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돌아봄으로써 슬픔을 넘어선 지향을 보기들어가며우리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 칭하고 그 고난을 고난 그대로 들여다본 함석헌의 글들은 과연 피로 쓴 글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나는 그 슬픔의 의미를 생각해본 사람 이후에 나에 대해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 나는 함석헌과 김상봉을 알아 슬픔에 끊임없이 묻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슬픔을 생각함은 슬픔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기쁨을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슬픔 따위는 없다. 슬픔을 따라 체험한다는 것은 슬픔에 대한 예방주사일 뿐이지 그것이 슬픔 그 자체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픔을 넘어서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늘어놓아보려고 한다.슬픔과 욕구의 문제함석헌은 “혼자서 안락하기보다는 다 같이 고난을 받는 것이 좋다. 천국이 만일 있다면 다 같이 가는 데가 아니겠나”(20)라고 말 하지만 그 말은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것 이다. 이를테면, 친구들과 놀다가 모두 돈이 떨어지고 제 수중에 동전 몇 개만 남아 집에 가는 체 안녕하고 돌아서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누가 보기 전에 이 시릴 사이도 없이 먹어본 사람이면 그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양심 없는 이여서 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을까? 양심에 대해서 더 고민해보아야 하지만 적어도 숨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사람은 부끄러움과 자신의 욕구를 저울질해 본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사회냐 하면 그 아이스크림을 자신보다 더 목 말라하는 사람 옆에서 당당하게 먹을 것을 권장하는 사회다. 돈을 가진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고 자신의 돈으로 사먹는 것은 늘 정당하다. 돈이 곧 정당함의 상징이 된 사회가 되었다. 때문에 이 글을 쓰는 내게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사건이 이제는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다 같이 천국을 향할 수 있을까? 다 같이 하는 것의 의미를 묻는 것은 내게 있어 감당할 수 없는 물음이다. 내가 남과 같은지 아닌지 의심하는 나에게 전체란도 어찌할지 모르는 작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에게도 속지만 단체에게는 더 잘 속는다. 단체는 전체와 다르다. 전체는 우주 근본에 일치되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 그대로를 반영하는 것이요, 단체는 이기적 나의 모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114) 그런데 단체가 단순한 이기적 욕구만으로 결부되어 있을까? 그렇다면 민족도 이기적 나의 모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기적 나의 모임은 다시 전체를 향하는 단체가 될 수도 있고, 단체의 욕구안에 머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집단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이익이란 자신의 욕구와 관련되어 있고, 사람은 기본적으로 욕구를 가진 존재이다. 아무리 큰 정신을 지니고자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물적토대’를 이루는 기본적 욕구 충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욕구가 인간을 이루는 전체는 아닐지라도 사탄의 음모도 아니다. 하나님이 욕구와 무관한 뜻을 내게 내려준다면 나는 그가 사탄이라 매도할 자신을 가지고 있다.인간에게 있어서 욕구란 분명히 중요한 것이다. 맑스식으로 이야기 하면, 이 욕구란 ‘물적토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는 자신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독일의 철학자들이 ‘물적토대’ 라는 하부구조를 무시하고, 오직 상부구조인 정신만을 탐구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서 자신의 철학을 출발한다. 하부구조가 변화해야 상부구조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맑스의 눈에 비추어 본다면, 함석헌이 정신을 물어보고 공동체의 가치를 묻고 하는 것들은 모두 다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정신은 단지 ‘물적토대’의 변화에 수반해서만 오는 것일까? 맑스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이중적이다. 맑스는 하부구조의 변화를 지향하지만 결국은 상부구조의 변화가 최종목표다. 그런데 이 하부구조의 변화의 진행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에 있고 이것이 포화 상태에 이를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경제가 포화상태에 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노동자계급을 의식화 한다. 즉 정신을 차리게 한다. 그 각.”고 권장한적 있다. 함석헌은 역사 역시 하나의 예술이라 말하며 “생명은 곧 죽음으로 삶이 아닌가?”(231)라고 물었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철학자는 언제나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모두 말하는 문맥은 다르나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삶의 부정성을 향하는 각오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런 각오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철학자이다.’ 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철학자는 반듯이 정신을 챙기는 일로써 그 부정성을 지닐 수 있다.그런데 우리는 이 부정성 반발성 반항성을 속성으로 가진 정신을 가지고 씨?의 소리 민중의 소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정신의 진정한 속성이 물화에 대한 부정이라 할지라도 맑스의 지적처럼 물질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아도르노가 지적하듯이 어떤 것도 물질로 환원시키는 것에 대한 부정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함석헌이 뜻에 한정해서만 역사를 보는 것은 역사전체를 조망하는데 무리가 있다. 부정성을 띤 정신이 어떻게 현실세계의 사람들을 속박할 수 있는지는 조선사회가 잘 보여준다.이데올로기와 개인조선시대 아무리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들이닥쳐서 흉년이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혁명은 성공하지 못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이 피폐해졌는데도 그들의 연대는 오직 산속에서만 이루어지고 만다. 삶의 터전이 자꾸만 없어져가는 민중들이 자기 옆의 민중을 인식하고 연대하여 전체 민중이 모두 힘을 합할 수 있었다면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굶어 죽어가면서도 일반백성들은 한 번도 양반네들에게 임금에게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들은 때로 분노하고 양반들의 집을 털었지만 그것은 양반 개개인 관리 개개인을 향한 분노로 그치고 만다. 