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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강산업과 경제
    1. 서론먼저 금속재료공학과에 대해서 알아보자.재료공학에서 다루는 분야는 크게 금속재료, 무기재료, 전자재료, 고분자 재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금속재료란 철이나 알루미늄들과 같은 금속 원소들이 규칙적으로 배열하여 결정 상태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무기물질이다. 이물질의 특성은 원자의 전자구조로부터 작성된 주기율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하나의 재료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결정 구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미세 구조의 움직임은 각종 물리, 화학, 수학, 열역학, 반응속도론, 결정학 등의 기본학문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자연계의 기본질서는 구조적인 결함인 공극, 전위, 결정립계, 기공의 존재를 설명하고 재료의 미세구조 형성과 기계적 특성, 전자기적 특성 및 광학적 특성을 해석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이렇게 결정 구조로부터 미세 구조 형상과 광학적 특성의 해석을 바탕으로 신소재가 개발되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가 새로운 소재를 원한다면 보다 더 우수한 특성을 나타내는 재료를 개발해야 하고 과거의 재료를 바탕으로 이를 개발해 내는 공정개발과 해석이 필수적이다.금속재료공학과에서는 마법의 신소재를 위한 소재산업 발전을 위하여 재료 중 특별히 금속재료에 관련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기술개발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재료의 구조-특성-공정으로 이어지는 근본적이고 실무적인 과정을 최대한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상에서 재료공학의 산업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한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각기 다른 물성과 기능을 나타내고 있는 많은 재료들이 어떠한 자연법칙에 의해서 일관되게 설명되고 있으며 그 원리들이 공통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료들을 각각 구분하여 별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고 별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복합적이거나, 상호 보완적이고 결합하여 총체적으로 사용할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각각의 주어진 재료들의 물성에 대한 응용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을 뿐 시간과 에너지 절감의 혁신을 가져왔다. 전자산업에서의 소형 고속 소자는 거의 전적으로 재료 개선의 결과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최신 합금 및 고강도 세라믹, 최신 고분자 화합물 재료는 고성능 엔진, 에너지 변환, 공해 억제 등에 필수적인 재료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미래의 산업사회 발전에 있어 기존 소재에 대한 성능의 극대화기술과 함께 새로운 성능과 기능을 가진 신소재의 개발에도 많은 연구, 개발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잠깐만 숨을 돌리고 주위를 돌아보자. 여러 가지 사물이 어떤 알지 못하는 이유에 많은 재료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서 주어진 재료가 사라져 버리게 되면 인간이 만든 형체가 있는 것은 모조리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재료가 있으므로 해서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새로운 기능을 갖는 어떤 신제품이 개발되어 세상에 나올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제품의 성능에만 관심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제품이 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다양한 소재들이 우선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첨단 기술도 그에 어울리는 재료의 개발 없이 상상 할 수 있었을까. 어떤 새로운 재료가 탄생하게 되면 그것이 새로운 분야의 기술개발을 유발하여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가져오게 된다. 반면에 적절한 재료가 없었기 때문에 그럴 듯한 구상이 실용화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우주왕복선의 개발이 지연된 것이 새로운 단열재의 개발이 늦어져서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흔히 주변에서 타고 다니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보라. 1800년도에 이미 현대에 타고 있는 스케이트와 동일한 모델이 구상되었다. 하지만 축대를 구성하는 베어링이 등장하기까지 100년의 침묵 속에서 1980년대에 들어서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가장 빠른 속도로 전세계의 청소년을 자극하는 가장 훌륭한 놀이가 되었다.인류의 역사는 당시 사용하였던 재료에 따라서 그 시대가 구분되고 있으며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를 보면 인류가 최초로 철광석으로부터 철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은 B.C 2000년 쯤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B.C 1000년경에는 지중해 연안 국가에 철의 보급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같이 철의 역사는 3000년 이상에 이르나 그 대부분은 연철의 역사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사총하고 있는 것과 같은 선철 이나 강철 (鋼鐵)을 만들기에 이른 역사는 비교적 짧다. 14세기초에 처음으로 목탄을 사총하는 용광로로 선철을 만들기에 이르렀으며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목탄 대신에 코크스를 사용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방법으로 만들어낸 선철은 전성 (展性)과 연성 (延性)이 없기 때문에 단조할 수가 없으므로 선철을 단조할 수 있는 강철로 정련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연구되었다. 