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Lennon, lmagine386세대의 민주화운동을 전해들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찡해짐을 느낀다. 사적인 행복을 버리고 불구덩이로 뛰어든 내 또래였을 사람들. 그 때 그들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의 짐작보다도 훨씬 거대하고 잔인했을 독재정권에 대해 무엇을 믿고 앞장서 저항할 용기가 있었을까. 민주화를 향한 대규모 데모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권과 정의수호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긍정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우러러보게 된다.11월, 먼 나라 미국의 대선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지구상에서 손꼽힐 만한 힘을 가지게 될 사람.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세계의 전쟁, 분쟁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달렸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라크와 북한의 위기는 계속 조장될 것인가 타협될 것인가,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게 될 것인가.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전쟁들, 종교분쟁, 역사분쟁, 민족분쟁 그리고 우리 정치권의 계속되는 싸움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대립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대립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혹시 자신들의 이기주의에 의해 다수를 혼란과 공포로 몰고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감출 수 없다.모두가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탐욕을 부릴 필요도 없고 굶주릴 필요도 없고, 인류애가 넘쳐나는 사회. 약자는 보호받고 소수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는 사회. John Lennon이 lmagine에서 노래한 바로 그런 사회......과연 무엇이 우리의 희망을 이루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문화와 인간 본연의 정서적 치유력에서 그 힘을 찾아야 한다. 비현실적인 몽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으나, 평화에 대한 접근방법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날로 발전해가는 폭력의 기술력을 결코 제어할 수 없다. 슬픔과 분노가 우리를 가득채울 때일수록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우리와 같은 아픔에 함께 시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내가 먼저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의 행복과 슬픔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 30년 전 John Lennon이 인류에게 호소한 메시지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강의석, 종교의 자유이 사건은 단지 강의석 개인과 대광고등학교라는 한 종교학교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강군과도 같이 선택권 없이 입학한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강요당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대표하는 사안으로 보아야 한다.종교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며 어떤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는 가치이다. 강의석 군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종교학교에 배정되었고 종교의 자유에 의해 예배선택권을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종교교육을 중시하는 종교학교의 건학이념 역시,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학교의 폐교'를 감수하고도 지켜온 정신으로 역시 가볍게 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사인이 설립한 사립학교인 만큼 국민정서와 사회규범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교육이라면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는 것이 설립자의 자유이다. 또한 정부의 고교평준화제도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학생 선발권을 빼앗긴 학교 또한 피해자라 볼 수 있다.이렇듯 종교의 자유와 건학이념은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사학의 건학이념을 존중하지만 그를 학생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지금은 종교학교가 처음 설립되던 시점과는 사회 환경이 크게 변화하였다. 그리고 강군은 학교의 이념을 타파하라는 주장이 아닌, 학생들에게 종교교육을 강요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광고는 기독교의 사랑과 교육자로서의 관용으로, 종교가 다르거나 가지지 않은 학생들을 조금 배려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헌법은 종교의 자유만을 보장해줬을 뿐이지 종교교육의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종교학교에서 그 종교를 가지지 않는 학생들을 다른 활동으로 대치시킨다는 것은 변화된 환경에 맞춘 방법상의 변화일 뿐, 그들 학교의 특성을 무시하는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웃집 토토로』에 관한 분석Ⅰ. 서론강의를 통해 접한 애니메이션들 중 상당수는, 우리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하여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대다수는 로봇과 같은 SF적인 도구를 함께 이용하여, 21C 이후의 미래사회에 대한 감독의 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였다.그러나 본인은 미래사회를 탐구하고 걱정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 현대사회를 돌아보고 각성하기를 원한다. 