그들을 그렇게 움츠리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냐 하면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였다. 계급적 질서가 엄격한 사회적 제도가 그들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학습되어 왔고, 그것이 조선이라는 이미 망조든 나라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의 곪아터짐은 겨 있겠는가? 아직 헤겔의 철학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게 정신이란 육체에 깃드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은 모두 함께 존재하고 그 선후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과 물질이란 일방향성을 띠지 않고 순환성안에 있다. 순환성이란 말이 애매해서 우리는 그 순화성 안에서 적절한 코드를 찾아내고 멀티탭을 연결해서 끌어와야만 한다. 그 작업은 현실에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이상을 향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이상사회를 위한 타협이상적인 사회란 개인의 욕구와 전체의 욕구가 맞물려 조화를 이루는 사회이다. 그런데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에서 들추어 보았던 사회는 개인의 욕구란 불가능하고 언제나 전체를 향해있는 사회였다. 그런데 그 사회들은 모두 다 기만적 총체성에 대해서 사고하고 있다. 그 기만이란 ‘나’없는 ‘우리’다. 그리고 우리의 총체성은 임금이 된다. 그래서 역사의 무대는 임금과 그 권력관계들을 주연으로 등장시킨다. 우리 역사에서 하층민이 혁명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던가?단군도 주몽도 왕건도 출신은 하느님 혹은 왕의 아들이었다. 적어도 귀족의 아들이었다. 그들이 씨?을 대변하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었던가? 모두다 기개가 남다르고 재주가 남다른 사람들이겠지만 그들을 민중이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늘이 선택했다고 하는데는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민중 씨?들의 요구를 총체화 해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영리한 왕들이었기에 큰 반발이 없었고 사랑을 받기도 했을 터이나 민중들이 선택했다는 것은 과장되다. 진정한 씨?의 소리에서 멀어져간 선택이었다. 당시 왕들이 역사에 공로가 없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그들이 과연 민중을 대변하는 지도자였는가와 그 사람들이 쓸 만한 전제군주였는지는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우리는 이제 하늘이 내려준 훌륭한 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현명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둘 사이의 차이는 사회제도의 차이이다. 왕이 베푸는 은혜는 이제 불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나의 공동체의 주인됨을 통하는 과정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것도 아니요, 뜻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다.”(55) 뜻이란 곧 하나님의 뜻이다. “인생은 목적운동이다.”(55) 그리고 이 목적이란 하나님의 뜻과 닿아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뜻은 씨?의 뜻과 같다. 하나님의 뜻은 곧 씨?의 뜻이 된다. 그래서 “영웅은 민중과 하나됨이다.”이란 말은 그때 성립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이미 주어져있는 것이다. 씨?의 뜻도 과연 주어져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씨?의 뜻이란 언제나 지향하는 것이다. 지향과 목적은 같은 것이지 않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적과 다른 요소들이 다시 목적을 위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컨대, 아름다움을 위해 추함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이 섭리라고 말할 수 있다. 고난의 역사라는 곳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을 위한 예비이다. 플라톤도 수갑을 차고 있다가 벗었더니 불쾌가 있어서 쾌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지향에는 다른 길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씨?이 악역을 예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영웅의 탄생은 씨?의 뜻이자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조와 같은 인물의 출현도 씨?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씨?의 뜻은 만났다가 이별하는 과정을 지니고 있다. 시기에 따라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이다. 뜻이 역사를 이루는 동력이라 하더라도 뜻을 추리는 것은 언제나 사후적이고 어떤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의 역사를 뒤덮고 있는 슬픔의 그림자가 무의미 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슬픔이 언제나 예비 되어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필요하다.슬픔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일이 현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슬픔을 불러오는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반성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역사의 어둠을 생각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어둠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현실의 어둠을 감지하는 거기까지가 역사의 어둠을 생각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한계다. 그 다음 우리가 어둠으로 내려가 할 수 있.
조선이 지은 눈물과 현재의 거짓된 웃음대원군의 쇄국의 허구성대원군이 집권하고 난 후 당쟁을 타파하기 위해 서원을 철폐하고, 재정을 개혁하였으며, 풍속을 교정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기위해 힘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기에 경복궁을 중건하고 천주교를 과도하게 박해하는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였다. 통치자가 무슨 이유를 들어서건 만 명이 넘는 백성을 살해한 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경복궁의 중건도 “국력이 피폐하고 나라가 어려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헤아리지 못하고 공사를 단행한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였다.” 자신의 강압적인 통치술로 말미암아 자신이 마음먹은 일을 추진한 능력은 대단하나 인정이 있는 통치자의 모습은 아니었다.그가 10년만에 하야하고 고종의 외척들이 세력을 잡게 된 부분을 박은식은 아쉽게 묘사하고 있다.