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열풍취업대란. 요즘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러한 취업난 때문인지 각종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준비 중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법대나 행정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 책 역시나 인적, 물질적 자본을 소비하는 우리의 맹목적인 고시 열풍에 대해 적고 있다. 고시. 흔히 사법고시로 대표되는 이 시험은 패스만 한다면 마치 자신이 천민에서 귀족이나 되는 듯한 신분 상승을 가져오게 된다고 믿고 있다. 물론 시험을 합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람은 경쟁률에서도 말해주듯이 정말 소수의 사람일뿐이다. 이 글의 저자가 말하듯 10년 가까이 고시에 매달려 많은 나이가 들도록 수험 서에 밑줄 긋는 거 말고는 할 줄 모르는 폐인을 만드는 고시에 우리의 대학생들이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그것은 우리의 대학에 전문성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외국의 유명대학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그 대학이 어떠한 학문으로 유명한지 대강 머릿속으로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은 이름만 가지고는 소위 명문대다 아니다 라는 정도만 생각할 수 있지 그 대학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학문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인기 있는 학과만 만들고 다른 대학에 있으니깐 우리 대학에도 이 학과가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대학을 설립하니 특성 있는 대학이 나올 리가 없다. 그리고 이 글의 저자가 말했듯이 명문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조차 굳이 법대 생이 아니라도 고시만 합격해라는 식의 태도도 나오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고시생 때문에 낭비되는 자원을 아까워 할 것이 아니다. 교육의 모든 문제는 교육환경에서 나온다고 난 생각한다.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대학이 만들어지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한다.외국학위신교육이라면서 몇 해전부터 조기유학의 바람이 불었다. 답답한 우리의 교육을 벗어나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은 교육열에 불타는 어머니들이 일으킨 바람이다. 이러한 조기유학 열풍 때문에 다른 집도 다 하는데 하는 식으로 조기유학의 득과 실조차 생각해보지 못하고 유학을 보냈다가 오히려 낯선 환경에 적응을 실패하여 아이를 망쳐놓은 사례를 TV를 통해서 보았다. 외국 학위를 받으러 나가는 요즘 대학생들. 난 이러한 대학생이 앞뒤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하니깐 한다는 식의 조기유학을 떠났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가 그러한 것을 바란다는 것은 이해한다. 외국에서 받은 박사 하위 하나가 얼마만큼의 위력을 발휘하는지 아직 대학생인 난 알 수는 없지만 대강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간다. 나 역시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 걸 반대하지는 않는다. 나 자신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난 단지 그 학위 종이 한 장 받으러 나가는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종이를 받으러 외국에까지 갔다 오도록 만드는 우리 사회는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국 것이면 뭐든 다 좋다고 느끼는 사회.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른 여느 나라 역시나 우리나라만큼의 어느 정도 외국에 대한 맹목적 우대는 있다고 본다. 단 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외국의 학위라고 해서 다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용이다. 외국에서 진정으로 공부하여 얻은 학위는 대우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외국학위가 많다고 문제가 생길 건 없다. 외국에서 좀 더 새로운 것을 알고 공부해 왔다는 것은 나라나 개인에게 있어서 더 낳은 일이다. 겉이 아니라 속이 중요한 사회가 무분별한 외국학위 취득을 막지 않을까 한다.
◆경험이론◆이 글에서는 전반적으로 어떤 경험도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경험의 결과를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경험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는 경험이론의 계속성의 원리와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이고 내재적인 요소 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호작용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사람들은 진보주의 교육이 인간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또한 진보주의 교육이 민주주의와 아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법과 절차에 있어 전제주의 적인 경향이 있는 전통주의 교육보다 진보주의 교육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난 여기서 방법과 절차에 있어서 전제주의 적인 교육이란 말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에서의 개성적이지 못하고 획일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과 민주주의 적인 방법은 학습자의 경험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선호하는 이유가 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진보주의 교육이 전통적인 교육과 비교할 때 학생들에게 훨씬 더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때 경험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경험의 계속성의 원리이다. 이 계속성의 원리는 습관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떤 고정된 행동양식이 아닌 보다 큰 의미의 정서적이고 지적인 태도의 형성을 포함한다고 한다. 