18세기에 석탄을 사용하여 선철을 연철 (단련할 수 있는 철)로 정련하는 교련법(Puddle Process)이 개발된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철강기술은 크게 진보하고 있었지만 18세기 중반까지는 가단철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따라 가단철을 용융상태에서 제조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1856년 영국의 헨리 베세머에 의해 개발된 전로제강법이다. 전로(converter)는 철을 강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전로(轉爐)로 명명되었으며 전로법의 출현은 철의 시대에서 강의 시대로 바뀌는 제철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한편 1864년에는 독일에서 당시로는 용선 밖에 처리할 수 없었던 전로제강법의 결함을 보완하여 고철과 용선을 다 함께 용해시킬 수 있으며 그 배합비율도 상당히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재질면에서도 전로강보다는 우수한 강을 생산할 수 있는 평로제강법이 개발되었다. 그후 전로법의 개선과 함께, 고철을 주원료로 하며 평로법에 비해 생산성이 우수하고, 강의 품질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어 특수강 생산에도 알맞은 전기로법이 개발되어 근대적인 제강기술이 확립되었다.철강기술의 개발은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었다고 볼인다. 대한무역투자진공사(KOTRA)는 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세계 철강제품수요는 지난해보다 8% 늘어난 7억 3,800만톤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생산량(조강)은 이보다 1억톤 가량 많은 8억 4,600만톤으로 공급과잉상태라고 KOTRA는 전했다.내년에도 철강소비는 늘어나겠지만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과 교역왜곡현상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내다봤다. 특히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은 자동차건설 부문의 위축으로 재고가 늘어 철강 수입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달러 강세 영향으로 주요 수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올해와 같은 증가세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한편 한국은 올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주요 철강소비 산업이 활발해져 철강 수요는 3,910만톤, 공급 4,970만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열연코일, 판재류, 선재류 등은 공급부족으로 철강수입은 28.8% 늘어난 800만톤에 이르고 수출은 4.1%에 증가한 1,370만톤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설경기 침체와 수출부진 등의 영향으로 철강재의 재고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이후 건설경기가 위축되고 수출이 감소함에 따라 철근 강판 등 철강자재의 재고가 뚜렷한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다.철근은 지난 8월말 4만 2,500톤에 불과했던 재고가 9월 13만 2,800톤, 10월 16만 9,100톤으로 두 달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철근재고가 이처럼 크게 늘어난 것은 아파트 등 신규착공 현장이 감소하는 등 하반기 들어 건설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건축물 외장재로 사용되는 아연도 강판은 건축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부진으로 지난 9월말 현재 재고가 26만 8,000톤으로 전월에 비해 11.2%가 늘었다. 열연강판은 포항 및 광양제철소의 공장보수에 따른 생산감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가수입품의 유입으로 재고가 7월의 96만 1,000톤에서 8월 930여명이 휴업에 들어가 현재 720여명이 근무중이다.최근 인천제철에 인수된 삼미특수강도 신임 오병문 관리인의 업무 파악이 끝나는 대로 내년 1/4 분기 중에 인력 감축 및 조직개편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 중에 법정관리를 벗어난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어 조직 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이 곧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철강협회도 연내에 전임직원의 25%에 해당하는 9명 정도를 희망퇴직 형식으로 감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임원을 대상으로 한 1차 인력감축에 이어 올들어서만 두 번째로 협회 임직 원수는 앞으로 30명 이내로 크게 줄게 된다. 이와 함께 협회는 조직개편을 단행, 현재의 8개팀을 6개팀으로 통폐합해 슬림화하기로 했다.협회관계자는 "이번 구조조정은 전직원들의 자발적 합의에 따라 실시하는 것으로 대상자에 대해서는 기본 퇴직금 외에 1년분 급여가 추가로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이번 인력 감축으로 연간 약 5억원 정도의 인건비가 절감돼 회원사들의 회비부담을 줄 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 손길승 회장은 요즘 재계 인사들과의 모임에서 “기업끼리 힘을 합쳐 이 난국을 타개하자 는 말을 자주 한다.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업종은 업계 스스로 생산량 조절을 통해 출혈 경쟁을 피하자는 것. 그만큼 국내경기가 좋지 않음을 나타낸다.▽너도나도 과잉생산 고민〓국내 제조업을 이끄는 핵심업종은 자동차 조선 화섬 철강 기계 건설 석유화학 반도체 등 8개. 이들 업종의 기상도는 수주물량을 비교적 넉넉히 확보한 조선을 빼면 ‘궂은 날씨’ 일색이다.원인은 공급 과잉과 내수 위축이 겹쳤기 때문.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생산 용량을 늘린 상태에서 수요가 격감하자 거의 모든 업종이 생산할수록 손해가 불어나는 딱한 처지에 빠졌다.(중략)철강은 건설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건설용 자재로 쓰이는 철근 등의 수요가 격감했다. 형강과 강관은 국내 필요량이 연간 생산규모의 60%에 불과한 실정.(중략)▽.