“임금이 날이 갈수록 정치에 관심을 가져 대원군은 물러났지만, 임금을 곁에서 모시는 자의 충성다툼과 관리의 기강 문란이 여기서부터 생겨났고, 뇌물과 아첨이 끊이질 않아 망국에 이르게 하니 대원군을 무너뜨리려던 민규호의 계획이 나라의 운명을 해치게 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그러나 대원군이 하야의 배경에는 이미 이들 세력이 있었음을 가만 한다면 대원군의 강압통치로는 이미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대원군의 쇄국정책 또한 외국과의 관계고찰에 따른 것이지는 않다는 점은 여러 사람이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대원군의 쇄국의 문제점은 단순한 아집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외국과의 관계에서 자주국가 대한 신념을 표현한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옛 부터 나라는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사람도 죽지 않은 사람이 없는 법인데, 망하든 죽든 간에 어찌 오랑캐에게 화평을 구걸하거나 또한 도피하리오.”(87)장대한 기개의 표현으로라도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쇄국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쇄국의 대상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청과의 관계를 고찰해 본다면 대원군의 쇄국이 자주적 정신의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은 이미 청대원군은 상인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강화도의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서양목은 대원군이 프랑스의 군함과 미군의 상선을 물리친 후로 서양목의 수입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청과의 무역은 청전(유철)-홍삼교환체제가 계속 유지된다.) 대원군의 쇄국은 교환체제의 거부이거나 자주성에 대한 고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원군의 쇄국이란 서양에 대한 두려움의 역작용이었다.간디가 카디운동을 주도하면서 “자치 없이 자립 없고, 자립 없이 자치 없다.”고 한 대목을 대원군의 쇄국과 비교해서 우리는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간디의 주장은 아주 완고한 쇄국정책이었다. 그는 당시 인도사회에서 영국물품불매운동 조차도 비난 하면서 “우리가 소비하는 물품이 영국산이냐 일본산이냐 미국산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인도의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리고는 스스로 물레를 돌려 자신의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아마도 간디가 말한 자치와 자립의 근거는 비폭력적 사회에 대한 갈망에서 나왔고, 대원군은 자신의 강권을 보여주고 싶은 유아적 발상에서 나온 차이가 있다. 그래서 간디는 힘으로써 외국과의 교역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했고, 대원군은 무력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대원군이 실각한 이후에 청국에 볼모로 잡혀가고, 다시 돌아와 일본에 이용당한 것을 상기한다면 힘의 크기 앞에서 힘을 통해 자신을 들어내고 싶은 사람이 더 큰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분열의 조선사회민씨일가가 세력을 잡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분열하는데 이러한 분열은 전혀 비극적이지 않다. 그것은 분열하는 주체가 이미 주체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통치자로써 사회에 대한 이상은 없고 통치권에 대한 야욕만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 보다 더 큰 무력을 지닌 이들 앞에서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다. 다만 또 다른 강자에게 자신의 통치권에 대한 비호를 부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역사가 대원군의 실각 이후 을사늑약까지 40년간 반복될 뿐이다. 이것은 통치자들이 문이었다. 대원군이 그나마 개혁하려 했던 일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계속해서 지방 관리들의 수탈은 계속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궁중의 주지육림은 계속되니 민심이 좋을 수 없었다. “나라가 망하려 함은 그 전에 인심이 죽는 것인데, 이제 인심이 죽으니 사와 공이 모두 멸하고 만 것이다.”(133)는 박은식의 말은 정확한 것이다.하나의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공동의 이상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나와 이웃은 모두 굶어죽어 가고 있고 왕궁의 연희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있다면 무엇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조선의 몰락 대한제국의 몰락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일본, 러시아, 청나라가 무슨 성인 군자들의 나라라고 이런 나라에게 도움을 주겠는가?고종도 부강한 나라에 대한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너무 과도하게 간과했다. 그래서 역으로 임오군란이나 동학의 난이 발생했을 때, 외국 세력의 보호 아래로 찾아가기 바빴다. 동학의 난에는 공동체의 열망이 있음을 위정자들은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은 언제나 정권을 향해 야합하고 분열하는 당파만을 보고 살았기 때문이다.망함에의 열망과 구조를 믿는 관리그래서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역사는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나라를 기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만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당시 조선의 지배층이었다. 일개 선비가 천왕에게 보낸 상소문을 살펴보면 조금만 밝은 눈을 가진 이라면 모두 알 수 있었던 일을 가지고 지배층들은 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기만적으로 외교를 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민족을 파는 것은 권력계급이다. 민족을 팔지 않고 권력은 안 생긴다.”)는 지적은 조선의 지배층들에게 정말 어울리는 말이다. 당시 지배층에게는 우둔함과 더불어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이때 자신감이란 어떤 어려운 시련이 닥쳐와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되든지 자신은 살아남아 연회에 참석하게 되리라는 자신감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을 가진 러한 모습이 특별히 드러난 것이기는 하나 기존의 조선 사회가 내재적으로 품고 있었던 문제가 열강들의 다툼 속에서 폭발한 것처럼 보인다. 박은식은 ‘역사의 대강’에서 조선사회자체를 문제 삼고 있진 않지만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삼고 있는 나라가 명과 더불어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당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가 예송논쟁임을 상기한다면 조선은 이미 구름속의 나라였다. 그것이 문화라는 측면에서 옹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를 지내는 방식을 따르는데 국운을 건 나라는 이미 파한지 오래된 나라이다. 