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학원론 리포트무역학 원론 시간에 틈을 내어 비디오를 시청하였다. 미국 대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내용이었는데 왜 진작 5년전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런 비디오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원망이 생겼다. 대학에 들어오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주체할수 없이 많은 시간들이다. 그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술을 마시고 의미없는 대화들로 말장난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주입식 교육만을 받아오다가 갑자기 주어진 자율시간들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본 미국의 대학생들은 일종의 작은 충격이었다.미국의 여러 대학들의 교육과정과 교수진의 연구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의 대학이 매우 뒤쳐졌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내게 하는 미국의 학사과정과는 달리 우리의 일률적인 교육과 느슨한 학사과정, 백화점식 경영에 많은 차이를 느꼈다.미국의 경우 연구 실적이 없는 교수는 도태되고 모교출신의 교수는 채용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우리는 교수직이 평생직업으로 60% 이상이 모교출신의 교수를 채용한다고 한다. 한 시간의 강의를 위해 세 시간 이상의 준비를 한다는 미국 대학들의 교수진들을 보면서 우리 대학교육은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세계적 명성의 교수진을 스카우트 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발견, 연구해야하는 환경 - 교수 평가서등 - 은 대학교육자들의 연구 활동을 장려한다. 지식 교육이 아닌 창조적 지혜 교육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각 대학마다의 특성을 살린 것도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처럼 하나의 대학에 공대, 인문대, 경영대 등의 모든 학과가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엠허스트 대학은 인문학을, MIT 공대는 공학을, 시카고 대학은 물리학을 교육시킨다. 하나의 분야에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또 그것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이뤄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교수진 말고도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보면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미국 저널리즘교육의 선두 주자라는 미주리대학의 경우는 대학소유의 신문사인 '콜럼비아 미주리안'이라는 신문사를 경영하면서 학생들에게 신문제작과 기사 수립의 실무와 실습 위주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실제적인 현장교육을 실천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학생 인턴사원이나 교내 벤처사업 육성 등의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많이 알려진 것은 없는 편이다.미국은 주립대의 비중이 커서 대학교육의 대중화를 이룬 것이 오늘을 있게 한 미국의 힘이라고 한다. 환갑이 지났을 나이의 여학생이 하는 말을 듣고 누구나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학을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우리와는 많은 차이를 느끼게 했다.2005년엔 교육시장이 개방된다고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밀려오는 교육환경에 대비하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성장과정어려서부터 저희 아버지는 홀로 나오셔서 자수성가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오로지 저축과 절약이라는 당신에게는 절대절명의 목표가 계셨습니다. 그것만이 당신이 겪었던 외로움과 빈곤함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물론 지금 이순간은 그런 아버지로 인해 걱정없고 원만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 가족의 생활은 그 다지 풍요롭지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회계학과라는 전공을 택했을 겁니다.꼭 그런 수단밖에는 없었을까? 돈이 지금 이순간 우리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것일까? 이런생각말입니다. 지금 생각보면 자산관리라는 투자금융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주신분이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입니다 그런아버님께 지금은 감사드리고 있고 저 자신이 자산이라는 개념에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성격및생활신조저는 사람사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든 학벌이 어떠하든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런관계 그것이 제가 타인을 보는 관점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저를 믿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씁니다. 