    경영/경제| 2001.10.17| 12페이지| 1,000원| 조회(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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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화 시인의 별 평가A좋아요
    역사 속에 존재하는 사람 그것도 귀에 익숙한 사람의 숨은 이야기라니 잘 읽히지 않는 역사이야기가 소설 속에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흥미로웠다.실화는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보다도 훨씬 더 많은 감동을 준다. 그래서 난 실화를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그 누군가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가 해낸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 실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이지만 역사적 근거를 들어 실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도입부분이 지루하긴 했지만 소설을 손에서 놓기는 싫었다.하지만 글을 읽고 난 나는 괜히 세상이 야속해지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이 불쌍해졌다.안현은 학식 있고 누구보다도 심지가 굳고 또 재주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한 사람이 시대를 잘못 만나서 또는 아무런 연줄이 없었기 때문에 관직에도 오르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이다가 대청도의 일개 역참 관리로 떠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것이 나를 세상에 관해 체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세상 탓만을 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안현 역시 시대 덕을 보아 예쁘고 어진 아내를 얻었기 때문이다.안현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 자존심을 버리고 역참 관리를 자처했다. 그리고 이아치가 부인을 탐낼 땐 우는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또 부인을 잃었을 땐 성치않은 몸으로 초원의 매서운 바람과 굶지림과 동상 그를 괴롭히는 몽골인들에 맞서 부인을 찾아다녔다. 그는 오직 자신을 찾으며 눈물 흘리는 아내만을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찾은 아내가 그를 매몰차게 대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인의 입장도 이해할 수가 있다. 또 우리의 언니나 동생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우리 역시 그렇게 하도록 조언을 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면 사랑보다는 그 사람의 이익을 도모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것이 나를 더욱 서글프게 한다. 내가 부인의 입장이 될 수도 있지만 안현의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안현의 인생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그가 아내를 살해하기 전에 본 별은 어떤 의미일까. 왜 그런 아내를 이해해주는 사랑은 보여주지 못했을까.안현은 마지막으로 아내의 처소로 찾아가기 전에 별을 보았다. 초원의 매서운 바람이 불 때에도 밤하늘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던 별을 보았다. 나는 안현을 뿌리치던 아내를 볼 때 별은 자신의 이익을 초월한 어떤 것(사랑)이라 본다. 그래서 안현은 별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안현은 그러한 어떤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내를 찾아간다. 다시 한 번 자신과 돌아갈 것을 권할 동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툼 끝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안현은 감옥 안에서 반성이나 후회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별이 보이는 초원에 묻히는 것으로 별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만큼 안현은 아내를 사랑했던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1.10.17| 2페이지| 1,000원| 조회(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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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를 읽고 평가A좋아요
    아내는 지금 없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가 슬퍼하는 것을 보면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증오하는 것을 보면 달아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버리고 왔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아내의 상자. 이 상자들은 아내의 상처를 기억시키는 흉터들이다. 그녀는 상자가 참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라도 삶 동안의 상처들을 상자에 담으라하면 비슷하게 어느 정도는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녀처럼 상처들을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는 그 사람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모든 기억이 될만한 것들을 상자에 담아 뚜껑을 덮어버렸다. 