그 이후 조선에서 새로운 지배 권력이 등장하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였는지 고찰하는 것이 훨씬 흥미로운 고찰이 될 것이다.우리가 큰 틀에서 보자면 청의 속국에서 일본의 속국으로 넘어간 꼴인데, 이것이 바로 사대주의의 한계이다. 사대주의를 벗어나 자립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주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공동체의 주인은 각각의 개인들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동체에 대한 주인의식을 통해서만 개인적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다시 공동체의 주인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사대주의는 전체의 주인이 되기 위해 큰 것과 자신을 그릇된 동일시를 시도한다. 내가 무슨 주자의 자손이며, 공자의 자손이어서 그들을 끼고 안방에 기거하는가? 큰 것을 섬긴다고 했을 때, 큰 것은 자기에 비해 큰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전체를 섬김이어야 한다. 조선시대 명나라가 우리의 전체였던가?새로운 공동체공동체의 주인됨은 앞서 언급한 간디식의 공동체가 가능하다. 작은 단위의 아쉬람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평등하게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해나가는 공동체이다. 간디에게 있어 의무란 매우 중요하다. 인도의 오래된 병폐라고 지적하는 카스트제도조차 차별이 아닌 의무라는 측면에서 옹호하고 있다. 인간이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의무를 져버린 행동이고 카스트 제도란 직업적 분화이고 의무였던 것이다. 공동체가 모두 평등하게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그 바탕 안에서 각각의 개인들이 따른 것일까? 물어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자신의 선조가 하던 일을 자손들이 물려받아 일을 해 나간다. 그리고 그 일이 의무란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무가 평등을 바탕으로 한 의무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관리직을 양반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사농공상의 차별이 존재했다.그런데 간디의 이상적 의무도 역시나 불안한 요소들을 안고 있다. 이 의무란 매우 복잡하다. 첫 번째 일이 의무이기만 할 수 있는가?는 질문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일 자체가 자기실현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면 간디의 이상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희생이란 자칫 자발적 희생이 아니라 강요된 희생이 될 수 있다. 비록 모두가 평등한 의무를 지닐 수 있다고 할지라도 간디가 말한 의무는 너무 폐쇄적이다. 그리고 이 폐쇄성은 다시 봉건사회로 향할 수 있다. 평등하게 자신들의 일에 대한 분담을 향한다는 유토피아는 폐쇄된 유토피아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마무리그렇지만 간디가 말하는 공동체의 소중함은 현대에 와서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조선과 같은 신분적질서가 존재했던 봉건적 사회에서 현대로 이행하면서 서구에서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어떤 것보다도 개인의 권리가 중요하게 되었다. 열린사회로의 지향이 시작된 것이다. 포퍼는 열린사회를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라 부르고자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특정한 공동체에 속해있지만 떨어져서 보면 모두 각각의 개인들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는 그 자체로 훌륭한 말이다. 이러한 의식은 중세봉건주의 사회 ‘신’중심의 사회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근대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무엇도 닫혀있지 않고 빛 속에 놓고 비교하고 선택하게 하자. 개인의 권리란 이 선택권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경제적 선택이건 정치적 선택이건 그 조건과 조건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만 선택의 자유만을 내세우는 관점은, 바로 그
국제결혼의 원인과 2세들의 차별국제결혼내일글로벌주식회사, 백가연국제결혼문화원, 주피터국제결혼문화원, 제일국제결혼 문화원, 신성국제결혼, 주피터국제결혼문화원등등 검색사이트에서 국제결혼을 치면 나오는 순서다. 결혼이 언제 주식회사가 되었던가? 국제결혼 문화원에서는 어떤 문화를 전파하고자 하는가? 주식회사에서는 무었을 팔고, 문화원에서는 어떤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가?중국, 우즈벡, 베트남, 러시아 국제결혼상담 업무를 하고 있는 업소들이 결혼정보회사와 어떻게 다른가? 후자가 만남을 주선해주고 수입을 챙긴다면 전자는 단방향성을 띤 만남이다. 일테면 후자는 만남에 대한 스케줄 예약만 가능하다면, 후자는 만남에서 결혼수속을 밟아주는 역할까지 해준다. 그런데 이 국제결혼은 한국의 남자와 중국, 베트남, 우즈벡, 러시아로 한정되어있다. 그리고 이 국제적 결혼에 여성의 선택권은 이미 없다.국제결혼이란 사실 여성 사 오기와 다름없다. 과거에 지참금을 가지고 결혼하는 제도가 존재했었던 사회는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 사회의 전통에서 나오고 같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암묵적 동의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면 이 국제결혼은 한국사회의 전통이나 문화와 상관없이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 이용한다. 그렇다면 이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이 비윤리적인가? 물을 수 있다.국제결혼회사들을 통해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소외된 사람들이다. 결혼이 하고 싶어도 어떤 여성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농촌이거나, 도시에 있다고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늙어버린 노총각이다. 이들은 버젓이 한국의 사회의 일원이지만 주변에서 특히 보통의 여성들이 결혼대상자로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결함이 아닐 것이다. 삶을 살고 있는 구조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가난하거나, 늙었거나, 혹은 장애인일 것이다.소외된 사람들이 돈을 쥐고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는 사람을 찾아나선다. 결혼 상담을 하러 가는 노총각의 마음이 결혼의 꿈을 키우기나 했겠는가? 누가 이들을 이런 결혼을 고려하고 실행하게 하도록 충동질 하는 것인가?그들의 선택은 절대로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의식이 싹트면서 개개인은 모두 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머슴도 종도 없어지고 모두가 똑같이 평등하게 살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어떠한 가치보다 선택권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에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이 선택은 언제나 자발성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도 좌판에 깔려있다. 