기업에서 저를 뽑는다는 것은 저에게 투자한것보다 많은 이윤과 능력을 요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신뢰하고 뽑아주는 회사에 실망을 주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주시는 가치보다 많은 가치를 창출해 드리겠습니다.지원동기가치를 창출하고 증식시켜 나가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자산을 관리하는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은퇴후 재산을 모두 자신에게 물려주고 갖은 후회와 한숨을 내쉬는 여러 어르신들, 꼭 필요한 상황에서 돈이 없어 고민하시는 분들, 돈을 모으기위해 가정의 화목이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 이런 모든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조언을 드리고 싶고 영업이라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대우와 성취 동기를 부여하는 직종에 젊은이라는 자신감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입사후 포부영업이라는 업이 갖는 특성상 풍부한 대인관계와 일정수준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당장은 저 자신이 실력면에서나 경력면에서 내놓을 만한 상황이 아니므로 많은 배움을 통해 저자신을 가꾸어나가면서 고객인지도를 넓혀나가겠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되겠습니다.그것이 어떤것이라 할지라도 젊음이라는 자신감으로 진취성으로 이루겠습니다. 춘천이나 경기도에서는 어느정도의 인맥과 경로가 설정되어있고 제2의 연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제게 투자하십시오. 비용보다는 이윤이 많은 투자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국어와 민족문화국어에 있어서의 한자의 중요성나는 대학입학과 함께 중국어의 필요성을 느껴 나름대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중국어 공부를 좀더 쉽게 하려면 한자를 많이 알아야 할 듯 해서 한자 능력 시험 2급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한자공부를 해 두지 않았던 나는 2급 공부를 하는데 있어 지루함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국어와 민족문화 수업을 듣게 되었고 교수님께서 자기의 능력에 맞는 한자 시험을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선 수준에 맞게 포기하지 않고 재미를 느끼도록 공부하기 위해서 4급 1000자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처음 공부할 땐 막막하기만 하던 한자공부가 하루하루 시간이 더해지면서 재미있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를 풀 때도 처음엔 20점도 안나오던 점수가 나중에는 거의 100점에 가까웠다. 한자실력이 조금 씩 늘어간다고 생각했을 즈음.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더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한자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을 때나 인터넷 검색을 할 때 학술발표 논문을 읽어볼 때도 예전 같으면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넘겨 버렸을 것을 재미있게 신기하게 느끼면서 읽어 나갔다. 생활에 쓰이는 다수의 한자가 4급수준에 포함되어 있는지 겨우 1000자를 마스터했을 뿐인데도 그다지 막히는 글은 없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글에는 한자가 참 많이 포함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70%이상이 한자어인데 우리는 한자를 외래어로만 여기고 순 우리말만 써야 한다는 세대의 영향을 받아 한자 교육에 중요성을 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일주일 수업중 단 한시간의 한자수업이 있었는데 수능시험에 단 6문제만 제출되는 과목이어서 제대로 비중을 두고 공부하는 친구가 없었고 선생님들도 한자선생님의 중요성을 저하 시켰었다. 중요하지 않은 과목으로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예체능 과목 등과 함께 한자도 같이 움직이는 분위기였다. 자연스레 우리는 한자공부에 등한시하게 되고 어릴 적 신문의 70%이상을 차지하던 한자들도 모두 한글로 바뀌어 있는 바람에 자연스레 접할 기회조차 없어졌다. 고등한자로 1800자가 지정되어 있었다지만 1800자의 한자를 다아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대학에 진학한 지금도 내가 한자공부를 하면서 친구나 후배들에게 물어봤을 때 제대로 아는 친구가 없었다. 지금 한자활용능력의 수준이 이렇다.우선 내가 생각하는 한자를 배워야 하는 이유 몇가지를 들어보겠다.첫째, 대학수업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2000~3000자의 한자능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대학 수업을 받으면서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전문용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우선 나부터도 그렇다. 교수님들 대부분이 영어와 한자를 섞어 가면서 수업을 하시는데 그러한 수업을 과연 몇%정도 내 것으로 만들었었나 생각해 보았다. 50%도 안되었던 것 같다. 한자공부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씩 한자공부를 해 나간다면 하루에 한글자 두글자가 모여 엄청난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둘째,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 시대라고 한다. 영어권의 인구비율과 한자권의 인구비율은 거의 같다고 한다. 