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고전적 모델제1장 고대 민주주의 : 아테네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많은 경쟁적인 그리스 세력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도시국가로 등장하였다, 해안에 위치하면 내륙무역과 해상무역이 성장하고 그러한 양상은 도시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초기 도시국가(폴리스)는 토지 소유, 상업,무역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참주와 독재자의 참주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형태는 사회의 일부분만 부의 성장을 맞보게 할뿐 빈자는 항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인구의 팽창은 특권계급에게 압력을 가중시켜 치열한 투쟁이 뒤따르게 되었다. 이렇듯 복잡하고 치열한 정치적 상황속에서 특권계급은 조금씩 양보를 해야만 했고 특히 아테네에서는 이러한 기회를 잘 포착하여 소,중규모의 농장주와 일부 소농의 경제적 자립성과 지위를 향상 시켰다. 이렇게 등장한 독립시민들은 노예제의 확장과 더불어 활동범위가 증가하고 도시 국가와의 동질성과 연대감의 획득으로 문자가 발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동질성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도시국가의 정체에도 혁신이 이루어져 수세대 동안 계승되어 온 불문, 성문의 법전이 변화되었다. 기원전 6세기중엽 최초의 민주적 정체가 키오스에 나타났으며 다른 도시국가들도 각자의 특수성을 간직한 채 민주정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정치발전 과정의 정점에 아테네라는 도시국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민주주의의 발전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아니라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지속적 변화과정의 산물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같은 역사적 변화과정이 왜 민주주의의 형성으로 귀착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중 한가지는 응집력있는 소규모 공동체라는 상황 속에서 경제적,군사적으로 독립된 시민의 등장이 결합되어 민주적 생활방식이 육성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치적 태만과 책임의 문제는 거의 회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의 근간이었던 아테네에서조차 인민(demos)는 성인 남자로만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정치적 이상과 고 시민들이 직접 법을 제정하고 이러한 법을 엄격하게 준수했다. 이런 의미에서 법의 지배, 적합한 과정, 입헌적 통치의 개념들은 도시국가의 정치에 가장 최초로 나타났던 것이다. 고대 아테네에서의 정의란 도시국가에서 시민의 역할 및 지위의 확보와 실현이었다. 고대 민주주의의 가장 뛰어난 설명중의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민주주의 자들에게 자유와 평등은 뗄 수 없이 연계되어 있다, 즉 고대민주주의는 자유를 의미하고 자유는 곧 평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제도적 특징전체 시민은 아테네의 주권체인 민회를 형성한다. 아테네 내에서의 모든 중요한 문제는 토론과 결정을 위해 민회에 소집된 시민에게 제출 되었다. 민회는 아테네 국가의 정치적 사항을 결정하였다. 모든 문제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다면 정확히 해결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만장일치가 항상 추구 되었지만 의견 차이의 가능성, 개인적 이익의 충돌가능성도 분명히 인식되었다.민회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수결 원칙의 공식표결에 해결했는데 이상은 어디까지나 합의 였고 대부분의 문제가 과연 표결에 회부되었는지도 분명치 않다.고대 민주주의의 편협성아테네의 정치는 모두 성인 남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20세 이상의 아테네 남자만이 시민권자격이 있었는데 아테네 민주주의는 가부장의 민주주의로서 여성이나 노예, 이민자는 엄격하게 제약받았다. 즉 고대의 정치적 평등의 관념은 아테네 출신의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분명히 고대의 아테네 정치는 비민주적인 기반 위에 서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소수의 지배와 다수에 의한 정치 사이의 선택은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정치적 안정은 정치체제의 내적 운용이 아니라 성공적인 정복 국가로서의 역사 때문에 성취되었다. 군사적 성공은 아테네 시민의 거의 모든 계층에 물질적 이득을 가져다 주어 승리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시민들간의 공동기반의 형성에 이바지했던 것이다.민주주의 비판자-플라톤플라톤의 생노인을 두려워하거나 존경하지 않게 되고 아주 조그마한 제약이라도 참을 수 없어지게 됨으로써 사회의 응집력은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한 응집력의 약화는 파벌을 만들게 되고 그들이 자기의 이익만을 내세움으로써 공동체의 선과 사회 정의는 무너진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해체될 것으로 보았다. 