명품 옷을 사 입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그들은 디자이너의 정신을 입는다고 하지 않나. 입는 사람들이 정신을 산다는데 정신을 팔지 않는 디자이너가 있겠는가?그러나 좌판에 깔린 정신은 물론 물건도 선택하지 못하도록 저주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허용되지 않는다. 선택에 앞서서 선택할 수 없음을 선택하게 되어있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속에서 자유를 행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외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사실 필연적이다. “경제적 선택이건 정치적 선택이건 그 조건과 조건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만 선택의 자유만을 내세우는 관점은, 바로 그 자유나 자유의 권리를 빗장으로 삼아 불균등한 현실에 대해 문을 닫아걸 위험을 안고 있다.”)한국으로 결혼하러 오는 여성의 입장에서도 이는 분명하다. 여성들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서 자신은 한국에 결혼하러 오는 것이다. 모르는 남자에게 오지만 그들의 어려운 가정에 돈을 보낼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녀들의 선택역시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자유를 버리기 위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무기인데 그것을 팔아서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다.사회가 있다면 우리는 이처럼 이미 선택의 자유를 빼앗겨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그 권리를 찾아주는것이 그 역할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란 선택의 폭넓음이 아니라. 선택의 기회가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자유다. 즉 평등한 자유다. 평등과 자유는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평등할 수 없다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롭지 못하다면 평등할 수 없다.이 국제결혼이 불러오는 두 번째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다. 국제결혼을 선택한 남자들이 이미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 이었다면 여성들은 외국인이되 우리보다 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든 아이들은 국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되고 만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그러한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코시안들이라 불리는 혼혈아들이 우리사회에 늘어날수록 그들은 이미 최하위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막노동판에서도 일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한 혼혈 노동자의 말은 이들의 상황이 어떤지 짐작하게 한다.민족주의로 이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다. 우리는 단일민족이어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외국인이어서 벌어지는 상황은 아니다. 그들이 가난한 외국인 이어서 벌어지는 문제가 나는 더 크다고 생각한다. 많은 수의 사람들은 아니지만 선진국에서 한국에 공부를 하러 오거나 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낯선 시선을 보낼지언정 이들에게 냉대하고 무시하지 못한다. 학원에 영어를 가르치러온 외국인 강사가 수강생들과 돌아가면서 동침을 한 사례가 밝혀져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개인적인 매력은 접어두고 그들이 많은 수의 학생들을 꼬실 수 있었던 데는 영어에 대한 선망과 영어권 국가들에 대한 선망이 작용하였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시작하며누군가를 글을 통해 먼저 만나고 후에 그 사람과 관계 맺음을 가져본 것은 선생님이 처음 이었습니다. 내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그 속에서 글과 말의 차이에 대해 좀더 명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글의 저자에게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여러 차례 강의를 듣고 특정한 주제나 책에 관하여 보고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보고서들은 제가 찾아 읽은 자료들로부터 강의하는 사람과 내가 서로 타인이기에 상호 오독의 가능성을 전제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말을 하던 좀더 편하게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 본인에게 팬레터가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보내는 일은 저자의 오독 가능성은 사라지고 나 혼자만의 오독이 전제한다고 느껴져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난감하게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선생님의 글과 말을 주제로 한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다음의 글들은 선생님에게 보내는 저의 편지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순수예술과 정치적 예술선생님의 책에서 정치적 예술이란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숭고한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서정주의 예를 들어가며 비판하는 순수예술에 대한 정의는 찾아보기 너무 힘듭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선생님이 말하는 정치는 결국은 거대담론에 관한 것이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아니 그에 앞서 우리는 순수란 단어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수란 다른 것과 섞임이 없는 어떤 것이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순수예술은 섞임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예술이란 것 자체가 타인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그림이나 글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연습장의 낙서로 존재 하는 것과 액자에 넣어지거나 출판된 것은 엄연히 다르지요. 혹 내 연습장을 다른 이에게 보여준다면 이것은 예술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술은 혼자서 하던 둘이서 하던 그 둘 사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님은 당신에게 시인의 재능이 있다면 5.18을 시로, 화가의 재능이 있다면 벽화로 표현 할거라 하셨죠 멋진 얘기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소재로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쟁점화 되고 이슈화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그린다고 해서 예술이라고 강요한다면 자신에게 진실하고자 하는 많은 예술가들-기본적으로 우리들 자신은 모두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에게 내면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바라보라고 말하게 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정치적인 문제를 나에게 내면화시켜 예술적인 어떤 것으로 승화시킨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훌륭한 예술이 되겠지요.