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를 나타내는 모델은 정갈하게 차려 입은 한복을 차분한 자세와 진지하고 위엄 있는 표정으로 표현했고 일본 모델의 경우 기모노의 화려함을 짧은 보폭의 걸음과 진한 화장술, 미소 띤 얼굴로 표현하였다. 의상을 착용한 것뿐인데 그 나라의 정서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랬다.이번 주제를 통해 일본과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우리나라의 한복을 세계적으로 알릴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일본인의 작은 체구를 가리기 위해 겹쳐 입기의 미학 기모노는 한 장으로 된 사각형의 천을 몸에 감고 오비로 멋을 낸 일본의 전통의상이다. 서구화와 함께 일본인들조차 입을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전통을 계승하려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기모노 스타일을 만들어 내며 그 부활을 꿈꾸고 있다.기모노의 유래는 남방의 개방적 요소의 기초위에 일본 야마또 민족이 고온다습한 여름과 한랭한 겨울을 나기 위한대비책과 작은 체격상의 결함을 감추고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되게 되었다.기모노의 앞여밈은 사람을 기준으로 봤을 때, 왼쪽이 위로 오게 한다. 중국의 음양오행설에 근거해 왼쪽이 양이 되고 격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여며 입는 경우는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나 누가 죽었을 때이다. 기모노를 입고 나들이 할 때 적당한 보폭은 발 사이즈 정도로, 이 때 오른 손으로 옷 섶 부분을 가볍게 잡으면서 걷는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의 화려한 머리모양은 에도 시대에 생겨난 것이다. 원래 일할 때 거치적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올린 것이 점차 장식을 추가하면서 예술의 경지까지 이르렀다. 기모노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목 부분이 나오지 않는 슬립이나 탑, 옷맵시를 살리기 위해 겉에 자국이 나지 않는 스포츠브라 정도는 입어도 된다. 기모노는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서양식 옷과 달리 굴곡 없는 완만한 모양을 제일로 여긴다. 따라서 허리나 엉덩이 라인이 들어간 사람은 타월을 둘러 몸을 보정한 다음 기모노를 입는다. 남성은 약간 배가 나와 보여야 남성스럽고 기품 있어 보인다고 한다.요즘은 일본에서도 기모노를 평상복으로 입는 사람은 드물다. 일본인들이 기모노를 입을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지 않아 입학식, 졸업식,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때 입게 된다.일본은 시치고산(七五三)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이는 11월 15일에 5살의 남자 아이와 3살, 7살의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는 것으로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 시작되어 메이지 시대 시치고산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남자 아이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간 바지를 여자 아이는 홑옷과 큰 무늬로 짠 긴 옷에 여러 종류의 오비, 지갑, 부채 등을 갖춘다. 성인식은 매년 1월 둘째 주 월요일에 행해지며 여자는 후리소데, 남자는 양복을 주로 입는다. 졸업식에서 하카마를 입는 것이 예의라고 하는데 다섯 개의 문양이 들어간 것이 정식이지만 세 개나 한 개의 문양도 괜찮다. 결혼식에는 여자의 경우 흰색 기모노를 입는데 흰색은 순결을 상징하며 그 집의 가풍을 잘 보고 익히겠다는 의미가 있다는 설도 있다. 남자의 경우에는 에도 시대까지 흰색의 기모노를 입었지만 메이지 시대 이후 직업의 정장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검은 색을 입고 있다. 신랑 신부의 어머니는 등에 하나, 양 가슴과 양 소매에 각각 하나씩, 도합 다섯 군데에 가문(家紋)을 물들인 검은색 하오리를 입으며 자매의 경우 기혼자는 토메소데를 미혼자는 후리소데를 입는다. 친구들은 한 군데에 문양이 들어간 호우몬기, 세 군데에 문양이 들어간 무지(無地)를 입는다. 마지막으로 장례식의 기모노를 살펴보면 상주, 친족은 다섯 군데의 문양이 들어간 검은 상복을 입고 후쿠로 오비나 나고야 오비를 묶는 것이 정식이다. 방문객은 작은 문양이 들어간 것은 괜찮지만 여러 가지 보배를 늘어놓은 무늬인 다카라즈쿠시, 길조 무늬(吉兆柄), 소나무, 대나무, 매화 무늬(松竹梅)는 삼가야 한다.기모노는 손으로 천을 짠 뒤 정밀하고 화려한 수를 놓는 등 수공업만으로 만들어지는데 한 벌을 만드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 할 만큼 많은 손이 가야 한다. 따라서 기모노의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데 가격도 천차만별로 수십만에서 수백만 엔을 호가하고 있다. 기모노의 아름다움은 원단, 색채, 문양에 의해 결정되고 좋은 원단에 국보급 장인이 그려 넣은 작품일 경우 몇 억 원대를 호가하는 기모노가 있을 정도다.