그녀의 문제는 이것인 것이다. 상처나 아픔 심지어는 기쁨까지도 그녀는 기억하는 대신 상자에 담아버렸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잠자는 것에서도 보인다. 몸이 아플 때는 물론이고 걱정이 있고 화가 났을 때도 잠을 자는 것으로 풀어 버린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잠을 자기 위한 잠이 아닌 잠을 자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습관이 되버려 웬만한 소음에는 일어나지도 않게 되어 남편과 다툼이 있던 날의 소란을 일으키게 된 것일 것이다.그녀의 잠은 모든 것을 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상자 역시 다시 들춰보는 장면을 묘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억하기 위한 보관이라 할 수는 없다. 자신을 상처 입힌 세상에 대한 빗장. 어떻게 보면 잠이나 상자들은 상처에 대한 도피라고도 볼 수 있다. 기억하고 그 상처에 대해 맞서기보다는 잊어버리고 묻어두려는 심리인 것이다. 이러한 대처는 삶을 왜곡시킨다.자기가 읽은 책의 내용을 극히 단편적으로만 기억했으며 자기 식대로 엉뚱하게 왜곡시켜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내는 그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에 대해 얘기했을 때도 늘 그렇듯이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라며 자신 없어 했다.그녀가 책의 내용을 자기 식대로 왜곡시켰듯이 삶을 자기 식대로 왜곡시키는 것이다. 아님 왜곡이 익숙해져 절로 왜곡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서 그녀는 그 왜곡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닭이 있는 닭장차와 닭이 없는 닭장차. 두 대의 자동차가 아닌 닭이 없어졌다고 슬퍼하는 것. 그녀는 잊는 것에 익숙해져 논리적 사고하는 법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이 잠든 사이에 낯선 곳에 도착해버린 듯이 불안하고 낯선 것이다.그녀가 그와의 대화에서 겉도는 것은 그녀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남자의 입장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젖어 사는 사람일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가물치가 꼬리를 바둥거리는 물새우를 반쯤 삼키고 있는 치열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왜곡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치열함이었던 것 같다. 이 치열함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과는 동떨어져 버린 것이다.우리 각자 역시 이러한 치열함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만이 치열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외로움을 느끼지만 이것은 다만 다른 사람의 치열함은 보지 못하고 수면의 평온함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 역시 나의 치열함을 모르고 평온함만을 볼 것이다. 감정에 젖어 있는 사람. 나는 이러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지만 그 사람은 치열함까지 나에게 떠맡아지는 것 같아 싫어한다. 나의 치열함도 나에게는 버거워서이기 때문이다. 들리는 거야 들어주고 떠맡아버리지만 다른 사람에게 짐지우지는 않는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 세상이 삭막해지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 모두 이러한 치열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짐지워지는 것도 짐지우기도 싫어해서 개인을 강조하고 이로 인해 삭막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신도시라는 요즘 사람들로 인해 각광 받는 도시들을 생각해본다. 얼핏 생각하면 주변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들판이 있어 삭막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들판으로 인해 길이 끊어져 있고 인적이 드물고 조용하고 삭막하다.남편 역시 그녀의 치열함을 보지 못했고 그럼으로 해서 그녀를 온전히 알지 못했다. 그들은 평온한 부부였으나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대화는 겉돌았다.아내가 사라졌는데도 그녀가 간 방향을 찾아 한 발도 내디딜 수 없다면 우리가 함께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아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걸까.그들은 5년이나 한집에서 같이 산 부부이다. 그러나 서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그들은 그들의 내면에 대해서는 궁금증도 관심도 없었다. 삶의 모습만 보고는 자기 나름대로 상대를 짐작할 뿐이다. 지금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내가 안다고 자신하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끔 아주 친한 친구가 딱 너같다. 라는 말에 나는 얼마나 서운해했나. 겉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 이것들의 불일치가 언제나 나의 과제이다. 비단 나만이 그런 것인가. 나는 지금 그나마 조금은 안다고 자신하는 한사람마저 항상 모르겠어 안달이다. 그러나 그런 이면에는 그 사람에 대해 또 나름대로 단정을 내리고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무한함까지 인정해주면 그러면 그 사람을 아는 것일까.