자연스레 영어권 국가들과의 교류비율과 한자권 국가의 교류 비율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어교육에는 열을 올리면서 한자교육에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영어도 잘 해야 할 것이다. 영어를 알아야 영어권의 나라들의 사정을 알고 그 나라들과의 무역을 더 쉽게 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한자도 마찬가지다. 한자를 알아야 그들과의 교류도 한층더 유리하고 편리해질 것이다. 한자만 제대로 알아도 한자권 국가에서는 서면으로 필담이 가능하다고 한다. 세계화 시대에 발 맞추어 나가려면 영어와 함께 한자교육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셋째, 머지않아 우리는 통일 국가가 될 것이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한민족이기에 통일의 날을 항상 준비해 나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대학생들의 한자 수준이 3000자에 달하는 엄청난 수준에 있다고 한다. 2000자교육이 의무교육화 되어 있어 초등학생들도 물론 북한은 외래어를 순한글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한자교육에는 국가가 나서서 열을 올린다. 그 이유는 김일성 시절 통일에 대비해서 라고 했다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중국 일본과의 무역이 늘어나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북한의 의도는 그랬더라도 지금 북한의 한자교육현실에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에 함께 나가야 할 것이다.
재벌에 곡한다를 읽고최용운의 장편 소설 재벌에 곡한다를 읽었다. 숙제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처음엔 제목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책이고 또 재벌에 대한 내용이라 재벌을 비판하는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책을 접하고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책의 내용은 오히려 문학작품쪽에 가까운듯했다. 플루토늄얘기는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와 이휘소 박사'란 책에서도 봤었는데 박정희 시절의 핵개발이 정말 사실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재벌은 정경유착의 산물이며 악덕기업가로만 생각했었다. 물론 경영 방침에 있어서 뛰어난 점은 있지만 그렇게 커질수 있었던 것은 줄을 잘 타거나 로비를 잘해서 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IMF또한 그러한 재벌들의 정경유착과 문어발식 경영으로 인해 만들어진 사태라고만 생각했었다. 재벌의 탓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 배후에 있는 정작 그 재벌들을 좌지우지 했던 정치권에 대해서는 특별히 책임있다고 느끼진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미쳐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어구나 하는 것을 느낄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온 육대주 그룹은 잘 알진 못해도 대우랑 참 많이 흡사하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고 울산그룹은 아마도 현대 인듯하다. 60년대 우리 기업들이 성장에만 힘쓰고 정부는 정책적으로 그들을 밀어주고... 어쩜 30년동안의 우리의 정치 기업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중점을 둬야할 부분은 아마도 30년 재벌사에 대한 작가의 시각인 듯 하다 . 작가는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재벌의 성장과정을 재벌들만의 잘못으로만 몰고가지 않고 정치인들도 함께 우리나라를 이렇게 만든 공범으로 지목한다. 재벌은 그들의 죄의 대가를 그룹의 몰락으로 받지만 정치인들과 관계자들은 아직도 여전히 그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이해관계에따라 교묘히 재벌들을 휘둘러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재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서는 입장이 난처해지자 그냥 버려 버린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세워나갔다. 입사후 2년간 회사는 엄청나게 커졌다 그야말로 문어발식 경영을 해나간 것이다. 정부도 기업이 성장하면 나라에 부를 가져다 줄수 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려한 국가가 재미과학자들을 불러오자 육대주는 그들을 불러들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미래를 건설하는대 꼭 필요했던 공업이 중화학 공업이었다. 그렇게 운대가 맞아서 무서운 성장을 거듭한 육대주 그룹은 회장의 재능을 바탕으로 수단의 누메이리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도 성사시켰다. 그리고 수단의 각종 사업을 따올수 있었다. 임원들 전원 해외 출장을 시도 하여 성공을 이루자 리비아의 사업도 같은 방식으로 성공시켰다. 거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조선소를 만들고 또 해외 투자를 늘이고 경영다각화 방침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하였다. 사옥도 다시 짓고 회장은 유명인사들과 나란히 사진도 찍고 이렇듯 시대는 육대주 그룹의 편이었다. 새로운 차를 시판을 계기로 대통령과 재미 학자들과 함께 자릴 갖게된 화장는 엄청난 국가안보차원의 얘기를 듣게 된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플루토늄 구입에 관함 임무를 맡게 된다. 