파벌투쟁에서 지도자들은 개별 목적을 이루려 할 것이며 상대파벌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개인병력을 갖기 위한 명분이 생김으로써 국가의 지배권을 장악하기가 수월해 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참주는 일단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 자기 자신만을 돌보게 된다. 결국 플라톤이 내세우는 궁극적인 주장은 참주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교육받은 철학자만이 지혜의 지배로 세상을 바로 이끌어 나갈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론'에 나타난 플라톤의 사상은 '정치가론'이나 법률론'에서 어느 정도 완화됨을 알 수 있다. 이 저작들은 이상국가와 대립되는 현실국가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대중적 동의와 참여 없이는 지배가 유지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공적 권력을 맡은 철인왕의 정당한 권력범위를 규정하는 양식으로서 법의 지배의 중요성 또한 인정하였다. 특히 군주제와 민주제의 혼합요소로 이루어진 '혼합국가'이론이 소개되어 후에 아리스토텔레스나 몽테스키외에 의해 이어지게 된다.@군사정권인 제국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고대 민주주의의 쇠퇴원인을 해외식민지의 상황변화와 아테네 내부요소에서 모두 찾아 볼 수있다. 국내와 해외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관료제적 중심이 없었기 때문에 무역과 경제의 운용의 어려움이 가중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경쟁국가의 침략으로 아테네 민주주의는 결국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비록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고 어느 정도의 한계도 지니고 있지만 다수에 의한 정치, 정치에 있어서의 평등한 권리와 권한행사를 시행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음을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제 2장 보호민주주의의 발전정의 행정이며 진정한 기독교는 이현세적 삶의 문제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중세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세는 정치 공동체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민주주의 관념을 위한 훌륭한 저작들을 남기지 못했다. 더군다나 유럽의 몇몇 정치적 혁신이 있긴 했으나 중요한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 체계로 형성되지 못했다.*아퀴나스는 세속적 지배권의 영역과 정신적 지배권의 영역의 구분을 재고찰하였다. 그의 저작의 많은 불안정한 측면들 중에서 중심이 되는 주장은 군주제가 최선의 통치형태이지만 무제한의 권위를 부여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는 교회에 대한 판결에 참여할 수 없고 자연법이 계속적으로 위배된다면 지배자에 대한 반란도 정당화된다. 따라서 그는 자유민주주의 전통의 발전을 위해 중심요소인 제한적 입헌주의 정부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 했던 사상가이며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일축하자면 종래에 어거스틴이 영권을 속권보다 훨씬 우위에 두었다면 아퀴나스는 속권과 영권을 대등한 위치에서 고찰하였던 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마키아벨리는 시민적 인문주의 또는 고대 공화주의를 제시한 사상가로서 세속권력이 사회운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국가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데 반대하여 정치의 원리를 도덕과 종교로부터 도출하기보다는 역사의 구체적인 국가정치 관계로부터 도출하는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국가론 사상에 새로운 단계를 기초했다. {로마사론}과 {군주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그의 국가관과 사회관은 휴머니즘적인 선행이론가들과 동시대인들의 사상을 뛰어넘고 있다. 고대역사의 연구는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의 세 주요 통치가 모두 본질적으로 불안정하였으며 쇠퇴와 타락의 주기를 만들었으며 초기 진보적 발전의 시기이후 군주제는 참주정으로 귀족제는 과두제로 민주제는 무정부상태로 그리고는 다시 군주제롤 복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항상 민주주의와 같이 혼란스러운 정치세계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정치의 과제라고 본다. 마키아벨리가 현실 세계와 정치상황을 그토로운 상태로 넘어오게 만든 것이 바로 자연법이다. 