기모노 스타일이란 대나무, 매화, 오비 장식과 여밈 등으로 표현되는 스타일을 말하는데 기모노가 '동양의 신비'로 받아들여지면서 새롭게 탄생하며 일본 문화를 전 세계로 전파하고 있다. 1970년대 야마모토 요지 등 일본 디자이너들이 기모노의 넓은 소매와 오비 등을 변형시킨 의상으로 파리에 진출한 이후 '기모노 스타일'이란 대류운 복식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또, 1971년 4월 파리컬렉션에서 "일본인이 파리를 수놓았다"는 극찬을 받은 다카다 겐조 역시 기모노를 세계로 알린 디자이너다. 기모노의 선을 변형시킨 의상을 꾸준히 발표해 '기모노슬리브' 라는 용어를 패션용어사전에 실리게 했고 1997년 발렌티노를 시작으로 현대 패션 스타일로 성장했으며 1999년 장 폴 골티에는 '저패니즘'을 테마로 기모노를 변형한 의상과 게다, 게이샤의 머리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헤어스타일도 선보여 동양의 신비를 담아낸 의상으로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한복은 쭉 뻗은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조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전통 의상이다. 여성은 짧은 저고리와 넉넉한 치마로 우아한 멋을 풍겼으며, 남성은 바지저고리를 기본으로 조끼와 마고자로 멋을 냈다. 백의민족답게 기본색은 흰색이며 계절에 따라, 신분에 따라 입는 예법이나 소재, 색상이 모두 다르다. 결혼과 같은 특별한 예식에는 평민들도 귀족이 입는 화려한 빛깔의 옷과 장신구로 한껏 멋을 냈으며 최근 국내에는 한복의 장점에 실용성을 가미한 개량 한복이 자리잡아가고 있다.한복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한복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고구려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 속 벽화에서였다. 고구려는 중국 당나라시대의 의상과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한국의 왕과 몽골족 공주와의 혼사로 중국 용안시대의 옷이 한국에 들어왔고, 그것이 한복의 시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오랫동안 한복은 시대에 따라 저고리 길이, 소매통 넓이, 치마폭이 약간씩 달라질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즉 한복은 둥글고, 조용하고, 한국의 얼을 담고 있다. 실크나 면, 모시로 주로 만들어졌으며, 고름의 색상이나 소매통 색상이 여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또한 나이와 사회적 지위, 계절에 따라 색상에 변화를 줄뿐 옷의 모양은 안동의 시골 아낙이나 대통령부인이나 모두 똑같다. 18m의 원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입기 쉬운 점이 한복의 장점이다. 명절과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 주로 입혀진다.한복은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적으로 재단하고 이를 꿰매어 평면적인 옷을 만들며 이것을 다시 입체적인 인체에 맞도록 남은 부분을 주름을 잡거나 접어서 끈으로 고정시키는 형태이다. 바지의 경우에는 마루폭 이외에 활동에 필요한 여유분을 주기 위하여 사폭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누어 전후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구성방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자연적인 조건과 민족적인 미적 감각을 잘 살려준 것 이라 하겠다. 이 와 같이 한복은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져서 입어야 비로소 입체감이 형성되어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독일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 아헨 대성당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성당의 모습에 입이 쩍 벌어졌다. 웅장함과 세밀한 조각품으로 둘러싸인 아헨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독일을 대표하고 있다.먼저 아헨 대성당의 역사 및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에 대해 알아보면,아헨 대성당은 785년 무렵 샤를마뉴가 궁정예배당으로 건설하였는데, 비잔틴 요소와 프랑크 요소를 융합한 카롤링거왕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집중식 평면구도로 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대리암과 오래되고 화려한 기둥을 가져와 건축 재료로 사용하였다. 서쪽 탑은 1350년 무렵에 지었는데, 이곳에는 1239년에 만든 《성모 마리아의 성유물 상자》와 1349년 제작한 《샤를마뉴 흉상을 장식한 궤》 등의 보물을 보관하고 있다. 814년 샤를마뉴의 유해를 예배당에 안치하였고, 1165년 그가 신성로마제국의 수호성인이 되자 알프스 이북 지방 최고의 순례지가 되었다.15세기 초 고딕양식으로 만든 내진(內陣)에는 샤를마뉴의 성유물 상자를 안치하고 있으며, 벽면은 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였다. 1664년에는 예배당 지붕을 꼭대기에 탑이 있는 바로크양식의 둥근 지붕으로 바꾸었으며 1884년에는 서쪽에 첨탑을 세웠다.800년에 프랑크 왕 카롤루스 대제는 로마 황제 레오 3세에게서 서로마 제국 황제의 왕관과 지위를 받았다. 