경험의 계속성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설명할 때 우리는 교육적인 경험과 비교육적인 경험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이 글의 저자는 교육의 과정을 성장의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발전하는 것, 한 마디로 성장은 경험의 계속성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이라는 말이 경험의 계속성의 원리 전부를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특정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의 가치는 그 자체로만 판단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체로서의 성장을 촉진하느냐 혹은 방해하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 성장의 교육적인 의미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정방향으로의 성장이 자신의 전체의 계속적인 성장에 기여할 때에만 진정한 교육적 의미의 성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경험은 우리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경험의 객관적인 조건들을 구성하게 된다. 즉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앞으로 다가올 경험의 환경 적인 요소들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경험이 앞으로의 나의 발달을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할 수도 있고 나의 성장의 제한을 하는 경험의 계속성이 될 수 있는 반면에 나의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경험의 계속성 원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경험은 능동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경험이 일어나는 객관적인 조건들을 어느 정도 변화시키게 한다. 즉 자신의 개발이나 발전에 알맞은 외부적 조건들은 경험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경험은 진공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개인과 개인 밖에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험은 신체 밖에 존재하고 있는 외부적인 요소들로부터 경험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제공받는다.경험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두 번째 주요원리가 상호작용이란 말이다. 정상적인 경험은 항상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그 두 가지가 상호작용 하는 것 그 자체를 하나의 전체로 생각할 때에 경험은 바로 상황이 되는 것이다.여기에서 전통적 교육은 외적 조건만 강조하면서 상호작용의 원리를 무시하는 활동이었고 여기에 반하여 새교육 역시 내적 조건만을 내세우면서 상호작용의 원리를 무시하였다.아이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만을 내세우지 않은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와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한 객관적인 외적 조건을 잘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 외적 조건을 조절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를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활동하는 순간에만 주의를 집중해서는 안 되며 그 당시의 경험이 앞으로 계속해서 발달하는 데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이 글의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계속성의 원리와 상호작용의 원리라는 두 개의 원리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원리는 서로 교차되어 있고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삶은 상황의 연속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경험은 다음에 오는 경험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배운 지식이나 기술은 다음에 오는 경험에 역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삶과 배움이 계속되는 한은 이럴 것이다. 경험의 계속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경험은 낯선 것이 되어 말 것이다.어떤 경험이 교육적인 경험인지를 평가하는 방법은 그 경험의 상호작용과 계속성의 정도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상호작용과 계속을 따로따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가 서로 통합되어 있는 정도를 동시에 측정해야 한다. 즉 경험의 교육적 가치는 통합되어 있는 상호작용과 계속성의 정도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다.경험상황은 개인적인 요소와 환경 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인 요소는 경험상황 속에 있는 학습자를 말한다. 그리고 환경 적인 요소는 학습자의 배경에 있는 모든 객관적인 사물들을 말한다. 이러한 객관적인 사물들은 교사가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사의 적절한 조절이야말로 학습자들의 가치 있는 경험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교육에서는 이러한 것들은 무시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잘 해나가는 학생이 뛰어난 학생으로 인정받았다. 교사가 객관적인 조건들을 잘 선정하고 조직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이런걸 말한다. 교사는 학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학습하고 있는 가람의 능력과 필요를 이해해야 한다.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Sex and Temperament in Three Primitive Societies)이 책은 1931년부터 1932년까지 문명의 오지인 뉴가니아에 저자인 마가렛미드(Margaret Mead)가 직접 들어가 제각기 특색을 이루고 있는 세 부족사회를 대상으로 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산악 지대에 거주하는 온순한 아라페쉬(Arapesh)족과 사나운 식인종 먼더거머(Mundugumor)족과 품위 있는 인간머리 사냥꾼 챔불리(Tchambuli)족이란 세 부족사회를 통해 성차(性差)라는 분명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각기 기질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어떻게 형성하여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남녀간에 나타나는 기질차이가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훈련된 것인지에 대해 좀더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세 부족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성에 따른 인성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제Ⅰ부 산에 사는 아라페쉬 인아라페쉬 인들은 남녀 모두가 비슷한 인성을 나타내는데, 이 인성의 특징은 부모 역할의 측면에서는 모성적이라고 부르고, 남녀 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이다. 