    독후감/창작| 2001.10.17| 2페이지| 1,000원| 조회(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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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학과 지역연구 평가B괜찮아요
    1. 서론먼저 인류학과 지역연구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지역연구를 어떻게 정의하건 간에 공통적인 것은 자국 이외의 특정 지역에 관한 종합적인 지식을 습득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세계 모든 사회의 포괄적인 생활영역, 즉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은 지역연구라는 작업에 매우 오랫동안 관계해 온 셈이다. 줄리언 스튜어드는 미국 사회과학협의회의 한 출간물에서 지역연구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l주요 세계지역들에 관한 실천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 2 문화적 상대성에 관한 인식을 학생과 학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 3 지역에 존재하는 바로서의 사회ㆍ문화적 전체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것, 4 보편적 사회과학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 이러한 목표들은 모두 인류학의 목표나 성격 또는 특성과 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세계지역들에 관한 실천적 지식은 인류학자들이 중요시해 온 현지조사 및 타당성의 추구의 다른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문화적 상대주의란 프란스 보아스 이래 인류학에서 강조되어 온 관점이었다. 이에 더하여 사회, 문화적 전체에 대한 이해는 인류학적 방법론상 주요 특성 중의 하나인 총체적 접근과 관련이 있다는 접을 감안한다면 인류학의 목표와 지역연구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지역연구의 조사방법을 고찰해 봄으로써 인류학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지역연구의 조사방법과 진행과정을 통해 문화 인류학의 여러 가지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자.2. 본론(내용요약)필자는 오하카시와 네짜시에서의 도시화 현상을 연구하면서 연구의 준거점을 도시주민 개개인이 아니라, 도시가구로 삼고, 도시라는 환경에서 사회재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통합적인 과정을 살펴보았다. 도시의 사회경제적인 구조는 국가의 발전 및 산업화 과정의 역사를 반영하고, 동시에 개개의 도시가구는 그러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도시 환경에의 적응이라든지 생존이라는 개념들은, 특정한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인 맥락에서만 그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 동시에 도시가구들의 적극적이고 유동성있는 구성방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도시주민 개개인의 삶의 경험이나 도시가구의 구성이 거시적인 사회경제구조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해 연구를 시도하였다. 도시주민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의에서도, 공식적인 경제활동 외에, 비공식 부문의 경제활동까지 보다 확대하여 포함시켰다. 그리고, 가구의 구성 및 친척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어떻게 사회재생산과 가계생산과정이 지역 및 국가적 사회경제체제와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연구방법으로는 양적 접근과 질적인 접근,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였다. 조사연구원들은 각기 맡은 분야에 따라서 개별가구에 대한 질문지조사를 실시하였고, 집중적으로 참여관찰하고 면접 조사하는 식으로 행해졌다. 오사카시에서는 넉 달을 머물면서 민족지적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조사결과 오하카 자료에 따르면, 1가구주에 비해 비가구주가, 공식부문보다는 취업과 실업의 중간역할을 하는 비공식부문의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경향이 더 많고, 2 비공식부문 종사자들은 경제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연령층에 속하기보다는 연령층이 아주 낮거나 높고, 3 학력이 낮거나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로서, 4임금이 낮고 안정성이 낮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5 가구주 외에 다른 가족원들과 함께, 6 가구의 재생산을 위한 기본적인 소비활동, 즉 식생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7 산업시설이 미비한 오하카시에서는 최근에 이농해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시에 오래 거주해 온 사람들도 비공식 경제활동부문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었다.