하지만 카프카의 글과 같은 것들이 나와 너의 만남보다는 나 속의 나에 대한 것, 나 속에 타인에 대한 것에 대해 말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공명을 일으켰는지 모릅니다. 예술의 유력한 기준은 얼마나 공명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영웅적 숭고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입니다.“지금 급히 다가오는 이 봄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아침 하늘은 잿빛이었다. 그런데 이제 창가에 가보면, 깜짝 놀라서 창물 손잡이에 볼을 기댄다.아래엔 분명 벌써 지고 있는 태양빛이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는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고, 그리고 바로 연이어 그 소녀의 뒤를 급히 따라가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벌써 지나가버렸고, 그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주 밝다.”-카프카-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전문이 소설 속에서 어떤 고통도, 그것을 이겨내는 영웅적 결단도, 영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단한 감동을 주지도 숭고한 느낌을 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마냥 작은 문학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한 두 번은 마주했을 법한 일을 일상이 아닌 출판물로 내놓아 우리에게 당신은 이 봄날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묻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얼마든지 반성적인 사유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정치는 원론적 의미에서 너와 있지만 자유인이 되다만 자들은 자신만이 자유롭고 아름답고 그것을 위해 전력을 다해 타인을 억압하려 들 것입니다.베이컨과 같은 이들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 할 때, 앎을 통해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면 근사하지만 그것이 힘으로써 작용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쳤는지는 쉽게 잊고 살지는 않는지. 그런 의미에서 자유인에 대해 한번 더 반성해 보아야 하지는 않을까요. 그리스 정신의 아름다움은 여자와 노예들의 바탕 안에 있던 것임을 상기해 보아야 합니다.우리에게 정말로 순수예술의 시대가 있었는가 하는 점에서 반문이 듭니다. 몇몇의 서정시인이 있었지만 우리는 대체적으로 사기꾼들의 예술에 늘 속아왔던 것은 아닌지 그런 점에서 저항하는 혹은 저항했던 예술가들이 시대가 바뀌니 기득권의 논리를 대변하는 예술가로 쉽게 탈바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음이 듭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정치적 예술로’라는 모토 보다는 ‘순수한 예술로’라는 모토를 내걸어야 선생님이 생각했던 큰 예술의 출현도 가능할 것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자의식보다는 무슨 집단에 속해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우리 문단의 현실이니까요.*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관계예술은 어떤 창조적 행위이고 그 창조적 산물인 작품이, 만든 이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의문입니다. 볼테르는 “신은 우리를 창조했지만 우리는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라는 주장을 통해서 숙명론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관계도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대중들로부터 가장 각광받는 예술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텔레비전 모두 영화와 관련한 코너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화의 해석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것은 대중들의 평도 전문가의 평도 아닌 감독의 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로 할 수 있는 것만을 만드는 감독은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영화를 전혀 이해 못한 3류감독일 것입니다. 문학도 소설이나 시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다른 공간을 통해서 말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에 문제가 다는 ‘정신의 고통’이라는 새로운 준거점을 갖게 됩니다.선생님의 수업과 글들을 접하면서 이렇게 무섭고 강한 잣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신념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느꼈습니다. 저는 그다지 심미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은 못됩니다만 풍경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고 그것을 사진을 통해서 묘사하면서 쾌감을 느끼곤 합니다. 점점 더 사진을 보는 눈이 향상된다고 스스로 자족할 때가 많았지만 무엇이 좋은 사진이냐 하는 물음에 답하기 힘들어 예술철학이란 과목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칸트의 관점은 내게 놀라운 것이지만 내가 보아왔던 사진의 아름다움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쓸쓸함, 외로움, 고통 그리고 비장함을 그려 보이는 게 예술이고 그 중에서도 죽음으로써 자신의 진위를 증명하는 것이 숭고미학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에도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 칸트와 같은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자연에 의도가 있다고 말하는 게 나는 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예술작품이 미적 자율성을 준다는 것은 그것이 욕망이나 고통과 무관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거기에 이러저러한 준거점을 제시 하면 할수록 예술과 무관한 메시지가 될 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사진을 보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연습보다 느낌을 갖는 연습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 내려는 참입니다. 예술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메시지는 아닐 것 이라고 믿습니다.*잔소리와 계몽선생님은 한 개인의 슬픔을 노래한 서정시를 본 독자들은 그것을 통해서 자기연민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그에 앞서서 “서정시의 첫 번째 관심이 타인과의 소통이 아니라 혼자 듣느냐 같이 듣느냐 하는 외적 감상의 조건에 상관없이 주체의 자기반성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에 반대합니다.