일본을 건너가 플루토늄을 구입해 왔으나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플루토늄은 거제 조선소 지하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그렇게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신군부가 들어서자 정부는 성장위주 정책을 포기하고 중화학 공업에서 대대적 조정을 시도했다. 또 울산 그룹과 육대주 그룹 총수를 불러서 중공업 투자 조정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회장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육대주 문화재단을 설립하자는 화자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육대주 그룹은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으나 경제적 정치적 환경의 변화를 이겨내진 못했다. 화자는 이러한 몰락의 원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획득하지 못한것이라고 했다. 김병수 회장의 경영 방식또한 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과정과 몰락의 과정에 깊이 개입했던 그러니까 공범겪인 정책입안자들의 잘못에 대한 대가는 전혀 치러지지 않고 있다. 육대주의 몰락의 소문이 돌 때 회장은 재벌의 대규모성에서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는 재벌과 사회의 관계에 관련된 이슈라 하겠으며 구체적으로 경제력 집중, 공정거래문제, 기업윤리 등이 그것이다.둘째, 재벌의 정경유착에 의한 파행적 성장과정 및 독점적 방법에 의한 탈법적 자본축적에 대한 비판이다. 지금까지 재벌의 성장이 경제원리와 기업가 능력에 의한 것이아니라정경유착에 의한 특혜적 지원이나 부동산 투기 등 정당치 못한 방법에 의한 독점적 자본축적이라는 파행성은 그 재벌이 아무리 자본을 축적했더라도 그 정당성을 인정치 않는 비판적 견해로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경유착에 의한 독점적 자본축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정부를 중요한 고려대상으로 삼게되며, 정부의 특혜적 지원, 금융의 불공정성, 부동산 투기, 정치자금 지원문제를 포함한다. 그리고 '재벌에 곡한다'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처럼 재벌을 그렇게 끌어가는 정계도 함께 비판하고 함께 처벌하여야 한다.셋째, 가족중심의 기업소유와 탈법적 승계에 대한 비판은 기업집단의 소유구조가 극히 비공개적인 상태에서 창업주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소유권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기업경영권의 승계도 대부분 가족 및 혈족간에 탈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측면을 지적한 것으로, 재벌기업의 경영부실화가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속성에 의해 크게 기인한다고 보아 기업경영 및 소유사의 문제로 분류할 수 있다.넷째, 경제력집중의 문제는 한국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특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력집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올바른 정책의 추구는 지금 한국경제가 당면한 기본적 과제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3. 재벌의 몰락한국경제의 성공을 상징하던 재벌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한보 삼미 부도 기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BIG-4인 대우그룹까지 무너져 내렸다. 이제 한국의 일부 재벌들은 부패와 실패의 상징으로 전락했다.내실경영을 다져야 할 국제경쟁 시대에 외형경쟁의 낡은 틀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빚더미 외형경쟁으로 특징되는 재벌식 경영의 이다. 세 부문의 개혁은 모두 이러한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자유의 원칙, 자기귀속(자기책임)의 원칙, 경쟁의 원칙, 공정성의 원칙 및 투명성의 원칙이라는, 자유주의의 기본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가) 재벌이 모든 해악의 근원이라는 사회인식이 없애야 한다.재벌이 맞고 있는 가장 큰 위협은 재벌성장의 기반이었던 바로 한국사회의재벌관이다. 모두들 지금의 금융 외환위기를 비롯한 총체적 경제위기를 몰고온 장본인은 바로 재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IMF의 재벌관련 금융조건이나 김대중 대통령 재벌정책도 이러한 사회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재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질 여유가 없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다. 그런 부정적 사회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재벌과 재벌가족은 한국사회에서 소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벌은 언제나 사회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경영전략의 중심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러한 재벌관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한국인의 재벌관은 재벌이 무리하게 투자하고 방만하게 경영하느라,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나라 안팎으로 꾼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빚이 많다 보니 금융비용이 높고, 금융비용이 높다 보니 빚을 갚기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생겼다. 