네짜시 연구에서는 특히 여성가구원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여성사구원의 고용가능성을 결정짓는 요인은 연령이나 결혼 여부, 그리고 교육정도와 같은 개개인의 특징이 중요한 반면에 그들의 고용조건 및 직업의 종류는 그들이 속한 가구의 경제력, 인구학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멕시코에서는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자녀양육 및 가구재생산을 전담하므로 노동집약적이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감안할 때, 나이 어린 자녀를 갖고 있는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직업을 가지려 할 때 제약이 됨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공식 경제부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한 개발도상국이 겪는 도시화와 산업화의 구조적인 표현이라는 점에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비공식 경제부문이라는 개념은 멕시코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도시개발계획에서 아주 중요하다. 가구경제의 문화적 이해를 통한 이중경제구조의 개념화와 함께, 근로자들의 특징에 대한 연구는 많은 멕시코 사람들이 경험하는 삶 속에서 드러나는 가구경제와 도시경제, 그리고 나아가서 국가 및 세계경제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갖고 있다.인류학자가 타문화에서 현지조사를 하는 경우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문화충격을 겪는다고 한다. 필자 역시 생활하는 기본적인 조건과 관습의 차이로 말미암아 두 지역에서 모두 문화충격을 경험하였다. 예를 들면, 오하카시로 처음 현지조사를 떠날 때는, 언어장벽, 시간관념, 식사시간, 그리고 음식차이, 화장실 시설의 미비 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네짜시에서는 공기오염, 식수오염, 소음, 매연, 불결한 주택조건, 식사해결의 어려움 등을 경험하였다. 또한 인류학자와 현지인들과의 사회경제적인 위치로 말미암아 서로의 관계에서 오는 도덕적인 어려움도 경험하였다.외국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어느 인류학자가 말한 것처럼, 세 번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학자는 자국문화, 외국문화를 반복하여 경험한 뒤 나의 문화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학자의 이상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인 방식을 우리 자신의 문화를 연구한다는 목적에 다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완전히 문화적인 편견을 극복하기는 어렵고, 자기 문화 중심적인 감정과 입장으로서 다른 문화를 보게 되기가 쉽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가 타문화를 연구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비교 문화적인 입장을 습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타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는 자기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와 같은 오류를 범할 염려는 비교적 적다. 하지만 타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문화의 성원이 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인문/어학| 2001.10.17| 3페이지| 1,000원| 조회(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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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혁명사 평가B괜찮아요
    서론알베르 쏘불의 「프랑스 혁명사」를 일고 프랑스혁명의 원인과 성격 그리고 현대세계와의 관계 등을 파악함으로써 앞으로 우리들의 정치적 자세를 생각해 보자. 먼저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본론프랑스혁명의 원인과 성격프랑스혁명이 일어남으로써, 프랑스의 역사에 부르주아적 사회와 자본주의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 혁명의 본질적인 성격은 특권에 기초를 둔 영주체제와 봉건질서를 파괴함으로써 국민적 통일성을 실현하였다는 것이다.프랑스혁명사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첫째는 일반적 계열의 문제로서, 봉건주의로부터 근대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역사적 법칙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개별적인 계열의 문제로서 구제도의 말기의 특수한 사회구조에 관련된 것인 바, 여려 가지 형태의 부르주아혁명 과 비교해 몰 때 프랑스 혁명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성격을 고려해 보는 문제이다.Ⅰ. 봉건주의와 자본주의18세기말의 프랑스는 귀족주의적 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 생겨날 당시, 즉. 토지가 사회적 재산의 유일한 형태였으며, 따라서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경작하는 사람들을 지배할 권리가 부여되었던 시절의 성격을 보존하고 있었다.한편, 10∼11세기이래 교역이 부활되고 수공업에 의한 생산양식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재산인 동산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사회계급인 부르주아가 탄생하였다. 