이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따뜻한 협동심과 인간적인 교류 이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남자들까지도 다정하고 욕심이 없고 협동적이며 타인에 대한 관심과 그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길들여져 있다. 즉 이 사회는 남녀가 같은 목적 아래 역할을 분담하는 사회이다. 남자가 더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타인에 의해 강제로 부여된 필요악에 불과하고 여자가 어떠한 의식에서 제외된다면 그것은 여자 자신을 위해서이지 남성의 우월성을 세우기 위한 방편이 아닌 것이다. 특정한 정치조직과 인위적이고 엄격한 사회 규칙도 없는 이 사외의 조직 양상을 볼 때 이러한 아라페쉬 인의 생활 태도는 그리 어색한 것이 아니다. 지도력과 특권에 관해서도 아라페쉬 인들의 생각은 우리가 다분히 여성적이라고 여기는 기질을 전제로 하고 데에는 초기 사회화 과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듯싶다.어린 아이는 두가지 특정한 경험을 제외하고는 극히 따뜻하고 행복하게 자란다. 아이는 결코 홀로 남겨지는 법이 없으며 항상 피부 접촉과 친절한 목소리가 그들을 안심시킨다. 어린 소년과 소녀 역시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기 돌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 아이는 성장함에 때라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서 두루두루 보호와 사랑을 받게 된다. 이로써 아이는 신뢰하는 집단의 범위를 점차 넓혀 나가게 되며 애정을 고루 쏟게 된다. 그리하여 아이는 스스로 환경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자라기보다는 남들이 늘 보살펴 주는 가운데 정서적 안도감을 가지고 자라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약간의 남성과 여성적 차이가 벌어진다. 소년은 네댓 살이 되면 아버지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 지는데 이때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아이를 떼놓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즉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더욱 자주 그가 가장 의존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거절당하고 혼자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소년은 울화를 터뜨리며 성깔을 부린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 소녀가 셋 있었다는데 아버지가 이들 모두를 아들처럼 다루었다는 것으로 볼 때 남자와 여자의 기질 차이는 천성적으로 타고 난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라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려볼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아이 중 남자아이만 탐베란 이란 의식에 포함시켜 성년식을 치룬다. 그리고 어린 소녀와 약혼을 하여 남편과 아내가 오랜 기간동안 오누이처럼 지낸 후 결혼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아라페쉬 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결혼 생활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긴 약혼기간을 지나면서 두 젊은이는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친해지고 아내는 남편을 인도자로서 거의 부모나 마찬가지로 따르며 첫 번째의 성 경험도 오랫동안 맺어 온 관계 내에서 압박감 없이 자연스럽게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 전개된다. 아기가 태어나 함께 액운을 예방하는 금기를 지켜 나감에 따라 젊은 부부의 금슬은 더운 기간 때문이 여성이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관계에 있어서 남성과 같지 않을 분이다. 즉 남성과 여성 사이에 나타나는 지혜와 책임의 차이는 연령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해된다. 물론 이 사회에서도 이러한 이상적인 기질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탈자도 보였으나 이러한 아라페쉬 부족의 인간 본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남녀간에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남녀가 다 같이 선천적으로 모성적이고 자상하며 포용력이 크고 비공격적이라고 말하는게 나에게는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만 들릴 뿐이었다.{제Ⅱ부 강가에 사는 먼더거머 인먼더거머의 사람들은 아라페쉬 인들과 대조적인 기질을 보이고 있는데, 남녀 모두 무자비하고 공격적이며 성욕을 자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자애롭고 모성적인 면은 극히 무시하였다. 즉, 여기서는 남녀 모두 격렬하고 경쟁적이며, 성욕이 강하고 질투가 심하며,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복수를 하고, 자기과시와 분쟁을 즐겨하는 것이 정상으로 되어 있다. 먼더거머 인들이 생각하는 남녀의 이상형은 아라페쉬 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모습이다. 앞에서 아라페쉬 인들은 서양의 전통적인 기준으로 볼 때 남녀가 공통적으로 모성적이며 비남성적인 기질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더머거 인들 역시 성별 차이가 인성적 차이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나, 이들은 서구인이 여성적이라고 간주해온 부드러움 등의 특질은 완전히 배제한 매우 남성적이며 강한 기질로 남녀 모두를 표준화하여 왔던 것이다.먼더거머의 남자 아이는 적대감으로 가득 찬 세계에 태어난다. 남자는 모두가 그의 적이며 성공하기 위해서는 난폭해져야 한다. 아버지는 아기를 가져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를 갖지 않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주어진 무대는 이렇게 비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특유의 로프제도와 결혼 제도 하에서 아들이라는 존재는 상속자가 아닌 경쟁자이고, 그의 극진한 보호를 받은 딸들도 그에게서 뿔뿔이 떠나버리고 말 존재인 것이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이가 똑같이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질투심이 많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이 사회의 결혼 양식을 요약해 보면 첫째로 대단히 어릴 때 맺어지는 중매혼으로서 이것은 배우자들이 도망치기에는 너무 어린 까닭에 유지된다. 두 번째는 연애에 의한 결혼으로 초기의 대단히 열정적이고 친밀한 부부 관계는 임신 혹은 다른 아내를 얻음으로 인해서 분쟁과 불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남편이 죽어서 그 과부가 재혼하는 경우인데 이것은 많은 혼란을 야기시켜 남자 상속자들간에 분쟁을 일으키고 아내간에도 불화를 낳는다. 