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과 같은 감정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 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늘 친구들과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밥 먹는 법을 가르칩니다. 예술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시는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만 예술의 결과물을 동일시 시키려는 노력은 밥 사주고 똥을 확인하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이지의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친구가 될 수 없고,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스승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한다면 그것은 친구로써 만남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존중할 때 만이 서로 만남이 가능 할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자유인이 되었을 때만 즉, 서로 주체성을 가질 때만 만남이 가능하다는 말은 노예적 정신의 소유자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귀족적 시민의 만남은 가능할지 몰라도 다수의 타인에게 만남의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요. 상대가 상대가 될 때 만나겠다는 것은 만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계몽의 빛을 걷을 때 비로서 만남의 장에 들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봅니다.선생님은 ‘대립과 건너감’이라는 글에서 그리스 비극의 총체성은 대립을 단순한 동일자로 환원 시키는 게 아니라 “극단적인 대립상을 통해서 시인은 우리를 하나의 입장에서 다른 입장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이 무시될 수는 없습니다. 서정시가 비극으로 이행하는 과정 속에 있듯이 비극 역시 서정시로 이행하는 과정과 같이 있는 것일 테니까요.맺으며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황홀했던 기억이 몇 번이나 있습니다. 그 크기 앞에서 자주 무너진 기억도 있습니다. 앞의 편지에서 선생님에게 제기한 의문들이나 다른 생각들은 제 자신이 주체로 서기 위한 노력으로 읽어 주십시오. 몇 가지 명확하게 드는 물음만을 적으려 했습니다만 다 쓰고 보니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 주절거림이 선생님의 단상들 속에 남아있기를 필
들어가기루소의 전체 철학에 대한 이해는 빈약하고 내가 보는 현실은 각박하고 둘 사이의 한계를 읽어내고 내 논의를 체계적으로 전개하기에는 내가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원래부터 궁금해 있던 질문들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든지 공공교육과 엘리트 교육이라든지 예술의 교육기능과 같은 문제들을 루소의 책에서 자극을 받아서 나름의 해석을 써 보았다. 거친 방식 이지만 현실을 놓아버릴 수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식의 교육 역시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둘 사이 종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둘 사이의 비켜서기라는 방식으로 전혀 새로운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고 믿는다.자연과 인간루소가 꼴라주를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두 가지 방식의 교육을 제시했다. 가정의교육과 자연의 교육이다. 이것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고찰이 선행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가 이미 굉장히 큰 주제여서 개괄적이고 대략적으로 다루는 한계는 분명하겠지만 건너뛸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자연의 질서 속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부여된 소명은 인간의 신분, 곧 인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되도록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과 관련된 어떤 직업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루소,[에밀] p.33, 책세상)인간이 되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접하고 살지만 들을 때마다 어리둥절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미 인간인데 어떻게 해야 더 인간다운가 하는 물음을 우리는 가진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참다운 인간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 하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는 평등하다는 말은 각자가 자신의 소명이 주어져 있다는 전제가 그 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불평등하게 주어져 있음-가령 톰슨가젤이 사자에게 잡혀먹도록 구조되어 있다든지, 하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인을 섬기도록 되어있다든지-을 긍정하는 것이다. 어떠한 소명도-설령 그것이 죽음을 통해 발현되는 먹이와 같다고 해도-가치 있고 우리는 소명을 실현함으로써 인간이 가는 우리는 홀로 얼마나 연약한 존재가 되어가는가? 우리가 아이에게 하는 교육의 첫 번째는 스스로 그러하도록 놓아주는 것 이다. 이는 방치와 잘 구분 해야 한다. 아이가 그와 함께 있는 유모나 부모를 통해 보호받아야 하나 스스로의 선택을 억압받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 과잉보호를 통해 연약하고 고집만 부리는 아이도, 버려져 있다는 극도로 불안한 절망감이 타인 대한 적대감으로 키워가서도 안 된다. 이는 아이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엄청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관심하에서 소극적인 행동을 통해서만이 과잉보호와 방치 사이의 간극을 조심스레 달릴 수 있을 것 이다.자연의 교육의 다른 기능은 숭고와 감동이다. 자연은 인간세(世)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이 거대한 크기의 자연이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 해 나가는 과정들을 보며 때로는 공포를 때로는 숭고함을 느끼며 그 자체를 감동할 줄 아는 존재가 된다. 일몰을 볼 때 일출을 볼 때 끝없이 펼쳐진 광야와 바다를 보면서 우리는 무한한 감동을 느낄 수 있고 이를 통해 타인과 분석 불가능한 영역의 교감 역시 나눌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우리는 품을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자유로운 인간성의 도야야 말로 교육의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예술교육자유로운 인간성의 도야가 교육의 궁극의 목표고 이것은 오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에서만 비롯 된다면 우리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플라톤에 의하면 아름다움이란 실재하는 것과 더불어 빛나는 것이다.”(paidros,250c) 플라톤 철학에서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이데아일 뿐이다. 