이 계급은 14세기부터 전국3부회에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이것은 봉건사회라는 틀 속에서 자본주의의 발달과 동일한 리듬을 타고 발달하였다.18세기 들어서서 부르주아는 재정, 산업, 생산업의 선두에 있었다. 군주제도 하에서 국가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인 행정가들은 이들로부터 나왔다. 이들은 부르주아 혁명의 이론을 정립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부의 새로운 분배는 권력의 새로운 분배를 가져온다고 볼 때 산업재산은 인민의 힘을 길러주었고 그리하여 이들은 새로운 계급으로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부르주아계급은 귀족과의에 대항하여 대두되었으며 그 기초를 부단히 훼손시켜왔다. 귀족계급은 영주회의와 신분회에서는 재정상의 개혁시도를 거부하며,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면서 사실상 모든 특권을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라도 안전하게 유지해 나갔던 것이다.루이 16세는 즉위 즉시 과두정치를 부활시켰으며, 그에 따라 뛰르고는 실각되었다. 그때부터 자유의 이름으로 귀족계급의 공격이 도처에서 일어나게 되었는데, 무관과 관복귀족은 한편이 되어 중앙권력에 대해 공격을 가했으며, 고등법원과 지방신분회는 상부상조하였다.1787년 2월 22일 명사회를 기점으로, 1788년 9월 23일 파리 고등법원이 8월 8일의 최고행정재판소법령에 의하여 5월 1일 소집될 전국3부회는 1614년의 것과 마찬가지로 세 신분의 대표자 수는 같으며 신분별로 투표하게 될 것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결국 귀족계급은 자기 의사대로 왕권을 통제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그들의 건의서에 곧 밝혀질 것처럼, 귀족계급은 귀족이 입헌정치제와, 신분회의 투표를 통해 세금을 결정하는 것을 인정하였고, 투표에 의해 선출된 지방신분회에 행정을 일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개인적 자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재정상의 평등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영주권의 유지에 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귀족계급은 절대주의에 대항하여 정치적 우위를 회복하여 이미 지나간 옛날의 사회적 특권을 구원하려고 투쟁하였다. 그들은 이 투쟁을 당연히 반혁명까지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이로서 혁명의 중간단계로 브리에느와 그의 협력자들은 용기를 가지고 일단 비난의 대상이 된 제도의 개혁을 밀고 나갔다. 극히 제한되고 부분적일지라도 개혁은 이루어져 그들의 이익을 훼손하였으며 특권을 위협하였다. 그러나 개혁이 있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특권층은 희생되지 않았으며, 이는 구제도의 귀족주의적 구조에는 하등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같이 중간단계에 대하여 강조하는 일은 개혁의 시도에 대해서보다는 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윤추구의 자유를 지키려 하였다. 이러한 수공업자와 소매상인의 다양한 요구사항은 특히 옛사회의 파괴 작업에 영향을 미친 열렬한 불평불만과 도약적인 반란의 과정으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관성 있는 행동지침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엄밀한 의미에서 인민의 여러 계급은 계급의식을 갖지 못했다. 봉급생활자들은 가난을 면할 효과적인 처방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단지 귀족제도에 대한 반감, 거물과 부자에 대한 요지부동의 적대감만이 근로대중의 일체감을 불러 일으키는 뜸씨로 작용하였다. 풍년이 들어 경제적 위기가 오자 근로자대중은 특별히 독립된 계급이 되기는커녕, 부르주아계급의 뒤에서 수공업자 계급에 뒤섞였다. 이처럼 경제적 위기는 옛사회에 가장 효과적으로 충격을 가하였지만 인민대중이 거둔 승리는 결국 부르주아의 승리일 뿐이었다.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계급에 대항하여 인민적 유대관계를 유지하였다면, 그것은 오로지 인민대중이 자신들에게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반대의 경우였다면, 부르주아는 미상불 너무 위험하게 생각된 그러한 연합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농민이 프랑스 혁명에서 수행한 역할 또한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이점이 이 혁명의 가장 독창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였다. 1789년 당시 농민의 대다수는 농노제도가 사라졌기 때문에 자유민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의 봉건적 관계가 농촌에서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예는 영주의 부과금과 교회의 십일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주권에 속한 것들도 교회의 것만큼 무거웠으나, 그에 대한 악명은 더욱 높았다. 