과부가 성숙한 딸이나 아들을 함께 데려가는 경우 일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사회에도 딸과 아들을 자상히 보살피고 싶어하는 온화한 성격의 남성과 아기를 꼭 껴안고 얼려 주고 싶어하는 여성은 일탈자로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사회의 일탈자란 살인을 해야 할 때 칼 잡은 손이 떨리는 소년들, 자부심에 가득 차 돌아오게 될 숲 속 정사 경험이 한번도 없는 소년들, 아내를 얻기 위해 누이를 이용하려 들지도 않고 큰 형들이 누이를 이기적으로 모두 맞바꾸어 버려도 그냥 묵인하는 소년들, 그리고 어머니가 아무리 부추겨도 아버지를 거부하지 못하는 소년들이다. 이들은 아라페쉬 일탈자들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려 사회 생활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과는 달리 자신들에게는 진정 어울리지 않는 격렬하고 경쟁적인 사회생활을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뿐인 것이다. 이들의 부드러운 감성은 이 사회에서는 그저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전통의 흐름을 거슬러 가보려고 가당찮은 노력을 쏟은 자들인 것이다.{제Ⅲ부 호숫가에 사는 챔불리 인세 번째 살펴 볼 챔불리는 조직상 일부다처제적 부계 사회이고 남편이 아내에 대한 값을 지불한다. 처음에 이 부분을 접할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두 제도는 흔히 여성 비하의 관습과 직결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여기선 여성이 무시되리라고 추측했었지만 실제적으로 여기서 현실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사람은 여자들이었다.인 남녀상을 상정하고 있다. 게다가 아라페쉬와 먼더거머 사람들은 인간관계 그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반해 챔불리 사람들은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관계 차원을 넘어선 예술적 목적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라페쉬 인이 식량을 장만하고 자손을 불려 나가는 일을 인생 최대의 과업으로 여기며, 먼더거머 인이 전투를 하거나 전쟁을 하여 아내를 늘리는 데서 인생 최대의 만족을 느낀다면 챔불리 인은 주로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남자들이 예술가이며, 그 대다수가 한 가지 분야만이 아니라 무용, 조각, 직조, 회화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능통하다. 결국 여성 지배적 현실과 소위 매력적이고 우아하며 주위를 끌려고 애쓰며 애교스런 춤을 추는 남성적 특성이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친밀감과 유대감이 모든 여자들의 상호 관계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남자들의 집단은 언제나 긴장과 경계심에 싸여 있으며 가시 돋힌 말, 은연중에 비난하는 뜻이 담긴 말이 오간다. 따라서 소년이 겪게 되는 현실은 소녀가 겪게 되는 현실은 더 혹독한 것이다. 이렇게 소년과 소녀가 인생에 대해 대조적 태도를 갖게 하려면 그들은 출생 초기부터 각각 다르게 교육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닐곱 살까지는 똑같이 길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를 넘어서면 소녀는 곧 수공예를 익히게 되고 소년은 여전히 그 상태로 내버려 진다. 이런 과정에서 무시되고 소외된 생활을 하는 몇 년간은 소년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위에서 이미 챔불리 사회는 부권제 사회이면서 실제로는 여성 주도적인, 일종의 모순이 존재하는 사회임을 언급한 바 있다. 심리적, 성적 적응에 있어 남자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즉, 그의 사회는 그에게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는 경험을 통해서 여자들이 아버지와 형을 지배하듯이 자신을 지배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역시 다른 부족들처럼 일탈자가 생겨 날 수 있다. 먼더거머 사회의 일탈자다.
♠ 경험 이론의 필요성 ♠앞장에서 진보주의 교육이 전통적 교육에 대한 불만에서 저절로 생겨났다는 점은 이미 언급되어 진 바 있다. 하지만 새 교육이 전통적 교육에 대한 지나친 부정이나 순전한 반대에만 관심을 둔다는 극단적인 측면은 오히려 새 교육이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를 무시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새 교육은 경험 이라는 측면에 중점을 두고 교육과 경험을 유기적으로 잘 연관시켜 나가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경험이란 무엇일까? 교재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진정한 교육은 모두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경험이 진정한 교육적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보아 교재에서 수 십 번씩이나 언급되는 경험이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일을 보거나 듣거나 느끼면서 겪는 것 에 그치지 만은 않는 것 같다. 교재에서 말하는 교육적인 경험 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험이 경험하는 자신으로 하여금 관심이나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앞으로 할 경험에 보다 풍성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 즉, 경험의 계속적인 성장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이 바로 진보주의 교육이 전통적 교육을 비판하는 근거라고 생각된다. 전통적 교육은 단순히 교과서를 암기하고 교사의 수업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경험 을 실제 생활에 적용시켜 생각해 보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으로 충분히 내면화시키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보주의 교육은 과거 전통적 교육이 경험이 완전히 배제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행해진 경험들이 교사나 학생에게 비교육적인 경험이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절실히 공감하며 앞으로 교사가 될 지도 모르는 입장에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듯하다. 지난 기간 동안 나도 전통적 교육이라고 하는 일종의 주입식 교육을 받으면서 느껴온 고충들이 있고 또 그러한 고충을 앞으로 내가 가르치게 될 학생들에게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한다. 학생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무엇이 바람직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진정으로 바람직한 경험을 제공해 준다는 것은 상당히 고민스러운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 부분은 앞으로 4년 동안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