나머지는 죄다 가상인데 오직 아름다움만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한 것이지만 이데아와 함께 빛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이데아의 세계 즉 진실하고 실재하는 세계로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모호하게 어려운 개인의 미적 취향과 결부해서 대충 선택할 수익힌다면 도시에 살더라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의 시를 암송하는 것이 교육의 전부였다. 호메로스의 시는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고 신과 영웅들은 탁월함과 훌륭함을 갖추고 있다. 즉, 완전함을 향해 있고 그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완전함에 대한 동경을 얻을 수 있다. 배불리 먹는 것에 대한 우리사회의 개괄적 교육이 먹을 것의 생산과 더불어 병든 영혼을 양산한다면 ‘시’를 통한 교육이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길러내겠는가?예술교육의 또 다른 기능은 창조이다. 예술적인 작업이란 완전성함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저마다 창작하는 주체들이 하는 일이다. 만든다는 말은 기술에도 해당된다. 기술과 예술은 그 어원자체가 붙어있으며 지금도 명확하게 분화되어 있지는 않다. 둘 다 인식된 어떤 것을 현시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좋은 예술작품이란 정확한 인식이 바탕에 그 다음으로는 현시할 수 있는 능력(기능)이 있어야 한다. 다만 현대에 오면서 예술의 기능적 역할만이 강조되고 있다.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 많은 물건들 중에 그것을 만든 기술자의 혼이 들어간 물건이 몇이나 되는가? 우리는 교육을 통해 인식과 기능의 조화를 다시금 되살려야 한다. 창조는 신들의 일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조는 전부 예술이다. 그리고 그러한 만듦의 과정에서 인간은 신들이 피조한 단순한 객체가 아니고 인간 고유의 주체성을 갖는다. 신의 것을-완전성-빌려와 자신이 새로이 제작하는 것이 예술이고 우리는 어린아이에게 이러한 창조적 역량을 키워주는 방식을 통해서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고 이것만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루소가 말한 자연의 교육이다.엘리트 교육과 공공교육루소가 에밀을 교육하는 방식과 우리가 받아온 교육의 차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루소가 [에밀]을 통해 말하는 교육방식은 건전한 인격형성에는 설득력이 있으나 하인과 유모가 있어야만 하는 엘리트교육이라는데 있다. 교사 역시도 소수적이고 개인적인감을 쌓아가며 모든 열정을 한 사람에게만 쏟을 수 있다면 얼마나 서로에게 큰 환희가 있게냐만 맞벌이 부부가 출근길에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기는 우리 현실에 직접적용은 불가능해 보인다. 탁아의 단계를 넘어서서도 한 명의 교사가 적개는 4~5개반을 많게는 10개반에 똑같이 강의를 하는 방식으로 교육하는게 우리의 실정이다. 이곳에 우리와 루소의 갈림길이 있다.지금과 같이 모든 이들이 글을 읽고 쓰고가 가능해진 것은 공공교육을 통해서였고 이러한 교육이 대량으로 행해진 것을 6.25이후라 본다면 공공교육의 역사도 별로 길지 못하다. 글을 읽는 이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가진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글 읽는 자들의 폭력에 시달려 왔겠는가? 김영하의 소설[검은꽃]에서 편지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실상을 전해줄 이병도에게 이주민 모두가 자신의 생명을 다하는 일과 맞먹는 중요한 일을 기대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새로운 종류의 폭력이 존재하지만 공공교육이 사람들간에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을 갖게 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지금 말하는 좋은 교육은 유용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지식들은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나 더불어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결정적으로 우리가 서로 대화 가능한 영역에로 대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저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나 공자가 현실 세계로 와서 우리와 대화한다고 가정해본다면 언어의 문제를 극복하더라도 우리 대화의 핵심인 가상세계나 스포츠에 대해 소통 가능하겠는가? 수학적 문제는 어떻겠는가 우리가 이미 상식적으로 계산 가능한 도형이나 다른 생물학적인 지식이 그에게 있어서는 이미 도달할 수 없는 괴상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공공의 교육이 건전한 인격의 도야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문이더라도 지식의 습득을 통해 우리가 사회화의 과정을 거쳐 사회 안에서 시민으로 소통 가능한 영역에서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지금은 교육이 학교와 같은 과정으로 이행하고 타자에 대한 타자의 폭력이 수반화하고 도덕이나 야심이 아닌 법에 모든 영역을 내줘 버린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보편 속의 인간은 잠시라도 법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라는 재앙앞에 미국인들이 보여준 것들은 이러한 예다.그러한 의미에서 루소가 에밀을 교육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점이 크다. 하지만 그 사회에 교육을 받는 계층은 한정적이었고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 역시 소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배우고 놀고 익혀가면서 선대의 직업을 대대로 이어받았다. 목수의 아들은 목공서에서 못박이나 대패질을 통해 놀면서 기술을 익혀 다시 목수가 되었다. 다른 직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 역시 선대가 해왔던 글 쓰기와 글 읽기 방식을 통해 자신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거대화된 교육은 소통가능성과 함께 획일화의 폭력이라는 빛과 그늘을, 소수 엘리트 교육은 전인교육을 가능하게 할지는 모르나 계층의 심화를 가져왔다면 우리는 그 해결점을 향해가야 한다. 지금의 틀 안에서 소수집단화해야만 한다. 개인과 소수집단의 가치와 고유한 빛깔을 유지하면서 소통 가능한 사회를 형성하는 밑바탕은 평등한 다양화다. 거대집단을 해체하고 소수집단화를 통한 사회전반적인 논쟁들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국정교과서를 폐기하고 다양한 철학적 기반을 가진 교과서를 인증제를 통해 선택하게 한다면 모두가 똑 같은 커리큘럼을 가진 교육에서 탈피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똑같이 에서 탈피한다면 다른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상대에 대해 말하되 억압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능할 것 이다.그리고 편리성을 그 큰 무기로 삼는 거대시험장을 걷어버리는 것이다. 거대 시험장의 목적은 전문지식도 지혜도 아닌 경쟁하는 법 살아남는 법만을 가르치는데 있다. 기본적 생존을 넘어 인간다움과 아름다움을 모두가 추구하는 방식만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의 진정한 가치다. 모두가 각각의 주한다.`