대관 후 카롤루스 대제는 아헨의 거대한 궁전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고, 이곳에 유럽 세계의 중심임을 상징하는 궁정예배당을 건설했다. 이것은 동시에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1165년에 카롤루스 대제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자, 아헨을 방문하는 순례자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 그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궁정 예배당 증축 공사가 이루어져 이윽고 독립된 대성당이 되었다. 963~1531년에 역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은 모두 이곳에서 치러졌다.독일의 서쪽 끝,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에 가까운 도시 아헨은 유럽에서는 드물게 온천이 솟는 곳이었다. 그래서 로마 시대에는 '그라누스 온천 지대'라고 불렀다. 768년에 즉위한 프랑크 왕 카롤루스 1세는 여름에는 전쟁터를 누비며 영토 확장과 국내 통일을 꾀하고, 겨울에는 궁전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800년에 대관한 뒤, 카롤루스 대제는 이 고대 로마의 온천 유적에 세워진 아헨 궁전에 자주 머물렀다. 카롤루스 대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동로마 제국의 황제와 대등하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리하여 아헨이 제2의 로마이며 유럽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궁정 예배당을 건설했다. 그는 궁정 예배당을 건설하기 전에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양쪽에서 표본을 구했다. 집중식 평면을 한 궁정 예배당의 구체적인 본보기가 된 것은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 안티오크(현 하타이)의 팔각 성당, 콘스탄티노플의 성세르기오스 카이바코스 성당이었다. 더욱이 로마의 비잔틴 요소와 게르만의 프랑크 요소를 독특하게 융합시킨 아헨의 궁정 예배당은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물로 일컬어진다. 건축은 메스 출신의 프랑크인 건축가 오도가 맡아 785년경에 착공해 805년에 완공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이탈리아에서 대리석과 오래된 건물의 호화로운 기둥 등을 건축 재료로 운반해 왔다. 아헨에서 제작한 청동문과 청동 울타리 등은 유일하게 현존하는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청동 작품이다. 높이가 32m에 이르는 팔각형의 중앙 공간은 오랫동안 알프스 이북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다. '대관의 방'과 접해 있는 서쪽 탑은 1350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여기에는 교회가 소유한 보물 가운데 유럽 최고의 보물이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었다. 현재 그 보물은 대성당 옆에 있는 보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보물관에는 로마 말기에서 카롤링거 오아조 시대를 거쳐, 호엔슈타우펜 왕조 시대에 제작된 공예품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239년에 제작된 '성모 마리아의 성유물 상자'와 카를 4세의 뜻에 따라 1349년에 제작된 '카롤루스 대제의 흉상을 장식한 궤'일 것이다. 814년에 사망한 카롤루스 대제의 유해는 예배당에 안치되어 있다.카를루스 대제의 흉상은 파손이 심해 지난 1년여 동안 복구 작업을 거쳐 이전 상태를 겨우 회복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흉상은 내부를 나무로 만든 뒤 이 위에 금과 은으로 덮는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한다.1165년에 붉은 수염왕 프리드리히 1세가 대제를 성인 반열에 올려 신성로마제국의 수호성인으로 삼자, 아헨은 알프스 이북 최고의 순례지가 되었다. 1349년 이후로 아헨에서는 7년에 한 번씩 대제의 공적을 기리는 의식이 거행되며, 순례자들은 대제의 유골이 안치된 '카롤루스 대제의 성유물 상자'가 있는 장소까지 천천히 행진한다.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예수, 성모, 성요한의 의복 조각이 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성모 마리아의 성유물 상자'를 비롯한 보물들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현재 아헨 대성당 주위에 빽빽이 솟아 있는 높은 건물들은 카롤루스 대제가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건설된 것이다.예를 들어 고딕 양식의 내진은 15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해마다 순례자들이 늘어 창건 당시의 궁정 예배당 건물로는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배당을 증축할 때 내진 벽면에는 파리의 샹트사펠을 모방해 기다란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했기 때문에 내부는 오렌지 빛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현재 내진에는 '카롤루스 대제의 성유물 상자'가 안치되어 있다. 