『이웃집 토토로』를 주제로 설정한 이유는 가장 처음으로 접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개인적 애착이기도 하거니와 동영상 속의 배경과 메시지가 본인이 추구하는 본질,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따뜻함과 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본 레포트에서는 『이웃집 토토로』에 녹아 있는 여러 가지 의미에 대해, 주관적 입장에서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애니메이션은 영화로 보여주기 어려운, 극도로 아름답고 순수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용이하다. 『이웃집 토토로』역시 모든 이들이 꿈꿔 보았음직한 보편적인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어 넒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토토로라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창조, 아이들을 비롯한 어른들의 동심까지도 불러일으킨 것이다. 또한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채를 아름답게 사용하여 순수한 동심을 조화롭게 표현하였다.『이웃집 토토로』에는 숲이 등장하고 토토로가 바로 그 숲의 정령이다. 여기에서의 숲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삶의 터전이기 보다는 생명의 원천지인 것이다. 토토로의 숲은 평화와 따뜻함을 상징하며 동시에 밝혀지지 않은 신비에 대한 경외심, 자연의 거대하고 심오함을 내포하고 있다.숲과 함께 배경을 이루는 마을은 서로 보살펴주는 이웃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이 그리워하는 이웃 간 공동체 삶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이것은 개인화와 익명성 속에서 종종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과 대조되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웃집 토토로』는 산업화로 피폐해진 도시의 흔적들을 최대한 배제하여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을 최대한 느끼도록 하고 있다. 또한 샤머니즘과 같은 토속신앙을 바탕으로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 자연의 포용력을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잠시 광고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최근 성공하는 광고모델에는 3B 즉 beauty(미녀), baby(아기), beast(동물)가 있다. 일단 3B가 등장하면 대부분의 관객은 호감을 가진다고 판단, 예상 외로 많은 광고들이 3B 모델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광고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다.『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는, 부엉이와 너구리 모습에 일본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도깨비 이미지를 첨가한 상상 속의 동물이다. { 황의웅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도서출판 예솔.또한 주인공으로는 어린아이 두 명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왜 하필 어린아이들이었을까……. 아마도 미래사회의 가능성과 해결주체를 순수함과 수용성을 지닌 어린아이들에게서 찾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편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미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그것에 의하여 정보를 구성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토토로를 더 이상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이다.그럼 여기서 우리는 두 주인공이 왜 모두 여자아이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둘 중의 한 명 정도는 남자아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본인은 이 해답을 여성과 남성의 본성에서 찾았다. 원시시대 때부터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공격하는 것은 주로 남성의 몫이었다. 따라서 자연의 신비에 대해 논하고 인간과의 공존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순응적이고 친화적인 본성이 더욱 적절하지 않았을까.
Ⅰ. 서 론케이블TV의 등장으로 대중화된 뮤직비디오는 음악의 느낌을 전하고 음반을 홍보하는 데 있어서 이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더 이상 뮤직비디오는 단순히 음악의 보조역할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뮤직비디오가 짧은 시간 내 급격히 발달해 온 때문인지 여러 측면에서 아쉬운 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상의 왜곡 또한 그 중 눈에 띄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섹시한 이미지와 과도한 노출로 여성을 남성의 관음대상으로 부추기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가수를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소 노출을 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단지 그렇게만 보기에는 왜곡의 정도가 매우 심하였다. 본 레포트에서는 한국 뮤직비디오에서 여성상이 어떠한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살피고, 세 편의 비교분석을 통해 그 양상을 짚어보도록 하겠다.Ⅱ. 뮤직 비디오 비교1. 이효리 <10 minute>① 노래 특징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애인이 있는 남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내용으로, 화자인 여성이 남성보다 주도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이고 다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Ⅰ. 서 론조선 초기의 개방적 사회체제는, 경국대전이 반포된 성종대부터 양반관료 중심의 폐쇄적 사회체제로 변모되어 갔다. 