그래도 고성장시절에는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것이라는 상호이해 아래 금융기관에서 계속 더 많은 돈을 꿀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재작년부터 저성장이 본격화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작년 초부터는 빚더미가 목에까지 찬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금융부문 전체의 부실로 확산되고, 나라 밖에서는 한국경제 전체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 금융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리하여 재벌은 우선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을 벗겨 내야 한다.나) 연년세세 덩치를 키우는 시절을 잊어 버려야 한다.저성장은 이제 선진국이 아닌 바로 한국의 얘기다. 지금의 위기도 기한국경제 발전의 심벌로 치부되는 모든 것이 나라 안에서는 중복투자에 의한 자원낭비로 나라 밖에서는 세계시장의 심각한 초과공급문제를 야기하고 있다.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 국가경제의 입장을 운운할 것까지 없다. 당장 관련 재벌들의 생사가 오늘내일하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개별재벌과 그 계열사의 입 장에서 뿐만 아니라, 관련업계 전체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과감한 투자 재조정과 기존 투자 포기에 대한 결단이 조속히 내려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경제위 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한국경제 전체를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 계속될 것 이다.스스로의 문제를 재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대신 재벌문제를 해결해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다) 영업자유의 보장 영업의 자유는 자유시장경제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유이다. 투자, 경영조직, 자금의 동원과 사용 등 모든 면에서 기업은 자유를 가져야 한다. 영업의 자유는 효율성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더욱이 정보화와 세계화로 인하여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경영환경 속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기업은 창의력과 기동력을 더욱 필요로 한다. 자유는 창의력과 기동력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아래에서 열거되는 규칙을 제외한 모든 정부규제는 철폐하여야 한다. 특히 기업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을 방해하는 모든 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진입규제를 합리화하는 이유로 과다투자의 방지를 내세우고 있으나, 자기책임의 원칙이 확립되면 기업이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 경제환경이 급변하여 불확실성이 매우 큰 현재의 세계경제에서 정부가 해당기업보다 미래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힘들 것이다.단 모든 자유는 공정한 규칙을 전제로 하므로 재벌은 공정한 규칙을 준수하면서 자유 를 누려야 한다.라) 자기책임의 원칙 확립우리 나라 재벌기업의 생산성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자기책임의 원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정부는 국민경제에 대한 충격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이 경영에 실패하문이다.
{지상의 평화와 영원에의 갈망1808년 5월 3일. 그날의 기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정말 끔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참한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는것같은 이장면은 실제로 화가가 목격한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화가는 어떤 의도로 이 그림을 그린 것인가요. 1808년 5월 3일 어떤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이그림은 5월 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상황으로 프랑스군대 즉 나폴레옹의 군대가 그전 겨울에 마드리드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스페인 민중과의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민중의 소요가 일어나자 나폴레옹 군대가 민중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5월 3일 새벽까지 밤새 무수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끔직한 그림입니다. 그림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있습니다. 왼편의 민중들. 학살당하는 사람들과 오른편의 나폴레옹군대 즉 학살하는 사람 이렇게 나뉘어있습니다. 