현란한 금빛 장식이 어우러진 이 성유물 상자는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1215년 대관할 때 이 예배당에 바친 것이다. 이 밖에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창건 당시에는 소박했던 예배당 지붕이 1662년에는 꼭대기에 탑이 있는 바로크 양식의 둥근 지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서쪽 첨탑은 1884년에 건설된 것이다.사자 머리 손잡이로 잘 알려진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청동 문이 있는 서쪽 입구로 들어가 작은 홀을 가로지르면, 유명한 팔각형 중앙부가 나타난다. 중세에는 8이라는 숫자가 조화와 완벽함을 상징했다. 중앙부는 지름이 14.4m이며, 바깥쪽은 십육각형의 2층으로 구성된 주랑에 둘러싸여 있다. 튼튼한 각주에 붉고 화려한 대리석 원주와 색깔이 다른 석재를 쓴 아름다운 아치에 둘러싸인 이 중앙 공간은 보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둥근 천장의 높이는 십육각형으로 된 주랑의 평면 지름과 일치한다. 이것은 [요한묵시록] 제21장에 나와 있는,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동일하다는 천상의 예루살렘을 연상하게 한다. 둥근 천장은 화려한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지붕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쇠사슬 끝에는 작은 탑 16기와 촛대 48개가 달린 청동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이 샹들리에는 1165년 카롤루스 대제가 성인 반열에 오른 것을 기념해 프리드리히 1세가 헌납한 것이다. 주랑의 윗층 회랑은 황제와 그 수행원의 전용 공간으로, 서쪽에는 '카롤루스 대제의 왕좌'가 동쪽을 바라보며 놓여 있다. 왕좌는 대리석으로 만든 대좌와 그 위의 나무 의자로 되어 있으며, 나무 의자는 솔로몬 왕좌를 모방해 6단의 계단 위에 놓여 있다. 정면의 제단과 대칭을 이루는 형태로 놓인 왕좌는 황제의 권위가 신이 부여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의학오디세이 강신익 외 지음 역사비평사제1부 의학의 세계가 열리다질병과 신을 떼어놓다_ 합리적 의학의 탄생, 히포크라테스치료는 타고난 본능“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말은 나날이 새로운 치료법과 진단술이 쏟아지고 있는 의술에 관해서는 들어맞지 않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의술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의술자체’를 생각할 때는 전혀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의술의 기원은 언제일까? 누구도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까마득한 옛날, 인류의 탄생 때부터 일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우리는 손을 다쳤을 때 상처 부위를 반사적으로 입으로 가져가서 입술과 혀로 핥고 침을 묻히거나, 반대편 손으로 그 부위를 꼭 누른다. 그러한 행위가 무의식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라는 사살은 학습 경험이 없는 어린 아기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데서 유추할 수 있다.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병들거나 다쳤을 때 나름대로 ‘치료행위’를 한다. 최초의 인류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했을 것이고, 매우 유치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의술의 기원이라고 여길 수 있다.선사시대인들이 치료를 위해 약초를 이용한 행위는 오늘날의 의학과 일맥상통한다. 선사시대인들은 질병이나 부상도 다른 현상과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 당시에는 들어온 정령을 나가게 하고, 귀신의 저주를 푸는 것이 자연스러운 치료법이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더러 남아있는 무당의 치병굿과 비슷하다. 또한 약초에는 병과 상처를 낫게 하는 선한 정령이나 귀신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이러한 선사시대의 모습은 문명과 역사시대가 개막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더욱 세련되어갔다. 정령과 귀신 대신에 고등종교의 신이 등장해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한다고 여겼을 뿐이다.역사시대가 시작되고 몇천 년이 지나서도 질병의 발생과 치료는 어디까지나 신의 몫이었다. 지금부터 몇백 년 전까지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사정은 비슷했다.이러한 때에 히포크라테스가 나타나 그때가지의 주류적인 생각과는 한참 동떨어진 주장을 펼친다. 질병은 신이 관여하는 양?오행 등의 개념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체계화했다.