이에 따라 대내적으로는 양인의 사민화현상이 확대됨으로써 신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한편 군역인구가 급속히 감소하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사대교린에 바탕을 둔 쇄국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북노남왜의 침략을 당하게 되고 게다가 난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조선 초기부터 천인들의 무과 응시를 원칙적으로 금지해 오던 정부는, 임진왜란으로 군액 징발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필요한 군병의 확보를 위하여 천인의 무과급제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천인의 무과급제를 통한 신분상승과 관련된 기존의 연구시각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임진왜란 이후 천인의 무과급제가 광범하게 실현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과 양 호란 등 큰 전란에도 불구하고 양반제 사회가 지속됨으로써 천인의 무과급제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견해이다.본 레포트는 전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이홍두 교수님의 연구논문 속에서 재발견하고 요약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천인이 무과를 통해 신분상승하는 과정을 다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임진왜란 직후부터 선조대 말까지의 천인무과 시기, 둘째는 전란은 끝났지만 후금의 침략이 예상되었던 광해군대의 광취무과 시기, 셋째는 인조대부터 숙종대까지의 만과 시기이다.1. 천인무과와 신분변동본래 조선 전기에는 양인 상층 이상만 무과에 급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왜란으로 국가적 위기에 처하고 군역인구마저 부족하자, 국가적 위기에 처한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무과의 제반 규정을 완화하고 선발인원을 대폭 증원하게 된다.양반관료들은 이러한 천인무과의 설치가 내키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때문에 그 설치를 정면으로 반대할 수 없었다. 결국 임진왜란은 조선 전기 엄격한 신분질서를 크게 붕괴시킨 전환점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선조대에 설치되었던 공사천무과는 단 한번도 시행하지 못하고 폐지되게 된다. 사회불변동론자들은 이를 신분불변동의 증거로 내세우지만, 사실 이 기간 중에도 정부의 묵인 하에, 한편으로는 응시자의 불법적 수단에 의한 천인의 무과실시는 광범위하게 실현되었다.결국, 천인무과는 천인의 신분상승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2. 광취무과와 신분변동임진왜란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어 전란기간보다 신분변동 요인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는 광해군대에도, 천인들의 무과급제는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후금세력의 급팽창으로 국경을 방어할 부방군사가 필요하였고, 양반계급과 부유한 양인 상층이 군역에서 면제되거나 혹은 군역을 회피하는 현상이 확대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광해군의 개방적인 신분정책도 그 원인으로 들 수 있다.그러나 정부가 임진왜란 이후의 무과급제를 부방군사의 확보 수단으로 인식한 것과 달리, 무과출신자들은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보고 홍패를 소지한 순간부터 부방을 기피할 여러 방법만을 모색하여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모든 무과급제자들이 서북쪽 부방의 역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광취무과를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한 번에 1만 명씩 선발하다보니, 무과시취 규정이 크게 완화되었고 급제자 신분의 하향추세가 벌어졌다.당시 천인들은 자기 신분을 속이면서 무과에 응시하였고 양반들은 천인들의 무과응시를 막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의 광취무과는 처음부터 부방군사를 얻을 목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커다란 법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이렇게 임진왜란 이후 무과를 통한 천인들의 신분상승은 결국 조선 후기 신분직역의 변동을 초래함으로써 중세적 신분질서를 해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3. 만과를 통한 신분변동광해군의 친후금정책을 반정의 명분으로 삼았던 인조정권에서는 성리학적 명분론을 지배이념으로 표방하였다. 그로 인해 신분의 개방성이 폐쇄적 성향으로 전환되고 천인의 양인화도 대폭 축소되어, 인조반정·이괄의 난·정묘호란 당시 무과급제를 통한 천인의 신분상승은 실현되지 않게 된다.그러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인조대 전반기의 보수적 신분체계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병자호란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군신관계를 맹약한 굴욕적인 전란이다. 따라서 병자호란부터 숭명반청 사상을 정치이념으로 한 반정공신 세력이 약화되고 반주자학적 실리론과 사회변동에 부응한 현실적 체제개혁론이 전개되면서 천인들이 무과에 응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병자호란 이후 실시한 산성무과에서 천인들의 무과급제의 폭은 상당히 확대되었는데, 이 같은 현상은 당시 척화파가 정계에서 배제되고 주화파가 정국을 주도함으로써 반주자학적 실리론이 대두하는 정치적 변동과 무관하지 않다.그 후 효종대에 이르러서는 왕의 보수적 정치성격이 무과를 통한 천인의 신분변동에도 반영되어, 그 폭이 선조·광해군·인조대에 비해 축소되게 된다.이렇게 인조·효종 대에는 천인의 무과급제가 억제된 반면, 숙종대에는 다시 활성화되게 되는데 이 같은 현상은 정치·사회변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숙종은 처음부터 북벌에 뜻을 두고 있었으므로 즉위와 동시에 남인의 북벌론자인 윤휴를 중용하였고, 윤휴는 정원이 없는 무과의 일종인 만과를 새로 창설하여 서얼과 공사천의 무과급제를 확대시킨다.그런데 이들 급제자의 신분적 지위에 대해서는 정부를 포함한 지배계급과 출신자의 인식이 서로 달랐다. 즉, 임진왜란 이후 용병제적 성격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국가재정이 부족한 정부가 1만 8천여 명의 무과출신자를 부방군사로 편제코자 한 반면, 출신자의 입장은 부방의 면제는 물론 무과를 통한 신분상승에 그 목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