만일 농민들에게 토지가 없었다면, 봉건제도로 말미암아 부동산에 부과된 제의무를 잘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봉건적인 것과 영주에 속한 것으로 구분되는데 봉거적 제권리는 봉토의 계약에서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서 영주의 권위에 관한 한, 그 원칙은 영주제도의 본질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고하를 막론한 사법권의 일부, 즉 영주의 사회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명예상의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에게 더 이상 복종하지 않고, 토지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조합의 범위 내에 갇혀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귀족제도와 구제도에 대한 그들의 증오가 싹텄던 것이다. 다양한 인민계급들이 부르주아혁명의 원동력이었음을 잊지 말도록 하자.이러한 깊은 갈망을 이해함으로써 대혁명 기간중의 사회적 정치적 투쟁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사건과 그 투쟁의 발전과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1789년부터 1793년까지 중산층과 인민대중의 역할이 증대되어감에 따라 귀족계급에 대한 부르주아계급의 투쟁이 심화되는 것을 목격하였던 것이지, 사회적 투쟁의 성격이 변화하는 것을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혁명은 이처럼 프랑스 사회의 현실에 깊은 뿌리 박고 있었으며, 지속성과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었다.2. 경제와 인구의 변동1789년 대혁명은 경제적 위기의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18세기는 번영의 세기였음이 분명하다. 이 세기의 경제적 절정은 1760년대 말과 1770년대 초기의 몇 년이었으며, 이 시기를 루이 15세의 광채 라 부른다. 1778년 이후 루이16세의 쇠퇴가 시작되었는데, 이 시기는 위축기와 그 뒤를 이은 쇠퇴기로서 극빈과 소요를 낳은 주기적 위기가 1787년에 끝마무리를 짓게 되는 것이다. 대혁명의 발발에 있어서 굶주림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시와 농촌의 인민대중은 1789년 부르주아계급의 선동적 술책 때문에 동요되지는 않았다. 인민대중이 본능적으로 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들고일어났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들고일어났던 것이다.인민의 굶주림은 생활비의 앙등과 경제적 확장이 있는 A기의 일반적인, 그러나 실제 소득을 고려할 때 약간씩 차이가 있는 주기적이고 계절적인 변동과 관계가 있는, 요컨데 그 시대의 경제와 인구에 관한 역사적 성격으로 풀이된 성격의 결과처럼 보인다.18세기 프랑스에서의 가격변동은 1733년부터 1817년까지 1세기 동안의시도가 있었으나 귀족계급의 반란은 군주정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국고는 비었고, 국채공모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국3부회를 소집할 것을 맹세했다.제3신분의 지도계급인 부르주아는 그 때부터 역전경주를 시작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귀족적 특권을 타파하고 계급도 특권단체도 없는 사회를 건설하여 공적 평등을 수립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들은 엄격한 법치주의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서민대중의 압력을 받아 혁명적 행동에 한 걸음을 내디디게 되었다. 서민대중이야말로 진정한 동력으로서 그들 자신의 요구사항과 1790년 중반까지 지속된 경제적 위기 때문에 오랫동안 여전히 숨쉴 여유를 갖지 못하였던 사람들이다.Ⅲ. 혁명의 자생과 조직1. 희망과 공포전국3부회를 소집한다는 소식은 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 때부터, 대혁명의 흐름에 맞추어 정치적 사건과 사건의 주요동기가 된 사회적 동기를 통하여 희망과 공포가 함께 보조를 맞추며 나타났다.전국3부회를 소집한다는 소식은 새 시대를 알리는 상서로운 소식으로 대환영을 받았다. 1000년 이상의 바램에 답하고자 보다 좋은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같은 희망은 혁명적 이상주의를 뒤받침 했으며, 초원의 달 순교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재판의 영웅들의 죽음으로 빛나게 해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희망을 따라 다녔다. 그것은 특권층이 모든 것을 포기할까하는 것이었다. 농민의 눈에 비친 영주는 자기의 사회적 우월성과 자신의 수입에 이기적으로 매달려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부르주아계급도 특권층에 대하여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귀족들은 전국3부회에서 제3신분의 숫자를 두 배로 늘리는 것에 반대하였고 개인별 투표를 완강히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 같은 신념은 결정적으로 더욱 깊이 뿌리 내렸던 것이다. 1789년 7월 초 왕실과 귀족은 국민의회를 해산하기 위한 정변을 준비하였다. 불안감은 귀족의 음모가 구체화됨에 따라 공포로 바뀌었다. 공포는 사회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사회과학| 2001.10.17| 10페이지| 1,000원| 조회(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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