의학계의 아리스토텔레스_서양의학의 집대성, 갈레노스고대 서양의학을 대표하는 인물을 두 사람 꼽으라면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를 들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서양의학의 정신이라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큰 인물이지만, 적어도 르네상스 시기까지 서양 의학의 정신이라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큰 인물이지만, 적어도 르네상스 시기까지 서양 의학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은 갈레노스의 의학 이론이었다. 갈레노스는 무엇보다도 정상적 기능의 이상을 질병으로 규정했으며, 질병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해부학적 구조의 이상’을 들었다. 이는 근대의 해부병리학적 질병 개념에 근접하는 것으로, 갈레노스 의학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갈레노스의 의학을 한의학과 갈라놓는 가장 큰 특징은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요구이다.동아시아 의학을 관통하는 지도_동양 의학의 집대성, 『동의보감』동의보감은 모든 병의 원인과 증상, 예후 판단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것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 간절히 알기를 소망하는 내용이다. 동의보감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병 치료 중심의 의학을 몸 중심의 의학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허준은 몸의 건강과 병의 예방을 병 치료에 앞서는 것으로 보았다. 허준은 정?기?신?오장육부 등 생명과 신체의 원리에 관한 부분을 내경편으로 삼고, 머리?얼굴?사지 등 몸의 겉부위를 외형편으로 삼았다. 또한 병론 일반과 각 질병별 각론을 잡병편으로 삼고, 여기에 약물 이론과 치료법을 다룬 탕액편과 침구 이론과 치료법을 담은 침구편을 덧붙였다.제2부 몸과 의학에 대한 새로운 탐구병 원인은 별들에게 물어봐_파라켈수스의 도전한시대의 의학적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꾼 ‘혁명’은 아니더라도‘혁명적’인 역할을 한 의학자들은 여럿있었다. 파라켈수스도 그러한 의학자 중 한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광물성 약재를 치료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의학에서 본초학이 발달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대와 중세의 서양의학에서도 식물성 생약재를 주로 사용이 정지되는데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육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영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육체가 살아서 움직이고 생리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육체보다 상위원리의 지배나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구성하는 뼈?근육?동맥?정맥?혈액?신경 등의 기계적인 배치와 이들의 운동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인 열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가 시계와 같이 자체적인 구조와 원리에 의해 작동됨을 시계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근대생리학의 아버지 하비..하비는 심장의 용적과 박동수를 곱해봄으로써 제한된 분량의 음식물 공급으로 단위 시간 안에 그토록 많은 혈액이 새롭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하비는 심장의 운동과 혈액순환에 대한 선구적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의 업적이 심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때문인지,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주설로 다시 돌아갔다.하비는 심장의 운동과 감각의 기원이 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장 자체에 있으며, 심장을 인체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로까지 보았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힘이 심장에서 유래하며 거기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인체해부로 의학의 새 시대를 열다_해부병리학의 탄생, 베살리우스와모르가니질병관과 치료술, 그리고 약물학 모두 전인적이고 전신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18세기 들어 본체론적인 질병관이 싹트면서 전통의학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병을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체액들 사이의 균형이 깨진 전인적인 상태가 아니라, 신체의 특정 국소 부위에 생긴 해부병리학적인 변화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18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모르가니에 의해 탄생한 장기병리학은 19세기 프랑스의 비샤에 의해 조직병리학으로 19세기 중엽에는 독일의 피르호등에 의해 세포병리학으로 발전했다. 16세기 베살리우스 이래 발달해온 인체해부학은 인간의 신체를 해체하고 분절화 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질병관을 해체하고 새로운 병리학, 즉 해부병인들을 통해 건강한 사람의 팔에 칼로 작은 상처를 내고 천연두의 농포에서 얻은 물질을 절개한 부위 안으로 밀어 넣는 인두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받은 인두 접종은 곧 독이 될 수이었다. 