홉스에게 자연법이란 이성에 의하여 발견된 계율, 또는 일반 법칙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권을 침해하거나 자연권에 제한을 가하기 위자연 상태를 종식시키고 시민 사회의 평화로운 상태로 넘어오게 만든 것이 한 것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욕구, 힘의 확장의 욕구를 최대한 달성하고자 하는 법칙이다. 즉 홉스에게 이성 능력이란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의 도구적 합리성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자연권을 누리고자 하는 개인이 모여 있을때 그 결과는 끝없는 생존 투쟁, 그유명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법에 따르면, 결국 자연 상태에서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서로를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이것은 자기 보존을 위한 무한한 힘의 추구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상호 양도하는'사회계약'을 의미하게 한다. 그러나 다양한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한 시민 사회에서 계약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을 증명할 수 없어서 국가라는, 강제력을 독점하는 '거대한 괴물(리바이어던)'을 상정하게 된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본질덕인 특징은 국내외의 평화를 지키고 회복하는 데에 필수적인 독점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홉스는 이러한 독점권이 신민들에게 분할 되거나 양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절대 국가가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자만 이것이 곧 도덕적인 우월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고. 목적은 인간의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의 보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자연법에 의해 신민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고 신민 또한 폭력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 을 누리기 위해 국가 권력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로크는 시민적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개인적 자유와 종교적 관용의 교리(敎理)를 강력히 옹호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어 절대왕정을 반박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신으로부터 평등한 자기보존권, 즉 자연권을 부여받았으므로 왕정에 의하여 자연.
계급이론 : 다원적 엘리트에서 지배계급 및 대중으로다원적 엘리트 파우어 엘리트 권력구조 순환적 엘리트 지배엘리트 통치계급 그리고 지배계급등과 같은 용어는 사회계급에 관한 문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용어는 과거의 사상에서 유래된 것인데 마르크스와 베버는 각기 상이한 사상적 고찰을 통해 이러한 용어들을 언급하고 있다.*마르크스그는 다양한 역사적 시기와 생산약식들에 관련된 생산관계를 기술하고 분석하기 위해 계급개념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지주 산업자본가 노동자라는 3개의 주요 계급에 대해 언급했다. 한쪽에는 생산수단의 소유자 및 근대적 자본가인 부르조아가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근대적 임노동자가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반되는 세력간의 갈등을 그의 연구의 주요관심사로 삼았다. 그의 분석에 있어서 핵심적 초점은 지배계급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갈등상태에 놓여 있는 지배계급과 피지배 대중간의 관계 그리고 피지배계급에 대한 착취에서 기인하는 특정 지배계급의 생산에 대한 물질적 지배와 사고에 대한 지적지배가 초래한 투쟁관계 등에 맞추어 지고 있다.*베버그는 신분집단과 더불어 계급이 공동체를 지배하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신분집단은 경제적 계급내에서 발견되는 데 시장의 요구에 따라서 계층화 되고 위계화 되어진 다양한 이익과 선호를 반영한다. 베버는 또한 계급분절화가 민족주의와 종족적 충성심에서 비롯 된다고 주장한 만면 마르크스는 계급의식이 프롤레탈리아를 혁명세력으로 공고화 시킨다고 믿었다.1.다원주의다원주의는 민주주의가 다양한 이익과 권력분산의 전제 위에서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 이론은 자유주의적인 경제적 정치적 사상에 연유한다. 이러한 다원주의자들 간에는 몇개의 명백한 입장들이 상존하고 있는데 그 첫째는 민주주의 엘리트 이론이다. 그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엘리트 순환을 강조한다. 파레토는 이것을 엘리트 순환이론이라고 불렀으며 모스카의 지배계급이론 또한 단순한 모델이 어떤 특정의 갈등을 통합하는 게임이론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째의 흐름은 다원주의 내에서 지배적인 것인데 기능주의적 균형이론으로 나아간다. 