정복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죽음을 괴로워하는 사람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반면에 결연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그 결연한 표정의 하얀옷을 입을 사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얀옷의 사람의 손을 보면 십자가의 못박힌 예수그리스도의 상처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존재 처럼 희생을 당하는 존재를 표현하고자 한것입니다. 조국을 위해 자유를 위해 나름대로 외침을 외쳤던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반해 나폴레옹 군대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기계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지못하고 땅을 쳐다보면서 희생자를 향해 기계처럼 총을 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기들도 얼마나 참혹한 상황인지를 느끼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눈여겨 볼 것은 바로 이 등불입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켜놓은 불. 밑에서 위로 이사람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빛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느낌을 통해서 우리는 이상황이 보다더 격정적이고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민족의 억압받던 모습과 사회의 썩은 모습을 고발하려는 화가의 뜻이 전해집니다.고야는 참으로 많은 종한 논쟁과 함께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여하튼 그림의 여인은 대담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이것을 고야는 단순한 구도와 단조로운 색채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체의 부드러운 진주빛은 곱게 일률적으로 다루어졌으며 긴의자에 깔린 천과 널찍한 베개 역시 부드러운 색감과 더욱 조심스러운 필촉으로 고운 질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지적할 것은 고야가 여체상을 형식적으로 이상화시키지 않고 사실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섬세한 실루엣의 자태. 이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는 어쩌면 고야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기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생명력있게 빛을 바라고 있습니다.고야의 전기에 화려한 화제를 남긴 알바공작부인은 고야의 애인으로 알려져있는데 고야의 작품에 처음등장한 그림입니다. 그림속 알바공작부인이 오른손으로 가리키는 지면에 알바공 작부인에게, 프란시스코고야 1795년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는걸로 봐서는 알바공작상의 경우와는 다른 감정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경직된 자세라든가 인형과 같은 무표정한 모습에서 차가운 인상을 풍기고 있는것으로보아 평온한 마음이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초상화를 그리러 와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측 아래에 그려 넣은 조그만 개 뒷다리에 맨 빨간 리본은 애교스럽기까지합니다.{카를로스 4세 직위 당시 고야는 왕정 수석화가로 임명 되었습니다. 왕족들의 모습속에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었습니다. 가난한 금세공사의 아들에서 궁정의 최고화가로의 삶을 화폭에 담으며 새로운 꿈을 완성시키고 있는것입니다. 귀족부인 마하 마호 어린이들 다양한 인물들. 고야는 자기의 눈으로 만나는 스페인의 구석구석을 표현한 ... 활동적이고 열정적이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열정을 예술에 쏟아 부으면서 적극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고야는 평생 초상화를 그렸는데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아이같은 경우 귀족의 어린아이를 그린다면 다른 화가들은 귀족다운모습을 갖춘 어린아이를 림]의 작품제작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의사에게 부축되어 약을 먹으려는 중환자 고야의 모습에서 사경을 헤매는 듯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고야는 이러한 중병을 세 차례나 겪으면서 삶과 죽음의 처절한 경험을 겪었고, 더욱더 심오한 예술관이 형성되어 갔던 것입니다. 사경에서 세 번씩이나 회생하여 더욱더 농도 깊은 걸작을 많이 남겼습니다.자화상을 그린 4년 후 고야는 빈사의 중병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회복은 되었으나 그 후 '귀머거리 집'에서 유폐 생활을 보냈게 됩니다. 이 집에서 생활하면서 14 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이 시기의 그림은 '검은 그림'이라고 불립니다. 고야는 대단히 음침하여 공포와 억압을 괴물로서 상징하는 표현주의적 작품을 2층 건물 벽면에 가득차게 그렸습니다. 이 그림도 그 집 식당 벽면에 그린 작품의 하나로 하늘의 지배권을 자식들에게 빼앗기게 될 두려움으로 5인의 어린 자식들을 차례차례 먹어서 죽여 버렸는데, 이 고대 신화의 신은 토요일에 마녀들의 집회를 연다는 신이기도 합니다. 공포, 절망, 분노 등을 상징하는 듯한 처절한 화면 구성은{{놀랍기까지 합니다. 고야의 정신적.내면적 파동이 이러한 표현주의적 작품을 표출하게 한것입니다. 사투르스의 원시적 야만성으로 무장된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자식마져 삼켜버리는 모습에서 세상의 화려함을 꿈꿨던 젊은날의 욕심을 자책했을지도 모릅니다.