제너는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다. 젖짜는 사람들 중 손에 우두가 걸린 사람은 나중에도 결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소들만 걸리는 우두를 사람에게 우두균을 먼저 접종하여 앓게 한 다음 천연두균을 접종했다. 제임스는 천연두균에 아무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이렇게 제너는 정상적인 사람을 우두에 걸리게 함으로서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상으로 처음으로 증명했다. 제너의 의학은 천연두를 예방하는 안전한 방법을 발견했다는 실제적인 면뿐 아니라, 다른 동물종과의 관계를 고려해 질병의 문제를 바라볼 필요성과 계기를 처음으로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한의학에도 외과수술이 있었다_동아시아의 해부학서양의학이 단지 해부를 했기 때문에 현대의학의 해부학, 병리학, 생리학을 일궈낸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체를 해부하고 실험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서 그런 학문의 기초가 세워진 것이다. 한의학의 발전은 시체를 갈라 병이 위치한 곳을 찾아내 그곳을 집중공략한 근대 서양 의학과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이루어졌다. 죽은 시체에서 어떤 지식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체의 운용을 중시했다. 즉 몸 안팎의 균형과 불균형, 각 기관 사이의 유기적 연결에 관심을 둔 것이다. 특히 허준은 생명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몸 안의 정, 기, 신의 수양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한의학에는 민간에서 언청이라 부르는 선천적 장애에 대한 외과적 수술법이 있다. 마취제를 사용한 화타의 수술법은 한의학 역사상 가장 본격적인 수술법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런 전통은 화타이후 철저히 무시됐다. 오직 위에서 살핀 것처럼 자상으로 인한 상처의 봉합과 신체장애를 바로잡아 주는 수술, 종기 치료술 정도가 존재했을 뿐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의학적 이유라 하더라도 시체에 흠집을 리로 여겨진다.피르호에게 몸은 각각의 세포가 시민인 세포들의 국가이고 질병은 몸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 사이의 투쟁이며 변화도니 조건 속의 생명이다. 몸은 세포들의 공화국이고, 건강은 그 세포들의 민주주의가 구현된 상태이며, 질병은 세포민주주의의 파국이다. 이처럼 피르호 의학사상의 특징은 미시적이고 생물학적인 세포병리학과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정치학을 교묘히 결합시킨 데 있다. 발진티푸스 퇴치를 위한 조사관으로 파견한 곳에서 그는 정부에 제시한 처방은 놀랍게도, 위생과 영양상태의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적이고 개별적인 의학적 가이드라인이 아닌, 정치적 자유의 신장을 포함한 교육과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개혁이었다. 발진티푸스가 만연한 궁극적 원인에 대해 피르호는 특정 세균이 아닌 열악한 생활조건,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하고 진단한 것이다. 현대의학을 기초의학, 임상의학, 사회의학의 세 흐름으로 나눈다면 파르호의 의학사상은 기초의학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사회의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사회의학은 몸에 대한 생물학적 통찰을 확대한 것이다. 그러기에 끝없이 학문의 영역을 가르고 좁고 깊은 연구에만 매달리는 오늘의 의학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기념비적인 연구, 그리고 뛰어난 정치력-세균학을 개척한 파스퇴르파스퇴르의 기념비적인 업적 가운데 몇 가지만 든다면, 자연발생론을 완전히 굴복시켰고, 전염병의 세균원인설을 굳건히 세웠으며, 제멜바이스와 리스터와 사용한 무균 및 살균법의 효력을 증명했고, 생물학적 예방법의 기초를 다져 놓았다. 그의 저서 자연발생설의 검토에서 파스퇴르는 발효가 미생물의 증식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뿐만 아니라 영양분을 포함한 고깃국물에서 생물체가 증삭하는 것은 자연발생에 의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학설을 뒤집었다. 그는 백조의 목 모양으로 구부러진 플라스크를 사용한,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실험을 통해 자연발생설에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을 가하고 학자로서 명성을 얻는다. 누에의 전염병이.