어느 한 계급집단이 정치에 도전하면 그것은 새로운 균형을 낳는데 즉 정치는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이익들간에 평화를 유지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3) 다원주의와 사회주의*달그는 조직적 다원주의와 갈등적 다원주의를 구분했다. 조직적 다원주의는 조직체 수효가 증가함에 따라 그 자율성도 증가함을 의미하고 갈등적 다원주의는 비교적 지속적인 균열의 유형과 회수가 그 주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달은 조직적다원주의는 오직 자본주의의 산물이지 만은 않다고 시사했다. 그는 사회주의 경제가 고도로 지방분권화되고 다원화 될 수 있으며 아울러 지방 분권화된 사회주의 질서는 조직적 다원주의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달은 갈등적 다원주의 하에서의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그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반드시 덜 조직화된 다원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조직적 다원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또는 사회적 소유에 따른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결정의 지방 분권화의 정도 및 기업에 허용되는 자율성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1950년 이후의 유고 1968년 초의 체코 그리고 아옌데 정권의 칠레 1974년 이후의 포르투갈이 조직적 다원주의의 실례라고 주장했다.*다렌도르프그는 에서 마르크스의 계급사회에 대한 이론의 수립을 시도하면서 최근의 계급과 계급갈등이론을 검토하였고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으로 결론짓고 있다. 그의 저술에서의 계급분석을 통해 전체주의 특히 공산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일원적 구조 그리고 권위의 독점과는 대조적으로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최소로 감소됨을 나타낸다.*마르크스 주의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잉여를 전유하여 필연적으로 소유자와 노동자들간에 노동분업이 존재하는 계급사회에 초점을 맞춘다. 사. 돔호프는 기업의 간부직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클럽 및 정책집단들의 조직망을 연구한 것이다.→ 비판골드와로 및 라이트는 돔호프의 연구가 도구주의적이고 중요한 직위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간의 연계를 증명하는 데 한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에스핑-엔더슨 프리들랜드 그리고 라이트 등은 돔호프의 이론은 기업적 자유주의 이론을 통합한 것으로 도구주의의 정교한 수정이라고 언급했다.→ 돔호프의 대항그는 그의 지배계급 개념이 마르크스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비판에 대항했다. 그는 자신을 기업적인 자유주의적 도구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며 그의 시각은 조직망이라는 용어로 개념화된 권력구조 연구와 모순되지 않는 계급투쟁에 대한 분석을 포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돔호프는 그의 연구를 개인적 그리고 자의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좌파의 비판에 반대한다. 그는 자신은 도구주의자가 아니지만 그의 이론이 독자들에게 계급을 단일 계급 이상의 동적인 변증법적 관계보다는 오히려 정태적이고 1차원 적으로 보이게 된다는 점을 시인하였다.3)마르크스주의적 도구주의 : 밀리반드밀리반드의 는 도구주의적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는 다원주의 이론을 공격함으로써 자본주의 하에서의 국가와 계급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공헌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은 경제력을 장악하고 국가를 사회지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그는 자본주의하의 두 계급 즉 소유하고 통제하는 계급과 노동하는 계급에 대해 언급했다. 이 양 극단 계급의 중간에 두개의 중간계급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전문직업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가와 중소 농민들이다. 아울러 국가를 운영하는 다수의 전문가들도 존재한다고 한다. 밀리반드는 국가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지만 반드시 자본가들의 명령에 따라 작동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근까지 계급과 국가의관계를 지배해온 마르크스적 사고는 국가는 곧 집행위원회라는 도구주의적 해석이었으므로 밀리반드의 이러한 해석은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조종한다는 포함한다. 이때 국가는 억압과 개입의 힘으로서 부르조아와 노동자간의 계급투쟁에서 부르조아와 그 동맹세력을 옹호한다. 