에서 고야는 노년의 어두운 풍자로 세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그림은 귀머거리 집 1층 입구 벽면에 그려진 작품으로서 프라도 미술관 목록에는로 되어 있으며, 그밖에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프라도 미술관장 하메엘 데 스라스 씨는 이그림의 흰 수염의 인물을 고야로 보고, 등뒤에서 크게 소리치는 괴물은 고야가 귀머거리가 된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장으로 보아서 깊은 산중에서 수도하는 수도사로도 보이기도 합니다. 교회나 수도회를 탄압했던 나폴레옹 정책을 비판하는 작품인지도 모를 일이나 그 시기의 고야의 자학적인주는 혼란함을 차단함으로서 화가의 내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도 있습니다. 개인적 불운과 고독의 영향, 염세주위 만년의 고독한 당시의 사회상도 영향도 검은 그림에 담겨져있습니다. 말년의 고야의 복잡한 심경을 느낄수도 있습니다.상류층여인들을 그린 화려한 초상화들... 반면 검은그림에서 주는 장중하고 음산한 분위기... 과연 이그림들을 한사람의 그림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하는... 양면성을 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화가의 내면과 화가가 처한 상황을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고야의 그림을 통해서 80여년의 고야의 삶을 바라본것입니다.{ 1812년 고야 재산 목록에 기재되어 있는 작품. 폭풍 직전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 구름 위에 거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두려움에 떠는 듯 역마차 떼들은 공포에 싸여 사방으로 도망치는 듯하며, 전면에 노새 한필이 무심히 서 있다.{고야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모르나, 노새를 스페인어로 바보 또는 얼간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페르난도 7세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라고도 하고, 거인을 나폴레옹 또는 전쟁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며,그 반대로 거인이 군중을 뒤로 방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거인을 스페인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보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고야의 상상력의 비약을 말해주는 작품이리라 고야의 약 20점의 자화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고야가 69세 때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노쇠기에 이른 연령이지만, 이 그림에 나타 난 것을 보면 그의 위엄있는 표정과 불굴의 의지력과 왕성한 정열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큼직한 얼굴, 깊이 꿰뚫는 듯한 예리한 눈, 굵은 목둘레 와 딱 벌어진 가슴 등에서 강인한 의지력 등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 작품의 색조는 흑색. 백색, 그리고 황토색을 주조로 비교적 단조로운 작품이지만,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고 고야의 깊이 있는 정신적 내면 세계를 뿜어 내는 듯한 이 화면의 심도(深度)를 나타내고 있다.인상파 시대의 대가 마네의 작품 의 발상원(發想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검은 그림 시리즈 중에 가장 작은 작품. 귀머거리 집 2 층 살롱 벽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라고도 불린다. 1828년의 목록에는 로 기재되어 있다. 노파가 스푼을 들고 웃음 짓고 있으며, 오른편의 해골 같은 노인은 두터운 책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지식인을 조소하는 듯도 하고,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인지도 모르며, 남녀나 부부 관계에 대하여 고야 특유의 비꼬는 관찰로 그려 낸 그림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음산하고 어떤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고야의 심적 파동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것이리라. 그림의 색조도 어둠침침하고 검정색 바탕에 흰색과 황토색을 썼으며, 색감에서 오는 느낌이 음산하다. 녹회색조(錄灰色調)의 단순화된 배경, 밤색머리에 엷고 긴 숄을 몸에 감아 늘어뜨린 멋, 터질 듯한 관능미 넘치는 앞 가슴, 두툼한 입술, 강한 의지의 상징인 듯한 눈, 풍만한 육체 등 고야가 남긴 가장 정열적인 여인상이라 하겠다. 생동감 넘치는 개성적인 여인상은 하나의 민족적 특성 즉, 스페인 여인의 상징이라 하겠다. 고야의 초상화에서 항상 얼굴에 중점을 두며, 의상이나 장식물 배경 등은 간략하게 표현하는 예가많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몸매나 복장이나 모든 면에 정성을 기울였으며, 감각적인 효과나 회화적인 효과도 빈틈없이 발휘한 작품이다魔女의 집회왕가(王家)를 제외한 고야 최대의 후원자였던 오스나 공 부처 소유의 작품이며, 아라예다 저택의 부인 거실을 위하여 그린 마녀를 테마로 한 6점의 그림 중 한 작품이다.병을 앓은 후의 고야의 내적인 심리 변화는 여실히 화면에 반영되어 갔다.현실미 있는 인간상과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혼합 표현되어 가는 환상적 작품 세계는 만년의 과 연결성이 농후하다.인가와 떨어져 있는 산 위, 스산한 달밤에 마녀들이 마녀의 상징인 수산양을 둘러싸고 일 주일 동안의 전과(戰果)를 보고 하고 있는 장면이다.고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