『EBS 특별기획 아기 성장 보고서』프로그램 제1편, "세상을 향한 첫걸음"◈ 주요내용아기는 감각에 대한 반응을 가지고 태어난다.아이의 청각은 제일 먼저 발달되는 감각으로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반응을 보인다. 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청각이 시각이 발달하지 못한 신생아들을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창고 역할을 한다. 신생아는 높은 목소리 즉 엄마목소리에 반응을 더 보이게 된다. 임신 7개월째부터 바깥소리에 민감하게 반응 하는 태아는 7개월 된 미숙아의 반응에서 테아의 청각발달 정도를 알 수 있다.후각은 거즈 반응을 통해 엄마젖을 구분하는지에 대해 실험을 하였다. 무의식으로 입모양이 엄마젖을 묻힌 거즈를 따라감에 따라 반사행동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신생아는 무엇을 껴안으려는 듯한 동작을 보이는 모로반사(생후 3-4개월 없어짐), 잡기반사(생후8-12주 사라짐)등 20가지의 반사를 가지고 태어난다.3달째 자신의 의지로 손발을 통재 할 수 있게 되며 이것은 무의식적 팔 반사행동이 의식적 행동으로 발전되면서 자발적인 조절능력이 발달 한다.반사행동의 변화는 대뇌조직의 성장과도 관련 있다. 뇌간과 대뇌 변연계에 의해 통제되던 것이 생후 4개월 이후에는 대뇌피질로 이동하면서 자발적이고 복잡한 운동능력으로 변화함에 따라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15-20시간 50%이상 범수면 상태로 아이는 거의 잠을 잔다. 이때 활발한 대뇌 조직이 성장하게 된다.촉각은 엄마와의 접촉이 중요하다. 눈맞춤, 부드럽게 안아주기, 토닥여 주기에서 지속적인 안정적 접촉이 아동의 정서발달에 큰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미숙아에게 캥거루 케어를 통해 아이의 체중이 증가됨을 발견했다.입을 통해 아기는 물건의 모양과 질감을 확인한다. 확인된 자료는 뇌로 전달되고 뇌는 시각으로 보낸다.시각은 아주 늦게 발달을 해서, 신생아는 엄마의 얼굴 전체를 못 보고 일부만 본단다. 신생아는 18~30cm정도의 거리만 보이며 생후 2달이 되어야 엄마의 이목구비를 볼 수 있다.아이의 행동발달은 생후 2달이면 몸을 가눌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발달하면, 뒤집기를 한단다. 발차기도 많이 하는데, 이것은 걷기 위한 준비운동이다.4~5개월이면 손으로 발을 잡고, 거울보고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이 시기는 거울안의 아기가 자신인지 인지를 못하며, 20개월이 지나야 거울속의 아기가 자신인지 알고 인지를 한다.5~6개월이면 기어다니며 7개월쯤 되면 높이감각, 깊이 공포감이 생겨서 침대위에서 기어다니다가 떨어지지 않게 된다. 보통 아기가 기어다니고 1~2달이 지나면 깊이 공포감이 생긴다.물건을 잡고 일어서는 단계를 거쳐 13개월때는 잡지 않고도 걸을 수 있게 되는데 처음 걷는 아기들은 양팔을 벌리고 주먹을 꽉 쥐고 걷게 된다.16개월쯤 되면 양팔을 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되며 세상을 향한 걸음마를 하는 것이다.◈아기의 운동발달과 뇌발달의 중요성과 적용첫째, 운동 발달은 단계적?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신체 기관이나 운동기능의 발달은 앞 단계의 발달을 토대로 하여 다음 단계로 발달해가는 단계적이며 연속적인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둘째, 신체적?심리적 발달에는 이상적인 시기가 있다.운동기능이나 심리적인 발달은 급증하거나 정체하는 시기가 있다. 따라서 이 시기를 놓치면 발달에 장애가 올 수 있다.셋째, 운동 발달은 개인차가 있다.운동 발달은 속도뿐만 아니라 발달 유형에도 개인차가 있고 남녀간에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차는 선천적인 요인보다도 학습기회, 수련방법, 동기유발 등에 의한 차이가 더 크다.넷째, 운동발달은 다른 영역의 발달과도 관계가 깊다.유아기의 운동발달은 사회성, 성취동기, 정서적인 안정감, 학업성취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운동발달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영아의 운동발달은 주로 대근육 ·소근육 활동과 관련이 있으며, 이와 같이 물체를 쥐거나 조작하는 능력의 발달은 뇌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신체적인 발달과 운동 기능의 발달은 유아로 하여금 다양한 신체적인 활동에 참여하도록 한다. 이시기 유아는 활동성이 증가하므로 다양한 신체 활동 놀이를 통해서 신체 및 운동 기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유아에게 신체 활동 놀이는 신체기능 뿐 아니라 신체 발육이나 안전 능력, 정신적 성숙 및 사회성 발달의 향상을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다. 적절한 신체 활동 놀이는 신체 각 부분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와주며, 순환, 배석, 호흡 등 신체 기관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바른 자세를 갖게 한다. 또한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도 자연스럽게 발달시킨다. 신체 활동 놀이를 통해 또래와의 협동이나 규칙 지키기 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프로그램 제2편, "아기는 과학자로 태어난다"◈ 주요내용아기들은 과학자처럼 모든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탐구하려고 하고 끊임없는 실험을 해서 그 원리를 알아내려고 한다.