알퉤세는 이와같이 국가권력과 억압적인 국가기구를 구분하고 국가기구의 구조적 요소들을 연구하였는데 억압적 국가기구와 관련하여 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다원성을 언급하였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란 별개의 그리고 전문화된 여러제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교회 등의 종교적 체계 학교 가정 정당 노조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문화사업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사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며 반대로 억압적 국가기구는 공적인 영역에 관계한다.전자는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에 의해 기능하고 후자는 폭력에 의해 기능한다. 이와같은 분리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억압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활용하는 지배계급의 실제적 통일성을 감추어 줄 수는 없다. 이러한 조건들이 역사적 시기를 거치면서 생산관계를 재생산해내는 것이다.→ 비판알튀세의 구조에 대한 강조는 비판가들로 하여금 그가 실증주의자라고 주장하게끔 만들었다. 즉 비판가들은 그가 사회현상들을 분리시켜 취급함으로써 사회현상들은 정태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따. 그리고 그가 과학적 방법을 지식추구의 절대적 수단으로 격상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풀란차스그는 국가와 계급에 대한 알튀세의 구조주의적 모델을 정교히 하였다. 프랑스의 구조주의적 시각에 따라 풀란차스는 일반적으로 영향력있는 인사들 보다 사회의 구조가 국가기능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는 경제의 모순들을 발견해서 그리고 국가가 어떻게 그러한 모순들을 약화 내지 제거하는가를 분석하고자 사회내의 계급구조를 조사하였다. 그의 저작들ㅇ느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미국과 영국의 비판가들은 플란차스가 마르크스적 정치이론 특히 국가 계급 그리고 권력의 측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했다. 그의 사상의 본질적 측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플란차스는 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기능 그리고 국가가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에 미치는 영향등을 이론화 했다. 국가는 자본주의사회 전체를' 가 최초로 사용한 중심 주변부 개념을 확대시켰다. 또한 그는 민족국가 내부의 계급개념을 초월하고자 하였는데 그렇게 때문에 내적 식민주의에 대한 계급분석을 주장한 멕시코의 정치사회학자 카사노바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와 비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저작에서 공히 발견되는 민족부르조아에 대한 과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피하고 있다.5)구조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구조주의 이론의 주요한 문제점은 마르크스 초기저작 및 이 장의 후반부에서 취급할 비판이론의 주요 관심사인 계급의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계급행동을 거의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에스핑 엔더슨, 프리들랜드 그리고 라이트는 정치적 투입과 국가활동 산출에 대한 억제를 연결하는 이론이 없음을 지적했다. 구조주의나 도구주의는 공히 이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존 몰렌코프는 구조주의자들이 권력구조 연구를 예증하는 도구주의에 대해 유익한 비판을 했다고 믿었다 동시에 경제적 구조조의와 정치적 구조주의는 공히 부적절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째 경제적 구조주의는 국가를 피상적 개념으로 그리고 일종의 체계적인 대조표로 한정시킨다. 둘째 플란차스같은 정치적 구조주의자들은 이데올로기적이고도 억압적인 제도들이 자본주의를 유지시킨다고 본다.4.비판주의 : 이념과 의식여기서는 상부구조, 국가의 활동 이데올로기 계급의식등의 성격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던 초기 마르크스와 그 후계자들의 비판적인 연구에 관해 다룰 것이다. 비판이론은 초기 마르크스가 헤겔을 비판한 데서부터 비롯된다. 마르크스의 헤겔의 국가관념에 대한 비판이 비판적 이론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헤겔은 시민사회 즉 사적인 사회와 국가를 구분했으나 그는 또한 이 간극이 극복되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이에 반해 이 명제가 잘 못도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시민사회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보면서 국가를 부르조아가 자신들의 재산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채택한 것으로 간주했다. 헤겔에 대한 그 자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국가의 정치이론 변증법적 방법의 세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