아기가 태어날때부터 엄마가 아기를 보면서 혓바닥을 내미는 것을 자꾸 보여주면 생후 1개월이면 그 동작을 따라할 수 있다. 모방이 가능하다.생후 3개월 된 누워있는 아기에게 발에 모빌을 연결시키는 끈을 달아주면, 아기가 움직이면서 발을 움직이면 모빌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수많은 실험을 통해서 아기가 스스로 깨우친다는 것이다. 그 3개월 된 아기는 그러한 원리를 1주일간이나 기억을 한다.그래서 그 끈을 풀어놔도 자기 발을 움직이면 모빌이 움직이는줄 알고 계속 발을 움직인다.그리고 3개월 아기는 범주개념을 인지한다.아기에게 다른 종류의 고양이 그림을 두장씩 연속적으로 계속 보여주다가 말그림과 고양이 그림을 보여주면 다른때 보다 더 오랫동안 그 말그림을 쳐다본다. 그러니까 말이 고양이와 다른 종류라는 것을 안다.생후 4개월이 된 아기는 덧셈, 뺄셈의 개념을 안다.아기에게 인형을 보여주고, 스크린으로 인형을 가린후에 아기 몰래 그 인형을 치우고 스크린을 열어주면, 분명 아기 생각에는 인형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진 것을 보고 이상해서 그 곳을 아주 유심하게 오랫동안 쳐다 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형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 그렇게 오랫동안 그 곳을 쳐다보지는 않았는데, 인형이 없어지면, 아기의 뇌에서 생각하는 수개념과 달라서 이상하게 계속 본다는 것이다.5개월 된 아기는 유모차에 앉아 있을때 엄마가 앞에서 장난감을 위에서 떨어뜨리면 밑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아기는 중력이라는 원리를 인지하게 된다. 물론 중력이란 이론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위에서 뭔가를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공을 밀면 굴러간다는 사실도 안다.6개월 된 아기는 아직 대상연속성이란게 없다.즉, 갖고 놀던 장난감을 아기가 보는 앞에서 이불 밑에 숨기면 아기는 그 장남감이 없어진 줄 알고 운다는 것이다.그런데 9개월이 되면 엄마가 장난감을 이불밑에 숨기면 아기가 대상연속성이 생겨서 이불밑의 장난감을 찾아낸다.그래서 아기는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은 아기들에게 까꿍놀이를 하면서 아기가 대상연속성이 생기게 훈련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인지하는 것은 만 5세정도 되면 가능하다.예를 들어서 빼빼로 통에 엄마가 크레파스를 넣어두고, 만 3살의 아이에게 그 사실을 보여준 다음, 다른 사람은 그 빼빼로 통에 뭐가 있다고 생각할까라고 물어보면, 만 3살 아이는 다른 사람도 그 통에 크레파스가 있다고 생각할꺼라고 한다. 그것은 만 3살아이는 자신이 아는 사실을 남도 안다고 생각해서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만 5살의 아이에게 같은 실험을 하면,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은 그 통에 빼빼로가 들어 있을거라고 얘기를 한다.이런 여러가지 실험이나 연구 결과를 통해서 만0~3세에는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기는 백지로 태어나기 때문에 흡수력에 뛰어나고, 잠재력이 무한하다.그리고 아기는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만져보려고 하고, 아주 신기해 한다. 만져보고 입에 넣어보면서 이 세상에 대해서 탐구하고 실험하는 것이다. 아기는 스스로 깨달아 간다.15개월쯤 되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이는 의자를 갖고 가서 의자에 올라서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즉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탐구한다.아기는 이와 같이 스스로 실험을 무한적으로 반복하면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이 세계에 대해서 탐구를 하면서, 그것을 성취하면 자신감이 생긴다.◈아기의 인지발달의 중요성과 적용인지 ; 개체가 그가 속한 세계 및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대상에 익숙해지는 과정환경에 대한 적응능력** 인지발달 과정감각을 통해 정보를 모음 → 정보의 활용 → 대상과 그들 자신, 그들의 세계와의관계에 대해 이해 → 인지의 발달 → 추상적사고 논리적 사고 높은 수준의 지적기능 및 수행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됨감각운동기(출생~2세) : 자극은 감각이고 반응은 운동으로 간주.대상영속성 개념의 습득전조작기(2~7세) : 조작기로 발달해가는 일종의 과도기.상징놀이, 자기중심적 사고, 물활론, 직관적 사고보존의 개념이 없음구체적 조작기(7~11세) : 논리적 조작이 가능, 보존개념의 획득.사물들 사이의 관계성이해.형식적 조작기(11~15세) :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상황을 넘어서 상징적인 추론가능.조합적 사고 가능.인지감각? 인지 및 언어발달은 물론, 학습 장애아를 치료하기 위한 주요 기능 훈련의 기초가 되 는 실제적 프로그램을 만든다.? 지각은 유아나 어린 아동의 지적발달의 기본이 되며 모든 인지와 지식의 기본? 지각발달 과정 중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감각적 운동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